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가족의 파산 外

이성근 2017. 7. 24. 16:18




<가족의 파산>(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동녘 펴냄)

원제 老後親子破産

 

저자 NHK 스페셜 제작팀은 [워킹푸어](일을 해도 풍요롭게 살 수 없는 일본의 근로빈곤층 문제), [무연사회](가족 없이 사회적 고립에 빠진 노인의 고독사 문제), [노후파산](젊었을 때 노후를 대비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파산에 이르는 고령자 문제) 등을 주제로 만든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해 일본의 보이지 않는 빈곤 문제를 가시화해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무연사회’, ‘노후파산등 노인의 사회적 고립과 빈곤 문제를 다루면서 일본이 전후 베이비붐 세대(현재 65~69)가 무려 1000만 명에 이르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도 장수를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암울한 사회가 되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포착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목차

 

프롤로그

들어가며 노후파산, 그 이후의 문제

 

1장 가족이 있어도 노후파산을 피할 수 없다

친자동거 세대에 확산하는 새로운 노후파산

자녀와의 동거가 노후파산의 방아쇠가 되었다

생활보호 중지, 드리워지는 파산의 그림자

병원 갈 돈이 없어요

평범한 가족이었는데……

실직과 아버지의 병환 - 동거를 결심하다

연금만으로 살 수 없고, 헐어서 쓸 예금도 없다

당연한 바람조차 갖지 않게 된 현실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 노동-아들의 실직

노후파산의 고리를 끊고 싶다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을까

가족과 살아도 하루 중 대부분은 혼자다

무겁게 짓누르는 의료비 부담

친자파산을 어떻게 발견할까?

고루 미치지 못하는 이웃 살핌의 눈길

지역의 이웃 살핌 활동은 어떻게 될까

취업 지원으로 친자파산을 막을 수 있을까

설문 조사로 드러난 노후파산의 실태

 

2장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노후파산 예비군

자립할 수 없는 중년의 자녀들

일을 그만둘 수 없는 늙은 부모들

사회와 교류를 끊고 사는 아들

일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다

중류층이었는데……

노후파산의 위기

친자파산을 향한 카운트다운

캐스터 칼럼-왜 지금 친자파산일까? 전문가에게 듣다

 

3장 간병이직?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비극

왜 노모와 아들이 사체로……

아무도 노모와 아들의 죽음을 몰랐다

모자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을까

모두가 부러워한 사이좋은 모자

간병이직을 초래한 고립

가족이 있으면 오히려 어려워지는 구조요청 신호

도와 달라말하지 않은 모자

지역사회는 친자파산을 어떻게 막을까?

간병이직 10만 명 시대

 

4장 친자파산을 막는 세대 분리

급증하는 고령자,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요양 현장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다

노후파산의 벼랑 끝에 내몰리다

자식에게 의지해야 할 노후가……

영원할 줄 알았던 중류층의 생활

최후의 수단 세대 분리

점점 가까워지는 건강에 대한 불안

아들과 헤어지던 날

무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집을 떠나는 날

가족이라는 이름의 벽

생활 곤궁자 자립 지원제도

친자파산을 막기 위해서

 

5장 취업이 초래한 일중독거

고령자의 일중독거(日中獨居)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가족과 고령자의 과제

집을 비운 사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일과 간병을 양립하는 가족의 고충

싱글 간병으로 피폐해지는 아들

아버지의 병원 진료에는 꼭 같이 가야 해요

가사도움 요양 서비스의 맹점

지역의 힘으로 친자파산을 막아라!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이 실직해 부모에게 돌아온다면?

그나마 받고 있는 연금을 자식과 같이 써야 한다면?

자식이 비정규직으로 부모의 간병을 떠맡는다면?

 

이 책은 일본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악몽이다!” -노명우(사회학자)

일본이 노후파산이라면 한국은 노후지옥이다!” -전영수(한양대 특임교수)

 

가족이 있어서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있어 더 고통스럽다!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꿈이에요. 지갑을 꺼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요…….죽을 때까지 힘들 것 같아요. 어떻게 죽을지도 문제고. 아무튼 생활은 해야 하잖아요. 희망이 없어요.”(117)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예금을 탕진하는 노인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젊은이들. 워킹푸어, 부모님 간병, 비정규직 사회, 고독사, 노후파산언제부터 이 나라는 장수를 기뻐하고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 되었나? 나이가 들어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 왜 불행한 일이 되었을까?

 

한평생 성실하게 일하면 노후에 따뜻한 방 안에서 귀여운 손자에게 둘러싸여 웃으며 기뻐할 수 있는 삶이 올 것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가족의 존재가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자식과 부모가 함께 파산하는 현실. 이혼, 부모 간병, 비정규직, 워킹푸어가 이미 우리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책은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취재한 고령자 가족 사례를 바탕으로 인구 초고령화(3000만 명이 고령자)’라는 인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그간 20여 년 넘게 진행되어온 노동의 유연화 및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 실시(연금 수령액 삭감, 의료비나 돌봄 등 공적 서비스 비용의 자가 부담 증가)등의 폐해가 현재 고령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빈곤 문제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한 가족 내에서 고령자의 빈곤 문제와 고령자의 자녀나 손주들의 빈곤 문제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한 일가족 전체가 파산에 이르렀거나 파산 직전의 예비군 상태인 점, 즉 빈곤이 세대로 이어지면서 심화되며 악순환하고 있는 점을 그 사회적 배경과 함께 잘 보여준다. 또한 노후파산이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가 아닌, 지금-여기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노인 빈곤율 50%시대장수가 부른 부모와 자식의 공멸을 막아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한 달. 문 대통령은 국가보훈처장에 군 복무 중 신체장애의 이유로 부당한 전역을 당하지 않도록 맞서 싸워 승리한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임명했다.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유공자를 극진하게 예우하고 보훈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는 등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아우르는 보훈 행보를 이어갔다. 이는 1960~70년대 압축 경제성장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도 그 이후, 국가로부터 홀대를 받은 비참한 세대를 예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보통의 65세 이상 노인의 현실은 어떠한가.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5.6%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OECD 평균이 12%인 것에 비하면 4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다. 전체 국민의 소득 격차보다 노년층의 소득 격차가 더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2명 중 1명은 빈곤에 시달리고 10명 중 1명은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노인 자살률 또한 OECD 국가 중 1위다. 오는 2050년이면 인구 10명 중 4명은 노인인구가 되는 대한민국은 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지만 우울해져가는 사회적 지표만큼 노인 복지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이것이 한국 노인들의 현주소다.

 

가족이 있으면 노후는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가족의 존재가 오히려 노후의 리스크가 된다!

