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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2.6.2~6.30 검찰공화국과 검사들의 전성시대

by 이성근 2022. 7. 3.

탁란 민주주의의 경고 한겨레 :2022-06-02

이중잣대의 역사적 기원 한겨레 :2022-06-02

방향만 있고 좌표 없는 윤석열 정부 대외전략 경향 : 2022.06.03.

검찰공화국과 검사들의 전성시대 경향 : 2022.06.03.

선거 다음 경향 : 2022.06.04.

진보 정치의 품성과 솜씨 입력 : 2022.06.06.

진보의 도그마와 콤플렉스 한겨레 : 2022.06.07.

재벌의 자유, 윤석열의 자유 한겨레 : 2022.06.07.

민주당 내분의 길, 혁신의 길 한겨레 2022.06.09

여운형의 정관매진경향 : 2022.06.10.

북극은 지금, 불덩이 바다 경향 : 2022.06.10.

위헌·위법인 법무장관의 인사검증권 경향 : 2022.06.10.

공천권이 대선후보 전리품인가? 프레시안 2022.06.10.

정의당, 심판 받다 프레시안 2022.06.10.

유튜브 시대,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 한국 220610

 

민주당, 이번 위기는 넘기 어렵다 경향 : 2022.06.11.

노무현의 손녀, 한동훈의 딸 디지털타임스 : 2022.06.12

한국의 부동산, 무엇이 특별한가 주간경향 220613

우크라이나 전쟁도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될까 한겨레 220613

고물가 행진에 성장 전망 뚝윤석열 정부는 악재 돌파할 능력이 있나? 프레시안 2022.06.13

공공의 교육, 공동의 교육 경향 : 2022.06.15

검사 편향과 민변 도배의 평화학 경향 : 2022.06.15.

이왕 버린 몸 경기신문 2022.06.16.

처음 해보는 대통령의 가벼움, 나토 초청장의 무게 한겨레 : 2022.06.16

죽음을 선택할 권리 경향 2022.06.17

죽은 인문학의 사회 경향 2022.06.18.

반민족 외치는 '엄마부대''반일종족주의'자들 뉴스프리존 2022.06.19.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투명성 보고서, 한국 언론에 적용하면? 시사인 2022.06.19.

전직 고위공직자의 로비 경향 : 2022.06.20

 

윤석열 정치실험은 실패했다 경향 2022.06.21.

ESG에 부는 역풍 한겨레 2022.06.21

속이구 정치, 맞장구 언론 미디어오늘 2022.06.21

교육입국과 교육망국 경향 2022.06.22.

지구촌 3% 부자로 살아가는 법 2021-01-20

누구도 뒷담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지구촌 3% 부자로 살아가는 법 2020.10.05.

지방 소멸의 뒤안길 경향 : 2022.06.23

애처가윤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하는 것 한겨레 : 2022.06.23.

대물림되는 파워엘리트 경기신문 : 2022.06.23.

이렇게 가는 게 바로 독재다 경향 : 2022.06.24.

참을 수 없는 반도체 인재론의 가벼움 경향 : 2022.06.24.

현재는 에너지전쟁, 미래는 식량전쟁 : 손놓은 한국 뉴스프리존 2022.06.24.

대통령이 바이네르 구두를 살 때 못 들은 이야기 경향 : 2022.06.26.

자연은 노력한 만큼 내준다 경남도민 20220627

윤 대통령의 원전 페티시즘바보짓 50이 시작됐다 한겨레 20220628

일본, 현재 핵발전소 4기만 가동 중 탈핵신문 2022.06.16.

확증편향안보와 갈대처럼 눕는 군부 경향 : 2022.06.28.

최저임금, 너무 낮아서 문제다 경향 : 2022.06.29.

우리 정치에 감동이 없는 이유 한겨레 : 2022.06.29.

과로 사회회귀는 안 된다 국민일보 : 2022.06.29.

처음 겪어보는 이런 대통령, 이런 여당 한겨레 : 2022.06.29.

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나쁜 자유를 경계한다 경향 : 2022.06.30.

너무 빨리 권력에 취한 정권 한겨레 : 2022.06.30.

 

 

 

탁란 민주주의의 경고

뻐꾸기의 탁란 기생을 당한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자기보다 큰 뻐꾸기 새끼에 벌레를 먹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네거리를 붕대처럼 휘감은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펼침막을 바라보며, 1번과 2번 기호만 가리는 상상을 해봤다. 두 거대 정당 후보들의 소속을 전혀 분별할 수 없었다. 원칙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면접관이 면접자의 학벌 따위 배경 자원을 알아챌 수 없듯이. 10음절 안팎에서 끝나는 구호들은 개발 지상주의의 정수라 할 만했고, 1번과 2번이 그걸 두고 일합을 겨루는 형세였다. 그러나 두 정당이 때 되면 현명하다고 칭송하는 유권자들은 잘 안다. 어느 쪽이 개발에 더 유능한지.

 

그날은 집주인이 별안간 직접 들어와 살겠다 해서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는 길이었다. 1기 새도시 중에 가장 싼 동네라는데도, 1년 반 만에 전셋값이 다락같이 올라 있었다. 그동안 급여 한푼 안 쓰고 모았어도 턱없이 모자랄 판이었다. 희한하게도, 들러본 예닐곱 곳 가운데 주인이 사는 한곳 빼고는 모두 집이 비어 있었다. 중개인에게 물으니 집주인들이 재계약 청구권을 피하려고 자기가 들어와 살겠다며 세입자를 내보낸 다음 새로 세입자를 구하고 있는 집들이라고 귀띔했다.

 

한날 마주한 두 장면에서 지방선거의 결과가 미리 그려졌다. 그러고 며칠 뒤, 전국에 나부낀 개발 공약을 합치면 대한민국이 100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던 선거가 끝이 났다. 개표 결과는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개발에 한끗이라도 유능한 쪽이 사실상 전국을 석권했다. 개발의 목적은 집값 상승이고, 그들 말대로 유권자들은 현명했다. 집값 상승을 바라는 이들 가운데 이번 선거를 자신의 부동산 자산관리인 뽑는 것쯤으로 여기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이런 결과를 더불어민주당의 개발주의 경쟁 탓으로 환원하는 건 무리다. 개발 공약은 모든 선거에서 상수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벌거벗고 뛴 적은 없었다.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민주당은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나는 저 맥락 없는 겸허함이 두렵다. ‘임대차 3을 만들어 다주택자들이 꼼수를 쓰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에 겸허하겠다는 건가, ‘김포공항 이전보다 더욱 막강한 개발 공약을 내세우지 못한 것에 겸허하겠다는 건가.

 

약탈적 지대 추구가 모든 걸 압도하는 현실 앞에서는 겸허하기조차 쉽지 않다. 앞으로 얼마간 선거 결과를 두고 온갖 정치공학적 사후 분석이 쏟아질 테지만, ‘밥 먹으면 배부르다유를 벗어나기 어려울 거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좀 더 미래지향적인 공약으로 승부했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졌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는 사정도 거기에 있다. 설령 민주당이 승리했다 해도 약자들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익숙하고 즉자적인 해법은 쓸모를 다했다.

 

5년의 집권 기간부터 돌아볼 일이다. 민주당은 한국 사회가 이 지경까지 내달리는 데 아무런 제동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몇번의 우연한 선거 승리에 취해 거대 양당 기득권 동맹의 성채를 쌓아 올리는 데만 매달렸고, 정치 지형도를 우클릭하는 데 부단히 기여했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만 패한 게 아니다. 정의당을 비롯해 양당 체제 외부 정당은 씨가 말랐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뿌리 들리고, 생활정치의 토대도 무너졌다. 망가진 정치 생태계는 개발주의의 독무대가 됐다. 누가 장본인인가.

 

본디 대의민주주의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과두제적 형태로 일탈할 가능성을 얼마간 품고 있다. 정치 진입 장벽이 높은 탓이다. 그 정도가 심하면 다수 유권자들은 소수 특권세력의 숙주로 전락한다. 뻐꾸기 새끼가 제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 것도 모르고 열심히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어미 딱새처럼. 지금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탁란 민주주의로 불러야 할 지경이 됐다.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말한 객관적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내면화된 상태이기도 하다.

 

객관적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는 싸울수록 객관적 권력의 가치만 공고해진다. 민주당이 그 내부를 낯설게 들여다보지 못한다면, 뻐꾸기 새끼를 먹여 키우는 어미 딱새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희망의 단서는 개발 공약 열기에 반비례한 역대 최저 투표율에 있다. ‘투표 거부의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런 다음, 지난 5년 동안 외면한 약자들의 간절한 요청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안영춘 | 논설위원 한겨레 :2022-06-02

 

 

이중잣대의 역사적 기원

내로남불이란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아마도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말 중 하나일 터. 그런데 요즘은 이게 표준말처럼 쓰인다. 로맨스와 불륜은 개념이 다르나, 같은 행위도 주체에 따라 달리 불린다. ‘이중잣대. 영어로 더블 스탠더드(double standard), 독일어로 도펠모랄’(Doppelmoral)이다. 전자는 일관성을, 후자는 책임성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정치를 보라. 정치인이 야당일 때는 집권 여당 인사의 부동산 투기나 부정 축재, 법인카드 남용, 무분별한 특별활동비 사용, 자녀 진학 관련 비리 등에 온갖 비판을 한다. 그러나 막상 자기네가 여당이 되면 같은 사안에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요리조리 잘도 둘러댄다. 도무지 피하지 못하면, 침묵하거나 영혼 없는 사과뒤로 숨는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곳이 검찰이다. 수사를 통해 ()죄를 밝혀 사회질서나 정의를 세우는 게 사명이다. 수사의 기준은 법과 양심, 사실과 진실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딴판이다. 폭력이나 노동자 파업 등에는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칼을 쓴다. 무전유죄! 하지만 정치·경제적 권력자나 재벌, 기득권층의 범죄에는 무딘 칼이다. 유전무죄! 중범죄자는 무죄 내지 솜방망이 처벌로 풀어주되, 오히려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운 고발인은 된통 당한다.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내로남불식 이중잣대가 있다.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 잣대도 다르지만, 같은 외국인이라도 백인에겐 과잉 친절을, 유색인에겐 무관심과 멸시를 보인다. 또 일부 청년들은 보수기득권층의 비리나 불공정에는 침묵하나, 민주진보 진영의 잘못에는 곧잘 침소봉대한다. 하기야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실수나 잘못엔 관대하나 남의 실수는 작은 것도 꼬집으니.

 

이렇게 대다수가 내로남불식 이중잣대로 살다 보니, 거짓과 위선의 사회가 된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를 증명하는 생생한 현장이다. 비판받는 자는 속으로 웃으며 순간만 넘기려 하고, 비판자는 목소리는 크되 그 손가락 끝엔 아무 힘이 없다. 서로의 위선과 거짓을 알기 때문일까. 우리 역시 가정, 학교, 일터, 모임 등 공간마다 내로남불을 예사로 실행한다. 그러니 모두 소망하는 자유·평등·정의 사회는 언제쯤 가능할까?

 

따지고 보면, 농어촌 공동체가 살아 있던 시절에는 거짓말하는 이는 당장 쫓겨나거나 멍석말이를 당하고 새로 태어났다. 그러나 도시로 갈수록 공동체보다 개인이 중시되고 사람들은 바글거리되 끈끈한 유대감이 사라진, 모래알 같은 존재가 된다. 이를 역사적으로 보면 이렇다. 17세기 이후 근대 자본주의가 제 발로 서면서부터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이 탄생한 것, 그리하여 각 개인이 스스로 공동체의 일부임을 잊고 자신의 이해관계(, 권력, 이익)만 추구하는 것, 설사 집단으로 뭉치더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아군-적군으로 나뉘는 것, 그러면서도 강하고 승리한 쪽을 편드는 강자 동일시태도로 사는 것, 바로 이런 사회적 관계들의 변화가 내로남불 즉 이중잣대의 역사적 뿌리다.

 

만일 이런 진단에 동의한다면, 이중잣대로 충만한 위선 사회를 어떻게 정직하고 건강한 사회로 바꿀 수 있을까? 흔히들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이 그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라 한다. 제도를 바꾸면 사회변화가 쉽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편, 북유럽에 통용되는 얀테의 법칙이란 게 있다. 여러 내용이 있지만 핵심 한가지만 꼽으면 너 혼자만 똑똑하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 이런 태도로 상호관계를 맺으면 훨씬 원만해진다. 한마디로, 겸손의 원리를 실천하기!

 

하지만 이중잣대의 역사적 기원인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른 행위 방식을 그대로 둔 채 일부 제도 개혁이나 개인적 태도 변화로 사회를 제대로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소망하는 자유·평등·정의 사회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로남불식 이중잣대를 만든 근본 뿌리를 뽑아야 한다.

 

첫째, 공동체의 복원은 개인(individual)이란 말 자체가 뭔가 큰 덩어리로부터 나누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존재임을, 즉 개인의 전제가 공동체임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자본이 부추기는 기득권 경쟁의 허구성을 통찰하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간 유대감을 복원해야 한다. 실은, 우리가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로서 개별 이해관계에 따라 사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나 사람은 처음부터 공동체의 일부다. 이게 호모 소시우스’(사회인). 자본의 등가교환 법칙 이전부터 누천년 존재해온 인간적 가치, 생명의 가치에 충실하면 된다.

 

둘째, 일상의 삶 속에서 공동체적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다. ‘이웃사촌또는 친구개념이 돌파구다. ‘너 있어 나 있다는 아프리카의 우분투사상도 시사적이다. 예컨대, 육아공동체, 마을공동체, 나눔공동체, 배움공동체, 독서공동체, 농사공동체, 생산공동체, 놀이공동체, 창작공동체, 촛불공동체 등을 만들어 이해관계보다 인간적 유대 중심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공동체 관계망에서는 내로남불식 이중잣대나 위선과 거짓이 설 자리가 없다.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고, 나의 기쁨이 너의 기쁨인 관계가 충만하니까.

 

셋째, 아무리 공동체 개념을 재인식하고 실제로 각종 공동체를 만든다 하더라도 현실로 존재하고 위력을 떨치는 자본독재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면 모두 헛발질이다. 이익은 사유화하되 비용은 사회화하는 자본의 이중잣대가 가장 해롭다. 따라서 실질적 탈자본운동이 필수다. 여기서 탈자본이란 상품, 화폐, 가치, 노동, 경쟁, 이윤 등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 삶의 구조를 인간성과 생태성 관점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각종 사회운동의 연대를 통한 구조 변화는 물론, 우리네 일상 의식의 변화도 요구한다. 탈자본 운동이 성숙하는 정도에 비례해 건강한 공동체 복원 역시 가속화할 것이다. 또 그에 비례해 내로남불식 이중잣대와 거짓이 사라지고 명실상부 자유·평등·정의·우애 사회가 다가올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 따지는 자는 이중잣대의 포로가 되지만, 공동체와 우애를 중시하면 일관성과 책임성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된다. 이권 앞에 마음이 흔들릴 땐 멸사봉공의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라.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라! 각자 사회적 개인으로 거듭날 때 내로남불식 위선도 사라진다. 우리네 삶은 같이 또 따로’, ‘따로 또 같이갈 뿐!

강수돌 | 고려대 명예교수 한겨레 :2022-06-02

 

방향만 있고 좌표 없는 윤석열 정부 대외전략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은 미국이 대외전략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가 중국 견제임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미국의 관심은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을 따돌리고 현재의 격차를 유지·확대하는 데 집중돼 있다. 미국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힘을 합쳐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현재의 질서에 현상 변경을 가하려는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 직후인 지난달 26(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파했다. 블링컨 장관이 연설에서 핵심 요소로 강조한 것은 투자(invest)·공조(align)·경쟁(compete)’이었다.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첨단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동맹·우호국들과 공조해야 하며,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전 대결(confrontation)·경쟁(competition)·협력(cooperation)’3C로 대중국 정책을 설명한 것에서 진화한 개념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아직 미완성이며 불투명하다. 블링컨 장관이 말한 투자는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첨단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확대하려면 미국의 국내 시장에서 인센티브가 보장되어야 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 의회에서 반도체 기업 지원법안 통과가 지연되고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만을 지원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좋은 예다.

 

우방과의 공조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견제 전략은 우방국에 돌아가는 보상이 불투명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들에 중국 견제로 얻는 전리품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한다. 동맹·우호국의 힘을 빌려 패권을 유지한다는 전략은 매우 낯설고 새로운 개념이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갖는 것이 모든 동맹·우호국에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해야만 가능한 전략이다. 하지만 세계 국가들이 자국의 국익을 미국의 선의에만 맡기기에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보여준 행보가 미덥지 않다. 세계는 중국을 통해 얻는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이 주어질 수 있는지를 저울질하며 망설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미국의 구상을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반도체 기술과 같은 첨단산업의 역량을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안에서 발휘하고, 세계 6위권의 군사적 역량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펼치게 된다면 미국은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전통적 우방국인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동행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방향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동맹국이라고 해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한국이 끝까지 동행할 수는 없다. ·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좋으나 어디까지 밀착할 것인지 분명한 선이 보이지 않는다.

 

·미 동맹과는 거울과 같은 존재인 한·중관계에 대한 전략도 찾기 어렵다. 전략적 모호성을 벗었다는 윤석열 정부이지만,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와 같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는 것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IPEF의 기본 취지가 중국 배제인데 이 같은 설명이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다. 전략적 모호성을 벗고 한·미 동맹 강화로 방향을 잡았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변명보다 중국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것도 일반적인 의미라고 강변할 게 아니라 포괄적 전략동맹에 부합하도록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직 대중국 전략이 없다는 방증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이 방향을 정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일본·호주 등에 비해 뒤처진 미국과의 동맹 서열을 빨리 같은 반열로 올려놔야 한다는 조바심만 보일 뿐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의 정확한 좌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경향 : 2022.06.03.

 

검찰공화국과 검사들의 전성시대

바야흐로 검사들의 전성시대다. 검찰밥을 먹어야 관가에서 행세깨나 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대통령실은 집사와 문고리부터 인사라인까지 검찰 출신이 꿰찼다. 고위공직자를 추천하는 인사기획관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그를 보좌하는 인사비서관, 고위공직 후보자를 2차 검증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다. 법률비서관도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의 집사인 총무비서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부속실장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행정부를 봐도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여실하다. 법무부 장차관도, 법제처장도 검사 출신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물론 총리 비서실장까지 검사 출신이다. 공정거래위원장도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서초동에는 공직 예비군이 수두룩하다. 문재인 정부 때 윤석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옷을 벗거나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에 반발해 그만둔 검사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살생부가 윤석열 정부의 공신첩이다.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돈독한 관계이거나 각별한 근무연이 있어야 성골이다. 검사들이 한 장관의 검사 사직 글에 충성 맹세와 다를 바 없는 댓글을 경쟁적으로 단 것도 이런 시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초동 바닥에선 정권 실세 아무개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인이 줄을 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관가에선 검찰 출신을 검찰과는 하등 상관없는 요직에 앉히려는 것을 겨우 말렸다거나 전직 검사인 아무개가 모모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식의 얘기가 무성하다. 군사정권 때 군 출신이 그랬던 것을 제외하고 특정 직역이 이렇게 요직을 쓸어담은 경우는 없었다. 집권당이 국민의힘인지 검찰당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윤 대통령 특유의 검찰관, 경험주의와 연고주의, 국정운영 전략이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검찰주의자다. 검찰, 그중에서도 검사를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친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능력주의와 검찰주의가 공명한다. 가장 유능한 집단인 검찰에서 사람을 뽑아 쓰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할 것이다. 성 비위 전력이 있는 데다 부적절한 성 인식이 담긴 시를 여럿 발표한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책임이 있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을 임명하고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 번 써본 사람을 계속 믿고 쓴다. 이런 식의 경험주의, 연고주의 인사로 검찰에서 윤석열 사단이 만들어졌다. 현 정부에서 요직에 오른 검찰 출신은 대부분 윤 대통령과 연이 있다. 한동훈 장관과 함께 윤석열 사단의 투톱으로 꼽히는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의혹 사건 변호인이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검찰총장 징계청구 사건에서 윤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윤석열 정부 첫 공정위원장으로 유력한 강수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검사 시절 같은 지청에서 근무한 윤 대통령과 카풀 통근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집사와 문고리부터 인사라인까지 검찰 출신이 꿰찼다. 고위공직자를 추천하는 인사기획관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그를 보좌하는 인사비서관, 고위공직 후보자를 2차 검증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다. 법률비서관도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의 집사인 총무비서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부속실장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행정부를 봐도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여실하다. 법무부 장차관도, 법제처장도 검사 출신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물론 총리 비서실장까지 검사 출신이다. 공정거래위원장도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지금 서초동에는 공직 예비군이 수두룩하다. 문재인 정부 때 윤석열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옷을 벗거나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에 반발해 그만둔 검사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살생부가 윤석열 정부의 공신첩이다.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돈독한 관계이거나 각별한 근무연이 있어야 성골이다. 검사들이 한 장관의 검사 사직 글에 충성 맹세와 다를 바 없는 댓글을 경쟁적으로 단 것도 이런 시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초동 바닥에선 정권 실세 아무개 변호사 사무실에 의뢰인이 줄을 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관가에선 검찰 출신을 검찰과는 하등 상관없는 요직에 앉히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을 무턱대고 요직에 앉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검찰 출신을 비롯한 측근이 보란듯이 앉은 자리를 보면 여소야대에서 윤 대통령이 구상하는 국정운영 밑그림이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장관을 통해 법무부와 검찰을, 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통해 경찰을 틀어쥐었다. 공정위는 경제 검찰로 불린다. 국정원은 대공수사를 하고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 법제처는 시행령 등 법령을 해석한다. 고위공직자 추천(복두규 인사기획관-이원모 인사비서관), 1차 검증(한동훈 법무부 장관), 2차 검증(이시원 비서관)까지 인사·검증 라인은 검찰 출신 일색이다. 비위 공직자에 대한 감찰(이시원 비서관)도 검찰 출신 몫이다. 인사, 수사, 정보, 조사, 감찰 등을 맡는 권력기관을 윤 대통령이 직할하면서 입법보다 시행령을 활용해 국정을 운영하려는 포석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때만 해도 설마하는 사람이 많았다. 법무부 외청에 불과한 검찰 바깥으로 나가 복잡다기한 국정운영의 신세계와 마주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윤 대통령은 도리어 검찰 시스템을 국정운영 원리로 확장하고 있다. 검찰공화국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규정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정제혁 사회부장 경향 : 2022.06.03.

 

선거 다음

지방선거가 있던 날 냉장고 대청소를 했다. 오래 방치한 반찬과 식재료 중 상한 걸 버리는 게 1차 목표였다. 그중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도 있었다. 지난겨울 엄마가 담가준 열무김치는 시어 꼬부라졌지만 씻어서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치니 제법 맛있는 반찬으로 재탄생했다. 냉장고 한쪽 구석에 있던 레몬 세 알도 구출하여 샐러드나 생수에 한 조각씩 넣기 편하게 작게 잘라 통에 담았다. 쾌적한 냉장고를 유지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편이지만,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버리지 않는다. 음식과 식재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것이 그렇다. 문제는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온종일 냉장고 대청소를 비롯하여 밀린 집안일에 몰두한 이유는 지방선거 결과를 궁금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대선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방선거를 치르려니 피로감이 몰려와서인지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뉴스는 꼴도 보기 싫었다. 선거는 예상대로 새 정부의 후광을 입은 여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고 곳곳에서 탄식이 들렸다. 되지 말아야 할 몇몇 인물이 살아돌아온 것이 충격적이었지만 비교적 덤덤하게 선거 다음날을 맞이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선거를 두고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만약 이번 선거를 실패라고 여긴다면 누구의 실패이며 무엇에 관한 실패일까?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선거는 누구 때문에지는 게 아니라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다. 냉장고에서 말라버린 당근이 그 옆의 양파 때문에 버려지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즉 선거는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인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살려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양당체제라는 개미지옥에서 그저 최악을 피하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진보당은 구청장 1명을 포함해 21명의 기초의원을 탄생시켰다. 그중 13명이 여성이다. 성평등, 기후위기 등 동시대적 가치와 함께 지역 현안을 꼼꼼하게 챙긴 결과다. 당선인이 나오진 못했지만 녹색당의 선전도 기억할 만하다. 녹색당은 녹색이라는 이름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며 대안적 선거 활동을 했다. 그 결과 출마한 후보들이 골고루 5%에 근접한 지지율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서울 마포구에서는 첫 성소수자 구의원도 탄생했다. 비록 소소한 결과이지만 소위 중앙정치에서는 불가능한 다양성이 지역정치에서나마 실현된 게 반갑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새길 필요가 있다.

 

진보 정당들의 약진과 선전을 보며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문장이 생각났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무엇입니다.” 이 말을 적용해 본다면 기성 정치인들이 하고 있던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정치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떠들지만 사실 자신들의 자리와 정당의 이익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는가? 지역 일꾼을 자처했지만 정작 지역의 필요에는 관심 두지 않고 중앙정치에만 매몰되지는 않았는가? 이번 선거는 그 무엇들이 축적된 결과인 것이다. 그러니 만약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를 탓하기 전에 무엇에 관해 실패했고 왜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경향 : 2022.06.04.

 

통속적 현실주의를 넘어

지방선거가 끝났다. 승자들은 기쁨의 축배를, 패자들은 선거 국면을 반추하며 쓰디쓴 잔을 들고 있을 것이다. 후일담들이 쏟아지고 있다. 희망의 말들과 절망의 말들이 교차한다. 유세 기간 중 후보들과 지지자들이 쏟아낸 조롱과 비난, 분노와 분열, 냉소와 혐오의 말들이 홍수에 떠밀려 온 부유물처럼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정치에서 품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품격이 사라진 정치 마당은 분열적이고 파괴적이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상대편의 말은 경청되지 않는다. 정체성 정치가 지배하는 순간 연대의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그런 폭력적 파당 정치에 신물이 난 이들은 정치혐오 계층으로 남는다. 정치적 무관심 혹은 혐오가 깊어갈수록 정치꾼들이 설 땅이 넓어진다.

 

투표라는 행위가 종료되었다 해서 시민들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이 약속한 것을 이행하는지를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물론 그들이 약속한 모든 일들이 다 선한 일은 아니다. 공익에 위배되거나 사회적 취약계층을 벼랑으로 내모는 공약은 철회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공약을 다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비정상을 용인하는 셈이다. 통속적 현실주의가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덕적 원리를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도덕성에 대한 감각이 사라질 때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전선이 되고 만다. 그 전투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개별화되고 스스로 취약하다고 느낀다. 불안, 불확실함, 불안정, 두려움, 고립감이 그물처럼 확고하게 그들을 사로잡는다. 정치꾼들은 사람들의 그런 소외감을 타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꾸어 자기 설 자리를 만든다.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고, 끊어진 관계를 복원시켜 주고,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의 설 땅이 되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심화 혹은 영속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정치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종교가 할 일은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바른길을 가리켜 보이는 일이 아닐까? 비판적 기능을 잃고 종교가 정치에 순응할 때, 그래서 부적절한 야합이 일어날 때 역사는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

 

기원전 6세기, 바벨론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대군을 이끌고 유대 땅을 유린하여 거의 모든 성읍이 무너졌을 때, 유다 임금 시드기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예루살렘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던 때 그는 비상한 조처를 생각해냈다. 시드기야는 고관들을 불러 모아놓고 집집마다 거느리고 있던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주자고 제안한다. 율법은 동족인 히브리인들을 종으로 삼는 것을 금지했지만, 그 명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왕과 고관들은 그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 히브리 종들을 방면하여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왕과 고관들은 성전에서 제물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놓고 그 사이를 걸어감으로 언약을 체결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제물과 같은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자기 저주의 선언인 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국경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굽이 군대를 파견하자 네부카드네자르는 그에 맞서기 위해 예루살렘 포위를 풀고 군대를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위기의 시간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시드기야와 고관들은 방면했던 히브리 종들을 다시 잡아들였다.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눈에 거슬렸다. 하나님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예루살렘을 치게 했다. 시드기야는 포로가 되어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유다의 역사는 결국 막을 내리게 되었다. 허릅숭이들이 지도자연할 때 역사는 퇴행을 거듭할 수밖에 없고 시민들의 삶 또한 결딴난다. 공적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설사 자기 이익에 반한다 해도 그렇다. 약속이 지켜질 때 사회의 토대인 신뢰가 구축된다.

