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 저자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갈무리 / 2022.11.
-볼리비아의 탈식민적 복수국민국가 변혁과 대중대학 운동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 (Boaventura de Sousa Santos) -포르투갈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사회학자, 법학자이다. 1963년 꼬임브라 대학교 법대 졸업 후 독일 베를린에서 법학 대학원 과정을 밟았고, 1960년대 후반에 예일대학교에서 법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꼬임브라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동대학의 사회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의 초빙교수이다. 세계사회포럼의 핵심 멤버로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에서 널리 알려져있는 산투스는, 신자유주의가 훼손한 국가와 민주주의를 대안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를 역설하면서 특히 이 과정에서 대학이 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반신자유주의 대안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산투스의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모순과 한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1992년부터 아니발 끼하노, 월터 미뇰로, 엔리케 두셀 등이 식민성의 단절(또는 전환)을 주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산투스는 수십 권의 포르투갈어 저서, 수십 권의 스페인어 저서, 그리고 영어로 출판된 저서도 여러 권이 있으며, The Pluriverse of Human Rights 등 여러 권의 공동 저서와 편집서가 있다. 2010년에 출간된 Rap Global 에서는 랩 작사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5
추천의 글 9
1장 사회해방을 재발명하기 19
2장 21세기 대학에 대한 토론 59
3장 오늘날 사회과학의 도전 164
4장 사회운동을 위한 ‘대중대학’에 대한 토론 198
5장 국가의 재발명과 복수국민국가 230
6장 <볼리비아 원주민 종족 연맹> 회원 및 대표자들과의 만남 302
옮긴이의 말 316
출판사 리뷰
땅이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에 속하는 것입니다
콜롬비아의 한 대학의 민법 강의실에서 토지 거래와 개인 재산권에 대한 설명을 듣던 원주민 학생이 교수에게 말했다. “우리 공동체에서 토지 매매는 불가능합니다. 땅이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교수가 답했다. “나는 지금 지식을 가르치고 있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가 콜롬비아에서 정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법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의 조교가 겪은 일이다. 드 소우자 산투스는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에 수록된 발표문들에서 여러 차례 이 사례를 언급한다.
산투스는 민법 교수가 “내가 가르치는 것이 지식”이라고 선언한 그 순간 원주민 학생은 지식을 모르는 무지한 자가 되었다고 본다. 민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원주민 공동체에서 배운 고유의 지식을 잊어야만 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은 과학 지식의 단일문화를 방어하고 역사상 가장 극적인 범죄인 ‘인식론적 살해’에 공모해온 기관이다. ‘인식론적 살해’는 농민의 지식, 원주민의 지식, 아프리카계 후손의 지식에 죽음을 선고한 것이다. 그리고 지식의 죽음은 이 지식을 사용하는 사회 집단을 살해한 것과도 같았다.
‘지식의 생태학’을 창출해야 한다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 라빠스 북쪽에 거주하는 원주민 집단 빠까우아라족 공동체에는 사회적으로 인간 부모가 없고, 모두가 형제 관계를 맺는다. 대신 나무들이 이들에게는 부모이다. 빠까우아라족은 오늘날 빈곤이라는 야만 때문에 나무를 베어서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상황이 그들에게 자살행위와 같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드 소우자 산투스는 이를 식민주의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독해한다. 지식의 식민주의는 서구 중심적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우주관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사유를 후진적인 것, 야만적인 것, 뒤처진 것으로 규정하고 묵살해왔다. 그래서 산투스는 ‘독립’과 함께 식민주의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산투스는 단일문화를 ‘지식의 생태학’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지식의 생태학’은 수천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들에서 축적되어 온 전통적인 지식과 근대과학의 기관인 대학의 체계적 지식이 수평적으로 공존하고 대화하는 상호문화성을 바탕으로 한다. 지식 생태학에서 무지는 도착점이 될 수는 있지만, 출발점은 아니다. 우리가 지식을 배울 때 각각의 지식은 무지를 만들어내지만 무지는 결격사유가 아니다. 드 소우자 산투스는 근대과학이 소중한 인류의 지적 자산임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산투스가 보기에 근대과학은 “강이 영혼을 가진다”와 같은 문장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지식의 별자리가 존재할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산투스는 이야기한다.
