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이성근 2021. 8. 30. 12:52

조선식물향명집주해서

조민제·최동기·최성호·심미영·지용주·이웅 지음, 이우철 감수 l 심플라이프 l2021.08.

 

 

저자 : 조민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29기를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식물학사를 연구하고 조선식물향명집내용 소개와 변론에 주력하고 있다. 공저 논문으로 조선식물향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가 있다.

 

저자 : 최동기 경북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T에서 상품기획과 전자상거래 업무를 담당했다. B2B MARKETPLACE ()엔투비 설립 멤버로 마케팅 본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가전·전기전자 제품 유통사인 ()해밀 대표이다. 식물 탐사와 공부에 심취해 있으며 식물의 동정이나 식물명의 유래에 대한 칼럼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저자 : 최성호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산림환경을 전공했다. 현재 아시아산림협력기구에서 국제협력사업 담당 전문관으로 일하면서 녹색아시아 실현을 위해 아시아 전역을 누비고 있다. 식물 동호회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설립해 자연보전과 우리 나라 야생식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공저 논문으로 조선식물향 명집 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가 있다.

 

저자 : 심미영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부동산정책을 전공했다.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원예학을 공부했으며 시민정원사로서 학교숲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의 주요 자생식물 분포지를 찾아다니며 식물생태 사진을 촬영하고 식물 동호회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식물분류학 공부와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저자 : 지용주 강원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업계에서 설계·시공 실무를 하고 있다. 현재는 자연환경기술사를 취득하고 조경과 생태복원 현장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며, 환경부 녹색 기술특성화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수년간 식물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

 

감수 : 이우철이학박사

1936년 충북 충주 출신으로 하은 정태현 박사의 문하에서 식물분류학을 공부했고, 강원대학교 식물학과 교수와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식물명고, 원색한국기준식물도감, 한국 식물명의 유래130여 편의 저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이 책을 직접 감수했으며 정태현 박사가 채집해 도쿄대학교에서 보관 중인 한반도 분포 식물의 기준표본(TYPE SPECIMEN)과 표본의 사진 자료를 제공했다.

 

목차

- 머리말

- 일러두기

- 조선식물향명집사정요지해설

- 조선식물향명집과명 차례

- 본문: 1,944종의 식물에 대한 ① 『조선식물향명집원문, 현재의 국명 및 학명, 국명 및 학명의 유래, 다른이름, 옛이름, 중국/일본명, 참고

-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에 대하여

- 조선식물향명집저자 소개

- 참고문헌

- 찾아보기(학명/한글명/한자명)

- 추천의 글: 이유미(국립세종수목원 원장)

- 추천의 글: 나태주(시인)

 

출판사 서평

■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출판 배경

조선식물향명집과 그 저자들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다

 

최근 식물의 한글명과 그 유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를 본격적으로 다룬 서적들이 출간되고, 식물분류학이나 식물생태학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도 이러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런데 항간에는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에 길들여진 식물학자들이 일제의 식물 자원 착취를 등에 업고 자신의 학문적인 업적을 위해 조선을 조사하면서 일본어로 지은 이름을 무비판적으로 번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근거 없는 말들이 떠돌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식물과 함께 생활하며 만들고 발전시켜온 우리말 이름인 광대나물’, ‘벼룩나물’, ‘벼룩이자리’, ‘등골나물’, ‘곰취’, ‘호랑버들’, ‘개불알꽃’, ‘등대풀등이 줄줄이 일본명의 번역어로 취급되는가 하면, 나라 잃은 슬픔과 원망이 쌓여 언중(言衆) 사이에 형성된 망초같은 이름은 비루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식물학에 대해 조금만 더 연구하고 조사했더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들이다.

 

이 책의 편저자들은 조선식물향명집이나 그 저자들에 대한 연구와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이런 근거 없는 평론에 맞서 조선식물향명집을 반복적으로 읽었으며, 방대한 자료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식물향명집이 과학으로서 식물분류학을 기초로 하고, 조선어학회와 교류하면서 우리의 전통적 식물명을 살리고자 한 민족적 자각의 결과물이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은 조선식물명휘에 기록된 개불알달에 어원을 둔 것으로, 꽃의 모양이 개의 불알과 유사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조선식물명휘개불알달에서 개불알은 꽃의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하며, ‘은 입술꽃잎의 원모양을 달()에 비유한 것 또는 땅속줄기로 번식하는 모습을 벼과의 달풀()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중국명이나 일본명과는 그 유래가 다르고 조선식물명휘에서 조선명을 별도로 신칭하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개불알달은 민간에서 부르던 이름을 채록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이 개불알달을 꽃의 모양을 강조해 개불알꽃으로 기록했다. ‘국가표준식물목록개불알이라는 이름이 부르기 민망하다는 이유로 원색한국식물도감에 기록된 복주머니란을 추천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난초과 식물을 총칭하는 영어명 orchid(포유류 수컷의 고환을 뜻하는 라틴어 orchido에서 유래)는 버젓이 사용하는데 굳이 우리말에서만 이를 꺼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_본문 385쪽 개불알꽃(복주머니란)

 

 

식물과 가까워지는 가장 쉬운 방법

식물의 이름을 알자.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면 더욱 쉽다.”

