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저자 손병관|왕의서재 |2021.03.
손병관-고려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 ‘언론 스타트업’ 오마이뉴스에 몸을 실었다. 2002·2007·2017년 대통령선거를 취재했고, 2005년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당시 오보를 내지 않은 것을 일생일대의 행운으로 생각해왔다. 서울시청 출입기자로서 정치인 박원순의 마지막 2년 7개월을 지켜봤다.
목차
여는 글 _ 4
1. 그날의 기억 _ 11
2. 내가 만난 ‘정치인 박원순’ _ 27
3. “손 기자, ○○이 기억 안 나?” _ 41
4. 시작도 못 하고 좌초된 서울시 진상조사 _ 55
5. 시장실 사람들, 말문을 열다 _ 69
6. 시장과 피해자 _ 87
7. 100일 만에 나타난 ‘피해 목격자’ _ 109
8. “무릎에 입술 맞추고_” 그리고 목격자들의 딜레마 _ 131
9. 시장과 마라톤 _ 151
10. 비서실장과 피해자 _ 163
11. 시장이 막아서 시장실 못 나갔다? 전보 논란을 파헤치다 _ 175
12. 수면 위로 올라온 ‘4월 사건’ _ 199
13. 박원순 사건과 언론 _ 221
14. ‘박원순과 사람들’의 12가지 혐의 _ 257
15. 박원순이 변호한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이면 _ 273
16. ‘페미니스트 박원순’에게 날아온 부메랑 _ 289
17. 박원순은 왜 죽었을까? _ 313
18. 박원순 최후의 날 _ 323
닫는 글 _ 335
추천사 _ 338
출판사 서평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사건과 관련한 보도와 공식 발표를 뒤집을 취재 기록이 나왔다. 베일에 싸였던, 처음 공개하는 20만 자 분량의 증언과 증거들이 ‘그의 죽음’ 이후 최초로 공개된다. 참고로 2021년 초 국가기관은 사실상 사건을 종결지은 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의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여 박 시장에 의한 성희롱을 인정했고, 사법부는 별건 재판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을 인정한 판결문을 내놨다. ‘모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언론들조차 박원순의 가해자 중심 보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매듭지은 상황이라 큰 논란이 예상된다.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한쪽, 자기 방어권을 포기한 또 다른 한쪽. 급격하게 휘어진 ‘여론의 축’에서 진상규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기자가 오롯이 진실을 밝히고자 박 시장 사망 후 6개월을 발 벗고 뛰어다닌 결과물이다.
기자는 2015~2020년 서울시장실에 근무했던 전ㆍ현직 공무원들을 설득해 ‘박원순 시장실 5년’의 증언을 청취했다. 취재에 응한 이들은 피해자 측 변호사와 여성단체 대표를 포함해 50명, 경찰 조사받은 31명 중 15명의 진술을 확보했다. 국가인권위가 밝힌 참고인 수가 51명이니 진상을 밝히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호소를 직접 들었다는 취재원을 만났고, “박 시장이 피해자의 무릎에 입술을 접촉했다”는 이른바 ‘무릎 호’ 사건의 진위도 확인했다. 그 밖에 ‘마라톤 강요’와 2019년 전보 과정 등 대부분 쟁점에 관해 관련자들의 증언을 교차 검증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박원순과 그 사람들’의 혐의는 총 12가지로 요약된다. ① 셀카 밀착 ② 무릎 입술 접촉 ③ 내실에서 포옹 강요 ④ 텔레그램 문자와 속옷 사진 전송 ⑤ 전보 불승인 ⑥ 혈압 체크 및 성희롱 발언 ⑦ 마라톤 ⑧ 샤워 시 속옷 심부름과 낮잠 깨우기 ⑨ 결재 시 심기 보좌와 성희롱 발언 ⑩ 폭로 기자회견 만류 ⑪ 박 시장의 추행 방조ㆍ묵인 ⑫ 증거 인멸
박원순이 직접 했다고 지목된 것은 ①부터 ⑥까지, 박원순 사람들의 혐의는 ⑦부터 ⑪까지다.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고소인(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시장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피해자 주장에 반신반의하면서도 혹시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극도로 말을 아끼며 ‘수인(囚人)의 딜레마’에 빠진 그들은 피해자 측의 2차 기자회견과 경찰서 조사를 받으며 마침내 닫았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12가지에 이르는 혐의는 그들의 목격담과 자료로부터 비로소 진실의 저울대 위에 놓이게 된다.
진상을 밝히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린다. “그럼 왜 그는 죽음을 택했을까?”
“고소 사실이 공개되면 시장직을 던지고 대처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던 그가 돌연 태도를 바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기자는 죽음을 유추할 2개의 축을 발견했다. ‘서울대 신아무개 교수-우아무개 조교 성희롱 사건’과 ‘서울시 4월 사건’이 그것. 기자는 “그는 자신이 이런 혐의를 받게 됐을 때 ‘얼마나 심한 행동을 했냐’는 경중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릴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기자는 또 박원순 사건을 2020년 최악이 언론 대참사로 명명한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당한 모 방송사의 박원순 사망 관련 저녁 뉴스는 박 시장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날렸다. 그 뉴스는 박 시장의 혐의를 단기간에 확정 짓게 만든 수많은 기사와 주장들의 서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 서사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난 채 ‘2차 가해’와 피해자다움 논란에서 보신주의로 일관한 이른바 진보언론, 한겨레ㆍ경향ㆍ오마이뉴스의 뼈아픈 민낯을 고발한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은 겨우 2라운드에 돌입했을 뿐이다.
