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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양어장을 탈출한 송어

by 이성근 2021. 7. 13.

양어장을 탈출한 송어는 뇌가 커진다

복잡한 환경서 먹이 사냥하느라 7개월 만에 15% 커져계절별로도 뇌 크기 변화

무지개송어는 뇌의 크기를 환경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호수의 양식장에서 때맞춰 정해진 규격의 사료를 제공받던 무지개송어가 폭풍으로 그물이 터지면서 갑자기 야생으로 풀려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캐나다 온타리아주의 휴런 호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드문 자연 실험장을 제공했다.

프레데릭 라베르주 캐나다 겔프대 교수 등은 이 실험결과를 바이오 아카이브에 보고하고 야생에 간 지 7달 만에 무지개송어의 뇌 크기가 15%나 커졌다고 밝혔다. 바이오 아카이브는 정식 출판 전 사전심사를 거치지 않은 온라인 논문공유 서버이다.

규칙적으로 먹이가 공급되는 양식장에서 송어는 뇌의 크기를 키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연합뉴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생으로 간 무지개송어는 단조로운 그물망이 아닌 복잡한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 또 규칙적 사료가 아니라 잘 위장하고 죽어라 도망치는 먹이를 사냥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뇌가 커진 부위는 후각 망울 등 뇌 앞쪽에서 먹이의 냄새를 맡고 추적할 때 필요한 부분이라며 이번 연구는 어류의 뇌 크기가 단기간의 필요로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는 유연성을 지녔음을 야생에서 증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탈출한 송어 가운데서도 양식장에서 먼 곳에서 잡은 개체일수록 상대적으로 뇌가 더 컸다. 연구자들은 두뇌가 큰 송어가 새로운 환경으로 퍼져나가는 데 더 적합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야생으로 탈출한 무지개송어는 이것저것 생각 거리가 많아졌고 뇌의 크기도 이런 필요에 따라 커졌다. 윌프리드 코페르츠키, 픽사베이 제공.

 

양식장을 벗어난 송어는 물 위에서 던져주는 사료가 아니라 호수 바닥에서 살아있는 먹이를 사냥해야 했다. 위 내용물을 조사한 결과 송어는 주로 잠자리 애벌레나 날도래 애벌레 등 저서 무척추동물을 잡아먹었다.

이들은 복잡하고 낯선 환경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데 필요한 인지능력을 키우기 위해 두뇌가 단기간에 커졌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두뇌의 신경조직은 유지에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드는 장기라며 어류를 비롯해 양키·파충류와 일부 포유류도 필요에 따라 두뇌 크기를 줄이거나 키우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휴런 호의 무지개송어 양식장이 폭풍으로 파괴돼 수만 마리의 송어가 풀려나가는 사건 때문에 가능해졌다. 마이크 앤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연구는 2018년 가을 휴런 호에 강력한 폭풍이 몰아쳐 무지개송어 양식장의 그물이 터져 수만 마리의 성체 송어가 탈출한 사고가 계기가 됐다. 연구자들은 양식장 밖 송어가 탈출한 개체인지 아닌지를 지느러미의 마모 정도,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먹이 차이, 크기, 성별 등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단기간에 형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생태계 안정에 기여한다. 연구자들은 최상위 포식자가 기동력 있게 적절한 먹이를 찾아 먹이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먹이 종을 포함한 생태계를 안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북미에 서식하는 연못송어 그림. 사냥철에 뇌가 커졌다 활동이 둔해지는 계절엔 줄어든다. 네프 티머시,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관리청 제공.

 

한편, 라베르주 교수는 다른 연구팀과 수행한 별도의 연구에서 여러 해 동안 북미의 연못송어를 조사한 결과 계절별로 뇌 크기가 변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찬물을 좋아하는 이 송어는 가을과 겨울 동안 호수 가장자리나 표면에 나와 활발히 사냥하고 봄·여름에는 호수 바닥에 머무는데 가을·겨울에 상대적으로 뇌가 커졌다 봄·여름에는 줄어들었다.

