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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식량위기 대한민국

by 이성근 2022. 7. 3.

식량위기 대한민국 저자 남재작|웨일북(whalebooks) |2022.06

 

남재작-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이자 농학자. 농특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농림식품과학기술위원회 위원, 그 외 정부의 기후 및 농업 관련 기구에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조언을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자를 거쳐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코이카 농업 ODA 전문가로 개발도상국의 식량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농촌개발사업을 기획했다.

 

IPCC 4차 보고서 승인 회의와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기업들의 탄소 배출량 인증 심사에 다수 참여하면서 기후변화에 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또한 농업 분야 CDM 전문가로 여러 기관에서 자문 활동과 강의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기후 변화 대응 사업들이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 식량 대란, 식량 주권의 문제를 휘발성 이슈로 소비되지 않게 노력하며, 여러 전문가와 함께 한국의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후대란, 대전환 시대 농정혁신의 길(공저) 등이 있다.

 

이미 식량난 대비를 마친 미국, 유럽, 호주한국은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뜨거운 지구, 배고픈 식탁

 

1장 식량난 임박, 지구에 도대체 무슨 일이?

하늘을 쳐다보지 마 이미 변해버린 것에 언제 변할지를 묻다 IPCC 6차 보고서의 의미 세계가 기후변화를 인정해 온 과정 1.1도의 지구에서 바라본 미래의 지구 평균기온 기후변화 시나리오의 이해작은 차이, 큰 영향 1.5vs 2기후변화는 약한 고리부터 공격한다 해수면 상승이 초래한 기후 난민 생활 속의 기후변화 다음 여정을 위한 준비: 갈림길에 서서

 

2장 우리가 만들어온 기후 위기의 발자취

인구수의 딜레마 지구 주인은 누구일까? 시그모이드 곡선 공기로 빵을 만들다 고삐 풀린 인구와 농업의 발전 수확체감의 법칙 토양과 문명 지속 가능성 위기 지구의 항상성과 가이아 이론 지구의 탄소순환 양성 되먹임과 티핑 포인트 지구 기후의 지뢰밭 질소비료가 기후변화의 원인? 화학비료를 위한 변명 우리나라 질소순환의 변화 녹색혁명 DDT와 환경운동의 태동 육류 소비 증가의 영향 소는 새로운 석탄일까? 움직이는 과녁 네 번째 파도 생물 다양성의 붕괴

 

3장 한국은 탄소중립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위기를 인식하기까지 탄소 시계와 탄소 예산 온실가스 배출원에 대한 이해 산업별 배출량과 재생에너지 생산 토지이용 변화의 영향 재생에너지 시대의 시작 전기 요금은 인상할 수 있을까? 답답한 재생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갈등 에너지 전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미래의 전력망, 마이크로그리드 검은 연기에 뛰던 가슴은 검은 패널에도 뛸까? 징검다리로 등장한 메탄 1 농축산 분야의 메탄, 줄일 수 있을까? 늙어가는 산림 논쟁의 중심에 선 산림 경영 산불, 기후변화의 결과이자 원인 식량 공급망의 안정화와 지속 가능성 우리 농업의 탄소중립 딜레마, 우리는 탄소중립에 도달할까?

 

4장 식량 안보 없이 미래는 없다

먼저 온 미래 기후와 식량 식량과 문명의 종말 위기의 벼농사 아프리카에서 만난 벼 풍성한 식탁, 위기의 식량 식량의 경제학 식량자급률은 높아질 수 있을까? 개방형 또는 고립형 식량 구조 식량 위기가 초래한 파국 미세먼지는 잊어버려, 기후가 진짜 문제 글로벌 식량 공급망의 다변화 일본과 호주의 농업 협력 사업 새로운 생산,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라 식품 낭비를 인식하기 위한 노력들 식량 안보를 위한 조건

 

5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회는 아직 있다

기후는 변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불평등은 기후를 악화시킨다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케르크와 노르망디 대지에 입맞춤을 좋은 토양은 좋은 음식을 만든다 토종과 종 다양성 농업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들 유럽의 관점에서 본 식량의 미래 아리아드네의 실 미래를 위한 변명 우리가 해야 할 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에필로그: 지금의 세계와 30년 후 세계는 같지 않다

 

 

식량난 적색 경보 발령, 한국이 첫 번째 희생국이 될 것인가?

우리의 식탁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앞으로 세계는 곡물을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며, 최악으로는 식량 전쟁까지 이어질 것이다. 인구는 곧 100억 명에 도달하겠지만, 문제는 부족한 식량으로 세계가 난리인 지금보다 30퍼센트 더 생산해야 모두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예견되었던 일임에도 위기를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안보, 식량 주권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독자들과 함께 찾고자 한다. 10여 년 동안 유엔 국제회의 참석, 코이카 농업 ODA 전문가 활동 등 다양한 국제 경험에서 얻은 통찰을 토대로 기후변화가 초래한 생물 다양성 붕괴와 식량 위기를 살펴보고 대안으로 제시된 경로를 알아본다.