 

라틴어로 종교를 뜻하는 렐리기오는 딱히 뭐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이 자기 삶과 행위에 대해 느끼는 꺼림칙한 느낌 혹은 주저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무한함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를 알아차릴 때 사람들은 경외심을 느낀다. 아름다움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이다. 종교는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신적 호의를 얻어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비열함과 천박함이 욕망의 옷을 입고 거리를 횡행하고 있는 시대이다. 타자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깊은 공감, 정의와 자비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도덕성의 핵심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2.06.04.

 

진보 정치의 품성과 솜씨

누가 봐도 명백한 진보 진영의 후퇴다. 민주당과 정의당 후보가 대거 낙선한 결과보다 진보의 크고 작은 텃밭에서 일찌감치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가 많았다는 사실이 뼈아픈 패배다. 선거로 이기고 지는 일이야 정당의 상사다. 그러나 이번엔 상대가 잘해서 진 것도 아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자중지란에 빠져 하나씩 둘씩 동지를 내쫓고 지지자를 내치다 보니, 애초에 누구를 어떻게 설득해야 이길 수 있을지 모른 채 받아든 결과라서 승패를 떠나 허망하다.

 

나는 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얼굴에서 패배감보다 어두운 무감각함을 본다. 실패한 지도자를 보고 분노하지 않는 싸늘함에 민망함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낀다.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은 우리가 이 건만 잘 챙겼어도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하는 반사실적 반성조차 잊은 듯 행동한다. 아직도 남 탓이고 유권자 탓이다. 그를 보는 유권자는 도대체 누굴 탓해야 하나.

 

내가 보기에 실패는 오래전에 시작했다. 당인의 도덕 감정이 진보적 의제를 대체하고, 파당적 낙인찍기가 정책 토론을 방해한 지 어언 십년이다. 도덕적 판단으로 정치적 설득을 대체하는 정파란 일단 불길하다. 진보 진영 내에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파열음은 불길한 수준을 넘어 정치적으로도 이미 그릇된 상태에 빠졌다.

 

툭하면 모욕이고, 혐오고, 불편하고, 참담하고, 환멸이고, 배반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진보 정치의 상투적인 표현을 보라. 이 말들은 정치적 설득은 꺼리고 정서적 파쟁을 일삼는 소위 진보의 품성을 보여준다. 우리 편을 만드는 능력은 없고 남의 편을 키우는 재주를 부리는 소위 진보의 솜씨를 보여준다.

 

진보 진영의 언어는 어느덧 부당거래, 이익편취, 권한남용, 불공정한 분배, 그리고 약자의 빼앗긴 권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사회적 실패를 어떻게 발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지 방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유권자의 정서와 믿음을 자신만이 진정으로 대변한다는 근거 없는 자만심을 내비칠 뿐이다. 심지어 이런 표현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익을 은밀하게 가로막기까지 한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을 보자.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관련한 고용 및 재화용역의 공급에 있어서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자는 일은 오래된 진보 진영의 정치적 목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20년이 돼가건만, 이른바 진보 정당들은 주요 선거를 앞둔 시점일수록 이에 대해 침묵한다. 평소 그렇게 차별과 혐오를 함께 묶어 외치다가도, 정작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전을 앞두고 정치적 의제로 삼아 추진하지 않는다.

 

나는 차별금지법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입법에 필요한 세부 조정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는 바 아니다. 내가 불만인 것은 법안을 내고 성명을 발표하는 일만으로 일했다는 식으로 손을 놓는 그 자세에 있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유권자는 물론 정책의 방향이나 효과에 대해 이견을 개진하는 동료마저 대화와 설득으로 포용하지 않는 그 무신경함에 있다. 예컨대 성별이나 나이 차별에 못 견디는 보수적 유권자를 정책 토론에 초청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이 추구하는 평등이란 사회적 성차나 시민권을 무시하는 평등일 수 없다고 믿는 진보적 유권자와 논의를 통해 조율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만 이런 게 아니다. 대학입시 개선, 부동산 안정, 실질적 다당제 도입,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사법제도의 개혁 등 대체로 마찬가지다. 원리를 내세워 총론만 말할 뿐, 정교하게 정책을 조절해 나가지 못한 채, 지지자를 소외시키고 터무니없이 많은 적을 만든다. 중요한 사안을 놓고 이익과 이념을 내세워 설득하지 못하는 정당은 담합체일 뿐이다. 이견을 용납하지 않고 내부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정당은 패거리일 뿐이다. 두 번 지고도 왜 그랬는지 모르는 정당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향 입력 : 2022.06.06.

 

진보의 도그마와 콤플렉스

19971219, 집에 배달된 <한겨레> 1면에는 커다란 글씨로 김대중 당선이라고 쓰여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일어난 날이었다. 주변에 머물러 있던 진보적 정책 패러다임이 주류 무대 위로 올라온 순간이기도 했다.

 

그 뒤 25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놀라운 진보의 시대가 열렸다. 남북관계도 복지도 교육도 경제에서도 혁신이 이어졌다. 보수진영마저 진보 패러다임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데 지금 진보 패러다임은 낡은 것으로 여겨진다. 왜 그럴까? 25년 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경직된 도그마들을 너무 고집해서 생긴 일 아닐까?

 

다섯 가지 대표적 도그마가 있다.

첫째, 탈원전이라는 도그마다. 반핵운동은 1980년대 이후 반미운동과, 이후 환경운동과 결합하면서 탈원전을 진보의 주류 원칙으로 부상시켰다. 하지만 원전이 화석연료보다 탄소배출이 적고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성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손을 잡고 탄소중립 동맹을 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둘째, 햇볕정책이라는 도그마다. 북한은 25년 전과 달리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햇볕으로 나그네의 외투는 벗길 수 있지만, 그의 주머니 속 수류탄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당분간 긴장 속의 긴 평화가 현실적인 목표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대북 정책 기조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셋째, 평등교육이라는 도그마다. 경쟁교육을 반대하는 정책 기조 탓에, ‘수월성은 진보 교육에서 금기어가 됐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은 문제지만, 경쟁을 완화하려다 경쟁력이 낮아진다면 더 큰 문제다. 200064만명이던 출생아는 지난해 26만명이 됐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춰줘야 한다. 창의적이고 협력적이면서도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이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넷째, 지방분권이라는 도그마다. 진보는 지방분권에 앞장섰지만, 결과적으로 권력은 지역주민 대신 제왕적 시장·군수와 공무원들에게로 분산됐다. 중앙에서 대통령은 삼성에 투자를 구걸해야 하지만, 지역에서는 상인들이 군수에게 지원을 구걸하며 살아간다. 예전에 무시하던 시장·군수·구청장 선거에 전직 국회의원들이 출마하는 모습은 이런 지형을 반영한다. 이제 지방자치단체 권한 늘리기는 잠시 멈추고, 진정한 주민자치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구조를 설계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다섯째, 공공부문 확대라는 도그마다. 진보는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를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공공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이 민간을 관리·감독하며 운영하는 나라가 됐다. 현장의 일손은 늘 부족한데, 행정과 감사 대응 업무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 이제 공공부문 개혁을 진보의 의제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한편 진보는 몇 가지 콤플렉스 탓에 근원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소극적이기도 했다.

빨갱이 콤플렉스가 대표적이다. 기본소득제 등 파격적 사회보장 확대 논의가 나올 때마다, 상당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재정 낭비라는 공격을 걱정한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비판받자 실패 원인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세금부터 깎아주기도 했다. 이런 반응은 재정 확대나 증세 주장은 사회주의자라며 공격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탓에 나온다. 민주화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이다.

 

경알못 콤플렉스의 문제도 컸다. 정부가 내놓은 탄소중립 안에 대해서조차 기업이 반대해서’ ‘현실성이 없어서안 된다는 이른바 진보주의자들도 많았다. ‘진보는 경제를 모르고 성장에 반대한다는 비판에 콤플렉스가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 진보의 존재 이유는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데 있다. 운전자가 경로를 유연하게 바꾸는 데까지는 승객들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목적지를 바꾸면 승객은 하차할 수밖에 없다.

 

콤플렉스에 휩싸여 목적지를 잊은 결과는 참혹하다. 진보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 해결은 오히려 멀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목적지를 잊지 말되 유연하게 경로를 설계하며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 과감한 전환이 없다면, 진보의 시대는 이대로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다음 25년을 맞을, 새로운 진보의 탄생을 기대한다.

이원재 | LAB2050 대표 한겨레 : 2022.06.07.

 

재벌의 자유, 윤석열의 자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솔직해서 참 좋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 일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데, 그는 다르다. 에스엔에스(SNS)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재계 담당이던 기자 초년 시절 그의 에스엔에스는 재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재벌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그는 이번에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취임식에 초청받은 그의 인스타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윤 대통령이 취임연설을 하는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왔다. “자유! 자유! 자유! 무지개!!”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무려 35차례나 언급한 자유라는 단어에 감명받은 것 같았다.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지난 2일엔 좀 도발적인 글이 올라왔다. “야구 이기기 참 좋은 날이다 필승!! #ㅁㅕ......댓글엔 그의 멸공발언을 추앙하는 글들이 쏟아진 걸 보니 해시태그가 멸공을 의미한 게 분명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마음껏 #멸공 하세요. 부회장님이라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올해 초 잇따른 멸공 발언으로 회사 주가마저 급락하자 더이상 멸공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다. 보수 여당의 승리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난달 25일엔 난데없이 재벌 그룹 네곳이 약속이나 한듯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통상 이런 발표는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회동이 있을 때나 나오는 것이다. 이런 행사도 없었고 언론에도 사전 공지가 없었던 터라 어리둥절했다. 삼성은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고 8만명을 고용한다고 했다. 투자 배경으로 선제적 투자와 차별화된 기술력, 새로운 시장 창출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주도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는데, 궁금증을 풀기엔 부족했다. 며칠 새 재벌·대기업 10여곳도 뒤를 따랐다.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갑자기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한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왕성하게 살아난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과거 정부에서도 재벌들은 이런 계획을 내놨다. 이전 발표에서 얼마나 늘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삼성의 경우 숫자에 너무 현혹될 필요는 없다. 2년 전 발표 때보다 연간으로 따지면 투자는 10조원, 고용은 2667명 늘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청년 고용이 어려운 이 시국에 국내 투자와 고용을 늘린다니 좋은 일이다. 여기에 딴지를 걸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궁금증은 지난 2일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경제 6단체장의 회동에서 풀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는 기업인의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에서 더 활발히 뛸 수 있도록, 현재 해외 출입국에 제약을 받는 등 기업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같은 기업인들의 사면도 적극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인세·상속세 인하와 주 52시간제·중대재해처벌법 개선도 회장들의 요구 목록에 들어 있었다. , 이거였구나!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지만 새삼 재벌들의 순발력과 집요함에 놀랐다. 특히, 재벌 총수 사면 건은 불과 한달 전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안이다. 문 대통령도 검토했으나 명분을 찾지 못했던 거다. 이제 재벌들의 세상이 열린 것으로 여긴 걸까. 돈으로 못 얻을 건 없다는 생각일까.

 

유난히 공정과 상식, 법치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과연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그가 말한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일지. 그는 취임사에서 마치 자유와 시장이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중요한 문제로 지목하면서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재벌들이 경영 활동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족쇄들을 풀어줘야, 경제가 성장하고 양극화도 완화된다는 한물간 낙수 이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 막스 베버는 일찍이 사회 불평등이 경제적 부, 사회적 위신, 정치권력의 소유 여부에 기인한다고 갈파했다. 그중에서도 경제적 부의 격차가 핵심이다. 거대한 부를 가진 이들이 정치권력과 위신까지도 돈으로 사는 게 다반사이니 답은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는 잊지 말자. 그렇더라도 시민들의 존경과 마음까지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 2022.06.07.

 

민주당 내분의 길, 혁신의 길

민주당이 놀아나고 있다. 집권당과 언론권력이 손잡고 날마다 언구럭을 부린다. 한낱 우스개가 아니다. 언론이 분당 가능성을 보도하자 실제로 그런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생게망게한 상황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민주당에 있다.

 

차분히 톺아보면 이명박과 박근혜로 정권이 이어졌음에도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촛불혁명이 일어나면서 집권할 수 있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소망을 구현하지 못했다. ‘집값 안정만은 자신 있다거나 비정규직 제로와 같은 객쩍은 호기를 부렸다. 촛불혁명의 주체가 민주당이 아니었음에도 문재인은 취임부터 민주당 정부를 자임했다. 노무현과 달리 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겠다는 의도였다면, 촛불의 열망을 민주당에 담는 개혁 공천을 결행해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결기도, 당의 외연을 넓히려는 구상도 보이지 않았다. 애오라지 무조건 지지자들에 기대면서 민생을 위한 개혁정책마저 치열하게 추진하지 않았다. 회전문 인사에 ‘20년 집권따위의 망상을 드러내면서 여론은 싸늘해졌다.

 

그 결과다. 언론권력의 정권교체 여론몰이가 힘을 얻어갔다. 0.7% 차이로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아무 효과가 없었던 기업주도 성장을 다시 내세우고 있다. 노상 민주노총 죽이기에 몰두해온 조선일보는 권력에 용춤을 추며 노동개혁을 부르대고 나섰다. 노동인들을 마구 해고할 수 있는 노동개악개혁으로 내내 우긴 박근혜가 겹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또 얼마나 국력이 낭비될지 우려가 앞선다.

 

바로 그래서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저지할 제1야당이 거듭나야 한다. 방향은 정반대이지만 정확히 같은 문제의식으로 언론권력은 민주당을 집요하게 흔들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대선정국이 열릴 때부터 민주당 분열에 앞장섰다. ‘이재명 아들의 화천대유 계열사 취직이라는 허위보도까지 서슴지 않자 이 후보 쪽은 조선일보와 전쟁을 선언했다. 조선은 재빨리 사과하는 동시에 실제 전쟁에 돌입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민주당 후보를 희화화하고 사실 확인이 안 된 의혹과 논평을 쏟아냈다. 선거 당일에는 윤석열이 투표를 호소한다는 기사와 제목을 인터넷판에 내내 부각했다. 같은 말을 한 이재명은 보이지 않았다.

 

비단 대선만도 이재명만도 아니다. 지선 투표를 하루 앞두고 조선은 마지막 날, 울어버린 김동연·김은혜눈물의 의미는 달랐다기사를 인터넷판 머리에 큼직하게 올렸다. “김동연 후보는 상대를 향한 공세 과정에서, 김은혜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흘린 눈물로 그 의미는 달랐다고 썼다. 이는 단순한 정파보도가 아니다. 정당 기관지나 내보낼 잡문이다. 지선 이후 64일자 사설은 경제 위기 태풍권, 선거 승리 말할 상황 아니다이다. 집권자의 말을 아예 제목으로 삼았다. 같은 날 민주당 기사를 보자. “수박, 똥파리, 냥아요즘 민주당서 이 말 모르면 간첩이다. “지지자들, 은어 주고받으며 설전이란 부제를 더했다. 조선 신방복합체는 총선 또는 분당까지 검질기게 민주당 내분을 부추길 깜냥이다.

 

2022년 대선과 지선을 거치며 조선일보는 단순한 정파지를 넘어 정당 기관지로 변모하고 있다. ··동을 뭉뚱그려 볼 것이 아니라 조선을 별개로 보아야 할 상황에 이른 셈이다. 물론, 중앙과 동아가 더는 조선을 좇아가는 자충수를 두지 않을 때 그렇다.

 

1야당이 집권당의 기관지에 휘둘리는 꼴은 몹시 개탄스럽다. 민주당은 지금 ‘12척의 배만 갖고 있지 않다. 입법 권력은 아직 민주당에 있지 않은가. 기관지 언론에 놀아나 서로 총질할 때 내분의 길은 활짝 열린다. 혁신으로 가는 길의 푯대는 간명하되 준엄하다. ‘각자도생 체제를 넘어설 민생 입법이다.

 

민주당의 성찰과 혁신은 한국 정치의 숙제다. 의원 개개인이 민주주의의 성숙한 철학을 공유하는 대혁신을 촉구한다. 부라퀴들에게 더는 놀아나지 않는 민주당을 보고 싶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2022.06.07.

 

상식 초월대통령의 출근길 발언들

대통령이 출근길에 취재진과 짧으나마 소통하는 일은 신선하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나 상식과 어긋나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든다. 그런 효과를 일부러 노리는 게 아닌지 생각될 정도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출근길에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벌어지는 보수단체 시위를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집회·시위에 관한 상식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집회·시위가 의미를 갖는 것은 공적인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의견 표출의 상대방이 중요한 공적 인물일수록 집회·시위가 더 폭넓게 보장돼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 점에서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현직 대통령의 차이를

 

집회·시위 장소에 대한 규제에서도 이 공적 의미가 기준으로 작동한다. 국정을 수행하는 집무실은 공적 장소이며,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기에 적절한 장소다. 반면 사생활이 이뤄지는 주거지인 관저는 사적 공간이며, 집회·시위에 어느 정도 제약이 이뤄질 수 있는 장소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등 주변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제한하면서도, ‘그 기관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등에는 허용해야 한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등 거주지에 대해선 이런 예외 규정 없이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집무 공간과 거주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 구분도 뭉개고, 자신의 집무실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동일선상에 놓았다.

 

공적인 의견 표출보다는 괴롭힘을 목적으로 한 듯한 전직 대통령 사저 앞의 욕설 시위에 대해 우려하는 발언 대신 법대로를 들고나온 것도 유감이지만, 법대로의 내용마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게 당혹스럽다.

 

윤 대통령은 이튿날 출근길에서도 법치라는 말을 끌어왔는데, ‘검찰 독식인사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번먼트 어토니(정부에서 일하는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했다. 어려운 영어 표현을 써가며 측근 검사 중용 인사를 변호했지만, 역시 상식과 동떨어진 논리다.

 

법치는 절대군주가 제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사람의 지배)과 달리 법률에 근거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법의 지배)을 말한다. 국정운영을 누가 담당하는지와는 상관없다. 학교 수업에서 법률가(검사)가 국정에 많이 참여하는 게 법치라고 말한다면 선생님한테 지적을 받거나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작 법치와 관련해 생각해볼 대목은 이런 것이다. 검사 시절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시원 전 부장검사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됐다. 범인을 조작한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검사로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그런데도 보란 듯이 대통령실 비서관, 그것도 대통령 참모들의 기강을 담당하는 비서관에 발탁됐다. 전제군주 시대라면 왕이 자기 사람의 과오를 용서하고 곁에 불러들일 수 있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이래도 되는 것일까. 미국의 거번먼트 어토니가 이런 일로 징계를 받았다면 다른 공직에 기용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일도 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당한 징계에 불복해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최근 법무부는 그동안 법무부를 대리하던 변호사에게 해임 통보를 했다. 1심 재판에서 법무부의 징계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받아낸 유능한 변호사를 내치는 이유는 간단히 추론된다. 징계를 당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고 그 최측근이 법무부 장관이 됐다. 법무부는 소송에서 져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논리가 통하는 곳은 사람의 지배체제다. ‘법의 지배라면, 법무부는 법 절차를 통해 이뤄진 징계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해야 옳다. 미국 법무부에서 일하는 거번먼트 어토니들은 분명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법대로라는 말은 언뜻 흠잡을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맥락 속에 놓이면 독단을 가리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을 되짚어보는 이유다.

박용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2.06.09

 

여운형의 정관매진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만 해도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사실이었다. 김구와 이승만의 경우 만나는 사람마다 휘호를 해주었고, 글씨 그대로 실천되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글씨와 정치가 따로 논다. 휘호정치가 사라지면서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가 담긴 고격의 글씨도 정치도 죽었다

 

그렇다면 글씨도 살고 정치도 사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글씨가 정치가 되고 정치가 글씨가 되는 곳에 있다. 양평 몽양기념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몽양을 잇다 - 몽양의 눈빛> 특별전에서 만난 몽양 여운형(1886~1947)의 육필 正觀邁進(정관매진)’은 독자성과 보편성을 두루 갖춘 여운형주의휘호정치의 진수다. 그의 좌우합작을 통한 남북통일이라는 정치사상과 행동, 그리고 기질이 글씨에 그대로 융화되어 나온 결정체다. 외유내강의 군더더기 없는 팔다리와 같은 필획이다. 무한대로 팔을 벌린 邁進의 책받침 처리와 같은 공간경영에서 드러나는 포용력, 활달자재한 정신경계가 마치 몽양을 생면(生面)하는 기운마저 감돈다.

 

여운형주의의 독자성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이정식 교수의 여운형과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나 개인으로서의 주의는 맑스주의자요. 그러나 조선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민족주의적 행동을 한 것이오. 러시아에 레닌주의가 있는 것과 같이 중국에는 삼민주의가 있고, 조선에는 여운형주의를 가지고 하는 것이 조선해방의 길이라고 생각하오라고 한 데에서 잘 드러난다.

 

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현장에서 간파되는 여운형주의는 미국과 소련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지정학상으로도 (한반도는) 남방세력이자 해양세력인 민주주의의 맹주인 미국, 북방세력이자 대륙세력인 사령탑 소련이 접합하고 있다. 때문에 자주국가 건설과 유지 발전은 조선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좌우 협력에서만 가능하다고 몽양은 통찰해낸다. 여기서 문명의 용광로인 한반도를 두고 그리는 여운형주의의 좌표가 좌우합작은 물론 대륙과 해양을 관통시켜내는 지점까지 고려하여 설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몽양의 중도노선은 근로인민당 강령에서도 잘 드러난다. 민주주의국가 건설과 계획경제제도 확립, 진보적인 민족문화 건설과 전 인류의 문화 향상이 그것이다.

 

특히 철저한 기독교도인 몽양이 홍익인간을 좌우합작 통일의 발판으로 도약시켜내는 지점에서는 여운형주의의 본질이 빨간색만이 아니라 모든 색을 다 함유한 현지우현(玄之又玄)의 우주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몽양어록>에는 하나는 한이니 한은 한울,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고, 둘은 들, 즉 대지(大地)를 뜻하는 말이며, 셋은 들에 뿌리는 씨앗에서 온 말일세좌우합작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네. 우리 민족은 원래 통이 크고 대동단결을 모토로 하여 살아온 민족, 정치란 바로 정()자의 정치여야만 하네. 옳게 하는 다스림이야 해라고 토로하고 있다. 여기서 몽양의 정관매진의 속뜻도 제대로 이해될 뿐만 아니라 뼛속까지 혁명가가 몽양임을 확인한다.

 

아버지·할아버지가 골수 동학교도이고, 조상 대대로 노론과 대척점에 선 반골 소론 집안의 장손인 몽양은 19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그대들을 다 해방한다. 지금부터 저마다 자유롭게 행동하라. 사람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몽양의 최후가 더욱 극적인 것은 몽양식 살신성인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반대파들이 다섯 번째 테러를 가했을 때 나는 죽어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하였고, 아버지를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 나는 거리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한 대로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반대파의 열두 번째 총탄에 끝내 암살되고 만다.

 

그 후 여운형주의의 추진체인 정관매진75년 동안 길을 잃고 있다. 남북분단에다 남남갈등이 극에 달한 지금, 몽양의 정관매진은 우리의 정관매진이 되었다. 하지만 누가 다시 정관매진을 쓸 것인가 생각하면 더욱 아득해지는 유월이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경향 : 2022.06.10.

 

북극은 지금, 불덩이 바다

북극 유빙 위에 오른 틸 와그너 박사는 드릴로 발아래 얼음에 구멍을 내며 설명했다.

 

이렇게 두툼한 얼음 밑은 어두워서 미세조류가 잘 자라요. 동물성 플랑크톤이 이 미세조류를 먹고, 이 플랑크톤은 물고기와 오징어, 일부 고래의 먹이가 되고, 다시 육식 고래가 이 물고기와 오징어를 먹는 게 북극 먹이사슬이에요.

 

와그너 박사는 드릴 끝에 달린 원통을 바닥에 놓고 안에 있는 얼음을 꺼냈다.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이었다.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얼음이 옅은 갈색빛을 띠는 것처럼 보였다. 박사는 미세조류 양을 측정하기 위해 얼음을 밀봉해 실험실로 보냈다.

 

미세조류는 얼음 밑 어두운 곳에서만 자라는 음서 생물이에요. 북극 얼음이 사라지면 이 미세조류도 사라지겠죠. 그러면 동물성 플랑크톤도 사라지고, 결국 고래는 먹이를 잃죠. 북극 먹이사슬이 기초부터 무너지는 겁니다.”

 

2019년이었고, 그린피스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그린란드 북동쪽 연안 프람 해협을 탐사했다. 북극해와 대서양 사이에서 양방향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해협은 두 가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첫째, 얼음이 감소하면서 먹이사슬의 기초인 미세조류 역시 줄어든다. 둘째, 얼음이 사라진 바다는 태양 빛을 흡수해 표층이 따뜻해지고, 그 결과 영양염류가 위아래로 섞이지 않는다. 바다가 척박해지는 셈이다. 여전히 바람은 차고 얼음은 많아 보이지만, 지금 북극 바다는 열병을 앓고 있다. 세계기상기구의 자료를 보면 북극 연평균 바닷물 표면 온도는 1971년부터 2019년 사이 3.1도가 올랐다.

 

어디 북극만의 이야기인가.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측정한 우리 연근해 바닷물 표면 온도는 1968년 이래 1.5도나 올랐다. 전 세계 평균이 100년 사이 0.67도 상승한 것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두 배 넘게 오른 셈이다. 그 결과, 우리 바다에 사람을 공격하는 열대 어종 청상아리가 나타나고, 한류성 어종 명태는 씨가 말랐다. 지난해 남해안에서는 고수온에 약한 우럭 470만마리가 폐사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사실 북극 바닷물 온도가 3.1, 우리 바닷물 온도가 1.5도 올랐다는 수치는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3.1도면 찻잔에 담긴 물을 후후불면 식는 정도일까? 아니다. 이건 사람으로 치면 열병이다. 정상 체온 36.5도에서 1.5도 오르면 38. 이쯤이면 부모는 아이가 불덩이가 되었다아우성치고, 의사들은 고열로 진단해 해열제를 처방한다. 땀범벅이 되어 응앙응앙 우는 아이를 보면 부모는 가슴이 조마조마 움츠러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이를 살핀다. 북극처럼 3.1도가 올라 체온이 39.6도가 되면 어떨까? 이건 불덩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응급실로 달려갈 일이다.

 

문제는 지구가 아니라 우리다. 체온 변화에는 해열제를 먹어가며 가슴 졸이면서 바다의 1.5도니 3.1도에는 무심하지 않은가. 저기 우리 바다가 열병을 앓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온도계를 대면 불덩이다. 바다도 해열제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김연식 전 그린피스 항해사 경향 : 2022.06.10.

 

 

위헌·위법인 법무장관의 인사검증권

법무장관에게 인사검증권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공직정보규정)이 시행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검찰국가를 위한 기초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세간에는 이 변화를 윤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의 인적관계에만 주목하여 정치 가십처럼 소비하고 있지만 민주공화제가 우리 모두의 공존을 위한 공동선임을 동의한다면 이번 사태를 헌정 차원에서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법무부를 넘어 대통령실, 국무총리실은 물론 국가정보원, 금감원, 공정위까지 법집행기관에 검찰출신들을 전진 배치하는 검찰형 하나회의 출현은 법무부의 검찰화만으로도 검찰국가의 우려를 낳았던 공권력 사유화의 폐단을 넘어 헌정 차원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대착오적 권력구조 개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7년체제에서도 제왕적 대통령 현상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인사권과 정보권의 오·남용에서 나온다. 인사와 정보의 독과점은 법집행기관이 언론과 시민사회의 공론을 장악하고 국회 등 공직사회를 사정의 제물로 삼아 독재정권을 보위하는 핵심이다. 민주공화국은 국가정보,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의 분권화와 상호견제구조를 구축하여 정치적 편향성을 제어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정치와 거버넌스를 좌우하는 정치체제를 추구한다.

