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지음·이지윤 옮김 시공사 | 300쪽 | 2021.06
저자 : 아네테 크롭베네슈 ANNETTE KROP-BENESCH 1974년 독일 헤센주 남부에서 태어났다.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과 야생 동물의 생물학적 리듬을 연구했다. 2013년 연구 단체 ‘밤의 상실’을 대표하여 처음으로 야간 인공조명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유럽 전반을 아우르는 단체인 ‘밤의 상실 네트워크’와 독일 조명기술협회의 회원이며, 블로그 ‘밤과 빛’을 통해 대중에게 빛 공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목차
1부 빛이 있으라
빛 공해
빛의 역사
오늘날의 빛 산책
2부 인간
24시간 사회
생체 시계
빛이 병을 만든다
3부 자연
밤의 생활 공간
가로등에 매혹되는 나방
죽으러 가는 길
다음 세대
자연의 박자가 흐트러질 때
먹이사슬에 난 구멍
야간 서식지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
4부 규제와 갈등
빛이 있는 곳에 갈등도 있다
강력한 법인가, 유연한 가이드라인인가
5부 도시
더 밝다고 더 안전하지는 않다
교통안전을 위한 점등
빛나는 광고판
빛과 예술
6부 어둠의 가치
별을 찾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더 읽을거리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우주에서 찍은 한반도의 야경. 사진의 오른쪽 아래 밝은 부분이 한국이고, 가운데 어두운 곳이 북한이다./AP=연합뉴스
출판사 서평
“밤에 충실하라(Carpe Noctem)!”
‘백색도시’, ‘24시간 사회’
밤과 낮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우리의 세계는 무너지고 있다
오래전 우리 선조들은 엄격한 낮과 밤의 리듬에 따라 생활했다. 밝은 낮에는 일을 했고, 어두운 밤에는 사회적 교류를 하거나 잠을 잤다. 그러다 불을 발견하면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고, 야생 동물을 물리치고, 온기를 느끼게 되었다.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빛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후 전기를 발견하고 전구를 발명하게 되면서 삶 곳곳에는 더 많고, 더 밝은 빛들이 채워졌다.
빛은 다양한 도구로 쓰였다. 국가는 시민들이 권력을 두려워하게 만들기 위해 불을 밝혔고, 시민들은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불을 끄거나 불이 꺼진 가로등에 부패한 정치인들의 목을 매달았다. 부자들은 늦은 밤까지 쇼핑과 파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불빛을 ‘부의 상징’으로 삼았다. 노동자들은 불빛 아래에서 고된 노동을 하거나 불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빛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은 점점 커져 갔다.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불을 밝히기 위해 더 저렴하고 적은 전기로 밝힐 수 있는 인공조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는 24시간 내내 불을 밝히고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살게 되었다. 밤은 ‘폐기’가 되었다.
인공조명은 정말 필요할까?
생태학자, 생물학자, 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경보음을 울려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밤이 밝아지면 좋은 게 아닌가?
빛 공해란 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대부분의 사람이 더 이상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우리는 매일 고성능 전조등과 광고판, 가로등, 주택 조명에서 나오는 빛을 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또는 아래에서) 안전감을 느낀다. 실제로 누군가 빛 공해에 대처하기 위해 가로등을 줄이자고 말하면 반대편에서는 빛이 교통사고와 범죄를 줄여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빛 공해는 거의 화제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대규모 환경 보호 단체조차 이를 부차적인 문제로 다룰 뿐이다.
하지만 생태학자, 생물학자, 의학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인공조명의 비극적 결과물을 발견하고 있다. 대부분의 철새는 태양이 대기를 데우지 않고, 기류의 소용돌이가 적은 밤에 이동을 한다. 야간 비행 중에는 지형지물과 지구의 자기장에 의존하여 방향을 잡는데 빛은 새들의 나침반을 무력화시킨다.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새들은 오로지 시각에만 의존에 비행하게 되고 결국 불을 밝힌 고층 빌딩과 스카이 빔, 밝게 빛나는 주유소 바닥으로 곧장 날아간다. 이러한 충돌에 대부분의 새가 죽거나 상처 입은 상태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힌다.