책속으로
나는 그가 이도 저도 아닌 ‘연옥에 갇힌 영혼’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진실의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p.6
그 무렵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수사관들은 박원순 사건의 참고인으로 불려온 시장실 전?현직 직원들 앞에서그 비서를 ‘김잔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잔디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p.46
2018년 피해자의 자필 편지는 거꾸로 시장과 셀카를 찍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고 슬프다고 얘기했다. 피해자가 셀카를 찍은 시장이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p.127
잔디가 시장에게 뭔가 보고하면서 ‘저 다쳤어요’라고 먼저 말했더니 시장은 ‘왜 그래요? 어쩌다가 다쳤어요?’라고 답했고--- p.134
기자가 만난 인사담당 직원들은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한쪽은 ‘있었다’고 주장하고, 또 한쪽은 ‘없었다’는 주장이 부딪힐 때 진위는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때 나타난 사람이 K였다.--- p.178
계속 강조하지만, 4월 사건은 박원순 사건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그냥 넘길 수 없는 ‘큰 퍼즐’이었다.--- p.205
피해자는 한국성폭력위기센터를 찾아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곳에서 성폭력위기센터 이사이자 법률자문위원으로 일하던 김재련 변호사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를 상담한 정신과 의사도 이 센터에서 자문역을 맡았다.--- p.216
방심위는 결국 2020년 10월 26일 전체 회의에서 “SBS가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며 법정 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박원순 사건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담론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다 무너뜨렸다.--- p.230
판사가 “피해자가 박원순의 성추행으로 인하여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부분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판사가 자신이 맡은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별 건의 판단을 말했기 때문이다.--- p.242
그런 혐의가 일부라도 드러났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왜 말과 행동이 다르냐”고 따져 물었을 때 답하는 문제를 더 괴로워할 사람이었다. --- p.317

비극의 탄생과 진보 진영의 남녀관계
비극이 책에서 느낀 생각들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정치나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이기도 하고, 피해자 측은 갖가지 주장을 마음껏 하고 있지만, 가해자 측은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해자 측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2차 가해' 운운하는 상황이니 공연히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인 듯하지만 그 정도에 대해서는 피해자 측의 목소리만 높고, 가해자 측에서는 무언가 미진한 일이 있어도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떠오른 생각 중에 하나는 이것이다.
"왜? 이른바 진보라고 알려졌던 사람들에게서 주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고은 시인, 이윤택 연출가, 안희정 지사, 오거돈 시장이 그렇다.
박원순 시장의 이후에도 진보적인 곳으로 알려진 정당의 김종철 대표도 있지 않은가? 그밖에도 성추행에 관련된 사람들 중에는 진보 진영이라고 알려진 인사가 많았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보수 진영에서 인권이나 여성 평등에 대해서 더 많은 문제가 많을 듯한데 현실은 그 반대이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인들과 대화 중에 이 일이 화제가 되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보수 진영의 사람들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강제적으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니까 뒤탈이 생길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그런 여유가 없고, 그저 동지라는 생각에서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거니 하다 보니 뒷수습을 못하는 것이다."
그 말이 일면 수긍은 가지만, 반드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아는 국내외의 혁명가 두 사람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혁명가 중에 한 명인 박헌영과 쿠바 혁명의 주인공 체 게바라이다. 박헌영은 좌익 활동을 함께 한 주세죽과 만나서 둘은 가정을 일구고 자녀까지 두었다. 그러나 박헌영이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주세죽은 박헌영의 동지인 김단야와 재혼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남편이자 동지를 배신한 것이다. 박헌영과 주세죽은 부부 이전에 사상적인 동지였고, 김단야 역시 박헌영이 신뢰하는 동지였다.
주세죽은 남편이 옥사한 줄 알았다는 말도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불륜이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고, 최소한 김단야는 박헌영의 생존을 알고 있었다는 설도 있다.
박헌영은 아내인 주세죽 외에도 정순년, 이순금, 윤레나 등의 여성과 어떤 관계가 있었고, 자녀까지 둔 여성도 있다. 사상적인 동지들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대표적인 현대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젊은 시절 이성 관계가 상당히 복잡했다.
그가 대부호의 딸인 16세의 치치나 페레이와의 사랑이 실패한 것은 청춘 시절에 있을 수 있는 과정일 수 있을 것이고, 남미를 여행하는 중에 여러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도 젊은 날의 방황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절에 사상적인 동지였던 일데 가데아와 결혼한 뒤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가난했지만 교양 있고 재색을 겸비한 스물네 살의 처녀 알레이를 만난 것도 부족해서 끝내 일데와 이혼을 하고 알레이다와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큰 물의가 없이 청산했다고 해도 넓은 의미의 불륜일 것이다.
진보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양성평등에 어긋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보수적인 사람들보다 더 순수할 수도 있지만, 불륜은 이성을 지닌 사람으로 취할 행동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일에 대해서는 책을 완독한 지금의 시점에서도 진실을 모르겠다. 피해자 측에도 어떤 의혹이 있는것이 아닌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의혹이 사실이라고 해도 가해자의 과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바라는 것은 자신이 이른바 진보 진영의 유명 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욱 돌아보면서 과오가 없도록 처신했으면 좋겠다. 혹시 꺼림직한 사연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우선순위로 그것을 해결하기 바란다.
안희정 지사, 오거돈 시장, 박원순 시장 이 세 명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곤혹스럽지 않았는가?
* 덧붙임 1 : 쓰다 보니 진보 진영 쪽만 이성 관계가 복잡한 듯 썼으나, 보수 진영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을 지낸 어떤 분의 말년 모습은 물론이고,그 시대 고위급들의 이런저런 풍문은 글로 옮기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 진영의 성 추문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 조심하고 경계했으면 좋겠다.
* 덧붙임2 : 언젠가 읽은 책 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을 만류하는 어떤 천사의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말이나 위로도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던 순간의 온도보다 따뜻할 수는 없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편에 서서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감싸안아 주고 싶지만, 당신이 스스로 포기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내일 79화)"
남아있는 이에게 혹시 어떤 억울한 마음이 있다면 함께 있어줌으로써 그것을 위로하거나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떠난 이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길 자체가 없다는것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작성자ㅣ 목연 ・
비극의 탄생 서평 - 박원순을 싫어하는 이들도 읽을 가치가 있다
방금 전 책을 완독했다. 원래대로라면 더 빨리 읽을 수 있어야 했는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때마다 갑갑한 내용들 투성이어서 도무지 빨리 읽을 수 없었다.