 

이번 법무장관의 인사검증권 확보는 단일국가의 중앙집권구조에서 사법집행기관이 정보기관까지 겸하는 기능전환을 제도화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법무장관이 좌우할 수 있는 법무장관의 제왕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반민주공화적이다. 국무총리, 감사원장은 물론 대법원과 헌재 등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헌법기관의 공직자에 대한 인사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사무를 현직검사에서 발탁된 법무장관이 관장하게 되면서 검찰형 하나회의 집권기반이 구축되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처럼 중차대한 헌정변화를 수반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단지 행정입법의 일부개정만으로 감행하는 검찰형 하나회의 무모함이 가공스럽다. 연방국가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행정권을 대통령 1인에게만 전속시킨 미국과 달리 대통령이 수반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만 행정권을 전속되지 않고 국무총리를 포함한 행정부와 더불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행사하도록 분권형 집단주의를 권력구조에 심어 두고, 정부조직에 대한 기본설계를 국회에 위임한 헌법제정자의 예지를 법률도 아닌 대통령령으로 전복시킨 것이 이번 사태의 또 다른 본질이다.

 

헌법 제96조는 행정조직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부조직법 제2조제1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상 인사사무는 국무총리소속의 인사혁신처에 있으며 법무부의 소관사무에 인사사무는 없다. 법무장관이 인사검증권을 보유하고 그 담당기관을 두려면 정부조직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대통령령인 공직정보규정의 개정만으로 이러한 법률주의를 무력화할 수 없다. 법무부는 정부조직법 제6조의 권한위탁조항을 근거로 내세우는 모양인데 애당초 이 권한위탁규정은 정부조직법상 직무범위의 비본질적사항의 위탁에 관한 규정으로서 인사검증과 같이 본질적 권한위탁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음이 이 조항의 시행령인 행정위임위탁규정에 명확히 선언되어 있다. 공직정보 규정 제10조의2에서 대통령 인사대상의 경우에 한하여 원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공직검증권을 위탁한 것은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의 공직검증권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는 것에 의하여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이 또한 정부조직법에 규정할 법률사안이라는 지적이 있어 온 마당에 법무장관에게 대통령령으로 공직검증권을 부여한 것은 정부조직법 위반을 넘어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법무장관에게 인사검증권을 부여하는 대통령령인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공직정보규정)이 시행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검찰국가를 위한 기초공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세간에는 이 변화를 윤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의 인적관계에만 주목하여 정치 가십처럼 소비하고 있지만 민주공화제가 우리 모두의 공존을 위한 공동선임을 동의한다면 이번 사태를 헌정 차원에서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법무부를 넘어 대통령실, 국무총리실은 물론 국가정보원, 금감원, 공정위까지 법집행기관에 검찰출신들을 전진 배치하는 검찰형 하나회의 출현은 법무부의 검찰화만으로도 검찰국가의 우려를 낳았던 공권력 사유화의 폐단을 넘어 헌정 차원에서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대착오적 권력구조 개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7년체제에서도 제왕적 대통령 현상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인사권과 정보권의 오·남용에서 나온다. 인사와 정보의 독과점은 법집행기관이 언론과 시민사회의 공론을 장악하고 국회 등 공직사회를 사정의 제물로 삼아 독재정권을 보위하는 핵심이다. 민주공화국은 국가정보,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의 분권화와 상호견제구조를 구축하여 정치적 편향성을 제어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 정치와 거버넌스를 좌우하는 정치체제를 추구한다.

 

이번 법무장관의 인사검증권 확보는 단일국가의 중앙집권구조에서 사법집행기관이 정보기관까지 겸하는 기능전환을 제도화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법무장관이 좌우할 수 있는 법무장관의 제왕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반민주공화적이다. 국무총리, 감사원장은 물론 대법원과 헌재 등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헌법기관의 공직자에 대한 인사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사무를 현직검사에서 발탁된 법무장관이 관장하게 되면서 검찰형 하나회의 집권기반이 구축되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처럼 중차대한 헌정변화를 수반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단지 행정입법의 일부개정만으로 감행하는 검찰형 하나회의 무모함이 가공스럽다. 연방국가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행정권을 대통령 1인에게만 전속시킨 미국과 달리 대통령이 수반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만 행정권을 전속되지 않고 국무총리를 포함한 행정부와 더불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행사하도록 분권형 집단주의를 권력구조에 심어 두고, 정부조직에 대한 기본설계를 국회에 위임한 헌법제정자의 예지를 법률도 아닌 대통령령으로 전복시킨 것이 이번 사태의 또 다른 본질이다.

 

헌법 제96조는 행정조직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정부조직법 제2조제1항은 중앙행정기관의 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상 인사사무는 국무총리소속의 인사혁신처에 있으며 법무부의 소관사무에 인사사무는 없다. 법무장관이 인사검증권을 보유하고 그 담당기관을 두려면 정부조직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대통령령인 공직정보규정의 개정만으로 이러한 법률주의를 무력화할 수 없다. 법무부는 정부조직법 제6조의 권한위탁조항을 근거로 내세우는 모양인데 애당초 이 권한위탁규정은 정부조직법상 직무범위의 비본질적사항의 위탁에 관한 규정으로서 인사검증과 같이 본질적 권한위탁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음이 이 조항의 시행령인 행정위임위탁규정에 명확히 선언되어 있다. 공직정보 규정 제10조의2에서 대통령 인사대상의 경우에 한하여 원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공직검증권을 위탁한 것은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의 공직검증권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는 것에 의하여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이 또한 정부조직법에 규정할 법률사안이라는 지적이 있어 온 마당에 법무장관에게 대통령령으로 공직검증권을 부여한 것은 정부조직법 위반을 넘어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법무장관은 그 자체가 온전한 헌법기관이 아니고 그 소관사무도 법률로 정해지는 법률상 중앙행정기관일 뿐이다. 또한 법무장관은 소관행정권의 집행과 관련하여 국무총리의 통할을 받는 지위에 있고, 애당초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국무위원으로 임명된다는 점에서 인사권에 관여하는 국무총리에 대한 포괄적 인사정보까지 관리하게 되는 것은 헌법에서 국무총리에게 행정권의 2인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한 것과 조화되기 힘들다.

 

제왕적 대통령의 종식을 표방하는 청와대 국민반환이라는 화려한 쇼가 사실은 헌법과 법률을 유린하는 시대착오적인 검찰형 하나회에 기반한 제왕적 법무장관의 출현이라니 깻잎 한 장에 비견되는 대선의 전리품치고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퇴행치고는 너무 황망하지 않은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2.06.10.

 

 

공천권이 대선후보 전리품인가?

한국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보다 본격적인 당내 권력투쟁에 몰입했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하지만 당내 계파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인 국민의힘도 혁신위원회를 띄운다고 한다.

 

당 혁신은 모호한 개념이다. 선거 패배 때마다 등장하는 비상대책위, 혁신위 등의 목적 자체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정당개혁이라는 것이 매번 선거 때마다 있을 수는 없다. 또한 정당개혁은 정당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정치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정당정치는 민주주의를 관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개혁은 선거 이후 패배한 정당에서는 의례적인 통과의례다. 내용 역시 형식적인 공천 룰 개정과 외부 인사 영입 등 상징적인 조치에 그친다.

 

정당은 무엇을 개혁하느냐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돌아볼 때가 됐다. 정당 내부의 공천 관련 규정 개정은 세력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정당개혁의 의제가 될 수 없다. 정치가 가치를 지향하고 민의 삶을 살피며 상충하는 이해집단의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당개혁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당혁신은 이러한 정치의 본령을 왜 해내지 못했고, 정치의 역할에 실패했느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제는 정치인들의 사고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선거 이후에 집권당과 제1야당이 혁신위를 출범시키고 그들 나름의 혁신을 국민 앞에 선보이겠지만, 총선거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어떠한 절박함을 보여줄지 의문이다. 역설적으로 공천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에게 혁신위의 공천제도 개정은 더 절박할 수 있다. 누가 당권을 잡는가에 따라 자신의 생사여탈의 향배가 결정되고, 대선주자는 22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함으로써 대선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얼개에서 볼 때, 대선주자와 총선 출마자들은 공생 관계다.

 

대권 주자군과 차기 원내 진입 희망자들의 공생 관계가 정치를 현실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동학이 바뀌지 않으면 어떠한 개혁과 쇄신도 지엽적이고 중위 수준의 개혁에 그칠 수밖에 없고 근원적 처방이 될 수 없다. 이는 초보 수준의 팩트이지만 이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의 논의는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 국민참여경선과 상향식 경선이며, 공천 경선에서 일반국민여론조사와 선거인단에 의한 경선을 가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 정치의 방식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정치를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의 본령을 회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공천 과정과 개념을 바꿔야 한다. 정치인들은 공천에 포획되어 있고 이 공천권은 결국 당 주류에 의해 행사된다. 공천권이 당 주류와 대권주자의 전리품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정당 혁신의 내용이 전당대회 룰을 바꾸고 외부 인사를 깜짝 영입해서 잠시 주목을 받게 하는 정도의 메뉴가 되어선 안 된다.

 

민주당에서는 벌써 전당대회 룰을 바꾸는 안들이 나오고 있다.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일반국민여론조사 10%, 일반당원여론조사 5%의 현행 규정을 대의원 20%, 권리당원 45%, 일반국민 30%, 일반당원여론조사 5%로 비율을 조정하는 안이다. 요체는 대의원 비중을 줄이고 권리당원과 여론조사의 비중을 늘리자는 것이다. 이재명 의원에 유리하게 바꾸자는 내용으로서 당권 주자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겠지만 혁신비대위의 주요 의제가 당내 경선 공학에 머물러있다는 반증이다.

 

이에 대한 찬반의 주요 근거는 친이재명이냐 반이재명의 기준이다. 정치에서 세력 분포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러한 원리가 정치를 작동시키는 결정적 동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권과 공천의 질긴 상관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친이, 친박, 친문, 친명, 친윤 등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줄서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당권을 차지함으로써 공천권으로 자파 대의원을 확보하여 대선 후보가 되려는 대선 주자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꾼들의 악어와 악어새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않으면 정치는 재구성될 수 없다.

 

2015년 문재인과 박지원의 당권 경쟁에서 박지원은 대권·당권 분리를 외쳤지만 결국 대권과 당권 모두 문재인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학습효과들이 정치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권과 당권, 공천권의 악순환의 정치 구조가 한국정치를 마냥 퇴행적 정치에 머물게 한다. 이 구조를 근원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정치는 계속 삼류에 머무는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는 한국정당의 제도적 디자인이 절실하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2.06.10.

 

 

정의당, 심판 받다

양대 정당 대안될 일관된 색깔 안 보인다

정의당이 지방선거에서 참담한 결과와 마주했다. 필자는 대선 끝나고 얼마 뒤에 대선 평가를 겸하여 정의당을 다룬 글을 쓴 바 있고(바로가기 : <정의당, 원내정당 체질에서 벗어나라>, 2022. 4. 11), 이후 이 지면에서 특정 진보정당을 주제로 다루는 것은 피하려 했다. 그러나 정의당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여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 번 더 고언을 남길 수밖에 없겠다.

 

정의당이 왜 이런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는지를 놓고 벌써 여러 진단과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진보당이 거둔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성과와 비교하며 지역 정치 활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면서 노동 현장과 지역 현장에 주력해야 한다는 각오, 어쨌든 진보대통합을 해야 한다는 요청 등이 대두한다. 모두 일리 있는 이야기이고, 중요한 지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을 꿰뚫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들 정의당의 '실패'를 전제로 진단하고 대안을 내놓는데,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은 단지 '실패'하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심판'을 받았다. 지방선거에서 대중은 정의당을 심판했다.

 

심판 받았다는 평가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지표는 바로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거 결과다. 광역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선거 결과도 충격적이지만, 그래도 역시 정의당과 민심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광역의회 정당 투표다.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라면 어쨌든 상당수 광역의회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한 명씩은 배출할 것이 '당연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모든 광역의회 선거에서 정의당 득표율은 5% 선을 채 넘지 못했다. 이 일관된 흐름에 '심판' 외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대안 역시 정의당이 무엇에 실패했는지만 따져서는 나오기 힘들다. 준엄한 심판의 이유와 대면해야만 한다.

 

대중에게 유효한 '짱돌'이 되지 못한 정당의 운명

선거에서 정당이(후보가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특히 양대 정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현재 한국 같은 상황에서 두 지배 정당에 도전하려는 정당이 대중의 지지를 일정하게 결집하려면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정당이 투표자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이 1위를 차지할지를 놓고 벌어지는 긴박한 격투조차 뒤로 미루고 정의당 같은 정당에 표를 던지려면, 이 투표가 특정 대중 집단(아무리 소수라도)의 존재를 확연히 드러내는 선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당이 좋아하는 표현에 따르면, '투명인간'이 비로소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정도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대 대선 직후의 한국 사회에서는 "윤석열 정권-국민의힘에는 반대하지만 절대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편에 있다고는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 혹은 "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고 싶지만 결코 국민의힘과 한 편이라고 불리기는 싫은 사람들"이 정의당을 자신의 이런 성향을 드러낼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 현 정당 체계에서 정치 무대의 중심을 향해 던질 '짱돌'로 이 정당을 충분히 써먹을 만하다고 여겨야 한다.

 

이런 인정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누구라도 저 당은 저런 선택지라고 떠올릴 정도로 일관된 기조와 색깔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이후에도 계속 심판받길 바라는 이들이나, 현 정부-여당에 항의하길 원하더라도 전 여당과 같은 편 취급당하기는 싫은 이들이 정의당에 던지는 표가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편으로 집계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잘못 계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면, 정의당에 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십 년간 실망만 쌓인 양대 정당 중 한 쪽에 표를 던지는 것 이상으로 표를 낭비하는 일이다.

 

이번에 유권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정의당은 전혀 일관된 정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대선을 완주했다. 저조한 득표가 예상됨에도 대선 투표용지에 양대 정당 후보 아닌 선택지를 남기기 위해 비장한 선택을 했다. 대선에서 이런 역할을 받아들인 정당이라면, 지방선거에 이르는 몇 달 안 되는 시간 동안 철저히 이 선택을 반복하여 환기시키는 정치 행위를 펼쳐야 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기억하는, 이 기간 중 정의당이 펼친 정치 행위란 무엇이었던가?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거들어준 것뿐이다.

 

정의당은 대선에서 자신이 한 선택의 의미를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선을 겪으며 정의당은 새로운 정치 지형에 필요한 새 과제를 안게 됐다. 새 정부를 우려하면서도 "그럼 너는 더불어민주당인가?"라는 물음에 다른 답을 하길 바라는 이들, 검수완박에 반대하면서도 "그럼 너는 국민의힘인가?"라는 물음에 다른 답을 하길 바라는 이들을 결집하고 가시화, 세력화하는 상징적 구심이 되는 일이 그것이었다. 검수완박 사태만큼 이 과제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중간 시험도 달리 없었다. 검수완박 법안 표결은 그저 단순한 한 법안의 표결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 표결에 일종의 '국회 공무원'의 자세로 임했다. 정의당 국회의원들의 표결에서 현명한 시민들은 다시 대선 이전 모습으로 돌아간 정의당을 보았다.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지방선거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에 표를 던졌을 이들이 못해도 몇 %는 될 것이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실망층과 함께 투표 자체에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정의당이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 5% 선을 넘지 못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정도 기권 규모라면, 3인 이상 선거구에서 당선 순위 안에 들 수도 있었을 정의당 기초의원 후보가 순위 바깥으로 밀려나게 만든 중대한 요소였다고도 할 수 있다.

 

검수완박 법안 표결을 그리 할 것이었다면, 정의당은 대선에서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 완주하지 말고, 더불어민주당과 협상하고 연대했어야 했다.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의 의의와 사명은 논외로 하고, 소수 도전 정당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일관성만 놓고 보면 그렇다. 이를테면 지금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자가 걷고 있는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김동연 당선자가 차지한 영광이 정의당의 몫이 됐을지 모르며, 광역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민주당-진보정당 교차 투표가 큰 규모로 부활했을 것이다. 물론 진보정당운동 자체는 지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김동연 당선자의 정당('새로운 물결')과 비슷한 운명을 밟게 됐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대선 완주의 연장선에서 정치 행위를 하지도 않았고, 대선에서 '좌파 김동연'이 되지도 않았다. 이 당은 도무지 이런 차원의 선택이란 것을 하지 않았다. 이제껏 하염없이 미루고 미루기만 했다. 그리 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작동했고, 이 힘이 바로 정의당을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구심력이었다.

 

3의 지대 추구 정당, 정의당

도대체 그 힘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정의당이 빨려 들어간 한국의 정당정치 지형 전반을 복기해야 한다. 이 지형은 양대 정당의 지배 아래 있고, 요즘 두 정당의 정치가 근본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에 관해서는 얼마 전 이 지면에 글을 올린 바 있다(바로가기 : <거대 양당의 '깽판 놓기' 정치>, 2022.3. 17). 거대 독점기업과 마찬가지로, 양대 정당은 자기 당이 상대 당에 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느냐는 협박으로 지지를 유지하고 독점적 지위를 이어간다. 필자는 이런 행태를 T. 베블런의 정식을 빌려 '깽판 놓기' 정치라 불렀다.

 

가령 양대 정당이 한국만의 특이한 풍속으로 정착시킨 정치 행위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두 당 중 한 쪽이 여론에서 크게 밀릴 때마다 그 당 후보들은 국민에게 사죄한다며 노상에서 절을 하거나 회초리를 맞는 자학적 퍼포먼스를 벌이곤 한다. 한데 이런 사죄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두 당 후보들은 도대체 무엇을 사죄하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대개 애매모호한 "민생에 전념하지 못했다"는 상투 어구를 되뇐다.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뭘 잘못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실은, 사죄의 몸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죄는커녕 협박이다. 정말 잘못했다고 여긴다면, 선거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대중의 심판이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의 '가나다'. 그러나 이들은 자학적 퍼포먼스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협박한다. "잘못은 했지만, 표는 줘야 한다."

 

이는 독점기업의 행태에 빗대 설명될 수도 있지만, 또한 전형적인 지대 추구자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대 정당은 언젠가부터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제6공화국 정치 체계에서 끊임없이 지대 수익, 즉 불로소득을 얻는다. 정치에서 '지대'란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 유권자와 끊임없이 교호해야만 정치적 자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철칙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한다. 이미 정치 체계 안에서 선점한 지위가 있기 때문에 대중을 대의해야 한다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오히려 대중에게 지지를 '강요'한다.

 

한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 일부 지역조직은 이런 양대 정당의 행태와 묘하게 닮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얼마나 양대 정당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과, 검수완박 법안 논란에서 마치 '국회 공무원'처럼 행동한 기억을 겹쳐 보면, 다음과 같은 진단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지대 추구 정당은 양대 정당만이 아니다. 한 정당이 더 있다. 바로 정의당이다.

 

정의당의 경우, 지대 수익은 현재 한국 선거제도상의 제한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서 나온다. 민주노동당에서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원내 진보정당은 국회와 광역의회에서 주로 제한된 비례대표제를 통해 의석을 확보해왔다. 선거 때마다 주된 명분은 양대 정당을 견제하려면 제3당이 원내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2년이나 2004년에는 물론 신선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이미 20년이 지났다.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이 명분이 어느덧 정의당이 의존하는 거의 유일한 동아줄이 되었다.

 

이쯤 되면 정의당 역시 현재의 한국 정치 체계에서 지대 수익을 얻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양대 정당이 독점적 지위를 통해 막대한 지대 수익을 누린다면, 정의당은 이에 비하면 보잘 것 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두 당의 감시자 혹은 중재자로 자처하며 지대 수익을 얻는 셈이다. 3의 지대 추구 정당인 것이다.

 

정의당을 이렇게 바라보면, 이 당이 요즘 같은 상황에서 선명하고 일관된 색깔을 택하길 꺼려하는 이유를 비로소 짐작하게 된다. 정의당은 해당 정세에서 대중에게 유효한 무기가 되려고 노력함으로써 정치적 자산을 확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양대 정당 사이에서 이 당이 선점하고 있는 원내 제3당 지위 자체를 불변의 생존 근거와 지지 이유로 삼으려 한다.

 

그러자면 검수완박 같은 쟁점에서 특정한 입장을 선명히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여기기 쉽다. 검수완박을 지지하는 대중과 찬성하는 대중 모두에게서 '3' 정당투표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 안에 이견이 있더라도 이런 지대 추구 정당의 속성 때문에 이견을 그저 봉합하기만 한 채 다음 선거로 나아가게 된다.

 

너무 심한 평가로 들리는가. 하지만 조금도 '심한' 평가가 아니다. 이미 대다수 대중은 간파하고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판결도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을 이해하고 인정해야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부딪힌 장벽과 심판의 주 내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정의당이 핵심으로 내세운 '다당제 민주주의'는 왜 별다른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했는가? 정의당이 오래 전부터 보여주고 있는 '다당제 정치'가 전혀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지대 추구 정당이 단 두 개여서는 안 되고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만 들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중이 정의당에 내린 심판의 주된 평결은 무엇인가? 그런 또 다른 지대 추구 정당은 이제 필요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정치적 순간마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훨씬 나음을 고뇌와 결단, 투지와 뚝심으로 증명하지 않은 채 '3'으로서 받아야 할 표를 요구하는 정당에게 줄 표는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정의당이 지대 추구 정당으로서 연명할 수 있을 만큼의 지지는 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판 받은 당이 해야 할 선택

심판 받은 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정의당의 경우, 이는 죽음에 준하는 무서운 선택을 감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미루기만 한 선택, 대중에게 유효한 '짱돌'이 되기 위해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선택.

 

우선 한 가지 선택지는 뒤늦게라도 '좌파 김동연'의 길을 가는 것이다. 위성정당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진보정당 주류가 그랬듯이 더불어민주당과 늘 손 맞잡고 함께 움직이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정의당 전체가 이 길을 선택한다면,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은 큰 타격을 입겠지만 한국의 정치지형 전체는 훨씬 더 정연하고 확연해질 것이다. 이 경우,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은 새로운 주체, 집단,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선택지는 대선 완주에 논리적으로 부합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결단이 너무 늦었고 그동안 반복한 오락가락 행보의 기억이 너무 짙지만, 어쨌든 양대 정당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이들이 안심하고 깔끔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무기가 되는 것이다. 정의당이 이 길을 걷기로 한다고 하여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2년도 안 남은 총선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더욱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독자적 진보정당운동의 제3기는 일단 풍요롭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제3의 길도 있다. 정의당 안에서 첫 번째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과, 두 번째 길을 가고자 이들이 나뉘어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뉜 이들에게는 정의당 전체가 한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더 큰 고난과 시련이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정의당이 지금 상태에 머무는 것에 비해서는 바람직한 상황이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정의당이 다시 한 번 선택을 미루며 지대 추구 정당으로 남아 총선에서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당의 자원을 대부분 일선 지역 조직들에 투입하겠다는 획기적 결정을 할 수도 있고, 진보당이나 녹색당과 통합 교섭에 나설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강령에 '사회주의''탈성장' 같은 급진적인 단어를 박아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결의들도 이 시대에 대중에게 유효한 정치적 무기가 되기 위한 명확한 좌표 설정과 이에 바탕을 둔 일관된 정치 행위가 없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 어느 것도 대중의 심판에 대한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정치에서 정당이 심판에 제대로 답하는 광경을 보기도 흔한 일은 아니다. 양대 정당은 이제껏 이를 대체로 무시하면서도 한국 정치를 잘도 독점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 이야기다. 정의당 같은 정당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 양대 정당처럼 대중의 심판을 무시하고도 살아남을 길이란 없다. 남은 시간이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이들에게는 그 남은 시간마저 없을 것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2.06.10.

 

 

유튜브 시대,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

출판시장이 불황이래."

 

"출판시장은 단군 이래로, 아니 파피루스 발명 이래로 쭉 불황이었어."

 

출판계 사람들은 그런 농담을 한다. 출판은 언제나 사양산업이었노라고. 그러나 아주 먼 옛날에는 매력 있는 데이트 상대가 되려면 시 한 편 정도는 외울 줄 알아야 하는 때가 있었다는 말이 전래동화처럼 전해진다. 한때 우리나라의 시집 판매량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영화가 아니라 책 판매량이 100만 부를 넘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 , , 책을 읽읍시다!'라는 공익 예능이 시청률 30%를 넘었던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꿈이었나 싶다. 요즘 유튜브 구독자는 10만 명이 넘어야 '실버 버튼'을 받지만, 책은 1만 부만 팔려도 분야별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으니 말이다. 책의 시대는 간 걸까?

 

반짝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지난 주말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에 닷새간 10만 명의 인파가 몰린 것이다. 나와 동료들도 책을 싸들고 다른 독립출판사들과 함께 손님을 맞았다.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의외로 판매가 쏠쏠하다는 이야기도 왕왕 들렸다. 방문한 사람들은 오래 머물다 갔다. 무엇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는지 궁금했다.

 

먼저 출판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한때 순수 문학에 비해 폄하되던 장르 문학이 본격적으로 양지로 나왔다. 장르 전문인 안전가옥 부스에서 책을 판매하던 직원들은, 부스를 방문하는 고객들을 일대일로 응대하며 적극적으로 상담에 응했다. 직원들은 서점의 사장님보다는 애플숍의 영업사원을 닮았다. 벽에는 게임 빙의물, 팬픽, 오메가버스, 무협 웹소설 등이 어떤 갈래로 뻗어나가는지 볼 수 있는 '장르지도'가 있었다. 책의 물성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기획 전시도 열렸다. 책의 표지만 보고 내용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은 옛말이다. 책도 만듦새가 좋아야 잘 팔린다. 이제는 책의 디자인과 제본, 종이까지 책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는다. 잘 팔리는 책은 스페셜 에디션이 따로 나오는 게 기본이다. 오디오북을 체험할 수 있는 오디오 라운지에는 만화 코난의 성우들이 나와 책을 읽었다. 반면 한쪽에서는 타자기를 쳐서 종이를 인쇄해 볼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도서전 내내 가장 사람이 몰렸던 독립 출판 코너에는 페미니즘, 퀴어, 비건 등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거나, 좁고 날카로운 주제를 깊게 판 책들이 팔렸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말이 사실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려움 속에서 출판사들은 각자의 도끼를 더 날카롭게 벼르고 있었던 것 같다.

 

손가락으로 몇 번만 두드리면 세상 모든 정보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시대, 종이책은 사라질까? 도서전에 참여하며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반짝 보았다. 손가락으로 종이를 한 장씩 넘겨야만 얻는 것들이, 시간을 들이고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건 정보를 얻는다는 것, 그 이상을 담는다.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이 텍스트를 읽는 방식과 닮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생각하는 훈련을, 사유하는 괴로움을, 그리하여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래서인지 도서전에 몰려든 사람들 간에는 어떤 연대감이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서점에 가보면 어떨까? 당신과 닮은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한국 220610

 

 

민주당, 이번 위기는 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선거 패배의 책임과 차기 당대표의 향방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헤게모니를 잡든간에 민주당의 위기는 깊어갈 것이다. 무엇보다 당의 핵심 콘텐츠인 민주복지의 호소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민주의 호소력이 줄었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위협받을 때 민주당을 호출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시절 공천파동은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이어졌고, 국정농단은 민주당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초대형 사고를 일으키기 어렵다. 소속정당 내 세력기반이 취약하니 관료 의존도가 높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으로부터도 견제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피하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기꺼이 부르고 있다.

 

복지의 호소력이 줄었나? 첫째로 보수도 꾸준히 복지에 힘써 차별성이 작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과 대학등록금 감면(국가장학금)을 도입했고, 윤석열 정부는 출생 후 1년간 부모급여를 지급할 예정이다(2024년부터 월 100만원). 둘째로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와 변화다. 현존하는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아도 2050년이 되면 조세부담률이 지금의 1.5배 이상이 되고 여기에 더해 소득의 20% 이상을 국민연금으로 내야 한다는 예측이 나온다. 청년세대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반응이다(20대에서 반대 60%, 찬성 33%).

 

민주와 복지의 효능이 줄어드는 와중에 노동, 지역, 교육, 주거, 산업, 재벌, 연금 등등의 개혁 주제들은 한마디로 부도가 났다. 출생률은 세계 최저,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말이다. 민주당에 이런 주제들을 다룰 내공이나 의지가 없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깊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대신 적당히 외주를 주거나 대충 겉핥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부동산으로 실책을 거듭할 때도 견제할 수 없었던 것은 비판적 탐구력이 부족하고 내면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586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내 후속세대가 586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기색이 없다. 즉 문제는 낡음이 아니라 게으름인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 정치인들도 공부를 안 하지만,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다. ‘보수란 원래 기존의 가치를 지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는 뭔가를 고쳐 나아지게 한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고칠지 자신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결격사유다.