 

1장에서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야기하고, 지구 평균기온 1.5도와 2도 상승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장에서는 우리가 기후 위기를 어떻게 초래했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식량난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며, 3장에서는 한국의 탄소중립에 이르는 여정과 온실가스로 촉발된 생태계 붕괴를 벗어나는 방법을 살펴본다. 4장에서 한국이 직면한 위기 앞에 식량 안보와 농업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기후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실현 가능한 유효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식량위기 대한민국은 기후 위기와 식량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우리에게 인지시켜 주는 책이다. 또한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느냐에 따라 위기에 대한 대처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 속 우리의 식탁을 지키고 더 나아가 기후변화의 위기를 헤쳐갈 필독서이다.

 

2030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약속,한국의 탄소중립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인류는 말라 죽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떤 지구를 맞이하게 될까? 너무 덥거나 추워서 화들짝 놀라는 일도 많아지고, 가뭄과 태풍이 찾아오는 날도 부쩍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세계 식량 최대 수출 지역 중 두 곳 이상에서 2년 이상 흉작이 들면서 세계 식량난이 크게 고조되는 경험을 겪을 것이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한다.”-파리협약의 합의 내용

 

실패로 끝난 교토 의정서와는 달리 파리협약은 선진국에 대한 감축 의무를 별도로 두지 않고 각 국가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량을 약속하도록 했다. 의무가 아닌 인류의 양심에 맡긴 것이다. 한국은 2030년까지 40퍼센트 온실가스 감축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약속했다.

 

저자는 탄소중립에 이르는 여정은 당연히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육식을 줄이고, 비행기를 타는 여행을 줄이고, 물 사용량을 줄이는 등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일자리와 경제가 탄소중립이라는 전환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만큼 탄소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이를 계속 강조하며, 명징한 해법들을 이 책에 담았다.

 

예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가 이제는 피부로 느껴진다. 대부분 사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 나라의 정책이 달라지듯, 우리는 계속해서 위기를 바라보고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이 책은 차악조차 선택할 수 없는 미래가 우리에게 당도하지 않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책속으로

수많은 과학자와 시민운동가는 이 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회의장 밖에서 숨죽이며 기다린다. 그 사이 지구 기후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마치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긴장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2189, 드디어 BBC 뉴스의 헤드라인이 올라왔다. “인류에게 적색 경보 발령”.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전해지는 듯했다.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09도 더 높아졌고, 지난 5년은 기록상 가장 더웠고, 해수면의 상승 속도는 거의 3배나 빨라졌다. 폭염과 고온은 더 심각해졌고 한랭 현상은 완화되었다. 북극의 얼음이 2050년까지 모조리 녹는 모습을 한 번은 볼 것이다.---IPCC 6차 보고서의 의미중에서

 

멸치와 꿀벌처럼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물과는 달리 지금 사라지고 있는 생물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복잡한 먹이사슬에 혼란을 초래해 파국에 이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른다고 그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생물 다양성의 위기뿐만 아니라 식량 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설사 탄소중립을 이루고 기후가 다시예전으로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생물 다양성을얼마나 보존하느냐에 달려 있다.---생물 다양성의 붕괴중에서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였던 2만 년 전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약 4도가 낮았다. 2만 년 전부터 1만 년 동안 급격한 지구온난화가 시작되면서 지구 평균기온은 4도가 올랐고, 인류는 농경시대로 진입했다. 그런데 최근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1도가 올랐다. 자연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보다 25배나 빠른 속도이다. IPCC는 이대로 가면 100년 내에 4~5도가 오를 수가 있다고 추정한다. 자연 상태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이다. 인류는 지구온난화 덕분에 지구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럼 또다시 4~5도가 더 오른다고 문제가 될까?---먼저 온 미래중에서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이다. 우리는 성장에 매몰되어 속도를 중요시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는 오히려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의 위계와 층위를 구분하고, 기후 불평등을 완화할 합리적 접근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민간에서도 우리나라 탄소중립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경로를 찾아가는 노력을 시작했다. 정부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면서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접근을 통해서 전체적인 자원의 소모와 갈등을 줄이고, 목표에 이르는 시간을 단축해 나갈 것이다. 탄소중립과 이어지는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경로를 지나면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중에서

 

 

우크라곡물 파동? 더 큰 놈이 오고 있다"한국은 식량위기 최전선 국가"

<식량위기 대한민국> 저자 남재작 소장

 

이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모두가 기후 위기를 말한다. 기상이변이 더 지구적으로, 더 심각한 수준으로, 더 자주 일어남을 모두가 느끼는 요즈음이다.

