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그리고 백년 식사와 인문학
백년 식사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2020.11
주영하-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마산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1998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대학원 민족학·사회학 대학에서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로 민족학(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담당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7~2008년 일본 가고시마대학교 심층문화학과에서, 2017~2018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아시아학과에서 1년간 방문교수로 지냈다.
저서 『음식전쟁 문화전쟁』,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음식인문학』, 『식탁 위의 한국사』,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밥상을 차리다』,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등은 주로 한국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살핀 책이다. 또한 저서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차폰 잔폰 짬뽕』, 『맛있는 세계사』와 역서 『중국 음식 문화사』, 그리고 감수하고 특집글을 쓴 『밀크의 지구사』, 『아이스크림의 지구사』, 『빵의 지구사』, 『위스키의 지구사』, 『차의 지구사』, 『초콜릿의 지구사』, 『치즈의 지구사』, 『커리의 지구사』, 『피자의 지구사』, 『향신료의 지구사』 등이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음식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세계사적 맥락을 살피는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세계 식품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편입의 역사
1부 개항의 식탁─이국 음식과 만남
1 미국인 조지 포크가 묘사한 조선 음식
2 김득련이 세계 일주 중에 먹은 서양 음식
3 엠마 크뢰벨이 서울에서 차린 프랑스식 코스 요리
4 앨리스 루스벨트가 고종과 함께 먹은 조선식 점심
5 황실 원유회에서 마신 맥주와 위스키
2부 식민지의 식탁─조선의 일본식 음식과 일본의 조선식 음식
1 일본식 두부와 빙수의 유행
2 청국우동에서 우동으로
3 식탁에 스며든 일본산 조미료, 아지노모토
4 선일융화를 실현한 일본 장유
5 제국으로 옮겨간 야키니쿠와 가라시멘타이코
3부 전쟁의 식탁─배급, 통제, 그리고 구호의 식생활
1 “총후의 국민은 쌀을 절약하고 대용식을 먹읍시다”
2 소고기 대신 무엇을 먹을까?
3 대용식 장려로 주목받은 호떡과 소면
4 해방공간의 청계천 길거리 음식
5 구호물자 우유죽과 부산의 하꼬방술집
4부 냉전의 식탁─미국의 잉여농산물 유입과 녹색혁명
1 북한의 민족음식 구축
2 치킨라멘과 소고기라면, 그리고 K-레이션
3 밀막걸리와 희석식 소주의 유행
4 콩기름 식용유 생산과 튀김 음식의 증가
5 녹색혁명과 통일벼
5부 압축성장의 식탁─먹는장사 전국시대
1 LA갈비와 삼겹살구이의 등장
2 식품산업, 전쟁 같은 경쟁
3 청량음료, 뜨거운 판촉전
4 건강 추구 속에 꽃핀 횟집
5 강남 개발 완성과 고급 음식점 개업 붐
6부 세계화의 식탁─한국인의 식탁을 장악한 세계 식품체제
1 열대 과일 수입 붐
2 서양 채소의 소비 증가와 씨앗 재산권
3 연어와 랍스터, 대중 수산물이 되다
4 지구화된 매운맛
5 세계화 과정에서 변하고 있는 입맛
에필로그: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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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계화된 한국인의 입맛과 한국 음식의 세계화, 그 100년의 역사
- ‘썰’과 ‘음식 민족주의’를 넘어 마주하는 근현대 100년의 식탁
믿고 읽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신작!
“음식의 역사를 알면 그 사회와 문화가 보인다”라고 말하며 음식의 인문학적 탐구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가 이번에는 ‘세계 식품체제와 한국 음식의 만남’에 주목해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 음식문화의 기원을 추적한다.
세계화와 더불어 탄생한 초국가적 식품체제로, 한국 마트에서 외국산 식재료와 공장제 식품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한국 음식의 세계적 유행에 힘입어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서나 한국 식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 음식이 세계 식품체제와 만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외국에 나라의 문을 연 19세기 후반부터 한국의 음식문화는 끊임없이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한국인의 입맛을 변화시켜 왔다.
이 책은 한반도가 세계 식품체제에 편입되는 개항부터 식민지, 전쟁, 냉전, 압축성장 그리고 세계화라는 여섯 시기에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 음식들을 살피며,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인의 입맛이 어떻게 변화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추적한다. 대한제국 황실에 차려진 서양식 만찬에서부터 식민지 시기 영향을 주고받은 조선 음식과 일본 음식, 전쟁 대용식과 원조 식량으로 탄생한 분식,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과정에서 급격히 성장한 인스턴트식품과 외식 산업, 그리고 최근의 K-푸드 유행까지, 오늘날의 한국 음식문화가 만들어지는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를 생생히 들려준다.
근현대 시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과 음식문화가 탄생한 시기인 만큼, 흥미 위주의 ‘썰’과 전통을 강조하며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쓴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는 방대한 사료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문화인류학과 역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이론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신뢰할 만한 음식문화의 역사를 이야기해왔다. 이 책 역시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썰’과 ‘음식 민족주의’를 넘어 독자들이 믿고 읽을 수 있는 한국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단순히 한국 음식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식량 주권이나 거대한 공장식 농수축산물 산업, 건강한 먹거리, 팬데믹 시대의 식생활 등 당장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짚어내며 인문학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백년 식사》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한국 음식문화사 1부작으로, 근현대를 시작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 한국 음식문화의 원형과 변화 과정을 살필 예정이다.
한국인의 입맛과 식탁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알면 알수록 놀랍고 흥미로운 한국 음식의 변천사
이 책에서 다루는 한국 음식의 이야기는 분명 과거의 이야기인데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하다. 그만큼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문화 대부분이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반도 곳곳을 여행하며 조선의 음식을 즐긴 미국 해군 조지 포크가 묘사한 조선 음식들, 서양 음식을 처음 접한 통역관 김득련의 실수,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여성과 공식적으로 처음 식사를 한 오찬의 메뉴, 대한제국 황실 찬사로 임명된 손탁과 크뢰벨 부인의 이야기로 한국인의 식탁이 세계와 처음 만난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한반도의 음식문화가 그렇게 서양화의 길로 들어서려던 찰나,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서 조선인의 입맛 역시 서서히 제국의 맛에 길들여져 간다. 지금도 한국 음식의 기본 재료인 장유라 불리는 일본식 공장제 간장, 조선의 식탁을 장악한 화학조미료 아지노모토, 그리고 식민지의 맛이 제국으로 건너가 ‘야키니쿠’와 ‘멘타이코’ 같은 일본 음식이 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음식과 식품 산업이라는 시선에서 새롭게 들려준다.
한반도가 겪어야 했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그 이후의 냉전 역시 한국 음식문화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대에 번데기 조림 같은 대용식과 유엔과 미국 등에서 구호·원조품으로 보낸 밀가루로 만든 호떡과 소면으로 국수, 수제비, 빈대떡, 풀빵 같은 각종 분식이 나타났다.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분식 장려는 얼큰한 국물이 일품인 한국식 라면과 톡쏘는 맛의 막걸리, 국민 술 희석식 소주,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치킨까지 만들어냈다. 오늘날 한국이 가장 많이 소비하며, 대표적인 식품으로 자리잡은 음식들의 탄생 비화는 독자들에게 놀라움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후 압축성장과 세계화 과정에서는 급격히 성장한 한국의 공장제 식품산업의 이야기에서부터 1970년에부터 즐기기 시작한 활어회, 1980년대부터 유행한 삼겹살 구이와 갈빗집, 1990년대에야 문을 연 패스트푸드점과 여성 접대부가 사라진 한정식집 등 익숙한 음식과 음식점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더불어 시장 개방과 IMF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된 한국인의 입맛과 바닥으로 내려앉은 한국 식량 주권의 민낯도 살필 수 있다.
이 책은 서양인이 조선을 여행하고 남긴 여행기부터, 황실 문서를 포함한 각종 문헌, 신문과 식품 기업의 광고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한국 음식문화의 다양한 면면을 소개한다. 이 자료를 통해 알면 알수록 놀라운 한국 음식문화의 변천사를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K-푸드의 유행과 팬데믹, 한국 음식문화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 음식문화의 역사를 살펴 미래를 제안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식의 역사는 결코 에피소드 모음이나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음식의 기원과 변화의 모습을 살피는 것은 미래를 헤아려보고 준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지난 100년의 한국 음식문화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100년을 함께 내다보기를 제안한다.
한국 음식은 개항부터 세계화까지 다양한 문화를 만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화의 길을 걸어왔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 음식의 사회문화적 혼종성이야말로 오늘날 K-푸드의 유행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반가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인의 음식과 식생활에는 세계화 시대의 식량 주권 문제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거대한 다국적 농축수산업과 이 가치사슬이 만들어냈을지도 모를 펜데믹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저 “전통 음식이 최고”라는 폐쇄적인 ‘음식 민족주의’나 함께 밥을 먹는 행위를 금지해 비말 감염을 막는 방식은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지난 100년 식탁에 대한 이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식탁을 둘러싸고 있는 식량 주권과 글로벌 식품 사슬의 문제, 그리고 펜데믹 이후의 식생활 등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할 기회를 던져준다.
책속으로
나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압축성장이 막 시작되었을 때 태어나 사이다와 콜라를 맛보았고,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누구보다 빨리 외워 식빵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고, 1972년 무렵에는 점심시간에 흰쌀밥 도시락인지 잡곡밥 도시락인지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2016년 가을, 대학원 수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했다. 결국 그날 수업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내내 그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때 학생들이 보인 반응을 되돌아보면 그들에게 나의 1960~1970년대 경험은 하나의 역사였다. ……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그들에게 ‘옛날이야기’로 다가갈 수도 있다. 좀 장황하고 지루하더라도 한 번쯤 귀 기울여주기를 부탁한다. 그래야 지금 여러분의 식탁 위 음식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p.5~7 「책을 펴내며」 중에서
나는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은 대부분 이 여섯 가지 키워드를 관통하면서 구축되었다고 본다. 개항·식민지·전쟁·냉전·압축성장의 다섯 시기는 한반도가 세계 식품체제에 편입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전면화되면서 한국에서 생산된 식품과 음식이 다른 나라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자 뉴요커(New Yorker)들 사이에서 ‘채끝 짜파구리’ 먹기가 유행이었다. 그들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한국이 세계 식품체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음식 중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취향에 따라 좋은 음식도 있고 나쁜 음식도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판단하는 음식의 취향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에서 여섯 가지 각기 다른 안경을 그때그때 바꾸어 끼면서, 지난 145년 동안 한국인이 영위해온 식생활의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 p.14~15, 「프롤로그: 세계 식품체제의 형성과 한반도 편입의 역사」 중에서
미국인 조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는 한반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조선 음식을 먹었던 대표적인 외국인이다. …… 전주 감영의 숙소에서 포크는 이불을 여러 채 깔아 침대처럼 만든 잠자리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포크는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이미 방에 들여다놓은 꿀·밤·감을 아침 식사로 먹었다. 10시가 되자 감사가 특별히 포크를 위해 식사를 보내왔다. 포크는 음식이 차려진 상을 “가슴에 닿는 식탁(on a table reaching my breast)”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또 포크는 자신이 받은 식사를 훌륭했다고 하면서 상차림을 일기에 그려놓았다. --- p.23~26, 1부 1장 「미국인 조지 포크가 묘사한 조선 음식」 중에서
이 메뉴판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1905년에 대한제국 황실에서는 아스파라거스, 올리브, 푸아그라, 트뤼프,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을 어디에서 구해 이 많은 프랑스 요리를 마련했을까? 당시 프랑스산 식재료는 통조림으로 제조되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실 주방에서도 통조림을 서울에 있던 서유럽 무역상회를 통해 사들였다. 초콜릿은 물론 프랑스산 코냑·와인·샴페인도 그렇게 마련했다. 또 부엌에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는 요리도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크뢰벨이 프랑스 요리를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 p.41~42, 1부 3장 「엠마 크뢰벨이 서울에서 차린 프랑스식 코스 요리」 중에서
음식점 주인들을 대상으로 한 아지노모토의 광고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동아일보》 1929년 10월 22일자 6면에 실린 광고에는 헤드 카피가 ‘음식점’이었다. 그러면서 “음식점을 고르는 이는 누구나 맛있게 하는 곳을 찾는 것입니다. 맛있게 하는 음식점은 아지노모도를 잘 이용하는 곳입니다. 냉면·장국밥·떡국·대구탕·설렁탕에 아지노모도를 잊지 마시고 치십시요”라고 적었다. 국물이 들어가는 음식에는 무조건 아지노모토를 넣으라는 광고다. …… 냉면집에서는 한여름에는 동치미를 마련하기 어려워 따로 육수를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아지노모토를 쓰면 훨씬 경제적이었다. 결국 평양 물냉면의 국물 맛은 아지노모토의 글루탐산나트륨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 p.80~83, 2부 3장 「식탁에 스며든 일본산 조미료, 아지노모토」 중에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가마다 돼지가 한두 마리씩 있어서 전용 사료가 아닌 주로 음식물 찌꺼기를 먹여 키웠다. 이렇게 키운 돼지의 고기에서는 고약한 비린내가 났다. 그래서 부유층에서는 돼지고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데 1960~1970년대 소고기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정부에서는 육류 가격의 안정화를 위해 대체재로 닭고기와 함께 돼지고기 식용을 적극 권장했다. …… 1980년대 삼겹살구이의 유행에는 소고기보다 값이 월등히 싸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1980년 6월 한국에 출시된 일본의 휴대용 가스버너와 일회용 부탄가스가 큰 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으로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야외로 나들이를 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때부터 야외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유행했다. 결국, 1990년대 이후 삼겹살구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 요리 중 하나가 되었다. --- p.205~207, 5부 1장 「LA갈비와 삼겹살 구이의 등장」 중에서
1980년대에도 강남의 아파트값은 폭등했고, 강남의 신흥 중산층은 그 어느 때보다 지갑이 든든했다. 그러나 강남에는 신흥 중산층이 가족들과 함께 여가를 보낼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이후 1981년 11월에 개업한 신사동의 삼원가든을 필두로, 논현동의 늘봄과 서라벌, 서초동의 초성공원과 신라정 같은 초대형 고급 음식점은 휴일 가족 나들이의 명소가 되었다. 주로 갈비구이와 냉면을 판매한 초대형 고급 음식점은 ‘호화 갈비타운’, ‘전원 갈빗집’, ‘공원식 갈빗집’으로 불렸다. 공원식 갈빗집이란 말에 어울리게 이런 음식점은 1,000여 평의 광대한 대지에 고급 관상수, 인공폭포, 구름다리, 물레방아, 정자, 석탑, 분수대, 연못, 수족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공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 p.235, 5부 5장 「강남 개발 완성과 고급 음식점 개업 붐」 중에서
2000년대 이후 많이 재배되는 서양 채소는 브로콜리·양상추·피망이다. ……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이 서양 채소를 많이 먹을수록 그만큼 많은 외화가 외국의 씨앗, 즉 종자(種子)를 사는 비용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농산물 씨앗의 재산권 확보는 식량 주권과 식량 안보 그 자체이다. 중저가 한정식 음식점의 필수 메뉴인 샐러드에 들어가는 양상추, 잡채 재료로 사용되는 피망, 숙회로 나오는 브로콜리, 이 채소들의 씨앗이 누구 것인지 알아야 하는 이유다.
