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로 산다는 것
미아로 산다는 것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저자 박노자|한겨레출판사 |2020.11
박노자-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두 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화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비서양'식의 이분법적 인식 속에 좀 더 원어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에 가위를 들이대는 부모들이나 '영어공용화'가 식자층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사회는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후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미국과 유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미래로 여기는 자세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라 일갈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선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만들어낸 곳이 어디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시각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근작으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리얼 진보』(공저)가 있다.
서문 | 미아의 단상
1장 편안함의 대가
최악의 독약, 권력 | 떠나온 나라들이 남긴 환상통 | 나의 집은 어디인가
중독론 | 덕후라는 운명 | 도대체 술을 왜 마시는가 | 탈남脫南이라는 선택
2장 남아 있는 상처
내면의 풍경 | 공부의 의미 | 출산율 제로 사회 | 한국인 되기 | 가족의 종말
섹스의 실종 | 그들은 바보인가 | 추태의 수출
3장 한국, 급級의 사회
급級의 사회 | 죽음의 등급 | 굿바이, 서울공화국 | 70퍼센트짜리 국민
내가 낙관하는 이유 | 영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자기계발서 전성시대
전향의 나라 | 공적인 것을 지키지 못할 때 | 어느 20대가 꿈꾸는 세상
괴물을 낳는 피라미드 | 존엄할 권리 | 탈脫학벌, 완전하고도 철저한 파괴
4장 과거의 유령들
트라우마 해결의 전제조건 | 일본에 대한 기억의 지형 | 우리의 거울
과거가 돌아온다 | 세계사적 맥락에서 역사 보기 | 혁명의 조건 | 그래도 한국은
어떤 통일인가 | 폭력, 이 세계의 공통분모 | 상류층의 암호
5장 전쟁이자 어머니인 세계
질투의 힘 | 영구적인 전쟁 | 진실의 순간 | 개인의 범위 | 두려움의 내면
국가, 사람을 죽인다 | 악몽에서 깨어나려면 | 누구에게는 전쟁이지만 누구에게는 어머니다
아주 커다란 퇴보 | 강도들의 세계
출판사 서평
한국, 서열과 급의 사회
저자는 한국을 “급(級)의 사회”로 규정한다. 어느 사회든 서열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서열은 그냥 수직적인 직선”이고 “노르웨이에 서열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서열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대가 사는 거주지의 크기, 학벌, 직업을 기준으로 관계의 친소(親疏)와 존대의 정도를 결정한다. 우리 사회의 급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가난한 노인,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이름 없는 단신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다.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무소 직원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잠긴 문을 열지 않았다. 그 결과 외국인 노동자 열 명이 화재로 사망했고, 한국 정부는 어떤 사과나 약속도 없이 1인당 1억 원을 유가족에게 보상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2018년 한국 노동연구원이 20~50대 직장인 2,500명을 조사한 결과 66.5퍼센트가 지난 5년 동안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직장 생활 중에 폭언을 한두 번 이상 들은 사람은 열 명 중 아홉 명이고, 폭력을 경험한 사람도 12~17퍼센트에 달했다.
새로운 가난, 관계 맺기 불능, 사색의 증발, 타자 혐오…
불안과 가난, 고독의 무게를 감당하며
미아 아닌 미아로 떠도는 시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지만, 노르웨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저자는 자신이 왜 탈로(脫露, 탈러시아)와 탈남(脫南)을 선택했는지 돌아보며,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담담히 서술한다. 더 이상 “갑질이 일상화된 한국 대학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교수님들이 벌이는 추태들”과 “조교들이 그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데 해방감을 느끼지만, 모어로 말하고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2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내밀한 곳, 즉 가족 질서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은 “산업화된 국가 가운데 가장 반여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3퍼센트에 불과하고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난 남성들”에게 왜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지” 묻는다.
3장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를 “급의 사회”로 규정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의 존엄할 권리를 절실하게 요구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는 가구당 평균 6.5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부동산의 절반을 소유하지만, 47퍼센트는 집 없이 월세와 전세를 전전한다. 한 사람이 국내총생산 19퍼센트를 차지하는 대형 기업을 세습하고,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를 세습하고, 부동산을 세습한다.