책에 수록된 자세한 사실관계들에 대한 평론은 어차피 내가 소속된 단체 진보너머에 신뢰할만한 서평자에 의해 올라올 예정이니 그것으로 갈음하겠다. 여기서는 책의 출판 전후 사정과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감상을 남겨두고자 한다.
한편 책을 읽는 와중에 책에 대한 여러 반응을 접하게 됐다. 그 중에는 책을 읽지 않은 채 나오는 즉물적 반응들도 많았다. 이들의 반응을 요약하자면 '박원순을 미화했다 웅앵웅'는 식의 수준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박원순의 인간적 면모는 물론 정치인으로서의 한계까지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을 정치인으로서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내가 보더라도, 딱히 고 박원순을 동정하는 논조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박원순 자신의 진정한 퍼스털리티가 무엇이었는지도 내용의 핵심이 아니다. 그런 선입견은 정작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일부 무지렁이들은 '친여성향 매체(오마이뉴스) 문빠가 박원순을 쉴드치기 위해 책을 냈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저변의 사정을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가소로운 이야기이다.
오래 전부터 SNS를 통한 손병관 기자의 내밀한 발언들을 지켜본 입장에서 볼 때 그는 평소 문파와 매우 강한 긴장관계에 있던 사람이다. 문빠 성향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는지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게다가 과거 노무현 팬덤들과의 본격적인 악연을 시작한 계기인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 보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을 가장 알만한 사람인 진중권이라는 작자가 책을 읽지도 않고 손병관 기자를 '여권을 엄호하기 위해 책을 책을 쓴 사람'으로 규정하고 칼럼을 쓴 것이 상당히 유감스러우면서도 웃기다. 아마 본인도 자신이 하는 말이 말이 안된다는 걸 아니까 이성을 잃고 책을 안 읽었다는 말을 자기 입으로 당당하게 한 거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책에 대한 평점/서평테러를 하는 일련의 초라한 반지성주의자 다발들이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예단으로 일관하는 만큼, 아무래도 손병관 기자 자신에 대한 소회를 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개인적인 친분은 물론 일절 없다.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사이이다.
책의 본래 주제와 곁가지인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책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이 남았던 부분은 바로 전북의 모 중학교에 재직하던 '고 송경진 교사의 성폭력 무고사건'에 대한 언급이었다.
(고 송경진 교사 사건에 대한 최신 기사 :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7212)
알다시피, 고인께서 억울함을 호소하다 목숨을 끊은 이후 그 사건에 대한 르포 형식의 칼럼을 쓰며 교사의 아내였던 강모씨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이미 그때부터 송경진 교사가 무고한 피해자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모씨를 인터뷰할 때 오마이뉴스에서 누군가 이 사건에 대해 취재하러 나왔다가 결국 내부사정 때문에 포기했다고, 그리고 자기에게 정말로 미안해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그때 반신반의했다. '그 오마이뉴스'에서 기자가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가해지목자의 아내를 인터뷰하려고 일부러 이 시골까지 내려왔다고?
내가 강모씨를 인터뷰했던 그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언론이 (고 송경진 사건에 대한 법원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비겁한 침묵'을 지키고 있을 시기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비극의 탄생>을 쓴 손병관 기자였다.
책을 통해서(61~67p) 고 송경진 사건에 대한 기사가 불발된 저변의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 전만 해도 누군지 몰랐던 '그 오마이뉴스 기자'가 편집자나 데스크의 압력에 비겁하게 타협했던 찌질한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손병관 기자 역시 내부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한 것을 알게 되면서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는 (오마이뉴스 내부사정이 호의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 송경진 교사가 억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도권 기자 중에서 먼저 인지하고 심층취재를 한 유일무이한 기자였던 것이다.
단언하건대, 전북 교사 고 송경진 자살 사건을 동정하는 사람이라면, 박원순 사건의 진실 여부에 대한 각자의 심증과 별개로, 고 송경진 교사 사건을 탐사하려 한 손병관 기자의 진정성을 의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리고 성폭력 문제와 관련한 편향된 보도양상에 대한 손 기자의 문제의식은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 이전부터 형성된 문제의식이었다. 이 책은 성폭력 사건 보도에 있어서 불합리한 언론지형의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고 있다.
"피해 실체를 확인하려는 시도 자체에 '2차 가해'나 '피해자다움 강요'라는 프레임을 씌운다면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 남을까? 한쪽 얘기는 듣지 않고 목소리 큰 또 한쪽의 얘기만 전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나는 배웠다.(238p)"
그리고 책에서는 이와 비슷한 한겨레 신문의 중견간부의 이야기가 인용되고 있다.
"형사 사건의 대원칙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의 이익으로 돌려라'다. '범인 100명을 놓치더라도 피해자 한 명의 인권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박원순 사건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담론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다 무너뜨렸다.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냉정해야 한다'는 얘기만 해도 후배들이 반 페미니스트, 꼰대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니까, 그런 식으로 후배들 눈치만 설피니 선배들 권위는 회복되지 않고...(240)"
적어도 익명으로 볼멘소리나 하고 앉아 있는 한심한 모 간부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낸 송병관 기자가 훨씬 정의롭고 용감한 기자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노파심에 반복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결코 박원순을 엄호하기 위한 동기에서 책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 역시 오래 전부터 메갈리아 사태 당시부터 여성단체와 여성주의에 경도된 언론지형을 비판해왔던 당사자로서 '누가 그때 그때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비겁한 기회주의자이고 누가 진정성이 있는 사람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손병관 기자는 분명 후자의 사람이다.
손병관 기자에 대한 신원조회는 이 정도로 하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손병관 기자에 대한 인사위원회가 오마이뉴스에서 소집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젠더문제와 관련해 오랫 동안 쌓여온 적폐스러운 보도태도를 볼 때 오마이뉴스가 손병관 기자에게 인사위원회를 조직할 자격이 되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손 기자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면 어떤 형태로든 나와 내 동료들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각설하자. 박원순 전 시장의 혐의를 둘러싼 세세한 사실관계에 대한 논평은 앞서 말했듯이 진보너머에 올라올 서평으로 갈음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책을 읽고 도달한 잠정적 결론을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하겠다.