--- p.261~263, 6부 2장 「서양 채소의 소비 증가와 씨앗 재산권」 중에서
해외에서의 K-푸드 인기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음식료품 제조업과 음식점업 종사자들이 외국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이다. 여기에 새롭고 생소한 가공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보태졌다. 압축성장 기간에 가공식품에서 길거리 음식(street food)까지 대부분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 즉 한국화의 길을 걸었다. 한국식 가공식품과 음식점의 메뉴는 한국 사회가 외국에 개방된 세계화 시대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K-푸드의 인기는 압축성장과 세계화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가 수용한 사회문화적 혼종성(hybridization)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 p.292~293, 「에필로그: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성찰」 중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비롯하여 서유럽의 여러 나라는 한국 정부에 농수축산물 수입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농민들은 시장 개방에 반대하며 정부에 농수축산물 보호 조치를 요구했다. 공산품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권력층 엘리트들은 농업 분야를 더 많은 무역과 더 높은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라고 인식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의 식량 주권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전통 음식이 최고”라는 상투적인 구호가 정부·학계·언론·재계를 가리지 않고 무성하다. ‘음식 민족주의(food nationalism)’는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잃어버린 농수축산물의 종자 재산권을 되찾아오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closed)’ 음식 민족주의가 지난 100여 년간 숨 가쁘게 시대를 헤쳐온 한국인의 식생활과 음식에 담긴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낼 해답은 아니다. --- p.296, 「에필로그: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성찰」 중에서
굴곡의 역사가 차린 한국의 '100년 식탁'…
양반 남성에게 위스키 한 잔을 먹여주고 있는 기생. 소반 위에 놓인 위스키 병이 눈에 띈다. 휴머니스트 제공
‘치킨’은 한식일까. AP통신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선수들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친근함을 느낄 만한 한국 음식으로 스팸이 들어간 부대찌개 그리고 ‘한국식’ 치킨을 꼽았다. 사실 외국인이 한국을 여행하는 예능프로그램에 반드시 등장하는 음식이 바삭한 후라이드치킨과 새빨간 양념치킨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선 ‘치맥’ 열풍도 불지 않았던가.
한국 음식은 다양한 문화를 만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한국 음식의 사회문화적 혼종성이야말로 오늘날 ‘K-푸드’ 유행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치킨의 역사에선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치킨은 분단으로부터 시작된 음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945년 한반도 허리에 38선이 그어지면서 남한은 식용유 원료인 대두를 만주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1956년 미국은 한국에 제공하는 잉여농산물에 식용유를 포함했고, 1964년부터는 미국산 대두를 직접 구매하라고 요구한다. 이 시기 분식 장려와 맞물려 인스턴트 라면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콩기름 생산은 날로 늘어갔다.
식용유 생산 증가는 닭튀김 유행으로 이어졌다. 일제시대 조선 양계업은 산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소고기 위주 육식 소비로 소고기 값이 폭등하자 정부에선 닭고기 생산에 주목한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브로일러라는 육계를 주로 키웠는데, 마침 식용유 생산이 늘어나 식용유 가격도 낮아졌다. 닭을 통째로 기름에 튀긴 통닭을 판매하는 가게가 생겨났다. 통닭 튀김은 국내 주둔 미군들이 즐겨 먹던 후라이드치킨을 모방한 음식이었는데, 한국 사람 입맛을 금세 사로잡았다. “냉전의 경계선에 있던 한국 사회는 미국산 식용유 수입과 함께 미국식 통닭을 한국 음식으로 진화시켜나갔다.”
식용유 생산 증가는 닭튀김 유행으로 이어졌다. 일제시대 조선 양계업은 산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세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소고기 위주 육식 소비로 소고기 값이 폭등하자 정부에선 닭고기 생산에 주목한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브로일러라는 육계를 주로 키웠는데, 마침 식용유 생산이 늘어나 식용유 가격도 낮아졌다. 닭을 통째로 기름에 튀긴 통닭을 판매하는 가게가 생겨났다. 통닭 튀김은 국내 주둔 미군들이 즐겨 먹던 후라이드치킨을 모방한 음식이었는데, 한국 사람 입맛을 금세 사로잡았다. “냉전의 경계선에 있던 한국 사회는 미국산 식용유 수입과 함께 미국식 통닭을 한국 음식으로 진화시켜나갔다.”
한국 음식은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다양한 세계 문화와 만나고 뒤섞이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음식의 역사를 알면 그 사회와 문화가 보인다”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국인의 입맛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한국의 ‘백년 식사’를 추적한다. 책의 들어가는 질문은 이렇다. ‘채끝 짜파구리’ 먹기는 어떻게 뉴요커들 사이에서 유행했는가. 알다시피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을 휩쓸며 화제를 모은 덕분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한국이 세계 식품체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1876년부터 대한제국 시기의 ‘개항’, 1910년부터 1937년까지 ‘식민지’, 1938년부터 1953년까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아우르는 ‘전쟁’, 전쟁 이후 1970년까지의 ‘냉전’, 경제성장 결과를 맛보기 시작한 1980~1990년대의 ‘압축성장’, 그리고 1990년대부터 현재도 진행되는 ‘세계화’까지 음식과 식품산업 관점에서 여섯 시기로 들여다본다. ‘전통’ 혹은 ‘한식’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사회현실과 맞물린 역동적 변화로 보는 저자의 시각은 한국 음식문화를 거리두기하며 성찰토록 한다.
오늘날 한국인이 먹는 음식 대부분은 지난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지나칠까. 미국인 해군 무관이 베르미첼리(면이 가는 파스타)로 표현한 메밀국수 ‘골동면’ 등 개화기 조선 음식으로부터 황제 고종이 여성과 공식적으로 처음 식사를 한 오찬 메뉴, 대한제국 황실 찬사로 임명된 손탁과 크뢰벨 부인 이야기까지 한국인의 식탁이 세계와 처음 만난 순간들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한반도 음식문화가 서양화의 길로 들어서려던 찰나,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조선인 입맛 역시 제국의 맛에 길들여진다.
“두부 사시오~!” 두부 장수가 종을 흔드는 풍경도 일제시대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눈발 같은 얼음이 흩날리는” 빙수와 “맑은 국물에 굵은 가락 국수를 내는” 우동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현대 한국인의 입맛을 만든 것이 있으니, 인공조미료의 대명사 ‘아지노모토’다. 1915년 조선에 소개된 아지노모토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 1929년 ‘조선박람회’를 계기로 인기를 끈다. 당시 광고는 전한다. “맛있게 하는 음식점은 아지노모도를 잘 이용하는 곳입니다. 냉면·장국밥·떡국·대구탕·설렁탕에 아지노모도를 잊지 마시고 치십시요.” 특히 냉면집에선 한여름 동치미를 마련하기 어려워 육수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아지노모토를 쓰면 훨씬 경제적이었다. ‘왜간장’ ‘진간장’이라 불리는 일본식 장유도 부유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해방 이후 일본식 장유회사가 적산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인 부엌에 진하게 스며들게 된다. 하지만 영국의 커리가 그러하듯, 식민지의 맛이 제국의 맛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숯불 고기구이 ‘야키니쿠’와 함경도의 명란젓 ‘가라시멘타이코’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그 이후의 냉전 역시 한국 음식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대에 번데기와 같은 대용식과 유엔과 미국에서 구호·원조품으로 보낸 밀가루로 만든 각종 분식이 널리 퍼진다. 이 시기 가난은 술문화도 바꿨다. 박정희 정부에서 막걸리 제조에 멥쌀 사용을 금지하고 밀가루로만 담그도록 했는데, 밀막걸리는 제조 시간이 짧아 업자들도 반겼다. 무엇보다 발효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톡 쏘는 맛을 냈다. 1975년 통일벼로 쌀 수확량이 늘면서 쌀먹걸리 제조가 허용됐지만, 소비자들은 탄산맛을 잊지 못해 사이다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고려말 원나라에서 들어온 소주 역시 멥쌀로 만드는 술이었다. 해방 이후 북한과 외교 경쟁을 벌이던 정부에선 우방국 확대를 위해 동남아 국가들과 당밀 수입 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1975년 당밀 국제 시세가 계속 오르자 국내 주정업계는 가격이 싼 타피오카를 대체 수입한다. 그때부터 싼값의 희석식 소주가 막걸리를 물리치고 국민주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평양의 냉면집에서는 아예 아지노모토를 식탁 위에 놓아두고 손님들이 입맛대로 육수에 넣어 먹도록 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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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와 단짝인 삼겹살의 유행은 압축성장기의 산물이다. 비린내 때문에 선호되지 않던 돼지고기는 1970년대 대기업의 양돈업 진출로 품질이 좋아지면서 사랑을 받는다. 값이 소고기보다 저렴했던 이유가 컸지만, 1980년 출시된 일본의 휴대용 가스버너와 일회용 부탄가스도 큰 역할을 했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야외 나들이가 잦아졌고, 1990년대 이후 삼겹살구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 요리가 된다.
세계화 시대 한국인의 식탁은 선택의 다양성과 입맛의 획일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청량음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없이 끼니를 떼울 수 없고, 열대과일과 수입채소 없이는 식단을 구성하기 어렵다. 연어는 ‘국민 횟감’이 됐고, 마라탕 열풍이 한바탕 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 음식이 최고”라며 폐쇄적인 ‘음식민족주의’를 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매운맛’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수입산’ 아니던가. 16세기 말 한반도에 들어온 고추는 20세기 중반까지 토착화 과정을 걸었다. 지속적인 신품종 개발 덕에 소비는 늘어났다. 하지만 해방 직후만 해도 지식인들은 “고추나 마늘처럼 자극적인 맛의 양념이 들어간 음식을 ‘원시적 식생활’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계몽적인 비판에도 1960년대부터 고추와 마늘·파가 들어간 음식이 많이 소비됐고, 설탕 가격이 내려가면서 낙지볶음과 떡볶이 같은 달고 매운 음식들도 유행하게 된다. 여기에 1980년대 시판된 청양고추는 매운맛을 한층 더했다. 하지만 청양고추를 개발한 중앙종묘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오늘날 청양고추의 재산권은 미국 종자회사 몬산토가 가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의 음식과 식생활에는 세계화 시대 ‘식량 주권 문제’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코로나19로 거대 농축수산업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앞으로 100년의 밥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생태학적 식탁’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함께 식사’하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제언을 한 가지 전한다. 코로나19 ‘비말 감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1인용 상차림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 남성은 ‘혼밥’을 했으며, 반찬 공용은 식량난과 인구 과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사실 공용 식기·반찬은 위생과 음식물 쓰레기 문제가 꾸준히 지적됐음에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문제다. 팬데믹 시대 “더욱 자주 ‘함께 식사’”를 즐기기 위해 귀담아 들을만 한 얘기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조선의 미식가들/ 저자 주영하|휴머니스트 |2019.07
목차
프롤로그 옛글로 맛보는 조선시대 음식문화사
1부선비의 음식 체험: 한시로, 일기로, 세시기로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2부선비의 음식 탐구: 식욕은 하늘에서 부여한 천성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3부어의와 왕의 음식: 장수를 위하여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4부 사대부 남성의 음식: 군자의 도리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5부 사대부 여성의 요리법: 서재에서 부엌으로 간 요리법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에필로그 조선시대 요리책 읽는 법
출판사 서평
1. 주영하 교수, 군침 도는 ‘음식 글’에 빠지다
―조선의 미식가 15인의 음식 취향과 경험으로 쓴 음식문화사
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해온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가 본격적으로 조선시대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조선의 미식가들》은 오늘날 전하는 조선시대 문헌을 두루 살펴 직접 먹거나 만들어본 음식에 관한 글을 남긴 15명을 뽑아, 그들의 글을 통해 음식 취향과 경험을 들여다보았다. ‘조선의 미식가’로 뽑힌 왕과 어의, 선비, 사대부 여성 등 15명은 살았던 시대도, 남긴 글의 형식도 신분이나 성(性)도 다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각의 시대에 유행했던 음식과 식재료, 요리법, 그리고 생생한 ’식후감(食後感)‘까지 살필 수 있다.
프랑스의 법률가 장 알텔므 브리야샤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며 개인의 음식 취향과 경험을 통해 그의 삶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조선의 미식가 15인은 자신들의 음식 경험을 글로 남겼다. 주영하 교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면 조선시대 ‘음식의 역사’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15인이 실제로 요리하고 먹고 즐긴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며 성글게나마 조선시대 음식문화사를 선보인다.
맛에 대한 취향은 시대마다 다르다. 한 사람의 음식 경험에는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의 정황과 역사가 담겨 있다. 이 점에 주목하여 나는 2011년부터 ‘음식에 관한 글’을 쓴 조선시대 지식인들을 저자별로 나누어 자료를 정리해왔다. …… 조선시대 500년의 실재(real) 식생활과 음식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내가 다루려고 했던 인물은 100명이 넘는다. 이들을 모두 다루려면 앞으로도 10년 이상의 공부가 더 필요하다. …… ‘음식 글’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밝혀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면 조선시대 실재했던 ‘음식의 역사’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6쪽
2. 조선 미식가들의 색다른 음식 취향을 엿보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음식 취향과 유행
이 책에서는 다섯 가지 사건과 시기로 한반도의 음식 역사를 구분한다. 첫째 불교의 유입에 따른육식 기피, 둘째 원나라 간섭기 육식 문화의 확대와 새로운 음식 유행, 셋째 조선왕조의 통치 이념이 된 성리학의 영향, 넷째 17세기 본격 시작된 연행사의 청나라 방문, 다섯째 ‘콜럼버스 교환’으로 새로운 식재료의 등장이다. 조선 미식가 15인의 글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음식 취향과 경험이 등장한다.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이색은 원나라에서 들어온 소주와 두부에 관한 시를 지었고, 조선 중기 연행사로 연경을 다녀온 김창업은 중국에서 맛본 새로운 음식에 관한 글을 남겼다. 정조 때의 학자 홍석모는 세시기를 통해 조선 후기 민간의 세시풍속을 자세히 기록했다.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음식만을 주제로 한 글은 흔치 않았지만, 허균과 김려, 이옥 등 직접 맛본 음식에 관해 글을 남긴 사람도 있었다. 허균은 조선 팔도에서 먹어본 음식의 품평과 함께 먹은 장소, 요리법, 잘 만드는 사람과 명산지 등의 정보를 〈도문대작〉에 자세히 기록했고, 이옥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의 맛과 먹는 방법을 글로 남겼다. 김려는 귀양살이를 하며 박물학적 관심에서 어류학서 《우해이어보》를 썼는데 글에서 그의 넘치는 식욕이 엿보인다.