4장에서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한국 사회가 겪은 상처를 톺아본다. 저자는 “과거 청산은 예방 접종”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 청산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이나 집단의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원이 점점 커지듯이 ‘나’의 자리에서 시작된 사유가 5장에서 지구적 차원에 이른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질투의 감정을 신자유주의와 연결하고, 전쟁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휘발유와 자동차에 비유한다. 저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겪는 모든 사회가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불평등과 격차이다. 모든 나라에서 공공 부문 종사자, 대기업 직접 피고용자들은 코로나19로 큰 불이익을 보지 않은 반면, 서비스 부문과 유통 부문의 영세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속담에 “Кому война, кому мать родна”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전쟁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어머니 같다는 말입니다. 즉 전쟁은 누구에게는 그야말로 참사일 뿐이지만, 누구에게는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필요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이야기죠. 자본주의적 성장은 늘 전장에서의 살상을 포함한 각종 참극을 기반으로 합니다.”_239쪽
변화는 안으로부터 온다. 저자는 이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에서 혁명은 결국 나와 우리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을 “공감과 연대, 협력”을 통해서 지어야 한다.
책속으로
“저는 가끔 제 삶을 돌이켜볼 때면 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미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인간이 군중 동물인 만큼 그가 속해온 군중의 ‘문화’ 역시 인간에게 집이 됩니다. 저는, 제가 한때 태생적으로 흡수한 문화를 저의 물리적인 자녀에게도, 저의 제도적 자녀, 즉 학생들에게도 전해줄 수 없습니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미아’로 산다는 게 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많은 20대 한국인들이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를 중소기업에 다니고, 고시원, 원룸,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장시간 노동으로 ‘연애’ 같은 장기적 관계를 유지할 에너지마저 갖지 못합니다. 그들은 뿌리 뽑힌 채 그 어떤 보장도 없이 ‘액체 근대’의 노도를 혼자 몸으로 헤엄쳐 보이지 않는 육지를 찾아야 합니다.”_p.7~9
오늘날은 '착취'와 함께 '소외'가새로운 모습의 무산자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의 핵심이다 _.p9
반면 한국에 가끔 들어갈 때면 뭔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느낌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주 실감나게 일체감을 느끼게 되죠. 그것도 저절로 말이죠. 물론 일체감을 느끼는 만큼 괴리감도 바로 느껴집니다. 예컨대 사립 대학 등 한국의 ‘조직’ 속에서 혹시나 밥통을 갖고 살게 될 경우에는 할 말, 못 할 말을 아주 잘 걸러서, 두세 번 생각하고 내뱉어야 한다는 것부터 바로 느끼게 됩니다. 한국의 ‘조직’들에는 법률과 공식적인 ‘룰’ 외에도 여러 가지 불문율들이 많으니까요.--- p.26
중학교 시절 가장 큰 관심사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 도시국가들의 사회경제적 형태였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가야사에 빠지고 말았죠. 참, 당장의 밥벌이나 입시 성적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유카탄 반도나 낙동강 유역의 고대사에 신경 쓸 수 있게 해준 구소련 체제에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대한민국에서 같은 방식으로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p.30
코로나19로 학교들이 문을 닫아 전국의 아이들이 워킹맘들의 24시간 일감이 되었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 워킹맘들의 직장 일을 누가 줄여주었나요? 사실 양성 평등 정책 차원에서 당연히 워킹맘의 업무를 줄여주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해준 직장이 있었나요?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입니다. 그러니 제게 놀라운 것은 한국의 세계 최저 출산율, 즉 0.9 수준의 출산율이 아닙니다. 제게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반여성적 환경에도 아직까지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것, 즉 출산율이 아예 0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p.62
생각해보면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죠. 남자가 ‘피해자’라고? 산업화된 국가 가운데 가장 반여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3퍼센트에 불과하고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 되어버린 이런 사회에서 남성들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처음에는 거의 반신반의할 정도입니다.--- p.80