단적으로 말해, '피해호소인'(지난 십수년간의 반성폭력 운동이 정립한 이 공식용어를 피해당사자가 싫다는 이유로 당장 폐기해야 한다는 소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은 김재련과 그 동조자들 즉 성폭력상담소와 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를 통해 십수가지의 혐의를 공개했다. 크게 나누면 1) 고 박원순 시장의 1차가해와 2) 박원순 시장실 내외부 주변 직원들의 2차 가해 혐의들이다. 하지만 대부분 근거가 희박하다.
지속되는 성폭력을 이유로 전보요청을 거듭했다든지, 무릎을 뽀뽀했다든지(센세이셔널했던 이 혐의는 인권위 결정문에도 인용되지 않았다), 속옷 수거와 잠 깨우기 혈압 재기 등의 업무에 여성직원만을 기쁨조로 이용했다든지, 심지어 박원순 시장이 마라톤에 직원을 강제적으로 동원했다든지 하는 것도 내부 직원 수십명의 증언과 상충된다.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확증편향에 의한 예단을 경계해야 한다. 예컨대 젠더문제에 대해 소신발언을 이어온 친애하는 한 페이스북 셀러브리티가 예전에 방송에 나온 '새벽 마라톤 직원 동원'과 같은 꼰대스러운 에피소드를 예로 들면서, 박원순 시장의 가해자 혐의를 예단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직원 마라톤 동원 혐의마저도 사실과 다르다. 그 셀러브리티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황스러울 수 있겠다. 책을 읽으시라. 그리고 평소 본인이 변호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해 똑같은 잣대를 행사하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수십명의 증언들이 구조적인 성폭력 카르텔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재반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이런 재반박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이미 박원순 시장은 대중들에게 '성추행범' 이미지로 낙인 찍힌지 오래이다. 정무라인 공무원 외에도 십수명이 조직적으로 그를 편든다는 것은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 안된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 혹은 사도 바울과 같은 회심자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훨씬 더 이익이다.
피해자측은 오래 전부터 주변에 자신의 피해사실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언론 폭로를 통해 공개한 피해사실들을 적어도 '2020년 4월'(내가 왜 이 시점을 특정하는지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주변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증언은 지금까지도 뒤집히고 있지 않다.
이미 주류언론과 대중 사이에서 성추행범으로 낙인 찍힌 죽은 주군을 위한 충성심에서 피해호소인과 반대되는 증언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정치적 올바름과 여성주의 그리고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을 존중하느라 사건 초기에 피해호소인에 대한 개인적 발언을 극도로 삼갔던 이들이다.
이들 직원의 면면을 자세히 보면 서울시청 내부에서 서로 이해관계도 다른 이들이다. 이들 전부가 이미 죽은 주군을 위한 충성심으로 말을 맞춰서 위증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말이 안 된다.
"시장에게 아무리 치명적인 허물이 있다고 해도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얘기 자체를 들은 적이 없다고 (조직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었습니다.(250p)"
내 생각도 똑같다. 박원순 시장이 살아있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천하의 몹쓸놈이 된 지금 시점에도 일관되게 피해호소인의 주장을 부인한다는 사실을 가벼이 여기면 안 된다.
그 동안 박 시장의 혐의에 대해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을 돌려세웠던, 박 시장에게 불리한 핵심적인 쟁점들도 이 책은 명확하게 해명하고 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사건과 별개인 2020년 4월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재판부는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범'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해당 판결은 절차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호소인의 증언 중 명백한 사실관계의 오류(책을 읽어 보시라)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 애초에 사법부 자신이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종합하기보다는 '2020년 4월 사건' 이후의 상담과정에서 피해호소인이 한 일방적 증언만을 토대로 예단했다는 점도 판결의 신뢰성을 깍는다.
두번째로 인권위의 발표가 있는데, 실제로는 피해호소인과 여성단체의 피해주장 대부분을 인권위가 인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여기서 오히려 해명해야 할 측은 여성지원 단체들 쪽이다. 아무말 대잔치로 여러 가지 섣부른 혐의들을 제기했다가 대부분 인권위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그 중 박 시장 주변인들의 2차 가해 혐의들은 아무 것도 인정되지 않았다. 인권위 발표가 난 이후에도 여전히 2차 가해자로 낙인 찍히고 있는 직원들의 명예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리고 인권위 결정문에 인용된 혐의는 성폭행도, 성추행도 아닌, 텔레그램을 통한 성희롱과 네일아트를 한 손톱을 만진 일이다. 인권위도 다른 것들은 정말 아니다 싶어서 거르고 걸러서 최후에 인정된 이 최종적 혐의들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박원순 전 시장이 속옷 차림으로 보냈다는 텔레그램 사진도 강북지역 옥탑방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난닝구 차림과 유사한 수위였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그 외에 네일아트 사건에 관해서도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는 한 직원으로부터 반대되는 증언(피해호소인이 네일아트를 한 손을 시장에게 먼저 자랑했다)이 나왔다. 자세한 사정이 궁금하면 책을 읽어 보시라.
박원순 시장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야 한다. 남녀노소 시청 직원 수십명이 '박시장을 주위로 형성된 기쁨조 문화에 사후에도 충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식의 되도 않은 복잡한 음모론은 배격해야 한다. 사실은 알고 보면 경미한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매뉴얼이나 대응절차가 없었고 그것이 결국 사건을 눈덩이처럼 불려 한쪽의 자살을 불러왔다는 쪽의 설명이 차라리 더 신빙성이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다퉈볼만한 혐의는 텔레그램으로 전송된 '킁킁 냄새 좋다'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 김재련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앞뒤 맥락을 편집하지 말고 종합적 맥락을 따져 봐야 한다.' 강제로 외부 출장 등의 행사에 동원되어야만 했다는 피해호소인의 주장과 달리 본인 스스로 박원순 전 시장의 스페인 출장을 따라가고 싶어했다는 유력한 내부 증언에 대해 우리 김재련 변호사님께서 한 반론이다.
