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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1.7.19~

by 이성근 2021. 7. 19.

미국의 페미니즘은 백인 페미니즘인가?

2016년 대선 때는 53%, 2020년 대선 때는 55%의 미국 백인 여성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미국 페미니즘은 이들을 비난하기 전에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부터 이해해야 했다.

20171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여성의 행진집회에 수많은 참여자가 운집해 있다.

AFP PHOTO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진 것은 페미니즘의 패배인 양 간주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기간에 스스로 유리천장을 깨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부각했다.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한 몸에 받은 것으로 조사된 그는 당선이 명백해 보였다.

 

반면 부동산 거부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당시 여성과 성소수자, 이민자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선거 직전에는 여성 다섯 명이 트럼프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공직 진출 자체가 문제시됐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클린턴을 지지했던 페미니스트들을 격분시킨 사실이 있었다. 트럼프의 승리에 백인 여성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백인 여성의 53%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이 중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은 35%,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여성은 56%였다. 흑인 여성의 94%와 라틴계 여성의 68%가 클린턴에게 표를 던진 것과 대조적이었다. 팝스타 마돈나는 빌보드지에 백인 여성이 우리를 배신했다. 여성은 여성을 싫어한다라는 자극적인 말을 남겼다. 저널리스트 수전 무어는 여성혐오는 남성만의 속성이 아니다라며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고정관념까지 소환했다.

 

2016년 대선 이후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 53%’라는 통계는 밈(meme)이 되었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내내 이 ‘53%’를 강조하며 페미니스트들과 보란 듯 맞섰다.

 

이런 트럼프를 통해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트럼프 취임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페미니스트 300여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단일 시위로 기록됐다.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으로 불린 이 페미니즘 시위는 세계 168개국으로 퍼지면서 400여만 명이 참석했다. 여러 분파로 나뉜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행진을 통해 트럼프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했다. 반면 포스트 페미니즘’(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으로 이미 여성들의 지위가 확보되었고 앞으로도 증대될 것이므로 페미니즘 자체의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조류)은 뭇매를 맞았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는 아버지의 반페미니즘 이미지를 의식한 듯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남녀 임금차별 철폐를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성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같은 발언으로, 성공한 백인 여성을 대표하는 포스트 페미니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2016년 미국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버니 샌더스의 사회민주주의 페미니즘사이에 깊게 파인 골을 드러낸 계기이기도 했다. 같은 해 2월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선거때 그는 샌더스에게 20% 이상의 큰 차이로 패배했다. 이는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45세 이하 젊은 여성 가운데 64%가 샌더스를 전폭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 연령대 여성 가운데 34%의 표를 얻는 데 그쳤다. 클린턴 캠프는 충격에 빠졌다. 젊은 여성 유권자들이 샌더스를 비록 여성은 아니지만 힐러리 클린턴보다 나은 페미니스트로 여긴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당시 샌더스를 지지한 여성 유권자들은 페미니즘 의제(성차별과 억압 반대)를 성소수자에까지 확대하는 경향을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는 버몬트 시장이던 1983년에 게이 퍼레이드를 지지했다. 대중의 68%가 동성결혼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던 1996년에도 결혼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남성과 여성만의 결합을 결혼으로 규정한 법률)’에 반대할 정도로 성차별주의 및 억압과 싸워온 인물로 간주되었다.

 

이에 비해 힐러리 클린턴이 변화된 여성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인지 의문시되었다. 페미니즘을 브랜드로 활용하며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도 나왔다. 예컨대 2016년 대선 국면에서 그는 메디케이드(빈곤층과 장애인에 대한 의료보장제도)를 낙태 비용에 적용하는 것을 금지한 수정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2008년 대선 당시엔 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 요구에도 침묵한 바 있다. 클린턴은 또한 미국 자본주의의 기회와 자유를 칭송하며 우리는 덴마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힐러리는 미국 여성이 덴마크보다 더 많은 빈곤과 실업을 견뎌야 하는 것을 알 만큼 똑똑하지만, 그 사실을 무시할 만큼 뻔뻔한 여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클린턴의 정치적 궤적은 결국 백인 중산층 여성을 대표할 뿐 다양한 인종과 계층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발언도 페미니즘 내부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 유권자들을 향해 여성을 지지하지 않는 여성은 지옥에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페미니즘 운동의 전설로 통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남자들이 샌더스와 함께하기 때문에 젊은 여성이 버니를 지지한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샌더스를 지지하는 남성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버니 브로스(Bernie Bros·버니의 형제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스타이넘의 발언이 나오기 4개월 전 버니 브로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유명 시사지 애틀랜틱의 로빈슨 마이어 기자는 이 용어가 원래 의도와 달리 경멸의 의미로 통용되자 당혹한 나머지 공개 탄원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0116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여성이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트럼프에게 투표할 때 영웅심을 느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 유권자들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거부감은 20165월 오리건주 예비선거에서 절정을 이뤘다. 샌더스가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카운티를 휩쓸었던, 흠잡을 데 없이 진보적인 오리건주에서 여성의 27%(힐러리에게 투표하느니 차라리)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여론조사에서 답변한 것이다. 페미니즘계가 술렁였다. 오리건주에서 샌더스를 지지하는 여성 가운데는 클린턴에 대해 단지 결함 있는 후보가 아니라 사탄 같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게 클린턴은 (성별은 여성이지만) ‘자본주의 가부장의 전형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후 조사들에서 샌더스 지지자 중 일부가 실제로 대통령선거 본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페미니스트 성향으로 보이는 샌더스트럼프유권자들이 심각한 학술 연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를 실감한 듯 버니 샌더스는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실패한 뒤 힐러리 클린턴을 미지근하게 지지했던 것과는 달리, 2020년 경선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뒤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바이든에게 투표해달라고 강력히 호소했다. 여성들에게도 트럼프 재선은 미국의 페미니즘을 총체적 난국으로 밀어넣을 것이 분명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 자체의 한계를 마주해야 할 운명이었다.

 

샌더스트럼프유권자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페미니즘엔 백인 여성 53%’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백인 여성 1만여 명은, 2016년 대선 당일 19세기 후반 여성참정권을 위해 투쟁했던 수전 앤서니의 무덤을 찾아 투표했어요(I voted)”라는 스티커를 남겼다. 1세대 페미니스트인 수전 앤서니는 흑인 시민권을 지지했으나 여성을 제외한 흑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인준하려는 움직임에는 반대한 인물이다.

 

미국 페미니즘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백인 여성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백인 여성 유권자 중 다수는 1952년부터 지속해서 공화당에 투표해왔다. 1960년 선거에서 백인 남성이 존 F. 케네디를 선택할 당시 백인 여성은 대체로 리처드 닉슨에게 투표했다. 1950년대 이후 백인 여성이 지지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제36대 대통령 린든 존슨과 제42대 빌 클린턴뿐이다. 이에 대해 제인 준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는 백인 여성 유권자들이 성장하면서 정치적으로 사회화됐기 때문으로 파악했다. 자라면서 들어왔기 때문에 이를테면 트럼프에게 투표할 때 영웅심과 애국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백인 여성들이 유색인종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이 직면한 폭력에 거의 주목하지 않으며 심지어 인종 계층의 상위에 계속 머물기를 원한다는 분석도 있다. 백인 여성들은 백인이 인종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머무르는 한 여성이라는 2등 지위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은 세계 뉴스를 장식할 만큼 심각했던 트럼프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둔감했다. 공화당 여성의 15%만이 트럼프의 성차별 언행이 큰 문제라고 답했을 뿐이다(민주당은 45%). 또한 공화당 여성의 26%(민주당은 50%)만이 성별 차이로 인한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여성의 39%여성도 남성만큼 사회적 권력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에 클린턴 지지 여성들은 17%만이 동의했다. 트럼프가 저소득 백인 여성의 표심을 확보한 것은 그들의 남편을 일터로 돌려보내겠다는 구체적인 호소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은 저소득 백인 여성에게 1950년대 가정주부의 안락한 환상을 꿈꾸게 했다는 것이다.

 

2020년 대선에서는 어땠을까. 지난해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가 우여곡절 끝에 백악관에 입성했는데, 이는 페미니즘의 승리를 의미하는 걸까?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분노한 페미니스트들의 행진은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여성 53%’를 변화시켰을까?

 

백인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대선에서는 백인 여성의 55%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2016년 당시보다 2%포인트 높았다. 다만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들 가운데 51%2016년에 클린턴을 지지한 반면 2020년 대선에선 이 집단의 62%가 바이든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페미니즘의 교육적 효과라기보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트럼프의 안일한 태도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젊은 백인 여성 절반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2020년 대선에서는 18~29세 여성들 중 53%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던 것이다. ‘백인 여성 53% 신화는 이번 대선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하지만 흑인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 가운데는 2016년과 2020년 모두 각각 90%, 65% 이상이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20161116일 워싱턴에서 열린 어린이 보호기금 기념식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연설하고 있다.AP Photo

 

젠더·인종·계급이 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

그렇다면 다양성통합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페미니즘의 기대에 부합하는가?