 

처음엔 그저 이름이 궁금했다. 눈에 띄는 풀, , 나무 사진을 찍어 식물도감과 비교해보곤 했다. 그러다 차츰 이름 유래에도 관심이 생겼다. 예를 들어 바람꽃이라는 꽃이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보니 학명에 ‘Anemone’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 꽃의 영어 이름은 ‘wind flower’. 학명과 국명에 전부 바람이 들어간다. 이런 걸 보면 또 궁금해졌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이런 이름이 생겨난 걸까, 아니면 한 이름이 먼저 생긴 뒤 그 영향을 받아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이름을 붙인 걸까.’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점점 더 많은 책을 뒤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났다. 일제강점기 책인데 라틴어, 일어와 함께 우리말 식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나왔지? 그 엄혹한 시기에 우리 식물 이름을 찾아 정리한 사람은 대체 누구지?’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또 공부가 이어졌다.”

 

위의 글은 이 책의 편저자 중 한 사람인 조민제가 한 인터뷰에서 식물학에 대체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까지 성실히 연구했는지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그렇게 처음엔 그저 이름이 궁금했고 차츰 그 이름의 유래에도 관심이 생겨 시작한 공부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게 됐다. 식물과 그 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생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생태를 배워가는 식물 애호가들이었다. 아마추어인 그들이 조선식물향명집을 읽고 또 읽으며 자료를 모으고 협의와 토론을 거듭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람꽃이라는 이름은 잎이나 꽃이 매우 가늘어 바람에 쉽게 산들거리는 데서 유래했다. 문헌상으로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표현으로 보이며, 직접적으로는 바람에 어원을 둔 학명 Anemone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한편 한불자전조선어사전은 큰 바람이 일어나려고 할 때 먼 산에 구름같이 끼는 뽀얀 기운을 뜻하는 고유어 보통명사로서 바람?’(風花)을 기록했는데, 포 위의 흰색 꽃 모양이 그러한 형태를 띠므로 이 역시 바람꽃이라는 식물명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한다._본문 655쪽 바람꽃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편저자들은조선식물향명집주해서인 이 책을 통해 식물이 사람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땅 위에 같이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점, 또한 언어 공동체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일깨우고자 했다.

 

 

우리 식물 이름의 뿌리를 알고 싶다는 절실함

조선식물향명집을 읽게 된 계기

 

이웃 나라 일본은 1940년대에 식물도감 기술의 한 부분으로 자국명(일본명)의 유래를 포함시켰다. 마키노일본식물도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식물명(한국명)을 도감이나 식물학 관련 문헌에 관행적으로 기재했을 뿐, 그 유래나 어원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았다. 충분히 해설되지 못한 식물명의 빈 공간은 소위 민간어원설로 채워졌다. , 이름이 생겨난 시대에 식물과 사람이 맺어온 관계와 언어 변화에 따른 역사를 추적하지 않고, 그저 현재의 관점과 언어로 얼기설기 엮은 해설이었다. 이 책의 편저자들은 우리 식물 이름의 뿌리를 알고 싶다는 목마름을 느꼈다. 이것이 조선식물향명집을 읽게 된 계기다.

 

 

56개월에 걸친 연구와 자료조사, 정리 그리고 3년에 걸친 편집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가 나오기까지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조선식물향명집에 표기된 식물명(국명)이 어떤 과정과 유래를 거쳐 형성됐는지 밝히고 조선식물향명집발간 이후 현재까지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를 추적하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의 편저자들은 조선식물향명집저술 당시의 과학으로서의 식물학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 이후 변화하고 축적된 국내외의 식물학 관련 연구 결과물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전국 각지의 식물 분포지를 찾아다니며 채록한 당시 조선인이 실제 사용한 이름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문헌과 식물 이름에 관한 방언, 그에 관한 기록물을 찾아 주요 도서관과 중고서점을 샅샅이 뒤졌다. 보충적 방법으로 사용한 옛 문헌상의 식물 이름을 확인하기 위하여 옛 문헌 자료를 검토했다. 관련성이 있는 경우 중국 문헌과 일본 문헌도 참고했다. 한국어, 옛말(고어), 영어, 라틴어, 중국어 및 일본어를 망라하여 검토했으며, 식물학, 역사학, 본초학(한의학) 그리고 언어학의 분야를 넘나들어야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원전만 300여 권, 고서적부터 근래 출간된 도서, 인터넷 정보까지 참고한 자료만도 수천 권에 달해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편저자 6명이 각자 주된 연구 파트를 맡아 검증과 집필을 한 후 그 내용을 모아 함께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집대성했다. 집필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최종 편집 과정까지 새로운 정보를 찾아 꾸준히 보강하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편저자들이 이 책에 들인 시간만 만 56개월, 별도의 편집 과정 3년까지 합치면 10년의 세월이 녹아든 책이다. 관련 자료를 찾느라 해외 도서를 뒤지고, 희귀본을 구하느라 책 한 권에 한 달치 월급을 다 쓰기도 했다. 편저자들의 서재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식물 관련 책과 각종 자료들이 넘쳐난다. 이사할 때 가장 골칫거리가 자료 도서일 정도다. 누구보다 식물을 좋아하고 더 알고 싶어하며 제대로 알리고 싶었던 아마추어들이 모여, 식물학계 전문가들도 시도하지 못했던 대작업을 시도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한국식물분류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우철 박사의 감수를 통해 책의 전문성을 높였다.