여기에 대해 사건의 목격자는 어이 없어 하면서 이렇게 재반론한다.
"대화 내용을 다시 봐라. 부러운 마음에 그냥 한 얘기가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잖은가? 편집이라니 황당하다. 지원단체들은 그동안 피해자 측 주장을 내보내면서 자기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하지 않았나? 우리에게 편집 운운하는 것은 자기들이 그동안 해온 행동을 스스로 부정하는 거다."(107p)
아무튼 책을 읽고 난 나의 잠정결론은 (물론 또 다른 증거가 제시되면 얼마든지 판단을 달리 하겠다) 만일 고 박원순 시장에게 혐의를 건다면 성폭행 미수도, 성추행도 아닌, 최대 '성희롱'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산 자이든 죽은 자이든 자신이 잘못한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죄형법정주의자이다. 성희롱을 했다면 성추행범이나 강간 미수자로 낙인 찍혀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성희롱 여부도 아직 확정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내친 김에 말하면, 성희롱 혐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손병관 기자 자신도 인정한다.
"피해자가 동료에게 '잔디 냄새 좋아 킁킁'이라는 문자와 러닝셔츠 입은 사진을 보낸 것을 보여줬다는 증언을 2020년 10월에 확보했다. 박 시장은 불특정 다수의 지인에게 러닝셔츠 사진을 보낸 적이 있는데,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얼마나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박원순에게 법적, 도덕적 책임을 묻는다면 이 부분이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266p)
자, 진중권이나 위근우 같은 저 바보들을 위해 친절히 말하자면, 이 구절만으로도 손병관 기자가 박원순 시장을 미화하기 위해 책을 쓴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이 책을 읽기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려는 이들에게 한 말씀 올리겠다. 혹자는 '박원순이 죽으면서 자신의 방어권을 포기했는데 왜 그를 동정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그 사람은 비겁한 사람 아니냐고, 그럼 사람을 왜 동정하냐고. 하지만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그것은 핀트가 어긋난 반응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참고로 나 역시 박원순을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쪽이냐면 그의 나이브한 마을 공동체적 감수성을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 역시 박원순이 함부로 목숨을 버리고 수 많은 사람의 기대는 물론 자신의 방어권까지 포기한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비겁했다고 나까지 비겁해도 되는가? 그가 죽었으니 사실관계는 이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피해호소인과 지원단체의 주장을 받아적은 언론보도대로 확정해버려도 좋은가? 그런 안일한 태도야말로 고인의 행동만큼이나 비겁한 태도가 아닌가?
박원순 시장의 내로남불이 싫다면 나 자신도 내로남불을 저지르면 안 되겠다. 유명인의 내로남불에 기대어서 내가 평소 싫어하던 내로남불을 정작 나 자신이 저지르는 것을 정당화하는 건 비겁하고 게으른 태도이다./ 작성자 박가분




박원순 피소 사실 유출: 자기가 세운 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자유주의여성운동
지난해 12월 30일, 박원순 성추행 피소 사실이 유출된 경위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에게 피해자가 박원순을 성추행으로 고소할 예정임을 밝히며 상담을 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당시 상임대표 김영순과 상의를 하였다. 그런데 김영순 상임대표가 이 사실을 남인순 민주당 의원에게 유출하였던 것이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이를 다시 서울시 젠더특별보좌관 임순영에게 알려주었고, 박원순은 임순영 젠더특보를 통해 피해자가 자신을 고소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성추행에 대한 제대로 된 검찰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박원순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서울시 관계자들이 각종 증거를 미리 인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실은 큰 파장을 낳으며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김영순 상임대표는 1월 14일 여연 정기총회에서 해임되었다. 한편 남인순 의원은 아직까지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냐는 질문을 했을 뿐이지 피소 사실을 유출한 것이 아니라는 한심한 변명을 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2021년 1월 18일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여 “피해자가 10시간 조사를 받는 중에 피의자 쪽에서는 대책 회의를 통해 이미 모든 상황을 논의하고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지 않아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계획대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고, 상대방을 용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기회를, 세 분이 박탈했습니다.”라고 하며 유출에 관계된 김영순 전 상임대표, 남인순 의원, 임순영 젠더특보 세 사람을 규탄하고, 남인순 의원에 대해 사과와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였다.