2016년부터 국내에 노후파산에 관한 심각성을 알리는 책들이 본격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노후파산이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 능력을 상실한 노인들의 비참한 삶을 말한다. 2014년 일본 NHK는 스페셜 노인표류사회시리즈 중 <노후파산의 현실>(이 책은 노후파산으로 국내에 출간됐다)을 통해 연금만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독거노인의 문제를 다뤘다. 무엇이 노인들을 파산으로 내모는지, 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들이 인생의 끝에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는지를 취재했다. 이 책은 그 후속편이다. 노후파산이 젊었을 적에 노후를 대비해 열심히 저축하거나 연금을 준비해왔던 사람들조차도 정작 노후에 이르러 파산을 했거나 파산 위기에 몰려 비참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부모와 가족이 함께 파산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친자파산을 막아라!>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노후파산이 단지 독거노인만의 문제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홋카이도 삿포로 지역을 중심으로 후속편을 취재하던 NHK 스페셜 제작팀은 노후파산은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충격적 사실을 접한다.

 

병들고 쇠약한 부모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 중장년 자녀가 부모의 연금으로 생활하며 간병을 계속하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파산에 빠지는 문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자녀가 자립하지 못한 채 중년이 되어 나이든 부모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사례 등, 동거하는 가족이 고령인 부모의 부담을 크게 져서 함께 파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장래가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요. 자살밖에 방법이 없는 걸까요?”(50대 여성)

재산은 전부 부모님 간병을 위한 병원비로 쓰고 파산 직전입니다. 얼른 죽기만 바라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어요”(40대 남성)

혼자 살고 있는데도 벌이가 적어서 내 노후가 불안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세금도 낼 수 없는 이것이 나의 현실입니다”(40대 여성)

서른두 살인 딸은 아파서 일주일에 네 번만 일해 월 80만 원을 벌어요. 나도 청소 일로 100만 원을 버는데도 우리 둘은 파산 상태예요.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조용히 죽을 각오를 해야죠”(50대 여성)

 

이 책은 전작 노후파산과 마찬가지로 고령자와 그 가족을 밀착 취재하여 비참한 현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도 앙케트 실태 조사 결과 소개 및 칼럼, 4장과 5장에서 그 구조적인 원인과 해법 등을 찾으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노후파산은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워킹푸어, 무연사회, 독거노인 고립의 문제를 넘어선 충격 르포!

혼자 살던 노모가 건강 악화로 딸 부부와 외손자와 동거하게 됐다. 딸 부부는 고령의 어머니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어머니의 연금과 합해 생활했다. 그러나 그런 빠듯한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수술과 입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딸 부부는 병원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그 일이 노모를 힘들게 했다. “수술비며 병원비 때문에 딸에게 부담을 주느니 죽는 게 낫다.” 막다른 곳에 내몰린 노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가 내린 결론은 자살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 중 하나다. 부모와 자녀가 동거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이 책은 자립하지 못하는 중년의 자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나이든 부모들, 위의 사례와 같이 부모 간병을 하게 되면서 나타나는 비극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도시로 나갔다가 실직 등의 이유로 본가로 돌아와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사례다. 도시에서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중장년이 되어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생계가 어려워져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와 동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 파산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일본이 노후파산이라면 한국은 노후지옥에 와있다!

고령화,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의 재편,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변화 등 일본과 비슷한 사회적 변동을 겪어온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일본과 비슷한 유형의 노인 빈곤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유형의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고령화된 가족의 파산 위기 실태와 원인을 살핀 이 책은 큰 주목을 받을만하다.

 

이 책에 나오는 고령자 가족의 파산 혹은 파산 위기 사례는 한국의 상황을 참조해 읽어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는 노노부양세대의 증가(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0대 자녀가 팔순 이상의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구가 15만 가구에 달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막중한 경제적 부담(이른바 끼인 세대라 불리며, 한국전쟁 후 태어난 1955~1963년생으로 이제 은퇴 준비에 들어가는 이들로 노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의 이중 부담에 힘겨워하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된다), 65세 이상 인구 중 가구주 비율의 증가(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노인 증가한 것으로 2010년 약 53만 명으로 15년 만에 약 3배 증가했다. 만혼·미혼·학업 연장·취업 지연에 따른 자녀의 독립지연으로 부모와 동거하는 30대 미혼자녀도 증가했다), 비정규 고용 비율의 증가(한국의 경우 전체 고용 중 비정규 고용의 비율은 201532.5%이나 특수 고용이 제외된 수치임에 유의해야 한다. 일본의 비정규 고용 비율은 전체 고용 중 40% 정도다) 등과 같이 사회적 배경으로 일본과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임을 감안할 때, 고령자 자신의 노후파산, 고령자와 동거하는 가족(자녀)과 공멸하는 노후파산을 다룬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의의가 깊다.

 

책속으로

그런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존재가 단지 독거노인뿐일까? 가족이 있어도 노후파산은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노후파산의 확산을 알린 것이 20158월에 방송한 NHK 스페셜 노인표류사회-친자파산을 막아라. 프로그램에서는 병들고 쇠약한 부모를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둔 중장년 자녀가 부모의 연금으로 생활하며 간병을 계속하다 노후파산에 빠진 경우를 소개했다. ,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자녀가 자립하지 못한 채 중년이 되어 나이 든 부모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듯 동거하는 가족이 고령인 부모의 부담을 크게 져서 노후파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 p.9~10

 

의료나 요양 서비스의 금전적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만큼 아들과 딸에게는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사치코 씨. 장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방이 꽉 막힌 상태였다. 갑자기 사치코 씨가 꿈 이야기를 했다.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꿈이에요. 지갑을 꺼냈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요…….” 그것은 꿈일까, 내일의 현실일까. 사치코 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죽을 때까지 힘들 것 같아요. 어떻게 죽을지도 문제고. 아무튼 생활은 해야 하잖아요. 희망이 없어요.” --- p.117

 

미쓰 씨의 사체는 아들이 있던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발견되었다.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미쓰 씨는 아들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침대에서 나와 팔의 힘만으로 거동이 불편한 몸을 끌듯이 기어 아들에게 갔고 도중에 힘이 빠져 복도에서 숨졌다. 미쓰 씨의 사인은 저체온증이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아들을 확인하기 위해 침대에서 나와 마룻바닥인 복도를 온 힘을 다해 기어간 미쓰 씨. 미쓰 씨는 다케시 씨가 사망하고 수일 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며칠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쓰 씨의 시동생 미노루 씨는 모자가 같이 죽은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며 울먹였다. --- p.137

 

