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 2023. 7. 10. 01:00

빙하여 안녕 - 기후 위기 최전선에 선 여성학자의 경이로운 지구 탐험기

제마 워덤 (지은이),박아람 (옮긴이) 문학수첩 2022-07

Ice Rivers : A Story of Glaciers, Wilderness and Humanity (Paperback) Paperback

 

제마 워덤 (Jemma Wadham) 세계 최고의 빙하학자이자 모험가이며 작가. 영국 브리스틀 대학의 빙하학 교수이며 노르웨이 북극 대학의 외래 교수이기도 하다. 그린란드와 남극대륙, 스발바르, 칠레 파타고니아, 페루 안데스와 히말라야를 포함해 세계 각지의 빙하를 탐사하며 25회 이상 원정대를 이끌었고, 필립 리버흄 상(Philip Leverhulme Prize)과 영국 왕립학회의 울프슨 연구 공로상(Royal Society Wolfson Merit Award)을 비롯해 여러 연구상을 수상했다. 빙하에 서식하는 생물과 빙하가 지구의 탄소 순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선도한 인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목차

여는말: 시린 첫 만남

 

1부 얼음의 냄새

1. 감춰진 세계를 엿보다_스위스 알프스산맥

2. 곰들, 곰들의 세상_스발바르 제도

 

2부 거대한 빙상

3. 심층의 배수: 그린란드

4. 극한에서의 삶: 남극 대륙

 

3부 빙하의 그림자 속에서

5. 글로프를 주의하라!: 파타고니아

6. 말라가는 흰 강들: 인도 히말라야

7. 마지막 얼음: 코르디예라 블랑카

 

맺는말: 갈림길

감사의 말

빙하 관련 용어 해설

미주

출판사 책소개

지구 온난화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기상 이변에 따른 가뭄과 홍수, 한파 등에 관한 소식을 접한다. 이 모든 이상 현상은 빙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까닭에 수많은 과학자와 환경 운동가가 빙하의 실상을 알리며 생활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머나먼 일로 치부하거나 사라지는 빙하보다 더 중대한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빙하여 안녕의 저자 제마 위덤은 세계적인 빙하학자로서 빙하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적 거리감을 줄이고자 이 책을 집필하였다. 그녀는 일찌감치 빙하의 위기 상황을 체감했지만 이를 대중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전달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갑자기 쓰러져 뇌종양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뒤였다. 언제라도 삶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빙하 또한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지켜만 보고 있거나 다른 문제 뒤로 제쳐두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 곳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빙하가 어떻게 움직이고 각기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주변 지형과 기후가 빙하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을 소개한다. 저자를 따라 암석과 얼음, , 미생물로 이루어진 세계를 탐험하다 보면 빙하에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빙하가 생태계와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된다. 빙하 연구와 북극곰과의 대치, 불면증 환자가 겪은 백야에 대한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담겨 있는 이 책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최고의 과학자가 들려주는 생생한 체험의 이야기다.

 

춥고 삭막한 불모지를 풍요롭고 살아 있는 자연으로 변화시키는 여정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하얀 설원과 거대하고 투명한 얼음, 희박한 공기와 뼛속까지 아리는 추위, 극지방에서 수만 년간 자리를 지키는 얼음덩어리,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황무지. 많은 사람이 이렇듯 빙하를 폐쇄적인 불모지로 생각하지만 빙하학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전혀 다르다. 높은 산에 앉아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하는 열대 지방의 빙하가 있는가 하면, 투명한 색이 아닌 푸른색이나 청록색을 띤 속살을 보이며 신비로움을 부각하는 빙하가 있기도 한다. 빙하는 여름에 크기를 줄였다가 겨울에 덩치를 키우며,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전력 질주하듯 빠른 속도로 바다로 향하기도 한다. 얼음 녹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소리나 빙하 주변 바위들이 산비탈로 떨어지는 소리 등으로 소란스럽기도 하고, 칠흑같이 컴컴한 깊숙한 곳에서는 미생물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지구 지표면의 10%를 이루고 지구 담수의 70% 이상을 품고 있는 곳임에도 우리는 빙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줄곧 사람들로부터 등한시되었던 빙하는 이제야 소수의 연구자에 의해 수만 년 동안 감춰두었던 비밀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빙하 연구의 최전선을 이끄는 제마 워덤은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황량한 자연에 매력을 느끼고 30년 가까이 열정을 쏟아부어 빙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영원히 바꿔놓은 발견을 해냈다.

 

10대 시절, 그녀는 벌거숭이 잿빛 산에 올라 빙하가 남긴 흔적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고 오랫동안 겪어왔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빙하학자의 꿈을 키워나간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알프스산맥 빙하와 마주한 뒤 더욱 매료된 그녀는 이후 빙하가 어떻게 운동하며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해 극한의 야생과 위험천만한 모험의 세계에 뛰어든다.