18세기 들어 조선의 식탁에 오른 고추는 이옥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기도 했다. 고추 마니아라 할 정도로 그가 남긴 글에는 고추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조선 왕들 가운데 가장 장수한 영조의 최애 음식도 고추장이었다. 어의였던 전순의와 이시필은 왕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음식에 신경을 쏟으며 요리법을 기록했다. 이들의 기록을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함께 살펴보면 왕들의 음식 취향과 경험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음식 글’ 하면 사대부 남성들과 여성들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 군자임을 자임했던 김유와 조극선, 이덕무가 남긴 요리책과 ‘음식 글’은 당대 선비들의 식생활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사대부 여성들은 서재에서도 요리법을 궁구하고 부엌에서도 음식을 만들었다. 장계향과 빙허각 이씨는 손수 요리책을 지어 집안 대대로 물려주었고, 여강 이씨는 집을 떠나 임지에 있던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며 요리법과 음식 맛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대부가 여성들이 남긴 글은 조선시대 지배층의 식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술 속의 영특한 기운만 있으면, 어디에 기대지 않아도 되네, 가을 이슬처럼 둥글게 맺혀 밤이 되면 똑똑 떨어지네. 청주의 늙으신 종사〔靑州老從事, ‘오래된 좋은 술’〕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니, 마치 하늘의 별과 같이 뽐내게 만드네. 도연명이 이 술을 맛보면 깊이 고개 숙일터, 굴원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지.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표범 가죽 보료 위에 앉아 금으로 만든 병풍에 기댄 기분이네.” …… 주당이라면 빈속에 술 한 잔 털어 넣었을 때의 느낌, 즉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쫄쫄 내려가며 위장에 이르는 그 느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색은 그 느낌을 ‘뼛속까지 퍼진다’고 했다. 더욱이 술맛을 잘 아는 사람(도연명)과 술 취하기를 거부한 사람(굴원)조차 반할 정도라고 읊조렸다. 도대체 이 술의 정체는 무엇일까?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중에서, 25쪽
(연행사로 떠나게 된) 김창업은 간식거리로 전복·쇠고기·꿩고기·홍합·대추·인삼 등을 말린 것을 준비했고 전약·약과·청심원도 챙겼다. 아마도 매일 아침 길을 나설 때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가죽주머니에 덜어 넣었을 것이다. 김창업은 간식거리를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어느 중국인은 전약과 약과를 선물로 받고서 그 만드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간식거리 중에서 특히 청심원이 인기였다. 청심원을 받은 중국인들은 약효가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1713년 음력 1월 3일 연경에 머물던 김창업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 죽통에 넣어두었던 초장(炒醬)을 꺼내어 먹었다.” …… ‘초장(炒醬)’의 한자를 보면 ‘볶은 장’이지만, 김창업의 글로는 고추장인지 된장인지 무엇을 볶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해외여행을 가면서 고추장이나 깻잎장아찌 따위를 짐 속에 챙겨 넣는 요사이 한국인과 김창업 일행이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중에서, 46~50쪽
어릴 적부터 입맛 이 남달랐던 허균은 막상 유배지에 와서 보니 “쌀겨조차 부족했고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뿐이었다. 그나마 하루에 간신히 두 끼를 먹다 보니 종일 배가 고팠다.” 결국 허균은 “여러 음식을 종류대로 나열해 기록하고 때때로 보면서 고기 한 점을 눈앞에 둔 셈” 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의 제목을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는 뜻으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붙였다. …… 〈도문대작〉에서 언급된 지역은 동해·남해·황해를 비롯하여 조선 팔도에서 빠지는 곳이 없을 정도다. “벼슬한 뒤로는 남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음식을 대접받았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며 나물이며 먹어보지 않은 게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허균은 ‘식신로드’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중에서, 81~84쪽
새로 한반도에 유입된 이 두 가지 채소 중에서 이옥은 고추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그는 겨자장보다 고추장을 더 즐겨 먹었다.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해보매, 술집에 들어갈 때마다 연거푸 술을 몇 잔 마시고 손으로 시렁 위의 붉은 고추〔紅椒〕를 집어서는 가운데를 찢어 씨를 빼내고 장(醬)에 찍어 씹어 먹으면 주모가 반드시 흠칫 놀라며 두려워했다. 남양(南陽)에 살게 되면서 가루를 내어 양념장〔?汁〕을 만들어 생선회와 함께 먹는데, 역시 겨자장〔黃芥汁〕보다 나았다. 이렇게 고추를 좋아했던 이옥은 남양 집의 채마밭 근처 조그만 땅에 다 고추를 심었다. ―〈“가슴이 시원스럽게 뜷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중에서, 109쪽
영조는 고추장을 언제부터 먹었을까? 1752년 음력 4월 10일자 《승정원일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날도 도제조 김약로가 “조종부의 장은 과연 잘 담갔다고들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영조는 “고추장은 근래 들어 담근 것이지. 만약 옛날에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승정원일기》에서 고추장과 관련된 이 단어들을 검색하면 영조 대에서만 22건이 검색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영조야말로 조선 국왕들 중에서 가장 고추장을 즐겨 먹은 왕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지어 75세의 영조는 스스로 “송이·생복(生鰒)·아치(兒雉, 어린 꿩)·고초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고추장을 즐겨 먹었다.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중에서, 163~164쪽
조선 요리법 75년 전에 쓰인 한국 전통음식문화의 정수!
저자 조자호|역자 정양완|책미래 |2014.12
저자 조자호(趙慈鎬: 1912~1976)는 요리연구가. 교육자.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병과점 호원당(好圓堂) 설립자. 서울 다동(茶洞) 출생. 양주(楊州) 조씨로 조선 말기 철종에서 고종 초까지 10년간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趙斗淳: 1796~1870)의 증손녀이다. 마지막 왕비 순종황후 윤대비와 이종사촌 간으로, 어릴 적부터 궁중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구한말 명문대가의 양반가 전통음식과 조선왕조의 궁중요리를 익히며 자랐다.
동덕여학교에 입학(1927년) 3년 과정을 졸업하였고, 1939년 28세의 나이로 서울 양반가 전통음식을 상세히 한글로 정리하여 소개한 《조선요리법》을 저술?출간하였다. 이 책은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과 더불어 당대 쌍벽을 이루는 한국음식 조리서가 되었다.
같은 해 일본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하였고, 1940년 박순천(朴順天), 황신덕(黃信德), 박승호(朴承浩) 선생 등과 ‘경성가정여숙(현 중앙여고)’을 설립, 교사로 취임하여 우리 전통음식과 예법을 복원하려 노력하였으며, 수시로 전국의 명가들을 찾아다니며 각 고장 특유의 음식맛을 익혔다. 1937~1940년 8월까지 <동아일보> 가정란에 우리 음식 만드는 법을 다수 연재하였고, 1939년 4월 17~23일 YWCA(여자기독청년회) 주최의 ‘춘계요리강습회’ 등 수많은 실습회를 개최하였다. 1953년 국내 최초의 전통병과(餠菓) 전문점 ‘호원당’을 설립, 우리나라 고급 한과의 정수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으며, 그 맥을 아들과 며느리가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국빈만찬 한식상을 주관하였고, 경성여자상업학교, 진주여고, 서울대 가정대학, 숙명여대 등에서 한식조리법을 강의하였으며 평생을 조선의 맛, 조선요리의 정수, 그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 애쓰다 1976년 타계하였다.
목차
축하의 글 윤서석
축하의 글 이종미
조선요리법 해제
서조동식
서황신덕
자서조자호
1. 고명 만드는 법
2. 메주 쑤는 법
3. 간장과 고추장 담그는 법
4. 각종 가루 만드는 법
5. 김장하는 법
6. 햇김치와 술안주김치
7. 찬국 만드는 법
8. 나물하는 법
9. 장아찌류
10. 조림류
11. 생채류
12. 간납류(肝納類)
13. 잡채류
14. 장국류
15. 화채류
16. 자반류와 포류
17. 회류
18. 구이류
19. 조치류
20. 죽류
21. 토장국류
22. 떡 종류
23. 전골류
24. 약식과 갖은 편(떡)류
25. 맑은 장국류
26. 구자와 찜류
27. 미음과 양즙류
28. 정과류(正果類)
29. 쌈류
30. 생실과 웃기
31. 젓갈 담그는 법
32. 음식 곁들이는 법
33. 음식을 절기에 따라 분할함
34. 상 보는 법
35. 예법 몇 가지
부록1. 조선요리법 보유(補遺)
부록2. 조자호 선생 자필 원고(조선요리법이후에 쓰인 것)
부록3. 조선요리연구발표
부록4. 요리실습 원고
부록5. 조자호 선생의 신문, 잡지, 방송기사
부록6. 편지와 회상글들
역자 후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일제 강점기에 소중한 우리 음식문화를 기록으로 남긴
애국지사 못지않은 장하고 거룩한 업적! -윤서석 교수(식품영양학)
이 책은 1939년 광한서림(廣韓書林)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요리책으로는 1917년 간행된 최초의 근대 조리서로 이화여전 가사과 방신영(方信榮) 교수의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1934) 등이 있었는데, 조자호 선생의 《조선요리법》은 우리 음식의 전통조리법들을 중점으로 다룬 책으로서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고명(10가지), 메주(2), 각종 장(9), 각종 가루(6), 김장(6), 햇김치와 술안주 김치(13), 찬국(4), 나물(16), 장아찌(10), 조림(14), 생채(8), 간납(21), 잡채(6), 장국(14), 화채(16), 자반과 포(19), 회(25), 구이(24), 조치(9), 죽(8), 토장국(9), 떡(27), 전골(12), 약식과 갖은 편(11), 맑은 장국(19), 구자(신선로)와 찜(10), 미음과 양즙(5), 정과(10), 쌈(3), 생실과 웃기(4), 젓갈(8), 등 33부분에 걸쳐 총 358가지와 부록 1에 덧붙인 67가지를 합해 모두 425가지의 한식조리법을 자세히 소개하였고, 음식 곁들이는 법과 음식을 절기에 따라 나누는 법, 상보는 법, 음식예법 등을 책 끝부분에 서술하였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로 내려오며 고유의 맥이 단절될 상황에 처해 있던 우리 전통음식의 정수(精粹)인 양반가음식과 궁중음식의 조리법들을 손쉽게 익힐 수 있도록 1930년대 당시의 구술체(口述體) 한글로 정리, 서술하여 대중에게 전달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서울을 중심으로 한 조선 반가(班家)와 궁중의 음식문화가 오늘날까지 대중문화 속에 계승되어 보존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28세의 나이로 이 같은 조리전문서를 편찬한 사실 또한 저자조자호 선생의 천재성을 드러낸다 할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한식조리 역사의 사료로서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한글 표현 정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문헌자료이기도 합니다. 음식 못지않게 맛깔스런, 다채롭고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들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면서, 마치 조리 현장인 부엌에서 옆사람에게 이야기하며, 몸으로 해보이며 요리법을 알려 주듯 쉽게 쓴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조리서는 이조 세조 때 1400년대 중반 전순의의 《산가요록(山家要錄)》, 중종 때 1540년경 김유의 《수운잡방(需雲雜方)》,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정조지(鼎俎志), 경북 상주 반가(班家)부인의 《시의전서(是議全書)》 등이 있는데, 조자호 선생의 《조선요리법》은 이러한 옛날 조리서들의 수백년 전통 속에 담긴 조상들의 조리정신과 문화를 오롯이 이어받아 다시금 드러내었다 할 것입니다.
(글쓴이: 정재승)
서평
조자호 씨가 1939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지은 《조선요리법》은 실로 조리 있고 과학적으로 잘 지은 책이다.- 위당 정인보(국학자)
《조선요리법》은 우리나라 음식의 범절과 문화성, 과학성에 대한 완벽한 안목과 숙달된 솜씨를 격조 있는 표현으로 빠짐없이 정확하게 저술한 귀중한 책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소중한 우리 음식문화를 기록으로 남긴 조자호 선생님의 깊은 뜻은 어느 애국지사에 못지않은 장한 공헌이고 거룩한 업적입니다.- 윤서석(전 중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조선 왕조의 대궐 음식은 반가 음식과 달랐는데, 조 선생님이 윤비를 위해 친정 음식을 만들어 가시면 마마를 모시는 김 상궁, 성 상궁과 수랏간 나인이었던 찬거리 담당 한희순 상궁도 함께 맛보면서 궁궐과 반가 음식의 조리법 차이를 체득하였습니다. 조 선생님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한 상궁은 조 선생님이 일러 준 반가의 음식법을 적용하기도 해 반가와 궁궐 간에 음식 문화 교류가 긴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종미(이화여대 명예 교수, 식품영양학), 《열정과 혜안의 선각자, 조자호 선생님》 글 중에서
책속으로
정월장은 메주 한 말에 물은 석 동이면 간장 빛이 좋습니다. 소금은 물 한 동이에 소두 닷 되(약 9리터)면 적당합니다. 소금물은 하루 전에 풀어 놓았다가 고운체로 밭여 놓고, 메주를 솔로 정하게 쓸어가지고 독에다 담고 장물 푼 것을 붓습니다.
물을 다 붓고 통고추 몇 개를 넣고, 참숯을 자질구레하게 쪼개서 불을 빨갛게 달구어 서너 개 넣고, 대추도 몇 개만 넣으십시오. 장 담근 지 한 50일만 되면 뜨게 됩니다. 뜨기 전에도 한 삼 일 지낸 후엔 매일 식전에 열어 놓았다 저녁이면 덮으십시오.
장독을 문포(門布: 중국 책문[柵門] 지방에서 들여온 삼베)나 목아사 같은 것으로 싸서 동여매십시오. 그리고 장을 떠서 달이기도 하고 안 달이기도 합니다. 달이는 것은 솥에 붓고 충분히 끓여서 거품은 걷으십시오. --- p.51
관전자(꿩김치)
ㆍ재료
꿩의 살 저민 것 한 공기, 오이[작은 것] 한 개, 죽순[작은 것] 한 개, 표고[큰 것] 두 개, 전복[중간치] 한 개, 해삼[중간치] 두 개, 정육(쇠고기) 조금, 배[작은 것] 한 개, 초 약간, 설탕 약간, 실고추 몇 오리, 간 장 조금, 실백 한 숟가락, 석이 한 개, 젓국지(겨울에는 배추통김치도 좋음)
ㆍ만드는 법
생치(꿩)를 성하고 좋은 것으로 털 뜯고 내장을 꺼낸 뒤 물에 정히 씻어서 슬쩍 데쳐 나붓나붓하고 얄팍하게 저며 놓고, 정육(쇠고기)을 곱게 다져 갖은 양념을 해서 물을 조금만 붓고 볶아 놓은 후, 저며 놓은 생치를 냄비에다 족 늘어놓고 고기 볶은 국물을 쳐서 숟가락으로 꼭꼭 눌러 가며 익혀 놓습니다. --- p.67
전어회
ㆍ재료
전어, 파 잎, 참기름, 소금, 실고추.
ㆍ만드는 법
성하고 좋은 전어를 정히 다뤄서 대가리를 자르고 뱃바닥을 잘라 낸 후 반으로 쪼개서 칼에 기름칠을 해가지고 얇게 저며 가늘게 채 친 후, 파 잎을 곱게 조금만 채 쳐 넣고, 실고추를 약간 섞고, 소금으로 간 맞추어 담아 놓습니다. 윤집을 찍어 먹습니다. --- p.148
숙실과
숙실과는 여러 가지 과일의 열매에서 씨를 빼고 설탕과 물을 붓고 흠씬 끓여서 물기가 없어지고 꾸둑꾸둑해지면, 식혀서 갖가지 열매 모양으로 빚어 조청을 바르고 잣가루를 묻혀서 만드는 것이다.