인공조명은 새끼 바다거북에게도 치명적이다. 갓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은 천적들의 눈에 띄거나 비축된 에너지를 소진하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바다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해변의 환한 조명은 새끼 바다거북을 바다로 이끄는 대신 탈진할 때까지 모래벌판을 방황하게 한다. 또는 도로, 주택가로 이끌어 차에 깔려 뭉개지거나 태양열에 말라 죽게 만든다. 매년 10만 마리의 새끼 바다거북이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식물도, 그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도 모두가 인공조명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혼란에 빠져 본연의 생체 리듬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특정 동식물에게 생긴 것이 아니다. 먹이사슬을 타고 점점 전파되어 전체 시스템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 역시 빛 공해의 피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눈부심, 두통, 불안, 수면 장애, 비만, 암, 치매…
사람들은 흡연의 해악에 무지했던 것처럼
빛 공해의 부정적 영향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생체 시계는 나름의 박자를 지킨다. 하지만 빛은 박자를 유지하는 진자의 위치를 일정 한도 내에서 이리저리 옮겨 놓을 수 있다. 그래서 빛을 ‘차이트게버’ 혹은 ‘시간 신호’라고 부른다.
우리는 아침 햇빛 속 청색광을 쐬면 세로토닌, 도파민, 코르티솔의 분비가 촉진되고 저녁 햇빛 속 청색광을 쐬면 멜라토닌이 분비되며 잠이 들게 된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시간대에 우리 눈에 빛이 들어온다면 생체 리듬이 억제되거나 심지어는 교란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 늦게 잠이 들고,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한다.
수면 장애에 뒤따르는 결과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전반적인 행복감이 줄어들고, 밤사이 쉬지 못한 몸은 다음 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비만, 중독, 심혈관계 질환과 암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밝은 지역인 서울과 가장 어두운 지역인 강원도의 유방암 위험률 차이는 34퍼센트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73퍼센트까지 차이가 났다.
무조건 밝고 강한 빛만이 이런 질병을 유발하는 건 아니다. 아주 약한 빛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빛에 대한 민감도는 연령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은 빛을 흡수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개인차도 크다. 누군가에게는 안정감을 높여주는 인공조명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력 장애, 두통, 불안 장애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사람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빛 공해가 심한 나라, 한국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빛 공해에 관한 이야기
우리나라는 빛 공해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지난 2016년, 위성사진을 통해 세계 주요 20개국의 빛 공해 노출 면적을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는 89.4퍼센트로 2위를 차지했다. 인구의 66퍼센트가 너무 밝은 환경에 살고 있어서 완전한 암순응(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차차 어둠에 눈이 익어 주위의 물건들이 보이는 현상)에 들어가는 일이 없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빛 공해를 알리는 책이 절실하다.
이 책은 빛 공해의 원인과 그것이 인간과 자연,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그리고 빛 공해를 측정하는 방법과 그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불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되면서도 환경친화적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질과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찾아가게 이끈다.
우리 세계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빛과 어둠의 교차가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빛의 아름다움과 편리함 속에 감춰져 있던 충격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 자연, 도시, 법의 관점에서 빛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행복과 삶의 터전, 자연과의 조화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출처: 네이브 블로그 美路의 사진여행
책속으로
지금까지 인공조명의 역사를 살펴본 결과, 인간은 언제나 야간 불빛에 양가적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집단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진보로 판단하고 환영했지만 또 어떤 집단은 인공조명이 우리의 환경과 삶을 어떻게 바꿀지를 염려했다. 많은 공동체가 더 밝고, 더 화려한 조명을 부와 현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동안에도, 일부 산업화 국가에서는 밤이 좀 더 캄캄해지길 바라는 목소리가 커져 간다.