바이든이 취임식 직후 발표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및 퇴치에 관한 행정명령에 대해 페미니즘 분파 중 하나인 터프(TERF: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즘)바이든이 오바마 시절로 퇴보했다라며 반기를 들었다. 행정 조항 가운데 아이들이 화장실, 라커룸(샤워실), 학교 스포츠 등에 대한 자신의 접근이 거부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정한 자신의 젠더(문화적 성정체성:예컨대 생물학적 남성이라도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따라 행위를 해도 이를 거부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생물학적 성정체성을 중시하는 터프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 여성(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한 경우)이 스포츠 대회 수상을 독식하고 여성 화장실에까지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치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을 페미니즘들(feminisms)’로 불러야 한다고 할 정도로 여성운동 분파가 다양하다. ‘여성들의 행진과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거치면서 최근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이 세를 얻고 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1989년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인 킴벌리 윌리엄스 크렌쇼 교수가 고안한 이론이다. 특정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이란, 그의 젠더·인종·계급 등 다양한 측면이 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크렌쇼 교수는 최근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교차성 페미니즘을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이 함께 작동하고 상호 간에 악화시키는 방식을 보는 프리즘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흑인 여성을 이해하려면, 그가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흑인으로서 받는 차별이 서로 엮이고 상호작용하면서 동시에 억압이 강화되는 교차 지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폭력과 차별의 오랜 역사적 맥락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 조류의 운동가들은 주장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은 클린턴과 바이든에게 90%가 넘는 지지를 보냈던 바로 그 흑인 여성들을 대표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백인 여성의 경험에만 초점을 둔 전통적인 백인 페미니즘을 실패로 규정하며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및 LGBTQ(여성·남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혹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갈등을 겪는 사람) 권익 운동과 연대하고 있다.

 

그러나 백인 페미니즘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비평가 H. L. 매켄은 여성혐오를 여성이 서로 미워하는 만큼 남성도 여성을 미워하는 상태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성이 서로 미워한다고 말하면 남성도 여성을 미워하도록 암묵적으로 허용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백인 여성 53%’라는 신화를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여성 간 여성혐오 고정관념의 신화를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신화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등장하는 여성 리더들이 나올 때마다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 편집장)/ 시사인

종이신문은 왜 바로 계란판이 되는가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가 대세다. 이런 관행이 공론장 형성에 해롭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포털 중심의 뉴스 시스템을 개편하고 새로운 후원 정책을 접목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MBC 나 혼자 산다관찰 예능프로그램이다. 출연자의 일상과 그에 대한 다른 출연진의 반응을 보여준다. 출연자들의 특이한 물건이나 기이한 행동을 웃음거리로 삼는 장면이 많다. 지난해 추석특집 방송에 등장한 기벽은 종이신문 구독이었다. 출연자인 배우 김광규씨가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자, 다른 이들이 종이신문을 구독하세요?”라며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왔다. 뉴스는 당연히 인터넷으로 본다는 것이다. 김씨는 휴대전화로 보니까 눈이 너무 아파서(종이신문을 본다)”라고 해명했다. 방송 후 몇몇 신문사가 종이신문의 강점을 설파하는 칼럼을 내보냈다.

 

언젠가부터 포털사이트를 통한 뉴스 소비가 대세가 되었다. 종이에 인쇄된 문자로 뉴스를 읽는 일은 대중적이지 않다. 특이한 취미에 가깝다. 이 당연한 관행이 개별 언론사뿐만 아니라 공론장 형성에도 해롭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불씨를 댕긴 것은 정치권이다. 기존 포털 중심의 뉴스 시스템을 개편하고 완전히 새로운 후원 정책을 접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만큼 포털이 뉴스 환경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온라인 설문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온라인 뉴스를 이용한 주된 경로로 검색엔진 및 뉴스 수집 사이트라고 답한 응답자는 72%, 46개국 중 1위다. 46개국 평균은 33%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한국인들이 온라인 뉴스를 이용하는 플랫폼 가운데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모바일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스마트폰·태블릿 PC로 뉴스를 봤다고 답한 응답자는 80%였다. 20대부터 40대 응답자 가운데서는 이 비율이 90% 이상이다.

 

반면 종이신문의 쇠락은 참담한 수준이다. 2020 언론 수용자 조사를 보면, ‘지난 일주일간 TV로 뉴스를 본 적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85%. 10년 전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일주일간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0.2%이다. 1993년 조사에서 87.8%에 달했던 이 응답은 지난 10년간 매해 4~5%포인트씩 줄어들고 있다. 이 지표만 놓고 한국인은 1990년대에 비해 신문 기사를 읽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종이신문, 컴퓨터, 스마트폰, TV 등 어떤 경로로든 신문 기사를 읽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90%에 달한다. 종이로 보지 않을 뿐, 절대다수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이 수치를 앞세워 읽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 신문 기사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언론재단 연구자들은 신문 기사 결합 열독률 절반 가까이는 TV를 통해 이뤄지며, 이는 사실상 우연적 접촉에 가깝다라고 적었다. 눈앞에 보이니 읽을 뿐, 신문 기사를 능동적으로 찾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종이신문을 정기구독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단 6%였다.

 

신문 구독 방식의 변화는 매체 환경에 영향을 줬다. 매체를 개별적으로 구독할 때에 비해 포털을 통해 본 기사는 매체 및 기자 이름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포털(예컨대 네이버)에서 봤다고 기억한다. 언론사 처지에선 당장의 조회수를 위해 매체 신뢰를 깎아먹어도 그 손실이 바로 와닿지는 않는다. 다수의 인터넷 매체들은 노골적으로 광고에 가까운 기사나 선정적 기사를 싣는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매체들도 온라인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어뷰징(비슷한 기사를 조금씩 고쳐서 수십 번씩 포털로 송고하는 행위)을 일삼고 있다. 자극적인 제목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기사가 인터넷에서는 인기를 끈다.

 

이에 따라 기이한 언론시장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취재에 공들이는 매체는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어뷰징 전문 매체가 그 자리를 채웠다. 언론의 공익적 구실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인의 뉴스 신뢰도는 세계적으로 최하위권이다.

포털사이트의 기사 배열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은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시사IN 이명익

 

언론인 출신인 김의겸 의원(열린민주당)은 현재와 같은 포털 중심 환경이 언론 전반의 질적 저하를 불러와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포털에 실린 기사는 어느 매체가 썼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책임하에 생산하지 않는다. 공유지에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다. 각 매체 고유의 정체성과 지향점은 사라지고 클릭 수에만 매몰되었다.” 포털 개혁이 언론개혁의 핵심이라고 보는 김 의원은 여러 방안을 구상해왔다. 지난 4월 정부가 돈을 들여 공영 포털을 만들자고 제안한 데 이어, 6월에는 포털사이트의 기사 배열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이 이용자에게 맞는 기사를 추천하는 기능을 금하자는 게 골자다. 대신 이용자 스스로 구독한 언론사의 뉴스만 포털이 매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역시 포털의 뉴스 편집권 폐지를 포털 개혁의 주된 방향으로 설정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의 의도를 의심한다. 대선을 앞두고 언론에 압박을 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포털 뉴스를 향한 불만은 이전 정권에서도 누차 터져 나온 바 있다. 2007년 제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캠프의 뉴미디어 팀장이었던 진성호 전 의원은 네이버는 평정됐고 다음은 여전히 폭탄이라고 말했다. 2015년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원은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모두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 관련 콘텐츠에 부정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보통신 관련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애초 정부 권력을 비판하는 게 언론 역할이고, 그런 기사가 많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포털 뉴스를 제재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이용자의 권리도 제약한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여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AI의 기사 추천 알고리즘 공개 요구도 부정적으로 본다. “알고리즘이 공개되면 그다음은? 추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한지 검증하는 주체가 국가인데, 과도한 압력이다.”

 

그런데 김의겸 의원의 생각은 단순히 네이버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이나, ‘알고리즘이 수상하다는 음모론과는 궤가 좀 다르다. 그는 포털사이트가 특정 정치색을 지니고 능동적으로 언론 환경을 조작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포털 뉴스의 목적은 클릭을 최대한 유발하고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오랜 시간 머무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둘째, 각 언론사는 포털에서 자사 기사를 최대한 눈에 띄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선정적 기사가 쉽게 이 목적을 달성한다. 셋째, 이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하고 적응하는 데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은 대형·보수 매체다.’