 

다만 아직 도시의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위기감을 피부로 절감하기 쉽잖다. 최근 가뭄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실제 도시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기후 위기가 워낙 큰 주제이니만큼, 오히려 사람들이 일상의 위기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이미 위기는 심각한 수준으로 시시각각 우리의 목 언저리로 올라오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한국은 기후 위기를 최전선에서 맞이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식량 위기가 기후 위기로 인한 가장 뚜렷하고 급박한 피해인데, 한국은 식량의존도가 매우 큰 나라라는 이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발생한 최근의 밀가루 가격 폭등은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학 박사이자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 승인 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단으로 참석하기도 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을 지난 달 30일 경기 수원 영통의 연구소에서 만났다. 농촌진흥청 연구자 생활을 거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기획조정실장, 코이카 농업국제개발협력(ODA) 사업 전문가 등을 지낸 남 소장은 최근 저작 <식량위기 대한민국>(웨일북)을 통해 한국에 닥친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정해진 미래'에 대응해 식량 안보 체제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함을 역설했다.

 

IPCC보고서보다심각한기후위기수준

식량 위기 수준 진단과 그 대응에 관한 남 소장의 해법을 듣기에 앞서, 지금 기후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를 우선 짚었다. 지난해 나온 IPCC 6차 보고서는 '늦어도 2040년이 되면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기 대비 섭씨 1.5도 상승하는 것은 정해진 미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인류의 노력에 따라 이후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는 티핑포인트를 넘을지, 아니면 다시 살 만한 지구로 되돌아갈 지가 2100년경 확인되리라는 전망이 담겼다.

 

인류의 노력 수준을 두고 IPCC 6차 보고서는 '공통사회경제경로(SSP)'에 따른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극단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은 2041년부터 2060년 사이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섭씨 1.6도로 억제하는데 성공하면 2081~2100년경에는 지구 기온 상승 수준이 섭씨 1.4도 수준으로 내려가는 전망이다.

 

반대로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2040년대에 탄소배출량 감소에 실패해 지구 기온이 섭씨 2.4도가량 치솟아버리는 가정이다. 이 경우 2080년 이후 지구 기온은 섭씨 4.4도 상승해 사실상 파국을 맞는 시나리오다.

 

현실적으로 우리 미래는 두 번째 시나리오(SSP1-2.6)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남 소장은 전망한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면 2040년 이후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기 대비 섭씨 1.7도 수준으로 오르게 되고, 앞으로도 철저히 대응한다면 2080년 이후 1.8도 수준으로 상승세를 막고, 2100년 이후에는 다시 기후 재난 수준이 완화되어 사람이 살기 좋은 지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의 시나리오를 지향해야겠으나,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IPCC 6차 보고서가 제시한 다섯 가지 기후 시나리오.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와 두 번째 시나리오는 지구 기온 상승 수준을 산업혁명기 대비 섭씨 2.0도 이내에서 제한할 수 있지만 나머지 시나리오로 지구의 대응 수준이 흘러간다면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2.0도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이미지는 남재작 소장이 IPCC 6차 보고서 내용을 정리한 책 내용을 재작업한 것. ⓒ프레시안

 

남 소장은 지난 2007년 채택된 IPCC 4차 보고서 승인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경험을 근거로 남 소장은 현재 알려진 보고서 수준의 위기는 실제 위기 수준을 '가장 낮춰 잡은' 수준이며, 실제 기후 위기 수준은 보고서보다 더 진전됐다고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최근 기후 변화 관련 논문을 총정리해 이를 정책 결정자들을 위한 보고서 초안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일주일가량 승인 회의가 열리죠. 각국 대표단이 참여합니다. 주로 변호사와 외교관으로 구성됐고 과학자들이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이 보고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일일이 검토해 전원 합의 과정을 거쳐 최종 보고서를 채택합니다. 그 과정은 매우 치열합니다. 예를 들어 단어 '머스트(must)'를 쓸 거냐 '슈드(should)'를 쓸 거냐를 갖고 각국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단어 하나를 결정하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중국과 호주, 러시아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나라들은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수위를 조절하려 하고, 유럽연합(EU)은 강하게 나가려 하죠. 이런 타협을 거쳐서 채택된 게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는 보고서입니다.

 

과학을 모르는 분은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지금 당장 나온 연구 자료만 봐도 기후위기가 진행된다는 결과가 나오는 한편, 기후위기가 진행 중임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결과도 나옵니다. 이 때 과학적으로는 인간 활동이 기후 위기에 미친 영향력이 명백히 드러나더라도, 외교 무대에서는 '이런 반대 근거가 있으니 보고서 내용은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각국의 타협에 의해 현 위기 상황을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게 IPCC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위기 수준은 보고서보다 더 높다고 봐야 합니다."

