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사람들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 김홍모, 김성희, 김수박,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보리 |2012.01
목차
용산참사, 그 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땅따먹기_김수박
니 편한 세상_유승하
그 길 옆에_심흥아
중3동 여자들_이경석
갈 곳이 없다_김홍모
꿈결 같은_김성희
끝나지 않은 용산, 폭력의 시간을 멈추자
시민단체 안내
출판사 서평
용산참사 그 후, 철거민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 있다
《내가 살던 용산》에 이어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두 번째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다섯 명이 목숨을 잃은 크나큰 사건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3년째다. 용산참사로 실형을 받은 철거민들은 여전히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고 유가족들의 아픔 또한 씻어지지 않았다. 평범하기만 하던 우리 이웃들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오손도손 지내던 집을 잃었다. 서로 의지하고 기대던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다. 집을 뺏은 자들은 집과 가족을 빼앗긴 이들을 ‘떼쟁이’라고 매도한다. 평화로운 도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도시를 새롭게 바꾸는 정책, 재개발. 화려한 도시는 철거민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다. 용산 남일당, 홍대 두리반, 명동 마리……, 언젠가 내가 살던 고향에까지 재개발은 뻗쳐 올지도 모른다. 철거민들의 시간은 그날 새벽에, 그대로 멈춰 있다. 용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느덧 3년, ‘망각하기 바쁘다’
도시를 재개발하면 낡은 도시가 새롭게 바뀐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치워진다. 전광석화처럼 몰아붙이던 재개발과, 살인적인 용역 폭력, 게다가 경찰의 비호까지 합쳐져 용산참사가 일어나자 사람들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숨을 앗으면서 이루어지는 이 청소가 과연 옳은가? 무차별하게 일어나는 개발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용산참사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슬그머니 고개 숙이고 있던 재개발은 곳곳에서 다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일산 덕이동, 성남시 단대동에서는 용산참사가 있기 전부터, 용산구 신계동과 부천시 중3동, 동작구 상도4동은 용산참사가 있을 즈음부터 강제철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의 삶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바뀐다. 용산에서처럼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철거민들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게 울려퍼지지 않는다. 또 다른 용산에서, 더 많은 곳에서, ‘재개발’이라는 주문에 따라 집들은 스러져가지만,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외치는 ‘대책 없이 내쫓지 말라’는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일뿐이다.
만화가 ‘여섯 명’이 다시 모였다
왜 이런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왜 철거민들의 삶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을까? 평범한 사람들의 집을 빼앗고 죽음으로까지 몰고가는 ‘재개발 제도’와 ‘강제철거의 현실’을 근본부터 살펴보기 위해 《내가 살던 용산》을 그렸던 작가들을 주축으로 만화가 여섯 명이 다시 마음을 모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에 대해, 4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온 재개발의 역사에 대해, 철거를 둘러싼 정책과 행정기관의 태도에 대해, 철거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무지막지하게 벌어지는 용역들의 폭력에 대해, 철거민의 시선으로 모든 것들을 파헤친다.
또 다른 용산을 막기 위해, ‘기억하는 일은 힘이 세다’
- 《떠날 수 없는 사람들》본문 내용 소개
땅따먹기_김수박
100여년 전, 헨리 조지는 사회 전체의 부는 증가하는데, 가난한 사람은 왜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답을 ‘토지 문제’에서 찾았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의 성과물이 ‘내 집 마련’에 모두 귀속되는 이 사회에서, 혹시 우리는 ‘내 집 마련’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닐까? 도시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집’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준다.
니 편한 세상_유승하
‘용산구 신계동’은 2008년 여름부터 철거를 시작해, 그곳에 살던 세입자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그 뒤, 가진 것 없어도 오손도손 살던 사람들의 집터는 e-편한세상으로 바뀌었다. 철거 용역의 협박과 폭력에도 꿋꿋이 버티며 자리를 지켜 오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그 길 옆에_심흥아
‘고양시 덕이동’ 길 옆에는 김명자 씨와 세 딸이 5년째 천막 생활을 하고 있다. 김명자 씨는 용역들의 폭력에 팔이며, 다리며, 귀까지 성한 데가 없다. 유도 선수로 고양시를 대표해 메달까지 딴 명자 씨의 큰딸은 강제철거를 막다가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다.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는 경찰에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철거민들의 인권 실태를 엿볼 수 있다.