일하지 않는 자녀가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한 가족을 취재했을 때 20년 넘게 집에 틀어박혀 있는 40대 아들이 있었다. 취업에 계속 실패하자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파견직 일을 찾아 몇 번인가 일하려고 시도했지만 면접을 보면서 자신감을 잃어 아예 포기했다. 집에 틀어박힌 후로 생활비는 전부 부모의 연금으로 해결했다. 취재를 할수록 이런 은둔형 외톨이의 중장년 자녀와 동거하는 고령의 부모가 많았다. 오랫동안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일수록 가족이라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 p.193

 

자녀가 비정규직으로 일할 경우 수입이 적으면 부모의 연금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금에도 충분한 여유가 없으면 일하는 세대인 자녀는 필사적으로 수입을 늘리려고 애쓴다. 몸이 불편한 부모를 옆에서 돌봐야 하지만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가족도 많다. 그러나 일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부모에게는 돌봄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시간대가 발생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경우에서 여러 번 문제가 되었던 일중독거. --- p.203

 

고령화와 빈곤이 부른 공멸-고통스러운 삼대의 삶 <가족의 파산>

가족극의 대가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엔 삼대가 모여 산다. 마당 있는 단독주택을 소유한 조부모, 은퇴 뒤 건강한 노후 생활을 하는 부모, 전문직인 자식 세대. 이런 청··노년 가족 구성은 외부 위협에도 끄떡없는 완전한 공동체처럼 보인다. 그런데 설정을 조금만 바꾸면 어떨까. 집이 있긴커녕 월세 내는 것도 빠듯한 조부모, 간병이 필요한 부모,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자녀. 빈곤 앞에서도 가족이 안전한 울타리가 될까.

<가족의 파산>(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동녘 펴냄)이 펼쳐내는 얘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독거노인의 고립된 삶을 취재하던 NHK 스페셜 제작진은 지금까지의 통념을 뒤엎는 비참한 상황을 목격한다. 자녀는 부모의 장수를 마냥 기뻐하지 않고, 가족은 노후의 안전망이 아닌 생존의 위협 요소가 돼버렸다.

 

여든 살 요시아키는 삿포로의 저소득자 대상 시영주택에서 손자와 살고 있다. 그의 한 달 수입은 연금 95만원. 생활보호대상자라 뇌경색 의료비와 집세 20만원은 면제받았다. 실직한 아들이 찾아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규직을 구하지 못한 45살 아들은 지게차를 운전하며 일당을 받는다. 아들의 수입이 불안정한데도 요시아키는 생활보호대상에서 탈락했다. 이 때문에 요시아키는 한 달째 혈압약을 먹지 못했고, 가족은 1100원짜리 식빵 여섯 조각을 나눠먹는 상황을 감내한다.

 

거동이 불편한 요시아키에게 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큰 의지가 된다. 그러나 생활은 더 곤궁해졌다. “아들이 없으면 다시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의지할 사람이 없어지지요.”

 

일을 그만두고 병든 노모를 돌보다 급사한 다케시, 비정규직 아들딸이 자립하지 못해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일하는 요시하루 등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족은 가혹한 존재다. 서로에게 짐이 돼 힘들게 사는 가족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은 불행한 시나리오다.

 

워킹푸어(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 무연(無緣)사회(가족 등 전통적 사회안전망이 붕괴된 사회), 독거노인 등 현대 일본 사회가 겪는 여러 문제를 통해 취약한 사회보장 문제를 지적해온 NHK 제작진은 전작 <노후파산> 때처럼 고령자와 자녀들의 내밀한 삶을 밀착 취재했다. 제작진이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관계 기관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가족과 동거하면 지원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가족의 공멸을 막기 위해 원치 않는 분리를 당하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책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한계를 고발한다.

 

가난 앞에서 무력한 일본 사회의 모습은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인데다 비정규직 비율이 40%를 웃도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도 2014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함께 사는 노인 부모와 성인 자녀가 생활고에 못 이겨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김수현 작가의 가족극은 드라마이지만, 책이 풀어내는 고통스러운 삼대의 삶은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이다. 7.22 한겨레21

 

가족이라는 병 / 저자 시모주 아키코|역자 김난주|살림 |2015

원제 家族という

 

저자 시모주 아키코는 NHK 아나운서 출신으로 일본의 작가·평론가·수필가다. 와세다 대학교 교육학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NHK에 입사하여 인기 아나운서가 되었다. 유명 프로그램 캐스터로 근무하다가 문필활동에 들어갔으며 지금은 작가이자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이 책 가족이라는 병을 통해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존재인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졌는데, 주제의 폭발성 때문에 이 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과 기노쿠니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일본 사회에 뜨거운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미혼모, 한부모 가정, 동거와 셰어하우스, 동성커플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속속 출현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에도 가족이라는 병은 가족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고도 새로운 논란과 성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저자는 일본 펜클럽 부회장, 일본 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대표작으로는 30대 여성,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라》《40대 여성, 이제부터가 진짜 인생의 시작이다》《즐거운 노년,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자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사실은, 아무도 가족에 대해 모른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가족을 피해왔나

 

1장 가족은 어렵다

가족, 하면 무조건 믿는 우리

왜 사건은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가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이유

자식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딱한 부모

사이 나쁜 가족들 틈에서도 아이는 제대로 자란다

어른에게 착하기만 한 아이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가족의 기대는 최악의 스트레스

유산을 남겨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돈이 얽히면 비로소 드러나는 가족관계

부부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2장 가족이라는 병

화젯거리가 가족밖에 없는 사람은 재미없다

가족 얘기는 어차피 자랑이거나 불평

다른 가족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반려파트너라는 호칭이 갖는 의미

자식을 위해 이혼하지 않는다는 정당한가

결혼만큼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도 없다

여자는 아이를 꼭 낳아야 하나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잔인함

가족에게 버려져야 평안을 얻는 사람들

고독사는 불행이 아니다

가족묘에 묻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타인과의 생활은 중요하다

가족 앨범이 뜻하는 것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3장 가족을 알다

늙은 부모를 보살피면서 마침내 이해하는 부모와 자식

부모는 병들었을 때에야,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인다

가족은 왜 배타적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기쁨도 있다

가족이 소멸하고 있다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가 가족

둘밖에 없는 가족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복을 강매하다

가족과 핏줄은 무관하다

 

4장 세상 떠난 가족에게 쓰는 편지

가족을 아는 것은 즉 자신을 아는 것

아버지에게 - 겨울 천둥

아버지에게 - 공직추방

아버지에게 - 당신이 남긴 것들

아버지에게 - 남자들의 싸움

아버지에게 - 땅에 추락한 우상

아버지에게 -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

아버지에게 - 주치의에게서 온 편지

아버지에게 - 악화

어머니에게 - 주고받은 편지들

어머니에게 - 모성에 관하여

어머니에게 - 반항

오빠에게 - 췌장암

오빠에게 - 뒤엉킨 실타래

나에게 -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

 

옮긴이의 말


출판사 서평

우리는 어쩌면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단란한 가족이란 환상을 좇고 있는 게 아닐까?