 

새로 꾸려질 혁신위원회에 제안한다. 민주당의 위기는 내공의 축적을 통한 자기확신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이라는 추상성으로 가리지 말고 정치인 개개인을 움직여야 한다. 전당대회 이후 국회의원 및 지역위원장 전원을 대상으로 개혁과제에 대한 논술형 시험을 치르고, 상위 20%는 답안지와 채점표를 공개하고 무조건 공천해주자. 시험 범위로 광주형 일자리, 부울경 메가시티, 서울대 10개 만들기, 스마트팜 귀촌 등을 제안한다. 실물과 추진동력이 존재하되 큰 의제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서 제조업 리쇼어링 전략, 노조 반대의 정당성, 지속 가능성을 높일 방안 등을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 기초체력을 기른 후 적극적 이민개방이냐, 과감한 사회개혁이냐라는 결정적 질문을 다뤄야 한다.

 

민주당의 혁신 못지않게 당의 원톱인 이재명 의원의 혁신도 필요하다. 나는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되는 게 민주당에 최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 구실을 잘하려면 여당과 잘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권에 재도전하려면 한국 사회의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기 바란다. 나는 그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최측근 참모와 이야기하다가, 저출생·고령화를 아예 문제로 인정하지도 않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재명 의원의 측근 관리에 문제가 적지 않음이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는데, 정책 측근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막판에 김포공항 폐쇄라는 깜짝쇼가 튀어나온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대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뒤 당 대표가 되어 당을 장악하고 대권에 재도전하는 시나리오는 그럴듯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똑같은 경로를 밟고서 다시 낙선한 사람을 반면교사로 삼기 바란다. 그가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이회창이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경향 : 2022.06.11.

 

 

노무현의 손녀, 한동훈의 딸

얼마 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손녀인 노서은 양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윙크하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던 천진난만했던 소녀가 벌써 대학 갈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성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언론은 서은 양의 서울대 합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무 살에 인생이 모두 결정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은 양은 '글로벌인재 특별전형'을 통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최근 합격하여 9월 입학을 앞두고 있다. 9월 입학은 해외에서 초··고를 졸업한 지원자를 위한 특별전형의 결과다. 서은 양은 LG경영연구원 소속으로 베이징에서 근무 중인 아버지 노건호 씨를 따라 중국으로 이주, 베이징 소재 미국계 국제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외국민 특별전형은 부모와 학생 모두 3년 이상 해외에서 거주한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 3년 특례(3)와 해외에서 12년 이상 교육을 마친 자를 대상으로 하는 12년 특례(12)로 구분된다. '3'의 정원은 대학 정원의 2% 이내로 한정돼지만 '12'의 정원은 대학 자율이다. 그렇기에 다른 입학전형에 비해 '12'의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학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서울대 합격은 엘리트로 가는 지름길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서울대가 없어지는 것이 좋겠지만 없애겠다고 공약하지는 않겠다"며 학벌 타파를 외쳤지만 손녀는 그 학벌을 올라탄 셈이다.

 

학력이 스무 살 시절 한 번의 검증으로 끝나면서 이후의 노력이나 성취는 폄하되거나 묻혀지게 된다.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학력을 감추거나 구태여 밝히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한국신탁은행에 취업하여 당시 야간인 국제대학교를 다녔다. 이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격했지만 그는 국제대학교 출신보다는 덕수상고 출신으로, 고졸신화로 포장되었다.

 

지난 61일 경기도 지사 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에서 강용석 무소속 후보는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그동안 학력을 갖고 부풀리는 사람은 수도 없이 봤는데, 학력을 축소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행시 합격할 때 이미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왜 고졸 신화가 되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지난 5월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는 한동훈 장관 지명자의 딸이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한 후보자의 딸은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외국계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학교는 외국 명문대학의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다. 비싼 등록금 논쟁에다 보고서 표절과 대필 의혹까지 더해졌다.

 

아직 대학 지원서를 쓰지도 않은 고등학생의 글을 놓고, 의혹을 더하는 것은 한 장관에 대한 흠집 내기 차원이 컸다.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딸 조민 씨처럼 철저한 조사를 당해보라는 심리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한 장관의 청문회는 한국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이 어떤 의미인지 사회적 고민으로 확장시킬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청문회에서 한 장관 딸에 대한 논란은 '한국3M''이모'씨 같은 '코미디 어록'으로만 끝을 맺었다.

 

12년 특례입학이나, 외국계 국제학교는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혜의 지점에 놓여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엘리트들이 자녀들에게 학벌을 만들어주는 과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학 합격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성취되는 결과물로 받아 들여왔다. 특히 국내외 명문대 합격은 고교시절 성실함과 두뇌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증표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학벌이 부모의 지원 아래 만들어지면서 세습 지위로 점차 변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의 역동성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학벌주의는 평생 우려먹는 신분증"이라면서 그 학벌의 병폐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고민하였다. 그러나 이후 학벌주의 병폐 해소에 나서지 못하면서 학벌주의는 더 공고하게 고착화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의 성시경(성대-고시-경기고), 문재인 정부의 유시민(유명대학-시민단체-민주당), 윤석열 정부의 서영남(서울대-영남-남성) 등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대학을 빗댄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무게는 언제나 위력적이다. 총체적 무기력에 빠진 것일까. 요즘은 어느 누구도 학벌의 폐해를 개선하려 나서지 않고 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디지털타임스 : 2022.06.12

 

 

한국의 부동산, 무엇이 특별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부동산시장의 가격 상승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에 비해 오히려 상승 비율은 낮은 편이라고 했다가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국제기구가 제공하는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의 매매지수를 기준으로 우리 정부는 국제기구에 자료를 제공한다. 한국부동산원의 매매지수가 실거래가격과 격차가 크다는 게 문제다. 가구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지수로 봐도 최근 수년 동안 두 배로 뛰었다. 덩달아 국제순위도 많이 올랐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부동산시장의 가격 급등이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 한국 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님을 전달하려 했다고 본다. 한국의 주택가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껑충 뛰었다. 미주와 유럽의 대도시들도 같은 시기 (코로나19 대유행 위기로 전 세계경제에 유동성이 무한정으로 공급되던 저금리 상황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에서 가격 상승 폭이 더 컸을 수 있다. 조금 더 오르고 덜 오른 정도의 차이를 따지는 건 중요치 않다. 왜 한국에서는 부동산 이슈 때문에 대선의 승패가 갈리는지, 이 나라의 부동산시장은 어떤 점이 특별한지, 사람들이 부동산과 관련해 정부 정책의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분노하는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대선 결과를 가른 부동산 이슈 외국에서도 부동산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곤 한다. 대체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임차인의 보호와 관련한 입법 갈등이 지방선거에서 표심을 가른다. 한국처럼 중앙정부를 결정하는 선거에서 부동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부동산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국민이 가장 커다란 위험으로 느끼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한 셈이다. 무엇이 특별한가. 부동산자산이 가계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80%), 계층 간 자산불평등이 심하다(상위 10%가 자산의 58.5% 보유) 등이 우리 국민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부동산시장의 가격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국가별로 비교하면 한국의 임차거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지만 도시별로 비교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다른 주요국의 대도시들에는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의 비율이 다수를 이룬다. 서울에선 자가주택 거주자들이 절반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 임차인들에게는 주택가격보다 임차비용이 중요한 관심사이겠지만 자가주택 거주자들이나 주택구매를 계획하는 사람들로선 주택가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면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어떤 행위나 결과를 콕 집어 실패로 규정한 걸까. 민주당 일각에서 파악하듯이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과중해 국민의 마음이 돌아섰을까. 가격 급등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 전세나 월세가 올라 형편이 어려워진 임차인들의 분노일까.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분노였을까. 다양한 시각에서 정책 실패를 파악하고 표를 거두었을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의 선거에서 민주당에 표를 주다가 반대진영으로 돌아선 사람들의 시각은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계급투표의 성향, 즉 재산이나 소득이 높은 사람이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은 역대 선거에서 항상 존재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 성향이 더 강화됐을 가능성은 있다. 자가주택을 보유하면서도 진보 후보를 찍던 사람들이 강화된 종부세 부담으로 보수 후보로 전향한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가격 급등과 이를 통제하지 못한 정책 실패의 무능함에 분노해 투표성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빈부격차를 예민하게 경험하면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이 이전 세대보다 일찍 내 집 마련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부모에게 상속받거나 받을 자산이 없는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소득과 비교해 힘겨울 정도의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정부의 약속과 달리 앙등하면서 이들의 소망은 좌절됐다. 다른 어떤 것도 이 분노를 달래주지 못했다.

 

정책 실패? 뒤늦은 대응? 부동산 가격 급등 그 자체가 정책 실패의 산물은 물론 아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글로벌한 현상이었다. 따라서 정책 실패 자체가 가격 급등의 원인이라는 비난은 지나친 점이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잘 대처하지 못했다. 가격 급등의 근본 원인인 글로벌 저금리와 유동성의 거시경제 상황을 적절한 정책을 통해 완화시키지 못했다. 시기적으로 늦은 정책수단 투입과 뒷북행정은 분명하게 시장의 가격 급등을 방조했고 서민의 주거생활에 어려움을 야기했다.

 

가격 급등을 완화해줄 수준으로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공급 부족문제를 적절하지 못한 정책이었다 지적할 수 있을까. 정책 실패의 본질이 부동산 공급의 양적 측면에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주택의 공급이 양적으로 이전 정부보다 부족하지도 않았다. 거시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부침을 보이는 시장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의 초점은 공급확대보다 수요조절에 둘 수밖에 없다. 주거와 투자의 목적으로 구성되는 탓에 주택 수요는 미래의 가격전망에 따라 큰 폭으로 변한다. 공급의 장기성과 시차성으로 인해 변하는 수요에 맞춰 제때 공급하기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장기적인 시계에서, 수요의 구조적·지역적 변화를 감안해 매년 일정한 수준의 주택공급이 가능하도록 조처하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공급정책이다.

 

임대차 3법으로 전셋값이 불안해졌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 또한 정책 실패의 영역에 포함하기는 어렵다. 부동산 매매가격 상승으로 전셋값 상승은 충분하게 예상되는 일이었다. 정부로서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임대차 3법의 도입을 미루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임대차 3법 도입과 함께 계약갱신이 가능한 임차인은 혜택을 보고 새로운 당사자와 계약한 임차인은 큰 폭으로 상승한 전세보증금을 부담해야 했다. 이는 임대차 3법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동산 매매가격 상승의 후속효과였다. 향후 임차인 보호의 기능을 더 잘 수행하려면 갱신 기간 연장 등 보완이 필요하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주간경향 220613

 

 

우크라이나 전쟁도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될까

크라이나 전쟁은 50년 전 4차 중동전쟁과 닮은꼴이다.

1973106일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 연합국들이 이스라엘을 선공하며 발발한 4차 중동전쟁은 전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촉발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 등에 대해 석유 금수를 단행해, 석유값은 무려 4배나 급등했다. 이때부터 전세계는 극심한 물가오름세에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공황에 준하는 경기침체에 10년 동안 시달렸다.

 

오일쇼크는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아랍의 연대와 대의가 표면적 이유였으나, 근본 배경은 전후 선진국 자본주의 경제의 종언이었다. 2차대전 뒤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이뤄지던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이는 전후 재건이라는 수요가 성장을 이끌고, 2차대전을 야기했던 불평등에 대한 반성과 사회주의의 위협 앞에서 90%를 넘는 최고소득세율 등 적극적 분배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전후 국제질서를 규율한 미국의 패권과 기술·생산·자금력이 윤활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전후 재건 붐이 종식되고 베트남전 등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가중되자, 물가오름세가 심화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 미국은 1971815일 금 1온스를 35달러에 바꿔준다는 금 태환 정책을 정지한다는 선언을 했다. 전후 자본주의 질서였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이었다.

 

미국의 패권과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였던 반면에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득세로 보였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은 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워서 지탱하던 산업 구조를 지식산업 중심으로 재편해 대응했다. 중후장대의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과 서비스, 첨단산업 중심으로 경제의 효율을 높여가는 계기로 삼았다. 산유국의 오일달러는 금융의 세계화를 촉진해 미국의 금융지배력을 키워줬다. 선진국이 버린 제조업은 한국 등 신흥공업국이 인수하는 등 새로운 자본주의 분업 구조가 형성돼 세계화의 기반이 됐다.

 

반면 소련은 때마침 터진 시베리아 유전 등 풍부한 석유와 고유가에 취해버렸다. 소련 경제는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화석연료에 기댄 중공업의 과도화와 비효율에 비틀거렸는데, 자본주의 체제를 강타한 오일쇼크에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소련은 고유가로 돈과 자원이 늘어나자, 체제 혁신의 필요성을 망각해버렸다.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체제 유지와 자신들의 제3세계 진출에 국력을 낭비했다. 석유값이 하락한 1982년에 접어들자, 누가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드러났다.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1985년부터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실시했으나, 결과적으로 때는 늦어버렸다. 오일쇼크는 소련에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 효과는 오일쇼크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종언을 배경으로 한다. 이 전쟁 역시 석유 및 식량 가격 급등을 불러서, 40년 만의 물가오름세가 전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이 전쟁은 2008년 금융위기,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세계화의 위축을 재촉하고, 국제 질서와 국제 경제를 진영화 혹은 블록화로 치닫게 하고 있다.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금수는 미국 등 서방을 겨냥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아랍 연대의 붕괴, 사회주의권의 몰락, 서방 경제의 강화로 귀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중국에 대한 봉쇄 강화를 부르고 있으나, 그 피해는 러시아와 중국만 입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일쇼크 전에 미국이 달러를 풀어서 흥청망청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미국은 닷컴버블과 2008년 경제위기에 달러를 풀어서 전세계적인 자산버블과 지금의 물가오름세를 촉발시켰다.

 

미국 등 서방이 이를 청정 대체에너지 개발의 기회로 삼는 등 다시 혁신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지 아직 의문이다. 자원의 러시아와 생산력의 중국을 고립화하고 봉쇄하려는 시도가 미국의 패권 유지로 귀결될지, 아니면 중·러가 주축인 새로운 진영을 탄생시킬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이 이 전쟁을 통해서 러시아를 약화하고 중국을 고립시킨다 해도, 이는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져야 한다.

 

중동전쟁이 부른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소련에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부르는 에너지·식량난과 40년 만의 물가오름세는 누구에게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가 될까?

정의길 | 선임기자 한겨레 220613

 

 

고물가 행진에 성장 전망 뚝윤석열 정부는 악재 돌파할 능력이 있나?

이제는 실력을 보고 싶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연달아 승리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뚝 떨어지고, 체감물가가 급속하게 상승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의 실효성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8월의 5.6% 이후, 13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8%를 기록했다. 상황의 시급함 때문에 지난달 30일 정부는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첫 민생대책인 이번 10대 프로젝트의 원칙은 '시장 친화적 물가관리'.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기존 방식의 물가 관리에서 벗어나 생산자가 원가를 절감할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주고 시장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먹거리와 산업원자재 중심으로 14대 품목에 할당관세가 적용되었다. 정부는 관세를 최대 25%까지 부과하던 수입 돼지고기 5만 톤에 대해 0% 할당관세를 연말까지 적용했다. 그러나 이미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 가운데 90%는 관세 없이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들여오는 돼지고기는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율이 0%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 외에 관세를 무는 캐나다(6.6%), 멕시코(1.9%), 브라질(1%)산을 모두 합쳐도 전체 수입 물량의 10%가 되지 않는다. , 처음부터 관세를 없애봐야 소비자가 부담하는 돼지고기 값이 낮아지기 어려운 대책을 발표한 것이다. 대두유와 해바라기씨유 등 식용유 재료와 밀과 밀가루 등에도 관세율을 0%로 인하하고, 사료용 뿌리채소류는 할당 물량을 30만 톤 추가하여 수입을 늘리고 계란 가공품은 할당관세 적용 기한을 연말까지로 늘리는 대책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원산지에서 이미 가격이 상승한 상태에서 수입되는 만큼 관세율 인하의 효력은 한정적이다. 일부 품목은 자국의 필요로 한 소비 수량도 못 채우는 상황이 오자 원산지 정부가 수출 금지를 선언하는 지경이다. 관세 인하만으로 이들 품목과 연관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기 불가능하고, 수입 물량 확보도 어려운 상황인데도 대책으로 발표된 것이다.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류 등 밥상에 자주 오르는 단순가공식료품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10%)를 내년까지 면제하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김치 가격이 전년 대비 10.6% 오르고, 된장은 16.3% 오르는 등 발효식품 가격이 인상되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농산물을 비롯한 주요 생필품 책임자를 지정해 관리하게 하는 물가 부처 책임제도 발표되었다. 물가 부처 책임제는 배추 국장, 고추 국장으로 담장 책임자를 부르던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했던 '물가 관리 책임 실명제'를 연상시킨다. '각자 알아서 책임져라'는 정책은 이미 실패하여 폐기된 지 오래된 정책이다.

 

기호품이 아니라 생필품으로 자리 잡은 커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커피와 코코아 원두에 붙는 부가가치세(10%)도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원두 수입 단계에서 부가가치세를 면제함으로써 원재료비가 9% 수준 절감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미 한발 늦어 버렸다. 프랜차이즈점과 편의점 등은 원두 가격 인상을 이유로 이미 한 차례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에, 한 번 올라간 가격이 부가가치세 면제로 다시 낮아지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12일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2068.07원으로 전날보다 3.48원 올랐다. 휘발유 가격은 지난 112064.59원을 기록하며 기존 최고가(20124182062.55)10년여 만에 넘어섰는데 하루 만에 다시 최고가를 뛰어넘은 것이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2067.4원으로 전날보다 3.87원 올랐다. 경유 가격은 지난달 1214년 만에 역대 최고가를 기록한 후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 와중에 안전 운임제 일몰제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에 앞으로 운임이 더 낮아질 것이 확실해진다. 지금도 수입이 너무 적어 생존이 어려운데, 앞으로 더 악화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화물연대가 파업을 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다.

 

주동자를 몇 명 구속하고, 파업참가자들에게 화물 운송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경제정책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철학의 한계

윤석열 정부가 다급히 내놓은 물가 안정책은 전반적으로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급자 위주의 세금 인하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될 지 미지수인 데다가, 발표하는 정부 당국자마저도 고작 효과가 0.1%p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즉 세부담 인하분이 제품가격에 반영이 된다고 하더라도 물가 안정에 미치는 효과가 처음부터 낮았다는 것이다.

 

'시장 친화'를 강조하느라 정작 고물가 시대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책이 거의 담기지 않은 점도 문제다. 실제로 생활물가가 올라도 고소득층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가계소비에서 식료품 등 생필품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추가적인 지출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각종 공과금이나 식료품, 교통비와 통신비 등 각계 지출에서 생활비의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이나 서민층은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최근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의 "폐업 지원금"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한겨레, 6/13). 각종 인건비 체납이나, 인테리어 복구비, 월세 밀린 금액이 없어 폐업조차 못하고 있던 이들이, 재난지원금으로 폐업 정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이 폐업을 하면, 고용보험 지급금이 더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수입이 갑자기 사라지므로 각종 복지비도 늘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를 급속하게 축소시킬 것이므로 내수 경제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게 된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나 기본소득 정책이 필요한 상황을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만들고 있고, 시장 친화적 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물가 상승과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고, 코로나 19 방역 과정에서 찍어낸 달러화의 가치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주요 곡물 수출의 감소와 전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동반 상승도 물가 인상의 심각한 이유 중의 하나다.

 

유능한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새로 출범한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국민도 있겠지만, 정부의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이고 국민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가게 된다. 적은 표의 차이로 정권을 잡았지만, 겸손한 제세로 임한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다.

 

장관과 대통령실 비서 인선에서 시작된 민심 이반은 물가 상승과 연이은 파업을 통해 집권 초기부터 국정의 안정을 흔들고 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정부를 표방했지만, 기업가와 사업주들을 위한 공정, 고가의 부동산 소유자들을 위한 상식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대로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맥을 이은 정당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보수 정부와 인재풀을 공유하고 있고, 국정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이들 정부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살이다. 실패는 교훈으로 삼아야지 계승할 필요는 없다.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근본적인 점검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득 주도 성장이나, 기본소득 정책은 정권의 이념을 넘어,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고 시급하게 요구되는 실질적인 경제정책이다. 실용적인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표방한다면, 인재와 정책을 넘어, 사상과 이념까지도 필요한 모든 것을 차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연달아 표를 모아준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실력을 보고 싶어 한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 프레시안 2022.06.13

 

 

공공의 교육, 공동의 교육

유네스코는 시대의 변곡점마다 미래교육을 위한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작년 11월에 세 번째 보고서를 발간했고, 올해 3월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번역서가 공개되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 앞에서 미래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보고서는 더 늦기 전에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공공재로서의 교육일 뿐 아니라 공동재로서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공공이라는 말의 출처는 <사기>이다. 왕이 행차하는데 한 사람이 다리 밑에서 갑자기 뛰어가는 바람에 왕을 태운 마차의 말이 크게 놀랐다. 그를 겨우 벌금형에 처했다는 것을 듣고 화가 난 왕에게 장석지가 말했다. “법은 천자가 모든 사람들과 공공(公共)하는 것입니다. 법조문보다 더 무겁게 처벌한다면 법이 백성들에게 신뢰받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공의 오래된 뜻이다.

 

공동의 의미는 맹자가 말한 여민해락(與民偕樂)’에서 유추된다. 한나라 때 조기는 이를 그 즐거움을 백성과 공동(共同)했다고 풀이했다. 문왕이 누대와 동산을 조성할 때 일하러 온 백성들이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한 것은 왕이 그것을 혼자 즐기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공동으로 즐겼기 때문이라는 문맥이다. 이처럼 공동은 개방과 공유의 개념이다.

 

미래교육 보고서를 읽는 내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기쁨보다 답답함과 불편함이 앞섰다. 진단과 주장이 너무 옳아서 불편하고,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달라서 답답했다. 우리는 여전히 교육에 공공의 재정을 투입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지원은 부족하면서 결과가 안 좋다고 다그치는 가운데, 교육은 사적 재원을 투자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학과와 학교, 지역과 국경의 벽을 허물고 지식을 공유해야 할 때라는 당위를 부정하기 힘든 만큼, 그럴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이 눈에 밟힌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전제인 인류와 지구가 놀랍도록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 교육에서만큼은 공공과 공동의 자리에서 다시 출발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경향 : 2022.06.15

 

 

검사 편향과 민변 도배의 평화학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1997년 김대중 정권을 시작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 이후로도 분단상황을 이용한 안보 협박 정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했다. 일본은 여전히 자민당 1당 체제이고, 극우 세력만 투표를 해서 변화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최근 몇 년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누가 더 무능하고 파렴치하고 부패했는가경쟁을 보면서, 차라리 능력 있는 의원들의 1당 체제인 민주주의 독재가 낫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진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이철희 의원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인상적이었다. “제가 속해 있는 여당 얘기를 먼저 한다면, 저희는 야당 해봤잖아요. 저희가 제1야당 때 상대 발목 많이 잡았거든요. 선거로 선출된 (보수) 대통령이 뭔가 하고 싶어 하면 봉쇄한 적이 많았거든요. 저희도 그랬는데 여당이 되어 보니까 지금 야당도 저희 때랑 같아서 너무 답답하거든요. 서운하고 답답하더라도 우리도 그랬으니할 말이 없는 거죠. 그때 우리는 맞았고, 지금 당신들은 틀렸다는 태도로는 문제를 전혀 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야당도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여당 해봤잖아요. 여당 할 때 얼마나 답답한지 알잖아요? 이게 계속되다보니 싸우는 게 전부잖아요. 우리 정치의 수준을 너무 떨어뜨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 이러한 상황은 진영 논리도 아니고 의미 없는 보복 핑퐁정치다. 대북관계나 경제정책은 당장 이익이 보이니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있다고 치자. 젠더나 차별금지법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민생에 무지한 정치인들이 표와 관련 있다고 착각, 국민을 상대로 이유 없는 반항을 반복하고 있다. 상식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번 정권이 걱정이다. 특히 외교정책, 해외 나들이에서 무슨 맥락 없는 말로 나라 망신을 시킬까. 이미 외국의 유수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교양을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정권교체가 된다면, “너네도 그랬잖아를 반복할까.

 

누가 더 나쁜가 경쟁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여론의 검사 편중인사 지적에, “법치라고 답하면서 과거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들은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더불어 법률가 출신이 정·관계에 다수 진출한 미국의 사례를 들어 그게 법치국가라며, 앞으로도 필요하면 검찰 출신 인사 추가 기용하겠다고 말했다(경향신문 69일자 1). 우선 민변 도배는 사실이 아니다. 정권 초기, 정부와 대통령실(청와대) 주요 직책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검찰 출신인사는 13명이고, 문재인 정부의 민변 출신인사는 1명이다.

 

검찰이든 변호사든 율사의 활동 영역이 지나치게 넓은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율사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사법시험 합격은 조선 시대의 과거 급제처럼 인식되었다. 군부 독재와 ‘3김 시대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외에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모두 사시 출신이다. 대선에 두 번 도전한 이회창씨도 판사 출신이고, 윤 대통령보다 먼저 합격한 노동자 출신 변호사이재명씨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오세훈 서울시장도 사시 출신이다.

 

민변은 공식적으로는 1988년에 창립되었지만, 1970년대부터 활동한 인권 변호사들이 모태다. 민변에 비판적인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시변(시국을걱정하는변호사모임)’도 있었다. 지인인 변호사에게 농담으로 너는 무슨 모임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모두 아니다라며 생변(생계를걱정하는변호사)’이라고 말해 웃은 적이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이제 정삼각형의 균형이 아니다. 지금 변호사들의 위상은 예전과 다르고 수입도 천차만별이다. 일부 판검사는 변호사를 영업직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윤 대통령의 검사 vs 민변이라는 인식이다. 정의로운 검사도 많지만, 두 집단이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기울인 노력과 역할 비교는 난센스다. 하지만 민변의 민주사회를 위한 노력도 예전 같지는 않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변 출신 국회의원, 장관의 부패와 부도덕은 많이 드러났다. 슬픈 일이지만, 나에게 문재인 정권 5년은 민변 출신 장관에게 큰 피해를 입은 지인들의 고통과 소송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과 민변(과 시민사회)로 대표되는 특정 집단의 등용이 반복될 소지와 이를 둘러싼 논의 방식이다. “우리만 그랬냐, 너네도 그랬잖아” “너희랑 우리랑 같냐” “너희가 더 심했잖아식의 정치는 답이 없다. 이는 인사 문제뿐 아니라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다. 필리버스터가 대표적이다. 국회가 대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지만 당장 국회의사당을 폭파시킬 수 없는 한, 그들이 인간의 바닥을 자주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면, 언론이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보도를 하지 말든가.

 

내가 검사 편향? 너네는 민변 도배.” 이 발언은 윤리학, 평화, 피해와 가해, 고통과 용서의 문제 등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거의 그렇다. 늘 심오하다. 내가 아는 국방전문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이 우리를 한 대 때리면, 우리는 두 대 때리는 게 자주국방이죠.” 내가 말했다. “한 대만 때리지, 왜 두 대를 때립니까?” 그가 말했다. “선생님 같으면, 먼저 당했는데 분이 풀리겠습니까?” 평화란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일까. 나를 포함, 한 대 맞으면 한 대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화 만들기의 어려움

대개 우리는 내가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돌려주겠다라고 말하지만, “고스란히의 양은 계량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다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를 이해하는 방식이 변하기도 하고, 여전히 피해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로 인해 잃어버린 인생과 시간의 억울함. 정당한 피해의식이다. 철없는 이들은 잊으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지만, 인생은 고난과 불공평의 연속이다. 지나가면, 또 온다.

 

성서 레위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복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관습법 시대의 정의()였다. 마태복음의 오른 뺨 대주기가 고상해 보이지만, 레위기의 율법이 더 공정하다. 이 원칙은 지나친 정의감’, 즉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려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받은 만큼돌려주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법무부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Justice’. 정의와 복수는 같은 말이다. 전자가 제도권의 법이라면, 후자는 현행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의의 실현이다. 정의가 법으로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유전무죄는 기본, 법정은 계급, 젠더, 나이, 피고인의 외모까지 작동하는 부정의한 전쟁터다. 법정은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이다.