중3동 여자들_이경석
‘부천시 중3동’은 민영개발로 철거가 시작됐다. 힘겹게 잡은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기게 된다. 주민들은 조합과 용역 뒤에는 대기업 건설사 있고, 경찰과 시청 공무원은 민영개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뒷짐만 진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대기업이나 공무원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 사람들은 엄마와 딸 사이처럼 각별하게 지내던 집주인들이었다.
갈 곳이 없다_김홍모
처음으로 순환식 재개발이 시행됐던 ‘성남시 단대동’에는 강제철거를 하러 나온 용역들이 철거민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저질렀다. 그 뒤로 많은 이들이 떠나가고 단 세 가구만 남았다. 용산 망루에서 함께 연대했던 단대동 철거민 대책위 위원장 김창수 씨는 실형 4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고, 남은 가족과 아주머니 두 분이 남아 천막 생활을 하며 그곳을 지키고 있다.
꿈결 같은_김성희
‘동작구 상도4동’은 땅 대부분이 지덕사(양녕대군 사당을 모시는 후손들이 세운 재단법인) 소유다. 이곳에는 무허가 가옥주와 세입자들 300가구가 살고 있었다. 2004년에 주택재개발 지역으로 재개발이 시작됐지만, ‘무허가 건축물 소유자는 토지 소유자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지금은 재개발구역 지정이 취소됐다. 남아 있는 상도4동 주민들은 민영개발이 아니라 재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공공재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추천하는 글
“가면의 진실 속으로 거침없이”
두리반에서 철거농성을 할 때였다. 기자가 찾아왔다. 기자는 두리반을 열 때 얼마가 들었냐고 물었다. 건설사가 제시하는 배상액은 얼마였냐고 물었다. 기자의 물음은 후졌다. 그 기자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찾았다. 해고되기 전 급여가 얼마였냐고 물을까. 해고될 때 사측은 얼마를 제시했냐고 물을까. 해고는 살인이라는 그 현실 명제 앞에서 복직 외에 도대체 어떤 물음을 던질 수 있을까.
후진 물음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니, 철거민을 양산하는 재개발사업 주체한테 물어야 한다. 생계터전을 강탈하는 살인 행위에 어떤 정당성이 있는가?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와 건설사는 공공성의 가면을 쓰고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수익성에 목적을 두었기에 재개발은 길을 잃었다. 용역깡패를 동원해 철거민들을 가차 없이 두들겨 팬 것도, 기존의 생명을 고려하는 개발 대신 고층 건물 위주의 개발을 지향한 것도, 소형 평수나 임대아파트 대신 대형 평수만을 고집한 것도 오로지 수익성에 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공공성을 앞세운 가면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와 건설사의 수익성 놀음을 철거민의 시선으로 기막히게 파헤치고 있다. 생계터전의 강탈이야말로 살인임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유채림 두리반 철거민, 소설가
“사람들은 망각하기 바쁘다”
영화사 소개가 끝나면 시작하고, 제작진 이름이 올라가면 끝나는 영화와 달리, 우리가 사는 현실은 늘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그전부터 쌓여 온 무언가 위에 서 있고, 극적인 일을 겪었다고 해서 갑자기 끝나지 않고 그저 다른 국면으로 변할 따름이다. 계속 관심 기울이기에는 다른 이슈가 늘 오는 세상 속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싶으면 망각하기 바쁘다.
언론과 여러 논의에 오르는 철거민의 비극이 특히 그렇다. 큰 사고와 함께 주목을 받고, 한동안 시끄럽다가, 그럭저럭 다시 묻힌다. 하지만 현실의 그 자리에는 여지없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사람들이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관심 한 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전부가 걸려 있기에, 그들은 떠날 수 없다. 이 책은 2009년 용산참사를 다룬 《내가 살던 용산》의 후속권이지만, 단순한 속편이 아니다. 앞서 늘 존재했던 땅 소유와 개발논리의 근본적 모순, 개발 과정의 절차와 문제, 관심에서 가려진 철거 항의자 인권 유린, 다른 철거민 동네의 싸우는 사연 취재기, 그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 등이 있다. 물론 용산 그 사람들의 법정 싸움으로 다시 상처받는 그 후 이야기도 있다. 땅따먹기 놀이의 절묘한 비유로, 철거민들을 취재하며 둘러보는 동네 곳곳의 풍경으로, 비극적 사건 속에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연달아 엮이는 연출로 보여 준다.