--- p.38
밤의 밝기가 수면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특히 한국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구용서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39세에서 70세 사이 8,500명 이상의 수면 습관과 그들의 거주지 밝기 간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그 결과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잠자리에 늦게 들고, 수면 시간이 짧고, 코를 많이 고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변수를 통제해 계산했을 때도 조명이 밝은 지역에 사는 주민이 불면증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았다.--- pp.89~90
맨해튼에서는 2002년부터 매년 911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트리뷰트 인 라이트Tribute in Light’ 행사가 열린다. 7일 동안 밤새도록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 설치된 7,000와트 이상의 전조등 88개가 두 개의 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빔을 쏘아 올린다. 해마다 빛의 향연이 벌어질 때면 빛 안에서 은색 점들이 보였다. 그것이 테러 희생자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관중들도 몇몇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시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광선에 사로잡힌 새 떼였다.--- p.133
나무들은 일찍 달리기 시작한 꽃봉오리 때문에 변덕스러운 기온 변화에 취약해진다. 꽃샘추위에 봉오리가 한 번 얼어 버리면 다시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공조명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잎이 달려 있거나 심지어는 새로 나기까지 한다면 가을이 왔을 때 추위에 대한 나무의 저항력이 낮아진다.
인공조명에서 좀 떨어져 간접으로 영향을 받는 도시의 나무들도 기기로 측정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빛에 노출되어 있다. 바닥에서 가로등의 조명도를 측정하면 밝기는 2~70럭스 사이다. 하지만 가로등 머리와 나란한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서는 5,000럭스도 거뜬히 나온다. 하루 종일 한낮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렇게 나무들은 계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이는 식물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pp.164~165
크리스티안 포크트는 말했다. “인간의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는 낮이다. 그래서 우리는 밤의 생태적 지위를 우리의 욕구에 끼워 맞추었다.” 많은 생명체의 터전인 밤은 우리가 열대우림에 기울이는 것과 다름없는 관심과 보호 노력을 필요로 한다. 빛 공해의 부정적 영향은 대기 오염, 기후 변화, 미세 플라스틱 등의 문제와 달리 금방 없앨 수도 있다. 전등 스위치만 딸깍 내리면 된다. 우리의 생태계는 조명 아래에서 변해 가고 있다. 생태적 책임을 의식한 조명 개념이 절실히 요구된다.--- p.179
우리가 조명의 사용을 규정할 때는 언제나 그 빛의 투입이 항상 의도했던 목표와 맞아떨어지는지 아니면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에 가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뒤로 밀려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생명에 필수적인 어둠은 지켜야만 한다. 건강과 환경이 쾌락이나 정보 전달 다음으로 밀려나선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도시는 양질의 생활 터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최신 기술 덕분에 우리 앞에 지금 당장이라도 이러한 목표를 실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p.211
독일은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불을 덜 밝히는 쪽이다.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의 아우토반에도 가로등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나라들도 생각을 바꾸는 중이다. 프랑스 불로뉴와 벨기에 국경을 오가는 A16 고속 도로의 가로등은 비용상의 이유로 2006년 이후 전원을 내리고 있다. 가로등을 꺼도 사고 건수는 증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해마다 전기세로 나가던 60만에서 90만 유로를 아낄 수 있게 되었다.
파리 인근 도시 발두아즈 지역의 A15 도로도 비슷한 상황이다. 가로등을 잇던 25킬로미터 길이의 전기선을 도둑맞은 이후 그곳은 깜깜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도로가 어두워도 사고 건수는 줄어들었다. 고속 도로에서 교통안전을 위해 조명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확인된 셈이다.--- pp.227~228
우리는 하나의 환경 문제를 피하느라 다른 문제를 키울 위험에도 놓여 있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전 세계가 조명을 강한 청색광의 LED로 바꾸면서 그 부정적인 영향이 거의 모든 생태계에 미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 우리는 더 적은 에너지로 같은 양의 빛을 생산해 내는 대신,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많은 빛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후 변화를 멈추지도 못하면서 밤의 어둠을 지워 버리고 우리의 세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여기에 빛 공해로 인간이 짊어지게 된 짐이 하나 더 있다. 과도한 조명은 우리의 교통안전과 밤의 어둠을 동시에 위협한다. --- p.273
출처 :네이브 블로그 블로그 600X900 책닦는남자 북스테이
더 이상 머뭇대기에는 해악이 너무 큰 ‘빛’
흑단처럼 검어야 할 지구의 밤이 갑자기 옅어졌다. 아니, 옅어졌단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빛의 안개가, 빛의 홍수가, 빛의 산사태가 일어났다. 광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로 맹렬하게 지구 전역을 내달리는 중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천문학자이자 빛 공해 퇴치 운동가인 토마스 포슈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21세기 지구는 내달리는 광자의 세례를 받아 전구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 한반도 위성사진을 보면 전기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는 북쪽은 밤하늘처럼 깜깜하지만, 남쪽은 빈틈없이 불빛이 가득 차 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가량은 한국처럼 ‘빛나는 밤’으로 인해 은하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간판, 침실까지 침투하는 대형 가로등 불빛, 강렬한 붉은빛을 내놓는 대형 교회의 십자가로 인해 누구나 숙면을 방해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책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는 문명과 안전의 상징이었다가 이제는 ‘공해’가 돼버린 빛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아네테 크롭베네슈는 독일의 생물학자이자 빛 공해 연구가다. 그는 “마치 80년대 사람들이 흡연의 해악에 무지했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들은 빛 공해의 부정적 영향을 알지 못한다”는 빛 공해 퇴치 운동가의 말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빛은 인간의 생체리듬을 해쳐 우울증, 비만, 암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먹이사슬을 교란시키고 생태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문명과 안전의 상징이었던 빛은 공해의 한 종류로 여겨지게 됐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는 도시의 조명이 인간의 생체리듬을 해쳐 우울증·비만 등 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동식물의 삶에 영향을 미쳐 생태계를 교란시킨다고 설명한다.