 

다시 인사 문제로 돌아오자. ‘검사 도배와 민변 도배.’ 이것은 눈에는 눈과 같은 차원의 정의인가. 누가 피해자인가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처음 때린 사람인가. 이명박씨에게 필요 이상의 충성심을 보이려던 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후 일부 국민들은 트라우마와 팬덤으로 정치를 망쳤고, ‘가해자(검찰)’는 문재인 정권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대중을 불러 모았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도 대안이 아니다. 결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다. 결국 다학제를 아우르는 영원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정의는 불가능하다. 경합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국 평화 만들기는 피해자의 몫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알기 어렵고 인간에게는 고약한 자아(에고)가 있어서 강자일수록 자기 방어에 능하다. 피해자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언어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참고로, 윤 대통령이 좋아하는 미국의 검찰이 국민(people)을 대변하는 방식을 보자. 미국 검찰은 스미스라는 사람을 기소할 때, “People vs Smith”라고 표기한다.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의 검사는 선출직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경향 : 2022.06.15.

 

 

이왕 버린 몸

1. 2011년 일본 북동해안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일어났고, 10m에 달하는 쓰나미가 밀려왔다. 쓰나미는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현 등을 휩쓸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됐고, 대략 25,000명 넘는 인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고베 대지진 이후로 다시 한번 일본을 덮친 끔찍한 재난이었다. 재해 복구 예산이 무려 250조 원이 넘는다는 엄청난 피해 앞에 일본 전역은 깊은 시름과 비통함에 잠겼다.

 

그런데 쓰나미가 빠져나간 뒤, 리쿠젠타카타 시를 찾은 조사관은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닷가에 심어진 7만여 그루 소나무가 모두 끝장난 상황에서 그야말로 낙락장송 한 그루가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높이도 27.5m에 달하며, 수형도 아주 예쁘고 우뚝한 소나무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나무를 기적의 소나무라 부르며, 어떤 재난에도 굴하지 않는 일본의 대화혼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런 희망과 상징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헛된 꿈이었다. 쓰나미로 몰려온 바닷물이 뿌리를 완전히 침식해서, 소나무는 형체만 남아 있을 뿐, 이미 죽은 고사목이란 판정이 나오고 만 것이다.

 

섬겨야 하는 신(かみ)이 팔백만이나 되는 일본인들은 소나무 한 그루쯤 더 신으로 모신다고 무슨 큰일이랴 싶었나 보다. 이미 죽어버린 소나무 속을 다 파내고 시멘트를 채우고, 방부 처리한 껍질과 줄기 몇 개를 남겨서 거대한 인공 소나무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기적의 소나무란 이름으로 공원을 만들어 탐방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살아남은 듯 보였던 소나무로 위로받고, 희망을 걸어보자는 마음이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그 소나무가 종내 회생할 수 없는 고사목이란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15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서 좀비 소나무를 만들고, 그 시멘트 덩어리를 기적의 소나무라 불러도 좋은 것일까?

 

2. 골프란 운동은 그날 굿샷을 몇 번이나 날렸느냐가 아니라, 배드샷을 얼마나 줄였느냐가 스코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앞자리가 6자로 바뀌니 가끔 살아온 나날을 뒤돌아보게 된다. 비교적 큰 풍파 없이 살아왔다 싶기도 하지만, 이런 구비 저런 곡절이 왜 없었겠는가. 바라보면 부럽고 멋져 보이는 친구들은 다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사고를 덜 친 친구들이다. 살면서 사고를 안 칠 수는 없다. 문제는 이왕 버린 몸이란 생각이다. 이왕 버린 몸이니, 운세가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운세가 나쁠 때 틀린 판단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다. 이왕 버렸으니 폭삭 망해보자는, 실현 가능성이 극히 드문 패에 모두걸기하다 정말 거덜 나는 것. 그리고 불에 다 타버려 폭삭 주저앉은 집구석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건져보겠다고 잿더미를 뒤적이는 행보다. 무얼 택할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만 때려잡으면 민주주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분단 조국은 단박에 통일이 되리란 생각이 얼마나 나이브했던가. 그렇다면 윤석열이 대통령 됐다고 세상 다 망한 것처럼 해야 할 일도 손 놓고 있는, 좋게 말하면 직무유기요, 있는 대로 말하면 시대 앞의 저 죄인들을 어찌할꼬. 민주당 이야기다. 분김에 고향말로 적어본다. 시방 뭣들 하는겨. 이왕 버린 몸이라 이거여?

한일수 대전 두리한의원장·한의학박사 경기신문 2022.06.16.

 

 

처음 해보는 대통령의 가벼움, 나토 초청장의 무게

오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는 특별한 파트너들이 초청장을 받았다. 나토 30개 회원국 외에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뉴질랜드 정상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스웨덴과 핀란드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상 최초로 나토의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에서는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지, 김건희 여사가 동행할지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번 회담의 무게는 훨씬 무겁다.

 

이번 정상회의는 1949년 소련에 대항해 창설된 이래 유럽 안보에 집중해온 나토를 러시아와 중국 ‘2개의 위협에 대응하는 글로벌 나토로 변화시켜 나가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나토의 새 전략개념이 채택될 예정인데, 나토의 군사 태세를 강화하는 것과 활동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6월 나토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동시에 견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중국이 계속 감싸면서 중국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경계감이 더욱 높아졌다. ‘강군몽을 내걸고 군사력을 강화해온 중국이 대만 무력 통일에 나설 가능성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

 

지금 국제질서를 둘러싸고 세 가지 흐름이 부딪치고 있다.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를 규합해 중국 견제·포위망을 겹겹으로 짜고 있다.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와 오커스(미국, 영국, 호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을 출범시켰고, ··일 군사 협력과 나토의 역할 강화도 추진한다. 이에 대항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월 글로벌안보제안(全球安全倡議)을 내놓았다. 내정불간섭, 주권 존중·영토보존 원칙을 강조하면서 미국 일방주의에 대항하겠다고 한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조를 다지면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공) 협력을 강화하고, 남태평양·중앙아시아·남아메리카·중동에서 중국 편에 설 국가들을 최대한 규합하려 한다. 이 두 진영 사이에서 국토의 크기나 석유 에너지 자원의 영향력을 이용해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있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의 끝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 전반이 흔들리고 있고, 잘못 대응할 경우 대혼란 또는 세계대전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다

 

민주주의 체제의 수출 주도 제조업 강국이라는 한국의 정체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강화라는 도전을 고려하면 한국이 세 가지 흐름 가운데 미국 주도의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해 한국 정상으로는 최초로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한국이 -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기는 외교만으로는 더이상 어려운 시대가 오고 만 것이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미국의 대전략과 일체화된 듯 보인다. 한국의 능력과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한 고유한 전략과 신중함이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에 국민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혐중 정서를 자극했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쿼드 내의 미묘한 세력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쿼드에 가입하겠다고 나섰다가 지금으로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답을 받았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 참석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보다 닷새나 앞서 서둘러 발표했다.

 

미국은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규정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국내에서 억압적 통치를 강화하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의 복원을 염두에 둔 강대국 중심의 위계적 질서를 추구하는 부분을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중간선거와 대선 등 국내 정치 변화에 따라 동맹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흔들리지 않을지도 묻고 점검해야 한다. 한국은 국제질서의 혼란을 막고 한반도와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역할을 하되, -중 사이에서 완충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최근 중국 외교관들은 한국과의 회의에서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비난하고 북한과 러시아를 옹호하며, 한국이 대만 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미국 전략핵무기를 들여와서는 안된다는 요구를 북한 아나운서가 성명을 읽듯하고 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친미 외교에 대한 중국의 경직된 대응이다. ‘중국이 보복을 할 것인가라는 두려움에 얽매여 한국이 할 일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어려움이 예상되는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만일에 대비할 방안은 더욱 철저해야 한다. 미국통 일색의 외교안보팀에 중국통 전문가들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세계 6위 군사력,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나토와의 안보 협력에 나서는 것은 국제질서의 균형추를 바꾸는 역사적 무게가 있다.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라는 경솔함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박민희 | 논설위원 한겨레 : 2022.06.16

 

 

죽음을 선택할 권리

나는 바다에 표류하는 작은 배 같다. 일상의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한다. 이제 마침내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간다.” 이탈리아 중부 세니갈리아의 트럭 운전사였던 페데리코 카보리니(44)12년 전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됐다. 병상에 누워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싸워온 그는 지난 16일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별한 기계를 통해서 치사 약물을 스스로 투여해 숨을 거뒀다. 이탈리아에서 20199월부터 조건부 합법화된 의학적 조력자살(조력사)의 첫 사례다. 그는 인생은 위대하고 단 한 번뿐이기에, 이렇게 떠나는 게 안타깝다면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생의 밧줄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말을 남겼다.

 

불치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는 안락사·존엄사·조력사 등으로 구분된다. 의료진이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적극적 안락사,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소극적 안락사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뜻하는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에 가깝다. 조력사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약물이나 기구를 제공받아 스스로 생명 중단을 실행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에서 조력사나 안락사를 허용한다. 한국에서는 2018년 임종기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이 합법화됐다.

 

국내에서도 조력사 입법화 논의가 시작됐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15일 말기 환자가 의사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법안을 처음 발의했다.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도 품위 있는 죽음을 택할 권리를 부여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높인다는 것이다. 조력존엄사를 새로 정의하고 대상자를 결정·심사해 이행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연구진이 19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안락사 또는 조력사 입법화에 찬성한 응답자가 76.3%에 달했다.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거나 사전에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게 현실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경향 2022.06.17

 

 

죽은 인문학의 사회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올해 철학과를 폐지했다. 분노하는 재학생들과 철학과 동문들이 내건 현수막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철학이 밥 먹여주나?”라는 말이 오간 지 오래되었지만 이것은 왜곡된 것이다. 수많은 현철(賢哲)들이 없었다면 무명(無明)에 헤매는 인류의 앞길을 어떻게 밝혀왔겠는가. 종교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철학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간이 중도의 길을 걸어왔겠는가. 철학의 사망은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인문의 요람인 대학이 기업의 하청기지임을 재승인했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 기반은 인문사회라는 전통이다. 인문이 무엇인가. 언어,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등의 세계를 말한다. 세끼 먹는 것을 뛰어넘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다. 동물과 하등 차이가 없는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확장하고 하나가 되어 문명을 구축한 것은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종교의 천재들 또한 철학자들이다. 석가나 예수가 인간의 한계상황을 돌파하여 고단한 우리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각하는 힘에 의해서다.

 

자본은 자율적인 인간의 의지를 노예화하고 있다. 대학은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공간이다. 비판의 힘으로 이 사회는 혁명을 꿈꾸고 실현했다. 그 엔진은 세상을 직시한 눈들을 광장으로 이끈 철학의 시대정신이다. 철학이 없는 대학은 팥소 없는 찐빵과도 같다. 전국의 대학에서 점점 철학과가 폐쇄되고 있다.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고 현대문명을 성찰하는 공동체가 없는 대학은 존립할 이유가 없다. 인간이 기업의 전쟁터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에 저항할 주력부대가 소멸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학>에 대해 유학의 거봉인 주자와 왕양명은 대인의 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학은 인간 최고의 덕성을 구비한 성인(聖人)을 기르는 곳이다. 거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운명을 개척할 준비를 하는 곳이 아닌가. 인간과 인간이 연대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묻고 대답하며, 자신을 집어삼키는 업력의 거센 파도를 타고 넘는 지혜와 용기를 기르는 곳이 아닌가. 지식의 수도자들이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하며,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대학은 오직 펜 하나를 들고 참여하는 마을장터다. 사회적 위치나 나이를 떠나 삶의 탐구자로서 의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회사원도 농부도 교사도, 삶의 절벽을 마주한 자도 누구든 자신의 문제를 꺼내 이웃에게 조언을 요청할 수 있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국립이든 대학은 공기(公器). 굳이 헌법이나 교육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가는 대학까지도 무상으로 모든 백성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책무가 있다. 인류의 지혜를 보존하고 나누며 활용하는 플랫폼으로써 무한 지원을 해야 한다.

 

인문학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전쟁은 국가와 자본이 공모한 것이다. 학문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는 마음의 힘이 욕망에 제어당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이유는 인문정신의 쇠퇴와도 관련이 있다. 이웃의 고통을 내면화하지 못하는 불치의 병이 전염되고 있다. 경쟁의 파고 속으로 밀어 넣는데 어떻게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벌거벗은 몸을 거울에 비추어보라. 볼록한 배, 가는 다리, 퀭한 눈동자. 생물학적인 존재로서는 어느 것 하나도 볼품이 없다. 그러나 소멸해가는 존재일지라도 자신만의 왕국임을 자부하며 자기완성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먼지에 불과한 존재일지언정 천지와 우주와의 합일을 바란다. 희망의 학인 인문학은 무한과 영원을 향한 영혼의 등대다.

 

인문학은 죄가 없다. 진리와 정의가 새겨진 간판을 달고 설립되지 않은 대학이 어디 있으랴. 그 죄는 일차적으로 대학을 시장경제의 논리와 취업의 도구로 초토화시킨 정부에 있다.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피폐해진다면 인간은 언젠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죽음은 인류의 파멸로 이어지리라. 관계의 망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부조리와 야만을 재판하며, 자본의 자기파멸적 행위를 멈추게 하는 인문학의 학살을 온몸으로 막아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2022.06.18.

 

 

반민족 외치는 '엄마부대''반일종족주의'자들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백성들은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켰다. 반면에 두려움으로 저항보다는 침략자들에게 어쩔 수 없이 동조한 사람들도 꽤 있다. 어느 누가 쉽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하여 나라를 지켜낸 선조들의 용기와 기백에 찬사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외세의 침략도 없는 지금, 스스로 외세에 머리를 숙이고 그들에게 굴욕적인 행태를 취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인 것인가?

 

한국의 보수단체 인사들이라 자칭하는 주옥순 대한민국엄마부대 대표와 반일종족주의공동저자인 이우연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 등은 이달 안에 독일 베를린을 방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먼저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15일 보도했다.

 

나는 이 부분과 관련해 3가지를 말하려 한다.

첫째, 왜 그들의 행보에 대해 우리가 일본 언론을 통해 들어야 하는가? 이는 보수라 사칭하는 이들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행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만일 정말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위안부' 자체가 역사적 사기라면, 당당히 한국 언론을 통해 역사적 진실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독일 소재 소녀상 철거 요구로 독일을 방문하겠다는 것도 한국 언론을 통해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과거 구한말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앞서서 행한 반민족적 만행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지난 20198월에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 관계 회복을 위한 제5차 기자회견'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주옥순씨는 전에 "아베 수상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언제까지 100년 전에 식민지배 당한 것 갖고 우려먹을 건가?”, “내 딸이 위안부여도 일본을 용서한다... 내 딸이 겁탈을 당하든, 성폭행을 당하든, 한 놈도 아니고 두 놈 세 놈에 당했다고 하자, (딸이 위안부였다면) 자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딸을 자살시켜야 하나 아니면 빨리 잊고 미래를 생각하게 해야 하나?” 등의 소리를 내었다. (소리라고 한 것은 단순히 의미가 없는 한 형태의 소음에 불과하기에 사용한 것이다.) 결단코 정상적인 부모(특히, 엄마)라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부당히 겪었던 피해들을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가 하며, 한국 국민으로서 죄송하고 또한 일본을 용서한다고 하는 그들의 논리는 억지로 이해해보겠다. 그런데 이렇게 놀랍고 존경할만한 인류애를 가진 분들이 어째서 악에 받친 사람마냥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난의 말과 욕설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우려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민족상잔을 일으켜 죄 없는 국민들을 죽이고 학살했던 북한 공산당에 대해서는 어째서 기를 쓰고 욕을 하고 죽여야 한다고 원수들에게 소리치는지 모르겠다. 일본을 향한 애정어린 그들의 '선택적 인류애와 원수사랑'은 스스로 자신들의 논리가 억지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여기서 주씨는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딸의 경우 일본인들에게 겁탈을 당하면 분하고 수치스러워서 자살하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달에 돌아가신 김양주 할머니를 비롯하여 아직 생존해 계신 11분의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오욕적인 인생을 드러내서라도 비인간적이고, 비인류애적인 그리고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닌 일본의 만행에 대해 모멸감과 분함을 뒤로하고 당당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전 세계에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한 후대의 자손들은 그러한 비극적 인생을 살게 하지 않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당신들의 인생을 헌신하며 정말 지탱하기도 힘든 노구를 이끌고 미력하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가치만 따지는 주씨와 그런 주씨에게 비상식적인 교육을 받은 딸의 상황이면 주씨는 자신의 딸이 자살할 거라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씨가 정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위안부' 할머님들을 비교선상에 두어 말하는 것 자체는 매우 한심하고 어이가 없는 일이다.

 

셋째, 주옥순씨는 개신교라고 알려져 있다. 성경의 누가복음 6장을 보면,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볼 때,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는 문맥상 먼저는 기독교의 복음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라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이와 상응하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 기독교 적용점으로 확대하여,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복수를 품을 수 있는 대상을 향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 주씨와 같은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가치는 성경적 문맥상의 정확한 신앙적 적용 논리점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에게만 정치적으로 적용하고,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에 맞지 않는 사안들에는 다르게 적용하는 비신앙적·비성경적인 행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주옥순씨와 같은 비상식적개신교인들에게 성경의 말씀처럼, 먼저 기도하는 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도와 행실보다 말만 앞세우는 소위 선데이 크리스찬들과 같은 종교인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시는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고 간청한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선생)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리고 위에서 본 원수와 관련된 성경말씀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마태복음 712절에도 나와 있는 구절로 기독교의 황금률이라 한다. 왜 이렇게 좋은 성경말씀을 일본에만 적용하고,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님들과 일본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성경 말씀을 무작정 왜곡하며 적용하는 기독교인들로 인해, 때로는 다수의 교회에서 말만 앞세우는 성도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더 가르치고 침묵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본 언론은 주옥순씨가 속한 보수단체와 이우연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 등의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해 뜻밖의 원군이라고 표현하며 반색하고 있다. 나는 정의와 긍휼을 상실하고 왜곡하는 이들이 반민족자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종교적이고 위선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질타하는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말씀이 이들을 지칭함을 기독교인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이인애/통일비내리는날 대표출처 : 뉴스프리존 2022.06.19.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투명성 보고서, 한국 언론에 적용하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매 분기 두 SNS와 관련한 투명성 보고서(transparency reports)를 발행한다. 이 투명성 보고서는 20174분기부터 매 분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정책을 위반한 수치를 항목별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혐오 표현(hate speech)의 경우, 20174분기에는 페이스북 게시물 160만 개가량이 적발됐다. 20212분기에는 3150만 개가 적발돼 공개된 기간 데이터 중 가장 많았으며, 가장 최근인 20221분기에는 혐오 표현 1510만 개가 적발됐다.

 

이렇듯 실제로 조치한 데이터와 함께 메타는 출현율, 사전 대응률 등의 데이터도 함께 공개한다. 출현율은 정책 위반으로 적발된 콘텐츠들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이 보게 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전체 콘텐츠 중 규정 위반 콘텐츠의 비중이 아니라 일반 이용자들이 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도중 규정 위반 콘텐츠를 보게 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혐오 표현의 경우 20221분기 출현율은 약 0.02%이다. 사전 대응률은 이러한 규정 위반 콘텐츠들이 이용자에게 보이기 전에 삭제된 비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혐오 표현 정책 위반으로 적발된 게시물 대부분은 삭제되고 있으며, 메타의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이 중 90% 이상은 기계적 조치에 따라 자동 삭제되고 있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많다. 전체 데이터를 한 번에 내려받을 수 없어서 항목별로 모아봐야 하며, 각각을 어떻게 산출했는지를 대략 설명하고 있지만 검증해볼 방법은 없다. 구글, 트위터 등도 메타와 비슷한 투명성 보고서를 공개하고 있지만 완전히 투명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대략적으로나마 각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점은 의미 있다. 어떤 정책을 적용하고 이의 실질적 적용을 위한 조치를 어떻게 취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성 보고서의 한계는 같이 논의하면서 천천히 극복해나갈 수 있다. 메타는 혐오 발언은 기술 및 직접 콘텐츠 검토 팀에서 감지하기가 특히 어렵다. 관용구와 미묘한 차이는 문화, 언어 및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라며 혐오 표현 적발에 사용되는 기술의 한계점을 스스로 밝혔다.

 

투명성 구현할 때 신뢰 복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도 이러한 성격의 투명성 보고서를 발행해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플랫폼 기업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언론사들도 자신의 기사가 어떻게 얼마나 작성되고 유통되는지 이용자들에게 알린다면, 상당한 흥미를 끌 수 있으리라 본다. 거창한 내용을 담으라는 것이 아니라, 매 분기 우리 언론사는 기사 몇 건을 발행했으며 이 기사들 중 몇 건은 오프라인에 게재됐고, 몇 건은 온라인에만 게재됐는지, 그중 기사 몇 건을 삭제했는지, 삭제의 이유는 무엇인지 등 기초 정보만이라도 제공해보면 좋겠다. 이러한 기초 정보 공개를 시작으로 각 언론사들이 치열하게 거치고 있는 기사 제작 과정을 이용자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기사 하나를 발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신뢰의 기본은 솔직함이다. 언론 신뢰 위기의 원인에는 한국 언론의 불투명성도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정보의 속도와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현 시대에는 객관성·공정성 등 전통적 저널리즘 기본 원칙들보다 투명성이 우선할 수 있다. 투명성을 구현할 때 신뢰를 복원할 수 있다. 이 글을 싣고 있는 시사IN이 먼저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오세욱(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시사인 2022.06.19.

 

 

전직 고위공직자의 로비

사람의 판단력이나 인격, 넓게 보아 세계관은 평소에 잘 알기 어렵다. 문제적 상황에 처해서 하는 행동을 보아야 정확하게 안다.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라면 공의와 개인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 그중에서도 법에서 말하는 이해충돌 상황에서 공익을 사익에 앞세워야 마땅하므로, 공직 취임 전에 이 문제에서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려내야 할 필요성은 클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자가 퇴임 후 로펌이든 어디든 취업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전력으로 로비를 하던 사람이 공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런 복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로 여러 폐해를 일으키지만, 그래도 기어이 복귀시키려면 과거의 로비가 법이나 양식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새로운 공직이 과거의 로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로비는 어떤 이슈에 관해서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위다. 미국에서 로비를 규율하는 법률의 이름은 로비활동공개법이다. 무엇을 공개하라는 것인가. 고객의 명단, 로비활동 내역, 영향력을 행사한 법안의 번호, 로비활동에 따른 수입금액과 지출금액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불법일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 정당한 청탁은 허용되나? 변호사법은 변호사 아닌 자의 법률사무에 관한 청탁행위를 처벌한다. 변호사의 청탁행위는? 대법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의 인수조건과 인수자격에 관한 협상 사무를 법률사무로 보고, 그 사무처리 중 청탁을 하고 론스타로부터 보수를 받은 변호사의 행위는 변호사 직무범위의 포괄성에 비추어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접대나 향응, 뇌물의 제공 등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의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방법을 내세워하는 청탁은 위법하다고 했다.

 

변호사 자격 없이 로펌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보수를 받는 전직 고위공직자들의 자문’(자문의 본뜻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통상 의뢰인의 의뢰에 따라 법적 조력을 해 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고,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은 변호사법에 위배되나? 관청의 사무는 대부분 법령 소정의 요건을 충족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점에서 법률사건에 해당하겠고 또 의뢰인으로부터 사무 처리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게 보통일 것이므로, 관건은 사무처리와 관련하여 청탁을 했는지 여부다.

 

변호사법은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 또는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일정 직급 이상의 공직에 있었다가 법무법인 등에 취업한 자의 사건 수임 내역을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보고하고 지방변호사회는 이를 다시 법조윤리협의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가 아닌 퇴직공직자의 경우 보고사항은 법무법인 등의 의뢰인 및 변호사 등 소속원에게 제공한 자문·고문 내역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더욱이 내역서의 미제출이나 허위·부실 제출에 대하여는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 한편 지난 519일부터 시행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서는 고위공직자가 그 직위에 임용되거나 임기를 개시하기 전 3년 이내에 민간 부문에서 업무활동을 한 경우 그 내역(재직하였던 법인·단체 등과 그 업무 내용, 대리, 고문·자문 등을 한 경우 그 업무 내용을 포함)을 소속기관장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일단 고위공직자가 된 후에야 적용할 수 있다. 전직 고위공직자가 공직으로 복귀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로펌 등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세히 밝히도록 강제할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한덕수 총리에 대한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는 그가 로펌에서 했을 법한 자문행위의 내용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그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44개월 동안 총 4건의 자문행위를 했다는 것과 그 기간 중 받은 보수의 총액이 18억여원에 이른다는 사실뿐이었다. 정작 그가 해 주었다는 자문의 자세한 내용은 해명 중에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답변은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무신경함을 드러냈다. 변호사법을 고쳐서라도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로펌에 취업하여 처리한 사무 중 공무원을 접촉하여 수행한 것이 있는지와 그 내용, 의뢰인은 누구이고 사무처리의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상세하게 밝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위공직과 로펌 고문직을 돌고 도는 기이하고도 고약한 행태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 2022.06.20

 

 

또다시 방송 독립성을 흔드는가

뉴스를 하는 방송은 언론이다.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방송법은 1조에서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목적으로 명시했다. 반면 신문과 달리 방송은 허가 또는 승인 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허가, 승인 업무를 하는 기구의 독립성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정책 규제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에 관한 법률은 1조에서 법의 목적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 보장에 있음을 밝혔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정부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정부조직법 18조 국무총리의 행정감독권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했고(31), 법률이 정한 경우 이외에 위원의 의사에 반하여 면직하지 못하도록 했다(81).

 

한편 독립성을 위해 대통령이나 정치권과 일정한 관련이 있는 자는 아예 위원이 되지 못하도록 했다(10조 결격 사유). 곳곳에 방송 그리고 방송정책 기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두었다. 그럼에도 학계나 시민사회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을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장치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적 외압에 흔들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현실은 보여 주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방송통신위원장의 임기가 보장됐지만, 지금 물러나는 것이 정치 도의이고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나 국정과제에 동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보장한 임기를 지키는 것을 후안무치한 일이고, 자리 욕심으로 보일 것이라 강변하며 사퇴를 압박했다. 그러나 법이 위원의 임기를 보장한 것은 바로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말고 위원회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즉 정치적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으로 위원장이 교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법의 취지를 모르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모르면 무식한 것이고, 무시한다면 위법을 조장하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제의 본질이라며 미국식 엽관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현재 도입한 제도도 아니지만 엽관제 역시 정치적 독립성을 요하는 자리까지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모를 리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공영방송은 부당한 정치적 외압에 시달렸고, 구성원들은 해직, 전직 등의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 신호탄 중 하나가 이명박 정부 당시 박재완 민정수석의 ‘KBS의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기조를 적극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발언이었다. 권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기시감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방송통신위원장을 교체하려는 것이 혹시 국정철학에 동조하는공영방송 사장 임명을 위한 포석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현행법상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방송문화진흥회, EBS 등의 이사 추천이나 임명의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KBS 정연주 사장 축출의 배경에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이 있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방송통신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원하는 속내가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의 구성을 바꿔 공영방송 이사회를 흔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세간의 의혹이 오해로 끝나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 논란에 임기가 있으니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 했다고 알려졌다. 이런 두루뭉술한 답변은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을까? 임기보장 아니면 자진사퇴? 윤 대통령의 말을 방송통신위원장의 사퇴를 암시한 것으로 과도하게 해석하지 말자. 법치를 강조하고, 공정과 상식을 주장한 대통령이지 않은가. 단지 그런 대통령이라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법이 임기를 보장한 위원장을 흔들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어야 일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을까?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경향 : 2022.06.20

 

 

윤석열 정치실험은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한 뒤 이제 한 달 남짓 지났다. 임기 60분의 1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윤석열 정치실험은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윤 대통령은 유례없이 정치입문 9개월 만에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간의 그의 행적은 1년 전 그가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와의 갈등 속에 검찰총장직을 내려놓고 정치에 나서면서 내세웠던 생각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중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을 떠나 정치에 나서며 대변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은 압도적 정권교체이며,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대선에서 보수와 중도,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아울러 승리해야 집권 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바른 소리를 하다가 민주당에서 밀려난 금태섭 전 의원, 조국사태 이후 민주당 비판에 앞장섰던 진보논객 등과 교감하는 등 이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시간이 흐르며, 윤 대통령은 이 같은 중도세력, 이탈 진보세력과는 결별하고 냉전적 보수세력에 올인했다. 그 결과, 압도적 정권교체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작은 표차인 0.73%로밖에 이기지 못했다. 대선에서는 이겼는지 모르지만, ‘보수와 중도,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어우르려던 윤석열 정치실험은 실패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는 윤 대통령 개인을 넘어서 한국 정치에 커다란 비극이라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정말 중요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승만 시절의 자유당에서 시작해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의 냉전적 극우보수정당을 현대화시켜 중도까지 어우를 수 있는 글로벌한 기준의,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당이라는 회복하기 어려운 낙인이 찍혀 있었고 윤 대통령이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대항해 싸운 법치의 상징으로 정권교체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만큼, 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늘이 준 별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고 반대로 냉전적 보수세력에 포위되고, 포섭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국민의힘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박근혜 탄핵당이라는 낙인만 세탁해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의 결별이다. 결별의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고, 여야를 전전한 김 전 위원장의 행적에는 문제가 많다. 하지만 그가 상징하는 것이 중도를 어우르는 현대적 보수였고, 그와의 결별은 결국 냉전적 보수정당에의 포섭을 의미했다. 특히 이후 그의 여러 정책교사들이 국민의힘의 보수정책통’, 특히 냉전적 보수정책통들로 채워지며 윤 대통령의 보수화는 가속화됐다.