도대체 한국 남자들은 바보인가요? 신자유주의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면 신자유주의를 상대로 투쟁하고 노동당이나 정의당에 대량 가입해야 답이죠, 신자유주의로 인해 남성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보는 여성들에게 도대체 왜 한풀이를 하는 것일까요?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물론 안 되죠.--- p.82
저는 가끔 이 세상이 죽도록 싫습니다. 정말 더는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싫을 때가 있습니다. 언제인가 하면, ‘죽음의 등급’을 실감나게 지켜볼 때지요. 사람이 사는 데에는 늘 ‘급’이 있지만 죽는 데에도 그 ‘급’이 늘 따라다닙니다. 고분에 묻힌 주인공, 그러니까 수장, 추장, 국왕 등의 이름은 가끔 알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순장당한 노예들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윗사람’과 함께 의무적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했을 때의 가슴속 감정 같은 것도 우리가 그저 상상만 해봐야 하는 대목입니다. 수장, 추장, 국왕의 세계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노예들의 세계는 익명의 세계, 무기록의 세계입니다.--- p.95
이게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복수심 때문이 아닙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틀림없이 돌아오기 때문에, 그 과거가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청산을 해야 하는 것이죠. … 과거 청산은 예방 접종입니다.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지요.--- pp.169~170
통일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어떤’ 통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 필요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참극인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북쪽 동포들에게까지 수출하고 싶은가요? 약자에 대한 차별, 1년에 약 1,700명의 노동자를 죽이는 최악의 산재 사망률, 만연되어 있는 과로사, 14퍼센트 이상의 직장 여성들이 당하는 성추행을 통일과 함께 수출하고 싶은가요--- pp.190~191
아이들은 엄청나게 예민합니다. 그들은 어른들의 ‘말’을 보지 않고 그 ‘실천’, 그러니까 삶의 실질을 아주 잘 포착합니다. 제 큰아이(현재 18세)만 해도 아버지로부터 《자본론》 설교를 들을 때마다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기금을 통해 세계 각처에 투자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대기업이다. 그런 노르웨이 정부의 공무원으로서 호의호식하는 당신이 들려주는 좌파적 이야기는 가식일 뿐, 사실 당신도 자본 질서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아버지에게 촌철살인을 날립니다.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죠.--- pp.193~194
코로나19의 ‘진실의 순간’이 보여준 것은 질병에 대처하는 각국의 행정력과 준비력 그리고 정치적 의지의 ‘차이’뿐만이 아닙니다. 각국 내의 무서운 ‘사회적 격차’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내부자, 즉 중산층 이상의 구성원이나 공공 부문 및 대기업 종사자는 그저 ‘불편함’ 정도를 느끼는 반면, 외부자, 즉 중소기업 노동자나 불안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 등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기를 겪습니다. --- pp.217~218
언젠간 떠나야 하는 ‘집’…미아 같은 삶
매끼를 굶는 수준은 아니지만 삶에서 보장된 것이 없다. 많은 20대는 대기업과 공무원을 목표로 긴 시간 취업준비를 하거나, 조만간 관둘 중소기업에 다닌다. 사는 곳은 고시원이나 작은 원룸일 확률이 높다. 집은 계약 기간이 끝나면 떠나야 한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얻고, 노르웨이에서 사는 한 지식인은 이들 20대가 자신처럼 ‘미아' 같다고 말한다.
사회비평 에세이인 <미아로 산다는 것>은 19년 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탈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비판한 역사학자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동아시아학 교수)의 최신작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것이라고 부를 정도로 단일 민족국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은이는 “<포보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권력자 100명 중에 35위를 차지한 이재용도, 이재용 같은 사람에게 부를 만들어주느라 데이트 한 번 나갈 여력도 갖지 못하는 ‘3포 세대’ 젊은이들도 모두 ‘한국’에 속하지만, 서로 접점이 전혀 없는, 각각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살아간다”며 “내게 과업이 있다면 왜 후자가 전자의 피해자가 되면서도 전자의 지배를 여전히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분석”이라고 썼다. 2018년 통계청 발표를 보면, 연애하는 대한민국 20대 남성의 비율은 20% 남짓이다. 착취만이 중요했던 시대가 지나, 불안으로 인한 소외를 혼자 감당하는 무산자를 살펴야 하는 때가 온 셈이다.