대학,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의 2장 「21세기 대학에 대한 토론」은 2007년 3월 27일 볼리비아 국립 종족학 민속 박물관(MUSEF)에서 열린 토론회의 기록이다. 이 자리에서는 대학의 현황과 개혁 방안에 관한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이 책의 저자인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를 비롯해서 전 고등교육부 차관 구스타보 로드리게스, 라틴아메리카 문학 학자 기예르모 마리아까, 토론회 주최 단위 중 하나인 산안드레스 국립대학교 발전학 대학원 학장 세실리아 살라사르, 볼리비아의 저명한 사회학자 페르난도 마요르가, 모랄레스 집권 초기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아이마라족 원주민 출신 사회학자 펠릭스 빠치, 볼리비아의 좌파 사회학자 호세 미르텐바움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볼리비아의 대학 개혁 논의에는 한국 사회와는 다른 맥락이 있다. 볼리비아에는 공립대학(국립대학, 시립대학 등) 외에 사립대학이 있고, 탈식민적 상호문화성이 강조되면서 원주민 대학도 설립되었으며, 엘리트 중산층 외에 평범한 대중의 교육 요구에 따른 대중대학도 설립되어 있다. 예를 들어, 코차밤바에는 라 플라사 자유 대중대학이 있다. 볼리비아에서 대중대학은 하나의 대안적 사회운동으로 볼 수 있다.
토론 참석자들의 다채로운 이력만큼이나 대학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볼리비아의 대학 개혁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되었다. 고등교육부 차관이었던 로드리게스는 “지식을 전달, 창조, 전파하는 연구” 기관으로서의 대학은 볼리비아 사회에 존재한 적이 없으므로, “있지도 않은 것을 개혁”하자고 말하기보다 “대학의 건설”을 고민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국립 가브리엘 레네 모레노 자치 대학 건설에 참여했던 호세 미르텐마움은 대학이 “야만적이거나 야생적인 원주민을 관리할 수 있도록 식민지 주민을 훈련하던 곳”이었음이 분명한데, 대학에서의 탈식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대학의 상업화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컨설팅 업체와 공립대학 사이의 수치스러운 동맹”을 언급하는 마요르가는 “대학원 과정을 1천5백 달러짜리 2년 과정으로 만들어서, 토요일에 종일 수강할 수 있게 하고 논문도 쓸 필요 없이 졸업하면 두 개의 학사학위, 두 개의 석사학위 등 총 네 개의 학위를 주는데, 누가 이런 것과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라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종잇조각이 된 석박사 학위의 현실을 개탄한다.
마지막 발표를 맡은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는 대학 개혁 논의는 모든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 지구적인 과정임을 분명히 한 뒤, 그 위기는 “대학과 대학 서비스를 상품화하는 세계화 과정에서 온 것”이라고 진단한다. 보아벤투라는 2007년 당시 미국, 호주,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 국가의 대학들이 과학기술·사회학·인문학·인류학 등의 학위과정에 특허를 내고 이를 제3세계 대학에 판매하고 있는 것을 “대학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사례로 든다. 이런 경향을 역전시킬 대안으로서 산투스는 다시 한번 단일문화를 지식 생태학으로 대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보 모랄레스와 2009년 볼리비아 신헌법
남아메리카 대륙 중부의 내륙국가 볼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2000년 볼리비아 대중은 물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코차밤바 물 전쟁에서 승리했고, 2003년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를 퇴진시켰다. 이 두 사건이 역사적 분기점이 됨으로써 2005년 아이마라 원주민 출신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의 대선 승리를 견인했다. 2019년 미국의 후원을 받은 우파의 쿠데타로 물러난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대통령이었다. 2019년 집권한 전 대통령 자니네 아녜스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랄레스의 정당 〈사회주의운동당〉(MAS)의 루이스 아르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009년, 모랄레스의 임기 초에 볼리비아 사회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새 헌법에는 상호문화성, 탈식민, 좋은 삶(Buen Vivir) 같은 볼리비아 대중의 수백 년간의 투쟁 성과들이 명문화되었다. 