숙실과를 곁들이는 법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담는 방법은 지방과 형편에 따라 다른 것으로 가지각색을 많이 곁들여 담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러한 종류를 모두 구할 수 없고 또 치레뿐이므로 그냥 재래식을 알아두는 정도면 족하다. --- p.336
오색축병(五色祝餠: 오색 축하떡)
ㆍ재료
멥쌀가루 750그램, 설탕 320그램, 물 1컵 정도, 호두 12개, 잣(松實) 반 컵, 치자 1개, 녹색 잎사귀 조금, 식용염료 홍색 극소량, 흑임자 가루 두텁가루(진한 것) 중 한 수저, 대추(大) 3개, 즙청(汁淸:생강, 계피 끓인 물에 조청을 넣어 졸인 것. 집청이라고도 함) 1/3컵 정도
ㆍ만드는 법
① 쌀가루를 준비해서 5등분 합니다.
② 설탕에 물을 붓고 끓여서 식힙니다.
③ 호두는 망치로 깨뜨려서 겉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얇게 착착 썰어 대강 다져서 4등분합니다. --- p.356
굴욕을 대하는 태도 역사를 움직인 16인의 굴욕 연대기
저자 공원국, 박찬철|위즈덤하우스 |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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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궁정요리통고에 등장한 게감정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게는 물에 담가놓고 게몸과 다리를 골고루 닦는다. 게다리 끝을 한마디씩 잘라 버리고 게딱지를 떼고 게장을 긁어낸다. 소고기를 다져서 두부와 함께 양념(간장, 후춧가루, 깨소금, 설탕, 참기름, 파, 마늘)하여 게딱지 속에 담고 그 위에 게장을 바르고 계란을 풀어서 게장을 바른 위에 칠한다. 나머지 고기로 맑은장국을 끓여서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서 간을 맞추고 숙주, 옥총, 파를 넣고 끓인다. 이 장국이 펄펄 끓을 때에 게(게딱지에 담은 속이 흐르지 않도록 똑바로 넣어야 한다)를 넣고 끓여 그릇에 담고 알지단을 채로 썰어서 뿌린다. 76p"
이조궁정요리통고/ 한희순 외, 학총사, 1957
증보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36, 영창서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는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1924년에 저술한 요리책으로 책이름의 뜻은 ‘조선에 둘도 없는 새로운 음식 만드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booksonadish/220259671325 작성자명 : booksonadish| 블로그명: Books on a Dish|작성자 모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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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한국 현대 식생활사 저자 주영하, 김혜숙, 양미경|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7.11
목차
책을 내면서
I. 최악의 식생활과 식품업의 재건(1945~1964)
1.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식생활
2. 한국전쟁기의 식생활
3. 한국전쟁 후 식품업의 재건
4. 미국 잉여농산물 도입과 정부 주도 혼분식장려운동
II. 주식의 자급자족 추진과 현대 한국형 식생활의 형성(1965~1978)
1. 식탁 위를 채우기 시작한 공장제 식품
2. 식품산업의 성장과 도시민들의 공장제 식품 소비증가
3. 정부 주도 식생활개선캠페인과 쌀의 자급자족
III. 한국형 융합식품산업의 구축과 풍요로운 식생활 구현(1979~2001)
1.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의 정착과 김치의 일본 수출
2. 정부의 세계화 선언 속에서 재발견한 한식
3. 학교급식의 한국형 식단과 한국형 융합식품산업의 구축
IV. 세계 속 한식, 한식 속 세계(2002~2015)
1. 한류음식의 확산과 국내의 다문화음식점
2. 2000년대 한국인의 식생활 양상
3. 정립이 필요한 21세기 한식의 개념
연표
출판사 서평
1부 ‘최악의 식생활과 식품업의 재건’은 1945년부터 1964년까지를 살폈다. 이때는 온갖 수탈에 시달렸던 일제강점의 후유증, 연이은 벼농사의 흉작, 3년여의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한반도가 역사상 가장 심각한 빈곤기를 맞은 시기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구축되었던 가내수공업 형태의 식품산업이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것이 큰 특징이다.
2부 ‘주식의 자급자족 추진과 현대 한국형 식생활의 형성’은 1965년부터 1978년까지의 식생활을 다룬다. 여기서 ‘현대 한국형 식생활’이란 오늘날 한국인들이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음식의 범주가 이 시기에 가정과 음식점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채용한 용어이다. 이 시기에 라면과 잔치국수로 대표되는 분식, 불고기를 비롯한 각종 일품요리가 서울의 한식음식점 메뉴로 자리 잡은 점, 도시 중산층의 가정에서 육류 소비가 증가한 점 등이 현대 한국형 식생활의 대표 양상이다.
3부 ‘한국형 융합식품산업의 구축과 풍요로운 식생활 구현’은 1979년부터 2001년까지를 다룬다. 여기서 ‘한국형 융합식품산업’은 미국과 일본에서 개발된 식품이 한국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융합된 제품으로 생산된 것을 가리킨다. 가정에서 만들어 먹던 김치·간장·된장 등의 한식 저장음식이 식품회사의 공장에서 만들어져 식탁에 올랐다.
4부 ‘세계 속 한식, 한식 속 세계’는 2002년부터 2015년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에는 우리 한식에 세계 각국에서 수입된 식재료가 들어가고 요리 기술에도 일정한 변화가 발생했다. 또 ‘한류’에 이은 ‘한류음식’의 붐으로, 세계 주요 도시에 한식음식점이 등장했고, 게다가 이를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 운영하는 세계 체제적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 내부에서 정부 주도가 아닌 시민사회 차원의 음식 담론이 형성되었다. 슬로푸드와 로컬푸드에 대한 시민운동이 일어났으며, 학교급식에 대한 무상과 유상 문제가 정치 주제로 부각되었다. 또 한국인은 더 이상 삼시 세 끼를 곡물로 지은 밥으로만 해결하지 않고 국수를 비롯한 분식으로 일부 대체하게 되었다.
음식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저자 주영하|휴머니스트 |2011.03
목차
책을 펴내며
일러두기
서설 | 인문의 시선으로 읽는 음식학
1부 오늘의 한국음식을 보다
1장 식구론
2장 기대와 현실의 괴리, 한류와 한국음식
3장 한국음식의 매운맛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4장 비빔밥의 진화와 담론 연구
2부 한국음식, 그리고 근대
5장 식탁 위의 근대
6장 주막의 근대
7장 생선 소비와 근대
8장 타자화된 조선음식
9장 한국음식이란 무엇인가
3부 한국음식, 오래된 것과의 만남
10장 도구의 닮음과 문화의 다름
11장 음식문화에 나타난 유교적 질서와 일상화
12장 재물, 인간과 신령의 연결고리
13장 상상 속의 조선음식
보론 | 한국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사 50년
본문의 주
도판 목록 및 출처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역사와 문화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
음식은 일상이자 인문학이다
- 책의 개요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학계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는 학자다. 역사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민속학 담당 교수라는 경력도 주목을 끌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 음식 관련 담론을 독보적으로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이번에는 생존의 기본 요건이자 식도락의 대상인 ‘음식’을 인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와 탐구한 결과물인《음식인문학》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음식’은 식품영양학 ‘요리학’ 조리학의 대상으로, 좀 더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 음식 연구의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대중들은 ‘삼시 세끼’라는 말로 표상되는, 삶의 가장 일상적인 부분 정도로 음식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풍토아래 저자는 학문적 관점을 통해 음식에 접근함으로써 끊임없이 음식과 인문학을 접목해왔다. 하지만 이미 세계 학계에서는 음식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음식학(food studies)’이라는 독립된 학문 영역에서 다루고 있다. 음식학은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에 나타난 철학, 역사, 사회적 기능과 상징, 국가 정책 등 매우 다양한 분야를 포섭한다. 저자는 《음식인문학》에서 한국 음식의 문화와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한국학계에서 음식학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음식학의 가능성을 세 가지 문제의식에 담았다. 첫째, 오늘날 한국의 음식소비는 어떠한가? 둘째, 한국음식에 근대는 어떻게 개입했는가? 셋째, 음식과 관습에 혼재된 오래된 것과 그렇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함으로써 음식과 인문학의 만남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오늘의 한국을 말하다 _현재의 음식소비를 통해 읽는 21세기 한국
- 이 책의 주제 1
이 책의 첫 번째 문제의식은 ‘오늘날 한국의 음식소비는 어떠한가?’이다. 저자는 음식이 주도한 사회 변화나 사회 변화가 음식에 끼친 영향을 살피는 관점과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그에 답한다. 즉, 주택과 가족 제도의 변화가 음식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류 전파에 따른 해외에서의 한국 음식 소비와 ‘음식 한류’의 진실은 무엇인지, 한국음식을 상징하는 맛인 매운맛은 어떤 형성 과정을 거쳤는지, 한국음식의 대표처럼 여겨지는 비빔밥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등 여러 담론을 살펴 ‘음식소비’라는 창으로 21세기 한국의 음식문화를 돌아본다.
특히 ‘1장 식구론’에서는 양옥으로의 변화와 핵가족화가 음식 소비에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밝혔다. 부뚜막과 아궁이로 이뤄진 부엌이 입식 주방으로 바뀐 현대식 주택은, 무쇠솥이 전기밥솥에 밀려난 것은 물론 장독대가 김치냉장고로 대체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들이 결국 밥 먹는 자리의 변화까지 초래했다고 말한다. 가장(독상), 남자(겸상), 여자(부엌, 안방)로 나뉘어 식사하던 가족은 이제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아랫목을 중심으로 위계에 맞춰 배열되던 식사 자리는 이제 TV가 잘 보이는 자리를 중심으로 맞춰 앉는다. 이처럼 주택의 변화가 음식뿐만 아니라 식사 방식까지 바꿔놓았음을 밝히고, 함께 밥을 먹는 집단인 ‘식구’라는 개념의 변천을 읽어낸다.
근대와의 조우 _한국음식의 근대적 변용
- 이 책의 주제 2
이 책의 두 번째 화두는 ‘근대’이다. ‘한국음식’이라는 인식이 근대주의와 함께 형성되었다고 본 저자는 근대라는 거대한 물살이 조놼의 음식과 만나 어떤 변화를 빚어냈는지, 그것이 지금의 한국음식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이는 개항시기 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펼쳐진 연회의 방식을 살피고, 숙박업소에서 주점으로 바뀌어버린 주막의 발달과 변용 과정을 좇으며, 근대에 들어서면서 민물생선에서 바다생선 중심으로 변해간 생선 소비의 변화 이유를 찾고, 일본인이 어떤 타자적 관점에서 조선음식을 바라보았는지를 살피는 연구로 이어진다.
특히 ‘5장 식탁 위의 근대’는 「조일통상장정 기념 연회도」라는 그림을 통한 역사 읽기를 시도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1883년, 조일통상장정 조약을 체결한 후에 치러진 연회를 기록한 그림 한 점을 놓고, 연회 참석자, 참석자의 좌석 배치, 사용된 식기, 음식 등을 살폈다. 그렇게 강화도조약 체결 후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치러진 연회에 서양 음식과 서양식 식기가 등장했음을 밝힘으로써,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인 서양의 근대가 이윽고 ‘배우기’로 변환되는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즉, 정치적 파벌을 막론하고 근대의 수용 의지를 밝히는 공식적 입장 표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만들어진 음식의 전통 - 한국음식, 전통과 전통이라는 허상
- 이 책의 주제 3
이 책이 던지는 세 번째 질문은 ‘한국음식 가운데 오래된 것과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은 무엇인가?’이다. 저자는 한중일의 숟가락과 젓가락 사용의 역사를 비교하고, 음식문화에 투영된 유교 사상을 파헤쳐 제사와 음식문화의 상관관계를 밝힌다. 더불어 굿상에 올라간 음식의 변천과정을 밤섬에서 마포로 이동하면서 변화된 도당굿을 통해 살피고,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등장한 음식 관련 묘사들을 치밀하게 살핌으로써 한국인이 잘못 알고 있는 음식에 얽힌 상식을 반전시킨다. 즉 ‘오래된 것’이 실상은 ‘만들어진 전통’일 수 있음을 간파한다.
특히, 홍명희의 소설《임꺽정》을 분석한 내용(‘13장 상상 속의 조선음식’)은 무척 흥미롭다. 저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 관련 묘사는 모두 추려내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400~1500년대에 실제로 소설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고 식기구를 사용했는지 조사했다. 이를 통해 풍속사를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임꺽정》은 벽초가 조선적이라고 생각한 것을 엮어놓은 ‘소설’일 뿐이라고 말한다. 벽초의 소설을 통해 만나고 정립되어온 ‘조선의 전통’은 그저 ‘상상 속의 조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밥의 인문학 저자 정혜경|따비 |2015.05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온 밥 이야기
저자 정혜경은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회장, 서울시의 ‘자랑스러운 한국음식점’ 선정위원, 농식품부의 전통식품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식품산업진흥 심의위원과 농수산물 유통공사의 한식 세계화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식을 과학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김치품질 측정기, 기능성 솔잎 맛김, 한방맥주 등의 제품 특허를 받았고 ‘닭고기 수출사업단’에서 한국음식 수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구 영양학을 공부했지만 한국음식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건강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늘 한국음식 전도사를 자칭하고 다닌다.
KBS TV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와 KBS1 라디오 〈건강플러스〉의 ‘음식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등에 출연하였으며, 지은 책으로 《천년한식견문록》, 《한국음식오디세이》, 《한국인에게 장은 무엇인가》, 《한국인에게 막걸리는 무엇인가》, 《서울의 음식문화》, 《명품 이유식》(공저), 《지역사회영양학》(공저) 등이 있다.