 

균형이 무너져 갈등에 빠진 가족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적으로든 서로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그리고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결 방법을 얻기 위해 전문가들을 찾는다. 가족과 관련한 각종 심리서나 상담 프로그램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이런 가족에게 다양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곤 한다. ‘대화를 좀 더 많이 나눠보세요’ ‘함께 여행을 떠나 보세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드세요등 불화의 원인을 알아본 가족 상담 전문가들은 가족에 따라 처방전을 주듯 해결책을 준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해결 방법 속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이렇게 하면, 가족은 다시 단란해질 것입니다라는. ‘단란한 가족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 부모와 형제가 다투는 일 없이 사이좋고 평화롭게 서로를 이해하며 사는 가족. 경제적으로도 웬만큼 풍족하고, 건강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가족의 이상향과 같은 이런 가족이 과연 정상적인 가족일까? 이 책의 저자는 만약 그런 가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면 오히려 섬뜩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은 사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함께 살고 있는 타인들일 뿐

조용한 냄비도 뚜껑을 열어보면 끓고 있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도 한 꺼풀만 열어보면 곧바로 문제가 드러난다는 얘기다. 문제가 없는 가족도 병을 앓고 있지 않은 가족은 없다. 모두가 안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남의 눈이 두려워 금슬 좋은 부부인 척하고 아이들 때문에 이혼할 수 없는 말로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아이의 인생도 불행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가족이라는 병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은 흔하디흔한 병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가족을 선택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첫울음을 울었을 때 이미 틀은 정해져 있다. 그 틀 안에서 가족을 연기한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역할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연히 한 가족 안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타인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서로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서로에게 기대를 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받은 상처들이 퇴적되어 불화와 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시모주 아키코 또한 어린 시절 가족과 불화를 겪었다. 시대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아버지, 예민한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 꿈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나약한 아버지는 늘 실망스러웠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을 절룩거리며 걷는 아버지를 발견할라 치면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집으로 향할 만큼 아버지와 한자리에 있는 것조차 싫었다.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망스러운 아버지 옆에서 그림자처럼 돕는 어머니. 자신의 인생도 없이 저자 자신에게 유형무형의 애정을 쏟아붓는 어머니는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와 주먹다짐까지 벌일 만큼 사이가 좋지 못했던 탓에, 할아버지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각자 사회생활로 흩어져 동네 이웃보다도 소원한 사이가 되어갔다. 세월은 너무도 금방 지나갔고 저자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를 이해하기도 전에 차례로 가족들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저자는 묻는다. ‘나는 그들을 이해했을까. 도대체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아이로니컬하게도 저자는 모든 가족이 죽고 나서야 그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졌다. 책은 저자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아이 없는 부부, 늦은 나이에 이혼한 친구,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중년의 자식, 늙은 자식과 살아가는 부모, 혼인이 아닌 파트너를 선택한 사람들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는 가족들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단란해야 한다는 환상을 독자들의 눈에서 걷어낸다. 또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름길이자 가족이 가족답게 살아가게 하는 길이라고 독자를 차근차근 설득한다. 저자의 글은 가볍게 흘러가지만, 책장을 넘기는 건 무겁기만 하다. 마치 내 가족을 말하는 듯한 사례에 공감하고, 문제를 절감하며,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지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족을 아는 것은 결국 나를 알기 위한 것

물론 가족은 완전한 타인은 아니다.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인만큼 반드시 서로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사고하는 방식부터 행동하는 순서까지 우리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다. 특정한 날씨에 특정한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가족이 그것을 사온다든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같은 부분에서 똑같은 말을 했다는 등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평생 증오했음에도 자신 또한 부인에게 손찌검을 하는 소름끼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닮는다는 말은 단순히 외모나 성격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이 남자를 선택했어요.”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평생 일을 하면서 살 겁니다.”

 

흔히 들어온 이런 말들은 모두 가족이 알려준 삶의 행로였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병은 가족 각각이 서로를 이해하고 타인인 걸 인정하는 순간 치유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가족 문제를 꺼낸 저자는 다시 자신의 가족 이야기로 돌아온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족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저자는 가족들이 죽고 나서야 보낼 수 없는 편지 속에 솔직한 마음을 담는다.

 

결국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를 알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쓴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가족을 아는 것은 즉 자신을 아는 것이다.’

 

저자는 깨닫는다. 이렇게 편지를 씀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노라고. 살아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던 가족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저자는 비로소 가족을 알게 되었노라고. 그러면서 평생을 마음속에 두고 말하지 않았던 가족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 바람과 후회가 저자를 지금의 모습으로 살게 한 삶의 이정표였다는 것도 말이다. 물론 텔레비전의 주말 드라마처럼 온갖 불화 속에서도 마지막에는 용서한다는 빤한 결말로 끝맺지는 않는다. 신념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를 원망스러워한 만큼, 저자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단지 이제야 가족을 알게 된 것. ‘용서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은 가족을 타인으로서 이해하는 순간, 가족은 닮는다는 통념도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책속으로   

사람은 함께 산 배우자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형태로 종지부가 찍힌 후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고는 좀 더 대화를 나눠볼 걸 그랬다, 얘기를 들어줄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그러나 가령 살아 있을 때 대화를 나누고 얘기를 들어주었다 한들, 그래서 과연 이해가 깊어졌을까. 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배우자 역시 타인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인이다. 가족은 생활을 함께하는 타인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홀가분하다. -부부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현대인은 도리어 용기가 없다. 사람의 이목이 두려워 금실이 좋은 부부를 연기하고,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생활을 그대로 유지한다. 개중에는 참고 사는 자신에게 취해 있는 사람도 있다. 자식이 성장할 때까지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이혼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다. 그런 부부를 자식은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억지를 부리는 것은 자식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의사를 정하고 결단을 내려야 마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을 위해 이혼하지 않는 부부가 많다고 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서로 참고 살면, 자식은 이를 금방 감지하는데 말이다. ---자식을 위해 이혼하지 않는다는 정당한가중에서

 