2007년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는 2007년 3월 산안드레스 국립 대학교 발전학 대학원과 〈꼬무나 그룹〉, 〈시민들의 유럽을 위한 재단〉이 주최한 학술행사 ‘국가와 사회를 다시 생각한다 : 현재의 도전들’에 참여했다.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은 이 학술대회를 위해 볼리비아를 방문한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가 학술대회 심포지엄과 사회운동 단체와의 면담 자리에서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책에는 드 소우자 산투스의 발표뿐만 아니라 학술대회에 참여한 볼리비아 지식인들의 발표와 청중의 질의응답과 논평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이 기록하고 있는 2007년 3월~4월이라는 시점은 볼리비아 사회에서 제헌의회 활동을 둘러싼 갈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폭발하고 있는 국면이었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수백 년간 볼리비아 사회에서 원주민들이 감내해온 사회적 부정의와 불평등을 종식할 것을 모랄레스는 공약했었다. 제헌의회는 2006년 8월 6일 볼리비아의 사법 수도 수크레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출범 전부터 이후까지 볼리비아 사회는 갈등 속에 있었다. 특히 인종적으로 백인과 메스티소가 다수를 차지하는 동부의 ‘반달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신헌법 반대 세력은 볼리비아 원주민 공동체들에 대한 존중뿐 아니라 선출된 공무원에 대한 소환제도, 가스 산업 같은 경제 부문의 국유화, 자치 강화와 분권화 등을 골자로 하는 신헌법에 격렬히 반대하였다. 그들은 제헌의회 추진 세력에 대한 폭행과 모욕을 서슴지 않았고 사건의 일부는 이 책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은 이러한 격동기를 기록하고 있다.
산투스는 볼리비아의 원주민 대중과 연대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의 현명함에 대해서 감동을 표현하고, 그들의 투쟁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음을 강조한다. 상호문화성, 탈식민성, 지식의 생태학, 인식론적 살해 같은 개념들을 활용하여 볼리비아 신헌법이 좀더 급진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고, 앞으로 불어닥칠 위험들을 미리 예방하자고 제안한다. 산투스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극소수가 부를 축적하는 동안 대다수는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고통을 겪는 세계라고 본다. 이런 시대에는 지구의 ‘남’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수국민국가는 하나의 국가 안에 복수의 국민 공동체가 있음을 인정한다
2009년 볼리비아 신헌법은 볼리비아를 ‘Estado plurinacional’(복수국민국가)로 선포했다. 이는 하나의 국가 안에 복수의 국민 공동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단일 국민을 상정하는 근대국가를 재발명하는 아이디어이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가 사용하는 볼리비아의 공식 명칭은 ‘볼리비아다민족국’이다. 국내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은 ‘다국민국가’라는 번역어도 사용한다. 이 책에서 ‘복수국민국가’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첫째, ‘plurinacional’은 하나의 국가 안에 다양한 문화, 전통, 우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수의 ‘국민’ 공동체가 있음을 인정하는 국가 모델이기 때문이다. 둘째, ‘다국민’ 대신 ‘복수국민’으로 한 것은 ‘복수국민국가’ 이념이 하나의 것을 중심 또는 상위에 놓고 다른 것을 관용한다는 위계 서열적 뉘앙스를 가진 ‘다문화주의’를 극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헌법에 복수국민국가(Estado plurinacional)를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두 곳이다.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 명문화했다. 복수국민국가는 원주민 문화에 뿌리를 둔 ‘공동적인 것’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이를 ‘좋은 삶’(Buen Vivir)으로 호명하고, 서구 근대문화에서 기원하는 ‘개인주의적인 것’과 원주민 문화에서 유래된 ‘공동적인 것’이 위계 서열 없이 수평적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토피아적 선언이다. “토지는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본주의의 근간인 사유재산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원주민의 생각, “나무는 우리의 부모이므로 벨 수 없다”고 말하는 원주민의 포스트휴먼 세계관을 구체적인 제도와 자치의 강화를 통해서 존중할 방법을 찾는 것이 복수국민국가이다.