 

국민에게 후원 쿠폰 나눠주는 바우처법

포털이 특별히 보수적이거나 선정적이라서가 아니라, 보수적이거나 선정적인 매체가 포털이 추구하는 상업성에 알맞다는 것이다. 이에 김 의원은 한 가지 논리를 덧붙였다. “기사 배열은 언론 고유의 편집권이다. 포털은 언론이 아니다. 따라서 포털이 기사를 배열하는 것은 부당하다.”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는 드물지만, 포털의 배열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는 개혁론의 밑바탕에는 매체가 너무 많다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어뷰징과 광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 인용 등 질 낮은 기사만 양산하는 매체들이 포털에 기대어 수익을 낸다는 것이다. 뉴스 공급을 언론사별 구독 시스템으로 강제하거나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금지하면 질 낮은 기사를 양산하는 매체들이 도태되고 언론 신뢰도 회복되리라는 게 이들의 기대다.

78일 서울 명동거리의 한 신문 가판대 모습. 주인은 신문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하지만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기획에 맹점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가 포털에 종속됐다는 시각이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매체별 디지털 역량 차이가 몹시 크다. 대부분 언론사는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할 디지털 환경을 플랫폼(포털사이트, SNS)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역량이 가장 강한 언론사는 대형 보수언론이다. 지금도 네이버 입점 여부가 사세를 결정하는 지역 언론사로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새롭게 떠오른 안이 있다. 포털의 자의적 배열은 막고, 기사의 질만으로 경쟁하도록 하되, 대형 매체가 시장을 독식하지 못하게 만들자는 방안이다. 지난 3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미디어 바우처법이다.

 

미디어 바우처는 정부가 18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쿠폰을 나눠주는 것이다. 이 쿠폰은 언론을 후원하는 데만 쓸 수 있다. 온라인에서 읽은 기사가 마음에 들면 본문 옆 후원버튼을 누르는 방식이다. 사용하지 않은 후원금은 정부가 도로 회수한다. 1인당 연간 2~3만원. 1조원을 지급한다. 일견 공상으로 여길 법한 정책이지만 김 의원은 실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매해 언론에 정책·기관 광고를 집행하는데, 이 광고 단가를 매길 때 매체 유료 부수를 참고한다. 유료 부수와 영향력이 비례한다고 보고, 부수를 많이 발행하는 매체에 더 높은 광고료를 집행할 수 있다. 유력 일간지는 매해 평균 50~100억원씩 광고비를 받았다. 20175월부터 20208월까지 동아일보305억원, 조선일보265억원, 중앙일보174억원이 정부 광고비로 집행됐다.

 

광고 집행에 새 기준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든 사건이 지난해 11월 일어났다. 인쇄매체 유료 부수를 조사하는 곳은 한국ABC협회(ABC협회)이다. 그런데 지난해 11ABC협회 내부고발자가 협회가 부수 부풀리기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료 부수가 많은 매체가 더 높은 정부 광고료를 받는 상황에서 일부 대형 신문사들이 세금으로 부당한 이득을 얻은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ABC협회와 관련된 조사를 추진했으나 협회는 추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78“(ABC협회는) 지난 3개월 동안 협조할 의지가 없었다라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ABC협회 자료를 정책에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조사 대신 국민이 직접 선호하는 매체를 투표하도록 해, 합당한 광고 단가에 따라 분배한다는 게 미디어 바우처법의 기본 목적이다.

 

김 의원이 이 제도가 현실적이라고 보는 까닭은 추가 예산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후원금으로 지급할 주된 재원은 지금도 지출되는 정부의 언론 광고비다. 매해 1조원(인쇄매체는 약 2500억원) 안팎을 집행하고 있다. 김승원 의원이 구상한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는 포털 시스템과 연계해, 독자들이 어떤 기사를 후원했는지 정확히 체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구현하는 데 20~30억원 정도 재원이 추가로 필요할 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신문 우송비가 이 정도(20~30억원) 된다. 적잖은 신문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계란판 만드는 공장으로 가는데, 우송비를 여기 쓰자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승원 의원실 보좌진은 지난 3월 제보를 받고 새로 나온 신문이 트럭에 가득 쌓인 채 폐지로 팔리는 현장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매체가 현재 지닌 영향력을 평가하는 것만이 이 정책의 목적은 아니다. 포털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처럼, 미디어 바우처법의 장기적 목표도 언론 생태계 변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일부 매체가 주도하는 여론 지형을 바우처를 통해 바꾼다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은 후원 상한제다. 한 사람이 매체 하나에 후원할 수 있는 액수, 한 매체가 받을 수 있는 바우처 총액에 한계를 둔다.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조선일보에 가는 정부 광고비는 예년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줄어든다. 일찌감치 후원 상한액을 채운 큰 언론 대신 내실 있는 기사를 쓰는 작은 언론의 기사에도 주목하게 된다. ‘가짜뉴스낚시성 기사등을 몰아내기 위한 마이너스 바우처조항도 있다. 기사에 대한 불호를 표현하는 지표로, 지급 총액에서 마이너스 바우처 액수만큼 제외된다. 국민의 선별을 거치는 과정에서 군소·지역 매체가 살아남고, 실력 있는 매체가 대우받는 언론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김 의원은 주장한다.

 

아직 미디어 바우처를 시행 중인 국가는 없다. 하지만 언론에 기업광고 외의 수익원이 필요하다는 논의 자체는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세기 이래 대다수 신문사는 수익의 70~80%를 광고에 의존해왔다. 이 구조가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해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주된 광고주인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자 구독료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던 대다수 언론사들은 광고주의 이익과 독자의 신뢰 사이에서 줄타기를 감행해왔다.

 

언론계에서 광고 외 수익원논의가 발등의 불이 된 것은, 독자 신뢰가 무너져서가 아니라 광고가 끊기면서였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인터넷 플랫폼에서 뉴스를 보는 추세는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말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개별 언론사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단숨에 언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신문 한 부를 펼쳐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사람은 줄고, 웹사이트 메인 화면이나 타임라인에 뜨는 기사만 훑는 독자가 늘었다. 광고주에게 이 흐름은 언론보다 플랫폼 사이트가 광고 매체로서 더 큰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였다. 언론매체의 몫이었던 광고가 자연히 플랫폼 기업으로 몰렸다. 2019년 구글의 광고 수입은 약 1350억 달러(153조원), 10년 전의 6배에 달한다. 같은 해 페이스북 광고 수입(700억 달러, 79조원)10년 전보다 90배 늘었다.

 

광고란으로서 매력을 잃자 탄탄한 언론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독자가 많은 영어권 언론도 겪은 일이다. 2010년대 미국에서는 언론사의 매각과 통폐합이 줄을 이었고 수많은 언론인이 명예퇴직했다. 163년간 이어온 미디어그룹 매클래치(McClatch)도 지난해 헤지펀드에 매각됐다. 10여 년간 광고 수입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까지 겹치면서다. 광고를 유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기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기자들도 수입 창출부담을 졌다. 아서 슐츠버거 회장의 입에서 뉴스룸은 (광고) 영업부서와 협력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왜 언론을 지원해야 하는가?’

언론은 어디서 수익을 내야 할까? 디지털 유료 구독은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디지털 유료 구독 유치에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뉴욕타임스마저 줄어든 종이신문 독자를 일부 만회했을 뿐, 10년간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광고 수익을 보전하지 못했다. 공익 재단이나 재력가가 내미는 선의의 후원에 기대는 매체도 있다. 하지만 편집국 보도에 영향이 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 사실 포털사이트에서 거의 모든 기사를 무료로 볼 수 있는 한국 언론은 두 모델 모두 여의치 않다. 최후의 수단으로 거론되는 것이 미디어 바우처를 비롯한 정부의 재정지원이다.