혹자는 도시에서 홀로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비참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당사자는 혼자 사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자유롭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뒷수습을 해야 하니 세상에 누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나, 당사자가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홀로 죽는 것은 각오한 일일 터다. 조금씩 먹는 것을 줄이다가 나중에는 물만 마시고, 마지막에는 물마저 마시지 않고 죽는 방식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객사라고 여겨지든, 각오하고 하는 일이라면 무방하지 않을까. 마음이 없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 것보다는 홀가분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 사람답게 죽을 수 있다면 그런 방식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독사는 불행이 아니다중에서

 

가족도 각 개인의 집단이다. 부모와 형제의 집단이 아니다.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는가 하면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들러붙어 상대가 보이지 않게 되거나 배타적이 되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중에서

 

부모는 부모라는 역할과 입장 때문에 참모습을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 건강할 동안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부모의 참모습을 끝내 알지 못한다. 자식은 성장해서 부모를 떠나고, 또 부모를 넘어서는 것이 보통이라 솔직한 태도를 보이기가 어려워진다. 형제 역시 새로운 자기 생활이 벅차, 가족이 가족으로서 서로 협력하고 돕는 일도 점차 없어진다. 과거의 대가족처럼 전부 모여 살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핵가족으로 가족이 단출해진 현대에는 형태뿐인 가족, 부모, 형제가 되고 말았다.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영원히 상실된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부모를 보살피고 병 수발을 하는 상황이 가족이 대화를 재개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이다. ---부모는 병들었을 때에야,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인다중에서

 

왜 너는 가족을 스스로 거부했을까. 가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어.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보호하는 관계와 안이한 감정에 잠겨 위로를 찾는 그 거짓됨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또 아이를 낳아, 어머니와 똑같이 애정에 이끌려 다니는 자신의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겠지.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부모가 되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너는 성장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면면하게 이어지는 자연계의 흐름, 봄이 되면 마른 땅속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현상,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깊은 땅속에는 봄을 기다리는 무수한 생명이 있잖아. 그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가 끔찍해서 너는 그냥 너이고 싶었던 거야. ---나에게 쓰는 편지: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중에서

 


 

가족의 두 얼굴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저자 최광현|부키 |2012

저자 최광현은 한세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이자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 그는 우리 마음에 생긴 가장 깊은 상처는 대부분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족 안에서 겪는 문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경험하는 불행, 낮은 자존감, 불편한 인간관계 등의 뿌리가 가족 안에 있다고 보고 오랜 기간 가족 문제에 대해 공부하였다. 연세 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가족상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가족치료의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트라우마를 통한 가족치료를 전공하였다. 트라우마 가족치료는 부부 서로가 자신이 나고 자란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때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에 주목한다. 이후 독일 본 대학병원 임상상담사와 루르(RUHR)가족치료센터 가족치료사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의 수많은 가족들이 안고 있는 갈등과 아픔을 목도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과 마음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은 국경을 초월해 어디에나 많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트라우마가족치료 연구소장으로 수많은 가족의 아픔을 상담해 왔으며 트라우마 가족치료 보급과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 치유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가족세우기 치료가 있다.

 

목차

                

가족의 두 얼굴

시작하며 가족 문제는 1+1이다

 

part 1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다

현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아이

둘째가 더 예뻐 보여

아버지를 대신할 남편을 찾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여도 외롭다

나는 늘 외롭다

결혼이 외로움을 해결해 줄까?

어린 시절 외로웠던 남편

상처 받았을 때 누구를 찾는가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 가족

마음의 상처는 몸에 흔적을 남긴다

몸에 각인되는 상처의 기억

트라우마가 많을수록 스트레스에 민감해진다

마음 상처에 붕대를 감자

너무나 익숙해서 편안한 불행

버림받음에 대한 불안

어린 시절 고통을 반복하려는 강박

자기와의 대화

무관심한 남편의 비밀

현실을 잊기 위해 환상에 빠진다

형제 간 우애라는 가족 최면

내가 자란 가족으로의 회귀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

부모의 불행을 반복하다

 

가족 심리 cafe #1 가족과 트라우마

감추고 부정할수록 더 커지는 상처

 

part 2 배우자 선택의 숨은 이유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

그녀가 킹카를 버린 이유

아내는 나의 흑기사

귀향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상처를 피하려다 더 큰 상처를 만나다

사랑이 너무나 어려운 여성

글쓰기로 내면아이와 대화하기

나는 당신의 엄마가 아니야

서로에게 심하게 의존하는 관계

마마보이와 파파걸

분리와 독립은 결혼의 전제

 

part 3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

가족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가족 전체를 보면 문제가 보인다

부부는 어떻게 화해했을까?

가족 체질을 바꾸면 변화가 온다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

수치심과 죄책감을 부르는 가족 비밀

비밀을 인정하는 순간 실마리가 풀린다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

숱한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지만 근원은 하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가족 질서

문제 가족 안에는 희생양이 있다

가족 희생양 메커니즘, 문제아 vs. 영웅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은 철저히 망가졌어요"

임시변통에 불과한 가족 희생양

가족 착취라는 괴물

가족을 힘들게 하는 사람

과거 상처를 해결하려는 무의식의 악순환

바람피우는 남편

가정에 충실한 남성이 바람피우는 이유

아내는 가족일 뿐이다

외도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배우자의 배신이라는 트라우마

가족 간 보이지 않는 삼각관계

불안이 심할수록 삼각관계로 해결하려 한다

"엄마, 이제 이혼할 수 있어"

우리 집에도 삼각관계가 있다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은 아들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들의 공통점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

잊는다고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작동되는 방어기제

가족을 나의 아바타로 삼고 있다?

행동 패턴에 이름을 붙여라

 

가족 심리 cafe #2 가족과 방어기제

어린 시절의 아픔은 자국을 남긴다

 

part 4 행복한 가족의 비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다

자기애는 어떤 슬픔도 이겨 내게 한다

건강한 자기애는 자존감과 연결된다

내 안에는 '면박꾼'이 살고 있다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홀로서기를 잘할수록 가족이 행복해진다

때가 되면 독립이 필요하다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어머니

결혼생활까지 망칠 수 있다

자녀의 독립을 막는 이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소통의 힘

대화가 낳은 작은 기적

아버지의 눈물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가감정이 드러나는 소통

자기 감정을 인정하는 용기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 통장

부부 사이의 관계 통장

사랑이 일방통행 되면 관계는 깨어진다

가족과 감정적 거리 두기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 vs. 건강하지 못한 사람

자아분화가 낮은 부부

긴장과 갈등을 푸는 열쇠는 나 자신에게 있다

가족으로 산다는 것

편한 것만 찾으려는 아이들

세상을 향해 나아갈 힘을 주는 곳

 

끝내며 노력하는 만큼 행복해지는 가족

 

출판사서평

저마다 건드리면 툭 터지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

내 안의 상처와 가족,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

 

하루를 보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 가족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긴장, 벗어나고 싶은 욕구나 이유 없이 외로워지고 슬퍼지는 까닭이 궁금했다면 이 책을 펼쳐 보자.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가족에게 있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자기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훼손되고 그 일그러진 자아로 사회생활을, 가족을 꾸려가기 때문에 갈등과 아픔이 반복되고 증폭된다. 그러는 사이 어린 날 상처는 각질처럼 굳어간다.