볼리비아 대중의 제헌권력으로부터 배운다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2010년의 한 인터뷰에서 남아메리카에서는 자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제국』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음에 반해서 제헌권력에 관한 그의 책은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e-flux 인터뷰). 이 책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을 읽으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서구화된 그리고 소위 발전된 사회들이 양당 체제에 신음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동안, 볼리비아 대중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다양한 세계관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철학을 헌법에 명문화하였다. 이 책은 저자 드 소우자 산투스의 발표뿐만 아니라 볼리비아의 지식인들, 사회운동가들, 거리의 투사들의 논평과 질문들을 가감 없이 수록하고 있으며, 그래서 볼리비아 대중의 역동성과 변혁 열망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볼리비아 사회는 현재 여러 어려움 속에 있지만 볼리비아 원주민들의 사회운동이 식민 지배와 독립 이후에도 이어진 차별과 억압을 뚫고 복수국민국가라는 헌법 규정을 이끌어낸 것은 분명한 성과로 보인다. 어떤 사회에도 다양성은 존재한다. 서로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기도 한다. 볼리비아 사회는 강에 영혼이 있다고 보는 사람과 그런 생각을 야만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산투스는 특히 지금까지 야만으로 치부되어 ‘인식론적 살해’를 당해온 그러한 생각들에 인류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 차이가 혐오의 근거가 되고, 거듭되는 팬데믹과 함께 생활환경은 나날이 재난의 현장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선출된 대의권력이 대중의 안녕과 배치되는 언행을 하더라도 제어할 수단이 거의 없다. 우리가 볼리비아 대중의 제헌권력으로부터 배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책속에서
이제는 권력을 잡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변화시켜야 하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다양성을 한꺼번에 설명해주는 보편 이론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회해방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 단어를 사회해방‘들’로, 복수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대안이 없다고, 그래서 외길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유일한 출구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운동이 위험에 처할 것이 분명한 반대 논리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항상, 특정한 대안들이 있습니다. 모든 기술적 해법에는 대안적 기술이 있고 모든 기술은 정치적입니다. ― 본문 중에서 접기
이 책에서 나는 역사적인 ‘막다른 궁지’를 극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근대성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과 제도들을 재발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특히 사회해방, 대학, 근대과학의 인식적 독점, 근대 민족-국가에 대한 생각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P. 8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근대국가와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정치적 안정조차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도의 상호문화성 및 탈식민성을 장착한 민주주의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야만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는 복수문화적, 탈식민적 국가를 발명해야 합니다.
― 1장 사회해방을 재발명하기 P. 48
브라질의 밀림과 아마존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우주관을 만나게 됩니다. 완전히 다른 언어로 된 우주관입니다. 그곳에서는 각 원주민 집단 사이의 거리도 40 또는 50킬로미터씩 떨어져 있습니다. 에콰도르에는 아직까지 소위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과 접촉하지 않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석유 문제로 자본주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름이 아직 붙지 않은 침략입니다. 이 대륙에서 원주민에 대해 벌어지는 역사적 범죄입니다. 그들은 영토에 있는 석유를 지키고자 하는 것일 뿐인데 사방에서 포위되고 있습니다.― 2장 21세기 대학에 대한 토론 접기 P. 153~154
나는 오늘날 사회해방을 재발명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활동과 우리 권위와 관련된 다른 형식의 절합을 재발명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지식, 다른 종류의 합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문제는 아마 단지 이론적 문제가 아닐 것이고 인식론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 3장 오늘날 사회과학의 도전 P. 170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대안이 없다고, 그래서 외길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유일한 출구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운동이 위험에 처할 것이 분명한 반대 논리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언제나, 항상, 특정한 대안들이 있습니다. 모든 기술적 해법에는 대안적 기술이 있고 모든 기술은 정치적입니다. ―4장 사회운동을 위한 ‘대중대학’에 대한 토론 P. 225~226