 

 

■ 『조선식물향명집은 어떤 책인가?

식물도감을 향한 과학적 토대로서의 식물분류명집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조선인 식물학자 4(정태현(鄭台鉉), 도봉섭(都逢涉), 이덕봉(李德鳳), 이휘재(李徽載))이 조선박물연구회에서 발간한 책으로 한반도에 분포하는 1436841,944종의 식물 이름을 기록한 식물분류명집이다. 조선인들이 조선명으로 된 식물도감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첫 걸음마이었다. 명실공히 우리 학자가, 우리 땅에 있는 식물을 근대 학문 체계에 맞춰 분류한 뒤, 우리말 이름을 적어 펴낸 사상 최초의 책이다. 여기에는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 1944종의 학명, 일본 국명, 조선 국명이 실려 있다. 학명에 근거해 식물명을 모아 기록했기에 본문은 라틴어 학명과 이에 대해 부여된 일본명, 실제 사용하는 조선명을 알파벳과 한글로 표기했다.

 

 

책속으로

망초라는 이름은 한자어 망국초(亡國草)와 같은 뜻으로, 이 식물이 들어온 뒤에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구한말에 들어온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어린잎을 식용했다. 조선식물명휘망국쵸, 망쵸로 최초 기록되었는데, 조선식물향명집은 그중에서 망초로 기록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37년에 발표된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에 따르면, ‘망초’, ‘망국초와 더불어 철도풀이라는 이름이 당시 경기 방언으로 불렸는데 그 중에서 망초를 보다 일반적인 이름으로 보아 조선명으로 채택했다. 망국초라는 유사어에 비추어 망초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풀이라는 뜻의 망국초의 축약어이며, 한국 식물도감(하권 초본부)은 한자를 亡草’(망초)로 표기해 그 뜻을 분명하게 했다. 국권이 일제로 넘어가던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식물이 국토를 휩쓰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느꼈을 참담한 심정이 식물명에 투영된 것으로,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시기를 상징한다. 동의보감, 물명고, 방약합편등에 한글명으로 기록된 망초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진범[Aconitum pseudolaeve, ?(진교)]을 일컫는 것으로, 뿌리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는 뜻의 網草(망초)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국화과의 망초와는 뜻이 다르다. 한편 한글명 망초가 亡草’(망초)라는 의미라면 이는 비루한 이름이라고 주장하면서 우거진 잡초라는 뜻의 莽草’(망초)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백성들이 느꼈을 심정을 반영한 이름을 비루하다고 할 수 없고, ‘莽草’(망초)로 사용한 근거도 찾기 어려워 타당성이 있는 주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p.1761, 망초중에서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은 꽃이 피는 모양이 울긋불긋한 것이 광대를 연상시킨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옛날부터 어린잎을 식용했다. 한편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 나물로 먹었다는 기록이 없다며, 광대수염을 참고하거나 일본명을 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조선의 구황식물조선산야생식용식물에 구황식물로 이용했음을 명기했고, 최근 국립수목원에서 지방명과 식물의 이용을 조사한 한국의 민속식물에서도 먹거리로 이용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방언에도 광대나물과 유사한 광대쟁이 등 변형어가 다수 있고, 19세기 초에 저술된 물보는 싸리가 아니면서 싸리와 닮았다는 뜻에서 광대ㅄㆍ리, 물명고는 꽃이 울긋불긋하다고 하여 광대쟈약’(광대작약)을 기록해 광대가 포함된 식물명이 옛 문헌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광대나물은 실제 민간에서 사용한 이름을 채록한 것으로 이해된다.--- p.1493, 광대나물중에서

 

쥐똥나무라는 이름은 작고 까만 열매를 쥐의 똥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다. 생울타리용으로 식재하고 목재로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열매와 나무에 기생하는 백랍충이 분비하는 흰색 납질(백랍)을 약용했다. 19세기에 저술된 오주연문장전산고鼠矢木 實如鼠屎故名”(쥐똥나무는 열매가 쥐의 똥과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이라고 기록했다. 물명고에 기록된 ‘??나모는 별칭으로 겨울에도 푸르다는 뜻의 冬靑(동청)을 기록한 점에 비추어, 활엽수인 현재의 쥐똥나무보다는 상록수인 광나무를 일컫는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제 민간에서는 현재의 쥐똥나무에 대한 이름으로 보다 널리 사용했고, 조선식물향명집은 실제 사용하는 향명을 조선명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이름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별칭으로 사용했던 女貞(여정)은 중국에서 전래한 이름으로 겨울에 푸른 모습이 여자의 정절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쥐똥나무를 천하게 부르는 식물명으로 보고 이를 고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검정알나무로 개칭했다가 최근에는 털이 있는 광나무라는 뜻의 털광나무로 부르고 있다.