 

식량안보사태대비하는국제정책세워야

우리 생각보다 더 진전된 위기. 이미 우리는 과거보다 더 잦은 가뭄, 홍수, 산불 피해를 보고 있다. '수백 년에 한 번 오는' 수준의 기상이변이 매해 일어난다면, 이미 변화의 진행이 한참은 됐다는 뜻이다. 이 일상화한 이변이 낳는 가장 큰 재난이 바로 식량 위기다.

 

우리는 앞서 2005년에 이미 식량 위기가 얼마나 큰 재난을 초래하는 지를 경험했다. 당시 세계 밀 곡창인 호주에서 2년 연속 대가뭄이 들었다.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하자, 우크라이나 등 주요 밀 수출국까지 수출 제한에 나섰다. 국제 밀 가격이 두 배 수준으로 치솟자 중동 등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나라가 대대적인 식량 위기에 처했다. 이는 2010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중동 각국의 혁명으로 번져나갔다. 2008년에는 쌀 가격이 전년 대비 3배가량 뻥튀기되는 시장 충격이 있었다. 고유가로 인해 쌀 교역량이 줄어든 영향이었다. 이에 쌀을 수입에 의존하던 필리핀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필리핀 농림부 장관이 나서서 세계은행을 통해 쌀 수출 통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은 과연 안전할까.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퍼센트에 못 미친다. 이미 한국인의 주식이 된 밀 자급률은 0.7%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식량 안보가 밀 수출국인 미국, 호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의 기후에 달렸다는 말이다.

 

"여태 우리는 운이 좋았어요. 북미에서 가뭄이 들면 그해 호주에서 풍년이 드는 식이었거든요. 그러니 기후 재난이 오더라도 위기를 잠깐 지나가고 마는 정도였죠. 그런데 북반구와 남반구가 동시에 기후 재난을 맞아 세계 밀 생산량이 뚝 떨어진다면? 당장 미국 등도 자국 내 소비 수준을 충족해야 한다며 수출을 중단해 버린다면? 우리가 이런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됐는지 냉정히 따져야 해요."

 

물론 정보통신 기술의 시대에 음식을 완전히 자급자족하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남 소장은 대략 전체 국가 중 15퍼센트 정도만이 식량을 자급한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들 국가가 바로 주요 밀 수출국으로 지목된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일부 수출할 여력이 있는 나라-주로 미국, 러시아와 같은 대국-에 세계인 대부분이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 자체가 위기일 것이다.

 

비록 기후 위기가 직접적 영향을 끼친 건 아니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밀가루 가격 폭등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위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올해 전쟁으로 인해 이미 우크라이나의 밀 파종량이 줄어들었어요. 그러면 내년까지 영향이 이어질 수밖에 없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 물량이 30퍼센트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국제 곡물 가격이 크게 뛰어오르죠. 그런데 만일 내년에도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밀 작황이 어려워진다면? 위기 강도가 점점 오르고 그에 따라 식량이 점차 안보화하는 건 당연합니다."

 

대응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자급률을 높이는 길과 해외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방법이다. 우선 현실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건 해외 공급망 다변화다.

 

"우리처럼 해외 식량의존도가 큰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일본이 2014년 호주와 경제파트너십 협정(EPA)을 맺을 때 향후 곡물 수출 금지 시 일본을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했어요. 이런 식의 특별 협상을 우리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잖아요? 그것처럼 식량 스와프랄까요, 이런 정책도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저는 특히 해외 ODA를 식량 안보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기술이 떨어지는 나라에 우리의 농업기술을 전수해 그 나라의 곡물 생산량을 늘린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짐바브웨의 경우 과거에는 식량을 수출하기도 했을 정도로 곡창지대를 가진 나라예요. 이런 나라들과 더 적극적으로 교류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로 23월에 북상하는 황오리 1마리가 지난달13일 강원 강릉시의 농촌 들녘에서 발견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정상적인 황오리는 지금쯤 중국의 북쪽 또는 러시아의 늪지대 및 초원 등에 있어야 한다. 연합뉴스

 

곡물자급률만높이면될까? … "들녘별공동체대안찾아야"

국내적 대응으로는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곡물자급률을 높이고,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생산 품종을 다양화하자는 이야기 말이다. 문제는,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비전문가의 인식과 달리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농업은 어떤 분야든 전환에 시간이 걸립니다. 예를 들어 사과나무를 심으면 한 나무를 20년은 키워서 재배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기후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최근에는 인도에서 300년에 한 번 오는 5월 더위가 왔는데, 이런 더위가 3년 주기로 왔다고 하죠. 그러면 기후 변화 속도가 100배 빨라진 거예요. 이처럼 기후가 불안정해지면 작황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농업이 그 변화를 따라잡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미 강원도에서 사과를 생산하는 지경에 이르렀잖아요. 그러면 당장 10년 전 경북에 사과나무를 심은 농가는 지금 이미 과수 품질 저하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거든요. 전환 과정에 우리 생각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거죠. 기후 변화로 인해 바닷물 수위가 점점 오르면 그에 따라 지하수 소금기도 점점 올라와요. 그러면 그에 맞춰 염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야 하죠. 이런 개발에도 긴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 우리 농업의 전환과 적응을 얼마나 더 기다려줄지 조금 의문이 들죠."