‘남’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세계를 서구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공유하고 보고 분석할 다른 세계관이 있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 5장 국가의 재발명과 복수국민국가P. 239
제헌의회의 과정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 원주민이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뽑히고 난 후 우리는 이제 다른 역사적 과정의 시작점에 선 것입니다. 다시 500년의 세월이 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더 짧을 것이고 다른 승리를 획득할 것입니다. 특히 영토의 통제와 근원적 자치에 있어서 그러할 것입니다.― 6장 <볼리비아 원주민 종족 연맹> 회원 및 대표자들과의 만남 P. 305
서구 헤게모니에 점령된 한국, 볼리비아보다 못한 현실 살아간다
볼리비아에서 땡전 뉴스를 경험하다
<사회해방과 국가의 재발명>은 보아벤투라 드 소우자 산투스가 2007년 3월부터 4월에 걸쳐 볼리비아에서 행한 여러 차례의 학술발표와 초청강연 등을 토대로 만든 책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저 지면으로 접했을 뿐인데도 행사들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점이었다. 가령, "그레고리아 아빠사" 여성 인권 증진 센터의 강연을 담은 4장 '사회운동을 위한 '대중대학'에 대한 토론'이 그렇다. 청중 중에는 운동가와 일반 시민이 있었는데, 이들은 포르투갈의 법사회학자로 세계사회포럼의 주요 이론가인 소우자 산투스의 명성이나 학술적 권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들은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토로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빈곤하고 무지하다는 조롱을 받던 볼리비아 같은 나라에서 소우자 산투스 같은 학자가 긴 일정을 소화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장삼이사들까지 국가의 운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치열하게 토론에 참가하는 풍경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2003년 볼리비아 여행의 기억과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2003년 필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까지 육로로 여행했다. 국경을 넘기 전날 접한 볼리비아 뉴스는 걱정스러웠다. 시위대가 주요 도로를 차단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도로 인프라가 열악한 나라인지라 길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었다. 다행히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엘알토 시에서 수도 라파스로 진입하는 톨게이트를 목도하고 아연실색했다. 요금 징수 부스가 모두 박살나 직원들이 도로에 서서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뉴스를 틀어보고 나서야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통령궁 앞 광장의 도심 시위 때, 군이 주변 건물에 저격병들을 배치, 발포하여 30여 명이 사망한 것을 항의하는 시위였다.
대명천지에 수도 한가운데에서 저격병들에 의한 학살극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날 계속 이 채널, 저 채널의 TV 뉴스를 챙겨보았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땡전 뉴스가 절로 떠올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볼리비아 정계에서 당시 대통령보다 더 세다는 실력자의 발언으로 모든 뉴스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저격수 배치와 발포를 문제 삼지 않고 ‘강경’ 시위의 배후에 책임을 돌렸다. 비록 이름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지목한 배후인사는 노조 지도자였다가 대중의 지지를 업고 불과 8개월 전의 대선에서 급부상하면서 2위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바로 에보 모랄레스였다. 언론은 문제의 실력자 발언을 전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그를 좌파, 과격한 노조 지도자, 위험한 포퓰리스트, 무지한 선주민 등으로 몰아갔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에보 모랄레스가 그 학살극에서 사실상 국외자였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통령 궁 시위를 에보 모랄레스가 주도했고, 이에 반응한 정부의 강경대응이 비극적인 학살극으로 치달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학살극은 경찰과 정부, 경찰과 군 사이에 벌어진 충돌의 산물이었다. 세금 문제로 불만을 품은 경찰 일각에서 시위를 벌이자, 놀란 정부가 군을 동원하여 저격병 배치와 발포를 승인했다. 이에 경찰 일부도 무장투쟁으로 맞서면서 일이 커졌다. 에보 모랄레스가 한 일은 그저, 국가 기관들 사이의 무장충돌이라는 희대의 사건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물으면서 대통령 사임을 요구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당시 여권은 희대의 국정 혼란을 정적 제거의 기회로 이용해 언론의 땡전뉴스를 조장한 것이다.