인용 논문: bioRxiv, DOI: 10.1101/2021.06.17.44882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붕어 기억력? 놀래기는 11달 전 기억한다

야생 청줄청소놀래기 확인연어·잉어도 죽을 뻔한장기 기억 간직

포식자인 곰치의 입에 들어가 기생충과 죽은 피부 등을 떼어먹는 청줄청소놀래기. 거울 테스트 통과에 이어 장기 기억력이 있음이 확인됐다. 실크 배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붕어의 기억력은 3라는 속설이 있다. 미끼를 물었다 낚싯바늘에 혼이 난 붕어가 금세 또 미끼를 문다는 얘기다. 이런 속설이 근거 없다는 연구는 적지 않다. 최근 야생에서 청소놀래기가 11개월 전 일을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제그니 트리키 스위스 뇌샤텔대 생태학자 등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보초에서 다른 연구 목적으로 외딴 산호초의 청줄청소놀래기를 채집했다. 다이버 한 명은 그물을 잡고 다른 한 명이 놀래기를 몰아 그물에 걸리게 하는 방식이었다.

 

청소놀래기는 포식자 물고기의 입이나 아가미 속을 자유자재로 들어가 기생충을 잡아먹는다. 다이버의 입에 들어오기도 할 만큼 다이버를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듬해 연구자들이 다시 놀래기를 그물로 잡으려 하자 절반이 산호 틈에 숨어 나오지 않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그물을 치웠더니 다시 나타났다. 산호초의 다른 지점 4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포획을 시도했을 때 이런 도피 행동은 나오지 않았다.

청소놀래기는 청소 터를 찾는 포식자를 일일이 기억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영역을 중시하는 청소놀래기의 습성에 비춰 이들이 11달 전 그물에 걸렸던 나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과학저널 동물행동학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장기 기억은 동물의 생존에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환경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저장했다 꺼내는 일은 생존과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인간 동물 가운데 이런 장기 기억 능력이 확인된 동물이 적지 않다. 그 기간이 작은 새인 명금류는 83, 하이에나 1, 원숭이 3, 코끼리와 돌고래는 수십 년에 이른다.

물고기 가운데서도 학습과 기억 능력이 잇따라 확인된다. 무지개송어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먹이를 얻으려면 단추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3달 뒤에도 기억했다. 이웃 웅덩이로 옮겨진 망둥이는 자기가 살던 웅덩이를 기억해 40일 뒤에 돌아갔다.

이번 청소놀래기처럼 죽을 뻔 한 나쁜 기억은 단 한 번이라도 오래 간다. 낚시에 걸린 연어와 잉어가 1년 뒤에도 바늘을 꺼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소 서비스를 받는 물고기와 일종의 사회 계약을 맺는 청소놀래기는 자기 인식 테스트로 통과했다. 닉 홉굿,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청줄청소놀래기는 최근 거울 테스트를 통과해 자기 인식 능력이 있는 동물로 평가됐다(관련 기사: ‘거울 볼 줄 아는청소 물고기, 침팬지만큼 똑똑한가).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 이외의 동물은 침팬지 등 유인원을 비롯해 코끼리, 돌고래, 까치 등 소수이다.

청소놀래기는 청소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정한 장소에서 하루 수십 마리의 고객물고기를 상대로 기생충을 잡아먹거나 죽은 피부를 청소한다. 놀래기는 대형 물고기와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신상정보를 기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Zegni Triki, Redouan Bshary, Long term memory retention in a wild fish species Labroides dimidiatus eleven months after an aversive event, Ethology, DOI: 10.1111/eth.129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추운 곳 새알은 왜 짙은 색일까

짙은 색 알일수록 느리게 식고 빨리 더워져

혼인 깃털로 장식한 북극 퍼핀. 추운 지방의 새일수록 짙은 색의 알을 낳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리처드 바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한여름 손에 쥔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보다 빨리 녹아내린다. 짙은 색이 열을 더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체온이 환경에 따라 바뀌는 변온동물에게 열을 얼마나 잘 흡수하는지는 생사가 달린 문제다. 그래서 고위도로 갈수록 도마뱀의 색깔이 짙어진다.