 

정부가 지금 당장 위기를 인식하고 당장 더 적극적인 농업 투자를 해야 할 때라는 소리다. 다른 한편으로 농업인구의 과소화와 고령화 문제에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일단은 귀촌하는 베이비부머와 젊은 청년 농업인을 키우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제도 마련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남 소장은 이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언급한다.

 

"'농업''농사'는 달라요. 이 문제는 아주 조심스럽습니다만, 우리나라 평균 농경지가 농민당 1헥타르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귀농하는 분들이 대체로 50~60대일 텐데, 이분들이 수백 헥타르 규모의 벼농사를 하지 않거든요. 말하자면 곡물농사는 이분들의 주 수입원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300, 500평 정도 농사짓는 분도 '농민'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농업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대규모 밀집형 농업을 지지하는 거냐고 질타하실까봐 걱정됩니다만, 농가 규모가 작으면 농업 생산성에서부터 품질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식품 가공업체들이 우리밀로 만든 빵 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가장 큰 고민이 밀 품질이 농가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각 농가가 자기 방식대로 농사를 지으니, 품종부터 품질에 이르기까지 다 제각각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균일한 맛의 빵을 못 만든다고 합니다.

 

독일의 경우 식량 자급률은 우리보다 높은데, 농업경영체 수는 285000개 정도예요. 한국 농가 수는 103만 개 정도 됩니다. 우리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거죠. 그런데 독일 농경지 면적은 우리나라의 10배 정도 됩니다.

 

단순히 농업의 대형화, 기계화만 하자는 게 아닙니다. 곡물은 기계화가 필요하지만 과수 등은 다릅니다. 이는 얼마든지 소규모 농사로 차별화가 가능한 영역입니다. 프랑스의 와인 생산 농가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유럽이 이렇게 했고, 일본도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농민들에게 논을 대자본에 내놓으라는 얘기일까? 남 소장은 한국적인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고향 땅은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이 고향 땅 얼마 안 하니 팔라고 해도 처분이 쉽지 않아요.

 

저는 농지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자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일종의 들녘별 경영체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각자 자기 농지를 소유하되, 경영은 규모화가 가능하게 들녘 단위로 묶어 단일 생산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농지 소유자는 그 지분만큼 이익을 나눠 갖고, 이에 더해 농사를 지은 사람은 그 노동에 따른 대가도 가져가는 방식으로 농사 경영을 하자는 얘기입니다.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런 방식을 뒷받침할 제도를 정부가 마련해야 한국의 곡물자급률을 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남 소장은 이에 더해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 토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종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역시 긴 안목을 두고 시행해야 할 식량 안보 자세라고 강조했다. 파국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당장 서두를 때라고 그는 힘줘 말했다.

 

"우리가 기후 위기를 말하면서 계속 강조하는 게 기상 이변이다 보니 사람들이 위기를 쉽게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미 식량 위기는 현실이거든요. '현재와 미래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래를 위한 투자가 지금 바로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이대희기자

곡물 자급률 80%에서 20%'' ...한국의 선택은

사진설명[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을 기준으로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 20.2%. 대한민국 식량안보 상황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숫자다. 소비되는 곡물의 80%를 해외에 의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곡물을 주로 들여오는 나라는 미국과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이다. 만약 이런 나라들에서 갑자기 곡물 수출을 금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의 식량 공급 체계가 상당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쌀은 자급률이 92.8%에 달하는 만큼 밥은 어떻게든 먹을 수 있겠지만 육류와 가공식품은 수급에 엄청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소와 돼지, 닭을 기르는 데 필요한 사료는 원재료 대부분이 외국산 곡물이고, 우리나라 식품업계가 사용하는 원료 곡물 역시 80%가 수입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나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곡물 생산국들의 수출 금지 조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더 많은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밀과 옥수수, 팜유, 대두유 등 식품업계 4대 원재료에 수출제한 조치가 취해진 건수가 41건에 달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주요 수입국들은 여기에 아직 포함되지 않았지만 상황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하지 못할 위험성에 대비하려면 곡물 자급률을 크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부도 이에 부응해 자급률 제고를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그런데 곡물 자급률 제고 전략으로 한국의 식량안보를 지킬 수 있을까.