 

2019년 시카고 대학의 조지 스티글러 경제국가연구소는 일군의 언론·경영학자들을 모아 언론 위기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연구자 7명은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저널리즘 수호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우리는 미디어 바우처가 언론에 자금을 조달하는 최고의 계획이라고 본다라고 적었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 상생 TF 소속 의원들이 국회 소통관에서 신문 부수 조작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들은 지금도 대부분 국가가 다양한 방법으로 언론에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지적한다. 지급 방법만 미디어 바우처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부가 언론을 먹여 살릴 때 가장 큰 문제는 독립성이다. 정부 눈치를 보느라 비판 기사를 쓸 수 없는 매체가 나올 수 있다. 자금을 지원할 매체와 그 액수를 국민이 판단한다면 이 치명적 단점이 사라진다고 학자들은 적었다. “(국가는) 기사 내용이나 논조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매체를 똑같이 취급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 재량권이 적용되지 않는 공적자금이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로 대중적 인기를 끈 매체가 정부 지원금을 타가는 상황이 자연스러워진다. 연구 책임자인 가이 롤닉 시카고 대학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디어 바우처 정책의 핵심은 (언론 관련 공적자금의) 분배 과정에서 정치를 배제하고 최종 수요자(시청자·독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지원금의 용처는 일반 대중이 통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9년 경기도의회 발주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한 이들이 국내에 있다. 한신대학교 산학협력단(강남훈, 김진오, 이준형)이 경기도의회의 발주를 받아 경기도 언론 공공성 확대를 위한 언론 기본소득 실현 방안보고서를 펴냈다. ‘언론주권자 배당이라는 용어로 미디어 바우처 제도를 연구한 보고서다. 이들은 왜 언론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언론의 공익적 역할에 대해 기본소득(내지 참여소득)의 개념을 응용해 답한다. 이들은 대중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공동선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소유주나 광고주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언론이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언론이 주권자의 뜻에 따르는 보도를 할수록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보통 사람들의 참정권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정작 언론계에는 부정적 기류가 흐른다. 지난 614일 한국신문협회(회장 홍준호 조선일보발행인)는 문체부에 미디어 바우처법 제정안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일반적으로 바우처는 실질적 금액을 지원하지만 이번 제정안은 언론사에도 국민에게도 직접적 지원이 없다라고 적었다. 별도 예산을 만들어 언론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이미 대형 매체를 중심으로 제공되고 있는 정부 광고비의 배분 기준을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미 정부 광고의 상당 부분을 수주받고 있는 유력 일간지로서는 미디어 바우처 때문에 광고 수입이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후원 상한 액수를 정해둔 것에 대해서도 언론사의 실제 영향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자유경쟁시장 체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라고 한국신문협회는 비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반대 의견을 보였다. 그는 특히 마이너스 바우처 조항을 지적했다. “마이너스 바우처는 사실상 언론사에 대한 징벌이다. 각 언론에 대한 극단적 진영 논리가 작용할 것이다. ‘진보 매체보수 매체의 움직이지 않는 지지자들이 있다. 진영에 속하지 않고 공론의 장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사의 설 자리가 오히려 사라질 수 있다. 이 구조가 정말 좋은 저널리즘을 키울 것인지 확신이 없다.”

 

가짜뉴스를 처벌한다는 목적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가짜뉴스라는 표현 자체가 정치적 수사라고 본다. 여론재판을 통해 허위 조작 정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마음에 안 드는 주장이라도 징벌 대신 논박으로 탈락시키는 게 아름다운 방법이다.” 윤 위원장은 굳이 미디어 바우처를 실험한다면, 연간 1조원 규모의 정부 광고와 미디어 바우처를 연계하는 대신 지자체를 통한 소규모 시범 사업을 수행해보자고 제안했다.

 

윤 위원장의 기우로만 보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언론판은 극단으로 쏠리는 추세다.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맷 타이비는 헤이트:우리는 증오를 팝니다에서 양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언론 지형을 다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친트럼프 매체반트럼프 매체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각 언론과 그 지지자들은 상대를 히틀러처럼 묘사하며, 상대방의 논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언론이 꺼내든 새로운 상술, 정파성

흥미롭게도 타이비는 과거 언론이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주된 덕목으로 내세웠던 것 역시 광고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적는다. 광고주들이 불특정 대중의 반감을 사지 않기를 원했기에 언론에 객관성을 요구했다는 것. 광고가 줄어들자 언론이 꺼내든 새로운 상술이 정파성이라고 그는 본다. 스포츠 중계를 모방해 팬덤을 모으는 정파적 언론, SNS에 정치적 신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언론인이 인기다. 객관성을 옹호하는 이는 도태된다.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뉴욕타임스공공 편집인 리즈 스페이드는 기자 개인의 도덕적·이념적 판단으로 사안을 덜 취재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가 친민주당 성향인데도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의혹을 너무 많이 다룬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기자 개인이 민주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취재 필요성이 있는 사안에 대한 보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SNS에서는 스페이드의 이 발언을 두고 기계적 중립’ ‘거짓 균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드시 언론에 후원해야 하는 돈을 쥐여줬을 때 사람들은 어떤 언론을 택할까. 낙관론자들은 좋은 언론이라고 답한다. 지난 5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대한 국민 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허위정보 사실 검증’ ‘정치인 및 기업 비리 고발등이 후원하고 싶은 기사 유형으로 수위권에 꼽혔다. ‘나의 정치적 입장 대변이라는 답변은 최하위였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무엇이 허위 정보이며, 어떤 정치인의 비리 고발인가라고 묻는다.

 

언론 소비자 처지에서는, ‘가 지지하는 정당에 불리한 정보가 허위 정보이며, ‘가 싫어하는 정치인이나 기업의 비리 뉴스만 선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즉 최하위 순위의 답변인 나의 정치적 입장 대변이 사실은 최상위 순위일 수도 있다. 비관론자들은 지금도 성행하는 누리꾼들의 단체 악플공격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고 언론 재정에 직접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언론과 그 수용자들의 역량은 어느 쪽 전망을 입증하게 될까.

시사인 이상원 기자

 

제발 살려달라”...차량 집회 나온 사장님들의 사연

4개월째 월세가 밀려 아이들 식비를 줄인 스크린야구장 사장, 집 팔아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PC방 사장, ‘망한 가게로 소문날까 울며 겨자 먹기로 문을 여는 호프집 사장 등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른 열대야가 찾아온 714일 밤, 서울 여의도 일대에 사장님들이 모였다. 카페, 치킨집, 호프집, 스크린야구장, 볶음밥집, PC, 코인노래방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자비대위)’는 이날 밤 11시 국회둔치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차량 500여 대로 광화문과 서울시청을 오가며 심야 차량 시위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이들 시위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대대적 단속을 벌였다. 둔치주차장 길목에만 30여 명의 경찰이 배치되고 지나는 사람과 차량들을 일일이 검문했다.

 

시위 참가자들과 경찰이 여의도 곳곳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가운데, 1020분경 형형색색의 가게 홍보 문구와 사진을 두른 다마스 한 대가 서강대교 남단을 향해 왔다. 서울 마포구에서 볶음밥집을 운영하는 이은표씨(55)의 영업용 차량이었다. 급하게 경찰 여럿이 달려와 진입을 막았다. “무조건 막아서 될 일이 아니라니까! 보상을 해준다고 말만 하지 말고 진짜 언제 해줄 건데? 사람 다 죽고 나서 해줄 거야?” 경찰과 기자들 앞에서 이씨는 울분을 토해냈다.

714일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열린 전국자영업자비대위, 거리두기 4단계 조치 불복 기자회견에서 김기홍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실랑이 끝에 밤 1130분 여의도공원 입구에서 심야 기자회견이 열렸다. “해산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 틈에서 경기석 자영업자비대위 공동대표(코인노래방 운영)가 발언했다. “작년 한 해 국가가 영업하지 말라면 안 했고, 시간제한도 참았고, 구청에 가서 감염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확약서도 썼다. 지금 환자가 급증하는 게 자영업자 때문이 아닌데 책임은 왜 자영업자가 지나? 집합금지, 영업제한 했으면 보상을 하라. 최저생계비를 주든가 임대료와 공과금이라도 낼 수 있게 해달라.”

 

매달 500만원씩 적자를 보며 4개월째 가게 월세가 밀려 네 살, 여섯 살 아이들의 식비를 줄인 스크린야구장 사장 김 아무개씨(40), 운영하던 두 곳 중 한 곳은 지난겨울 폐업하고 나머지 한 곳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집을 팔아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PC방 사장 이준영씨(45), 하루 한두 팀 손님이 찾아와도 동네에 망한 가게로 소문나는 게 싫어서 밤 10시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문을 열어둔다는 호프집 사장 임동희씨(35) 등이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세워둔 차량 안팎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PC방 사장 이준영씨는 말했다. “백화점은 이제껏 QR 체크인도 안 했더라고요. 우리는 1년 전부터 다 했는데. 다 같이 힘들면 이해를 해요. 불공평하니까 화가 나는 거죠.” 김기홍 자영업자비대위 공동대표(PC방 운영)는 정부와 언론을 향해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집회 참가자들의 손에는 근조(謹弔)’ 깃발이 들려 있었다.

Tag #코로나19#자영업자#거리두기#방역

글 이은기·주하은 수습기자영상 최한솔 PD

 

최초 강남 대단지, 맥도날드 가맹1···철거만 남은 반포주공의 기록

서울 서초구 반포본동 반포주공 1단지 전경. 서울경관아카이브

한국 최초 대단지 아파트로 꼽히는 반포주공 1단지가 50여년 만에 사라진다.