남(南)의 인식론
어째서 그들은 에보 모랄레스를 제거하려 했을까? 그의 출현과 존재감은 적어도 '잃어버린 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할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은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회자된 표현이다. 원래 외채위기로 극심한 인플레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라틴아메리카의 1980년대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가 진보의 경제 '무능'을 꼬집는 프레임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은 사실 냉전, 발전주의, 군부독재, 석유위기, 미국의 정책 등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오남용된 표현인 셈이다. 냉전체제 하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했고, 월트 휘트먼 로스토의 경제발전단계설이 설득력 있는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독재 정당화가 필요했던 라틴아메리카 군부정권들이 로스토의 '복음'에 고무되어 경제 발전을 위해 앞 다투어 외채를 구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군부정권들은 1970년대의 유가 급등으로 축적한 오일 머니 덕분에 순조롭게, 그러나 과도하게 외채를 조달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과 재정적자 타개를 위해 레이건 정부가 금리를 올리는 순간 외국인 투자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난파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잃어버린 10년'의 가장 큰 책임은 군부정권과 이들이 신봉한 발전주의에 있다는 사실은, 그 시기에 각국의 군사독재가 속속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권력은 민선 정부로 넘어가지 않았다. '잃어버린 10년'의 여파가 너무도 커서 군부정권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혁명이나 급진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이들까지도 극단적인 이념 갈등의 또 다른 축으로, 그래서 라틴아메리카를 망친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는 그 이전까지 라틴아메리카를 설명해 온 상반된 두 패러다임이 일거에 폐기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군부정권들이 신봉한 발전주의와 이와 대립하는 시각으로 라틴아메리카 역사와 현실을 재단했던 종속이론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라틴아메리카를 황폐화한 것이다. 각국에 속속 들어선 민선정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권력 공백을 이용해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은 신자유주의였다. 대륙 전체가 신자유주의 실험장이 되었고, 시장이 국가 대신 권력을 장악했다.
원래도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볼리비아는 이 국면에서 더 고통이 클 수밖에 없었다. '대안은 없다'를 천연덕스럽게 내세운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국가는 때로는 실종되고 때로는 야합했다. 가령, 1999년 코차밤바 시의 수도 민영화 조치로 요금이 단번에 200% 폭등했다. 빗물을 받아쓰거나 우물을 파는 데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자본은 탐욕스러운 민낯을 보였다. '대안은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신자유주의 드라이브의 결과는 소우자 산투스도 지적하듯이 "폐허"(p. 7)였다.
여기서 반전이 이루어졌다. 저항이 있었다. 소위 코차밤바 물 전쟁으로 비화한 저항의 결과 벡텔사(社)가 주축이 된 해외자본이 2006년에 두 손 들고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이 각성했다. 그들은 승리의 경험으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열망이 응집해 2006년 에보 모랄레스 정권을 낳았다. 소우자 산투스는 볼리비아의 이 과정이 '대안은 없다'를 부르짖으며 "역사주의와 미래주의를 동시에 근본적으로" 거부한 "현재주의"(presentism)에 대한 대단히 의미 있는 반격이라고 보았다(p. 6).
소우자 산투스는 '남(南)의 인식론'이라 불리는 이론의 정립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리고 볼리비아 사례는 그의 이론의 주요 토대의 하나였다. 사실 볼리비아를 주목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는 낯선 현상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말은 지식의 장에서는 공허한 주장이었다. 서구 지식의 헤게모니 하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식은 늘 주변부 지식에 불과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약소국인 볼리비아 지식은 더 소외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소우자 산투스가 주목한 볼리비아 지식은 보통은 정치적 주장이나 소외된 민중의 목소리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통상적으로는 지식의 장에서 논의될 자격도 없었다. 그러나 소우자 산투스는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북(北) 혹은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은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 이 국면에서처럼 "해방에 대한 정치이론 및 비판이론과 해방의 실천 사이에 커다란 괴리와 모순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p. 22)라고 단언할 정도이다. 그 이유는 북(北) 혹은 서구의 이론이 "새로운 행위자, 새로운 주체,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투쟁, 새로운 행동양식들"(p. 23)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사회변혁의 실천, 즉 사회 변화를 위한 지식의 이론적 실천이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서구 지식은 이제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공허한 것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소우자 산투스는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남으로부터 배우는 ... 남의 인식론"(p. 23)을 오히려 서구에 권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라틴아메리카만큼 이론(혹은 지식)과 실천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한 지역은 없었다. 사파티스타 봉기(멕시코, 1994), 우고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천명(베네수엘라), 세계사회포럼 결성(브라질, 2001) 등이 그 사례이다. 비록 볼리비아가 전통적으로 이들 국가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지만, 소우자 산투스 입장에서 볼 때, 코차밤바 물 투쟁(1999-2000), 에보 모랄레스 집권(2006), 제헌의회 활동(2006-2007), 신헌법 발효(2009)로 이어지는 부단한 사회변혁 과정은 이론(혹은 지식)과 실천의 결합이 일구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제헌의회와 사회과학의 전환