한겨레출판 제공
‘열공 올인’ 사회와 ‘출산율 제로’ 사회는 소외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원해서 공부하는 대신, 신분상승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억지 공부는 자신에게 폭력이 된다. 노르웨이에서는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없다. 배관 일을 하든 교수 일을 하든 똑같은 노동으로 존중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기 어려운 상황은 청년을 비혼으로 내몬다. 노르웨이에선 회식은 없고 관공서는 3시에 일이 끝난다. 노동자는 5시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약 18분이라면, 노르웨이 남성의 경우에는 2시간36분 정도다.
모든 것이 흐르는 물처럼 빨리 바뀌어 긴 관계를 맺기 어려운 사회인 액체근대.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은 길을 잃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아이와 닮았다. 여기서 ‘집'은 주거공간을 넘어, 심리적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와 문화를 뜻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지은이는 공감과 연대, 협력으로 ‘같은 마음’을 느끼려는 혁명적 정서가 대안이라고 전하고 있다./이정규 기자 jk@hani.co.kr
미아로 산다는 것
저자는 한국을 “급(級)의 사회”로 규정한다. 어느 사회든 서열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서열은 그냥 수직적인 직선”이고 “노르웨이에 서열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서열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대가 사는 거주지의 크기, 학벌, 직업을 기준으로 관계의 친소(親疏)와 존대의 정도를 결정한다. 우리 사회의 급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 가난한 노인,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이름 없는 단신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다. 2007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무소 직원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잠긴 문을 열지 않았다. 그 결과 외국인 노동자 열 명이 화재로 사망했고, 한국 정부는 어떤 사과나 약속도 없이 1인당 1억 원을 유가족에게 보상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2018년 한국 노동연구원이 20~50대 직장인 2,500명을 조사한 결과 66.5퍼센트가 지난 5년 동안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직장 생활 중에 폭언을 한두 번 이상 들은 사람은 열 명 중 아홉 명이고, 폭력을 경험한 사람도 12~17퍼센트에 달했다.
새로운 가난, 관계 맺기 불능, 사색의 증발, 타자 혐오…
불안과 가난, 고독의 무게를 감당하며
미아 아닌 미아로 떠도는 시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지만, 노르웨이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저자는 자신이 왜 탈로(脫露, 탈러시아)와 탈남(脫南)을 선택했는지 돌아보며, 자신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담담히 서술한다. 더 이상 “갑질이 일상화된 한국 대학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교수님들이 벌이는 추태들”과 “조교들이 그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데 해방감을 느끼지만, 모어로 말하고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2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내밀한 곳, 즉 가족 질서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은 “산업화된 국가 가운데 가장 반여성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3퍼센트에 불과하고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 되어버린” 사회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난 남성들”에게 왜 “강자에게 얻어맞고 약자를 때리는지” 묻는다.
3장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를 “급의 사회”로 규정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의 존엄할 권리를 절실하게 요구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는 가구당 평균 6.5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상위 10퍼센트는 전체 부동산의 절반을 소유하지만, 47퍼센트는 집 없이 월세와 전세를 전전한다. 한 사람이 국내총생산 19퍼센트를 차지하는 대형 기업을 세습하고,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를 세습하고, 부동산을 세습한다.