 

북극의 스발바르 제도에서부터 유럽의 알프스산맥, 아시아의 히말라야산맥,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남극대륙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빙하를 탐험하면서 저자는 생명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보이는 빙하가 사실은 숲과 바다처럼 살아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빙하의 신비를 밝혀내는 빙하학자의 삶은 마냥 아름답지 않았다. 현장 탐사를 할 때는 연구보다 생존을 목적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물자 보급부터 장비 수송, 캠프 설치, 식사 준비, 일일 계획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우선 현장에 도달하려면 비행기와 헬리콥터, 보트, 트럭, 설상차, 공중그네 등 온갖 탈것을 이용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빙하 가장자리에 도착하면 캠프를 설치한 뒤 매일 빙하 가운데로 걸어가는 일과가 시작된다. 십수 킬로그램의 장비를 담은 배낭을 메고 탐사지까지 얼어붙은 호수를 건너고 질척한 땅과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지난 뒤 얼음 절벽과 험난한 바위산을 오르며 수십 킬로미터의 길을 이동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거대한 얼음 구멍 안으로 몸을 기울여 염료를 쏟아붓거나,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캠프 생활도 녹록지 않다. 수개월 동안 낯선 사람들과의 공동생활을 잘 견디는 것부터 양말을 여과지 삼아 커피를 내리고 한 달에 한 번 차가운 얼음물에 머리를 감는 것, 밤마다 연인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고 먹이를 찾아온 북극곰에 경고 사격을 가하는 것까지 모든 생활은 고난과 위험의 연속이다.

 

빙하에 바치는 애가이자 인류에게 띄우는 소망의 메시지

그러나 몇 번의 죽을 고비에도 빙하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특히 빙하의 표면보다는 그 아래 깊고 어두운 지하 세계에 흥미를 느낀 저자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맞닥뜨릴수록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 빙하 기저부와 그 아래 암석 사이에 물이 흐를까? 그 물은 어떻게 빙하 아래로 들어가서 어디로 흘러갈까? 물이 있다면 생물도 존재하지 않을까? 생물은 어떻게 생존하고 기능할까? 생물과 물속 성분은 주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빙하가 줄어들면서 인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세계 최초로 빙하의 바닥을 조명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빙하가 인근의 모든 생태계에 영양을 제공하는 식품 공장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이는 온난화로 인한 빙하의 감소가 인간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연쇄 작용이 불러오는 폐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바다로 흘러드는 담수의 양이 늘어나면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유럽에 폭풍과 추위가 닥칠 것이다. 물 부족으로 빙하 주변의 농업이 퇴화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정치 갈등도 격화할 것이다. 빙하 속에 있던 메탄이 노출되면서 온난화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가 온실가스를 감소시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200년 뒤에 지구는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해가 다르게 생명이 짧아지는 빙하를 목격한 저자는 이 책에서 죽어가는 빙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현장에서 전하는 빙하의 모습과 목소리를 통해 단조로운 얼음덩어리를 좀 더 친근한 자연으로 받아들이고 빙하와 감정적으로 연결된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절감할 것이다.

책속에서

내가 느끼는 빙하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가 얼음이고 어디서부터 암석이 시작되는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빙하가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표석과 돌, 모래를 집어삼켰다가 토해 낸 황폐한 환경에서 어떤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지도 추정만 할 뿐이다.

_1. 감춰진 세계를 엿보다: 스위스 알프스산맥에서

 

빙하 기저에 융빙수가 흐른다면 빙하는 수막 위를 미끄러져서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빙하의 이동 속도는 그 아래 기반암의 침식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주변 지형을 바꿀 수도 있으며, 한편으로는 호수와 강, 바다의 생물군을 지탱하는 영양 풍부한 빙하분을 공급하는지를 판가름할 수도 있다. 빙하 기저에 흐르는 융빙수는 빙하 아래 미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지 여부도 판가름한다. 생물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빙하 아래 물이 흐르는지 여부를 알아내고 그 흐름을 탐구하는 것이 내 박사 연구의 주제였다._2. 곰들, 곰들의 세상: 스발바르 제도에서

 

작은 펭귄은 내가 인간 동료들을 제외하고 남극대륙에서 처음 목격한 생물체였다. 녀석은 어느 날 길을 잃고 뒤뚱뒤뚱 우리 캠프로 들어왔다. 이곳 맥머도 드라이 밸리에서는 야생에 개입하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검은색과 흰색의 옷을 입은 우리의 새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펭귄은 며칠 동안 우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열심히 날개를 푸드덕거리다가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구해 줄 수 없는 가엾은 동물을 보면서 날마다 가책에 시달렸던 우리는 잠시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며칠 뒤 얼어붙은 호수를 지나 빙하로 걸어가는 길에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펭귄의 작은 사체를 보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활기가 넘쳤던 사랑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동물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_4. 극한에서의 삶: 남극대륙에서