 

보수만이 아니라 중도와 이탈한 진보까지를 어우르는 압도적 정권교체 이외에도 주목할 것은 지난해 6월 말에 있었던 윤 대통령의 출마선언이다. 윤 대통령은 출마선언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입니다. 승자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을 보면 이 같은 출마선언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여러 경제정책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출마선언에서 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가 절대 아니라고 비판한 승자독식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사 등도 마찬가지다.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문제검사, 국정교과서 불법 추진으로 징계 대상이 된 사람을 각각 공직기강비서관, 교육부 기조실장 같은 요직에 중용하는 것이 어떻게 자유를 지키는 것이고 진짜 민주주의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 윤 대통령 임기가 많이, 정확히 이야기해, 60분의 59가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이 압도적 정권교체론에서 피력한 보수, 중도, 이탈한 진보를 어우르는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은 출마선언에서 비판한 자유 없는 가짜민주주의승자독식주의를 넘어서 자유, 그리고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 기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실패’, ‘반쪽 승리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1년 전 정치로 나서며 밝혔던 압도적 정권교체론과 출마선언을 다시 읽어보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2.06.21.

 

 

ESG에 부는 역풍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에도 이에스지 열풍이 불어 이에스지 위원회를 꾸리고 경영의 지표로 삼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한국거래소 누리집 갈무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이에스지(ESG)사기라고 했을 때 괴짜가 또 좌충우돌한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기업의 주주 총회에 올라오는 기후변화 안건이 경영진을 지나치게 구속한다며 다음 주총에서 관련 안건 대부분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것은 간단치 않다.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누군가? 2020년 초 기업에 보낸 서한에서 화석연료 기업에는 투자를 중단하고, 이에스지를 투자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혀 세계적인 이에스지 바람을 몰고 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입장을 바꾸었다. 둘 다 지난달 일이다.

 

올 초만 해도 모든 길은 이에스지로 통하는 듯 보였다.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이에스지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시대에 기업이 사회책임과 재무적 성과를 통합적으로 성취하는 경영의 새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 주주만이 아니라 임직원, 공급자, 지역사회를 두루 살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길이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은 예외 없이 이에스지를 경영 원리로 도입하겠다고 나섰고, 이에스지 펀드도 매년 급증해 지난해에는 2.7조 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도 지난 2년간은 열풍이라 할 만큼 이에스지 바람이 불었다. 주요 대기업마다 이에스지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경영선포식 같은 것을 열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역류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선 규범으로서 이에스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무엇이 이에스지인지 여전히 모호하고 과연 이를 통해 좋은 일과 재무적 성과를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지 확신이 부족하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이 다 이에스지에 해당했고, 평가 기준도 들쑥날쑥하였다. 미국 엠아이티 대학과 스위스 쥐리희 대학이 유명 이에스지 평가기관 6곳의 데이터를 비교해 보니 서로의 상관관계가 0.38~0.71에 불과했다. 같은 기업을 두고도 이에스지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본다는 얘기다. 기업 신용평가회사들의 데이터 상관관계가 0.9가 넘는 데 비해 매우 낮은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발끈한 것도 저탄소 전략 부족 등을 이유로 테슬라가 에스앤피(S&P)500 이에스지 지수에서 퇴출당하자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왜 10위 이내 상위권에 있느냐고 반발한 것이다.

 

이에스지 경영과 투자에 대한 견고한 틀이 없다 보니 홍보를 노려 평가기관이 들여다보는 체크리스트에 집중하거나, 무늬만 이에스지인 이에스지 워싱이 성행했다. 화석 연료 기업이 이에스지 순위 상위권에 오르고, 이에스지나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펀드가 여전히 화석연료 기업 주식을 담고 있거나 탄소배출이 적고 수익성은 높은 정보기술기업에 몰입하는 게으른 투자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이 이에스지를 바라보는 눈길도 매서워졌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독일 연방금융감독청(BaFin)의 도이치그룹 자산운용사(DWS)에 대한 조사는 지난달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이에스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상품을 이에스지 펀드에 대거 편입했다는 내부 고발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자동차업계의 이른바 디젤 게이트와 같은 펀드 불완전 판매 게이트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다음은 생존본능의 발동이다. 공급망 병목과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세계는 석탄과 석유로 신속히 회귀하고 있다. 안보 불안감도 높아져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도 커졌다. 무엇보다 치솟는 기름값과 무기 구매 폭주로 화석연료 기업과 방산업체의 수익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하는 이에스지 펀드는 수익률이 낮아지는 딜레마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벌써 이에스지 펀드에서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이러자 일부는 방위산업을 주권국가의 안녕을 보장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산업이라 주장하는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재규정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방위산업 매출 비중이 5%를 넘는 기업과의 거래 중단이 포함된 지속가능 경영 정책을 발표한 스웨덴 에스이비(SEB)은행은 전쟁이 벌어지자 4월부터 입장을 바꿔 자사의 일부 펀드가 방위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했다.

 

한층 고약한 것은 이에스지가 문화전쟁의 과녁이 된 일이다. 공화당 등 보수우익은 미국 기업을 좌경화하는 원흉으로 이에스지를 찍고 11월 중간 선거를 계기로 손을 보려 나섰다. 이들은 이에스지 정신에 따라 환경, 젠더, 국제분쟁 등에 대해 진보 정치적 입장을 내는 경영자나 기업의 행태를 워크 자본주의라 딱지 붙였다. ‘깨어있는이란 뜻인 워크(woke)를 비틀어 진보 엘리트의 착한 척을 비꼬는 말로 만든 것이다. 트럼프 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는 워크 좌파가 급진적 환경, 사회의제를 기업에 강요해 기업의 나라 미국을 정복하려 한다고 비난한 뒤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전국에서 이에스지 원칙의 사용을 끝내도록 만들자고 촉구했다. 석유 기업의 고향 텍사스는 지난해 주 정부의 투자펀드가 화석연료를 보이콧하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했으며, 웨스트버지니아는 블랙록의 기후변화 정책을 문제 삼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와의 거래를 끊겠다고 1월에 발표했다.

 

안티 워크공세에 걸려 곤욕을 겪고 있는 기업이 월트디즈니이다.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는 밥 체이펙 최고경영자가 공화당 소속 론 드샌티스 주지사가 주도한 부모의 교육권법’(Don’t Say Gay)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 법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같은 성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이어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는 체이펙도 논란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으나, 회사 내 젊은 직원의 강한 항의를 받고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드샌티스 주지사와 주의회가 발끈해서 디즈니 월드가 있는 지역의 감세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회사를 여러모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이에스지를 둘러싼 조류가 바뀌는 듯하자 이달 초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에스지라는 말의 유용성이 끝나가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간 지속가능성을 줄기로 한 여러 경영 패러다임이 부침했다. 한때 유행한 사회책임경영(CSR), 공유가치창출(CSV)처럼 이에스지란 말이 새로운 사회의 꿈을 주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은 열기가 빠르게 달아오른 만큼 빠르게 식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스지가 태동하게 된 문제의식이나 해결 의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인류의 모래시계는 얼마 남지 않았다. 주주의 권익만 중시해온 경영이 불러온 불평등은 포퓰리즘 극단정치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기후위기나 인권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젊은 세대가 소비자나 노동자로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전에 없이 강력해졌다. 이번 위기는 이에스지 경영의 옥석이 가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유니레버, 파타고니아, 킹아서베이킹컴퍼니 처럼 지속가능성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은 기업이 많이 있다. 이런 기업의 성공을 모델 삼아 이에스지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이봉현ㅣ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한겨레 2022.06.21

 

 

 

속이구 정치, 맞장구 언론

연세대는 교문에서 본관까지 길이 곧다. 해마다 6월이 오면 긴 길섶 좌우에 6월대항쟁의 불꽃 이한열을 추모하는 펼침막들이 붙는다. 620일에 다시 찾은 교내도 그랬다. 총학생회는 민주화를 위한 당신의 희생,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으리라를 내걸었다. 총동아리연합회는 흐른 시간이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대의 운동화에 흐른 피와 땀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썼다. 이한열이 숨을 거둔 의과대학은 다시 태어나면 그대를 업고, 그대가 꿈꿔오며 목숨바쳐 색칠한 세상 보여주리라는 글을 펼쳤다.

 

젊은 벗들의 추모 글에 가슴이 애잔하다. 대견스럽기도 하다. 다만 의문이 남는다. 과연 우리는 이한열이 꿈꿔오며 목숨 바친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의대 현수막 옆에는 노동인들이 손수 만든 펼침막이 붙어있다. “저임금에 지쳐버린 우리는 노동자다.” 교정을 살피면 하나둘이 아니다. “어학당 등록금 수입 11% 증가, 어학당 강사료 500원 인상?! 장난합니까라는 저임 강사들의 절망도 보인다. 학생회관에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이 붙어 있던 6월 초순에도 회관 들머리에는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집단 교섭 승리하자”, “원청 학교가 생활임금 보장하라는 펼침막이 달렸다. 땡볕에서 청소하는 노동인들이 건강을 지킬 샤워기를 마련해달라는 절규도 지난 3월말부터 걸렸다.

 

의문은 꼬리를 문다. 대학생들은 저 펼침막을 보면서 세상이 바뀌었다는 총동아리연합회와 의과대 주장을 어떻게 읽을까. 과연 총학생회 다짐처럼 민주화를 위한 이한열의 희생은 그의 후배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까. 그렇다면 어떤가, 연대 학생이 집회로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며 청소·경비 노동인들을 고소·고발한 해괴한 사건은, 몇 달 째 이어온 노동인들의 고통어린 호소엔 줄창 모르쇠를 놓더니 학생 하나가 고발하고 윤석열 정부의 경찰이 조사에 나서자 대뜸 보도하는 언론은.

 

우리는 그 잘못 끼운 첫 단추35년 전 그 날에서 찾을 수 있다. 이한열의 몸이 채 식지 않았을 때, 노태우는 ‘6·29선언이라는 기만극을 벌였다. 그 시점에 어떤 언론도 그것이 기만임을 기사화하지 않았지만, 권력의 속성을 꿰뚫은 이라면 충분히 헤아릴 행태였다. 실제 ‘6·29는 속이구라는 말이 당시 퍼져갔다. 모든 언론이 노태우가 전두환을 치받으며 직선제 수용을 결단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쿠데타 주모자 노태우는 맞장구 언론을 통해 갑자기 민주화의 주역이 되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진실은 대선 뒤 확인됐다. 노태우가 독자적으로 결단한 듯이 발표한 것은 전두환의 정권 재창출 기획이었다. 6·29선언에 들어있는 김대중 사면또한 그 전술의 하나였다. 사면하면 틀림없이 출마할 터이고 김영삼과 단일화 못하리라 내다봤다.

 

여기서 물음을 던질만하다. 전두환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전략이 나왔을까. 답이 나와 있다. 6·29선언문을 서울대 정치학 교수들이 참여해 최종 완성했다는 증언이 그것이다. 속이구 교수들가운데는 지금도 자신이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화신인양 행세하는 자도 있다. 석학들에게 들려준다.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한 발짝씩 온 것이다.”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님이 남긴 말이다. 보라. 서울대 정치학 교수들보다 민중의 한 사람이던 어머니의 민주주의관이 훨씬 튼실하지 않은가.

 

권력의 속이구에 맞장구 친 언론은 35년이 흐른 지금도 여론 형성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언론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과소평가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떨까. 자유민주주의를 부르대는 윤석열 정부가 맞장구 언론에 속지 않기를, 굴욕적인 대미 외교를 웃으며 펼친 이명박이나 노동개악을 개혁으로 박박 우겨댄 박근혜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면 환상일까. 그 회의를 끝내 떨치지 못하면서도 꾹꾹 쓴다. 민중과 이 나라를 위하여, 아주 작게는 자연인 윤석열을 위해 그렇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06.2

 

 

교육입국과 교육망국

미국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스펙 쌓기를 둘러싼 비리와 부정의혹으로 한국 사회가 무척 시끄럽다. 아예 전문 상담업체가 있고 엄청난 액수의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뉴스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원래 제품에 관한 설명서 정도로 이의 내용을 이해했던 스페시피케이션의 약자인 스펙이 입시나 취직을 준비하는 과정에 그렇게 널리 사용되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물론 미국에 종종 들를 때면 자녀의 명문대 입학 준비를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일부 한인 사회 안에서 나도는 이 단어를 나도 가끔 들었지만, 반세기 넘게 살았던 독일 사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용어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로 이른바 기러기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뜸해졌지만, 아직도 나에게 자식의 조기유학에 대해 조언을 청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영어권을 중심으로 활발한 조기유학이지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나 학비가 없는 독일에 눈을 돌린 부모들이다.

 

그러나 내 대답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부정적이었다. 가정과 학교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떠받드는 두 큰 기둥이다. 일차적인 사회화는 가정, 그리고 이차적인 사회화는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인간에게 결손 가정과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학교생활 간의 원만한 연결이 그렇게 바라는 것처럼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한마디로 너무 크다.

 

외국의 명문대 입학을 위한 자격조건 쌓기에 열심이거나 조기유학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아직은 제한적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유로 그런 생각을 아예 접어둘 수밖에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거나 정상적인 가정생활의 희생까지도 불사할 정도로 뜨거운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외국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관하에 2000년 이래 3년마다 시행되고 있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중국, 일본, 싱가포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한국은 늘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전혀 궤를 달리하는, 한국 교육으로부터 탈출하는 노력 사이에 걸려있는 엄청난 거리에 대해 의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료 시각이 교육현장 문제점 놓쳐

위에 언급한 2018년도 평가보고서는 한국 학생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조사대상 71개국 가운데 65번째인, 거의 밑바닥 수준이라고 밝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소설과 영화 제목처럼 한국 청소년들은 한마디로 공부는 잘하지만,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의 경쟁 일변도식 주입식 교육보다는 학업 성취도와 함께 삶의 만족도가 높은 핀란드의 교육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물론 문화나 사회적 구조가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를 단순 비교하고 우열을 따지는 데 문제는 있지만 몇 가지 내용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협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 또 가르치는 선생의 책임감과 열성, 이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이 점에서 핀란드 교육제도의 장점이 있다고 본다.

 

유교적 전통을 지닌 한국 사회에서도 교사에 대한 존경도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논리와 법리로 비약, 교육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불법화하고 가입한 교사를 한때 무더기로 교단에서 내쫓은 어두운 역사도 있다.

 

사회체제이론에 따르면 교육은 권력의 유무를 따지는 정치, 손익을 계산하는 경제,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법체제처럼 이진법(二進法)의 코드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학생 학습능력의 우열을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선발하는 체계가 갖는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이나 돈, 그리고 법적 구속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스러운, 어떤 신성한 가치까지 지닌 교육이야말로 보편적이며 가치중립적인 공공의 귀중한 재부라는 생각을 낳는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잘해서 크게 성공한 흙수저에 관한 신화도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나라 세워

교육이 사회체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라는 이런 신화를 깬 역사적인 사건은 서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이었다. 교육에서 권위주의와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교육개혁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총체적 비판으로 나아갔다. 비록 급진적인 이 개혁운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들해졌지만, 비판정신과 자율성의 함양이 교육의 올바른 지향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기에 이의 개혁 또한 장기적인 안목 속에서 추진되어야 하고, 입시나 전형 방식을 개선하는 식의 땜질이나 하는 권의지계(權宜之計)로서는 결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은 항상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발표되는 교육개혁의 과제와 이에 따른 정책 항목들이 길게 나열되지만 서로 엇비슷해서 사실 구별하기조차 힘들다.

 

얼마 전 출범한 정부도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교육제도의 혁신을 강조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는 질문처럼 교육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데 대해서는 역시 답이 없다. 100만 디지털 전문인재의 육성이 곧 교육개혁의 내용일 수는 없지 않은가.

 

과거와 달리 이른바 지구화 시대의 철학인 신자유주의의 기치 밑에서 국경 없는 자본은 한국의 교육시장을 공략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기며 공교육의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 지구화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설립된 외고나 국제고와 같은 특목고나 재정기반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자사고의 존재와 공교육 간의 긴장관계가 이를 보여준다.

 

개화기 이래로 뿌리내린, 교육을 통해 나라를 세운다는 교육입국의 이념은 알게 모르게 교육개혁의 주체가 국가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심어왔다. 196812월에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에 등장하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도 그중 하나다.

 

헌법상 명시된 국민의 교육의무와 권리에 대해 책임진 국가가 법률과 행정력을 통해 공교육을 관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료 중심의 시각은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쉽게 놓치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또 실용주의를 빌미로 교육에 대한 정치나 경제의 요구에도 쉽게 따른다. 물론 전문가를 포함한 교육위원회도 있지만 이의 역할은 자문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학부모, 교사와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의 꾸준한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국에도 설립된,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발도르프와 같은 전통이 있는 독일에서조차도 시민사회가 교육개혁에 일정한 동력을 제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교육개혁은 세대를 넘기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과외망국론이니 서울대학망국론이니 하는, 교육이 오히려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 지 꽤 오래되었으나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교육이 나라를 망치기 전에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삶을 먼저 망친다는 이야기가 맞는 말이 아닌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느냐는 저항의 목소리와 행복은 성적순이지, 무슨 소리냐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가 오가는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하나 있다. “행복한 아이는 행복한 어른을 만든다라는 게오르크 포르스터(1754~1794)가 남긴 말이다. 탐험가 제임스 쿡과 함께 세계를 일주, 계몽기의 사상가로 당시 세상을 가장 많이 보고 남긴 결론이다.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육입국과 교육망국 사이의 거리는 사실 멀지 않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2.06.22.

 

 

지구촌 3% 부자로 살아가는 법

어지럽다. 눈뜨면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주식·비트코인 열풍까지 세상이 온통 얘기다. 세계적인 투자자는 금과 달러를 사라 하고 어떤 이는 당분간 호황세를 장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위기를 예언한다. 대개는 맞을 수도 있고 틀려도 그만인 이야기들로 전문가라기보다 역술인들 같은데 재미를 본 사람들은 신이 나서,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겁이 나서 모두들 달려든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슬며시 걱정도 된다.

 

부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다. 온갖 꽃과 식물, 새와 벌이 어우러진 정원이 있는 고택에서 놀던 유년의 기억이 내 인생에서 가장 부티 나는 시절이었다. 양친은 모두 몰락해가는 부잣집 장남, 장녀로 자존감과 교양은 있었지만 세상 사는 요령이 부족하고 과하게 고지식한 분들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 비슷한 중산층의 생활에 비해 문화적 경험은 많았고, 물질적 혜택은 부족한 삶이었다. 최대의 위기는 엄마의 빚 보증으로 큰 타격을 받았을 때다. 갑작스레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터라 낙천성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많은 것을 정리하고 몇 년간 극단의 긴축 생활을 했는데, 엄마는 그 시간을 10년 이상으로 기억하신다.

 

컬러풀한 세계 속에 나 홀로 흑백의 존재로 살아가는 듯한 상실감에서 벗어나게 한 뜻밖의 계기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된 나의 세계 부자 순위였다. 연봉이나 자산을 입력하면 지구인 70억명 중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인데, 믿기지 않는 결과에 몇 번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세계 3% 이내라고? 말이 돼?”

 

잠시 생각하니 말이 되고도 남았다. 당시 대한민국은 전 세계 250여개국 중 경제 순위 10위권에 근접하고 있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세계 4~5% 이내고 중산층이면 2~3% 이내다. 극소수의 슈퍼 리치들이 소유한 부의 지분율이나 후진국의 천문학적 부자 등 간단치 않은 고려사항들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선진국의 중·하층이나 전 세계 초극빈층을 생각하면 틀린 계산도 아니다. 대한민국 평균 연봉은 저개발국가 국민의 50년 이상 소득에 가깝다.

 

나와 주변인만이 아닌 세계와 지구촌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삶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절대 빈곤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수십억 인류가 굶주림과 열악하다는 표현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쉴 만한 안식처에 다이어트를 고민할 만큼 충분히 양질인 세 끼 식사를 하고, 읽고 싶은 책과 큰돈 들지 않는 문화생활, 가끔은 여행까지 즐기고 사는 삶이면 충분한 것 아닌가. 무엇이 더 필요해서 그리 안달을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힘들면 수도권을 벗어나고, 더 힘들면 경제력이 우리보다 못한 나라로 가서 살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사이에 우리 경제는 더욱 발전해서 지금은 연봉 3000만원 정도면 세계 2% 이내라고도 한다.

 

물론 현실의 삶이 결코 간단한 수치로 환산될 수 없는 무한 변수의 집합체임을 알고 있다. 재력과 상관없이 이민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준거집단에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에게 가장 큰 불행 요소다. 더 나은 삶의 욕망은 죄악이 아니다. 하지만 삶이 팍팍하고 빈곤하게 느껴질 때 가끔은 지구촌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조금은 낡고 소박한 보금자리와 평소 당연히 누리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비현실적 정신 승리 같은가. 아니, 그것이야말로 때로 비정한 인간 세계의 현실적 판단이다. 조급한 더 큰 부자의 기대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판타지 아닌가. 그 환상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벌어도 벌어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감사와 긍정심, 마음의 여유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현실이해 능력,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을 아는 진짜 부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자 선물이 아닐까.

박선화 한신대 교수| 2021-01-20

 

 

누구도 뒷담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소주가 맥주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막걸리 걔 은근히 뒤끝 있더라.”

 

오래전 본 유머 글인데 제목이 뒷담화였다. 뒷담화란 말은 뭔가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만 모르고 남들은 아는 이야기란 대체로 소외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욕을 한다는 신경증적 증세 역시 비슷한 불안감에서 온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사실 여부도 불확실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음험한 방식의 소통을 즐기는 것일까. 뒷담화는 늘 불량한 인격들이 벌이는 악의의 한마당일까.

 

생각해 보면 뒷담화를 하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관계의 세계는 그리고 ‘3로 구성된다. 늘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유아나 나르시시스트 중 하나고, 늘 너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집착증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인생 여정에서 접하는 무수한 만남에서 단수건 복수건 제3자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 사는 곳엔 칭찬이든, 험담이든, 감정이 제거된 뉴스든 반드시 타인에 관한 정보가 있고, 이러한 소식이나 소문의 공유는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유발 하라리 역시 저서 <사피엔스>에서 뒷담화와 인류의 인지혁명과의 관계를 기술한 적이 있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를 통해 사피엔스가 서로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키며 더 큰 사회를 만들어온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내용이다. 또한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이유 역시 이러한 관계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사자나 들소의 위치 이상으로 권력자의 내심과 관심 가는 암컷, 수컷의 잠자리 정보가 생존에 중요했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사회든 정치적 격변의 배경에도 반드시 뒷담이 존재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악의적 소문은 혁명에 일조했고, 유명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은 FBI의 고위 관료가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에게 닉슨과 백악관의 비리를 전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역사적 사실들도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해온 정사만으로는 실체를 알기 어렵다. 내밀한 동기와 숨겨진 비화들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기술한 야사가 더해져야 더욱 입체적인 그림으로 완성된다. ‘정사는 뼈고 야사는 살이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문제는 뒷담화 자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질과 동기다. 뒤틀린 자의식과 질투심 같은 오염된 동기는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인지편향을 일으킨다. 최근 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들도 비슷한 현상이다. 하지만 흑심 어린 동기파악이 결코 간단치는 않다. 선정적이고 공격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지식 수준이 높을수록 은밀하고 지능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청자와 화자의 지적 차이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전달된 소문의 진위보다 듣는 이의 편견이나 트라우마가 믿음 여부를 가르는 경우도 많다. 늘 상기할 것은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성향과 경험의 누적이 만든 가치 프레임도 다르기에, 평가나 판단 역시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가와 판단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작동되는 생존 활동인지라 멈추려 해서 멈춰지지도 않고 잠시 멈출 수 있으나 완전히 멈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판단의 팩트를 살피는 것이다. 최대한 다수로부터, 가능한 한 오랜 시간에 걸쳐 느리게. 물론 악의로부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 정도로.

 

각자의 무의식이 설계한 주관적 믿음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믿는 것도, 반대로 자신이 아는 모습만 진실이라 믿는 것도 모두 불완전한 사고임을 성찰하는 것이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2020.10.05.

 

 

지방 소멸의 뒤안길

여행을 하다 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방 소멸의 잔상이다. 수치화될 수 없는 지방 소멸의 징후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소멸의 뒤안길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기도 한다. 지방 소멸 시대에 짧게 반짝 빛나는, 혹은 가슴 시리게 빛나는 소멸산업이 있다.

 

지방에서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잔치를 둘러싼 산업이 활발하다. 한때 예식장이었던 곳이 장례식장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 지방에는 요양원이 들어선다. 그 지역의 가장 큰 건물이 요양원으로 바뀌거나 새로 지어지는 가장 큰 건물의 정체는 대체로 요양원이다. 소멸하고 있는 지방에서 우리의 삶도 소멸한다.

 

누릴 문화가 없는데도 복합문화센터는 속속 들어서고 운동기구는 마을을 벗어나 마을 밖까지 설치된다. 지자체에서 마을 밖에 설치해준 운동기구가 장승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왕왕 본다. 예산 낭비는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을 정자에는 창문이 달리고 바람을 막은 탓에 선풍기가 설치된다. 게이트볼장엔 지붕이 설치되고 하늘을 막은 탓에 조명이 설치된다.

 

지방은 도시에서 밀려난 브랜드의 마지막 유배지이기도 하다. 지방도시의 나름중심가에는 CF를 안 내보낸 지 10년 이상 되는 의류 브랜드 매장을 두루 볼 수 있다.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 어르신들의 고급욕구를 채워준다. 발길이 뜸해진 장터에는 청년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떴다방이 들어섰다가 지원금이 끊기면 스산하게 파장한다.

 

읍내를 벗어나면 전원생활과 숙박업을 겸해보겠다는 미망으로 시작한 펜션이 리모델링을 하지 못해 풀죽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그 옆에 드라이브인 방식의 무인호텔이 못 본 척해주겠다며 법령 밖의 사랑을 유혹한다. 지방을 여행한다는 것은 이런 풍경 사이를 가로지르며 방치된 경관을 사냥하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새살도 돋아난다. 편의점은 없는 곳이라도 아시아마트나 월드마트는 있다(간혹 러시아마트도 있다). 유치원 규모의 시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단체 숙소가 되고 통학버스가 아니라 이들을 실어 나르는 통근버스가 논과 밭을 가로지른다. 시골 어르신들은 자신이 가 본 나라보다 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마을에 앉아서 만날 수 있다.

 

지방을 여행하면 그 지역의 특산물도 먹을 수 있지만 서울보다 더 쉽게, 더 싸게, 더 맛있게 동남아 휴양지에서 먹던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스스로 연 음식점을 쉽게 마주치게 된다. 러시아 캄차카반도 여행에서 즐겼던 소시지와 정어리 통조림, 그리고 각양각색의 보드카도 러시아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서울에서도 맛볼 수 없는 키르기스스탄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있다.