새의 알은 온혈동물의 배아이지만,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만 살아남는다. 처지가 도마뱀과 비슷한 새알도 추운 지역일수록 알껍데기의 색깔이 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출된 땅 위에 낳은 북극 제비갈매기의 알. 알껍데기의 색깔이 짙어야 부화온도를 유지하기 쉽다. 브루스 매캐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필립 위소키 미국 롱아일랜드대 생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분류군을 포괄한 새 634종을 대상으로 알껍데기의 밝기와 색깔을 정량화해 번식지의 지리적 위치와 비교했다.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알껍데기의 색소는 열 조절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도마뱀처럼 새 알도 추운 지역일수록 색깔이 짙다고 밝혔다.

추운 지역에서도 둥지 형태가 컵이나 구멍보다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는 알껍데기일수록 색깔이 짙었다. 연구자들이 닭, 오리, 메추라기 등의 알을 대상으로 야외에서 한 실험에서도 짙은 색깔의 알이 옅은 알보다 부화 적정온도를 더 오래 유지했고, 외부환경 온도에서 더 빨리 데워졌다.

다양한 색깔의 새 알. 고위도의 새일수록 열 조절이 쉬운 짙은 색의 알을 낳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알의 색깔은 흰색 탄산칼슘 표면에 청록 색소와 갈색 색소가 각각 얼마나 많이 발현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제까지 알 색깔을 좌우하는 요인은 포식자 회피, 해로운 자외선으로부터 배아 보호, 껍데기의 강도 보강, 부모의 알 찾기 등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이 가운데 포식압은 알 색깔의 가장 강력한 선택 압력이라며 그러나 추운 환경에서는 온대나 열대보다 포식자 위협이 훨씬 적다고 밝혔다. 오히려 추운 곳에서는 알이 부화온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가까운 먹이터를 정해 자주 들락거리게 된다. 이 때문에 극지방의 어미 새는 온대에 견줘 최고 50% 에너지 소비가 많고, 열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알껍데기의 짙은 색 같은 형질이 중요하게 된다.

대조적으로 포식자가 많은 따뜻한 지역에서 어미 새는 알의 온도 유지보다는 포식자의 눈길을 끌지 않기 위해 둥지에 드나드는 빈도를 줄인다. 연구자들은 더운 지역에서는 온도 조절 말고도 포식자 회피 같은 다른 중요한 선택 압력이 알껍데기의 색깔을 정하는 데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조류의 알 색깔 분포.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짙어진다. 필립 위소키 외 (2019)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제공.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hillip A. Wisocki et al, The global distribution of avian eggshell colours suggest a thermoregulatory benefit of darker pigment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 https://doi.org/10.1038/s41559-019-1003-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해발 6739m’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동물 발견

 

칠레 유야이야코 화산 정상에서 생쥐 서식

유전자 분석 결과 노랑엉덩이잎귀쥐 확인

산소는 해수면의 절반 이하, 극단적 일교차

먹이도 오리무중한계 극복법 연구과제

고도뿐 아니라 서식 범위도 세계 최고 기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사는 것으로 밝혀진 노랑엉덩이잎귀쥐. 마르키알 키로가-카르모나 제공.

 

산소가 희박한 데다 극도로 건조하고 먹을 것이 없는 고산지대에도 포유류가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제이스토르스 미국 네브래스카대 생물학자 등 미국과 칠레 연구자들은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유야이야코 화산 꼭대기(해발 6739m)에서 포획한 생쥐가 유전자 분석 결과 노랑엉덩이잎귀쥐로 나타났다고 13바이오 리시브에 밝혔다. ‘바이오 리시브는 미발간된 생물학 분야의 연구를 동료 비평을 듣기 위해 미리 공개하는 누리집이다.

 

이로써 이 생쥐는 지구에 사는 포유동물 가운데 가장 높은 고도에 서식하는 종이 됐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으로 작은 포유류가 얼마나 높은 고도에서 생리적인 한계를 극복해 살 수 있는지를 우리가 얼마나 과소평가했나 알 수 있다그 이유는 단지 생물학자들이 세계 최고봉을 거의 탐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실제로 유야이야코 정상에서 이 생쥐를 처음 목격한 것은 2013년 등반대의 대원이었다. 당시는 정상 눈 위에 있는 생쥐의 사진을 찍었을 뿐이었다. 이번 연구는 그것을 생물학자들이 확인한 셈이다.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 접경지역에 있는 유야이야코 산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 인접해 있다. 제이 스토르스 외 (2020) ‘바이오 리시브제공.