목차
지은이의 말 아주 따뜻한 ‘밥’ 한 그릇
들어가는 글 ‘밥’은 운명이다
1부 ─ 허스토리Herstory _ 한국인의 밥史
선사시대의 밥
밥이 없는 구석기 다이어트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 벼농사는 혁명이다 / 부족사회의 공식 풍습 / 쌀, 밥상의 주인공이 되다
삼국시대의 밥
쌀밥은 권력의 상징이다 / 끓여 익히는 조리법의 등장
고려시대의 밥
쌀밥은 귀족의 몫, 모래 섞인 밥은 평민의 몫 / 고려시대의 쌀 수입
조선시대의 밥
농민이 농사지은 쌀은 양반만이 먹고 / 다양한 쌀 종류와 조리법 . 배가 불러야 수저를 내려놓다 / 양반은 쌀값을 물어볼 수 없어! / 오페르트의 [조선기행] 속 밥 이야기 / 농업이 바로 서야 백성이 굶주리지 않는다
근대의 밥
개화기의 밥 사정 / 밥을 잃다_일제강점기의 비극 / 해방 직후 식생활을 바꾼 미 잉여농산물 / 쌀밥 수난시대 / 쌀밥을 버리고 병을 얻다
2부 ─ 밥 한 그릇에 담긴 의미 _ 쌀밥의 문화사
밥은 밥이 아니다
밥 없이 못 치르는 통과의례 / 신줏단지에 쌀을 모시다 / 유화부인은 왜 주몽에게 곡물 씨앗을 주었을까? / 나는 쌀의 여신이다 / 라이스 마더의 재탄생 / 삼국시대 임금은 위대하다 /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인의 거대한 허기 / 조선의 왕, 쌀밥을 경계하다 / ‘어머니의 밥’에서 ‘국민 남동생의 밥’으로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다양한 밥
조선 초기 사람들은 어떤 밥을 먹었을까? / 건강을 생각한 조선 중기의 밥 / 조선 후기, 한식이 완성되다 / 조리서 전성시대
조선시대 기속시, 판소리, 풍속화에 나타난 밥
1년 열두 달 밥을 나눠 먹은 우리 민족 / 밥은 보약이다 / 밥 많이 먹는 자가 힘이 세다 / 밥에게 복을 빌다
북한의 요리책에서 만나는 ‘밥’의 원형
원형이 살아 있는 북한의 밥 / 북한 요리책에서 만나는 다양한 밥 / 밥의 기본, 흰쌀밥과 잡곡밥들 / 여러 가지 남새밥 / 어패류와 고기를 이용한 밥 / 마음까지 훈훈한 온반의 세계 / 섞어서 만드는 버라이어티 버무리밥 / 영양만점 비빔밥의 세계 / 쌈밥 잔치를 벌여보자
마음으로 읽는 팔도 밥별곡
팔도에는 팔도의 밥 / 외식음식의 원조가 된 서울 장국밥 / 경기도는 오곡밥을 즐겼다 / 구수하드래요, 강원도 밥 / 소박하고 맛좋은 충청도 밥 / 전라도에 가면 콩나물국밥을! / 무밥은 경상도가 최고 / 이름도 예쁜 제주도 쌀밥, 고은밥 / 곡창지대 황해도의 비지밥 / 할머니의 맛, 평안도 김치말이 / 함경도에 가면 가릿국밥집이 많다
3부 ─ 남의 밥 이야기
내 밥, 너의 밥, 우리 밥
제 밥과 남의 밥 / 밥에 관한 속담은 슬프다 / 사자성어 속의 밥 / 쌀밥나무에서 이팝나무로 / 씹으면 밥 냄새가 난다 / 선생님의 밥그릇 / 시인의 긍정적인 밥 / 왕후의 밥, 걸인의 찬 / 가을, 지에밥 / 당신에게 바치는 ‘공손한’ 손길 / 그들의 쌀나눔, 노블레스 오블리주 / 가족들의 ‘밥 줘’ 그리고 밥해주러 간다
눈으로 먹는 밥이 더 맛있다_대중매체 속 밥 이야기
밥은 상징이다 / 〈대장금〉과 한식, 맛은 정성이다 / 맛의 협객 〈식객〉 / 드라마 속 밥상 풍경 / 양식은 고급, 한식은 저급?
문학작품으로 만나는 우리 밥
[토지]로 읽는 밥의 변천사 / 여인의 삶을 노래한 [혼불] / 개성의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미망] / 소설 [임꺽정] 속 밥의 표현/ 이상과 심훈을 통해 본 근대 우리 밥 / 추사의 [완당집] 속 밥상
남의 밥도 맛있다
음식이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 중국인의 볶음밥 차오판 / 스페인이 사랑하는 파에야 / 일본인의 밥, 그리고 스시 / 인도네시아식 볶음밥 나시고렝 / 달콤하게, 때로는 담백하게 즐기는 베트남 쌀국수 / 향신료를 듬뿍 사용하는 인도요리 / 구스토! 이탈리안 리소토 / 북아프리카인들의 밥, 쿠스쿠스
4부 ─ 밥의 과학
쌀의 이해
쌀은 정말 밀보다 우수할까? / 쌀밥의 영양소 / 쌀밥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쌀밥, 그리고 건강의 탄생
쌀밥과 당뇨병 / 아침밥을 먹으면 수능 성적이 올라간다고? / 쌀밥은 체력 증강에 좋다 : 옥타코사놀 / 신경계를 책임진다 : 가바 / 비만을 예방하려면 빵보다 밥! / 세계인을 사로잡은 쌀 다이어트 / 밥을 주식으로 하면 암 발생률이 낮아진다 / 밥은 오히려 탄수화물 중독증을 예방한다
밥 짓기는 요리가 아니라 과학이다
무궁무진한 밥의 종류 / 쌀을 알아야 밥맛이 산다 / 밥 짓기의 원리 / 맛있는 밥, 이렇게 짓는다 / 밥 짓기가 궁금해!
5부 ─ 밥은 힘이다 _ 색색가지 밥 짓기
밥심은 밥맛에서 나온다
밥 짓기의 예술 / 다양하게 먹어야 맛있다
색색가지 밥, 색색가지 맛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 / 지혜가 빚어낸 효능은 덤이다, 오곡밥 / 구황과 풍류를 한번에 해결한 채소밥 / 신과 인간이 함께 먹다, 헛제삿밥 / 비빔밥,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다 / 시청각요리, 돌솥비빔밥 / 채식주의자를 위한 산채비빔밥 / 간편하면서 영양 좋은 대중의 밥, 김밥 / 김치의 매력은 영원하다, 김치볶음밥 / 해물과 밥의 결합, 오징어덮밥 / 숙취 해소에 좋은 콩나물국밥 / 따뜻하고 영양 많은 영양돌솥밥 / 불고기와 밥을 한번에 먹는 불고기덮밥 / 쌈의 민족, 쌈밥 / 식이섬유소가 풍부한 무밥
에필로그 아버지의 밥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밥심으로 일하고 밥값 하면서 살아온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일생을 말하다
약 1만 3000년 전의 볍씨, 즉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세계 최고의 볍씨가 우리나라 충북 소로리 구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볍씨가 발견된 1998년은 한국인의 쌀 소비량이 급속히 줄어들던 때였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2013년)에 의하면 1인당 쌀 소비량이 1980년에 132킬로그램, 2000년에는 97킬로그램, 2012년에는 79킬로그램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빵이나 라면 같은 분식, 저녁은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이 불러온 결과다. 여기에 쌀밥이 비만과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쌀 소비량을 점점 줄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인에게 쌀은 그저 여러 가지 식재료 중 하나일 뿐일까? 쌀밥에 대한 갈망은 맛벌이 주부를 귀찮게 하는 습관에 불과한 것일까?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밥의 인문학 ―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온 밥 이야기]는 유례없이 쌀 소비량이 낮아진 오늘날, 한국인에게 과연 밥은 무엇일까를 탐구한다.
저자 정혜경은 식품영양학자다. 음식을 영양소로 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을 연구한다. 그러나 ‘한식 전도사’를 자처하는 저자에게 밥은 그저 열량과 영양소를 제공하는 식재료에 그칠 수 없다. 사람들은 한식의 특징으로 발효음식을 들기도 하고, 매운 음식을 들기도 한다.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는 문화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밥을 먹기 위해 국과 반찬 같은 부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식사에서 왕 중 왕은 밥일 수밖에 없다. 그런 밥이기에, 밥 한 그릇에는 한국의 역사, 한국인의 생활상, 심성과 기원이 모두 담겨 있다.
밥은 하늘이다_한국인의 역사와 함께하는 밥
저자는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 짚어가며, 한반도의 사람들이 쌀을 어떻게 먹어왔는지를 살핀다. 신석기 시대에 벼농사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민중은 한 번도 쌀을 넉넉히 먹어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대식(大食)은 곧 권력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태종 김춘추의 식사량이 하루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고 쓰여 있다. 삼국을 통일할 만큼 강력했던 김춘추의 권력이 바로 하루 쌀 여섯 말이었다.
일하는 자와 먹는 자의 차이가 바로 계급이기도 했다. 단원과 혜원 등 조선의 풍속화가들은 농민이 허리가 휘도록 지었으나 넉넉히 먹어보지 못하는 쌀로 술을 빚어 유유자적하는 양반들의 모습을 풍자한 그림을 남겨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언제나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던 양반은 체면을 중시해 쌀값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늘 굶주렸던 백성들은 기회만 되면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고서야 숟가락을 놓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백성들의 밥을 챙기는 것이야말로 정치이자 위정자의 도리였다. 주몽이 부여를 떠날 때 어머니 유화부인은 각종 곡식의 씨앗을 챙겨 아들에게 주었다. 한 나라를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일이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임을 보여주는 신화다. 조선의 왕들은 흉년이 들 때마다 먼저 반찬의 수를 줄이고 수라에 쓰는 쌀의 양을 줄이며 신하들과 백성들이 앞에서 제스처로나마 솔선수범했다.
넉넉히 먹을 수 없는 밥이기 때문에, 나누어 먹는 것이 강조되기도 했다. 고대사회의 공식(共式), 즉 대형 그릇 안에 곡식과 어패류 등을 넣고 삶아서 함께 먹는 풍습은 씨족과 부족을 공동운명체로 느끼게 했다. 오늘날에도 가족은 식구(食口), 곧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존경받는 부자는 제 식구뿐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과 나그네의 굶주림까지 덜어주는 이였다.
밥은 소망이다_생로병사와 함께해온 밥
주식은 일생 동안 삼시세끼 먹는 끼니다. 그래서 때때로 별식을 즐긴다. 그러나 한국인은 특별한 날에도 밥을 먹었다. 심지어 죽어서도 먹었고, 신에게도 밥을 바쳤고, 귀신과도 밥을 나누었다. 한국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쌀과 함께한다. 아기를 낳은 산모는 첫 국밥으로 흰쌀밥과 미역국을 먹었고, 해마다 생일이면 역시 흰쌀밥과 미역국을 먹는다. 망자의 입에도 쌀 한 술을 넣어 저승에서도 굶지 않기를 기원했으며, 저승사자에게 사잣밥을 대접하며 망자의 안위를 부탁했다.
삼시세끼 먹어서 주식이지만, 삼시세끼 먹을 만큼 풍족하지 못해 더욱 간절했던 쌀은 기원의 대상이기도 했다. 삼신할멈에게 쌀밥과 미역국을 차려 대접하며 아기의 순산을 기원했고, 제사상에도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욱 정성껏 차린 밥과 찬을 올려 조상을 공양했다. 집을 수호하는 성주신에게 집안의 화목을 빌며 바친 것도 쌀이었고, 집 나간 자식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들은 정한수와 쌀 한 그릇을 바쳐놓고 빌었다.
저자는 밥을 소망하고 밥에게 기원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예술 작품에서 끄집어내 소개하고 있다. 세시풍속을 읊는 기속시에서는 명절마다 한 그릇의 밥과 함께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풍속이 펼쳐진다. 흥부의 박에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은 금은보화도 비단옷이나 기와집도 아니고 바로 흰쌀밥이었다. [토지], [미망], [혼불]처럼 여성 작가가 쓴 소설을 통해서는 근대의 밥 먹는 풍경과 여성의 삶을 엿보고, [임꺽정]을 통해서는 조당수, 자릿조밥, 대궁, 턱찌끼, 중등밥, 숫밥 등 밥을 이르는 너무나 다양한 우리말의 쓰임을 알아본다.
밥이 현대 한국인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대중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밥 먹는 풍경으로 가족간의 유대를 표현하고 젊은이의 데이트문화를 보여주거나 여성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저자는 이 대중매체 속 밥을 통해 현대인이 한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허위의식을 꼬집고 오해를 풀려 애쓰기도 한다. 가족들이 일상적인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도 ‘화면 발’을 위해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이 등장하는 장면이 한식을 차려 먹기가 어렵고 번거롭다는 인식을 심어줘 밥에서 더욱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밥이 보약이다_쌀의 맛과 영양가치
각 민족은 자기 땅의 기후와 지형에 맞는 곡식 중 하나를 주식으로 선택하고, 그 주식을 잘 먹기 위해 혹은 보완하기 위해 식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우리의 경우는 약 5,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이 땅에서 자라게 된 쌀을 선택했다. 비교적 늦게 한반도에 들어온 곡식이었음에도 우리 조상들이 쌀을 주식으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밥의 맛과 영양이 탁월하기 때문이었다.
식품영양학자답게 저자는 밥(쌀)의 영양가치를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쌀이 탄수화물이라는 이유로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지만, 밥을 제대로 챙겨 않고 분식이나 군것질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야말로 비만과 성인병을 불러오는 원인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쌀이 완전무결한 식품은 아니므로, 밥을 더욱 영양가 있게 혹은 맛있게 먹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고, 그것이 우리 식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여러 잡곡을 섞어서 밥을 짓는 것과 다양한 반찬을 함께 섭취하는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여러 가지 밥짓기는, 젊은 세대가 앞으로도 밥을 중심으로 한 식문화를 즐기고 더욱 발전시켜나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은 팁이다.
책속으로
흔히 한국음식을 말할 때면 김치나 간장 같은 발효음식을 거론한다. 매운 음식 이야기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한국음식의 핵심을 바로 보지 못한 처사다. 한국음식 가운데 왕 중 왕은 ‘밥’이다. 한국인은 밥을 먹기 위해 김치나 간장 같은 발효음식을 반찬으로 먹는 것이지, 반찬을 먹으려고 밥을 먹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해 밥 이외의 부식들은 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맛있는 반찬들, 예를 들어 잘 익힌 간장게장이나 맛깔스러운 젓갈, 장아찌를 만날 때 “밥도둑”이라고 꼭 한 마디 하고 넘어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라 한들 밥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 밥만 먹을 수는 있어도 반찬만 먹을 수는 없다. 밥이 없으면 한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 p.18 중에서
그런데 1998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구석기 유적지에서 더 오래된 볍씨가 발견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볍씨가 세계 최초의 볍씨로 판명 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쌀농사의 기원을 신석기시대 이전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볍씨의 기록을 무너뜨린 소로리 볍씨는 서울대와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의 과학적 연대추정 결과 약 1만 3000년에서 1만 5000년 전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3년 10월 22일 영국 BBC 방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한국 소로리에서 발견되다”라는 제목으로 그 사건을 보도했다. 이에 따라 벼 재배 기원설에 관한 연구도 새롭게 진행되는 중이다. 그러나 이는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형태로 직접 재배한 흔적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 --- p.29~30 중에서
삼국시대의 쌀 조리법은 이전까지와 달라졌다. 그때까지 쌀을 가루로 하여 죽을 쑤거나 쪄서 먹었다면, 삼국시대에는 솥에다 쌀을 끓여 익히는 조리법이 통용되었다. 현재처럼 밥을 짓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시대의 고분과 벽화 그리고 문헌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밥을 짓는 도구인 ‘정’과 가마솥 ‘부’의 존재다. ‘부’는 크고 우묵하게 생긴 것으로, 지금의 솥과 비슷한 가마솥이다. --- p.41 중에서
우리 민족에게 쌀밥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는 점을 인지한 정부는 결국 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영양학’이라는 과학의 힘을 빌려 쌀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격은 주로 쌀밥에 부여된 ‘귀한 것, 좋은 것’이라는 상징성을 파괴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 이는 쌀밥 편식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전통 식생활문화의 후진성을 비판하고 혼분식의 장점을 예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쌀밥만 먹으면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어 신체장애와 뇌일혈, 고혈압, 위궤양, 당뇨병 같은 질병을 가져오게 된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1975년에 펴낸 초등학교 실과 교사용 지도서에서는 “흰쌀 편식은 체질의 산성화를 초래하고 대뇌 변질증을 일으켜 판단력이 흐려지고 지능이 저하될 우려가 높다”는 내용까지 포함시켰다. 모두 쌀밥에 부여된 기존의 상징성을 파괴하고 쌀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유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p.69~70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쌀이 주식의 자리를 확고히 한 것은 삼국시대다. 쌀이 상류층의 주식으로 위치를 굳힌 것도 이 시대였다. 수많은 곡식 중에서도 쌀이 단연코 최고였던 것은 쌀이 내는 ‘에너지’의 진가를 인식한 탓이다. 곡식의 ‘곡穀’ 자에는 ‘벼 화禾 ’ 자가 들어 있다. 기운과 힘을 나타내는 ‘기氣’ 자에도 ‘쌀 미米 ’ 자가 들어 있다. 쌀은 다른 잡곡에 비해 소화도 잘 되고 실제로 내는 열량도 높은 편이라 쌀밥을 먹었을 때 가장 기운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p.88 중에서
김홍도는 힘든 농민의 노동 모습과 담뱃대를 물고 한가하게 졸고 있는 마름의 모습을 한 장면에 표현했는데, 볏단을 내리치는 소작인의 얼굴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 반타작도 되지 않는 소작료에 대한 비애가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음식은 바로 쌀과 술이다. 적은 양의 쌀이라도 얻기 위해 힘든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소작인들과 그 귀한 쌀로 빚은 술을 한가로이 마시며 졸고 있는 마름의 대비는 바로 쌀을 통한 힘의 대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p.131 중에서
밥하는 행위가 주로 가정의 주부에게 집중되는 것은 한국만의 특성으로 보인다. 이웃나라 중국을 보아도 남성이 요리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동남아시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남성은 필요에 따라 밥 차리는 일을 한다. 그것도 힘들면 아침밥도 밖에서 사 먹는 것으로 해결한다. 우리나라도 이제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밥은 여성이 차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밥 차리기를 직접 하는 젊은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어 반갑지만, 이 꼴을 제일 못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아들의 어머니다. 여자들만 밥 짓는 것이 웬수같이 지겨웠으련만 왜 자신의 아들이 밥 짓는 것은 보아내지 못할까? 밥 짓는 일이 행복한 과정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짓는 밥이건만, 너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 일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어도 행복할 수 없다.--- p.198~199 중에서
물론 현미는 백미에 비해 좋은 영양소가 많다. 그러나 소화흡수율이 백미보다 많이 떨어진다. 특히 현미에는 파이테이트라는 섬유성 성분이 다량 들어 있어 체내에 들어가면 칼슘과 결합하여 우리 몸의 칼슘을 몸 밖으로 끌고 나간다. 따라서 소화에 자신이 있는 건강한 상태라면 현미를 선택하는 것이 좋지만, 나이가 많거나 골다공증이 염려되는 경우라면 현미보다는 백미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 p.284 중에서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저자 주영하|휴머니스트 |2018.01.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목차
프롤로그한식당에서 현지인처럼 식사하는 방법
1장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할까?