 

가족에 관한 다수의 책들은 현재 가족 사이에서 생긴 갈등의 원인을 가족 사이의 관계 패턴이나 의사소통에 원인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저자는 현재 가족 사이가 일그러진 이유를 가족의 중심인 부부 각자가 자신이 나고 자란 원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제대로 극복하거나 들여다보지 않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데 있다고 보고 어린 시절의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지금 가족의 아픔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는 가족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가족치료를 통해 자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독일과 우리나라에서 가족치료사로 활동하면서 따뜻함보다는 가족으로부터 비롯된 슬픔과 아픔,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을 더 많이 만났다고 고백한다. 서로 아끼고 보듬고 사랑을 키워야 할 가정이 잘못하면 불행의 싹을 자라게 하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오늘날의 가족이다. 이 책은 가족이 갖고 있는 두 얼굴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로 지금 내 가족이 아프다!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낸 어느 남편은 늘 일을 우선시하고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 스스로 가족과 거리감을 두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때 상처 입은 내면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상처 받은 아이는 성장하기를 거부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여인도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거나 버림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집착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받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은 채 가정을 꾸리면서 자기파괴적 행동까지 낳았고 과거의 불행을 현재 가족에서도 반복하고 있었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상처, 즉 트라우마는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일까. 그렇지는 않다. 상처가 났을 때 붕대를 감듯 마음속 상처가 무엇인지 직면하고 그곳에 붕대를 감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고통을 반복하려는 무의식적 강박이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며 상처를 직시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내 마음속 상처가 어디인가 : 그곳에 붕대를 감자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 지긋지긋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빙산과 같아서 겉으로 보이는 빙산만 볼 게 아니라 그 아래 커다란 얼음 덩어리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그림자 아래 있는 가족의 감정과 요구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가족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문제와 갈등이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혹 가족 환경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가족의 위계질서에 혼란이 와도 가족이 흔들린다?' '우리 집에도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뭘까.' '가족 안에도 보이지 않는 삼각관계가 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들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각자가 갖고 있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 우리는 어떤 방어기제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나.' 이 밖에도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심리학적 시선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문제가 있는 부부와 가족을 치료할 때 기본 전제가 있다. 가족 문제는 각자 배우자가 어린 시절 경험한 부모의 결혼생활과 그때 받았던 상처와 지금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문제가 1+1로 합쳐져 불만과 짜증, 분노로 일그러진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가족 모두가 이 사실을 이해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고 존중하는 데서 막혀 있던 문제를 푸는 길이 보인다. 그 실마리를 찾아가는 마중물은 자기애를 되찾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거부당하고 사랑받지 못해 자기애가 부족한 상태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쉽게 상처 받고 좌절한다. 이런 사람 안에는 '면박꾼'이 존재한다. 자신의 잘못을 확대해서 지적하고 무엇인가를 하려 들면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내 안에 있는 면박을 주는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면박꾼의 소리를 나 자신과 분리하면 서서히 면박꾼이 사라지면서 자기애와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다. 불행한 부부관계와 힘든 자녀관계를 푸는 열쇠는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가족의 두 얼굴] 어느 곳을 펼치든 우리네 가족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가족들의 사례와 더불어 저자가 겪은 솔직한 상처 고백이 펼쳐진다. 그들의 상처를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와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내 안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 치유가 감기 낫듯이 한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오는 고통도 분명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노력이 될 것이다. 왜냐면 가족이니까!

 

책속으로   

가족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였는가는 평생 동안 간직될 감정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어린 시절 경험한 외로움이 평생 지속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형성하게 될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되며 이것은 친구, 연인, 부부, 자녀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관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찍어 내는 붕어빵 틀이라 할 수 있다. 가족관계가 어떤 틀이었는가에 따라 이후의 수많은 인간관계가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외로웠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외롭게 느끼고 일상 속에서 외로운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외로움을 느낄 때 이 외로움이 자기 내면에서 온다는 사실을 모른다. 대부분 자신의 환경이나 가족, 주변 사람을 탓하기 쉽고 자기 자신이 외로움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모른다.

 

가족에게 소속되지 못하고 거부당한 경험을 반복한 사람은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스스로 무가치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커서 가정을 꾸리면 이런 심리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일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쳐지는 행동을 낳는다. 사실 속마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모를 뿐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최면을 의식과 무의식에 형성한다. 부모의 가치와 신념을 무조건 믿으며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산다. 부모의 명령과 수많은 무의식적인 암시들, 즉 예를 들면 '너는 공부에 소질이 없어.' '너는 언니보다 못해.' '무조건 일찍 들어와'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이런 관념들은 깨어질 때까지 절대적 최면으로 작용한다. 최면은 부모와 자녀 사이, 부부 사이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최면 상태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장해서 집을 떠났을 때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건강하게 분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메시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녀가 이야기를 하다가 두 사람이 자라온 배경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가까운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비슷한 습관을 지녔다. 이를 확인한 순간 두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한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라는 느낌이 확 다가온다. 그런데 심리학적으로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상대방 자체에 대한 호감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상대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랑의 본질은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라고 말한다. 남녀가 서로를 낯설게 여기지 않으면, 즉 상대에게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면 편안해지고 끌리는 것이 사랑의 일반적 법칙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형적인 모습에만 끌리지 않는다.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에 경험한 내 가족의 모습을 재현해 줄 사람에게 강하게 끌린다.