--- p.1416, 쥐똥나무중에서

 

곰취라는 이름은 잎이 곰의 발자국을 닮았고 나물()로 먹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깊은 산에서 자라며 어린잎을 식용했다. 16세기의 한글명 ?19세기에 이르러 곰취(곰ㅊㆌ)’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된 곰취라는 이름은 직접적으로는 강원도 영월의 방언을 채록한 것이다. 옛 문헌에서 곰취에 대한 한자명을 熊蔬’(웅소) 또는 馬蹄菜’(마제채)라고 했는데, 웅소는 곰의 나물이라는 뜻이고 마제채는 말의 발굽을 닮은 채소라는 뜻으로, 잎의 모양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러한 한자명에 비추어볼 때 곰취라는 이름은 식용하는 잎의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훈몽자회에 기록된 ?라는 이름은 ?ㅂㆎ(??)’가 어원으로 은 잎의 모양이 곰의 발바닥과 관련 있다는 뜻이고, ‘?ㅂㆎ(??)’는 산야에서 자라는 먹을 수 있는 들꽃이라는 뜻의 고유어로 해석된다. 이후 방언형으로 계속 사용되고 현재 곤달비Ligularia stenocephala (Maxim.) Matsum. & Koidz.(1910)를 일컫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저술한 조선식물명휘곰츄로 최초 기록되었고, 일본명 ヲタカラカウ(?)의 수컷 ()과 곰을 뜻하는 ()의 한글 발음이 같으므로 곰취라는 이름은 일본명과 잇닿아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곰취가 조선식물명휘에 처음 기록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일본명의 수컷 ()과 발음이 비슷한 ()을 차용한 이름이라면 옛이름이 일본명을 차용했다는 기이한 결과가 된다. 그 외에 곰취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곰이 사는 깊은 산에 나는 취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견해와 곰이 뜯어 먹는 나물 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 p.1795, 곰취중에서

 

 

한국 식물 1944종 이름, 어디서 왔을까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독구말이란 동네에 오래 살았다. 정확한 뜻도 모른 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이름이었다. 독구말이, 도꼬말, 도꾸마리. 부르기로는 제각각이었다. 훗날 독구말어린이공원, 독구말지하도 따위로 자리잡았는데, 풀이름이라고 흘려듣거나 일본어에서 유래됐겠거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이번에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도꼬마리라는 풀이 많은 동네였던 것이다. 도꼬마리의 옛이름은 됫고마리또는 도고말이’. “약재로 사용하는 열매의 가시가 되(도로) 고부라져() 말린 모양 또는 머리 모양(마리)이라고 본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순우리말이었다.

 

글씨가 빼곡하고 표본사진들까지 심어둔, 20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의 부제는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1937년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은 조선박물연구회 소속 식물학자 4명이 지었다.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 1944(143, 684)의 이름을 사정(査定)해 기록한 식물분류명집이다. 우리 학자가 우리 땅에 사는 식물을 근대 학문 체계에 맞춰 우리말 이름으로 적어 펴낸 최초의 책이다.

 

다만 일제시대였다. ‘조선 이름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냐며 을러대는 일본인들에게 일본어 모르는 이들을 위해 조선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무마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명·조선명·일본명이 나열되었는데, 이를 두고 식물 이름의 창씨개명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그러나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의 저자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찾으려 한 과정이었다고 반박한다. 이 책을 주해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조선식물향명집>이 채택한 사정의 방식으로 식물명의 유래를 추적했다. 자료와 문헌을 최대한 끌어모으며 일본인의 저작도 배제하지 않았다. 기존 식물학뿐 아니라 국문학 관련 문헌도 살펴 정리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다양한 식물이름(학명, 일본명, 한자명, 조선명의 영문 표기, 조선명 등)을 달고, 오늘날 불리는 이름(국명)과 학명, 각각의 유래에 이어, 다른 이름과 옛이름, 중국명과 일본명, 북한명 등을 덧붙였다. 한국 식물 이름의 총정리인 셈이다.

 

이 책은 어디를 펼치든 아름다운 한글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바라보는 하늘지기, 부처가 앉아 있는 듯한 앉은부채, 얼룩덜룩한 얼레지, 비비 꼬인 비비추,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떠는 사시나무, 누런 색을 띤 느티나무, 신맛 나는 싱아, 덩굴로 꼬불거리는 꼭두서니. 개수염, 노루발풀, 벼룩나물, 병아리다리, 괭이눈, 범꼬리, 바늘꽃, 톱풀, 쥐똥나무처럼 직관으로 알아챌 이름들도 있다. 마늘, 살구, 다래, , 가지, 고추, 고사리처럼 친근한 먹거리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 방대한 벽돌책을 만든 사람들은 누굴까. 변호사(조민제), 가전 유통사 대표(최동기) 등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을 비롯해 산림자원학·원예학 등을 전공한 뒤 관련 국제기구에서 일하거나(최성호), 숲 봉사활동(심미영), 조경업(지용주), 식물원 관련 일(이웅)을 하는 이들이 56개월의 시간과 비용을 이 책에 쏟아부었다. 이 책을 감수한 이우철 박사(한국식물분류학회 전 회장)<조선식물향명집>의 제1저자인 정태현의 제자이기도 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최동기 제공

 

 

인터뷰-'식물 덕후' 조민제 변호사

무차별 왜색 식물이름 비판, 이제 끝내자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식물주권 찬탈 주장

일제강점기 우리말 식물도감 펴낸 사람들이 친일파?

조선인 과학 역량 키우려 했던 조선박물연구회의 정신

조선식물향명집저자들이 명명(命名) 대신 사정(査定)한 이유

광대나물, 쑥부쟁이, 곰취는 우리 이름

[김도균 기자]

시즌이 있다. 3·1, 광복절. 매년 이 무렵이면 일제가 우리 식물주권을 빼앗아갔다. 친일파가 거기 협조했다류의 이야기가 온·오프라인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된다. 기사가 나오고, 댓글이 달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광대나물’ ‘쑥부쟁이’ ‘곰취같은 우리 식물 이름에 친일딱지가 붙는다. 올해도 3·1절 직전 어김없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는데, 이제는 좀 그만해야 하지 않나 싶다.”