2장 왜 양반다리로 앉아서 식사를 할까?
3장 왜 낮은 상에서 식사를 할까?
4장 왜 집집마다 교자상이 있을까?
5장 왜 회식 자리에 명당이 따로 있을까?
6장 왜 그 많던 도자기 식기가 사라졌을까?
7장 왜 밥을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에 담을까?
8장 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할까?
9장 왜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을까?
10장 왜 밥, 국, 반찬을 한꺼번에 먹을까?
11장 왜 식사 후에 꼭 커피를 마실까?
12장 왜 술잔을 돌릴까?
13장 왜 반주를 할까?
에필로그 밥 한번 같이 먹읍시다,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한식당에서 현지인처럼 식사하는 방법
수저를 찾아서 냅킨 위에 놓아라?당신의 음식을 공유하라?오래되지 않은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방식
1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할까?
① 살림집의 형태에 따라 달랐던 식사장소② 18세기 온돌의 일상화와 신발 벗고 식사하기③ 2000년대 이후 좌식에서 입식으로 전환되는 중
2 왜 양반다리로 앉아서 식사를 할까?
① 주거 방식과 생업 방식에 따라 달랐던 식사 자세② 고려 왕실, 등받이 없는 의자를 사용하다③ 퇴계가 제안한 책상다리 자세, 조선의 표준이 되다④ 1970년대, 책상다리가 양반다리로 바뀌다⑤ 다리에 쥐가 났어요
3 왜 낮은 상에서 식사를 할까?
① 식사 자세에 따라 다른 식탁의 형태② 조선 초기부터 유행한 소반③ 조선 후기 남성 가부장의 상징이 된 소반④ 거안제미, 소반을 나르는 규칙
4 왜 집집마다 교자상이 있을까?
① 공자는 소반에, 주자는 높은 식탁에서 식사하다② 교자상의 원형이 된 일본의 나가사키식 ‘탁복’ 식탁③ 20세기 초반 소반·교자상·입식 식탁의 공존④ 2010년대 한국의 아파트에 교자상이 있는 이유
5 왜 회식 자리에 명당이 따로 있을까?
① 나라마다 다른 연회의 좌석 배치 규칙② 조선시대 양반들은 북벽·동벽·서벽 순으로③ 대한제국에서 수용한 서양식 좌석 배치 규칙④ 혼란스러워진 좌석 배치 규칙
6 왜 그 많던 도자기 식기가 사라졌을까?
① 동아시아의 대표 식기, 도자기② 백성의 그릇, 막사기③ 도자기를 닮은 멜라닌 수지 그릇
7 왜 밥을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에 담을까?
① 산업혁명 이전, 서양의 오래된 식기들② 양반의 그릇, 놋그릇③ 1960년대 중반,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의 전성기④ 스텐 밥공기의 규격화⑤ 재생 중인 놋그릇, 그러나…
8 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할까?
① 포크·스푼·나이프, 손, 그리고 젓가락② 조선 후기, 숟가락의 술자루가 달라진 이유③ 19세기 말 외국인이 경험한 숟가락·젓가락 사용기④ 21세에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한국인
9 왜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을까?
① 여러 명이 함께 식사할 때의 상차림 방식② 조선 왕실의 진연·진찬 상차림은 [개별형+시계열형]③ 조선 선비의 일상식사는 [개별형+공간전개형]④ 1980년대 [시계열형] 한식 상차림의 등장과 실패
10 왜 밥·국·반찬을 한꺼번에 먹을까?
① 주식에 따라 다른 상차림과 식사 방식② 조선 최고의 맛, 상추쌈밥③ ‘밥+국+반찬’의 [공간전개형] 상차림이 익숙한 이유④ 21세기 초, 밤의 양이 줄어들면서 생긴 일들
11 왜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실까?
① 19세기 말에야 자리 잡은 디저트의 개념② 1971년, 한국식 후식의 등장③ 198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믹스커피④ 2000년대 믹스커피의 위기와 디저트의 탄생
12 왜 술잔을 돌릴까?
① 오래된 술잔 돌리기의 역사② 조선시대 선비들은 ‘원샷’이 기본③ 술잔 돌리기가 지속되는 이유
13 왜 반주를 할까?
① 술마다 어울리는 안주가 있다② 조선요리옥에서 밥상과 술상이 합쳐지다③ 조선 후기부터 이어져온 반주 습관④ 1970년대 술집의 쇠퇴와 밥집의 술집화
에필로그: 밥 한번 같이 먹읍시다
인간은 ‘함께 식사’ 하는 동물이다?변화 중인 한국인의 ‘함께 식사’ 규칙들?밥 한번 같이 먹읍시다
본문의 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1. 앉고, 담고, 차리고, 먹고, 마시는 것의 역사
―한국인의 식사 방식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담은 최초의 음식문화사 저작
“식사로서의 음식은 일상이지만,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은 인문학이다”라는 생각으로 《음식인문학》을 통해 ‘비판적 음식학’을 제시하고 《식탁 위의 한국사》를 통해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를 조망했던 주영하 교수가 이번에는 최초로 한국인의 ‘식사 방식’을 살피며 그 기원을 추적한다.
이 책은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 앉는 행위부터 디저트 먹기까지 한국인의 식사 과정을 13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핀다.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할까? 왜 양반다리로 앉을까? 왜 낮은 상에서 식사를 할까? 왜 집집마다 교자상이 있을까? 왜 회식 자리에 명당이 따로 있을까? 왜 그 많던 도자기 식기가 사라졌을까? 왜 밥을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에 담을까? 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할까? 왜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을까? 왜 밥·국·반찬을 한꺼번에 먹을까? 왜 식사 후에 꼭 커피를 마실까? 왜 술잔을 돌릴까? 왜 반주를 할까?
한국인에게는 아무렇지 않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고 이상하게만 보이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 외국인 친구와 한식음식점에 함께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받았을 법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13가지 질문은 한국인이라면 모두 익숙한 상황이지만 그 질문에 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기원은 물론이고 언제,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먹게 되었는지 도통 가늠좌 되지 않는다.
주영하 교수는 이 책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주변의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유럽 여러 나라 사람
들의 식사 방식을 우리의 식사 방식과 견주며 비교문화사적 연구 방법으로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살핀다. 더불어 이러한 식사 방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과 변화의 과정을 사회사적 연구로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016년 국내 체류 외국인 204만여 명, 연간 외국인 입국자 1,741만여 명!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이렇게 많은 외국인이 함께 섞여 살았던 적은 없었다. 1980년대만 해도 외국인 중에서 한국음식 이름을 한 가지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 한국음식을 아느냐는 질문을 하면 곧바로 한두 가지 이상 음식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이뿐인가? 심지어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외국인도 있다. …… 한국음식을 만드는 방법에 관해 알려주는 정보는 많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음식을 먹는 방법에 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인터넷 웹사이트에 소개된 한국인의 식사 매너나 예절과 관련된 내용을 읽어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대부분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14~15쪽)
“나는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 형성된 과정을 풀어내기 위해서 엘리아스의 접근법을 따라 사회사의 연구 이론을 채택했다. 사회사는 지난 10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급격하게 이루어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 양상을 반영할 뿐 아니라, 문화·관습·습관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연구 이론이다. 아울러 비교문화의 연구 방법을 통해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 지닌 세계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한국인의 시선에서뿐 아니라 외국인의 시선에서도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30~31쪽)
2.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의 탄탄하고 치밀한 사실(史實) 연구
― 한국인의 식사 방식에 관한 거의 모든 사료를 섭렵한 역작
한국음식의 기원에 비해 식사 방식의 기원을 다룬 책은 턱없이 적다. 기원과 변화의 과정을 추적할 관련된 문헌자료가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식사 방식이라는 게 지역별·국가별 특수성만으로 볼 수 없기에 보편성 속에서 특수성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의 자료를 비교하며 살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주영하 교수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의 실기, 문집 등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단서들을 잇대고, 중국과 일본, 유럽 여러 나라의 사료를 비교하고, 근현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사회경제적 변화와 일상의 면면을 살폈다. 이뿐 아니라 상차림이이나 좌석 배치, 식기와 식탁 등을 보여주는 그림이나 사진까지 활용해 한국인의 식사 방식에 대한 퍼즐을 맞춰나간다.
‘1장 왜 신발을 벗고 방에서 식사를 할까?’를 예를 들어 어떻게 답을 찾아가는지를 살펴보자. 주영하 교수는 유럽, 중국과 달리 조선에 식사 공간인 다이닝룸이 없었던 이유를 ‘꺾음집’ 형태와 온돌에서 찾았다. 각 방과 마루가 연결되어 있고, 신발을 벗고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자리에 고정된 무거운 식탁과 의자 없이도 따뜻한 방 안에서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인의 오래된 좌식 생활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주영하 교수는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살림집 구조와 유럽 근대화 시기의 시민 주택 보급, 중국 명나라 지배층의 살림집 구조와 생활 방식, 고려시대 살림집의 꺾음집 구조, 조선시대 계회도에 그려진 식사 모습, 《성호사설》에 드러난 통구들 온돌의 확산, 조선 숙종 윤증이 지은 꺾음부와 온돌이 갖춰진 ‘논산 명재 고택’의 안채까지 살펴보며 그 근거를 쫓는다. 나아가 오늘날의 변화도 놓치지 않고, 근대화와 도시화에 따라 점차 입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인의 생활 방식도 함께 살핀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의 기원과 변화 과정을 여러 사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추론해 밝히고 있다.
“이 13가지의 식사 방식은 학문적으로 결코 만만한 연구 대상이 아니다. 그와 관련된 문헌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많은 사료를 활용해 주제마다 사실(史實)에 기초해 설명하고자 했으며, 사료 속에 담긴 복선을 찾아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또한 한국인의 식사 방식이 한국인만의 특수한 것인지, 인류 보편의 문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 일본,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식사 방식과 비교해보는 과정도 놓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책은 인류의 식사 방식이라는 전체적인 배경 아래 한국인의 식사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퍼즐처럼 엮어나간 글이라 할 수 있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5~6쪽)
3. 한국인은 언제부터 이렇게 먹었을까?
― 알수록 흥미롭고 놀라운 식사 방식의 역사
18세기 이후 조선의 선비들 가운데 청나라에 다녀오는 이가 많아졌는데, 왜 청나라의 의자를 수용하지 않았을까? 성현의 말과 행동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에게 의자에 앉는 자세인 ‘의좌’는 오래지 않은 때에 생겨난 습관으로 ‘예(禮)’에 어울리는 자세가 아니었다. 주자가 선비가 공부할 때 앉는 자세에 대해 쓴 〈궤자설〉을 퇴계 이황이 해설하면서 ‘책상다리’가 조선시대 선비의 표준 자세로 공인되었다. 영조도 의자에 앉는 것보다 ‘책상다리’ 자세로 앉는 것을 더 편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선비의 표준 자세인 ‘책상다리’는 언제부터 ‘양반다리’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1973년 《동아일보》 기사에 ‘양반다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다. 1970년대 들어 학교나 사무실에서 대부분 높은 책상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하게 되어, 책상다리라는 말이 앉음새를 일컫는 표현으로서의 대표성을 잃어간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쓰던 다리가 긴 소반은 언제, 왜 등장했을까? 온돌의 확산과 부유층이 구리로 만든 식기를 사용한 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온돌 바닥의 열기가 다리가 짧은 소조형 식탁에 전달되어 음식에 영향을 미치고,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 식기는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다리가 긴 소반이 등장했을 것이다. 또 다리가 긴 소반이 등장하자, 식사 자세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레 수저의 손잡이 역시 짧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의 술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술잔 돌리기는 어떨까? 술잔 돌리기는 고대 중국의 술 마시는 예법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의 제사와 풍속 교화를 통해 지속되었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술잔 돌리기는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화시킨다’는 믿음과 더불어 강화된 ‘집단주의’ 의식이 깊이 깔리게 되었지만, 사실은 왕과 신하, 웃어른과 아랫사람이, 주인과 손님 간에 공경과 답례의 의미를 담은 술 마시는 예법이었다.
한국인이 식사 방식이 어디에서 유래했고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날의 방식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사료와 이야기를 통해 흥미롭고 놀라운 식사 방식의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며, 식사를 하면서 문득 떠오르던 다양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4.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오늘날 한국인의 ‘식사 방식’
― 식사 방식에 깃들어 있는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
오늘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서양식 식사 에티켓도 알고 보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듯이, 한국의 식사 방식도 마찬가지다. 식탁에 앉아 밥과 국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공유하는 오늘날의 식사 방식은 100년 전 한반도에 살며 소반에 차려진 밥상을 따로 받던 양반 남성에게는 매우 어색한 일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겪은 식민지배와 전쟁,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한국인의 식사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세상을 담은 밥 한 그릇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밥 저자 송기호, 주영하, 문성희, 이명원|궁리 |2013.01
송기호-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마산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1998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대학원 민족학·사회학 대학에서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로 민족학(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담당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7~2008년 일본 가고시마대학교 심층문화학과에서, 2017~2018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아시아학과에서 1년간 방문교수로 지냈다.