소우자 산투스가 볼리비아를 방문한 이유는 특히 제헌의회 실험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우선 '제헌의회'라는 용어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독립한 지 거의 200년이 된 나라가 제헌의회를 만들다니 그동안 헌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제헌의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독립 이래의 헌법이 전혀 볼리비아 현실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인식의 소산이었고, 이를 바로 잡을 원칙들을 국가의 근간인 헌법에서 적시하는 것이 사회변혁 및 이를 담보할 국가의 재발명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기존 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용어를 사용하다보니 반대자들의 공격이나 오해의 빌미가 되었다. 미국은 아예 에보 모랄레스를 '불량 좌파'라고 낙인찍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논조는 공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선주민 볼리비아가 라틴 좌파에 합류하다'라는 기사를 통해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을 다수 선주민(볼리비아의 선주민 인구 비율은 오늘날에도 40퍼센트에 육박한다)들이 좌파 이념의 영향을 받아 달성한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탈식민주의 주요 이론가의 한 사람인 월터 미뇰로는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은 좌파로의 전환이 아니라 탈식민적 전환이라는 반론을 펼친 바 있다. 소우자 산투스도 동일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탈식민적인 것'이란 식민주의가 독립과 함께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p. 33)고 그는 말한다. 그의 이런 인식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떠올리면 이해가 갈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뿌리를 둔 차별적 사회구조가 재생산되어 온 것이 볼리비아의 지난 역사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우자 산투스는 볼리비아 강연들을 통해 내내 탈식민성이라는 원칙을 신헌법에 담을 것을 주문한다.
탈식민성과 더불어 소우자 산투스가 강조한 것이 또 있다. 상호문화성이다. 이는 36개 민족과 종족으로 이루어진 볼리비아 현실 때문이다. 이때의 상호문화성은 "단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특성"(p. 246)의 천명이기도 하다. 현실에 맞지 않게 동질적인 하나의 국가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36개 민족과 종족이 대등하게 공존하면서도 공통의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통합의 정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헌법에 담긴 복수국민국가가 바로 이 상호문화성의 필요성을 반영한 국체(國體) 선언이었다.
그렇다면 볼리비아 제헌의회 실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와는 너무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듯한 국가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먼저 상호문화성과 탈식민성의 강조가 근대를 향한 비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근대는 하나의 국민이 하나의 국가를 이룩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정치 이론의 시대였기 때문에 상호문화성에 입각한 복수국민국가라는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는 없었다. 또 근대가 내세운 해방의 약속들은 근대성이 성숙하면 자연스럽게 실현되리라는 낙관주의의 시대였기 때문에, 식민주의나 식민성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근대의 약속 자체가 애당초 전 세계에 적용할 만한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볼리비아 사례를 통해, 또 소우자 산투스를 통해 얻어야 할 시사점이 바로 이 점이다. 가령, 이 책의 3장인 '오늘날 사회과학의 도전'에서 소우자 산투스는 자신이 속한 학문 분야를 두고 통렬히 자아비판 한다.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이론, 개념, 범주들이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중반 사이에 약 4, 5개 나라(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이탈리아 등)에 기원을 둔 것이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단일 문화적이고 서양 문화적인 학문이 되었고, 식민주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학문이 되었다(pp. 166-167).
우리나라의 사회과학은 다를까? 아니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걸쳐 동일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박사가 아니면 교수로 임용되기도 힘든 분야가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소위 서구 지식 헤게모니에 따른 지식의 식민성 여부를 진지하게 따져보아야 할 상황이다. 어쩌면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못하다는 볼리비아보다 못한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석균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