 

조민제 씨가 목소리를 높이며 한 말이다. 그는 변호사다. 금융 및 M&A 분야를 중심으로 20년 가까이 경력을 쌓았다. 법학 논문도 많이 썼다. 그런데 이날은 식물 얘기를 같이 해보고자 마주 앉았다. 지난해 12, 조 변호사는 한국과학사학회지에 불쑥 식물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조선식물향명집사정요지를 통해 본 식물명의 유래제목부터 어렵다.

 

- ‘조선식물향명집이 뭔가.

일제강점기인 1937, 조선인 식물학자 4명이 펴낸 책이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 1944종의 학명, 일본 국명, 조선 국명이 실려 있다.”

 

- 학명, 일본 국명, 조선 국명은 또 뭔가.

학명(scientific name)은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동·식물 이름을 뜻한다. 라틴어이고, 이탤릭체로 쓴다. 예를 들어 고양이 학명은 ‘Felis catus’. 이 동물을 한국 사람은 고양이, 미국 사람은 ‘cat’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한 국가 또는 언어권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을 국명(common name)이라고 한다.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의 학명과 일본 국명, 조선 국명이 나란히 적혀 있다. 일본 이름, 조선 이름이라고 해도 되겠다.”

 

일제가 강제 이식한 근대 식물학

- 변호사가 왜 그에 대한 논문을 썼나.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고 싶어서다. 식물을 좋아한 지는 꽤 됐다. ‘조선식물향명집을 비롯해 관련 분야 책을 많이 읽고, 필명으로 글을 발표한 일도 있다. 그런데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일제강점기에 우리 식물주권이 훼손됐다조선식물향명집이야기를 한다. 이 책 저자들이 우리 꽃, , 나무에 일본식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된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거다. 식물을 사랑하는 분 중에 이런 주장을 사실로 믿는 분도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 ‘조선식물향명집식물주권’ ‘친일이 어떻게 연결되나.

얘기가 길다. 차근차근 풀어보자. 인간은 오랜 세월 식물과 더불어 살았다. 아주 먼 옛날부터 풀과 나무에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 붙였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이 이름들을 표준화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게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 폭력적인 방식이라면?

일제에 의해서 말이다. 일본은 우리 국권 침탈을 앞두고 한반도 식물 수탈 계획을 세웠다. 조선에 있는 나무를 가져가려면 인부한테 뭘 베어 와라해야 할 텐데 조선과 일본 이름이 서로 다르지 않나. 그래서 강제병합 직전인 19105, ‘화한한명대조표(和韓漢名對照表)’라는 걸 만들어 고시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주요 수목의 학명, 일본 이름, 조선 이름을 정리한 거다. 이걸 발표하고 사람들에게 일본 이름 사용을 강제했다. 그런데 이게 한 번에 되겠나. 당시 우리나라는 표준어도 제정되지 않았을 때다. 같은 나무라도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 아예 이름이 없는 종류도 많았다.”

조선 식물명을 찾은 학자들

일제강점기 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속표지와 이 책을 공동 저술한 정태현, 이덕봉 선생(왼쪽부터). [동아DB]

 

- 이름이 없었다는 건 또 뭔가?

예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소를 키웠다. 아버지가 곧잘 내게 꼴 좀 베어 와라하셨다. 이때 이 뭔가. 한 종류인가. 아니다. 소가 잘 먹는 풀을 두루 꼴이라고 했고, 농촌 사람은 그게 뭔지 다 알았다. 하지만 개별 식물을 각각의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김매러 가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농사짓는 사람은 이 뭔지 다 안다. 하지만 그게 한 종류는 아니다. 여러 잡초를 뽑으며 김맨다고 했다. 식물 이름 표준화는 이렇게 뭉뚱그려져 있던 것을 종()에 따라 구별하고 각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는 작업과 같이 이뤄져야 한다.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가 18세기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 라틴어로 속명(屬名)+종소명(種小名)+명명자(命名者) 이름을 적어 학명을 붙이는 방식도 린네가 창안했다. 이후 곧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은 18세기 후반부터 근대 식물학을 받아들였다. 19세기에는 이미 그 방식으로 자국 식물을 다 정리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식물을 식용, 약용 등 기능 위주로 분류하는 본초학(本草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일제가 수목 수탈 등을 목적으로 한반도 식물 연구 및 명명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 앞서 조선식물향명집은 조선인 식물학자가 펴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일제가 우리 식물 연구를 독점하던 시절, 조선인 식물학자 4명이 이 책을 썼다. 1저자 정태현 선생(1882~1971)은 지금으로 하면 산림청 하급직원이었다. 서울농대 전신인 수원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산림국, 중앙임업시험장 등에서 일했다. 거기서 일본 식물학자 통역 등을 맡아하면서 어깨너머로 근대 식물학을 배웠다. 2저자 도봉섭 선생(1904~?)은 도쿄제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경성약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약대) 교수를 지낸 학자다. 3저자 이덕봉 선생(1898~1987)과 제4저자 이휘재(1903~1986) 선생은 각각 배화여고, 중동중 교원이었다. 이분들이 3년여간 100여 회를 만나 협의한 끝에 한반도 식물의 학명과 일본 이름, 조선 이름을 기록한 조선식물향명집을 펴냈다.”