4장에서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한국 사회가 겪은 상처를 톺아본다. 저자는 “과거 청산은 예방 접종”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 청산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이나 집단의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원이 점점 커지듯이 ‘나’의 자리에서 시작된 사유가 5장에서 지구적 차원에 이른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질투의 감정을 신자유주의와 연결하고, 전쟁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휘발유와 자동차에 비유한다. 저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겪는 모든 사회가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불평등과 격차이다. 모든 나라에서 공공 부문 종사자, 대기업 직접 피고용자들은 코로나19로 큰 불이익을 보지 않은 반면, 서비스 부문과 유통 부문의 영세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변화는 안으로부터 온다. 저자는 이 디스토피아 같은 세계에서 혁명은 결국 나와 우리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을 “공감과 연대, 협력”을 통해서 지어야 한다./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싱가포르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들
소련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 춘향전에 빠진 '박노자'가 한국 고대사에 관심을 두고 고려대로 유학 온 새 졸지에 그의 고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은 해체된다. 귀화해 한국인이 된 그는 극우가 판치는 이 땅의 탄압 받는 왼쪽 끄트머리에 서서 겁 없이 외치는 자였다. 우리의 오래된 과거를 우리보다 더 깊게 아는 이 벽안의 사나이가 유려한 문장의 한글로 구현해 내는 '사람 사는 세상'에 관한 주창은 고루한 이념에 절어있던 내 무지와 태만을 흔들었다. 우리가 걸어온 곡절 많은 길이나 시방 겪고 있는 갈등에 견주어 더러 과도하고 급진적이라 왼고개를 치기도 했지만 나는 그를 아끼고 읽는 이다.
오슬로 대학에 '밥그릇'을 둔 그가 며칠 전 코로나를 뚫고 신작 <미아로 산다는 것>을 들고 왔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아가 되어 '집' 없이 부유하는 이 땅의 무산자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자는 제안서란다.
'집'은 관념으로서도 현실적 삶의 문제로도 우리에겐 식을 새 없이 짤짤 끓는 뜨거운 현안이다. 이 정부 들어 그 징글징글한 부동산 광풍의 고삐를 다잡겠다고 공언하고 무려 23차례나 정책을 내놨으나 발표 때 찔끔 눌리는 듯하던 집값은 '아나콩콩'이다. 이내 미친 듯 치솟아 덩달아 널을 뛰는 전월세를 따라잡느라 그러잖아도 고달픈 세입자들의 등이 휜다.
2018년 국회에 제출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이 나라 일등 '주택 수집가'인 모모 씨 한 사람이 사들인 집이 자그마치 1806가구란다. 주택보급률 104%가 넘는 나라면 뭐하나. 소득 상위 1%가 가구당 평균 6.5채를 소유하고 상위 10%는 전체 부동산의 절반을 끼고 있으니 공동체의 절반이 제집 없이 월세와 전세를 전전할 수밖에. 공급부족 탓이라고? 국토부 자료로 본 서울의 연평균 주택 공급 물량은 문재인 정부 시기 서울의 주택 공급은 연평균 7만 4570호로 박근혜 정부(7만 3604호) 때보다 외려 더 많다. 아파트만 놓고 보면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1.23배다. 우스갯소리로 "서울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곳"이란다. 공급되는 만큼 투기 수요가 덤벼 일순 아수라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수십 년 묵은 난장판을 까짓 양도소득세 취득세 몇 푼 올려 해결하려 해선 230번을 시도해도 무망한 일이다. 국가가 투기꾼들의 땅 모두를 사들이거나 탱크 앞세워 몰수하지 못할 바엔 해법은 싱가포르에서 얻어 와야 할 게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투기꾼의 볼기를 아작 내는 태형을 도입하거나 아니면 싱가포르 주택개발청 방식의 치밀한 국가 주도 공공임대주택의 획기적 보급이거나.
경기도 화성 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한 대통령이 "13평에서 4인 가구가 살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고 "니가 가라 공공임대"로부터 시작해 국민적 분노를 이끌어내느라 정치꾼 기레기 극우 유튜버들이 마치 악머구리 끓듯 한다. 우연히 TV서 문제의 그 장면을 본 나로선 어이가 없다. 사실관계부터 틀어졌다. 44㎡ 13평이란 전용면적을 말함이다. 공급면적으로 환산하면 그 집은 21평쯤이다. 단언컨대 저토록 우짖는 자들이야말로 서민의 주거복지엔 관심이 없는 물건들이다. 미니멀리즘이 존중받는 시대다. 평수 너른 것이 그리도 대단한가. 단지 내에 나무 넉넉히 심고 옥내외 아이들 놀이터와 도서관에 어린이집에다 건강관리센터에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춘 공공임대라면 '미아' 신세는 능히 면할 환경이다. 그들의 소박한 일상을 흔드는 자들이 문제일 뿐이다./경남도민일보 홍창신 자유기고가
■ 프로그램명 :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 코너명 : <훅 인터뷰>
■ 방송시간 : 1월 1일 (금) 18:15~18:35 KBS1R FM 97.3 MHz
■ 출연자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85774&ref=A
◇최경영: 지금 전 인류에게 2020년은 코로나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한 해였는데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교수님은?