저서 『음식전쟁 문화전쟁』,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음식인문학』, 『식탁 위의 한국사』,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밥상을 차리다』,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았나』 등은 주로 한국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살핀 책이다. 또한 저서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 『차폰 잔폰 짬뽕』, 『맛있는 세계사』와 역서 『중국 음식 문화사』, 그리고 감수하고 특집글을 쓴 『밀크의 지구사』, 『아이스크림의 지구사』, 『빵의 지구사』, 『위스키의 지구사』, 『차의 지구사』, 『초콜릿의 지구사』, 『치즈의 지구사』, 『커리의 지구사』, 『피자의 지구사』, 『향신료의 지구사』 등이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음식의 역사와 문화가 지닌 세계사적 맥락을 살피는 연구도 꾸준히 하고 있다.|||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농업분과위원으로 외교·통상·농업 분야에서 정부 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일본수출규제 정책자문단 위원, 공정경제 추진단 위원, 개성공단협의회 자문변호사로 고용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중소 중견 기업의 활로를 찾고 있다. 참여정부 시기 남북농업협력의 새 모델을 성공시킨 통일농수산사업단의 창립에 참여하여 감사를 맡았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송파을 지역위원장과 통상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원회 위원, 농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통상과 농업 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송파주거복지센터 법률지원단장, 위례시민연대 자영업 법률학교 교장, 송파사회적경제 네트워크 자문위원, 송파청소년공동체 ‘즐거운 家’ 운영위원, 송파구청 아동복지심의위원 등 행복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 속에서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호주 퀸즈랜드 대학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공부하였다. 지은 책으로 『곱창을 위한 변론』, 『한미 FTA 핸드북』, 『맛있는 식품법 혁명』, 『송기호의 밥과 법』 등이 있다.|||자연 요리 연구가이면서 세계적인 라자요가 명상학교인 브라마쿠마리스 학생이며, 단식 캠프 강사이다. 20여 년간 요리 학원 원장으로 살면서 맛있고 화려한 요리를 만들고 멋진 요리상을 차리는 일에 몰두해왔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마트가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과 조리 과정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후 부산의 철마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텃밭을 가꾸며, 햇볕과 바람에 말린 곡류와 채소로 생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일 년에 한 번씩 '행복한 식탁이 있는 산속 음악회'를 열고 겨울이면 뜨겁게 달군 돌멩이를 끼고 앉아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입는 등 단순 소박한 삶을 살면서, 요가 수련과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피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거친 밥과 푸성귀, 생식가루를 먹고 사는 동안 점차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생명을 살리는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들뫼자연음식연구소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자연음식 연구가로 활동해왔다. 여러 가지 들풀을 발효한 산야초 차와 발효 식품, 자연 건조 생식은 한국산업기술평가원에서 기술 평가를 통해 신기술 보육 사업으로 인정받았다. 지금은 괴산의 생태 공동체 ‘미루마을’에 터를 잡고 ‘평화가 깃든 밥상’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파주 헤이리에서도 매주 ‘평화가 깃든 밥상’ 요리 강좌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밥상을 선사하고 있다.
|||1970년 서울 출생.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첫 연구서 『타는 혀』에서 국문학계의 대가라 할 김윤식 교수의 표절 문제를 제기, '사제 카르텔 논쟁'과 '표절 시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개인의 실존과 문학의 사회적 의제를 동시에 성찰한 에세이비평『해독』을 통해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라는 글쓰기의 양날을 보여주었다. 2003년 그 동안 문단을 강타한 문학권력 논쟁, 주례사 비평 논쟁, 등단 제도와 문학상 논쟁, 표절 논쟁 등에 참여해 벌였던 글들을 심도 있게 정리한 『파문: 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을 펴내 주목을 받았다. 2004년 '한국의 미래 열어갈 100인'('한겨레신문')으로 선정되었으며, '한겨레', '국제신문' 등 주요 신문과 잡지 등의 고정칼럼란에 기고하였다.
이후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종언 이후』 『말과 사람』 등의 책을 출간했다. [비평과 전망]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의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현재 '지행(知行)네트워크'의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대학과 도서관 등에서 문학사와 비평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왜곡된 의미가 아니라면, 그는 스스로 리버럴리스트liberalist라 불리길 원한다. 그것은 단지 자유주의자로서만이 아닌, 편견 없는 세상과 스스럼없는 소통이 가능한 문학의 세계를 꿈꾸는 자의, 거대하지만 소박한 꿈이다. |||전 GMO반대 생명운동연대 사무국장. 1988년부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국내 농업 문제에 천착해왔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서울환경연합, 생협전국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에서 정책위원 등의 일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을 상대로 한 강의를 통해 GMO 의 심각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힘쓰고 있으며 GMO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TV 토론 패널이나 전문가 인터뷰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10년 전부터 생명공학, 특히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향후 농업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GMO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왔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로스쿨에서 1년 간 공부한 후 귀국해 GMO 반대 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박사학위 논문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규제할 것인가”에 관하여 썼다.
유전자 조작 종자, 식량 위기 등 총체적 문제의 대안으로서 ‘농업 살리기’를 고민하다가 최근에는 생협의 대안으로 농민 중심 직거래를 위한 일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 법대 및 동 대학원 졸업. 현재 원광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강사.|||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감옥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과 평화학을 연구했다.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와 ‘비폭력평화물결’ 대표로도 일했다. 지금은 길담서원 대표이다. |||의정부 발곡고에서 머리 큰 아이들과 말글살이 공부하며 지내는 교사이다. 어머니를 닮아 가리는 음식이 많고, 특히 두 눈 달린 짐승의 살점을 잘 먹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북한산자락 인수동에서 생명과 평화의 삶을 소망하는 아름다운 친구들과 마을공동체(http://cafe.daum.net/sooyucom)를 이루며 지내고 있다.
목차
머리말
1. 밥에 숨겨진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_주영하
밥이란 무엇인가
왜 밥+국+반찬으로 먹을까?
한국식 패스트푸드, 비빔밥과 국밥
입식 문화권, 분식 문화권
벼가 좋아하는 기후
조선 후기에 모내기 금지령을 내린 이유
쌀밥을 먹기 위한 욕구가 역사를 만들었다
일본쌀 품종, 조선에 건너오다
해방 이후 쌀의 역사
한국적인 것의 오해와 진실
당신이 생각하는 착한 밥과 나쁜 밥
2. 식량자급도 26%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_송기호
26% VS 74%
식량자급도 26%가 의미하는 것
우리의 입맛을 길들이는 식품법
우리를 위한, 우리에 의한 먹을거리가 없다?
내려가는 식량자급도를 잡아라
착한 농부, 착한 소비자
3. 자연에 밥을 주듯, 내 몸에 밥을 주자_문성희
나는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을까?
나를 만들어준 자연에 감사합니다
내가 먹은 것이 바로 나!
왜 신토불이, 로컬푸드인가?
껍질, 뿌리, 씨앗의 생명력
붉은색, 황색, 흰색, 검정색, 녹색! 다섯 가지 오방색이 살아 있는 음식
자연과 생명을 살리는 밥상
4. 육체를 살찌우는 밥, 영혼을 살찌우는 밥_이명원
조선, 일본, 중국의 근대문학이 남긴 것
생존에 결박되어 있는 사람들
루쉰, ‘영혼 없는 몸’을 보다
반대보다 무서운 침묵
희망을 말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밥을 위해 피를 파는 아버지, 허삼관 이야기
자기보존을 위한 피, 타인을 위한 피
여전히 끝나지 않는 밥 이야기
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밥에 관한 철학적 성찰_박성준
평화의 밥 철학
물질의 의미를 넘어선 밥의 의미, 전태일의 인간선언
이 사람을 보라, 작은 예수 전태일
창자로 생각하는 사랑, 케테 콜비츠와 아이들
철학소년의 어린 시절
밥과 플라톤, 밥과 마르크스
테카르트, 오르테가, 철학소년
6. 모두가 잘 먹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_정대영
기아란 무엇일까
먹을 곡식이 줄어들고 있다
불안한 정치 상황, 심각해지는 기아 문제
타인의 고통에 미소 짓는 자들, 거대 농식품기업
모든 부조리의 근원, 신자유주의
북한의 기아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
대안을 찾아서
타인의 아픔을 상상하기
아는 대로, 깨달은 대로 살기
7. 내가 선택한 밥상이 세상을 바꾼다면?_김은진
바로 이거야, 농업!
밥+채소+콩 : 전통적인 우리 밥상
고기와 우유를 먹어야 키가 크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자각하다
전 세계가 미국과 거래하게 만드는 가트 체제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 그 뒤에 숨은 함정
농산품, 자유무역시장을 ‘자유롭게’ 오가다
가공식품 전성시대
기업이 지배하는 우리 집 식탁
식품첨가물의 미션 ① : 유통기한을 늘려라!
식품첨가물의 미션 ② : 소비자의 눈과 코와 혀를 유혹해라!
우리가 몰랐던 식품첨가물의 진실
가공식품 줄이고 발효식품 먹기
껍질째 먹기
잡곡 먹기
사계절 자연이 준 밥상
세상을 바꾸는 선택
출판사 서평
한 그릇 밥에는 자연과 이웃과 세상이 들어 있다!
‘밥’이라는 한 글자 뒤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세상 이야기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말, ‘엄마’라는 말은 전 세계가 거의 비슷하다. 중국어도 러시아어도 독일어도 영어도 마마(mama)다. 이게 밥 달라는, 배고프다는 소리다. 인간의 제1조건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일까?
불완전하게 태어나는 인간은 이렇듯 내 입에 밥을 넣어주는 부모의 노동과 보살핌으로 쑥쑥 자라나고 스스로 제 몫의 밥값을 하고자 분투한다. 생활인이 되어 누군가의 밥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다 밥그릇 싸움을 벌이기도 하며, 나와 가족의 밥뿐만 아니라 이웃의 밥까지 챙기는 나눔의 삶을 실천하기도 한다. 내 안의 생명을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키우는 씨앗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생존의 밥, 사랑과 희생의 밥, 노동의 밥, 권력다툼의 밥, 나눔의 밥, 살림과 자연의 밥……. ‘밥’이라는 한 글자에는 먹고사는 존재로서의 인간 서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인문학 책방이자 문화놀이터인 길담서원에서 기획한 이 책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조건, ‘먹는다’는 행위를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 여러 각도에서 성찰한 결과물이다. ‘일’, ‘몸’, ‘돈’, ‘집’ 편에 이어 출간되는 다섯 번째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강연집이다. 주영하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국제통상전문가 송기호 변호사, 자연요리가 문성희, 문학평론가 이명원, 길담서원 대표 박성준, 국어교사 정대영,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모두 일곱 강연자가 각자의 음식 DNA가 다르듯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이야깃거리를 들고 청소년을 만났다.
먹기 위한 욕구가 역사를 만들었다!
이 책의 시작을 여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는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밥상을 살피며 음식에 깃들어 있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한다. 한국인의 밥상은 왜 밥+국+반찬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한국인은 언제부터 쌀밥을 주식으로 먹었을까? 쌀밥이 주식인 문화권은 중국, 일본, 타이완, 인도 등 여러 나라가 있으나 밥과 반찬을 한입에 넣고 음식물쓰레기처럼 먹는 것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인뿐이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가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경험을 반영하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주영하 교수는 조선시대 후기부터, 식민지시기, 해방 이후, 경제성장기, 오늘날 세계화 시대까지를 빠르게 훑으며 마치 생동하는 생명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한국 음식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식량자급률 26%가 왜 문제인가?
농업법과 FTA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식량자급률과 식량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수출?수입으로 유통되는 자동차는 전 세계 생산량 중 가운데 50% 정도다. 반면 전 세계 쌀 생산량 가운데 국제간에 유통되는 쌀은 7%에 그친다. “먹을거리는 한 사회 공동체가 유지되는 필수조건이기”에 “어느 나라도 자국민을 먼저 먹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만 비로소 해외에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먹을거리의 74%를 해외에서 공급받고 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중국산 멜라민 우유,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 농수산물같이 전 세계에 일어나는 먹을거리 위험에 우리 사회가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농업 통상법을 공부하고 농민들의 권익 보호에 힘쓰고 있는 송기호 변호사에게서 식품법과 국제무역규범, 생활협동조합의 중요성에 대해 전해 듣는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음식에 담아내는 자연요리 연구가 문성희가 자신의 요리 철학을 청소년들에게 들려준다. 그가 수입식품을 먹지 않는 것은 국수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수입농산물은 유통하는 과정에서 가공을 하거나 방부제를 뿌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졌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인간만의 왕국이 아니라 자연에 깃든 수많은 생명체의 왕국”이기 때문에 화학첨가물이 든 음식보다는 자연식 요리를 먹는 것이 나에게 생명을 준 자연에 보답하는 길이다. 누구는 햄버거를, 누구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것은 오랫동안 즐겨 먹었던 음식을 몸이 기억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해로운 음식을 멀리하고 싶으면 “단식을 통해 몸을 깨끗하게 해주고 세포가 기억하고 있는 나쁜 습관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육체에 밥이 필요하듯, 영혼에도 밥이 필요하다
‘먹고사니즘’에 빠진 대중은 무엇을 보지 못하는가? 나 살기 위해서 남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 사회인가? 문학평론가 이명원이 루쉰의 단편소설 [아Q정전], [광인일기], [고향]과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통해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사는 삶, 자기보존을 넘어 공동체와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루쉰이 활동한 시기는 근대 일본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맹아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당시 중국은 일본의 반식민지로 전락하여 열패감과 자기비하에 빠져 있었으며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아귀다툼뿐인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었고 중국인의 영혼과 정신을 살찌우는 문학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간이 흘러 현재 활동중인 소설가 위화는 밥을 먹기 위해 피를 파는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타인의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며 끝까지 함께 살아남는 중국 민중의 생명력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우리 사회 역시 양극화와 생존의 문제가 심각하다. “어떤 사람은 한 그릇의 밥을 구할 수 없어 고통에 빠져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산처럼 밥을 쌓아놓고 거대한 탐욕의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문학 작품이 우리에게 가리키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응시해본다.