 

- 그 책이 왜 중요한가.

우리 학자가, 우리 땅에 있는 식물을 근대 학문 체계에 맞춰 분류한 뒤, 우리말 이름을 적어 펴낸 사상 최초의 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 주제를 바꿔보기로 했다. 법률가가 식물학에 대체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까지 성실히 연구했는지 아무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조 변호사는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에게 일이 쏟아졌다. 기업구조조정과 M&A가 빈번하게 이뤄지는데 관련 분야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던 때다. 조 변호사는 한 달 중 퇴근하는 날이 5일 정도밖에 안 될 만큼 바쁘게 일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쓰러졌다. 과로였다. 병원 신세를 한참 졌다. 그때 한 지인이 등산을 권했다. 건강을 추스르려 산에 오르다 자연스레 나무를 보고 꽃을 보게 됐다고 한다. 2005년 무렵의 일이다.

 

- 그때부터 식물에 대해 공부한 건가.

처음엔 그저 이름이 궁금했다. 눈에 띄는 풀, , 나무 사진을 찍어 식물도감과 비교해보곤 했다. 그러다 차츰 이름 유래에도 관심이 생겼다. 예를 들어 바람꽃이라는 꽃이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보니 학명에 ‘Anemone’라는 단어가 있더라.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 꽃의 영어 이름은 ‘wind flower’. 학명과 국명에 전부 바람이 들어간다. 이런 걸 보면 또 궁금해지는 거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이런 이름이 생겨난 걸까, 아니면 한 이름이 먼저 생긴 뒤 그 영향을 받아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이름을 붙인 걸까.’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점점 더 많은 책을 뒤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났다. 일제강점기 책인데 라틴어, 일어와 함께 우리말 식물 이름이 적혀 있더라. ‘어떻게 이런 책이 나왔지? 그 엄혹한 시기에 우리 식물 이름을 찾아 정리한 사람은 대체 누구지?’ 궁금한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또 공부가 이어졌다.”

 

- ‘조선식물향명집은 어떻게 출간된 건가.

“1933627일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가 있다. ‘조선박물연구회창립을 알리는 내용이다. 조선인 과학자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며, 첫 사업으로 조선에서 나는 동·식물의 지방별 명칭을 조사해 통일시키고, 조선 이름이 없는 동·식물 이름은 새로 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 작업의 결실이 바로 조선식물향명집이다.

 

당시 조선에는 조선박물학회라는 연구단체도 있었다. 1923년 출범했고, 규모도 컸다. 그러나 회원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다. ‘조선식물향명집저자들은 조선인만의 학술단체를 따로 꾸려 우리 이름 만들기에 나선 사람들이다.

 

식물에 대충 아무 이름이나 붙이지도 않았다. 이 작업에 명명대신 사정(査定)’이라는 용어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사하거나 심사해 결정한다는 이 말 뜻 그대로, ‘조선식물향명집저자들은 우리 식물 분포지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 지역 사람 다수가 부르는 이름을 모으고 정리했다. 자작나무 사스래나무 거제수나무 물박달나무 같은 이름을 기록한 게 이분들이다. 1저자 정태현 박사의 경우 1911년부터 이 일을 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조선 식물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조선박물연구회에 모여 수많은 논의를 한 끝에 1937년 비로소 책을 펴냈다. 그런데 이분들을 보고 친일파라고.”

 

조 변호사는 이 이야기를 하다 잠시 목이 메었다.

친일학자라는 낙인

- 지금 갑자기 울컥한 것 같다.

“2015년 광복 70주년 무렵에 책이 한 권 나왔다. 우리 식물 이름이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됐다고 주장한 책이다. 그 책 저자가 이렇게 썼다.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에 길들여진 식물학자들이 일제의 식민적 자원 착취를 등에 업고 자신의 학문적인 업적을 위해 조선의 식물을 조사하면서 일본어로 지은 이름을 무비판적으로 번역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이 글을 읽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조선식물향명집저자들이 제국주의에 길들여졌다면왜 굳이 조선 이름을 찾으려 노력했을까. ‘학문적인 업적을 원했다면 왜 우리말로 책을 썼을까. 이분들은 당대 최고 엘리트로 일본어를 매우 잘했다. 그런데도 당시 조선어학회가 발행한 학술지 한글에 한글 논문을 발표하는 등 민족주의 활동을 했다.”

 

- 저자들이 일제강점기에 공무원, 교원 등으로 일했고, 일제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책을 펴낸 것은 사실 아닌가.

맞다. 일제에 협력한 면이 있다. 목숨 걸고 항일운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억압된 상황에서 조선인의 과학 역량을 키우고 민족정신을 지켜내고자 노력한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 일제 지배를 받은 대만의 경우 조선식물향명집같은 책이 없다. 라틴어와 일본이름만으로 식물도감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학자들은 어떻게든 조선 이름을 살리려 노력한 것이다.”

 

조 변호사는 조선식물향명집3저자인 이덕봉 선생이 1926년 배화여고 교지에 썼다는 글을 줄줄 읊다 또 한 번 목이 메었다. 코끝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가 소개한 글 내용은 이렇다.