이 책은 쉽게 답을 던져 주지 않는다. 다만 철거 문제가 찰나의 비극적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생겨날 수 있는 사회적 모순의 단면임을 직면시켜 주고, 함께 느끼며 고민하자는 강력한 제안이다./김낙호 만화연구가
“기억한다는 일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도시는, 특히 서울은 거대한 무덤이다. 그저 추억만 묻었다면 애잔하겠건만 거기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우리 이웃들에게 순식간에 투사라는 낯선 꼬리표를, 그리고 열사라는 묘비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사해 버린 이토록 거대한 무덤. 무조건 이마에 구호를 질끈 동여맨 ‘시위꾼’을 떠올리지 말기를. 우리 옆집 식당 이모이고 호프집 마음 좋은 아저씨였으며 성실한 고깃집 청년이었던 지극히 보통의 이웃이었으나, 도시가 등을 돌리자 순식간에 이웃들은 폭도가 되었고 남일당은 무덤이 되었다. 서울은 그런 무덤이 너무 많은 도시다. 무덤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그런 것을 순식간에 잊고서 오래된 것은 무조건 나쁘고 새것은 모두 옳다고 여기는 도시, 나쁜 기억은 무조건 없었던 체 하는 데 능란한 도시. 그러므로 이 무덤들은 흔적도 남지 않고 곧 사라질 것이다. 그저 기억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에 묘비를 짓는 일. 여기 사람이 있었노라고, 여기 사람이 살았노라고. 이런 뜻 가진 작가들의 마음을 한 장씩 넘기며 당신도 마음에 묘비 하나 세워 주기를. 우리가 잃은 이웃들을, 살아남아 여전히 싸우는 이웃들을. 기억한다는 일은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사실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그린 사람들이 그러했듯이./김현진 에세이스트
'용산참사' 3주기를 이틀 앞둔 2012년 1월 1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가톨릭 청년회관 CY시어터에서는 철거민 르포만화 <떠날 수 없는 사람들>(보리출판사)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용산참사 유가족을 비롯해 만화 속 주인공인 철거민들 그리고 만화작가들이 참석했다. 사회는 박래군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만화 속 주인공인 철거민들이 무대 위에 올랐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 나오는 5개 철거지역 가운데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과 서울시 용산구 신계동은 현재 협상이 타결된 상황이다. 단대동에서 온 한 철거민은 "2007년도 말부터 투쟁을 시작해서 2011년 11월에 타결을 했다"면서 "2008년도에 본격적으로 이주가 시작되면서 '용역깡패'들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과 폭행을 당했다"라고 전했다.
"용산참사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참사 이후 바로 강제철거를 당했다. 노숙이 시작됐고 밤이면 밤마다 폭행을 당했다. 재산이나 차량에 손을 대고, 천막에 와서 불을 붙이고 그런 사건 사고들이 많았다. 타결은 됐지만 이 자리에 오니까 너무도 마음이 무겁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게 기분이 묘하다. 많은 분들이 철거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그분들이 왜 이렇게 싸워야만 하고 왜 이렇게 떠날 수 없고, 철거민의 편에 서서 많은 생각 해주셨으면 한다."
동작구 상도 4동 철거민 김영희씨에게 '용역과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씨의 남편 천주석씨는 용산 참사 당시 망루에 올랐다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월요일(16일)에 용역이 와서 짐 빼라 그러더라. 못 뺀다 그랬더니 짐을 놔두고 집을 다 부쉈다. 저하고 90키로 되는 용역하고 싸웠다. 90키로가 저를 밀치면 (저는) 튕겨져 나간다. 나이 어린 애(용역)한테 욕먹고. 연대 동지가 와서 공사를 했다. 그러고는 저녁에 여기 홍대에 영화 보러 오는 도중에 다시 부쉈다더라. 어제 지역 동지하고 공사를 다시 했다. 제가 요즘 바쁘다. 서울역에 남편 석방해 달라고 1인 시위하러 다닌다고. 그런데 저녁에 가보니까 다시 부쉈더라. 완전히 작살을 내놨더라. 오늘은 또 고소장을 가져왔다.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은 끈기 있잖아요. 또 공사할 거다."