문명과 안전의 상징이었던 빛은 공해의 한 종류로 여겨지게 됐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는 도시의 조명이 인간의 생체리듬을 해쳐 우울증·비만 등 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동식물의 삶에 영향을 미쳐 생태계를 교란시킨다고 설명한다.
문명과 안전의 상징이었던 조명이
생체리듬과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심각한 ‘공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태초에 햇빛·달빛뿐인 세상에서
낮과 밤의 리듬을 따랐던 인류에게
화려한 밤의 빛은 숙면을 방해하고
우울증·비만·암을 유발한다
태초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햇빛, 달빛뿐이었다. 언제부터 우리 일상에 빛이 가득하게 된 것일까. 유물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전등은 4만년 전의 것이다. 조상들은 편평한 석회암에 움푹한 구멍을 내고 동물성 기름을 넣어 불을 붙였다. 도시가 발달하기 전까지 인류는 말린 연어, 바다제비 기름 등 자연의 기름을 태워 밤을 밝혔다. 반딧불이를 잡아 전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조명은 “오늘날 기준에서 보자면 약한 빛으로 아주 작은 부분만 밝힐 수 있는 수준이었다”.
촛불이나 손전등 수준을 넘어 밤거리를 밝힌 조명의 역사는 17세기에 시작됐다. 1662년 런던은 최초로 공공장소에 석유등을 설치했다. 파리는 1667년부터 2년간 가로등 3000여개를 세웠다. 이 당시 조명의 연료는 석유 혹은 북대서양과 남방에서 잡은 참고래 기름이었다. “불빛은 그 자체로 부의 상징”이었다. 1800년대 들어와 가스등·전기등이 발명되고 1879년에 ‘발명의 왕’ 에디슨이 백열등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조명의 역사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다. 1800년대 후반 수력·화력 발전소가 하나둘씩 세워지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마련되면서 지금과 같은 조명 시대가 열렸다.
유해성을 알지만 끊을 수 없는 빛
꼭 필요한 곳에만 설치하게 하고
방향·색깔 등 규제가 필요하다
‘밝은 밤’과 가로등은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주거지와 위락 시설에 설치된 조명으로 제일 먼저 혜택을 본 것은 도시의 부유층”이었으며, “인공조명은 지배층의 권위와 통치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시민들은 ‘공권력의 상징’인 가로등을 부수고, 부서진 가로등에 관리들의 목을 매달아 처형했다고 한다. 1819년 독일 쾰른의 한 신문에는 ‘가로등은 모두 사악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불빛이 향락 행위를 수월하게 하고 밤도둑들을 과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기사 요지였다. 기사 작성자는 “가로등으로 거리를 밝힌 것은 하나님이 정한 질서에 간섭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종교적 이유까지 가지 않아도, 과학으로 들여다본 빛은 확실히 인간의 생체 내 질서에 간섭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낮과 밤의 엄격한 리듬에 따라 생활했다. 우리의 생체 시계는 나름의 박자를 지킨다. “빛은 박자를 유지하는 진자의 위치를 일정 한도 내에서 이리저리 옮겨 놓을 수 있다. 그래서 빛을 ‘차이트게버’(신체 내생적 리듬을 환경과 동기화시키는 외부 신호) 혹은 ‘시간 신호’라고 부른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는 아침 햇빛을 통해 청색광에 노출되고, 그 빛을 통해 낮이 되었음을 인지한다. 어두워지면 ‘수면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생성된다. 그런데 자야 할 시간에 우리 눈으로 청색광이 들어오면 멜라토닌 분비가 중단되고 아드레날린 분비가 배로 증가하면서 몸이 활동 준비에 들어간다.