서울 서초구가 지난 14일 반포주공 3주구 재건축사업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하면서 반포주공엔 이주와 철거 일정만 남았다. 다만 전세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3주구 이주는 3개월 뒤인 오는 9월부터 시작된다. 1·2·4주구는 이미 11월 마무리를 목표로 지난달부터 이주가 시작됐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주가 모두 끝나면 반포주공은 철거된다. 재건축 후엔 1~4주구를 합해 모두 73개동 7400가구 규모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 대부분 5층인 아파트는 최고 35층까지 치솟는다.

 

강남, 한강변, 역세권, 학군. 반포주공은 이 모든 걸 갖춘 입지에 있다. 그만큼 반포주공 재건축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반세기 전 반포주공 건축을 향한 관심 역시 그랬다.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대단지 아파트로, 각 가구엔 서구 입식 생활양식을 적용하면서 면적을 넓혀 중산층을 겨냥했다. 반포주공 재건축이 새로 쓰는 주거사는 처음 건축이 썼던 바탕 위에 있다.

반포본동 주변 한강 수면 지형 변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721123, 197642, 200195, 2019918. 서울시 항공사진서비스

 

한강 공유수면 매립해 올린 3590가구

반포주공은 1970년대 강남개발의 교두보였다. 대한주택공사(주공·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반포주공 계획을 남서울아파트단지란 이름으로 보고했다. 강남의 정체성이 아직 영동(영등포의 동쪽)’에 그칠 때였다. 지금의 반포본동은 버드나무와 갈대밭, 모래밭, 채소밭이 뒤섞인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반포는 그냥 나루터였다.

 

1970~1972년 한강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작업과 동시에 반포주공 건설이 시작됐다. 19718월 착공해 1973158~61, 66~69, 76~86, 94~95동 등 21개동 570가구를 처음 준공했다. 준공 승인이 나기 전 197212월부터 사람들이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 반포주공은 8차례 부분 준공을 거쳐 197412월 전체 3590가구가 완공됐다. 가구 수로는 당시 최대 아파트 단지였으며, 현재도 서울에서 단일 규모로는 단지 면적(56)이 가장 넓다.

197196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반포주공 1단지(남서울아파트) 분양 광고.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반포주공은 한강맨션아파트(1970), 여의도시범아파트(1971)와 함께 중산층 아파트의 효시라고 평가된다. 똑같이 공유수면 매립 공사로 조성한 택지에 건설한 세 단지는 모두 한강을 향해 새로운 삶을 전시했다. 이전 아파트들은 10~20평형대에 그친 데 반해 반포주공은 22평형부터 32·42평형까지 다양했다. 32평형 위아래 두 층을 한 가구가 쓰는 64평 복층형도 있었다. 한국 아파트사에서 복층형을 시도한 첫 사례다.

 

32평 이상 평형대엔 2평 남짓한 식모방을 따로 뒀다. 평균 분양가는 평형에 따라 395만원부터 730만원이었다. 당시 서울 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400원이었다. ·상류층만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었다. 군인들이 많이 입주했고, 서울대학교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교수와 연구원을 위한 사택을 사들였다.

 

논란도 일었다. 197191차 분양광고가 일간신문에 실린 뒤 복층형을 두고 호화아파트란 비판이 나왔다. 애초 92~976개 동으로 계획된 복층형을 2개 동으로 축소했다. 94~952개 동만 원래 계획대로 복층형으로 짓고, 96~97동은 단층형으로 변경했다. 92~93동은 그 옆에 계획한 98~99동을 길게 늘이는 것으로 대체했다. 92~93동이 없는 이유다.

 

반포주공에 형편이 넉넉한 이들만 진입한 건 아니었다. 22평형 1490가구를 이른바 ‘AID차관단지로 공급했기 때문이다. 미국 대외원조기관 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가 제공한 차관으로 지은 아파트란 뜻이다. 이자율이 낮고 상환기간이 길어 저소득층도 입주할 수 있었다. 이번에 관리처분계획이 승인된 3주구가 바로 AID차관단지다.

197611월 당시 반포주공 1단지 전경. 국가기록원

 

판상형·입식 아파트의 시초성냥갑 오명도

반포주공은 아파트 문화의 원형도 선보였다. 아파트 주동이 일자·병렬 형태로 정렬돼 각 가구의 거실은 모두 남쪽을 향한다. ‘남향을 중시하는 풍수사상에 주택 대량생산이란 정치·경제적 목적이 반영된 구조다. ‘성냥갑 아파트란 오명도 얻게 되지만, 반포주공을 전후해 비슷한 판상형 아파트가 대세가 됐다.

 

각 가구엔 아스타일 마감과 라디에이터 난방을 적용했다. 아파트에도 마루와 온돌을 사용한 좌식을 탈피해 입식을 지향한 것이다. 벽체가 아니라 기둥이 건물 하중을 받치는 구조로 지으면서 기둥 사이에 벽돌을 쌓아 방을 나눴다. 벽을 허물 수 있으므로 나중에 많은 가구들이 리모델링을 거쳐 저마다 다른 구조를 갖게 됐다.

반포주공 내 공원과 녹지.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전신) 자료

 

반포주공 계획과 건설을 주도한 주공은 이 과업을 과학적인 종합계획이라고 했다. <대한뉴스 843>(19719)반포단지는 단지의 모든 간선시설인 고온수·전기·상수도를 지하로 설치하기 위하여 공사에서 건설한 주택단지로서는 처음으로 공동구를 시공하였으며 이로 인해 전주(전봇대) 없는 쾌적한 단지가 되었다고 썼다.

 

과학을 강조한 데는 미국 도시계획가 클래런스 페리(1872~1944)근린주구론을 바탕에 뒀다는 의미도 담겼다. ‘생활권에서 공공시설과 편의시설을 편안하게 누려야 한다는 관점이다. 굳이 이론을 빌릴 것도 없이, 백지와 같은 땅에 짓는 단지였기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상가, 국민학교(초등학교), ·고등학교, 교회·성당, 수영장, 파출소·우체국이 들어서고 여러 개의 공원이 아파트 사이사이에 배치됐다.

 

풍부한 녹지 공간과 초··고를 모두 품은 환경은 반포주공이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누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26월엔 한국에서 미국 맥도날드와 직접 계약을 맺은 첫 가맹점 맥도날드 반포점(이전 맥도날드 매장들은 직영점)’이 반포주공 앞 상가에서 문을 열었다. 그 사이 반포주공의 주소지는 영등포구 동작동에서 관악구 동작동(1973)과 강남구 반포본동(1980)을 거쳐 1989년 서초구 반포본동으로 바뀌었다.

16일 반포주공 1단지(3주구)에 재건축사업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주민들이 자축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반포주공 재건축사업은 준공 20년을 넘긴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재건축으로 새로 짓는 가구 수를 기존 가구 수의 1.4배 정도로 제한한 세대밀도 규제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져 추진력을 얻지 못하다가 이 규제가 완화된 2010년 이후 속력이 붙었다. 그 사이 잠실주공(1978)·둔촌주공(1980) 등 반포주공을 뒤따른 대단지 아파트들은 재건축에 착수해 이미 철거됐고, 최고 35층의 새 아파트로 바뀌었거나 조만간 바뀐다.

 

반포주공 2단지(1977) 역시 2009년 재건축을 마치고 유명 브랜드 아파트로 거듭났다. 서울시는 그보다 한해 전인 20089월 그 앞을 지나는 지하철 9호선 역사는 신반포, 반포주공 앞을 지나는 역사는 구반포로 명명했다. 강남개발과 대단지 문화, 중산층 주거 실험에 앞장선 반포주공의 눈으로 보면 많은 것들이 역전된 시간이었다.

 

참고자료

<반포본동: 남서울에서 구반포로>, 서울역사박물관, 2019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박철수, 도서출판 집, 2017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자음과모음, 2011

경향 허남설 기자

 

 

이순신대신 범 내려온다걸자누리꾼 어이없다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독도 표기, 선수단 도시락 문제 등을 둘러싼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특히 선수촌 현수막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

 

19일 일본 한류 전문 매체 와우코리아는 대한체육회가 내건 새로운 현수막에 대해 일본 누리꾼들이 분노를 넘어 어이없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누리꾼들은 범 내려온다라는 글귀가 적힌 새 현수막이 일본이 조선 호랑이를 멸종시켰다는 믿음을 드러낸다고 맹공격을 퍼붓고 있다. 일부는 새 현수막에 독도 표기도 보인다. 현수막 혼란을 틈타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8일 오후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한국 선수단 숙소동에 범 내려온다라는 글귀가 적힌 응원 현수막이 걸려 있다./도쿄=연합뉴스

 

관련 보도에 대한 다른 누리꾼들 반응도 다르지 않다. 한 누리꾼은 한국은 국제규칙과 국제합의 준수보다 반일 정신이 더 우선시되는 나라라면서 이번 선수촌 현수막 건도 올림픽 정신보다 반일 정신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경제 성장은 이룩했을지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일본은 적이라는 반일 사상을 지속적으로 주입한 결과 국민성은 한 발자국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대한체육회는 14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 선수촌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에 이순신 현수막을 내걸었다.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상소를 보낸 것에 착안,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제작했다. 하지만 올림픽 헌장 50조 위반이라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지적에 따라 대한체육회는 17일 해당 현수막을 철거했다.