모든 사람들 입에 밥이 골고루 들어가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다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노동과 밥을 짓는 손길 덕분이다. 부모님이 일을 중단하면 우리 집에 밥과 평화가 없어진다. 밥은 노동의 문제라는 것에 주목하여 전태일 정신을 함께 나눈다. 40여 년 전,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과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을 했다.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평화시장이라는 이름을 배반하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어린 여공?노동자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평화학자이자 길담서원 대표인 박성준은 바로 이 ‘평화’라는 열쇳말로 밥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평화는 한자로 平和라고 쓴다. 和는 ‘벼 화’ 자인 禾와 ‘입 구’자인 口가 만나 만들어졌다. 벼는 쌀이 되니까 쌀[禾]이 입[口]으로 들어가는 和다. 그러나 나만 먹고 다른 사람이 다 굶고 있다면 그것이 평화일까? 平은 ‘골고루’, ‘고르게 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세상은 모든 사람들 입에 밥이 골고루 들어가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밥의 문제가 예전보다는 많이 해결되었으므로 “밥만큼 절실한 그 무언가를 골고루 나눌 수 있을 때 평화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제는 밥의 자리에 일자리와 집, 학교와 의료혜택 등의 문제도 함께 올려놓고 고민해야 한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한다는 인류가 어쩌다 기아 문제를 겪게 된 것일까? 발곡고등학교 국어교사 정대영이 세계의 빈곤과 기아 문제를 일으키는 정치경제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함께 나눈다. 육식 인구의 증가로 가축 사료 생산에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곡물, 국민의 식의주 문제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관심 있어 하는 부조리한 국가 지도자들, 전 세계 시장질서를 쥐락펴락하며 폭리를 취하는 거대 농식품기업 등이 먹을거리가 남아도는 세상에서 여전히 굶주림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이다. 특히 몬산토, 카길, 맥도날드, 월마트 같은 초국적인 거대 농식품기업이 몸집을 부풀리는 경영 전략을 집중하여 살펴본다. 이들은 전 세계 농부들이 자신들이 만든 한두 품종의 종자만을 대량생산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소규모 가족농과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정대영은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지역 단위의 생산 체계와 자기 땅에 뿌리 내리는 로컬 리더, 타인의 아픔을 상상하는 능력 등을 대안책으로 내놓는다.
내가 선택한 밥상이 세상을 바꾼다
원광대학교 법학대학원 김은진 교수가 GATT, WTO, FTA의 핵심인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의 맹점에 대해 설명한다. 왜 GATT, WTO, FTA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선진국은 더 잘살게, 개발도상국은 더 살기 어렵게 만드는지 그 불평등한 무역구조에 대해 살펴본다. WTO의 출범으로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 수입 농축수산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밥상의 육류 중심, 가공식품 위주의 밥상으로 급격하게 바뀐 과정도 상세히 알아본다. 식품첨가물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일상에서 건강한 밥상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팁도 함께 전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내 몸은 물론 세상을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입 농축수산물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수입 농축수산물 대신 우리 땅에서 자란 제철음식을 사먹는 것은 훨씬 쉽다. 내가 선택한 밥상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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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폰 잔폰 짬뽕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저자 주영하|사계절 |2009.10
책속으로
짬뽕은 어느 나라 음식일까?
1910년 조선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이후, 조선에 살던 화교들은 일본 본국에 살고 있던 화교들과 같은 정치경제적 영역에 포섭되었다. 더욱이 일제가 조선을 교두보로 중국을 침략할 준비를 하는 동안, 조차지였던 상하이는 나가사키를 통해서 일본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조선의 화교와 일본의 화교는 1945년까지 일제라는 동일한 정치경제적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중국식당에도 짬뽕과 우동, 다쿠앙이 나오고,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시후’라는 중국식당에서도 다쿠앙이 무료로 나온다. 심지어 한국식 자장면이 나가사키의 중국식당에서 판매된다. 자장면은 분명히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화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들이 나가사키의 화교들과 연결되면서 한국식 자장면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대신에 잔폰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 모두가 일제 아래에서 한반도와 일본의 화교가 공생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38
매운맛의 세계화
오늘날 한국인이 소비하는 매운맛은 단지 한국 고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와 함께 ‘글로벌global’한 핫소스의 매운맛도 침투했다. 서울 무교동 낙지볶음과 같이 196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매운 음식에도, 그리고 그전에는 결코 맵지 않게 먹던 음식인 통닭이나 곱창 등에도 핫소스가 들어간다. 오늘날 전 세계는 하나의 식품 소비권에 편입되어 하나의 시장바구니를 이용한다. 그것이 한국 고추이든 아니면 한국 김치이든 아니면 쓰촨 음식이든 일본 음식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식품 소비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5년 사이에 일본과 한국에서 유행한 매운맛은 분명히 칠리페퍼를 위주로 한 핫소스의 매운맛을 마케팅하는 세계적 유통에 포섭된 결과다. 92
부유해진 중국, 초라해진 식탁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개인적인 생산과 판매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생겨났다. 이것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용어를 만들어 냈지만, 중국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1996~1997년 쓰촨성에서 현지 조사를 할 때, 내게 ‘마오 주석(毛主席)’ 때가 지금보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차별이 없어서 좋았다는 말을 들려준 농민들이 의외로 많았던 이유도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었다.
한국의 중국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는 술 중 하나로 ‘얼궈터우(二鍋頭)’라는 가오량주가 있다. …… 이 술을 인민의 술이라고 생각한 마오쩌둥은 가격을 작은 병 하나에 1위안을 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비록 쓰촨과 구이저우에서 생산되는 고급 가오량주도 있지만, 그것에 못지않은 맛을 내는 얼궈터우는 베이징에서는 ‘인민의 술’이었다. 109
제주도에는 제주도 음식이 없다?
‘똥박사’ 오영주 교수는 돼지 사육이 늘면서 한림 앞바다가 돼지똥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에 걱정을 많이 한다. 심지어 몇몇 학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제주도 똥돼지의 생태적 자율 시스템은 이제 제주도에서 볼 수 없다. 많은 집들이 새마을운동을 통해 재래식 화장실을 없앴고, 아울러 1970년대 감귤 판매로 수입이 증가하면서 현대식 가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를 사람이 먹고, 다시 사람의 똥을 먹는 제주도의 똥돼지는 더이상 제주도에 없다. 지금은 단지 제주도에서 사육되었다는 사실만을 앞세우는 전문적인 돈육업 공장의 제주 돼지가 있을 뿐이다. 제주 음식을 사랑하는 오영주 교수의 고민 역시 존재하지 않는 똥돼지를 상표로만 사용하고, 실제로는 공장에서 돼지가 생산된다는 사실에 있다. 193
사탕수수가 만든 지옥, 아마미 군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지역 농업 시스템은 일찌감치 붕괴되었다. 아마미 군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에만 기대어서 살아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동하는 물자는 이들의 음식 생활을 더욱 불균형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마미 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 차례의 식민지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류큐국과 사쓰마번, 그리고 미군정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마미 군도 사람들이 아직도 음식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더욱이 지역 농업 시스템은 지난 400여 년 동안 계속된 사탕수수 위주의 농업으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듯 보인다.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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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세계사 음식, 저자 주영하|소와당 |2011.02
인류 역사 1만 년을 가득 채운 그 달콤 쌉싸래한 이야기
목차
맛있는 여행에 앞서
01. 빵, 최초의 문명이 만들어낸 음식
역사 속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
02. 치즈, 로마 군대와 함께 지중해를 장악한 음식
역사 속으로- 고대 서양 최대의 제국, 로마 제국
03. 국수,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서 들어온 음식
역사 속으로- 동과 서의 만남, 실크로드
04. 소시지, 중세 유럽의 농민 음식
역사 속으로- 중세 농노의 고뇌, 유럽의 봉건제도
05. 사탕, 심자군 전쟁으로 유럽에 전해진 음식
역사 속으로- 성전인가 학살인가, 십자군 전쟁
06. 피자, 신대륙 아메리카의 토마토가 완성한 음식
역사 속으로- 신대륙을 찾아서, 대항해 시대
07. 케밥, 오스만이 퍼뜨린 음식
역사 속으로- 가장 길고 광대했던 제국의 역사, 오스만 제국
08. 초콜릿, 산업혁명의 과학이 만들어 낸 음식
역사 속으로- 전 세계를 뒤흔든 영국의 산업혁명
09. 커리,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로 탄생한 음식
역사 속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
10. 햄버거, 20세기 미국의 힘이 만들어 낸 음식
역사 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 그 속에서 성장한 미국
맛있는 여행을 마치며
도움 받은 자료
세계사 줄거리
출판사 서평
식탁 위에 펼쳐진 세계의 역사
역사를 공부할 때 사람들은 으레 교과서와 지도, 유적과 유물 사진을 펼친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생명을 잃지 않고 파닥이는 새로운 역사의 지도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식탁이다. 향신료 무역로를 찾아 목숨을 걸고 항로를 개척한 유럽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향신료가 역사적 의의를 가진 생생한 유물임에 그 누가 반박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 곁에서 여전히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며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변해 가는 음식, 그 음식만큼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증거물이 또 있을까?
≪맛있는 세계사≫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열 가지 음식으로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는 역사책이다. 이 책은 국가, 왕조, 인물, 사건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역사를 보는 새로운 창을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열 가지 음식들이 지나 온 기나긴 시간을 되새기는 동안 독자는 음식이야말로 인류 역사 1만 년을 오롯이 담고 있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주요 특장점
1> 음식, 세계사를 움직여 온 단 한 가지 힘!
뭐니뭐니 해도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 음식이 있는 곳에 인류가 있고 역사가 있다. 인류 최초 문명 메소포타미아의 빵, 동과 서의 기적같은 만남으로 만들어진 실크로드의 국수, 산업혁명의 과학이 만들어 낸 초콜릿, 미국의 시대 20세기의 햄버거까지 인류사의 대 사건에는 첫째로 음식이 있었다.
2> 음식, 살아 있는 역사
빵은 1만 년 전부터 만들어진 음식이다. 치즈는 로마 군대의 힘이었고, 소시지에는 유럽 중세 농민의 눈물이 들어 있다. 사탕은 십자군전쟁, 케밥은 오스만 제국의 유산이다. 머나먼 바다를 건너, 기나긴 시간을 지나 세계사에 기록된 음식,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음식 중에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음식은 없다.
3> 음식, 국경 없는 세계인의 합작품
소시지는 유럽에서 처음 만들었을까? 아니다. 중앙아시아다. 하지만 소시지를 넣은 핫도그는 미국의 작품이다. 피자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판에 신대륙의 토마토가 얹어지고 거대한 마케팅의 힘을 가진 미국이 세계에 시장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커리는 인도, 영국, 일본의 합작품이다. 수많은 전쟁과 대립도 있었지만, 결국 인류는 서로의 덕분에 맛있게 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음식이 증언하는 세계사의 또다른 관점일 것이다.
4> 본격 Food Study의 서막
음식학, 혹은 음식사라고 번역되는 Food Study는 세계사의 주요 학문 분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수많은 연구소에서 연구 성과들을 내놓고 있지만, 국내 저자에 의해서 한국 음식사를 넘어 세계음식사에 본격적으로 접근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식 세계화 논의가 활발한 지금, 인문교양서로서의 Food Study의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로마 황제 네로는 진짜 피자를 먹지 못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토마토소스가 위에 올라간 피자만이 진짜 피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스가 올라가지 않은 빵 자체를 놓고 보면, 그 원조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하여 지중해 연안에 살던 사람들은 피자의 빵 모양을 닮은 빵을 주식으로 먹었습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에는 황제나 시민, 그리고 노예를 가리지 않고 모든 신분에서 이 빵을 주식으로 여겼습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의 빵은 오늘날 피자의 모양과 너무나 흡사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했던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 네로도 이 빵을 매일같이 먹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6장_90~91쪽)
이탈리아의 왕비 마르게리타를 위한 피자, 마르게리타
마르게리타 피자는 이탈리아 왕국의 제2대 국왕인 움베르토 1세의 왕비인 마르게리타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1889년에 나폴리의 유명 피자 전문점의 주인 돈 라파엘 에스폰트가 이탈리아 국기를 본떠서 토마토소스로 빨간색, 바질로 녹색, 모차렐라 치즈로 흰색을 내서 만든 피자를 국왕 부부에게 바쳤고, 그로부터 마르게리타 피자가 탄생하였습니다. 나폴리 피자에는 이탈리아의 근대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셈이지요. (6장_94쪽)
에스파냐 공주의 혼수품, 초코라테
한번 초코라테를 맛본 여성들은 그 맛에 중독되어 끊지 못했습니다.에스파냐의 공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루이13세의 부인인 에스파냐의 공주 안 도트리슈는 프랑스 파리로 시집을 가면서 초코라테를 가지고 갔습니다. 루이13세의 아들 루이14세도 1661년에 에스파냐의 공주마리아 테레사 도트리슈를 왕비로 맞이했습니다. 마리아 테레사 역시 초코라테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예 초코라테를 만드는 도구와 잔, 그리고 요리사까지 대동하여 파리로 갔습니다.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은 초코라테에 금방 중독되었지요. 초코라테는 급속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후 초코라테는 서유럽의 귀족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8장_121~122쪽)
기근 없는 세계와 올바른 음식문화를 위하여, 슬로푸드 운동
1986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에스파냐 광장에 맥도널드 매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 광경에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양 문명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중심지에 미국을 대표하는 맥도널드 매장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인 브라에 살던 카를로 페트리니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친구들과 힘을 합쳐서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여 대량 생산을 하는 패스트푸드를 반대하기 위해서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주요내용>
1. 빵, 최초의 문명이 만들어 낸 음식
인류 최초의 문명 메소포타미아에서 밀이 재배되고, 기원전 이집트에서 빵이 시작되었다. 1만 년의 역사 빵, 고대 문명을 밝히다.
02. 치즈, 로마 군대와 함께 지중해를 장악한 음식
로마에는 최고의 군대 레기온이 있었고 레기온에게는 최고의 식량 치즈가있었다. 치즈, 지중해를 제패한 로마 제국의 비밀을 밝히다.
03. 국수,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들어온 음식
실크로드를 따라 서아시아에서 전래된 밀가루. 그리고 중국에서 꽃핀 국수. 동서 교류 세계사의 시작 실크로드, 그 길고 장엄한 길 위에 국수가있다.
04. 소시지, 중세 유럽의 농민 음식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처음 만든 소시지. 유럽에서 농민의 음식이 되고 지금은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다. 그 길고 긴 방랑의 역사를 보다.
05. 사탕,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에 전해진 음식
사탕은 원래 아랍인의 명절 음식이었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사탕. 유럽을 매혹시킨 달콤함 속을 감춰진 전쟁과 흑인 노예의 잔혹한 역사를 보다.
06. 피자, 신대륙 아메리카의 토마토가 완성한 음식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발견한 토마토, 오늘날의 이탈리아 피자를 완성시키다. 대항해 시대와 신대륙, 그리고 세계사의 새로운 시작을 밝히다.
07. 케밥, 오스만 제국이 퍼뜨린 음식
유목민이 시작해 터키 대표 음식이 된 케밥, 오스만 제국과 함께 세계로 뻗어나가다. 세계사에서 가장 오래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밝히다.
08. 초콜릿, 산업혁명의 과학이 만들어 낸 음식
남아메리카의 초콜릿 음료는 대항해 시대에 유럽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600년 뒤, 세계로 퍼져 나간 초콜릿. 초콜릿을 통해 세계를 뒤흔든 산업혁명을 보다.
09. 커리,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로 탄생한 음식
원래 인도의 소스였던 커리,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분말로 개량되고 일본을 통해 한국에 ‘카레’로 전해지다. 커리를 따라 대영 제국과 19세기 문명교류사를 보다.
10. 햄버거, 20세기 미국의 힘이 만들어 낸 음식
미국에서 태어난 햄버거는 한 세기 만에 전 세계인의 음식이 되었다. 햄버거를 세계 음식으로 만든 2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초 강대국이 된 미국의 역사를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