 

곡물 자급률 추락은 고도성장의 대가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이 낮아진 건 사실 고도성장과 관련이 깊다. 곡물 자급률은 1970년만 해도 80.5%에 달했다.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30년 만인 2000년에 29.7%까지 급전직하했다. 50%포인트 추락이다. 이어 최근까지 20년간 완만하게 더 떨어졌다.

 

곡물 자급률이 하락한 50년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큰 변화는 경제 성장의 대가로 농지 면적이 대폭 감소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농지 면적은 19702298000에서 2020156500031.9% 줄었다. 전체 농지의 대략 3분의 1이 공장과 아파트, 상가로 전환된 것이다. 곡물 생산량은 710t에서 429t으로 39.5% 줄었다. 농지가 줄어 생산이 줄어드니 자급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극적인 변화는 육류 소비의 증가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19705.2에서 202052.5으로 10배 늘었다. 그런데 육류(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7의 곡물이 필요하다. 우리가 육류를 더 먹는 동안 육류보다 7(중량 기준)나 많은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고기를 양껏 먹으면서 곡물 자급률이 왜 이렇게나 낮은 거냐고 비판하면 사실 정부 당국자들로서는 좀 억울할 수 있는 셈이다.

 

자급률 높이려면 경지 이용률 높여야

그렇다고 낮은 곡물 자급률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급률을 높이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농지 면적을 확대해서 국내 곡물 생산량을 늘리거나 해외에서의 곡물 수입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농지 면적은 지금도 계속 줄고 있다. 더 줄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1인당 육류 소비량도 여전히 증가 추세다. 곡물 수입량도 매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는 현재 밀과 콩의 생산을 늘려 곡물 자급률을 높이는 전략을 펴고 있다. 정부 목표가 잘 수행되면 밀 자급률은 20200.8%에서 20277.9%, 콩 자급률은 30.4%에서 40.0%로 높아진다. 이를 통해서 높일 수 있는 곡물 자급률은 대략 2.0%포인트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최상의 시나리오로 밀과 콩 재배를 늘려도 곡물 자급률은 20%에서 고작 22%로 높아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경지 이용률을 높일 것을 제안한다. 일모작을 하던 경지에 이모작을 도입하는 식이다. 우리보다 낮았던 곡물 자급률을 지금은 더 높이 끌어올린 일본(2019년 기준 28.0%)이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경지 이용률 확대였다. 다만 줄어드는 농경지에서 이용률을 높이는 것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곡물 자급률 제고 정책의 한계인 셈이다. 식량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싱가포르 사례가 작은 힌트가 될 수 있다. 식량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싱가포르가 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GFSI) 세계 1위를 차지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식량안보지수는 3개 지표로 평가한다. 식량에 대한 경제적인 접근성(Affordability)과 충분한 공급 능력(Availability), 그리고 품질과 안정성(Quality and Safety)이다. 자급률이 낮더라도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데 있어서 그 통로가 매우 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면서 품질이 좋으면 식량안보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 곡물 공급망 참여 늘려야

우리나라도 자급률에 얽매이기보다 싱가포르처럼 식량안보지수를 높일 방안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해외 농지 개발과 글로벌 곡물 공급망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해외농업개발협회에 따르면 국내 206개 기업이 32개국에 나가서 해외 농업을 펼치고 있다. 우리 기업이 러시아 연해주를 비롯한 해외에서 생산한 작물(오일팜 제외)은 작년에 82752t에 달했다. 이 중 29%에 달하는 23975t을 국내로 들여왔다. 옥수수(11000t)와 콩(8100t)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외 진출 건수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이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외 농지 개발보다 더 효과적인 방안이 있다. 바로 해외 현지에서 곡물 터미널을 인수하는 것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곡물 터미널 지분 75%를 인수했고, 하림(팬오션)은 미국 워싱턴주 롱뷰항에 있는 곡물 터미널에 2대 주주(36.0%)로 참여했다. 두 회사가 작년에 취급한 곡물의 양은 115t인데, 이 중 절반이 넘는 61t을 국내로 들여왔다. 곡물의 국내 반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해외 농지 개발에 비해 훨씬 효율적인 셈이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공급망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곡물 터미널 인수를 지원하는 정책적 묘수가 절실한 배경이다. 직접적인 지원은 어렵더라도 장기 저리 대출이나 세제 혜택 등 간접적인 지원은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국제 곡물 파동 등 유사시에 가격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국내로 들여올 경우에는 손실을 보전해주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곡물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어도 해당 국가에서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면 국내로 반입하기 어려운 만큼 터미널 인수 대상 국가를 다변화하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새만금에 곡물 메이저들의 터미널 유치