 

나는 이 슈테펜 빙하 강이 얼마나 위험한지 익히 들은 터였다. 불과 2~3년 전에도 두 칠레인 과학자가 유량 측정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우리와 똑같은 목적을 갖고 작은 배로 우에물레스강을 항해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처음 그 강을 직접 보았을 때 나는 우리가 정말 정신 나간 계획을 세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계획한 일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의 유량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수심을 측량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칠레 연구팀이 찾았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_5. 글로프를 주의하라!: 파타고니아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는 우리 인간이 빙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페루 안데스산맥의 농민들에서부터 그린란드 서해안의 넙치잡이 어부들, 태평양 저지대 섬의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앞으로 수년 사이에 빙하의 축소나 고갈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구는 여러 차례 극적인 기후 변화를 거쳤지만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변화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니 전 지구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며 대부분은 지난 세기에 일어난 것이다. 화석 연료가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는 데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결국 이 게임에서 인류가 가장 참혹한 패배를 맛볼 것이다._7. 마지막 얼음: 코르디예라 블랑카에서

 

빙하·인류는 운명 공동체 30년 연구자의 절박한 메시지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아롤라 빙하에서 얼음이 녹은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빙하여 안녕을 쓴 탐험가 제마 워덤은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손실이 인류와 자연에 미칠 영향을 성찰한다. Pete Nienow

 

하얀 설원과 투명한 얼음. 생명의 흔적이 드문 황량한 공간. 많은 이에게 빙하는 고요하고 수동적인 대자연으로 여겨지지만, 30년 가까이 빙하를 누빈 탐험가의 눈에 비친 모습은 조금 다르다. 빙하는 여름에 크기를 줄였다 겨울에 덩치를 키우고,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지거나 때로는 전력 질주하듯 빠른 속도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산비탈로 떨어지는 빙하 주변 바위가 소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칠흑처럼 컴컴하고 깊숙한 곳에는 치열하게 환경에 적응한 미생물이 있다. ‘빙하여 안녕을 쓴 이 여성 탐험가에게 지난 200만 년 동안 확장과 축소를 되풀이한 빙하는 우리 행성에서 가장 민감하고 동적인 자연이다. 책은 빙하에 매혹된 탐험가가 빙하에 띄우는 연서이자 생사 경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한 에세이다. 동시에 빙하를 통해 기후변화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서이기도 하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다룬 책은 무수히 쏟아졌지만, 과학적 탐구과정에 개인의 성장 서사를 덧대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빙하여 안녕은 특별하다.

 

저자가 빙하에 이끌린 건 운명과도 같았다. 8세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녀는 스코틀랜드 케언곰 산맥을 오르내리며 해방감을 느꼈다. 2만 년 전 절정에 달했던 지구의 마지막 한랭기에 빙하들이 지나가면서 깎아놓은 벌거숭이 잿빛 산을 보며 사라져 버린 자연을 상상했다. “오롯이 이 마주하는 곳, 혼돈이 가중되는 시기에 황량한 그곳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훨씬 더 큰 존재의 맥박이 느껴지는 듯했다.” 스코틀랜드 협곡을 휩쓸고 간 얼음 강과 산을 탐험하며 자신의 길을 예감한 저자는 대학교 지리학과에 입학 후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아롤라 빙하로 떠난다. 빙하 유동과 배수 과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빙하를 탐험하는 학자의 삶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발을 잘못 디디면 빙하가 갈라진 틈(크레바스)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고, 빙하에 수직으로 난 구멍(구혈)을 들여다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최상위 포식자인 곰을 마주하면 심장이 얼어붙는 공포를 체험했다.

 

하지만 다른 연구진과 세계 최초로 빙하 기저에서 미생물을 발견한 저자는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짜릿한 신비감을 느끼며 하늘이 예비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생명은 적응력과 회복력만 있으면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안고 북극의 스발바르 제도부터 히말라야 산맥,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남극 대륙까지 세계 곳곳의 빙하를 탐험했다. “대체 왜 그 추운 데 가서 얼음 속에 틀어박히는 거야?”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한 채. 그렇게 저자는 남극 대륙 아래에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빙하 기저의 퇴적물과 알갱이가 바다 미생물인 플랑크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식품 공장역할을 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빙하는 더 이상 죽은 자들의 계곡, 적막하고 황량한 불모지도 아니었다. 숲이나 바다와 마찬가지로 지구 생태계의 어엿한 일부였다.