 

인왕산은 뒤뜰 되고 사직단은 앞뜰 되어 뒤뜰에는 자연 생태 그대로의 고산식물원을 만들고 앞뜰에는 조선산() 식물을 모아다가 식물견본원을 설치하는 한편 (중략) 휴가면 조선 산야를 편답하여 식물채집과 조선명칭 수집에 힘써 조선명으로 식물목록과 식물도감을 편찬하다가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에 놀라 깨니 남가일몽.”

 

- 이런 걸 어떻게 다 찾았나.

이분들을 보고 친일파라고 하는 게 화가 나 이런저런 자료를 열심히 봤다. 이덕봉 선생이 이 글을 쓴 때가 조선식물향명집이 나오기 11년 전이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우리 이름으로 된 식물도감을 내고 싶다는 꿈을 품었을지 모른다. 국권을 빼앗긴 현실 때문에 겉으로는 남가일몽이지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한 끝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힘을 모아 조선식물향명집을 펴냈다. 그게 징검다리가 돼 우리 식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앞서 이분들을 친일파라고 비판한 책을 쓴 사람은 조선식물향명집저자가 일본어 식물 이름을 무비판적으로 번역해 우리 이름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 사정을 기본으로 삼아 전국 각지를 돌며 조선인이 실제로 사용하는 이름을 채록했다. 지역별로 이름이 다르면 주된 서식지 이름을 우리말 이름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큰쥐방울’ ‘등칡’ ‘통초등으로 불리던 식물은 강원도에서 많이 자라는 걸 감안해 강원도 지역명 등칡이라고 적었다. 널리 쓰이는 우리말 이름이 없는 경우에만 부득이 새 이름을 지어 붙였는데, 학명을 참고해 붙인 바람꽃처럼 아예 새로 이름을 지은 신칭(新稱)’ 사례는 매우 적었다.

 

정리하자면 조선식물향명집에 적힌 우리말 이름은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것이다. 그것 전체를 친일학자가 마음대로 붙인 왜색 짙은 이름이라고 낙인찍는 건 우리 선조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조 변호사는 이우철 강원대 명예교수가 펴낸 하은 정태현 박사 전기한 부분을 소개했다.

 

“(‘조선식물향명집출간 과정에서) 내선일체로 일본과 조선이 한 나라인데 조선명을 새로 만들 필요가 어디 있느냐 하며 당국의 심한 제재가 있었으나 당시 농촌에서는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으므로 이를 교육하기 위하여 일본명을 번역하는 것이라고 무마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식물학자들이 일제의 식민적 자원 착취를 등에 업고작업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을 위한 민족감정 선동인가

 

이정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도 조선식물향명집에 우리 과학자들의 민족의식이 반영돼 있다고 봤다. 2012년 발표한 논문 식민지 조선의 식물연구(1919~1945); 조일 연구자의 상호 작용을 통한 상인한 근대 식물학의 형성의 일부다.

 

근대 식물학의 보편어인 라틴어로 연구된 조선식물에, 향명 즉 한글 이름을 부여하여 조선의 전통 지식과 근대 식물학의 연결고리를 되살리는 작업이 이들의 첫 작업이었다. 피지배민의 언어와 전통을 복원함으로써, 근대적 연구로 대체되면서 사라져가던 조선식물의 조선적 성격을 살려내려는 시도였다. (중략) 조선인 연구자들은 인접한 제국 일본에 포섭될 수 없는 조선의 독자성, 조선인에 의한 근대적 조선식물 연구의 차별성을 드러내려 했다.”

 

바로 이것이 조 변호사가 하고 싶은 말이다.

 

- 이런 식물학자들의 노력이 저평가되는 게 가슴 아픈가.

가슴 아프다고 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70주년 광복절 무렵에 우리 식물 이름이 창씨개명됐다는 책이 나왔다. 잘못된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그 책에서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거명한 식물 이름 중 상당수가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 옛 문헌에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제 지배를 받기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이름을 흉내 내 사용했다는 건가. 임금을 포함한 우리 조상 전부가 친일파인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화가 났지만 처음엔 그냥 넘겼다. 그 책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가 곳곳에 보도되고, 민족적 분노를 느낀 누리꾼들이 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 때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포털 사이트가 이 책 내용을 온라인 지식백과에 무료로 공개하면서 이 주장이 마치 공인된 사실인 양 유포되기 시작했다. 한 초등학생이 광복 70년이 되도록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하다니, 이게 나라냐하는 내용의 독후감을 쓴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 나라도 나서서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아야겠구나 싶었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해당 포털사에 편지를 보냈다. ‘조선식물향명집저자의 유족들이 다 살아 계신데, 이렇게 잘못된 내용을 유통하는 건 그분들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는 걸 알렸다. 지식백과에 실린 내용 중 팩트가 틀린 부분도 일일이 지적했다. 포털사 대표이사, 법무팀장, 지식백과팀장한테 각각 편지를 썼더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A4용지 100장 분량쯤 되는 글을 써서 들고 갔다. 이후 3일 만에 해당 포털 지식백과에서 그 책이 사라졌다.

 

원래는 소송할 생각도 했다. 곳곳에 수소문해 조선식물향명집저자의 유족들을 만나 뵈었다. ‘소송을 원하시면 돈 받지 않고 돕겠다는 말씀도 드렸다. 유족들도 당시 굉장히 분개하셨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곧 서비스를 중단하고 해당 저자가 이후 더 책을 쓰지 않아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다.”