"그러다 잡혀 가면 어떻게 하나. 남편도 구속됐는데"라는 박래군 집행위원장의 질문에 김씨는 "같이 하죠, 뭐"라고 답했다. 김씨는 "철거하기 전에는 길도 모르고 집에서만 있었던 부인이었고 엄마였다. 그런데 철거하고 나서 많이 바뀌었다. 말도 좀 늘었고, 활달해졌고"라며 웃어보였다. 이어 "앞으로 투쟁 잘 하겠다"면서 "이 세상을 한 번 바꿔봅시다, 우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순 "비인간적인 강제퇴거조치 있어서는 안 돼"
이날 콘서트에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출연했다. "서울시장으로서, 행정의 책임자로서 진심을 다해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운을 뗀 박 시장은 "저는 기본적으로 한 도시에서 이렇게 비인간적인 강제퇴거조치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동영 의원이 오늘 강제퇴거금지법을 발의해서 다행"라고 말했다.
이어 박 시장은 "행복권과 주거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서울시 차원에서 주거권을 보장하는 인권조례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부서를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충연 위원장을 포함해 감옥에 계신 7분이 하루 빨리 가족의 품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 건의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서울시에 뉴타운으로 200개가 넘는 지구가 선정되어 있다. 힘이 닿는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가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벼랑에 선 사람들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 저자 제정임, 단비뉴스취재팀|오월의봄 |2012.04
저자 제정임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기자, 피디 등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부자를 더 부자가 되게 하는 일’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딛고 올라설 수 있게 사다리를 놓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당부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국민일보》에서 사회부와 경제부 기자로 일했으며 뒤늦게 모교로 돌아가 경영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MBC, KBS, CBS 등 방송에서 경제 및 시사 분야의 해설을 맡아왔고, 《경향신문》, 《한국일보》, 《국제신문》 등에 칼럼을 연재했다. 언론중재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으로 일했고 현재 인터넷선거기사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경제뉴스의 두 얼굴》(2002), 《경제저널리즘의 종속성》(2007, 공저), 《경제보도실무》(2009) 등이 있다.
저자 단비뉴스취재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2010년 6월 21일부터 발행하고 있는 온라인신문이다. 주요 시사 현안은 물론 기성 언론이 충실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빈곤문제, 지역 농촌 이슈, 미디어 업계 동향, 청년세대의 고민 등을 철저한 현장취재를 통해 심층 조명하고 있다. 또 기사, 사진, 동영상(단비TV) 등 멀티미디어로 하나의 사안을 입체 조명하는 등 새로운 미디어 제작기법을 적극 실험하고 있다. 단비뉴스의 주요 기사들은 제휴 매체인 《경향신문》, 《한겨레》, 《오마이뉴스》와 포털사이트 다음, 네이버 등에도 동시 게재되어 최고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전임교수들이 데스크 역할을 맡고 40여 명의 대학원생들이 취재기자, 영상기자, 피디 등을 맡아 취재 및 제작 활동을 하고 있다.
목차
추천사_ 일찍이 이런 책이 있었던가! 이정우(경북대 교수)
머리말_ 청담동에서 서울역까지
1부 근로 빈곤의 현장
-저수지 없는 곳에서 가뭄을 나는 인생농사꾼들
-가락시장 파배달꾼으로 보낸 14박 15일
-취재 후기“저리 안 가?” 말 붙이려다 봉변당할 뻔
-흙투성이 퇴근, 목욕탕서 눈치 보며 빨래도
-전화를 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심장을 찔린다
-텔레마케터 2주 현장 기록
-취재 후기“저기요, 저도 이렇게 전화하는 거 괴롭거든요?”