 

빙하와 여성 탐험가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같던 책은 저자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던 2018년 무렵을 기술한 대목부터 다른 국면으로 나아간다. 힘겹게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저자는 매혹과 사랑의 대상인 빙하를 다시 타고 오르며 언제라도 삶이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이 깨달음은 빙하를 단순한 과학적 탐구의 대상을 넘어 인간의 행위에 따라 수명이 달라질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 많은 식물과 동물이 그렇듯 빙하 역시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다. 이미 지구 곳곳의 빙하가 소멸되고 있는 가운데 인류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1세기 말엔 빙하의 8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바다의 식품 공장이자 겨울철 얼어붙었다 여름에 녹아 흘러 곡식을 자라게 하는 빙하가 소멸하면 인류의 미래도 그만큼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뇌종양 투병 후 자신의 삶과 빙하의 운명이 다르지 않음을 인식한 뒤 대중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책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고백한다.

 

책의 에필로그는 20198월 열린 아이슬란드 빙하 오퀴예퀴들의 장례식장면. 당시 조문객들은 700살 먹은 이 빙하의 죽음을 애도하며 추모비를 세웠다. ‘미래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 붙은 추모비 동판엔 앞으로 200년 사이 우리의 모든 빙하가 같은 길을 걸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추모비로 우리는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밝힌다. 우리가 할 일을 했는지 여부는 미래의 당신만이 알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 글귀는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그대로 통한다. 원제는 얼음 강을 뜻하는 ‘Ice Rivers’지만, 저자의 이런 바람을 더없이 적절하게 요약하는 건 한국어 제목이다. 빙하와 마주할 때마다 작별을 고하는 안녕이 아니라, 안부를 묻는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은 절절한 마음이 행간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유년의 상처 치유한 얼음의 냄새에세이 '빙하여 안녕

어느 빙하학자의 지구탐험기"탄소배출량 줄여야 빙하 구할 수 있어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과학자들이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고 있는지 자세한 수치를 제시해도 일반인들이 그 위험의 크기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어야 하고, 출근하려면 가솔린 승용차도 타야 한다. 누군가 해결하지 않으면 문명이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는 해결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사람들은 쉽게 기대곤 한다.

 

최근 문학수첩에서 펴낸 '빙하여 안녕'은 기후 위기를 논하는 또 한편의 책이다. 그러나 여느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 제마 위덤 영국 브리스톨대 빙하학과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만을 역설하진 않는다.

 

그는 빙하에 깃든 추억과 빙하의 아름다움, 그리고 빙하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 아름다운 에세이에서 빙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요컨대 이 책은 평생 빙하를 탐구한 저자가 빙하에 바치는 한편의 러브스토리다.

 

저자는 8세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와의 연결통로는 끊겼다. 소녀는 그때부터 자기만의 세계에 탐닉했다. 소설에 빠져 허구의 인물들과 함께 가상의 세계에 살았다. 하지만 헛헛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케언곰산맥에서 평안함을 찾기 시작했다.

 

"오롯이 ''''이 마주하는 곳, 혼돈이 가중되는 시기에 황량한 그곳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다 커다란 존재'와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저자는 스코틀랜드 협곡을 휩쓸고 간 거대한 얼음 강과 산을 탐험하며 얼음의 냄새를 맡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알프스산맥 빙하와 처음으로 만났다. 하지만 빙하와 마주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빙하 구혈(녹은 물로 인해 빙하에 수직으로 난 원통형 구멍)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찾아오기 일쑤였다. 최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을 만났을 때는 심장이 얼어붙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연구 조사도 녹록지 않았다. 현장 탐사를 할 때는 물자보급부터 장비수송, 캠프 설치, 식사 준비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온갖 두려움과 어려움이 산재했지만, 저자는 '빙하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북극의 스발바르 제도부터 유럽의 알프스산맥, 아시아 히말라야산맥,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남극대륙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빙하를 탐험하며 그곳의 상태를 꼼꼼히 기록하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빙하와 함께 있으면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빙하로 돌아갈 때면 나의 오랜 자아로 회귀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다시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유의 씨앗들이 바람에 실려 자유롭게 떠다니다가 경작하지 않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초록빛 싹을 틔우는 것처럼.“

 

하지만 저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빙하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지금처럼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1세기 중반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5천만 년 전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지구가 너무 뜨거워서 남극대륙과 그린란드에 빙상이 형성될 수 없었던 시기 말이다. 지금부터 200년 뒤에는 4억 년 전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불과 200년 뒤에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빙하의 용융이 가져올 위험은 분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에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과 주요 하천의 물 공급량 감소 등을 비롯해 빙하 용융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빙하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글로벌 팬데믹의 영향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다면 말이다."

연합뉴스) 송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