대한체육회는 14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 선수촌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에 이순신 현수막을 내걸었다. 임진왜란 당시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상소를 보낸 것에 착안,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제작했다. 하지만 올림픽 헌장 50조 위반이라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지적에 따라 대한체육회는 17일 해당 현수막을 철거했다./도쿄=연합뉴스

 

IOC 측은 현수막에 인용된 문구는 전투에 참가하는 장군을 연상시킬 수 있으므로 올림픽 헌장 50조 위반에 따라 철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동을 올림픽 경기장과 시설 등에서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올림픽 헌장에 비춰봤을 때 이순신 현수막은 정치적 선전에 해당한다는 게 IOC 주장이었다.

 

이 같은 IOC 결정에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의 압력이 작용했을 거란 분석이 우세하다. 일본 언론이 이순신은 반일 영웅으로 한국에서 신격화되고 있다며 우리 측 현수막을 문제 삼은 데 이어,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이 정치적 메시지를 삼가야 한다고 발언을 내놓고, IOC가 곧장 철거를 요청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16일 오후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의 한국 선수단 숙소동 앞에서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가 응원 현수막 문구를 문제 삼으며 욱일기를 든 채 시위를 하고 있다./도쿄=연합뉴스

 

문제는 일본 측의 아시타비(我是他非)식 행보다. 대한체육회는 이순신 현수막을 철거하면서 욱일기에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IOC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조직위는 욱일기는 정치적인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경기장 반입 금지 물품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극우 정당도 욱일기를 앞세운 시위를 펼치며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일본국민당은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이 일본에 도착한 19일 선수촌 앞에서 욱일기와 확성기를 동원해 한국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일본국민당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저지르기도 한 혐한 정당이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양국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우리 측 이순신 현수막철수 소식을 전하면서 “1965년 관계 정상화 이후에도 한일 양국은 여전히 긴장 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서울신문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빚투 아들, 폐업 아빠 빚잔치 가족

가계빚 증가세에 취약 연령층 수면 위로

2010.6%코로나 전보다 741명 늘어

50대 이상 신청자 40.9%3829명 증가빚을 갚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한 ‘20‘50대 이상대출자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유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빚이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나는 가운데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 연령층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개인·프리워크아웃, 신속채무조정 같은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은 62977명이었다. 채무조정제도는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에게 이자를 면제해 주고 장기간 분할로 원금을 갚는 등 상환 여력에 맞게 채무조정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올 상반기 전체 신청자 가운데 20대 채무자는 6658명으로 전체의 10.6%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에는 같은 연령대 신청자가 5917명이었고, 전체 신청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0%였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20대의 숫자와 비중이 모두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채무조정 신청이 늘어난 연령은 20대뿐만은 아니다. 50대도 2019년 상반기 14559명에서 올 상반기 16052명으로 채무조정 신청 인원이 늘었다. 전체 신청자 중 50대의 비율도 24.6%에서 25.5%로 증가했다. 60대 이상도 같은 기간 7384명에서 9720명으로 신청 인원이 늘었고, 비중도 12.5%에서 15.4%로 높아졌다.

 

반면 3040대 채무자가 채무조정을 신청한 경우는 숫자와 비율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신청자는 2019년 상반기 13305명에서 올 상반기 12636명으로 줄었고, 비율도 22.5%에서 20.1%로 낮아졌다. 40대도 같은 기간 18050(30.5%)에서 17911(28.4%)으로 신청자가 줄었다. 윤 의원은 “20대와 장년층 채무조정 신청자가 많아진 것은 빚투’(빚내서 투자)의 폐해, 실직과 폐업 등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문제로 특정 연령대에서 더 취약해졌다는 의미라면서 취약 연령층에 더욱 면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채무 조정, 금융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위험노동 거부할 수 없는 사회에서 능력주의란?

'공정성' 따지기 전에 한국 사회 불공정부터 살펴야

요즘 우리 사회를 달구는 핫 이슈가 바로 능력주의와 공정경쟁이다. 치열한 경쟁 판에 갇힌 2030 세대에선 더욱 논쟁적이다. 재빠르게 이슈를 선점한 눈치 빠른 30대 정치인이 당대표로 진입하는 계기를 터준 이슈이기도 했다. 불공정의 역사는 길었으되 공정 이슈는 눈앞 현실이고 보니, 누구도 그 간극을 명쾌하게 정리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포퓰리즘에 이용될 여지가 크다.

 

공정경쟁을 말하려면 불공정의 과정부터 살펴야

능력주의 논쟁을 무색하게 하는 사건들도 넘쳐난다. 화장실 유독가스로 사망한 2명의 조선소 노동자, 옥상에서, 전신주에서 페인트칠하다가 추락한 노동자들,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항만 노동자, 날마다 통계에 잡히다시피 일어나는 총알 배송 택배·배달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들이다. 깔리고 떨어지고 돌에 맞고 질식하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노동 현장의 참극들은 마치 전시 상황과도 같다.

 

문득 의문이 스친다. 이들이 일하는 그 노동 현장은 공정한 환경인가? 목숨을 감수해야만 할 위험 노동을 거부할 순 없었을까? 그렇다. 생존 현장의 그들에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정성 논쟁이 한창인 우리 사회가 서있는 불공정 경쟁의 기반이다. 젊은 청년 김용균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사건에 분노하며 떠들썩했던 것도 잠시였고, 끝없이 이어지는 사망과 사고들 앞에서 그 분노는 다시 사그라지고 있다.

 

공정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2018년 자료에 의하면, 정부의 조세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저소득층의 80.5%가 여전히 저소득층으로 남아 있다. 빈곤 탈출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 회원국의 평균 빈곤 탈출률인 64.1%의 절반 수준에도 한참이나 못 미치는 19.5%로 꼴찌를 기록했다(조세재정 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 국제비교 보고서). 세대별로는 20대 빈곤 탈출률은 11.7%(OECD 평균은 42.7%), 3017.2%(OECD 평균 45.7%)로 우리나라는 좀처럼 빈곤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구조의 사회다. 이처럼 부의 불평등은 단순한 자산 및 소득 불평등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평등 구조로 이어져 출발선 자체를 왜곡해 왔다. 당연히 우월한 경쟁 기반의 계층들이 대를 이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는 구조이고, 그 기회는 다시 부의 왜곡을 심화시킨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우대 제도들은 이런 불공정 기반을 개선하기 위한 분야별 정책 중의 하나다. 가부장제 하에서 법적·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여성의 권리와 사회 참여의 기회를 점차 확대해 공정한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 취지다. 장애인할당제, 지역인재할당제, 청년할당제도 같은 기능을 한다. 지금까지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운영되어 왔는지 여부를 넘어 이 정책들 자체가 불공정한 기반이고 역차별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합리주의를 가장한 난센스다. 능력주의와 공정경쟁에 관한 논쟁에서 이런 제도들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인간 사회에서 모두에게 늘 완전한 공정성이 유지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책적 배려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정·보완해갈 수 있을 뿐이다. 시정하고 보완해가는 과정에는 늘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격차가 따르게 된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조정 당시의 개인들이 불공정을 경험하게 되는 지점이다. 최근의 여성우대 정책들이 논쟁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해당한다. 여성에 대한 불공정한 사회 기반은 고용·경제 상황이 다소 여유가 있었던 산업화 세대에 주로 형성되었다. "불공정 구조를 만든 건 기성세대인데 왜 치열한 경쟁 속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문제를 떠넘기고 강요하는가"라는 지점이 2030세대 남녀 갈등의 핵심인 듯하다. 이처럼 불공정 기반의 수정 과정은 쉽지 않은 문제다.

 

생각해보면, 과거 노예노동으로 엄청난 부를 착취해오던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도 노예제의 폐지를 엄청난 불공정으로 인식했다. 가까이는 얼마 전 떠들썩했던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그랬다. 인국공의 보안검색 요원 직접고용에 대한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가 아니라며 각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불복해 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 역시 인권위 처분이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물론 법적 판단이 모든 문제를 정리해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취업의 문턱이 곧 생존의 문턱이 된 민감한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 잣대가 아닌 이해와 협의 과정이었다. 그 점에서 법정으로 가져가는 빌미를 준 정부에 많은 책임이 있다. 충분한 대화와 논의는 물론이고, 과정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준비도 없이 진행된 명령 하달 방식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드러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공정한 사회로 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체험했다는 점에서는 앞으로 교훈 삼을만하다.