 

조선식물향명집주해서

조선식물향명집본문. 한반도에서 자라는 식물의 학명과 일본 이름, 우리말 이름이 적혀 있다. [김도균 기자]

- 식물학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그때부턴가.

그렇다. 잘못된 정보로 민족감정을 선동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중의 관심이 쏠릴 시기가 되면 나타나 우리 식물 이름을 일제에 강탈당했다고 주장한다. 겉으로는 일제와 친일파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자신을 모욕하는 행동이다. 우리 조상이 이뤄낸 과학적 성과를 부정하고, 당시 조선인 전체를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일제강점기 식물학자들이 일제에 협력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일본을 통해 근대 식물학을 배웠고, 일본을 넘어설 만큼의 학문적 역량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식물 이름 중 일부는, 극소수이기는 하나 일본 이름을 차용해 지은 것이 맞다. 그걸 찾아 바로잡자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이유 삼아 그들의 작업 전체를 친일로 여기고, 그 이름을 사용하는 우리 현실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과학, 철학, 객관, 기계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자어 상당수도 일본에서 왔다. 근대화 시기에 서양 문물을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인 일본이 번역어를 만들고, 한국과 중국이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쓰게 된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 언어를 계속 사용한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일본의 지적 식민지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이제 와 용어를 바꾼다고 역사가 바로잡히고 민족적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조선식물향명집에는 분명 여러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시절 조선 과학자들이, 자신이 선 자리에서, 조선인으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최선을 다해 한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잘한 건 잘했다고 하고, 잘못한 부분은 잘못했다고 하는 게 정말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아니겠나.”

 

조 변호사는 종종 내가 일제강점기 조선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고 했다.

 

일신의 안위를 좇아 친일 대열에 섰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욱하는 성질을 못 이기고 어딘가에 폭탄을 던진 뒤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 있다. 26년간 전국을 돌며 조선 식물을 채집하고 그 이름을 기록해 책으로 펴내는 일이다. 현실의 모욕과 굴욕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나는 바로 이런 이유로 정태현 선생을 존경한다. 이런 내용의 글을 온라인 공간에 썼다가 친일파라고 욕을 먹기도 했는데, 나는 내가 친일파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 대목 한 대목 힘주어 말하던 그는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흥분했지?” 하며 혼자 씩 웃음을 지었다.

- 감성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일할 때는 안 이렇다(웃음). 변호사는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지 말라고 배운다. 본인이 당사자처럼 느끼면 사안에 객관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고객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일할 때는 냉정하다. 그런데 이건 일이 아니라서 이런가 보다(웃음).”

- 나무가 좋고 풀이 좋아 식물도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과학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수준이 됐다.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다. 나는 그냥 숲속에서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힘들 때면 집 앞 화단에 가서 풀 한 포기 자라는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다 사라진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 문제에 매달리느라 정작 숲길을 걷고 풀 자라는 것 볼 시간을 잃어버렸다. 매일 밤 11시 퇴근해 새벽 2시까지 식물학 관련 자료를 뒤지고 휴일에도 서재에 틀어박혀 지냈다. 몇 달만 더 이렇게 공부하고, 그 뒤엔 다시 산과 들을 걸어 다니고 싶다.”

 

- 몇 달 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뭔가.

올해 광복절에 맞춰 조선식물향명집주해서를 펴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식물 1944종 이름 각각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또 이 책 저자들이 왜 식물도감을 만들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소개하려 한다. 이 작업을 하느라 우리나라 고서부터 일본, 미국 등 세계 각국 자료를 산더미처럼 읽었다. 식물 분야를 오래 공부한 동료들과 같이 최선을 다해 공부했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책이 나오면 많은 분이 비판해주면 좋겠다. 그걸 계기로 논쟁도 벌어지기를 바란다.”

 

조 변호사가 진심을 담아 한 말이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꽤 많은 우리 식물 이름 유래를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광대나물, 쑥부쟁이, 곰취 등 왜색 논란에 휩싸인 식물 이름을 거론하며, 해당 이름이 고려 때부터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모했는지, 왜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등을 세세하게 짚었다. 조 변호사가 집필하고 있는 조선식물향명집주해서에는 바로 이 내용들이 담길 것이다. 조 변호사의 바람은 아마추어가 연구하기엔 매우 전문적인 이 주제에, 해당 분야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조 변호사는 식물학 책으로 뒤덮인 서재를 떠나 실제 식물의 세계로 다시 들어갈 작정이다. 그는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다며 생태연구자 김태영 씨가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이 아름다운 지구에, 의식 있는 존재로서 이렇게 잠시라도 왔다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숲에서 느낀다는 말이다. 조 변호사는 나는 이렇게 멋진 말을 못하지만 마음 깊이 공감한다며 웃었다.

 

황량한 겨울 벌판에 서 있는 벌거벗은 나무조차 가만히 들여다보면 봄을 준비하며 눈을 만들고 있다. 봄이 왔을 때 깨어나는 게 아니라 한겨울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느리고 묵묵하지만 일관되고 꾸준한 것, 나는 그런 게 좋다. 그래서 식물이 좋은가 보다.”

 

조 변호사의 식물을 향한 사랑 고백이다./ 신동아 20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