-천 명 넘는 남자와 통화, 남자친구조차 지겨웠다
-청소 유목민, 도시의 찌꺼기를 쓸다
-출장 청소부 21일의 체험
-취재 후기나도 반 백수, 그런 삶에 빠질까 두려웠다
-등록금 빚 천만 원, 멀지 않은 그들과의 거리
-호텔리어 환상에 가려진 투명인간을 아시나요
-특급호텔 하우스맨 15일의 고군분투기
-취재 후기‘1등 하우스맨’ 꿈은 격무에 날아가고
-나의 빈자리 메워야 할 동료에게 죄책감
-대안 좌담죽어라 일하는 그들, 사회가 가난 탈출 도와야
-동일노동 동일임금, 파견 제한, 비정규직 노조 필요
2부 빈곤층의 주거 현실
-화려한 G20 잔치, 구석엔 쪽방의 한숨
-하루 6,000원, 벌레가 끓어도 그냥 몸을 눕힌다
-3천 원도 없다, 길에서 자야 한다
-만화방 다방을 떠돌다 지하도로 가는 사람들
-취재 후기눈알 없는 사내와 뒷골목 ‘언니들’에 혼쭐
-그들만의 엄동설한, 내 심장이 시려온다
-‘깔세’도 못 내 움막서 보낸 다섯 번의 겨울
-재개발 밀려 공터로, 뜨거운 물병 껴안고 추위 견뎌
-취재 후기6년간 10번 이사, 나도 ‘난민’이었다
-방값 인상, 재개발에 쫓겨, 그래서 남 같지 않았던 ‘움막 아줌마’
-보일러는 3년째 고장, 발가락엔 동상
-지하 셋방살이, 침수 보상비 100만 원 받아도 오른 보증금 다 못 내
-고시원 거주자 25만 ‘숨죽이는’ 인생
-방음 안 돼 다툼, ‘닭장’ 같은 공간 불날까 걱정된다
-내가 어디 사는지, 제발 묻지 말아줘
-비닐하우스 마을, 추위·화재 겁나지만 가족과 살 수 있는 마지막 공간
-전문가 대안투기꾼 돈벌이 대신 서민 살 집 챙겨라
-땅값 집값 올리는 정책에서 ‘국민 주거복지’로 전환을
3부 애 키우기 전쟁
-“엄마, 돈 없어? 그럼 올빼미 끊을게”
-철거촌 빈집에 방치된 아이들
-“느그 아들 땜에 옴짝달싹 몬하겄다”
-할머니는 과로, 엄마는 죄책감 시달리는 육아 이산가족
-육아휴직 썼더니 책상을 치워버리네
-제도는 있지만 불이익 겁나 못 써
-아이 아프면 사표, 1년 새 네 번 이직
-생계와 보육 부담 홀로 짊어진 ‘싱글맘’은 웁니다
-“선생님, 저 고아원에 보내주세요”
-갈 곳 없는 아이들 돌보는 지역아동센터
-우리 아이 믿고 맡길 곳은 어디에
-민간시설 불안한 곳 많고 국공립은 자리 없어
‘-엄마 역할’ 보육교사 저임금 혹사 심각
-열악한 근무조건에 잦은 이직이 돌봄의 질 떨어뜨려
-대안 좌담‘낳아라’ 말만 말고 키울 여건 만들자
-‘애 키우기 전쟁’ 겁나 ‘출산 파업’하는 현실 개혁 시급
4부 아프면 망한다
-아픈 아이 때문에 맥없이 무너지는 가정
-난치병에 가족 등 돌리고 지원 끊겨 절망
-장애아 키우는 ‘형벌’ 덜 수는 없나요
-치료 및 교육시설 부족에 감당 못할 비용, 이웃의 냉대까지
-병들면 ‘묻고 따지고 거절하는’ 보험
‘-중병 파산’ 불안 틈타 가입 유도, 막상 급할 땐 지급 거부에 혈안
-병마 덮치니 중산층도 어느새 빈민으로
-돈 없어 치료 중단 “복지 혜택 받으려면 이혼해야 한대요”
-부러진 다리 수술도, 출산도 “못해요”
-응급수술·중병치료 어려운 지역 많아
-대안 좌담아플 때 끝까지 챙겨주는 나라 됐으면
-병마와 함께 무너지는 가정, 의료복지 튼튼해야 경제도 지속 성장
5부 저당 잡힌 인생
-수천만 원 빚에 쫓겨 다단계 수렁까지
-돈 버느라 학업 뒷전 “갚을 길이 막막해요”
-병원비로 빚지고 셋집 쫓겨날까 덜덜
-저소득층 ‘대출 늪’에서 못 헤어나
-독촉·협박 시달리다 자살 생각까지
-연체 순간 잔인한 채권추심은 시작된다
-“돈 쓰세요” 꼬드긴 뒤 고금리 족쇄
-궁박한 서민 광고·문자로 유혹하는 약탈적 대출업자들
-“세상에 그게 어떤 돈인데” 서민 피해 손 놓은 정부
-규제완화로 저축은행 부실 방치, 저신용자는 ‘울며 사채쓰기’
-대안 좌담‘저당 잡힌 인생’ 3각 대책으로 풀자
-기초 복지와 저금리 서민금융 확충, 불법고리대 단속 박차를
기자 소개
출판사 서평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외면하지 말라!”