◆박노자: 저는 개인적으로는 비행기를 거의 탈 수 없었던 한 해로 기억하는데 저한테는 그것이 손실이었다 하더라도 지구한테는 좋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제한이 많고 하니까 그런데 전체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사람한테 너무 힘든 한 해였습니다. 한때 노르웨이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실업률도 기록했습니다. 15%의 실업률이었는데 노르웨이 역사상 이런 거는 처음이었습니다.
◇최경영: 노르웨이도 실업률이 15%까지 갔었군요.
◆박노자: 록다운 때 많은 이제 작은 기업들이 문을 닫아서 사람들이 밖에 나가게 되고 실업수당을 받게 됐는데 실업수당은 후하게 주니까 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굶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정도의 실업률은 노르웨이 역사상 여태까지 없었습니다.
◇최경영: 유럽인데도 미국도 15%까지 갔었는데 록다운 당시에요. 4월인가요? 그랬는데 북부 유럽 같은 경우에는 특히 유럽 쪽은 실업률을 인위적으로 많이 낮추는 정책을 취하는 걸로 제가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박노자: 여기 같은 경우에는 일단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실업자가 된 사람들한테 되도록이면 정상적 소득을 주고도 2주. 실업자가 되고 나서 2주 동안은 여태까지의 소득은 그대로 국가가 보존하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재취업을 돕는 쪽으로 이렇게 하고 그렇지만 처음에는 여행하고 숙식업이 거의 망하는 바람에 실업자의 숫자가 대단히 많았던 거는 여태까지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습니다.
◇최경영: 노르웨이에서 본 2020년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박노자: 그러니까 한국사회의 모습은 한마디로는 우리가 어떻게 보면 성공한 거죠. K방역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하고.
◇최경영: K방역.
◆박노자: 노르웨이에서도 믿지 못할 일이지만 K방역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가 왜 모방할 수 없는가 이런 신문 기사들이 계속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일면으로는 그 성공의 그늘에 있었던 것이 의료진들의 엄청난 고생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보건소 직원들, 간호사들이 그러니까 너무나 힘든 삶, 이런 것이 이제는 또 한편으로는 저한테는 코로나의 해에서 기억되는 이미지들입니다.
◇최경영: 그렇군요. 한국은 한국 정치 특히 2020년 검찰개혁으로 아주 뜨거웠단 말이죠. 그랬는데 물론 뭐 논란도 많았었고 검사들의 반발도 있었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박노자: 저는 검찰개혁만큼은 정말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여러 계기가 여러 가지가 있어서 하게 됐는데 그중에 하나는 제가 이제 역사학 하다 보니까 접하게 된 거지만 강기훈 유서 대필 의혹 사건이었습니다.
◇최경영: 강기훈 유서 대필 의혹 사건.
◆박노자: 그거 아시겠지만 결국 조작으로 밝혀졌는데 그때 그 조작에는 대검찰청의 부장검사 강신욱을 비롯하여 신상규, 송명석, 윤석만 여러 검사들이 사실상의 조작에 연루된 바가 있었습니다.
◇최경영: 강신욱 씨 같은 경우에는 나중에 대법관까지 됐잖아요.
◆박노자: 그렇죠. 그러니까 조작에 연루된 사람이 대법관까지 갈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정말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최경영: 또 어떤 것 때문에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박노자: 그러니까 여태까지는 간첩조작 사건 이런 거 보면 검찰들이 거기에 연루되고 나서도 하등의 반성이 없었습니다. 반성이 없었고 그 조직 안에서는 자정능력이 거의 고갈된 것으로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뿐만 아니고 최근에는 북한 유우성 씨 간첩 조작사건. 거기에는 기억하시겠지만 공문서 위조까지 갔던 것이죠. 거기에도 파견된 검사의 역할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검찰 내부에서의 하등의 반성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검찰이 여태까지 기소권을 독점해가면서 사실 내부에서는 거의 전체주의적인 조직 운영의 원리를 갖고 있는 것이죠. 검사 동일체죠. 양심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요.