 

상담실에서 마주한 진혁 씨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이제 서른을 넘기는 그는 30년 동안 한번도 자기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진혁 씨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분이다. 너무나 가난해서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름대로 성공을 했지만 공부에 대한 한이 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가정 형편으로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셋째를 자신이 못 다한 꿈을 이루어 줄 아들로 여겼다. 아버지에 의해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지만 동기가 부족한 아들은 번번이 떨어졌다. 고시 공부에 지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에 취직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회사를 그만두고 고시를 준비하라고 윽박지른다. 자신의 인생을 빼앗아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 한편으론 아버지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진혁 씨는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또 다투게 된 부부는 늘 그랬듯 서로의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싸움을 계속하였다. 마침 부인은 임신 상태였다. 꼬박 하루 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대치하는 와중에 갑자기 하혈을 시작했다. 놀라 병원으로 향했지만 그만 아이를 사산하고 말았다. 이 일은 부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왜 이 부부는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을까. 부부싸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싸우는 방식이 문제였다. 힘든 결혼생활과 잘못된 싸움 방식을 가진 부부들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쳀 있다. 그것은 자아분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여성파산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여성의 삶/ 저자 이이지마 유코|역자 정미애|매경출판

원제 ルポ 貧困女子

 

대한민국 여성들의 유리천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 회원국 28개국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25.6점을 받아 꼴찌를 차지했다. 실제 노동임금 비율로 따져도 성별 임금격차가 크다.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은 63.3%에 불과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정규직 근로자의 급여가 남성 비정규직보다도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여성 정규직의 실제 근로시간은 182시간으로 남성 비정규직의 138시간에 비해 매월 44시간을 더 일하고 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커서 문제지만, 남녀 차이가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2000년부터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여성이 자녀 양육과 가사 노동까지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여성은 차별 가득한 노동시장에서 그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계속 저평가되고 있다. 특히 성별에 따라 주로 일하는 직종도 분리되어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여성 가구주가 꾸준히 늘면서 빈곤율도 늘고 있다. 2012년 현재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의 절대 빈곤율은 20.1%인 데 비해 남성이 가구주인 가구 절대 빈곤율은 5.1%로 젠더 격차가 4배나 된다. 노동자 1,742만 명 가운데 442만 명(25.4%)이 저임금 계층이고 여성 노동자의 40%가 저임금 노동자다. 여성 전체 노동자의 약 40%일을 해도 가난한근로 빈곤계층인 것이다

 

저자 이이지마 유코(飯島裕子)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르포르타주 작가. 히토쓰바시대학교에서 사회학연구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졸업 후 잡지 편집자로 활동했고 현재는 대학교의 비상근 강사로 일하며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신문과 잡지 등에 르포르타주 글을 주로 기고하는데 세심한 인물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가 정평 나 있다. 빅이슈일본판 및 부인공론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있다. 특히 빅이슈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며 일을 할수록 더 가난한여성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에 4년 동안 수십 명의 여성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엮었다. 이 책에서는 젊은 층의 실업문제와 뿌리 깊은 남녀 차별, 그리고 이에 더해 일과 결혼, 출산과 육아까지 개인의 몫으로 짊어진 여성들의 삶을 심도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젊은 노숙자 르포》 《99명이 만드는 작은 미래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_ 당신은 여성의 가난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01 가족이라는?위험한?안전망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현실

패러사이트 싱글의 쇠락

바늘방석 같은 본가살이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거리를 헤매는 여성 노숙자

마음 붙일 곳이 못 되는 집

관계성의 빈곤

동거의 함정

 

02 ‘가사라는?말로?포장된?가난의?그늘

중퇴를 계기로 접점을 잃은 사람들

니트족이나 은둔형 외톨이는 남자뿐인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막막해진 가족들

취업 전부터 발생하는 문제

사이타마 현의 대처

 

03 정규직도?고달프다

쓰러질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노동 환경

신입사원을 착취하는 기업들, 미끄러지듯 추락하는 사람들

먹고살려면 결국 어쩔 수 없었어요

증가하는 정신장애와 직장 내 괴롭힘

요령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괴롭힘을 당했어요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통한 취업

정규직이 되기는 했지만 비정규직보다 못한 것 같아요

 

04 비정규직이라는?악순환

학력이 낮으면 생존 확률이 떨어지는 사회

더욱 험난한 중퇴자의 삶

고학력 워킹푸어에 숨어 있는 현실

관제 워킹푸어

끝없는 구직 활동, 과연 끝이 있는 걸까요

불의의 질병과 비정규직 미혼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의 그늘

 

05 결혼과?출산의?압박

아이를 낳는 건 꿈에서나 가능할 것 같아요

오히토리사마의 등장

패배한 개조차 될 수 없다

무연사회, 지진, 유대

일억총활약사회가 지향하는 육아 지원

우등생이 아니었던 여동생이 여자로서는 더 행복하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

결혼조차 불리한 비정규직

극단적으로 낮은 혼외자 출생률

 

06 여성?분리

경력, 남편, 자식, 아무것도 없다

여성들끼리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일반직 감축이 초래한 것

여성을 위한 권리는 과연 여성을 위한 권리가 맞을까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들

갈수록 깊어지는 고립감

존재하지 않는 존재

위로 밀어 올리는 압력

빈발하는 정신적 문제

 

07 ?줄기?빛을?찾아서

가난하지만 충실한 삶에 가려진 함정

빈곤이란 무엇인가?

노동 문제를 들여다보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의존하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붕괴와 의식의 괴리

여성의 가난을 넘어서

 

맺음말_ 고달픈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출판사 서평

 

여성에게 더 가혹한 노동 환경 그럼에도 여성 문제가 외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처럼 여성 문제가 심각한데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나은 혜택을 받는 일은 결코 없다. 또한 여성의 빈곤은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오히려 남성보다 빈곤율도 높고 상황도 더 나쁘다. 가난은 각자 사람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태지만 빈곤이 문제가 되는지 여부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더라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 독립했지만 미혼인 여성, 결혼한 여성, 그리고 한부모가정을 꾸린 여성의 경우가 각각 다른 생활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남성이나 노년의 빈곤이 비슷한 양상을 드러내며 사회적 관심을 받았던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빈곤과 생활상이 잘 잡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지은이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여성들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다.

 

일본 역시 2000년대 이후 고용의 비정규화가 진행되면서 일하는 사람 중 3분의 1이 비정규직이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기업들은 2014년부터 3년 연속 임금 인상을 실시하고 있으나 비정규직 고용률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특히 청년 고용의 비정규화가 현저하며, 그중 가장 심각한 지점은 젊은 여성의 비정규화다. 예전에는 10% 정도였던 젊은 여성(15~24)의 비정규직 비율은 현재 무려 40%에 달한다. 특히 비정규직 고용률은 학력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5세부터 34세 여성 중 고졸까지(중졸, 고교 중퇴 포함)의 학력인 경우 비정규직 비율은 60%에 가까웠으나, 대졸 이상인 경우에는 30% 정도에 머물렀다. 대한민국에서도 11개월 근로 후 11개월 재계약이라는 비정상적 방법이 동원되고 있어서 현재 한국과 일본 모두 여성은 법의 영역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정규직은 임금이 낮고 해고가 쉽다. 게다가 고강도 노동이나 성희롱 등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취약했다. 비정규직은 계약기간 갱신이 상사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성희롱을 당해도 어떤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

 