노동, 주거, 보육, 의료, 금융…
발로 뛰고, 몸으로 느껴 완성한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집중 탐구
“이런 책을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홍기빈
“온 국민이 읽어야 할 책.” -이정우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다
“눈물 없이 넘길 수 없는 페이지가 너무 많다.”(이정우 경북대 교수)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이다. 정치권, 언론에서 양극화 대책이니 뭐니 하면서 매일 부르짖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지만, 말만 난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작은 사람들은 서럽기만 하다. 돈 천 원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자야 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아가면서 험한 일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병은 곧 망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프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빚에 쪼들리고, 아이를 키우기도 어렵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직 압력을 받거나 책상을 치워버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왜 이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지, 왜 우리 사회에는 그늘이 이리 넓은지.”(‘추천사’에서)
이렇게 벼랑 끝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모두 그 존재를 알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빈곤한 노동 현장에서,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빚과 병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다리는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0년 6월 21일 창간한 이후 약 1년 반에 걸쳐 연재한 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묶은 것이다. 《단비뉴스》가 이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소외계층의 고통과 절망이 한계 수위에 이르렀는데도 정치권과 언론이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단비뉴스》는 2008년 국내 최초의 실무교육 중심 언론대학원으로 문을 연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이 학생들을 훈련하고 대안언론의 역할도 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신문이다.
《단비뉴스》 주간교수인 제정임과 대학원생들은 2010년 초부터 창간 준비 작업을 하면서 ‘기성 언론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빈곤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밀착 취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발로 현장을 뛰며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내고, 직업 언론인이 됐을 때도 이 관심을 이어가자고 다짐했다. 여러 차례의 세미나를 거쳐 우리 사회의 빈곤층이 맞닥뜨리는 ‘원초적 불안’ 다섯 가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근로 빈곤층의 생계 불안,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사람들의 주거 불안,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보육 불안, 중병 들면 가정 파탄을 각오해야 하는 의료 불안, 절박한 상황에서 무자비한 고리채에 손 댄 이들의 금융 불안이 그것이다.
“이런 책을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우리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처절해져 왔지만 그것을 전하고 알려야 할 문학과 저널리즘에서는 언젠가부터 리얼리즘과 치열함과 땀 냄새가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사회 비평이라는 허울 아래 인텔리의 게으른 펜 돌리는 소리만 들리는 글발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시 저널리즘과 글쓰기라는 작업에 신뢰와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 내가 스스로 찾아가서 살피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던 후미진 골목길 구석구석을 밝은 눈 맑은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신 몸을 던져서 건져온 글들이다.”(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이 책에는 치열한 현장성, 빈곤층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만든 원고라서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런 르포 기사는 현장성은 뛰어나지만 대부분 대안 제시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는 대안 제시가 가득하다. 매 장마다 전문가 의견, 해외 사례 등을 풍부하게 밝혀놓아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해준다.