책에서는 빛으로 인한 수면 방해가 광범위한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빛 공해 국가 순위 5위권 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의 연구 결과도 여러 개 인용됐다. 구용서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이 39~70세 8500명 이상의 수면 습관과 그들의 거주지 밝기 간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잠자리에 늦게 들고 수면 시간이 짧으며 불면증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았다. 또 다른 연구팀의 빛 공해 관련 연구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밝은 지역의 우울증 발병률이 가장 어두운 지역에 비해 1.29배 높았고, 자살률은 1.27배 높았다. 야간 조명은 이 밖에도 비만, 중독,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생태학자들은 빛의 생태계 교란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가장 명백하게 영향을 받는 것은 새다. 대부분의 철새는 공기가 차갑고 기류의 소용돌이가 적은 밤에 이동한다. 철새는 가장 밝은 지점을 향해 날아가는데, 하늘로 쏘아올려지는 조명은 철새의 방향 감지 시스템을 교란한다. 독일 본에 있는 163m 높이의 우체국 타워는 밤에 다채로운 색깔의 불빛을 낸다. 생태학자 하이코 하웁트가 14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를 보면 새 1000여마리가 밤마다 우체국 타워 주변에서 방향 감각을 잃어 밤새 빛 주변을 맴돌다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뉴욕 맨해튼에서 매년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열리는 ‘트리뷰트 인 라이트’ 행사에서는 7000와트 이상의 전조등 88개가 두 개의 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빔을 쏜다. 코넬대 조류학연구소의 연구 결과 이 행사 때마다 약 100만마리의 새가 비행 운동에 영향을 받았으며, 행사장으로부터 1.5㎞에 있는 새들이 모두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고 한다.
육·해·공의 동식물 모두 조명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알을 깨고 나온 바다거북은 달빛과 별빛이 반사되는 얕은 수면을 향해 기어간다. 그런데 빛 공해가 자연적 방향 감각을 흐릿하게 만들어 새끼 바다거북들은 탈진할 때까지 감을 잡지 못하고 해변을 방황한다. 인공조명을 향해 도로를 건너 기어가다가 차에 깔려 뭉개지거나, 고양이나 쥐에게 잡아먹히고, 아침이 되면 태양열에 말라 죽는다. 꽃가루 매개자인 곤충들이 수분 작업 대신 가로등 주변을 맴돌면서 식물종의 번식 양태도 달라진다. “한 식물종의 수분에 생긴 변화는 단지 그 식물의 번식이 시원찮게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여파는 먹이사슬을 타고 점점 전파돼 전체 생태 시스템에도 변화를 초래한다.”
빛의 유해성을 안다 할지라도, 깜깜하기만 한 도시의 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저자의 주장은 빛이 공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해 과도한 조명을 규제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으로 귀결된다. 책에서는 야간 조명을 설치할 때 고려할 만한 ‘야간 조명 가이드라인’을 소개한다. 조명은 건강상 피해를 일으키는 청색광 비중이 적은 것으로 꼭 필요한 곳에만 설치하고, 조명이 비추는 방향은 하늘이 아닌 땅으로 할 것 등이다. 저자는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실외 조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지만, 적극적 규제는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빛 공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책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빛 공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대전시, 울산시 등은 옥외조명이나 광고조명을 규제하는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빛 공해 실태조사를 하고 공해 유형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것도 눈에 띈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마무리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행복과 삶의 터전, 자연과의 조화를 위기로 몰아넣지 않고서도 인공조명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시간이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머뭇대지는 말자.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자주 불을 끄자!”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