 

한국은 OECD에서도 최악의 불평등 수준에 다다른 '불공정' 국가다. 주류 정치권이 가져간 '공정' 논란 프레임 바깥에서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 불공정이 일상화됐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프레시안(최용락)

 

경쟁 판의 교정 작업, 경쟁 논리로는 가능하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32조에서 근로의 권리와 근로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덧붙여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한다. 이어 제34조에서는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35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환경,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는 개인이 경쟁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 권리임을 명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죽어가지 않을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 권리를 챙겨먹지 못했으니 스스로의 무능을 탓해야 할까?

 

목숨을 걸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일, 오물 등 폐기물을 청소하고 운반하는 노동, 가족조차 견뎌내기 힘든 돌봄 노동, 모두 힘들고 위험하고 위생적이지 않아 피하고 싶은 노동들이다. 그러나 이런 노동 없이 인간은 한시도 살아갈 수 없고, 사회는 굴러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 노동을 더 대우해야 공정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능력주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노동을 당연하게 여긴다.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이미 결정된 그 노동들은 바로 능력 만능주의 사회를 지탱할 기반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되고 위험한 노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들,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대학을 포기하는 젊은이들, 바늘구멍보다 작다는 취업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 다시 결혼과 육아를 포기해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말하는 능력의 기준은 무엇이고 능력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한 능력이고 누구를 위한 능력일까?

 

극단적 소외계층에게 기회를 확대하는 제도는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고 필요한 제도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모두에게 항시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할 수 없어서 그렇다. 국가마다 다양한 복지 정책들은 이런 불평등 구조를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도 세금 혜택을 받는 것도 기부나 적선 행위가 아니라 공존을 위해 끝없이 교정해가는 비용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공정한 사회는 능력주의보다 과정을 이해하는 사회

"미국인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틀렸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밥도 못 먹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학교에도 못 다니는 걸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속 편하게 살 수 있나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에 나오는 대사다. 미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아이슬란드 여성 CEO의 답이다. 능력주의 사회일수록 차별과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 현재의 결과에 대해 온전히 개인들이 책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가부(여성가족부)를 둔다고 젠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통일부를 둔다고 해서 통일에 다가가지 않는다면서 여가부도 통일부도 없애라는 정치인이 있다. 모든 제도를 기능적으로만 이해한 탓에 과정은 무시되고 단기적 결과만을 중시한 근시안적 사고다. 이 사회가 '인간을 위한 사회인지 기능을 위한 사회인지'의 지점에서 헛갈리는 것은 아닐까? 이는 자본주의적 부와 결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모든 조직과 사람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원리와 같다.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다면 날선 비판과 개선책을 제시해야지 존재 자체를 없애라고 한다. 국정 운영에서조차 치열한 경쟁자적 마인드로 임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논리는 그들이 만든 '능력 기준'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들을 계층화하고 퇴출하는 방식에도 적용된다. 가족 제도가 있다고 인구절벽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지금의 가족 제도 역시 당장 해체해야 마땅한가? 필요에 의해 생긴 제도라고 해도 수명이 다하면 언젠가 폐지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제도를 없애버리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단순명료함은 많은 생각이 필요 없으니 자칫 공정해보일 수 있으나 복잡한 인간 사회와 인간의 가치를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지를 가르치고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만약 아이들에게 시험 잘 보는 법을 가르친다면 사실 가르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영화 속 핀란드 수학교사의 말이다. 능력주의와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인 어느 정치인은 그 수학 선생님이 수학은 안 가르치고 엉뚱한 걸 가르치고 있으니 수학과목을 없애고 싶을까? 능력주의가 '인간의 가치' 그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능력주의, 합리성, 효율성은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일 뿐이며, 인간을 넘어서 그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다.

 

삶의 정치를 실현한 공간,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은 나눌 몫이 작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경쟁적인 사회에서는 자신이 감당할 정도의 경쟁 수준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도 없다. 능력주의가 경쟁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피곤함을 무릅쓰고 경쟁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가. 사회를 운영할 제도와 법률을 만드는 정치권, 국회가 고민할 문제들이 태산이다. 그런데 이들이 앞장서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를 부추기고 있어 안타깝다.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을 사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 세 가지로 분류했다.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생존 활동인 '노동'은 전적으로 사적 영역이며, 인간들의 노력으로 인공적 세계의 사물들을 제공하는 제작인의 행위인 '작업'은 유용성이 지배하는 활동이다. 사람들은 이 노동과 작업을 기반으로 인간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인 '행위'를 하며 인간다운 삶을 산다. 보편적 인간(a man)이 아닌 복수의 인간(men)을 전제로 하며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공적 영역에서의 삶이다.

 

아렌트는 근대의 인간이 생존의 필요성에 치우쳐 그에 예속되면서 동물성 유지 이외의 인간성 발휘 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능력주의는 인간의 다원성, 복수의 인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원성을 인정하려면 공론의 장이 필요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시민은 노동과 작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듯이 정치적인 삶은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들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능력이 권력이 되어 좌우를 나누고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정치는 진정한 '정치'가 아니다. '작업'의 영역에 머물러 있거나 먹고살기 위해 경쟁하는 '노동'의 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다.

 

인국공 사태에서처럼 우리 삶이 법정에서 결정되는 방식은 사적 영역인 노동이나 작업의 영역(인간이 만든 법률 등)에 삶을 내맡기는 방식 아닐까? 아렌트에 의하면 복수의 인간들이 서로 문제를 드러내고 공론화하고 활발하게 토론하고 타협해 조정해가는 정치적 활동을 통해 해결할 문제였다. 이런 활동적 삶을 유지하려면 빈 공간이 필요하고 모두가 조금씩 양보할 준비도 필요하다. 바둑판처럼 빈틈없이 짜여 촘촘히 얽혀있는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는 노동·작업의 삶을 넘어 '행위'하는 삶을 살 공간을 만들 수 없다.

 

젊은 세대에게 그런 공간을 내주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기성세대에 있다. 그런 촘촘한 구조에서는 능력주의조차 실현해내기 어렵다. 자신들도 어쩌지 못하는 치열한 경쟁 판에서 공간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폭력으로 인식될 수 있다. 기성세대가 먼저 틈을 내주어야 한다. 북극의 빙하도 한번 갈라지기 시작하면 뱃길이 열리듯이 일단 틈만 생기기 시작한다면 공간으로 이행하기는 쉽지 않을까? /김진희 노무법인 벽성 대표 프레시안

 

올림픽선수촌 혐한시위 주동자의 경악스러운 과거

[김종성의 히,스토리] 일본 극우정당들의 혐한론 수준은 어느정도인가

한국선수단 숙소 앞 '욱일기' 시위 16일 오후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의 한국선수단 숙소동 앞에서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가 응원 현수막 문구를 문제 삼으며 욱일기를 든 채 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숙소 외벽에 태극기와 함께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적힌 문구를 내걸었다. 연합뉴스

 

일본 극우정당이 도쿄 올림픽을 무대로 혐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5일 대한체육회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보고서를 패러디한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현수막을 선수촌 아파트에 게시한 것을 빌미 삼아 벌이는 일이다.

 

극우 정당이자 혐한 정당인 일본국민당이 시위의 선봉에 섰다. 16일에는 당원 6~7명이 욱일기와 확성기를 들고 "한국의 어리석은 반일 공작은 용납할 수 없다""한국 선수단을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일에도 이 당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에서 스즈키 노부유키 대표는 한국 선수단의 식사 문제에 대해서까지 시비를 걸었다. 대한체육회가 선수단 식당을 별도로 꾸린 것을 두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뜬소문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매도했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한국 선수단이 내건 현수막 관련 논란을 보도하는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FNN) 갈무리. FNN

 

혐한 시위 앞장서는 일본 극우정당

1965년생인 스즈키 대표는 서울까지 와서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감행한 극우 행동가다. 20118월 울릉도를 조사한다며 입국한 적이 있는 그는 20126월에 한국에 들어와 그 같은 비정한 일을 저질렀다.

 

그해 619일 그는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에 일장기와 함께 말뚝을 설치했다. 그가 '다케시마의 비()'로 명명한 말뚝에는 철자 틀린 한글로 "타캐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경찰이 말뚝을 제거하자, 그는 끈으로 묶어 고정시켰다. 이 모습은 그가 촬영한 동영상으로 세상에 전파됐다.

2012년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테러'를 한 일본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信行)씨가 19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 나눔의집에 소포로 보낸 '5종보급품'(第五種補給品)이라는 글자가 적힌 용기 속 일그러진 소녀상과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글자가 적힌 작은 말뚝. 2015.5.19 연합뉴스

 

 

그는 이 만행을 무용담처럼 홍보한다. 헤이세이(아키히토) 일왕 때 있었던 이 일을 그는 트위터(@ishinsya) 프로필 란에 "헤이세이 246월에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매춘부상에 '다케시마의 비'를 묶어 한국의 반일여론이 격화됐다"고 소개했다.