 

유야이야코 산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으로 극한적인 환경이 화성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산소는 해수면의 절반 이하이고 극도로 건조한 데다 온도의 일교차가 극단적으로 심하다. 겨울에는 영하 51도까지 떨어지고 연평균 기온은 영하 15도이지만, 햇살이 내리쪼이는 토양 표면은 32도까지 올라 하루 중 온도 차이 69도에 이른다.

연구자들은 지난달 이 화산을 등정했는데 해발 4620m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정상까지 조사하면서 480개체의 고산 생쥐를 포획했다. 특히 연구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정상에서 발견된 노랑엉덩이잎귀쥐가 해수면 높이에서도 서식해, 고도에서뿐 아니라 서식 범위에서도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유야이야코 산 정상에서 노랑엉덩이잎귀쥐를 포획한 지점(네모). 제이 스토르스 외 (2020) ‘바이오 리시브제공.

 

그렇다면 이 생쥐는 어떻게 이런 고산에서 살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유야이야코 산에서 식물이 분포하는 한계는 정상보다 2000m 이상 아래라면서 이 생쥐가 무얼 먹고 사는지, 어떻게 저산소와 추위를 견디는지 등은 후속 연구과제라고 밝혔다. 산 정상에는 식물이 전혀 없지만, 지의류가 일부 분포하고, 소량이지만 마른 풀잎 등이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이번 발견으로 포유류가 어느 고도까지 생리적, 생태적 한계를 이기며 살 수 있는지에 관한 통념을 깬다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도 한때 생각한 것처럼 생명체 없는 삭막한 곳은 아니다라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저널: bioRxiv, DOI: 10.1101/2020.03.13.98982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속임수 쓰는 돼지 봤어?우리가 몰랐던 돼지의 인지능력

밥 주는 사람, 실험실 연구자 구별먹이 뺏길까봐 강자 속이는 전략도

고기, 산업 부산물 연구만 하다 간과, 침팬지, 돌고래와 인지능력 비슷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 돼지. 돼지의 인지능력이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실험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돼지가 재발견되고 있다. 고기 생산과 의학·산업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돼지란 동물 자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동물행동학과 비교심리학 분야의 연구 성과는 우리가 몰랐던 돼지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돼지는 개나 어린아이 비슷한 인지 능력이 있다. 자의식이 있고 창조적 놀이를 즐기며 감정을 겪는다. 우리와 그리 다를 게 없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

 

우둔하다는 건 편견똑똑한 장난꾸러기

도시 생활을 마치고 올해부터 경북 봉화에서 자연 양돈을 시작한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는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임시 축사의 철망 밑으로 돼지 다섯 마리가 빠져나간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산이나 남의 밭으로 달아나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자, 밥 주는 사람 알아보고 개처럼 졸졸 따라오더라.”

그는 직접 돼지를 기르면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동물이구나’ ‘바라보는 눈빛이 기르는 개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돼지는 가축화하면서도 집단생활을 하던 야생 멧돼지의 형질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크 피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문홍길 농촌진흥청 양돈과장은 오랫동안 실험실에서 같이 지낸 돼지는 다가와 주둥이로 찌르고 슬쩍 깨물며 장난을 치는 등 반려견처럼 행동하곤 했다고 말했다.

늑대는 가축화로 개가 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사람에게 친화적인 형질을 선택한 결과다. 그러나 약 9000년 전 중국과 중동에서 각각 가축화한 돼지는 빨리 자라고 잘 번식하는 형질 중심으로 육종했다. 그 결과 행동·인지·사회성 등은 야생 멧돼지의 형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연구진이 돼지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지 실험하고 있다. 돼지는 얼굴과 뒷모습뿐 아니라 입과 눈 등 얼굴의 특징도 알아봤다. 원드락 외 (2018) ‘응용 동물행동학제공.