◇최경영: 맞습니다. 관련된 검사들은 어느 정도 가벼운 징계를 받고 나와서 변호사를 지금 하고 있는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요. 이게 외국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가 됐을까요?
◆박노자: 외국 같은 경우에는 평생 공직에 절대 갈 수가 없고 조작에 연루됐다면 감옥 갔을 겁니다. 그런데 조작이라는 거는 아주 심각한 공권력 남용. 공권력 악용 사건인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검찰 조직의 힘이 막강하다 보니까 너무나 솜방망이 처벌이죠. 처벌도 거의 없습니다.
◇최경영: 한국을 흔히 묘사를 하는데 다이내믹 코리아. 재미있는 지옥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북유럽 사회는 우리가 이제 흔히 알고 있기로 굉장히 안정적인 사회로 알고 있는데 두 사회의 어떤 장단점 뭐라고 보십니까?
◆박노자: 뭐 일단 북유럽 사회의 장점이라면 여기에서 그나마 출산율이 0.9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국에서 아시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 기록됐습니다, 지금은. 그러니까 노르웨이는 그래도 1.6 정도로 출산율이 그것보다는 약간 높습니다. 그러니까 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하면 그만큼 주거. 그러니까 집 마련이 훨씬 더 쉽고 집 마련이 쉬운 이유는 대부분 노르웨이 사람들이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경영: 그렇군요.
◆박노자: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비율이 36%나 되는데 노르웨이는 9%밖에 안 되거든요.
◇최경영: 9%밖에 안 돼요?
◆박노자: 그렇죠. 대부분 정규직이기에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서 자기 집 마련하는 게 훨씬 더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도 낳기가 쉽죠. 그러니까 노르웨이 같은 경우에는 흔히 기본적인 부의 재분배와 사회의 기본적인 재생산이 그나마 가능한 건데 신자유주의 모범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재분배가 잘 안 되고 사회의 생명, 사회의 물리적인 재생산이 이미 막힌 상태입니다.
◇최경영: 그렇군요. 비정규직이 결혼을 못하게 되고 또 출산율도 저하되게 되는 그런 현상을 짚어주셨는데요. 최근에 책도 내셨습니다. <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제목이 상당히 좀 긴데 이 책에는 어떤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까?
◆박노자: 그러니까 이건 신자유주의 근대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제 생각을 좀 그렇게 체계화시킨 건데 여태까지 고전적인 자본주의는 안정적인 부분이 상당히 강했던 거죠. 옛날의 한국이나 일본을 생각해보시죠. 사람이 평생직이야. 한 직장에 평생 다니고 한 사람하고 평생 같이 살고 한 나라 테두리 안에서 살다 죽고 이러지 않았습니까? 요즘 같은 경우에 대한민국에서는 직장 근속의 평균 기간은 4년도 안 됩니다. 아주 짧은 거죠. 이직률이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보다 한국이 한 2배 높습니다. 그다음에는 이혼율이 지금은 노르웨이보다 한국이 또 높고. 그리고 이제 많은 직종에서는 한 나라 안에서 산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옮겨 다니면서 사는 거죠. 그러니까 더 이상은 안정적인 그 무엇도 없는 삶입니다. 말 그대로 액체 근대죠. 그래서 그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느끼고 또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런 거 묘사해 봤습니다.
◇최경영: 액체 근대라고 말씀하셨는데 액체 근대와 미아라는 말이 그러면 서로 상통하는 겁니까?
◆박노자: 그렇죠. 미아라는 게 말 그대로 길을 잃은 아이인데 액체라는 것이 안정적이고 딱딱한 그 뭔가 주어진 게 아무것도 없는 불확실성의 상황입니다.
◇최경영: 그러면 우리만 이런 건가요? 이렇게 미아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
◆박노자: 우리만은 절대 아닙니다만, 우리는 조금 심한 케이스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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