글로벌 곡물 공급망에 참여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새만금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새만금에는 5t급 선박 9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대규모 항만이 건설되고 있다. 최고 수심도 30~40m에 달하는 천혜의 항구다. 이 항만에는 250만평 규모 배후 용지도 함께 조성되고 있다. 2025년이면 2선석 규모의 1단계 공사가 완료되면서 35만평 규모 배후 용지가 들어서게 된다. 이 공간에 곡물가공 유통단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식량 콤비나트'라는 이름의 곡물가공 유통기지를 건설해 밀과 옥수수, 콩 등 곡물을 해외에서 들여와 가공한 뒤 국내에서 소비하거나 제3국으로 재수출하자는 주장이다. 그렇게 설치된 시설은 유사시 그 자체가 비축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식량안보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들의 터미널을 새만금에 유치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되고 있다. 글로벌 곡물 시장은 이른바 'ABCD'라고 하는 ADM, 번지, 카길, 드레퓌스 4개사가 전체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곡물 메이저들은 타깃 시장 중 하나를 중국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1인당 육류 소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사료용 곡물에 대한 수요가 장기적으로 급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 가깝고,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새만금에 곡물 터미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면 메이저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새만금에 메이저들의 대형 터미널이 있으면 식량 대란 등 위기 때 우리나라 식량안보의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다.

 

애그테크·푸드테크·바이오기술 활용

식량안보에서 점차 중시되는 것은 바로 첨단기술의 활용이다. 최근 들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애그테크와 푸드테크, 바이오테크를 식량안보 강화 전략에 접목하자는 것이다. 애그테크와 푸드테크는 종자 개발부터 작물의 생산, 수확, 가공, 유통, 물류, 외식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씨앗부터 식탁까지 이어지는 먹거리 밸류체인(생태계) 전체에 적용된다. 이 밸류체인 단계마다 첨단기술을 접목하면 식량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예컨대 디지털 육종 기술을 활용해 수량성과 내병성이 우수한 종자를 개발하고, 스마트농업을 통해 곡물 농사의 단위 면적당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식량안보에 직결되는 일이다.

 

최근 들어 각광받는 식물성 대체육이나 배양육, 대체 탄수화물 등 푸드테크 산업을 키우는 것도 식량안보에 도움이 된다. 대체육이 축산물을 대신하면 사료용 곡물의 수요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식량의 거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아랍에미리트(UAE)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발굴을 통해 식량안보를 강화할 목적으로 '푸드테크 챌린지'라는 공모전을 열고 있다.

 

유전자가위와 같은 바이오 신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것도 유력한 대안이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자변형농작물(GMO)처럼 외부 유전자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 염기서열 일부를 바꾸는 기술로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적극 상용화하고 있다. 영국은 유전자가위를 아직 승인하지 않고 있는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자마자 유전자가위 승인에 착수했다.

 

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한국투자공사(KIC)와 같은 국부펀드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식량 자급률이 10%에 그치는 싱가포르는 국부펀드인 테마섹과 싱가포르투자청(GIC)을 활용해 종자 회사와 수직농장, 식물성 대체육 회사 등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자급률을 2030년까지 30%까지 높이기 위해서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매일경제

식량위기의 나비효과러시아·우크라이나 곡물 파동 때마다 제3세계 반정부 폭동 불러

투기자본 사재기·값 폭등

중동·북아프리카 등 휘청정치·사회적 혼란 줄이어

 

아이쉬()! 호레아(자유)!”

지난해 초 이집트 국민들은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며 타흐리르 광장 등 거리로 나섰다. 이집트의 주식인 아이쉬가격이 치솟자 무바라크 30년 장기 독재에 대한 불만이 더해지면서 민주화 시위로 번진 것이다.

 

아이쉬 가격 급등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집트에서 직선거리로 3000떨어진 러시아에서 20107월 가뭄이 발생, 밀 생산량이 급락하면서 발생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도 식료품 등 생필품 가격 폭등이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과 겹쳐 반정부 시위를 순식간에 확산시켰다. 이후 반정부 시위는 알제리, 리비아, 예멘, 바레인, 이란 등으로 번져나갔다. 러시아의 가뭄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로 이어지는 나비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재스민 혁명은 밀 가격 상승이 도화선이 됐다.

식량위기의 나비효과러시아·우크라이나 곡물 파동 때마다 제3세계 반정부 폭동 불러

 

2007~2008년 곡물파동은 미국, 인도, 중국 등에서 시작됐다. 파동의 진폭은 국제 투기자본이 원자재 사재기에 나서면서 커졌다.