 

발굽 동물인 돼지의 손 구실을 하는 가장 예민한 감각기관인 코가 그런 예다. 사료를 먹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돼지는 개보다 냄새를 더 잘 맡는다. 유전체 분석 결과 돼지는 개보다 더 많은 후각수용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무리 생활하는 멧돼지와 마찬가지로 돼지는 예민한 후각으로 먹이 찾기는 물론 다른 돼지와 사회적, 성적, 감정적 교류를 하고 위계질서를 형성한다.

 

냄새보다 시각으로 소통

그러나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은 냄새보다 시각이다. 마리안 원드락 등 오스트리아 빈대 수의학자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방목해 기르는 돼지 33마리에게 컴퓨터 화면으로 처음 보는 여성 10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각각을 구별하는지 알아봤다. 놀랍게도 31마리가 얼굴이나 머리 뒷부분을 보고 사람을 구분했다. 일부는 눈과 입 등 얼굴 특징도 가려냈다. 과학저널 응용 동물행동학최근호에 실린 이 논문은 돼지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통념을 뒷받침한다.

돼지는 돌고래나 침팬지처럼 특정 사물을 가리키는 제스처나 말을 알아듣는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심리학자들은 돼지에게 공, 프리스비, 아령 등 3가지 물체와 가져와, 앉아, 뛰어 등 3가지 행동을 가리키는 말을 들려주며 훈련했다. 돼지는 이들 각각을 구분해 알아들었을뿐더러 공 가져와처럼 이들이 결합한 말도 알아들었다.

비좁고 지저분한 공장식 양돈장에서 돼지의 본성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는 사회성 등 뛰어난 인지능력이 드러난다. 클립아트코리아

 

돼지가 우둔하다는 편견을 깨는 행동도 관찰됐다. 침팬지나 까마귀는 동료에게 먹이를 빼앗길 것 같은 상황에서는 먹이가 숨겨진 곳을 알면서도 짐짓 엉뚱한 곳으로 상대를 유인하는 속임수를 쓴다. 돼지도 이런 전략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일련의 연구로 드러났다. 먹이 정보를 사전에 아는 돼지는 처음 온 강자가 가까이 있으면 일부러 먹이로부터 먼 곳으로 방향을 바꾸는 경향이 있다. 지배적 돼지도 무작위로 먹이를 찾는 게 아니라 정보가 있는 돼지를 따라다니다 결정적 순간에 빼앗는 손쉬운 전략을 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개보다 영리한 침팬지가 이 능력에서는 개에 못 미친다. 사람이 무엇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침팬지는 손가락 끝을 보지만 개는 주인의 의도를 눈치채고 물체를 본다. 돼지는 개처럼 손가락이 가리키는 물체에 주목했다.

 

동물이 자의식이 있는지 알아보는 유명한 거울 실험이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지 알아보는 이 실험을 통과한 동물은 침팬지, 오랑우탄, 돌고래, 아시아코끼리, 큰돌고래, 범고래, 까치 등이다.

도널드 브룸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자의 실험에서 돼지는 일단 이 실험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거울에 비친 상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돼지 8마리 가운데 7마리가 벽 뒤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울에는 비치는 먹이통을, 거울 반대쪽으로 가 찾았다. 한 마리만이 거울 뒤에 밥그릇이 있나 기웃거렸다.

조이스틱을 조작해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는 능력에서 돼지는 개보다 윗길이다. 셰리 퍼거슨 미국 식품의약청 과학자 등 연구자들은 돼지가 손잡이를 일정 시간 발굽으로 누르면 먹이를 보상으로 주는 실험을 했다. 발굽이 자꾸 미끄러지자 돼지들은 주둥이를 대신 사용해 손잡이를 눌렀다. 돼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했고, 난관을 유연하게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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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비하는 시간관념까지