열악하기만 한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
1부 ‘근로 빈곤의 현장’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몸으로 겪고 기록한 것이다. 서울 가락시장의 일용직 파배달꾼으로, 온갖 푸대접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전화판촉원(텔레마케터)으로, 전국을 돌며 ‘도시의 찌꺼기’를 쓸어내는 야간청소부로, 호텔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 ‘하우스맨’으로 취업해 노동자의 삶을 기록했다. 각각 2주에서 한 달간, 때로는 감기와 근육통에 시달리며, 때로는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가며 일터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임시직,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노동환경 조건이 열악했다. 일은 험하고 어려운데 생계를 이어나갈 만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가락시장의 파배달꾼은 철야로 열두 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150만 원을 받지만 방세, 식비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건 하루 소주 한두 병 값이 전부다. 텔레마케터는 어지간한 관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100~120만 원을 벌기도 벅차며, 야간청소부와 하우스맨 또한 한 달 임금이 100만 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2009년 가구 당 월 평균 소득이 344만 3,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중위소득 50% 미만의 저소득층에 속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빈곤층이지만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빈곤층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현장을 직접 체험한 기자들의 삶도 변했다. 밥값 5,000원의 가치가 너무도 커 보여서 일부러 싼 곳을 찾아 김밥을 사먹었고, 텔레마케터의 고단한 일을 겪은 뒤에는 텔레마케터에게서 온 전화를 친절하게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 소주를 들이켜는 사람을 인생 패배자라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야간작업을 끝내고 소주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근로 빈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변해줄 노조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가장 먼저 최저임금이 현실화돼야 한다. 또 이들의 노동을 보호해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형편이 어려운 취업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다양한 사회안정망 확충도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집은 곧 인권? 인권이 없는 빈곤층의 주거 현실
하루 6,000원짜리 쪽방에서도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3,000원, 5,000원을 내고 만화방, 다방 등에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마저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지하도, 역 근처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2부 ‘빈곤층의 주거 현실’은 인간답게 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이 땅의 빈곤층의 삶을 기록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 여기에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서울의 부촌에서는 이 정도 공간에 한 가족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혼자 살아도 숨 막힐 공간에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쓰고 있고, 목욕시설은 없는 곳이다. 이런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로 내쫓기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또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이곳 쪽방에서마저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동자동 사람들은 ‘따뜻한 공동체’를 꾸려가며 스스로 터전을 가꿔나가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없애버릴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재개발의 이윤을 계산하기에 앞서 이들의 ‘생존권’도 존중되는 사회는 될 수 없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성남시 시흥동의 움막. 판교 재개발이 논의될 때, 김수연 씨는 개발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병원도 들어오는 등 환경이 좋아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개발이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이 지역에서 비닐하우스 가구공장을 하고 있던 김씨는 개발이 시작되자 제일 먼저 ‘떠나주어야 할 존재’였다. 공장이 불법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공장 철거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든 집도 비워주어야 했다. 갈 곳이 없는 그는 5년 동안 움막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초3동의 산청마을과 개포동의 구룡마을. 강남 한복판에 있는 비닐하우스촌이다. 판자벽과 비닐, 떡솜 등으로 지어진 이 집들은 불이라도 나면 삽시간에 옆집으로 번진다. 실제로 화재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만 5,000여 가구에 이른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지하수를 파서 먹어야 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늘 재개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원은 ‘현실적인 임대아파트’를 얻는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해 수십만 원씩 내야 하는 곳 말고, 가구의 소득수준에서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제공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원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리 아이 믿고 맡길 곳은 어디에, 서민들의 보육문제
정부는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제대로 키울 수가 없는 구조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3부 ‘애 키우기 전쟁’은 서민들, 저소득층의 보육에 관한 이야기다. 철거촌 빈집에 방치된 아이들은 김길태 사건처럼 범죄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친정과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아이를 보는 맞벌이 부부들도 많아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려면 부부 중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육아휴직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육아휴직을 쓰면 책상을 치워버리거나 사퇴 압력을 받게 된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더욱 힘들다. 생계와 보육을 홀로 책임지고 있는 ‘싱글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보육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행복해야 할 아이 키우기가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처럼 ‘전쟁’이 돼버렸을까? ‘낳아라’ 말만 말고 키울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취약한 보육 여건 때문에 서민들과 저소득층은 더욱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프면 망한다, 빈곤층의 의료문제