 

모든 소멸해가는 것들은 아름답다. 우리의 지방도 그렇다. 그 소멸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여행은 또 하나의 인문 여행이다. 마지막 잔치를 벌이는 소멸산업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고 그 소멸의 잔상 속에서 돋아나는 새싹에 젓가락을 올릴 수도 있다. 이것 또한 삶의 풍경이다. 어느 지역 막걸리가 달아졌으면 이 동네 동남아 며느리들이 마시기 시작했나보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마시면 된다.

고재열 여행감독 경향 : 2022.06.23

 

 

애처가윤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하는 것

올해 초 논란을 빚은 김건희 여사의 ‘7시간 녹취록가운데, 나를 포함한 주변 기혼 여성들이 꽂혔던대목이 있다. “(밥은) 아예 안 하고 우리 남편이 다 하지.” (부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요리의 고수만 쓴다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위에서 뒤집개와 밥주걱으로 계란말이 각을 잡을 때 짐작은 했다. 그는 정치 참여 선언 뒤 개설한 에스엔에스 공식 계정에 자신을 애처가라고 적었다.

 

매사 거침없는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는 아내 사랑인 것 같다. 그는 대선 기간 김 여사의 허위이력 기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문제없다는 투로 시간을 끌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처음으로 수세적인 모습을 보인 것 역시 김 여사 사안이었다. 그는 김 여사의 봉하마을 동행인 논란에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모르겠다)” “좋은 방안 있으면 알려주십시오라며 과하게 인간적인면모를 노출했다. 대선 때나 취임 이후나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에는 김 여사가 있다. ‘김건희 리스크가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지금, 윤 대통령은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나. 아니 할 수 있나.

 

김 여사는 지난해 12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윤 대통령 취임 뒤 활발한 대외 활동을 개시했다. 애초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는지 모른다. 대통령 배우자는 민간인이지만,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곁에서 잉여권력을 행사한다. 국내외 주요 행사에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고, 때로는 대통령을 대신한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통령 배우자의 모든 행보는 공식적이다. 공개와 비공개만 있을 뿐이다. 김 여사는 오는 29(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 부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국민에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김 여사의 광폭 행보 주변에는 비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지난달 말 대통령과 대통령 배우자의 동선, 1급 보안구역인 대통령 집무실 내의 사진이 개인 팬클럽이라는 사적인 경로를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유출됐다. 한바탕 논란을 빚은 뒤에도 윤 대통령 부부의 영화 관람 미공개 사진이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추가로 공개됐다. 경고 조처가 없었다는 얘기다. 김 여사가 봉하마을 방문 때 대동한 ‘10년지기김아무개 교수는, 김 여사가 5월 단양 구인사를 방문할 때도 곁에 있었다. 그는 윤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생활문화예술지원본부장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선 사회복지문화분과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김 여사의 사적 인연이 공적 영역으로 침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묵인 또는 방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 여사의 친오빠는 캠프 활동에 이어 윤 대통령 당선 뒤에는 친분 있는 기자들에게 김 여사의 옷·가방 정보, 사진 등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직원 2명은 대통령실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이른바 관저팀에서 김 여사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관련 직무 경험이 없는 인사를 개인적 인연으로 채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뿐더러 필연적으로 비선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누가 봐도 김 여사의 측근인 이들을 대통령실 그 누가 통제할 수 있나.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의 기저에는 그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배우자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 부활 의견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 조직이 대통령 배우자와 측근들의 국정 개입을 막는 칸막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출되지 않은,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배우자 곁에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현재 대통령실에는 배우자를 포함한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감찰하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 출범 두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써부터 김 여사의 인사 개입 소문이 돌고, 친구와 가족 비선논란이 벌어진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결단이 남아 있다. 대통령 배우자는 사인의 아내가 아닌,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인이다. 김 여사의 공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2부속실 또는 그에 준하는 다른 조직으로 김 여사를 보좌하며 동시에 제어하도록 해야 한다. ‘애처가윤 대통령이 진정 아내를 위하는 길은 김 여사를 감싸고 있는 인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시스템을 두는 일이 될 것이다.

최혜정 | 논설위원 한겨레 : 2022.06.23.

 

 

대물림되는 파워엘리트

1959년 시카고대학의 찰스 라이트 밀즈(C. W. Mills. 19161962)가 쓴 파워엘리트(Power Elite)는 출간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관료집단과 군수업자 그리고 군부 등 세 집단이 삼위일체가 되어 미국의 주요한 정책결정을 내리니 이들을 파워엘리트라고 하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집단은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공동목적을 향해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나머지 미국인들을 이에 추종케 한다고 주장했다. 밀즈는 이같은 미국 사회는 결코 다양한 여러 집단 간의 유화(宥和)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맹비난을 하였다.

 

밀즈에 의하면 미국 사회는 결코 기회의 나라도 아니고, 다양성의 나라도 아닌 것이다. 권력은 항상 그들 파워엘리트들에 주어져 있고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그것을 행사해 미국을 점차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외쳤다. 사람들은 그를 분노의 사회학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별명을 얻기에는 파워엘리트의 전횡만을 고발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밀즈를 가장 분노케 한 것은 권력이 대물림되고 있는 미국 사회였을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워엘리트의 권력과 부 그리고 지위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들에게로 승계되는 비율이 증가해 1950년의 파워엘리트의 자리는 이미 68%가 이전 세대의 파워엘리트의 자녀들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 21세기의 미국 사회는 어떨까? 이미 권력과 부의 대물림은 확고부동한 사실이 되었고 이제는 2대가 아니라 몇 대를 이어서 쓰고도 남을 만큼의 힘이 계승되고 있지 않을까. 밀즈의 분석을 우리 사회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전통적으로 문벌과 학벌을 따지는 우리는 미국보다 몇 배는 더 심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다. 커다란 변동 없는 재벌 그룹과 2세 정치인들의 등장 그리고 전문직 영역에서의 대물림 등등 그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특히 패자부활전이 없는 우리 사회는 학벌이 평생을 보장하는 구조이다 보니 부모는 자녀들의 대학입학에 목숨(?)을 건다.

 

최근에는 글로벌 엘리트를 지향한다. 한때 자녀에게 탄생 선물로 미국 국적을 주기 위한 원정 출산이 유행이더니 이제는 까다로워진 규제를 피해 미국의 주요 대학의 입학으로 목표를 바꾼 듯하다. 어차피 미국 국적이든 미국 학위든 다 국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달리 평소 생활에서의 스펙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대학입학을 위해 중고등학교부터 스펙 조작에 몰두한다. 논문표절은 기본이고 대필작가의 등장에 대리 앱 제작, 미리 확정해 놓은 봉사활동까지 수법도 다양하다. 이미 30대 대기업의 사내이사 38%가 외국대 출신이고 윤석열 정부의 장관 59%도 국외 석박사 출신이다. 그들만의 스카이캐슬은 오래된 이야기였는데 멍청한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았더라도 해줄 능력 없는 부모이니 자식들에게 면이 안 서게 되었다. , 넘겨줄 권력이나 부도 없으면서 괜한 걱정인가.

임형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기신문 : 2022.06.23.

 

 

이렇게 가는 게 바로 독재다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통해 경찰청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는 권고안형식을 빌렸다. 차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면서도 위원회 이름은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였고, 여기서 권고를 했다. 일종의 알리바이성 위원회였다. 자문위는 불과 네 번의 회의 만에 행안부가 통째로 경찰청을 장악하겠다는 안을 만들었다. 미리 정해둔 결론을 자문, 회의, 권고 등의 형식에 담았다.

 

행안부는 경찰국을 지원조직이라 표현했다. 얼핏 들으면 경찰청을 지원하는 조직인가 싶겠지만 사실은 딴판이다.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지원조직이 아니라 관련 부서가 맞겠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말을 꾸민다. 말이야 어떻든 핵심은 정권이 직접 경찰을 장악하겠다는 거다.

 

여태까지는 경찰청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많았다. 고위직 인사 등 일부 사안은 청와대와 조율하고, 인사, 예산 등 주요 정책은 국가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했겠지만, 대체로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독립적 경찰을 용납하지 않겠단다. 이런 태도는 권고안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의 정책이 이렇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행안부 장관을 통해 경찰 사무 전반을 직접 통제하겠단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대목에선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라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 게 바로 내로남불이다. 공무원 조직의 힘의 원천이랄 수 있는 인사와 징계도 행안부 장관이 휘두르겠단다.

 

경찰청 안팎의 반발은 그래서 당연하다. 경찰청장은 물론, 국가경찰위원회와 일선 경찰관들까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관들은 직장협의회를 통해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다. 경찰서 앞에 현수막도 내걸고 길거리 기자회견을 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평소 경찰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인권단체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과 관련한 모든 당사자가 한목소리로 행안부의 경찰 장악을 반대하고 있다.

 

평소의 크고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들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까닭은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처럼 경찰활동이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맛대로 요동칠 거란 걱정 때문이다. 사실 그랬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던 정통성 없는 정권은 국민안보,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에만 골몰했다. 정권이 틀어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남영동 대공분실 등 전국 곳곳에 숨겨둔 비밀 조사기관을 통해 고문으로 허위진술을 받았고, 없는 간첩까지 조작해냈다. 데모 막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경찰은 그저 데모할 것 같은 나이라며 거리를 다니는 젊은이들을 매일같이 수천명, 수만명씩 체포했다. 영장은 당연히 없었고 현행범이 아닌데도 그랬다. ‘격리차원에서그랬다는 짧은 설명조차 없었다.

 

정권의 입맛만 맞춰주면 경찰 내부는 아무래도 좋았다. 길목마다 경찰관들이 버티고 서서 면허증과 함께 현찰을 요구했다. 운전자를 겁박해 푼돈이라도 뜯어내려고 혈안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찰과 독재정권의 경찰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민중 위에 군림하고 탄압했다. 그저 정권의 요구만 쫓으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내무부 치안본부를 경찰청으로 독립시키던 1991년까지 그랬고, 실제로는 1998년 최초의 정권교체 이전까지 그랬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을 때리는 몽둥이였을 뿐이다.

 

1991년 경찰청 독립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등 야 3당의 요구였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이 야 3당과 합의해 만들어낸 성과였다. 6공화국 체제의 산물이었다. 경찰청 독립의 핵심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경찰이 정권의 요구대로 끌려다니지 않고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본래의 사명을 챙겨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제도화한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경찰을 1980년대의 어두운 과거로 돌려보내려는 거다.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던 검찰개혁 작업도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했던 법률 개정 작업을 시행령으로 무위로 돌리려는 거다. 행안부의 시도는 헌법 위반이다. 민주주의 일반 원리를 파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률 사항을 하위 규정으로 뒤엎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그렇다. 반헌법적 시도를 하는 행안부 장관이 탄핵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법을 좀 안다는 검사 출신들이 잔뜩 포진한 윤석열 정권의 행태가 위태롭다. 친한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를 행안부 장관에 임명한 후과다. 이렇게 가는 게 바로 독재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향 : 2022.06.24.

 

 

참을 수 없는 반도체 인재론의 가벼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지 2주째, 이른바 반도체 인재론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콕 찍혀, 부처의 명운이 걸리게 된 교육부는 연일 반도체 이벤트를 쏟아내고 있다. 국무회의 이틀 뒤 한덕수 국무총리와 반도체 인재 양성 논의를 시작한 이후,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토론회를 열어 부처 전체가 온·오프로 반도체 열공을 하는가 하면, 연일 각종 간담회와 대책회의를 숨가쁠 정도로 개최하고 있다. 첨단 인재 양성 특별팀이 꾸려졌고 다음달 중 관련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 표현에 따르면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이다. 물론 반도체는 중요 산업이고 국가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방향이 맞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미 학자와 전문가들, 각 교육 주체들이 다각도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지만, 어떤 인력이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현황 파악조차 안 돼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연간 1600여명이,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3000여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산업계 일각에선 1만명 수준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기업은 석·박사 인력난에 아우성이지만, 실제 필요 인력 절반 이상의 부족분은 주로 중소기업이 원하는 고졸 직원이다. 반도체는 융합분야인 만큼 반도체학과는 물론 전자·신소재·화학·환경공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공정·설계, 소재·부품·장비, 메모리 등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다. 현황 파악이 안 돼 있으니 대책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정책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차 문제는 또 어떤가. 현재는 인문계의 90%가 논다인구론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문송합니다가 세태를 반영하는 유행어이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만 해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 주요 현안이었다. 미국의 유명 과학 잡지 사이언스가 2002학년도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 미달 사태 등을 보도하며 원인을 분석할 정도였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사이클은 진폭이 커서 자칫하면 인력 과잉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정의당의 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구인·채용보다 퇴사가 많았다. 새로운 인력 양성보다 떠나는 인력을 붙잡을 방법, 이직 이유를 분석해 재직자들이 훌륭한 인재로 커 나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인다.

 

다양한 산업 중 왜 반도체만 특별대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도 해소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인원 부족률은 1.6%12대 주력산업 중에서 소프트웨어, 화학 등에 이어 10번째다(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 100만 인재를 키우겠다는 정보통신기술(IT), 또 다른 미래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바이오·로봇·이차전지 분야의 인재 부족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 대만의 반도체 총력전이 자주 거론되지만, 주력 제조업이 반도체밖에 없는 대만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산업 전반에 범용으로 쓰일 수 있는 기초과학 투자를 전폭적으로 하고 전공 간 장벽을 낮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길일 수 있다.

 

수도권 쏠림 강화 우려도 심각하다. 대기업들 요구대로 주요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가 이뤄진다면 그 자체가 지역균형발전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수도권 대학 규제 완화를 통한 인재 육성방안과 지역균형발전은 함께 갈 수 없다. 선거 내내 지방대학을 육성하여 지역균형발전을 돕겠다고 공약했던 현 정부는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 주요 정책의 추진 과정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의 백년대계가, 인력과 재원이 출렁인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36000명을 양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K반도체 전략이 발표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6개 정부 부처와 산업계,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대규모 종합계획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할 게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재활용하는 것이 국가적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장기 교육 비전을 위한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관련 논의는 전혀 없다. ‘반도체 인재 양성한마디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고 있는 이 혼란상이 우리 교육정책의 참담한 현실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 2022.06.24.

 

 

현재는 에너지전쟁, 미래는 식량전쟁 : 손놓은 한국

2020년 팬데믹 발생으로 세계 산업 전반에 걸쳐 사업장이 폐쇄되었다. 이로 인해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경제는 급속도의 하락 국면을 맞이했다. 특히, 물류대란을 걱정했던 몇몇 국가들의 경우 생필품 사재기를 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후 각 나라는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전방위적인 방역정책을 세워 팬데믹을 극복하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팬데믹 충격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 초에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겨우 회복되어 가는 세계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자원과 물류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자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수입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대외무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경우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대기업이던 중소기업이던 비상경제체제의 필요성을 말하며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국민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급격히 오른 물가를 감당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 패권과 에너지 패권 측면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식량 패권을 쥐기 위한 러시아의 욕망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식량창고로 불릴 만큼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작년까지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은 세계 7위로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수출하고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농토 및 식량 인프라가 러시아의 집중포격으로 상당 부분 초토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는 자신들의 곡물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해 자국 '식량의 무기화'를 공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중동 나라들의 식량 가격 상승에 직격탄이 되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이처럼 러·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그리고 그 어느 분야보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설상가상 기후변화로 인해 올해 세계의 곡물생산량은 작년에 비해 최소 10~30%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된다. 이는 각국의 곡물생산량의 감소 및 식량수출 금지로 이어져, 앞으로 에너지 안보 이슈보다 식량 안보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앞으로 전개될 식량 위기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현재 한국에 음식이 풍족하기에 식량 위기도 잘 극복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는 팜유 수출을 금지했고, 인도에서는 밀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위기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실질적으로 자국 식량의 수출을 금지할 수 있음을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농협미래경영연구소는 2020"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30% 미만인 세계 5대 식량 수입국이자 식량 위기에 아주 취약한 곡물 수입구조를 가지고 있어, 안보적 차원에서 식량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앞으로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한국은 2020년 기준 1600t/년 이상의 식량을 사들이고 있으며, 곡물자급률은 대략적으로 평균 20%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이처럼 한국은 현재 식량자급도가 매우 낮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농지에 대한 개발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갈수록 식량자급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농산물 수입은 미국, 브라질, 호주 등 소수의 국가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나라들이 지금보다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할 시, 우리가 이들 나라의 동맹임을 내세우더라도, 또한 아무리 비싼 가격을 주고 식량을 사려고 하더라도, '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에너지는 사용을 줄이면 되지만, 식량은 내 생사와 바로 직결되어 있기에 줄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제는 다가올 식량 전쟁을 위해 대비해야 한다. 첫째는 식량 수입의 다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는 주요 곡물에 대한 비축비율을 높여야 한다. 셋째는 스마트 농업시대를 앞당겨야 한다. 예를 들어 지정된 공간에 다층선반을 이용해 식물을 재배하는 수직농법(Vertical Farming) 등을 통해 면적대비 작물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물론 수직농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기존 농업 관련 경제생태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것과 인공적 재배로 인한 맛과 신선도 감소 및 재배 비용 상승 등과 같은 단점도 있다. 그러나 단점으로 인해 수직농법을 포기한다면, 머지않은 식량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우리는 두 손 놓고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문정부 정책 지우기북한 도발과 같은 과거형 전쟁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전쟁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은 앞으로 닥칠 식량위기만큼은 소위 경제적 후진국이라 생각하는 나라들보다 극복과 대응을 잘 할 수 없는 여건이다. 또한 단지 위기 수준을 넘어 '식량 전쟁'이 발발한다면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이인애/통일비내리는날 대표 뉴스프리존 2022.06.24.

 

 

대통령이 바이네르 구두를 살 때 못 들은 이야기

김원길(61) 바이네르 대표는 요즘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영국 시인 바이런의 말을 실감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5월 중순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바이네르 매장을 찾아 구두를 산 뒤로 이른바 윤석열 특수를 만끽하고 있다. 대통령이 구입한 컴포트화(편안한 기능성 구두)가 동나는 등 판매량과 매출이 급증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전국 70여개 매장 중에서 월 매출 1억원을 넘는 곳이 없었는데, 5월에는 5곳이나 됐다. 6월에는 더 늘어날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김 대표의 인간승리 스토리도 함께 소개되어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김 대표는 중졸 출신의 구듯방 견습공으로 시작해, 30여년 만에 국내 컴포트화 1위의 제화업체를 키웠다. 성공한 뒤에도 고단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매년 10억원씩 들여서 어르신 효도잔치를 열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우수장병을 해외연수도 보내며 사회공헌에 힘써 왔다.

 

김 대표는 5월 말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그가 이 빚을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며 고마워하자, 대통령은 “(성공해서) 부자로 사는 게 빚을 갚는 것이라고 격려했다. 김 대표는 그 순간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힘들어도 괜찮아>라는 책을 냈다가, 코로나 사태로 회사가 존폐 위기를 겪으면서 미친 짓 했다고 후회했는데, 다시 힘을 얻게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날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못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글로 정리 중이라고 한다. 기자는 지난 10여년간 김 대표를 옆에서 지켜봤다. 깊은 대화도 수차례 나누었다. 그가 대통령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대통령이 바이네르 구두를 샀지만, 정작 듣지 못한 이야기다. 언론도 대통령의 방문이 100억원 광고보다 효과가 더 컸다는 김 대표의 말을 대서특필했지만, 놓쳐버린 이야기다.

 

바이네르처럼 대형 유통업체(백화점)와 거래하는 중소입점·납품업체는 대부분 30%대 중반에 달하는 높은 판매수수료를 부담한다.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수수료로 떼이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팔리는 제품을 더 선호하는 소비자 기호 때문에 거래 중단도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이런 현실에서 버틸 중소기업은 없다. 대다수 국내 브랜드는 빚더미에 올라 이미 망했거나 망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백화점이 외국 명품 브랜드에 부과하는 수수료는 5~15%에 불과하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소기업의 피를 빨아서 외국 기업에 바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드문 특약매입 거래방식도 악명이 높다. 백화점은 납품업체로부터 상품을 반품 조건을 달아 외상으로 매입해서 판다. 재고 부담과 판매사원 인건비는 납품업체의 몫이다.

 

김 대표는 대다수 중소기업이 백화점의 눈치를 볼 때 혼자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며 중소기업 해방일지를 써왔다. 당연히 미운털이 박혔다. 언론에서 과다한 수수료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면 으레 김 대표가 제보자로 의심을 받았다. 백화점업계 회의에서 김 대표를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역대 정부가 지나친 수수료를 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 백화점에 납품하는 중소업체와 간담회를 했다. 백화점 업계가 이를 미리 알고 행사 직전 수수료 인하 계획을 전격 발표하며 선수를 쳤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백화점에서 일해 봐서 아는데, 수수료 인하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끝까지 (수수료 인하를) 관철시키라고 배석한 공정위원장에게 지시했다. 하지만 백화점들은 몇달 뒤 해가 바뀌자 수수료를 다시 슬그머니 올렸다.

 

코로나 위기 이후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금리 인상도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상생경제 구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그런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혜택이 극소수 대기업에만 주어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강행하며 친 대기업의지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윤석열 정부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인 (대기업의 성장과실이 전체 경제로 흘러가는) 낙수효과가 사라졌다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반 뒤늦게 동반성장 대책을 내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데서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한 것 같다.

대기업들은 새 정부에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요구한다. 중소기업이 바라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대기업의 갑질이 없는 나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나라다. 상생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 자율에만 맡겨놓으면 부지하세월이다. 그렇다면 대기업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판매수수료 인하나 납품단가 정상화 같은 상생 노력과 연계하는 방안이라도 강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역대 정부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했다. 김원길 대표는 평소 백화점이 판매수수료를 5% 포인트만 낮추면 연구개발 투자를 매년 20 억원씩 추가로 할 수 있고 , 세계적인 기업과도 정정당당히 겨룰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또 대기업의 갑질이 사라지면 청년들 창업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는 말도 자주했다. 기존 관행을 깨면서 신선함을 던져주고 있는 윤 대통령이 꼭 들었으면 싶은 이야기다.

 

대통령이 모든 중소기업의 제품을 사줄 수는 없다. 바이네르의 윤석열 특수도 영원할 수 없다. 대통령의 희망대로 많은 중소기업이 성공해서 부자가 되려면 그들의 말을 먼저 경청해야 한다. 단지 구두 사고 사진 찍는 것에 그친다면,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정치 쇼이미지 정치로 전락한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경향 : 2022.06.26.

 

 

자연은 노력한 만큼 내준다

지금 농사 시기는 한창 풀과의 전쟁 중이다. 아니 요새 비닐 치면 풀도 안 올라오는데 무슨 전쟁이냐고? 그렇다. 나는 비닐을 안 친다. 비닐도 안 칠뿐더러 그 흔한 화학비료, 농약이나 제초제도 쓰지 않는다. 비닐 대신 풀 멀칭을, 화학비료 대신 똥과 오줌, 음식물로 만든 퇴비를, 농약 대신 사이 짓기(다른 성질의 작물을 같이 심는 방법)나 윤작(한 곳에 다른 작물을 돌려가며 심는 방법)을 한다.

 

물론 힘든 일이다. 하나하나 풀을 매야 한다. 베어진 풀은 작물 옆에 살포시 멀칭해준다. 생태 화장실을 만들어 똥과 오줌을 모은다. 똥은 톱밥이나, 왕겨를 물과 함께 숙성시킨다. 두 달의 숙성 시간이 지나면 독한 똥 냄새가 사라지고 은은한 흙냄새가 난다. 오줌은 오줌통에 모아 2주 정도 숙성시켜 물과 섞어 밭에 뿌려주면 훌륭한 액비가 된다. 매일 섞어 주고, 옮겨서 넣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다. 이렇게 힘들어도 이것이 자연을 위하고 사람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소의 걸음처럼 우직하게 내딛는다.

 

100평 정도의 텃밭을 하고 있다. 감자를 캤는데 수확이 영 별로다. 꽃도 제대로 안 피고, 알도 작다. 똥 거름을 넣었는데 제대로 숙성되지 않았던 탓도 있고, 바쁘다는 핑계로 오줌물도 제대로 주지 못한 문제도 있다.

 

200평의 다랑논 농사도 한다. 다랑논은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논이다. 올해는 기계 문제가 생겨 트랙터를 쓰지 못해 직접 논을 뒤집었다. 하나하나 괭이로 뒤집었다. 처음엔 열불이 나지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가뭄이라 물을 제때 논에 넣지 못해, 피들이 논을 뒤덮었다. ()가 뭔지 모를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를 놓치거나 잘못된 방법을 쓰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게 농사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잘못을 했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잠깐 게으름을 피우면 그 게으름의 대가는 처절하다.

 

쉽게 사 먹으면 되는데 왜 이런 생고생을 하냐 묻는다. 그동안 쉬웠기 때문에 간과해왔던 농업의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농약과 화학비료로 흙은 딱딱해지고, 이는 물로 흘러내려가 하천과 호수, 지하수 등을 오염시킨다. 누구나 쉽게 사 먹기만 한 결과 전 국민의 농부는 3%. 3%97%의 먹을거리를 책임진다. 이런 농사는 필히 석유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기계를 사용할 수 밖에 없고, 화학 비료, 농약은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농부만을 탓할 수도 없다.

 

나는 많은 사람이 자그마한 텃밭이라도 가졌으면 한다. 이를 통해 작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먹는 것이 결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땀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쉬운 방법으로는 집에서 콩나물을 키워 먹는 방법이 있다. 자기로 만들어진 콩나물 시루를 구입한 다음, 가까운 생협에서 콩나물 콩을 구입한다. 하루 정도 불려 시루에 넣고 물을 자주 넣어주면 알아서 잘 큰다. 여름에는 3~4, 겨울에는 7일이면 넉넉한 양의 콩나물을 얻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건강한 먹거리를 해 먹을 수 있고, 사 먹으면서 발생하는 무수한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

박기완 자급연구가 경남도민 20220627

 

 

윤 대통령의 원전 페티시즘바보짓 50이 시작됐다

이것은 다만 하나의 가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5년 전 전기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봐온 누군가가 장탄식을 내뱉는다.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내연차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장삼이사가 아닌 이 나라 최고권력자다. 언론들은 뭐라 했을까.

 

이것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초현실적인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내 대표적 원전 업체인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를 방문했다.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몇몇 유력 언론은 그의 말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내연차에 전력투구한다면, 다들 바보짓이라 할 것이다. 설령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은들, 애써 구축한 생태계는 갈라파고스일 뿐임을, 대통령도 언론도 모를 수 없다. 산업 차원에서 이 문제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적자생존의 과제다. 이제 전기차는 성능과 가성비에서도 내연차를 압도한다.

 

원전이 내연차보다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데이터 몇개만 살펴도 모를 수 없다. 10년 새 발전 단가는 태양광이 89%, 풍력이 70% 떨어졌다. 원전은 26% 올랐다. 전세계 누적 설치용량에서 태양광과 풍력은 이미 원전의 2배가 넘는다. 201039기가와트였던 태양광은 2021년엔 942기가와트, 198기가와트였던 풍력은 845기가와트로 급성장했다. 원전은 381기가와트에서 404기가와트로 정체 상태다.(영국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EMBER)) 태양광과 풍력은 2020년 세계 인구 3분의 2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신규 발전원이 됐다.(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

 

원전이 현상유지라도 하는 건 중국이 있어서다. 20여년 동안 중국의 원전 발전용량은 23배 늘었다. 그 밖에는 러시아, 인도, 한국 정도가 늘었을 뿐이다. 발전용량 1, 2위인 미국, 프랑스도 줄고 있다. 일본은 10년 전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은 달랑 4기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이미 40%를 웃돌고, 미국·일본·중국도 20%는 넘는다. 중국은 2018년 재생에너지에 910억달러를 투자했고, 원전은 65억달러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여태껏 6%대다.

 

그러나 이런 수치를 시시콜콜 옮기는 건 지면 낭비에 가깝다. 아무리 설명해봐야 앞에서 눈만 끔벅이고 있다면, 그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귀를 가진 까닭이다.”(최승자, ‘무제 1’) 한술 더 떠, 기술의 갈라파고스를 구축하려고 세금을 철철 넘치도록쏟아붓겠다고 한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저버리겠다는 선언이다. ··(전기차) 중심으로 암기 과목(내연차) 열심히 하는 건 불가능한 이치와 같다. 여기다 대고 대선 티브이(TV) 토론 때 나온 질문을 다시 던지는 것도 부질없다. “아르이(RE)100(글로벌 기업들이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로 약속하는 운동)에 어떻게 대응할 건가?”