박원순을 위해, 피해자 보호라는 기본 원칙조차 배반한 자유주의 여성운동가들
김영순 전 여연 상임대표, 남인순 의원, 임순영 젠더특보 모두 여성운동 경력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이다. 특히 김영순 전 상임대표와 남인순 의원 모두 여연 출신이다. 여연은 1987년에 설립되어,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우리나라의 여성운동단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단체들이 대부분 가맹되어 있는 큰 단체다. 2014년경부터 청년층을 중심으로 여성해방운동이 고양되면서 이러한 기성 단체들 바깥에 있는 청년 여성들의 움직임들이 활발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연이나 그 가맹 단체들의 활동을 빼고는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이나 여성 관련 현안에 대해 논하기 어렵다. 또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사실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외부에 공개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기타 정보를 가해자에게 알리는 경우 2차 가해나 증거 인멸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는 비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반성폭력 운동의 원칙 역시 바로 여연이나 그 가맹 단체의 활동가들 스스로가 주장하고 정립해온 원칙이다. 바로 그렇기에 여연 출신으로 여성운동에 오래 몸담아 온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피해자의 상황과 사건 해결이 아니라 박원순과 자유주의세력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 만든 원칙조차 스스로 내팽개친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연 전 상임대표 김영순이 피해자의 동향을 민주당 의원인 남인순에게 알린 것은 여성운동계 전반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여연이 올해 1월 14일 성명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여연은 이미 2020년 7월 16일 김영순 상임대표의 유출 행위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직무배제 조치를 취하였다. 그렇다면 여연은 당장 자기 단체의 상임대표가 피해자에 대해 심각한 2차 가해 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동안 공개적 사과나 반성도 없이 이를 숨긴 채, 대외적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규탄하는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연 가맹단체로 박원순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던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역시 이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다. 이러한 것들은 매우 위선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여연의 규모나 여성운동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는 단순히 한 사람만의 일탈이 아니라 현재의 주류 여성운동이 전반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한국사이버성폭력상담소와 같은 다른 여성단체들이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진 김영순 등의 행동에 대해 “지난 20여 년 간 고착된 민주당과 여성단체 간의 이해관계 고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여성단체의 활동과, 여성단체 출신의 정치인 배출이 얼마나 활발하든 민주당과 남성 권력의 알리바이가 될 뿐 근본적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삶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여성단체의 뼈아픈 각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최소의 여성주의조차 배반하는 사례이자 기득권 정치에 부끄러움 모르고 타협한 참담한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처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여성운동가가 이와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피해자 편이 아닌 박원순 편에 선 이번 사건은, 자유주의여성운동이 자유주의세력의 이해를 위해 자신들이 세운 성폭력 피해자 보호라는 기본 원칙조차 스스로 배반할 수 있음을 많은 대중들에게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20년간 자유주의세력과 일체가 되어간 주류 여성운동
여연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여성운동은 1980년대에는 반독재 투쟁의 일부로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불렸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같은 독재정권의 어용 여성단체와 대비되는 의미였다. 사상적으로도 모든 여성이 아니라 민중인 여성이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여성해방은 사회의 총체적인 변혁과 함께 가야 한다는 관점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른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등을 거치면서 여성운동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가령 1991년 여연 정책수련회에서는 ‘생산직 중심의 사업 편향의 극복, 범여성 세력의 결집, 구체적인 정책 대안의 제시, 정치 투쟁의 수위 조절’이 이야기되었다.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하면서 여성운동은 본격적으로 자유주의화되었다. 김대중 정권 시기부터 지은희, 한명숙 등 여성운동의 핵심 인물들이 자유주의 정권의 장관으로 대거 입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운동단체들은 자유주의 정권의 협력 파트너가 되어 자유주의 정권이 위탁하는 사업을 처리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1998년 공황 시기 여연은 긴급구호활동과 공공근로사업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했다. 또한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6년에 여연은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 체결에 참여하였다. 이 협약은 정부와 자본가계급이 여성 고용 확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핑계 하에 탄력근로제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확대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주류 여성운동의 그런 모습은 문재인 정권 하에서도 계속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성운동과 문재인 정권, 민주당은 인적으로 매우 강하게 결합되었다. 정현백이 여성부 장관에 임명되고 남인순, 권미혁, 정춘숙 등 여연이나 여연 가맹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사람들이 대거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여연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문재인 자유주의 정권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단적인 예로, 문재인 정권은 2018년 11월, 노동자에게 탄력근로제 확대 등 양보를 강요하기 위한 기구인 경사노위를 출범시켰는데, 박봉정숙 여연 성평등연구소장은 경사노위가 출범할 당시 공익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여연은 2019년 4월 거액의 주식 투자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이미선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명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
주류 여성운동은 이렇게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자유주의세력과 일체가 되어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운동 내부에서, “때로는 제도의 메커니즘에 익숙해져서 ‘알아서 조율’하고 ‘스스로 온건해’졌으며, 운동을 앞서가는 ‘제도화’의 속도로 인해 여성운동은 ‘뒷북을 치거나’ 사후 대응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성찰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오장미경, 「여성운동의 제도화, 운동정치의 확대인가 제도정치로의 흡수인가」, 2005). 어느새 3. 8. 여성의 날에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할 때 여성가족부의 후원을 받는 것, 활동가들이 정부나 서울시의 성평등, 젠더 문제 관련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여성운동과 자유주의세력은 더 이상 서로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하나로 얽혔다. 가령 이번에 문제가 된 김영순 전 상임대표도 여연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활동가인 동시에 국무총리 소속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직,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비상임 이사,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위원직,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직 등 다수의 정부 직책을 갖고 있었다.
이제 자유주의세력과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주류 여성운동이 자유주의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까지 자유주의여성운동의 본질이 다수 여성 대중들에게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못하였다. 우선 다수의 여성들은 자유주의여성운동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일반 여성들의 입장에서 ‘여성운동’ 하면 떠올리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이었고, ‘페미니즘 운동’ 하면 떠올리는 것은 여연, 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었다.
최근 여성해방운동이 고양되면서 청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칭해지는 입장에 서서 기성 여성운동을 비판하는 흐름이 생겨났기에, 여연 등의 주류 여성운동세력은 과거에 비해서는 영향력이 다소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여자만 챙기자’는 식의 ‘래디컬 페미니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청년 여성들은 여연으로 대표되는 주류 여성운동세력으로부터 사상적으로, 실천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받아 왔다. 여성운동 내에서, 여연으로 대표되는 주류 여성운동보다 급진적인 목소리는 결집되거나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 박원순 피소 사실 유출 사건은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킬 것이다. 김영순, 남인순, 임순영의 행동은 자유주의여성운동이 자유주의세력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주장해온 여성해방, 반성폭력의 기본 원칙조차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청년 여성들에게 대중적으로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7월 박원순 사건과 그에 뒤따른 자유주의세력의 심각한 2차 가해는 청년 여성들이 문재인 정권과 자유주의세력에 등을 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제 청년 여성들은 이런 여성운동가들이 여성해방을 위한 싸움에서 당연히 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사실 자유주의세력의 일부분으로서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 있었음이 김영순, 남인순, 임순영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청년 여성들은 김영순, 남인순, 임순영 같은 여성운동가들이 자유주의세력의 안위를 위해 반성폭력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을 직접 목도하였다.