본문에 인용된 스즈키 노부유키의 트위터 프로필란. 스즈키 노부유키

 

일본은 이번 올림픽을 어떻게든 잘 치러야 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헌법 제9(전쟁 금지)를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이 공약에는 차질이 생겼다. 그럴지라도 이번 올림픽을 제대로 치러야만 일본의 위신과 위상을 지킬 수 있다.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고, 누구보다도 그것을 배려해야 할 극우세력이 외국 선수단 숙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어느 나라 선수단에 대한 것이든, 잔치를 주관하는 나라의 정치인들이 손님들을 상대로 그런 시위를 벌이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도 올림픽 기간 중에까지 혐한 시위를 벌이는 것은 그들이 한국과의 대결 구도를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극우가 한국을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주의·주장을 들어보면 그 싫어함의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임을 느낄 수 있다.

 

1996년에 유신정당·신풍 도쿄도본부로 출발하고 2017년에 유신정당·신풍에서 분리돼 독자 정당이 된 일본국민당은 2019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의원 2명을 당선시켰다. 이 정당의 강령을 보면 '혐한 전문 정당'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강령 5개 조항 중에서 4개가 어떻게든 한국과 연관돼 있거나 한국인들을 위협할 만한 것들이다.

본문에 인용된 일본국민당 강령. 일본국민당

 

1조는 '일본은 일본 국민이 지킨다'고 선언한다. 이 의미는 '자주헌법 및 자주국방의 확립'이라고 바로 밑에 설명돼 있다. 미국의 개입 하에 제정된 평화헌법을 폐지하겠다,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주국방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조항이다.

 

2조는 '일본을 폄하하는 나라와는 인연을 끊는다(日本めるとは)'고 선언한다. 바로 밑에는 '·한 국교 단절(日韓国交断絶)'이라는 해설이 부기돼 있다.

 

국교가 체결돼 있는 나라와 인연을 끊자는 것은 대개의 경우는 전쟁을 하자는 의미다. 바로 옆이기 때문에 남남처럼 살 수 없는 두 나라의 인연을 끊자는 것은 그런 의미가 되기 쉽다. 더군다나 혐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극우 정당이 국교 단절을 외치고 있으니, 이들이 한국을 얼마나 적대시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세금은 일본 국민을 위해'라는 제3조에는 '외국인에 대한 공적 자금의 지출 폐지'라는 해설이 적혀 있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처우와 직결되는 주장이다. '일본국민이 일본에 긍지를 갖자'는 제4조에는 '역사·전통 문화에 기초한 교육'이라는 해설이 딸려 있다. 침략전쟁 등에 관한 역사 교육을 수정하자는 주장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상상 이상의 혐한 정서

일본국민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보유한 극우세력이 있다. 오사카에 기반을 둔 극우세력이 그들이다. 그들이 주축 세력 혹은 핵심 세력으로 참여한 2012년의 일본유신회, 2014년의 유신당, 2017년의 일본유신회는 각각의 해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54, 41, 11석을 획득했다. 이 정도면 주요 정당이다.

 

2012년 당시의 일본유신회를 대상으로, 이들이 왜 극우세력인지를 설명한 논문이 있다. 2016<한국과 국제정치> 32권 제4호에 실린 조재욱 경남대 교수의 논문 '일본 포퓰리스트 극우정당의 약진과 한계: 일본유신회를 중심으로'가 그것이다.

 

이 논문은 "일본유신회의 영어 당명은 Japan Restoration Partyrestoration은 복고 또는 부활의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패전과 함께 사라진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 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주헌법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평화헌법의 개헌보다는 폐지와 함께 새로운 자주헌법 제정을 내걸고 있으며, 국내총생산 1% 이내인 방위예산 제한을 철폐해 군비증강의 길을 열어놓고 있으며, 심지어 핵무장 등의 독자적인 군사력 행사까지 주장하였다"고 논문은 말한다.

 

일본국민당은 당 강령으로 한국을 자극한 데 비해, 이들은 당 로고를 통해 그렇게 했다. 논문은 "일본유신회는 당 로고에 일본열도를 그려 넣었는데, 여기에 쿠릴열도, 일본명 치시마열도, 센카쿠열도, 독도까지 포함하였다"고 설명한다.

 

국교가 체결된 국가와의 관계를 끊자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국교가 체결된 상대방 나라의 영토를 자기 영토로 표시하는 것 역시 매우 적극적인 적대 표시다. 상대방 영토를 빼앗겠다는 의지의 표현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 대해 노골적 적대감을 표시하는 극우정당들이 지방의회와 중앙의회에 진출해 있는 현실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3년 뒤인 1871년부터 정한론(征韓論)이 본격 대두된 사실을 떠올리게 할 만하다. 19세기판 혐한론인 정한론의 주장자들은 한국을 쳐서 정복해야만 일본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면서 한국에 대한 적대적 여론을 조성했다.

 

정한론이 본격 대두되기 전에 이를 선도적으로 제기한 요시다 쇼인(1830~1859)은 일본이 서양열강의 압박을 막아내려면 조선은 물론이고 만주와 중국까지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지론을 반영하는 것이 "옛날 성시(盛時)와 같이 조선을 공격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고, 북쪽으로는 만주 땅을 손에 넣고, 남쪽으로 타이완과 루손제도를 취하여 일본 땅으로 삼아 더욱 진취의 기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발언이다.

 

일본의 옛날 전성기 때도 한국이 일본에 조공을 바친 적은 없다. 외교관계의 일환으로 예물을 상호 교환했을 뿐이다. 요시다 쇼인은 예물 교환을 조공으로 호도하면서, 그 같은 성시 때의 역사를 복원하자고 주장했다.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을 갖는 것이 현대판 혐한론이다. 혐한론은 단순히 혐오를 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교를 단절하자고 주장하거나 독도를 일본령으로 간주하는 등의 방식으로 한국에 대한 공격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그런 혐한론자들이 경찰의 제지도 받지 않은 채 평화적인 올림픽 무대에까지 출현해 한국 선수단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 세력이 지방과 중앙의회에서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것은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전망케 하는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선수단 숙소 앞 '욱일기' 시위 16일 오후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의 한국선수단 숙소동 앞에서 일본 극우단체 관계자가 응원 현수막 문구를 문제 삼으며 욱일기를 든 채 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숙소 외벽에 태극기와 함께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고 적힌 문구를 내걸었다.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상반기 국내선 항공기 운항 작년보다 26% ↑…국제선은 29%

전체 항공 교통량은 217천대작년 상반기보다 5% 감소

국제선·국내선 항공교통량© 제공: 연합뉴스 국제선·국내선 항공교통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급감했던 항공 교통량이 국내선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 상반기 항공 교통량은 총 217천대(하루 평균 1197)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5% 감소했다고 22일 밝혔다. 다만 이는 지난해 하반기보다는 12% 증가한 것이다. 항공 교통량은 항공기 운영자가 국토부 항공교통본부에 제출한 비행계획서 기준으로 집계됐다.

 

월별로는 4월이 42천 대를 기록해 교통량이 가장 많았다. 일간 단위로는 423(1559)이 가장 많았고, 17(577)이 가장 적었다. 국제선과 국내선의 교통량 증감 추이는 대조를 이뤘다.

 

국제선의 경우 올해 상반기 93천 대(하루 평균 511)가 운항해 지난해 상반기보다 28.5% 감소했다. 국내선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25.8% 증가한 124천 대(하루 평균 685)를 기록했다.

[그래픽] 항공교통량 추이© 제공: 연합뉴스 [그래픽] 항공교통량 추이

 

한편 국제선 교통량 가운데 한국 공역을 통과해 다른 나라로 비행한 영공통과 교통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76.3% 급증한 2만 대(하루 평균 111)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3월 일본으로부터 제주 남단 항공회랑(Corridor)의 관제권을 인수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토부는 한중일 관제권이 얽혀 사고 우려가 컸던 제주남단 항공회랑을 걷어내고 325일부터 새 관제 체제를 운영 중이다. 또 올해 상반기 국토부 관할 8개 공항 관제탑에서 처리한 교통량은 제주 78천 대, 인천 73천 대, 김포 72천 대 순으로 집계됐다.

 

국내선 교통량이 코로나19 발생 전 수준을 회복함에 따라 제주공항과 김포공항 관제탑의 하루 평균 교통량은 429, 398대로 작년 상반기보다 각각 18.6%, 24% 증가했다.

 

이랑 국토부 항공교통과장은 "상반기 항공 교통량은 코로나19 발생 전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지만, 국내선 위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국내선 교통량은 코로나19 발생 전 수준을 넘어서는 등 교통량이 급증하고 있어 꾸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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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