 

이런 난처한 질문을 피하는 데 맥거핀(관객을 오도하기 위한 연출)과 주술만 한 게 없다. 가령 원전이 얼마나 대단한 청정에너지면 유럽연합(EU)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포함했겠느냐고 떠드는 식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두산에너빌리티 방문 며칠 전 유럽의회의 관련 상임위원회가 그린 택소노미 최종안을 사실상 부결시킨 사실에는 침묵한다. 문재인 정부의 무늬만 탈원전정책이 한국전력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불렀다는 주술인형 찌르기5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원전 페티시즘(물신 숭배)’은 이미 넘치도록 위협적이다. “지금 원전업계는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다. ()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원전 페티시즘의 무의식적 발로다.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지역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마음과 안위를 조금이라도 의식했다면 나올 수 없는 잔혹한 메타포다. 원전은 사람이 끌 수 없는 불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참사 발생 11년이 지난 지금도 불타고 있다. 우리는 바보짓 5년이 아니라 최소 50년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안영춘ㅣ논설위원 한겨레 20220628

 

 

 

일본, 현재 핵발전소 4기만 가동 중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아시아에서는 탈핵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대만은 2025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로를 결정했습니다. 베트남도 핵발전소 건설 계획은 철회되었는데, 현재는 소형원자로를 개발할 방침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개발 시기는 2031년 이후이기 때문에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일본도 소형원자로 개발 방침을 정책에 포함시키려고 경제산업성 심의회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또한 윤석열 새 정부가 소형원자로 개발에 적극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소형원자로 개발은 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판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비용이 비싸서 시장 경쟁력이 없다’, ‘지극히 위험하고 처리·처분이 어려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발생한다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탈핵을 추진하는 우리의 연대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탈원전법이 국회에 제안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립하지는 않았습니다. 자민당 정권에는 원자력 산업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핵발전을 추진하는 의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후 위기를 빌미로 이에 더해 이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맞선 러시아산 에너지 불매와 에너지 가격 급등을 빌미로 핵발전 재가동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라는 큰 희생 끝에 만들어진 각종 원자력 규제를 완화하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산업계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21기의 핵발전소가 추가적으로 폐로를 결정했습니다. 안전 심사에 합격한 핵발전소는 17기에 달했지만 2022516일 현재 일본에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4기뿐입니다. 추가적인 안전 대책 설비 공사 등의 지연이 그 원인입니다. 재가동 심사 미신청은 9기나 됩니다. 아마 이 중 몇 기는 폐로가 될 것으로 추측합니다.

 

탈핵을 지향하는 시민들도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사고 시의 피난 계획이 실효성을 갖지 못합니다. 지자체가 재가동에 합의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핵발전에 대해서 법정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판 제도는 3심제로 지금까지 1(지방 재판)에서 승소한 사례가 3건 있습니다. 오이 핵발전소는 내진 안전성 결여로 승소, 도카이제2 핵발전소는 피난 계획 실효성 결여로 승소, 그리고 이번 5월 말일에는 도마리 원전이 쓰나미 대책 결여로 승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국내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역할을 탈핵신문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탈핵을 요구하는 국내외 운동에 연대와 용기를 계속 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루빨리 탈핵 사회를 만들어 나갑시다.

번역: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2.06.16.

 

 

확증편향안보와 갈대처럼 눕는 군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1123일 북한군은 연평도를 기습포격했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와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서해5도에 대한 도발 징후를 이미 3개월 전에 SI(Special Intelligence)를 통해 포착했다. 북한군의 통신에서 서해5도 지역을 의미하는 이라는 음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포격도발 이후 서해5도 지역에 대해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라는 북한군 내부 통신내용을 감청하고도 군이 민간인 지역 포격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군이 북한 공격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문제였다. 군은 감청 사실 여부에 대해 얼버무렸지만 SI가 갖는 민감성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넘어갔다.

 

통상 감청정보를 의미하는 SI는 넓게 보면 신호나 통신 주파수 등의 감청, 위성 촬영, 공작원 등을 비롯한 특수한 방법으로 수집된 첩보와 이를 분석·평가한 정보다. SI는 그 출처와 내용이 반드시 은폐돼야 한다. 적에게 누설될 경우 군사작전 및 군사정보 활동에 치명적인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I는 군에서조차 알지만 (존재조차) 말해서는 안 되는소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취급받았다.

 

그랬던 SI가 이제는 20209월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강아지 이름처럼 불리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입만 열면 SI를 경쟁적으로 떠들고, 언론은 이를 받아 쓰고 있다. 당초 발단은 사건 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군 고위 관계자들이 SI를 통해 취득한 내용을 마구잡이식으로 공개하면서 일어났다. 군 고위 관계자들이 SI를 과다 노출시킨 이유는 이씨 사건의 진상 규명과도 연관된 문제로 반드시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정권 바뀌면 SI 해석도 바뀌나

대북 사안이라면 보도자료의 소소한 표현까지 시비를 걸고 간섭했던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이 어떤 지침을 줬는지도 살펴봐야 할 문제다. 당초 국방부는 이씨가 북한군에 피격당한 것을 알고도 실종 사건으로 공지했다. 이후에는 북한의 대남통지문에 맞춰 시신 소각이라는 표현을 시신 훼손 추정으로 바꿨다. 이씨 사건을 보는 여야의 관점은 극명하게 갈린다. 민주당은 ‘SI를 통해 월북으로 판단된 사안이라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SI를 의도적으로 왜곡해 월북으로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황을 보면 2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대화록사태가 재현될 공산이 커 보인다. 국방부 태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국방부는 피살된 서해 공무원 사건을 놓고 “ ‘월북 추정판단을 번복했지만, 추가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첩보와 정보 판단도 번복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군의 이 같은 무소신은 정치권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해석을 부추기고 있다. 한마디로 바람 부는 방향이 바뀌니 알아서 눕는 갈대와 같은 군부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정권을 잡으면 군 수뇌부를 싹쓸이하듯 숙청을 해대니 군은 알아서 갈대가 된다. 심지어 문재인 정권은 육군대장까지 여러 혐의로 구속시켰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진보정권이 장군들을 겁주려 한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승전과 패전조차 정권 입맛대로 바뀐다. 대표적인 것이 제2 연평해전이다. 2 연평해전의 본래 명칭은 서해교전이다. 해군은 서해교전을 ‘NLL 수호임무를 완수해낸 전투로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서해교전을 완패한 전투’ ‘햇볕정책이 빚은 참화로 표현했다가 MB 정권이 출범하자 북한의 도발을 막아낸 승전이라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명칭도 해전으로 격상했다. 보수정권만이 군을 예우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쇼다.

 

군 무소신이 낳은 2 NLL 사태

언제부터인가 군 정보당국의 북한 동향에 대한 분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이 넘쳐난다. 책임지거나 정권에 찍히기 싫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결정적일 때 정권의 확증편향에 편승한다. SI도 정권 입맛대로 해석된다. 북한 도발에 속수무책 당했던 과거 사례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오는 법이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경향 : 2022.06.28.

 

 

최저임금, 너무 낮아서 문제다

9160. 입사 10년차인 대구 성서공단 어느 노동자가 받는 시급이다. 산입범위 확대로 근속수당, 가족수당, 만근수당에 간식비, 교통비 등이 더해진 2022년 최저임금이다. 그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각종 수당이 기본급처럼 둔갑한 탓에 실제 오른 시급은 단돈 몇백원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최저임금으로 가족들 생계비를 벌려면 잔업에 특근까지 장시간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들에게 최저임금은 그 이상을 받아본 적 없기에 또한 최고임금이기도 하다. 지난주 민주노총 대구본부가 주최한 최저임금 증언대회에서 공개된 어느 금속노조 조합원의 이야기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그 최저임금마저도 주는 것이 아까워 이리저리 깎으려고 애쓴다. 주휴수당이나 휴게시간 없기는 부지기수이고 필수적인 준비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쳐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법도 어긴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최저임금 미지급 신고건수는 20191260, 20201249, 20211048건이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는 같은 기간 근로감독으로 최저임금 미지급을 적발한 건수가 각 해 181, 23, 16건에 그친 데에서도 드러난다. 법치를 강조한다는 새 정부의 노동행정이 더 나을 리도 없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끝내 관철시켜 사용자들의 위법행위를 합법으로 둔갑시키려는 꼼수는 차라리 한심하다. 차등 적용이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길임을 그들이 모를까.

 

사실 지금도 최저임금은 절대 수준이 높기는커녕 너무 낮아서 문제다. 최저임금법 제1조에 명시된 제도의 본래 목적 그대로라면 누구든 전일제로만 일하면 임금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2021년 최저임금은 같은 해 비혼 단신 생계비의 약 80%에 그쳤다. 2022년 최저임금도 여태 2017년 비혼 단신 생계비에 못 미친다. 최저임금 노동자 다수가 2~3인으로 구성된 가구의 주 수입원인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표준적인 가구생계비에 크게 미달해 있다. 양대 노총이 주최한 5월 토론회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최저임금은 가구 유형별 비중을 고려한 평균 가구생계비의 60%를 소폭 상회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부양 자녀가 1명인 외벌이 3인 가구는 최저임금으로 가구생계비의 37.7%만을 충당할 수 있었다.

 

올해도 최저임금의 시간이 돌아왔다. 오늘이 2023년 최저임금 결정의 법정시한이다. 요즘에는 임금과 물가의 연쇄 상승 우려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눈에 띈다. 하지만 공정하게 따지자면 그런 주장은 좀처럼 지지되기 힘들다. 최근 실증연구에서는 최저임금의 물가에 대한 효과가 대체로 크지 않다는 점에 대해 동의가 형성되고 있다. 임금이 오르면 생산성이 자극되는데 이로 인해 임금 몫(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의 비율)이 늘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보고되었다. 더욱이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내년까지 국내총생산이 잠재수준에 못 미쳐 임금의 물가압력이 제한될 예상이다.

 

기실 물가의 영향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이미 크게 떨어졌다. 작년 4분기 생산자물가가 전년 대비 9.3% 오를 때 상품 단위당 평균노동비용은 1.4% 상승에 그쳤다. 지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일부 대자본과 금융회사가 경험한 횡재와는 차이가 크다. 기업이 가격 올리는 것은 당연시하면서 노동자들한테만 실질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정부나 보수 학계의 조언은 그런 점에서 가당치 않다.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세르파스 스톰 교수는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독과점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가격 상승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어쩌면 미국처럼 임금 말고 독과점기업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이윤과 물가의 연쇄 상승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의 지불능력 한계라는 난제와 충돌하는 중이다. 그러나 문제가 다르면 해결 수단도 달라야 옳다. 소상공인들이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안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정책 수단으로 접근해야 맞다. 이를테면 새 정부도 약속한 납품단가 연동제부터 조속히 제도화해 대자본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이 하나의 출발점일 수 있다. 결국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모두를 위한 해법이 될 것이다. 약자에게 비용과 위험을 전가하는 수탈적이고 지대추구적인 경제구조하에서는 소상공인도 저임금 노동자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경향 : 2022.06.29.

 

 

우리 정치에 감동이 없는 이유

우리 정치에서 언제부턴가 감동이란 걸 찾기 어렵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탓일까, 정치가 지금처럼 무미건조하고 국민들 가슴을 휑하게 하던 시대도 드물다. 대선 승패를 떠나 정치 자체가 너무 왜소해졌다.

 

정치로 감동한 기억을 굳이 꼽자면 2016~2017년 촛불정국 정도가 아닌가 싶다. 대다수 국민들은 촛불의 대의에 공감하고 동참했다. 그 이후론 별로 기억이 없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연설 정도인데,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었다. 지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의 젊은 반란은 나름 신선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에게 집권 초는 국민을 감동시킬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현재로선 기대난망인 것 같다. 취임 전부터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주말 쇼핑, 영화 관람, 애완견 산책은 감동과는 거리가 있다. 5·18 기념식 참석 정도가 그나마 울림이 있었다.

 

갓 취임한 대통령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인사인데, 기대와 너무 달랐다. 서오남과 검찰, 지인들로 채워지면서 감동이랄 게 없었다. 야당과는 무엇을 도모하기보다 짓밟는 데 열심이다. “탈원전 5년간 바보짓”, “민변이나 검찰이나 같은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친 발언들은 아직도 대선 승리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연패 이후 진정성 있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눈치보기와 견제구, 계파 싸움만 있고 용기와 결단, 헌신과 단합은 없다. 이재명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를 놓고 여론 떠보기와 잠행을 계속할 뿐 지도자다운 희생과 결단, 정정당당함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설사 대표가 돼도 이런 식이면 이후를 기약하기 힘들다.

 

하루하루 삶의 문제가 급하고 현실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감동 주는 정치가 무슨 필요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냉소와 분노, 무관심을 조장해선 곤란하다. 지금 정치는 나라의 잠재력과 건강성을 갉아먹고 있다. 감동 없는 정치의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내로남불이야말로 정치를 황폐화시키고 냉소를 부추기는 주범이다. 윤석열 정권 초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정권마다 내로남불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현 정부 출범 50일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아도취적 자기합리화가 너무 많다. 매번 정권은 차곡차곡 일정량의 내로남불을 쌓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하곤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정점에 두고 온갖 곡예를 부리는 검찰 인사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목도했던 편법과 무리수가 버전을 바꿔가며 되풀이되고 있다. 검찰총장 패싱말라고 그리 외치더니 이제는 아예 총장을 비워두고 맘대로 한다. 전 정권이 민변 출신으로 다 채웠으니 우리가 검찰로 채우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건 배째라식내로남불이다.

 

네가 하면 정치보복이요, 내가 하면 정의구현이라는 이른바 신 적폐청산도 문제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분당 백현동 아파트 의혹 사건 등 전 정권을 겨냥한 의혹 제기와 수사는 결국 정점을 향해 갈 가능성이 높다. 내로남불식 적폐청산은 항상 정의의 이름으로 내달리지만 결국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기 쉽다.

 

둘째, 이른바 손님 실수 정치는 여야 적대적 공생의 핵심 기제다. 윤 대통령이 지금 야당의 실수로 집권했고, 이제는 야당몰이로 정권 기반을 다지려 한다. 야당 역시 집권당 실수를 파고들어 살길을 찾으려 한다.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에 출마한다면 아마도 윤석열 정권 견제를 큰 명분으로 내세울 것이다. 내가 잘해서 모두가 좋아지는 덧셈이 아니라 상대방 발목을 잡아서 이득을 보는 뺄셈 정치가 만연하니 정치에 감동이 없다.

 

셋째, 팬덤 정치는 순기능도 있지만 지나칠 경우 대다수에겐 냉소와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팬덤의 배타성과 공격성이 클수록 정치는 더 삭막해진다. 이런 팬덤 뒤에 숨은 정치인에게선 용기와 결단, 치열함을 엿볼 수 없다.

 

내로남불, 손님 실수, 팬덤 정치라는 세 가지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첫발을 떼야 한다. 거기서부터 감동이 있는 정치도 시작된다. 정치가 삭막해질 때면 떠오르는 이가 노무현이다. 노무현 시절은 그래도 국민이 감동을 먹고 사는 시대였다. 지도자부터 지지자, 시민에 이르기까지 명징함과 헌신, 결의가 있었다. 다시 노무현에게 돌아가야 한다.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노무현의 정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백기철 | 편집인 한겨레 : 2022.06.29.

 

 

과로 사회회귀는 안 된다

경기도 판교와 서울 구로에 있는 게임회사들은 한때 판교의 등대’ ‘구로의 오징어잡이 배로 불렸다. 깜깜한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모습이 어두운 바다에 빛을 밝힌 등대나 배 같아서이다. 그만큼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시절이었다. ‘크런치 모드라는 말이 있다. 게임 회사에서 신제품 출시 등을 앞두고 몇 달간 밤샘 근무를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은 무시되곤 했다. 급기야 대형 게임업체에서 그렇게 일하던 20대 근로자가 과로로 숨졌다. 이 죽음은 크런치 모드로 인한 사망이 산업 재해로 인정받은 첫 사례가 됐다.

 

52시간 근무제는 이런 아픔을 겪으며 만들어졌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 최대 주 52시간만 일을 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기본 40시간에 노사합의가 있으면 최대 12시간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 이 제도는 20187,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됐다. 순차적으로 적용돼 지난해 7월에야 5~49인 사업장까지 도입됐다. 우리 사회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 게 얼마 안 됐다는 얘기다.

 

52시간제는 경영계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운 제도다. 일이 몰리는 기간에도 근로자에게 더 이상 일을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러니 주 52시간제를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유연하게 바꿔 바쁠 땐 더 일하고, 한가할 땐 쉬는 방향으로 개편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로 떠오른 노동시간 유연화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1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가 포함됐다. 지난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잇달아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운을 뗀 것도 이런 이유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장관 발표 하루 만에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났지만, 이 정부에서 가게 될 방향은 틀림없는 듯하다.

 

사업장마다 사정이 있고, 노사합의로 노동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자는 데 이견은 없다. 실제로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보자. 디테일은 다르지만 초과노동을 주 단위보다 더 긴 기간을 기준 삼아 운용하고 있다. 노사합의를 전제로 탄력적인 노동시간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런데 우리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단체협약 적용 노동자가 각각 100%, 98%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4.2%(2020년 기준)에 불과하다. 회사가 시키면 무리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다.

 

노동시간 유연화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최악의 상태를 제어할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노동 개혁 방향대로 한 달 단위로 조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한 달은 평균 4.343주다. 이를 토대로 단순 계산하면 기본 40시간에 초과근무 52시간(12x4.343), 주 최대 92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까지 일을 시키는 사업장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까지 일을 강요하는 곳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근로자 보호를 위해 퇴근 후 출근까지 11시간 휴식 의무화를 내놨지만, 5일 꼬박 야근은 그 자체로 과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노동개혁은 우리 삶의 방식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이제야 겨우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고 있다. 52시간제의 장점을 허물려면 탄탄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누군가의 죽음이 있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았다.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고, 과로사한 노동자들을 보며 주 52시간제도가 생겼다. 노동시간 유연화라는 바람이 살짝 불고 지나갔을 뿐인데도, 노조가 없는 영세 게임업체 종사자들은 다시 크런치 모드가 올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불안을 모르는 척 눈 감아서는 안 된다. 대책 없는 과로 사회로의 회귀는 안 될 일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국민일보 : 2022.06.29.

 

 

처음 겪어보는 이런 대통령, 이런 여당

큰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한 정당이 책임론과 쇄신론의 소용돌이에 빨려드는 것은 불가피하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주요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 안에서 벌어지는 리더십 흔들기와 자체적인 혼선 유발은 상식과 경험에 비춰 낯설다. 지난 3·9 대통령 선거와 6·1 지방선거에서 연승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우선 여당인 국민의힘은 큰 선거에서 잇달아 이기고도 당대표가 내부로부터 거취를 위협받고 있다. 이준석 대표의 입지가 공격받는 것은 선거 성적이나 정책 노선 차이 같은 게 아니라 본인의 성상납 의혹 때문이다. 아직 임기가 1년 남은 그의 정치적 운명이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관한 당 중앙윤리위원회의 징계 여부에 달려 있다. 당 신주류인 친윤석열계는 표면적으로는 이 대표의 혁신위원회 운영 등 행보를 자기 정치라고 저격하며 흔들고 있지만, 사석에서는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을 고리 삼아 이 대표를 끌어내리고픈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선거에서 승리한 집권당 대표가 성상납 의혹을 받는 것도 초유의 일이고, 경찰 수사가 완료되기도 전에 당 내부로부터 집단적 공격을 받는 것도 이례적이다. 이 대표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마땅히 당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다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이 대표가 지난해 윤 대통령이 당에 발을 들일 때부터 견제한 것을 시작으로 대선 기간에도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당무를 거부하는 등 윤 대통령을 애먹인데 대한 친윤계의 구원 또한 작동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집권 여당발 최대 뉴스는 고물가 등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국회 정상화 노력이나 당정 협의 같은 게 아니라 이 대표와 친윤계의 힘겨루기, 지도부의 내홍이다.

 

이런 당 상황을 두고 친윤계 핵심은 대통령이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냐”(장제원 의원)고 질타하지만, 윤 대통령 또한 여당만 탓할 처지가 못 된다. 최근엔 오히려 국정 혼란의 중심에 윤 대통령이 선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를 마치 경찰이 정부에 반기라도 들었던 것처럼 국기 문란이라며 격노했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52시간제 개편안정부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라고 부정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윤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앞 극성 시위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라거나, 김건희 여사 활동과 관련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은 매일 절망한다. 이 모든 발언이 출근길 기자 문답에서 나왔다. 대통령이 언론인들과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에서 생긴 대표적 변화이고 앞으로도 장려할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대통령실 참모들과 정부 부처가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는 일이 잦아진다면 대통령도 손해, 국민도 손해다.

 

윤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한 인사는 윤 대통령 취임 무렵 윤 대통령을 기존 정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들면 다 틀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경험 전혀 없이 사실상 검찰총장에서 대선으로 직행해 성공한 그가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사고와 행동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 인사의 말대로 우리는 그 전에 겪어보지 않은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방향이 현재까지 순방향은 아닌 것 같다.

 

여당 또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수준의 건강성이라도 있는 건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집권 주류 안에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라는 상왕영포라인이 있었지만 그에 맞서 경고음을 낸 정두언 전 의원 등 견제 세력이 있었다. 박근혜를 당의 중심으로 다시 불러내 재집권의 길을 터준 것도 이들 소장 그룹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친이계나 유승민 전 의원 같은 당내 비판 세력이 존재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국회 정상화라는 여당의 책무는 방치한 채 권력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아우성, 그게 아니면 자리 보전을 위한 눈치보기만 도드라진다.

황준범 | 정치부장 한겨레 : 2022.06.29.

 

 

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나쁜 자유를 경계한다

판교의 등대가 다시 불을 밝힐 가능성이 커졌다. 게임업계는 이미 변형된 주 52시간제를 시행 중이다. 일이 많은 주에는 노동시간을 늘리고, 적을 때는 줄여 주 평균 52시간만 맞추면 되도록 했다. 게임업계 경영진이 최근 이 같은 선택근로제와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늘려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바꾸는 것을 핵심으로 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내놓자 기업들이 발빠르게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차례 언급했던 자유개념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말하는 자유였다. 윤 대통령은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제학자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규제를 완화해 민간주도 성장을 하겠다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신자유주의 기조를 따르고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에 따라 게임업계 선택·탄력 근로제 단위시간이 연장되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게임 출시가 중요한 게임업체로서는 원하는 시기에 새 상품을 내놓을 수 있어 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 반면 게임 개발자들은 나중에 쉬게 해주겠다는 지시에 따라 집중적인 고강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판교의 게임업체들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등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에게서 자유를 빼앗아 기업에 주는 꼴이다.

 

노동자의 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도 침해받을 위기에 처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한 지 5개월밖에 안 됐음에도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민의힘은 안전 인증을 받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처벌을 낮춰주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실제 처벌도 미약하다. 노동부는 법 시행 이후 지난 27일까지 중대산업재해가 사망사고 84(91), 질병사고 2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인 사건은 절반이 안 되는 40건뿐이고, 그나마 기소된 사건은 1건에 그친다. 나머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인하해 투자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은 일부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갈 우려가 크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정책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보면 현재 최고세율 25%를 적용받는 기업은 80여개뿐이다. 2020년 기준 법인세를 신고한 838000개 기업의 0.01%이다. 정부는 대기업 법인세를 깎아주면 투자와 이익이 증가하고,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가는 낙수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따른 낙수효과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

 

일부 고가 주택 보유자가 내는 종합부동산세도 부담이 내려간다. 종부세 과세 대상자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집주인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내용의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도 내놨다. 한결같이 부자들의 세부담을 낮춰주는 정책이다.

 

대기업과 고소득 개인의 세부담을 낮추면 세수가 줄어들 게 뻔하다.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로 세수가 2~4조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과표구간 조정으로 최저세율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 세수 감소폭은 더 커질 수 있다. 세수 감소는 정부 재정여력을 약화시켜 복지에 쓰일 예산마저 줄어들게 한다. 취약한 시민과 기업의 자유를 증진할 공적 기능이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경제사회학자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자유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있다고 썼다. 나쁜 의미로는 무제한으로 동료를 착취하려는 자유, 과도한 수익을 올리려는 자유, 과학기술 발명을 공익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자유 등을 꼽았다. 국가 규제가 대거 풀린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횡행하는 자유를 오래전에 예견했다. 반면 양심·언론·집회·결사·직업선택 등은 입법활동을 통해 지켜야 할 좋은 자유이다.

 

지난 한 세대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는 수탈과 착취의 깊은 상처를 남긴 채 퇴장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선택할 자유>를 추천하자 1980년대 사고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더 과거인 1940년대로 돌아가 <거대한 전환>에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대학 시절 심취했다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는 명언도 새기길 바란다.

안호기 논설위원 경향 : 2022.06.30.

 

 

너무 빨리 권력에 취한 정권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전방위 위기)이 어른대고 있다. 이미 국내를 강타한 3’(고물가·고금리·고환율) 태풍 앞에 민생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취약한 계층에서부터 소리조차 못 내고 찌부러지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불안을 더 깊게 하는 건 집권세력의 무능과 게으름이다. 대통령과 내각, 여당이 하나같다. 삶이 무너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절박하게 대책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번의 선거 승리, 5년 만에 잡은 권력에 취했기 때문이다. 총선까진 2년 남짓 남았으니 국민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이 아니고서야 대통령은 심야에 불콰한 얼굴로 취객들과 사진을 찍고, 여당 대표는 윤핵관세력 등과 치고받고, 원내대표는 국회 개원은 내팽개친 채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질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에 대한 준비와 의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부인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에는 저도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라 모르겠다방법을 알려주시죠라고 했다. 애초 공약을 철저히 지키든지, 공약 파기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공적 보좌기구를 두든지 자신이 해결할 일이다. 왜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나. 그래놓고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도 않은 채 나토 정상회의에 부인과 동행했다. 말썽 많은 부인 팬클럽은 여전히 건재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서는 발표 전 보고받지 못했다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실은 8일 전에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회의에서 다 논의됐던 내용이다. 민생 현안에 무지하고 무신경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뚜렷한 관심과 실행력을 드러내는 분야도 없지 않다. 전임 정권 공격과 권력기관 장악이다. 독립성과 임기가 보장된 국민권익위·방송통신위 위원장에 대해선 국무회의에 올 필요 없는 사람이라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술 더 떠 임기제 국책 연구기관장들에게도 우리하고 너무 안 맞는다며 노골적으로 사퇴를 종용했다. 필요하다면 여야 합의로 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맞추는 법 개정을 하는 등 제도적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일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환경부 장관의 산하기관장 교체 압박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에 따라 지금 검찰도 전임 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동종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지금 대통령과 총리가 보이는 내로남불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윤석열 사단을 대거 승진시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검찰 인사에 대해 어차피 인사권은 장관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며 책임장관으로서 인사 권한을 대폭 부여했다고 옹호했다. 행정안전부의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에 대해선 중대한 국기문란이라며 경찰에 책임을 돌렸다. 하지만 경찰은 행안부로부터 통보받은 인사 결과를 관행대로 공지했는데, 2시간 만에 수정된 인사안이 다시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편향적 발언 뒤 한 장관은 후속 인사에서 고발사주같은 중대한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손준성 검사까지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영전시켰다. 반면 김창룡 경찰청장은 사표를 냈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시민사회와 야당, 일선 경찰의 일치된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경찰국 신설 강행 뜻을 밝혔다. 검경 장악을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의 잇단 강수는 민생 현안을 다룰 때의 무신경·무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권력기관에서만 커리어를 쌓은 검통령답다.

 

집권여당도 부창부수수준이다. 당대표는 9년 전 의혹에 발목 잡힌 채 윤리위, 배현진 최고위원, 안철수 의원, 장제원 의원 등과 전방위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당 지도부의 민생 행보는 가뭇없이 증발했다. 원내대표는 야당의 국회 개원 협상 제안을 걷어차고 출국했다. 정상이라면, 여당이 민생 대책을 세우기 위해 국회를 열어야 한다며 야당을 압박하거나 읍소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느긋한 여당은 듣도 보도 못했다. 정부 멱살이라도 잡아끌어야 할 여당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경제부총리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는 소리를 민생 대책이랍시고 떠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취한 집권세력의 노랫소리만큼 국민의 원성도 높아져가고 있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 202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