이 사실이 드러난 이상 여연 중심의 자유주의여성운동은 이제까지의 위상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유주의여성운동은 본격적으로 위기를 맞으며 흔들릴 것이다. 그렇다고 ‘래디컬 페미니즘’이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 역시 ‘야망’을 말하며, 여성들이 현 자본주의 체제에 영합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여성해방이라는 식의 주장을 계속 하고 있기에, 지금은 스스로를 여연 등과 구별짓고 있지만 결국 자유주의로 견인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최근 몇 년간 여성해방운동으로 각성된 청년 여성들 역시 ‘래디컬 페미니즘’을 계속 고수할 경우 김영순, 남인순, 임순영 같은 자유주의여성운동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세력과 싸우며 여성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국회의원, 자본가가 되어 남성과 동등하게 지배계급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여성운동은 이번 박원순 피소 사실 유출 사건을 통해 그 바닥을 드러냈다. 여성해방의 가장 큰 걸림돌인 자본주의와 싸우고,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등 자유주의세력과도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만들어 나가자.
사회주의자 글쓴이: 김민재 -2021년 1월 25일
김민웅, ‘고(故) 박원순 시장 비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최근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생일파티 장면이 담긴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성추행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아리송하게 하는 장면이 수차례 노출돼, 성추행을 둘러싼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가 22일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인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달 18일 한국 여성의 전화’와 한국 성폭력 상담소 측을 상대로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한 공개서한을 SNS에 게재한 것 외에, 고소인인 박 전 시장의 비서에게 직접 보내는 서한은 처음이다.
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공개서한을 보내는 까닭에 대해 언급했다.
“인생 최대의 고통을 겪고 있을 텐데 그에 더하여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명확한 설명을 “직접” 해야 하는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둘러싼 불필요한 억측과 2차가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 그리고 잇달아 나오는 여러 정황적 반증을 정리하는 일이 이 모든 상황에 명확한 종지부를 찍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그는 고소인의 호칭을 존칭의 의미로 ‘귀하’라고 불렀다. 이어 “귀하를 지원하는 법률 대리인과 여성단체들이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사건의 진실을 전하는 데는 도리어 난관을 조성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며 “이는 귀하의 고통과 연대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박 시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의 끈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최근 또 다른 정황 관련 증언과 물증이 나왔다”며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업무 인수관련 문서에 대한 것이다. 내용은 귀하가 박 시장에 대한 자랑과 격찬을 담은 글이었다. 공식 문서에 성추행 의혹을 기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문서가 공식 문서라고 이해했는데, 개인이 작성한 사적 문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성추행 피해 당사자가 썼다는 것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혼란이 정리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는 결코 아니다. 4년간의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면, 그런 내용의 인수인계 문건은 후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걱정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차원의 인수인계서라니까 성추행 피해 주장과는 배치되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셈으로 보인. 성추행 가해자에 대해 그렇게 쓰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다면 이 문건은 무슨 성격인지 잘 구별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 시장실 구조에 대한 증언으로 저도 그곳에 여러 번 다녀왔기에 알지만, 박 시장의 투명 행정 철학이 있는데다가 시장실 구조는 옆에서, 위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그런 구조에서 법률 대리인이 주장했던 대로의 은밀한 성추행 행위가 가능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답이 가능할지?
셋째, 최근 유튜브 ‘열린공감TV’에서 공개한 영상에 대한 것이다. 이 영상은 지난 2019년 3월 26일 시장실에서 박 시장 생일 파티 장면이 기록된 장면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영상이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었는지 당사자로서 잘 아실 것이다.
이 영상을 본 분들은 우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귀하의 유쾌하고 친밀감 있는 성격에 방점을 찍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평소 귀하와 박 시장 사이의 스스럼없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인지는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김 교수는 “이 모든 질문의 핵심은 4년간의 지속적인 성추행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입증하는 문제일 것”이라며 “그런데 이를 증명해줄 내용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고, 도리어 그것을 뒤집는 반증정황마저 나오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박 전 시장의 비서로 성추행 피해를 주장해온 고소인의 대응이 주목된다.
굿모닝충청/서울 정문영 기자 2020.09.22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은 자유주의자들
지난 7월 8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전 비서가 박원순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박원순은 그 다음날 돌연 연락이 두절, 실종되었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다. 수사를 받을 당사자인 박원순이 사망함에 따라, 박원순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일련의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피해자의 주장이 상당 부분 실제에 부합하기에 박원순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렇기에 박원순의 성추행 사건을 두고 ‘수사기관의 결론이나 법원의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니므로 박원순이 잘못을 했다고 말해선 안 된다’라는 식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고 사태를 호도하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특히 박원순이 속한 민주당의 경우에는 박원순의 잘못을 명백히 밝히겠다고 약속하고 성추행 사건에 대해 반성하며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자유주의세력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그 반대다. 자유주의자들은 정황상 분명한 박원순의 잘못을 애써 덮으려고 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해서도 갖가지 방법으로 흠집내기, 트집잡기를 하며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언행도 서슴지 않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은 자유주의자들
자유주의세력은 박원순 사망 이후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지금은 추모와 애도를 할 때라는 말로써 박원순의 잘못을 감추고 덮기에 급급했다. 더욱이 피해자가 7월 13일 1차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자 자유주의자들은 피해자 측에 대한 각종 근거 없는 의심, 공격과 비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몇 가지 대표적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는 7월 11일 개인 SNS에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열광적 ‘순결주의’의 테러리즘”이라는 제목을 붙인 장문의 글을 써서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애도”이고 “‘도덕적 순수주의’의 열망으로 그를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며 박원순을 두둔하여 빈축을 샀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7월 14일 개인 SNS에 “나는 박원순 같은 사람은 당장 100조원이 있어도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 사람이 죽음으로써 우리 국가와 사회가 입은 피해, 사회적 약자들이 앞으로 입을 피해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는 그의 수업을 들었거나 듣고 있다고 하는 성공회대 학생들의 ‘크게 실망했다’, ‘졸업생으로서 창피하다’, ‘이런 글이 피해자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라고 비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7월 23일 개인 SNS에 “박시장님 아이폰 비번을 피해자가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글을 올렸다. 피해자가 박원순의 업무용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경찰에 제공하여 포렌직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의 수행비서였던 피해자가 박원순의 업무용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해당 휴대전화는 서울시 명의의 휴대전화였다. 손혜원은 이런 식의 글이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비판을 받자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유족의 피해는 2차피해가 아니다? 왜?”라는 글을 올렸다.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 역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대열에 동참했다. 진혜원은 지난해 조국 사태 당시 검찰의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를 비판하며 조국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혀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되었던 인물이다. 진혜원은 개인 SNS에, 자신이 박원순 전 시장과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과 함께 “자수합니다. 몇 년 전 …… 냅다 달려가서 덥석 팔짱을 끼는 방법으로 성인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했습니다. …… 권력형 다중 성범죄입니다.”라고 비꼬는 글을 올려서 피해자를 조롱하였다. 진혜원은 7월 23일 또다시 “알아 가면 갈수록 구토와 혐오감이 증가”한다고 하고 피해자 측을 “창작해 낸 피의사실 유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집단”으로 지칭하는 글을 SNS에 올림으로써 더욱 심각한 2차 가해를 하였다.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산업진흥원의 대표이사인 장영승은 개인 SNS에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까 (박 시장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거짓과 과장으로 악랄하게 덤비는 세력’으로부터의 공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해자고 살인자다”라는 글을 올렸다. 피해자 측의 2차 기자회견 당일에는 개인 SNS에 글을 올려 “기자회견을 보다가 …… 분노를 넘어 살의마저 느껴졌”고 피해자 법률대리인이 “비겁하면서도 사악”하다는 막말을 하였다.