여성의 노동 환경을 파악하고 미래를 논의하다

여성의 생애주기를 고려할 때 남성과 다른 큰 특징 중 하나는 임신과 출산이다. 하지만 지금은 10대에 아이를 낳아도, 40대까지 출산을 미뤄도 비난하는 세상이다. 일본 정부 역시 출산율이 1.57까지 떨어지며 일명 ‘1.57 쇼크를 맞은 뒤 여러 방안을 구상했다. 여러 제안이 실패한 후에야 저출산 해결을 위해선 기존의 보육 지원뿐 아니라 여성의 임금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앞에서도 말했듯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37%를 넘어섰고,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56%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만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저출산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닌다. 일본 정부는 희망출산율 1.8을 위해 일하는 방식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즉 동일임금 동일노동, 장시간 일하지 않는 새로운 노동 시장, 65세 이후의 노동 장려 등을 두루 고려하고 있다. 또한 201612월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을 금지하는 정부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미혼율 증가와 저출산의 큰 요인으로는 젊은 남성의 고용 불안도 하나의 원인이다. 실제로 남성의 수입과 혼인율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입이 낮은 사람일수록 미혼율이 높으며 수입이 높은 사람일수록 미혼율이 낮다. 이 통계는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또 일본국립인구문제연구소가 2010년 실시한 제14회 출생 동향 기본조사에서는 결혼의 걸림돌로 남녀 모두 40% 이상이 경제적 문제를 들었다. 여성의 경우 남성만큼 현저하지 않지만 정규직 여성이 비정규직 또는 무직 여성에 비해 혼인율 및 출산율이 높다. 가계경제연구소의 10년에 걸친 패널조사에 따르면, 25세일 때 미혼이었던 여성 중 정규직이었던 여성이 무직 또는 프리터였던 여성보다 결혼할 확률은 물론 출산할 확률도 높다. 이처럼 저출산을 벗어나고자 대책을 세운다면 먼저 혼외자 차별을 없애고 비혼모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여성파산은 현재 여성의 현재 지위, 노동 현실, 삶의 고통을 인터뷰를 통해 세심하게 들여다보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전반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개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여성의 빈곤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상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는 별도로 지역 단위에서 제공 가능한 지원들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가난함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여성들을 가시화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제대로 된 직장도 안 다니는 주제에, 세금도 제때 못 내는 주제에, 결혼도 안 한 주제에, 자식도 없는 주제라고 비난하는 태도를 버리고 각자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삶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회를 모두가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은 동정이 아닌 국가의 의무이자 시민의 의무이다. 여성의 가난은 실존하고 더 이상 모른 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책속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가만히 집에서 숨만 쉬어도 집세, 전기료 같은 건 내야 하니 청구서가 순식간에 밀리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간 전기와 가스도 끊겨 집에서 쫓겨나겠다 싶어 허둥지둥 일자리를 찾았죠.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단란주점이나 출장 접대 같은 유흥업소 일이었어요. 보통 단란주점이 문턱이 낮은 편이지만 여자들만 있는 의류회사에서 실패한 직후라 다시 비슷한 회사에 갈 자신이 없어 출장 접대를 생각했죠. 근데 도무지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번호를 눌렀다 끊었다 하고…….”---먹고살려면 결국 어쩔 수 없었어요 중에서

 

노동재해 보상 청구 건수 중 정신장애로 인한 경우는 1999년 이후 대폭 상승하는 추세다. 1998년에는 42건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 1,257건으로 30배 가까이 팽창한 것이다. 과로사 인정 건수도 2007년을 기점으로 정신장애(과로자살) 관련 건수가 뇌 및 심장질환(과로사) 관련 건수를 웃돌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신장애로 인한 노동재해 청구가 1999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개정되면서 노동기준법의 여성보호규정이 철폐되었기 때문이다. 남녀 모두 장시간 노동과 야간 업무가 가능해진 해이기도 하다. 또 성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성과주의를 도입한 것도 이 해다. 그 뒤 경기가 나빠지면서 비정규직이 증가했고 직장은 정규직, 계약직, 비정규직, 시간제, 일용직 등 고용 형태에 따른 분리가 진행 중이다. 누구나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자신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 타인의 안 한다’, ‘못 한다는 반응을 용납할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직장에서의 성희롱과 괴롭힘은 묵인되고 용인되었다. ---증가하는 정신장애와 직장 내 괴롭힘중에서

 

빙하기 세대 3016명이 비정규직만 경험해보았다혹은 취업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학력을 보면 중졸 3, 고교 중퇴 4, 고졸 3, 전문대 중퇴 2, 전문대·전문학교 졸업 2, 대졸 2명이다. 대졸자 2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일부러 비정규직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한편 정규직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원 대졸이었다. 학력이 비정규직 고용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더욱 험난한 중퇴자의 삶중에서

 

2000년대 이후 고용의 비정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청년층의 고용 상황이 악화되었다. 그 영향을 현저히 받은 것이 바로 젊은 남성이었다. “지금까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으로서 고용과 임금이 보장되던 남성은 고용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자꾸 밑으로 밀려 내려갔어요. 남성이 아래쪽으로 배제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면 여성에게는 정반대로 위로 밀어 올리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죠.”---빈발하는 정신적 문제중에서

 

또 가처분소득이 낮지만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여성이 빈곤층이라면 전업주부는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지적도 받는다. 맞는 말이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빈곤과 아주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아무리 고소득자일지라도 남편과 이혼한 뒤 직장은 물론 의지할 가족도 없다면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의 높은 빈곤율을 보면 알 수 있다. ---빈곤이란 무엇인가?중에서

 

먼저 고용 문제부터 살펴보자. 현재 남성 일반 노동자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 일반(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70.9, 여성 아르바이트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50.5밖에 되지 않는다(후생노동성, 임금 구조 기본통계 조사, 2012).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줄여가는 일은 중대한 과제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무직자가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며 생활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게 된다면 물질적 빈곤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고용이 안정된 일자리 대부분은 학력이나 경력, 나이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저학력 여성들은 그만큼 불리한 상황이다. ---노동 문제를 들여다보다중에서

 

더욱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대중의 감시에 노출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빈곤층이라며 TV에 방영된 사람의 물건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다가 이 정도도 갖고 있으면서 무슨 가난 타령이냐라고 지적하거나 생활보호를 수급하는 주제에 맛있는 밥을 먹다니 어처구니없다고 비난하는 경우다. 때로는 이러한 비난에 정치인이 앞장을 서기도 한다. ‘도움을 받아야 할 가난한 자, 약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하게 처신해서 동정을 사야 한다. 그러나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강조하는 헌법 25조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누구나 생존할 권리가 있다. ---여성의 가난을 넘어서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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