 

게다가 신흥국의 육류 소비가 늘면서 사료용 곡물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르헨티나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곡물수출국은 자국의 수요 공급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밀, 옥수수, 대두에 수출세를 부과하거나 수출중단을 선언했다. 곡물 가격이 유례없이 치솟았다.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곡물수출국들의 날갯짓에 정작 휘청댄 것은 3세계 국가의 빈민층이었다.

 

20082월 아프리카 카메룬에서는 식품 가격과 오일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4월 방글라데시에서는 15000명의 노동자들이 높은 식품 가격과 낮은 임금에 항의하며 공장시설을 파괴하고 버스와 승용차를 부수는 등의 폭동이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코트디부아르, 이집트, 아이티, 모잠비크 등 30여개국에서 시위와 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식량위기의 나비효과러시아·우크라이나 곡물 파동 때마다 제3세계 반정부 폭동 불러

전문가들은 올해 미국발 곡물 가격 급등 상황이 심각해지면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국가에서 또다시 시위와 폭동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 시위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알제리, 수단, 바레인 등이다. 바레인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돼 정치사회적으로 혼란기를 겪고 있다. 알제리와 수단은 실업률이 30%를 넘어섰다.

 

수단의 경우 최근 남수단이 분리되면서 무력충돌 등 정치적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알제리와 수단은 2010년 곡물파동 때 크고 작은 시위를 경험한 나라들로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도 예전 튀니지나 이집트와 유사해 물가 폭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또다시 폭동,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수입 옥수수 75%를 사료로가격 뛰면 소··돼지 가격도 올라

옥수수 세계 최대 생산지인 미국의 옥수수 가격이 뛰면 국내 시장도 몸살을 앓는다.

 

2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옥수수 수입국이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총 곡물 수입량 15712000t57.7%9059000t을 수입했다. 한국의 옥수수 곡물자급률이 0.8%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량은 2011년 기준으로 연간 74000t으로 아시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국내 사용물량의 대부분을 수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옥수수 수출 판매가격은 농가와 곡물상, 중간거래상, 수요자들이 모여 작황과 수요량 등을 반영해 만들어지는 시카고선물거래소 시세와 농가에서 수출항구까지 물량을 이동하는 데 드는 운반비(베이시스)를 종합해 결정된다. 여기에 걸프만을 거쳐 해당 국가로 운송되는 데 들어가는 선박비용도 국제유가 상황을 고려해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전분당협회 관계자는 가공식품용 옥수수의 경우 업계 전체로 볼 때 한 달 평균 17t 정도는 꾸준히 수입해야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가격이 급등한 지금 구입하면 국내로 들어오는 데 걸리는 기간인 3~5개월 후부터는 국내 식료품업체들이 가격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수입되는 옥수수 양의 75% 이상은 가축 사료로 사용된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백성범 농업연구관은 옥수수가 국내에서는 사료로 대부분 사용되기 때문에 옥수수 가격이 폭등하면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고 말했다. 또 옥수수는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스낵, 청량음료, 주스 등을 만드는 데도 사용돼 이들 제품의 가격을 인상시키는 작용을 한다. 한국사료협회는 지난 6월 중순 이후 급등한 옥수수 가격 때문에 당분간 미국과 옥수수 수입 계약을 맺지 않기로 했다.

 

가뭄에 따른 가격 폭등을 예상하고 6월 초순 국내 민간 사료배합 회사들과 함께 옥수수를 대량으로 구입해 당장 물량 부족 현상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옥수수 가격이 계속해서 뛰거나 지금과 같은 급등세가 고착화하는 경우다.

 

사료협회 관계자는 옥수수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를 경우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이럴 경우 길게는 6개월의 시차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가 되면 또 한 차례 국내 사료배합 회사들과 농협 사료공장, 축산농가 등이 가격 상승 압박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사료용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옥수수는 가공식품용옥수수다. 농협경제연구소와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가공식품용으로 소비된 옥수수 양은 전체 수입량 9059000t21.4%에 해당하는 1936000t이다.

 

가공식품용 옥수수 가격도 비슷한 운송·제조·유통과정을 거친다. 먼저 대상 등 국내 식료품업체들이 시카고선물거래소의 거래가격 수준에 맞춰 옥수수 수입 계약을 맺으면 미국 수출업체가 선적물량을 준비한다. 이때부터 선박을 이용해 국내로 들여오기까지에는 보통 6~8주가 걸린다. 선박이 운송하는 시간은 50일 정도이며 하역항에서 1주일 정도 하역·통관 작업을 거친다. 업체들이 제품 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1개월치가량의 재고물량과 제조공정을 감안하면 실제 판매가격에 영향을 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5개월쯤 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가공식품용 옥수수는 사료용 옥수수보다 재고량을 적게 유지하기 때문에 국제 곡물가격 변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향 : 201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