돼지의 인지능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이밖에도 많다. 장기 기억력이 있고 시간관념이 있어 미래를 대비한다.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다양한 놀이를 즐긴다. 다른 돼지의 감정 상태를 느껴 공감하고 저마다 개성이 있다. 2015국제 비교심리학 저널에 유명한 생각하는 돼지논문을 쓴 신경과학자이자 공장식 축산 돼지의 피난 센터 사업을 벌이는 로리 마리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돼지는 개, 침팬지, 코끼리, 돌고래, 그리고 심지어 사람 같은 고도의 지적인 동물과 인지능력의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우리가 돼지와의 총체적 관계를 다시 생각할 과학적 증거는 넘친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새들이 먹는 곤충, 인류 고기 소비량 맞먹어

6000여 종이 연간 세계서 45t 잡아먹어

해충 제거 효과 탁월, 과소평가된 생태계 서비스

땅강아지를 사냥한 후투티. 새들이 잡아먹는 곤충의 양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봄부터 초여름까지 어미 새는 새끼에게 부지런히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과 절지동물을 잡아 먹인다. 그 메뉴엔 딱정벌레, 파리, 개미, 거미, 진딧물, 메뚜기, 귀뚜라미 등이 오른다. 많은 새가 숲 속에서 수많은 벌레를 잡는다. 새들이 사라지고 해충이 들끓고 나서야 우리는 새들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는지 안다.

 

그렇지만 과연 새들은 얼마나 많은 곤충과 절지동물을 잡아먹을까. “새들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는 대개 보이지 않고 과소평가됐다고 믿는 동물학자들이 기존 연구를 활용해 정량화 작업을 했다. 마틴 니펠러 스위스 바젤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오브 네이처’ 9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조류가 얼마나 많은 곤충을 잡아먹는지를 다룬 103개 과거 연구를 바탕으로 연간 그 양이 지구 전체로 45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열대림, 온대림, 농지 등 7가지 생물군계별로 곤충 포식량에 해당 면적을 곱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숲에 사는 새들, 특히 새끼를 기를 때 새들은 많은 곤충을 잡는다. 모리스 베이커 제공

 

지구에는 1700종의 조류가 산다. 이 가운데 적어도 한때라도 곤충을 잡아먹는 조류 6000여종이 연구대상이다. 집계 결과 새들이 연간 세계적으로 먹는 곤충과 절지동물의 양은 45t(연구자들은 4t에 더 가까울 것으로 본다)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인류의 연간 육류·생선 소비량 4t과 비슷한 수치다. 니퍼러는 2017년에도 세계의 거미가 잡아먹는 곤충의 양이 연간 48t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관련 기사: 지구 최대 포식자는 거미, 연간 곤충 등 8억톤 먹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연구에서 흥미로운 건, 새의 생물량이 잡아먹는 곤충의 양에 견줘 매우 작다는 사실이다. 새들은 날기 위해 몸이 가볍고 호흡량이 많아 체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먹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곤충을 먹는 새들의 생물량이 세계적으로 300t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거미 2500t이나 개미 28000t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그런데도 잡아먹는 곤충의 양이 비슷하다는 건, 새들로서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곤충을 없애는 효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말벌을 잔뜩 잡아 문 녹색제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곤충을 먹는 양의 4분의 3은 산림 조류가 차지했다. 그만큼 새들이 숲에서 곤충을 조절하는 효과가 크다는 방증이다. 니퍼러는 곤충을 먹는 세계의 새가 소비하는 에너지는 거대도시인 뉴욕시 수준이다. 새들은 이런 에너지를 잠재적으로 인류에게 해로운 곤충과 절지동물 수십억 마리를 잡아먹으며 얻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쥐, 유인원, 땃쥐, 고슴도치, 개구리, 도롱뇽, 도마뱀 등도 곤충을 많이 잡아먹고, 특히 도마뱀이 열대림에서 차지하는 기여도가 높지만 새들만큼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새들이 하는 생태적 기능은 위협받고 있다. 니퍼러는 새들을 위협하는 요인은 산림 벌채, 집약농업, 제초제 살포, 길고양이에 의한 포식, 인공 구조물과 충돌, 빛 공해, 기후변화 등 많다. 이런 위협을 하루빨리 제거하지 않는다면 해충 억제라는 새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핵심적인 생태계 서비스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Nyffeler, M. et al (2018). Insectivorous birds consume an estimated 400-500 million tons of prey annually, The Science of Nature DOI: 10.1007/s00114-018-1571-z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