‘맛 칼럼니스트’로 문재인이 대선후보였을 당시 문재인을 지지하는 ‘더불어포럼’에 참여하였던 친문 성향 황교익 역시 2차 가해 대열에 동참했다. 황교익은 개인 SNS에서 “보통의 경우, 피해의 증거를 숨기는 피해자를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라며 피해자가 추가적인 증거를 공개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갔고, 또 다른 게시글에서 “고소인측의 정치적 언론플레이에 놀아나는 꼴” 운운하였다.
‘조국 백서’ 발간 추진위원회 위원장인 경희대 김민웅 교수는 개인 SNS에 “성추행의 특성상 물증 확보나 증거제시는 대체로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장한 바대로 무려 4년 동안 지속된 성추행이라면 그 물증 확보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피해방지를 위해 여러 차례 많은 이들에게 호소했다면 그 호소의 입증 근거를 대기 위해 확보한 물증이 없을 까닭이 없고 그렇게 공개한 물증을 기자회견장에서 공개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라는 글을 올려 피해자가 증거 전체를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의심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진상은 아직 모르는 것 아니냐, 그러니 박원순이 성추행을 했다는 고소인의 측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 고소인이 기자회견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언론플레이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절박하게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피해자 측이었다. 실제로 피해자 측은 2차 기자회견에서 인권위의 직권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애초에 사건이 수사기관을 통해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박원순을 고소하였다가 그가 죽은 후 뜻하지 않게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 피해자가, 성추행의 증거 전체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피해자 측이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관련 증거를 진상 조사 기관에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증거 전체를 대중 앞에 낱낱이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의 주장을 의심하고 공격한다면 이는 2차 가해다. 무엇보다, 정말로 아직 조사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기에 진상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라면 피해자의 주장이 “언론플레이”라고 말할 근거 역시 전혀 없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박원순은 잘못이 없고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답을 이미 정해 놓은 후 증거, 진상을 핑계 삼아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에 대한 변화된 인식, 그러고 그에 반하는 태도를 통해 낡은 세력임을 자인하고 있는 자유주의세력
자유주의세력의 이런 행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특히 20대, 30대 여성 집단에서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졌다. 그 중에서도 20대 여성 집단은 작년만 해도 20대 남성 집단과 비교하여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집단으로 분석되었고, 한국갤럽에서 2017년 7월 진행한 종합 여론조사에서는 이들 중 무려 95%가 문재인 대통령 직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2020년 7월에 진행한 같은 조사에서 그 수치는 51%로 떨어졌다. 이는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로서, 조국 사태가 시작되던 지난해 9월의 52%보다도 더 낮은 것이다. 30대 여성의 경우도 2017년 6월에는 문재인 대통령 직무에 대한 긍정평가가 94%였으나 2020년 7월에는 57%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청년 여성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인 계기는 박원순 사건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SBS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 7월 24일과 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정부 여당의 대응’에 대해 ‘피해자 보호나 진상규명보다 고인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여 부적절했다’는 응답은 55.5%인데 반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중한 대응이었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응답이 50%를 넘었고, 연령별로 보아도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모두 부적절한 대응이었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세력이 박원순 사건 이후에 보인 박원순 두둔, 피해자 비난 및 2차 가해가 명백히 잘못된 행태라고 느끼고 있음을 이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여성해방운동의 고양, 2018년 미투 운동 등을 거친 한국 사회에서 민중이 성폭력 사건을 보는 시선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다. 가령 세계일보가 지난 7월 23일부터 10일간 성인 3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 10명 중 9명이 미투 운동에 대해 ‘지지한다’(매우 지지 69.5%, 약간 지지 21.5%)고 답했으며, 미투 운동이 ‘본인의 성인지 감수성이나 언행,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 84.9%가 ‘그렇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매우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41.8%에 달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공론화한 후 겪는 2차 피해의 정도에 대해 ‘매우 심하다’는 응답이 55.8%나 되었고, ‘약간 심하다’ 30%를 합치면 80%가 넘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해 ‘문제제기의 의도가 불순한 것 아니냐’, ‘피해 이후 행동을 보니 피해자답지 않다’는 식의 2차 가해를 하는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데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원 선임연구위원은 8월 5일 공개된 한겨레TV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주의세력 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는 사실 민주당하고 현 정부가 잘못 알고 있는 건 2018년 미투 이후에 우리 사회 가장 큰 변화는 사실 ‘피해자 잘못이 없다’는 거예요. 가해자 잘못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2030여성 세대들은 피해자의 피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거예요. 한 시대가 가고 있는 거예요.”라고 답하였다. 이 발언은 위와 같이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민중의 의식이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지금, 자유주의세력이 박원순 사건 앞에서 보인 태도는 이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낡아빠진 세력임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자 글쓴이: 김민재 2020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