4부 ‘아프면 망한다’는 말 그대로 아픈데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들의 이야기다. 난치병에 걸려 엄청난 치료비가 들지만 정부와 사회로부터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삶을 지탱하기 힘든 가정, 환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보험회사 등을 취재하며 서민들의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난치병에 걸린 남매를 키우고 있는 엄마. 아이가 병이 나자 아빠와 시댁은 발길을 끊어버렸다. 홀로 두 아이를 간호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앞이 캄캄할 뿐이다. 정부지원금은 얼마 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 정부지원금은 많아봐야 22만 원 남짓. 우리 사회는 자폐나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치료비는 모두 부모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아이 치료비로 집 한 채를 날린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가족 중에 누군가 크게 아프면 중산층도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다가 병이 나서 모든 재산을 잃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사회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책에서는 의료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대안 제시를 하고 있다. ‘아프면 망한다’는 곧 ‘돈 없으면 망한다’와 같은 말이다.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도와주고 챙겨주는 나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저당 잡힌 인생, 서민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5부 ‘저당 잡힌 인생’은 빚에 허덕이는 저소득층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자 손에 남는 건 졸업장과 학자금 대출을 받은 빚 2,400만 원뿐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갖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비싼 등록금은 감당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했다. 저소득층에게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이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 시절에 이렇다 할 스펙 쌓기도 힘이 든다. 연애도 결혼도 꿈꿀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학자금을 낮추고 대출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늘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에는 대부업체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이 광고들을 귀찮아하며 무시하지만 돈이 급한 사람들은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덫에 걸려든 서민들이 정말 많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들은 오히려 서민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들은 급히 불법 대부업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빚의 수렁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규제완화로 저축은행을 부실하게 하고, 서민금융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게 만드는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사채’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Transforming our lives through urban design, 저자 찰스 몽고메리|역자 윤태경|미디어윌 |2014.04
원제 Happy City
저자 찰스 몽고메리는 도시계획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 인간과 도시, 과학과 신화를 생각하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경험주의자이기도 하다. 1968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밴쿠버의 시골마을에서 보냈으며 1996년부터 저널리스트로서 본격적인 글 쓰는 작업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도시, 과학과 신화에 관심이 많아 캐나다 에스키모족 자치구인 누나부트부터 피지, 아일랜드, 홍콩, 일본, 페루, 콜롬비아 등지를 다니며 글을 썼다. 첫 책인 《THE LAST HEATHEN》은 2005년 논픽션 분야로 찰스 테일러 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BMW 구겐하임 랩 연구팀원이다.
목차
서론_ 행복도시의 시장, 엔리케 페날로사
CHAPTER 01. 도시는 언제나 행복을 꿈꿔왔다
도시와 행복: 고대부터 중세까지
도시와 행복: 18세기
도시와 행복: 19세기와 20세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즐거운 순간을 측정하다, 행복과학
더 많이 벌수록 행복할까, 행복경제학
이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이 만들어낸 합작품, 도시
행복도시의 정의
CHAPTER 02. 교외로 밀려나는 사람들
동네에서 떨어뜨린 지갑을 돌려받을 확률
이웃과 행복의 상관관계
통근시간이 길어질수록 사교활동이 줄어든다
장거리 통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교외화의 대물림
CHAPTER 03. 자동차 통근의 시대
집은 어떻게 직장과 멀어지게 되었나, 분리주의 도시개발
도시의 거리, 자동차가 주인이 되다
자동차를 위한 도시, 퓨처라마
승자는 없다, 제로섬 게임의 확산도시
CHAPTER 04. 도시를 둘러싼 잘못된 생각들
긴 출퇴근 시간을 선택하는 이유, 통근의 패러독스
하버드 기숙사의 수수께끼
눈에 띄는 행복의 함정
드라마 ‘프렌즈’가 만든 뉴욕 아파트의 환상
누가 이상적인 도시를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도시의 위험들
도로가 넓어질수록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다
정체의 도시, 미국
석유의 시대가 끝나다
CHAPTER 05. 도시, 자연과 이웃에 길을 묻다
숲을 본 환자가 통증을 덜 느끼는 이유
사바나 초원의 함정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밴쿠버의 도심 개발
자연, 도시의 일상이 되다
들리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도시의 녹지들
혼자 조용히 쉴 권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야 할 이웃과의 거리
집과 이웃에 대한 당신의 애착
수직적 도시와 수평적 도시의 균형점
전차도시 2.0
도심에서 살아남기, 주택 공유
담장을 허물고, 함께 밥을 먹다
CHAPTER 06. 도시의 사회성
거리에서 사람들을 마주볼 자유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독한 사람들
공간이 생각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도시 디자인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술, 삼각법
자동차가 많아질수록 줄어드는 유대감
주차장이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
자동차 없는 도로
CHAPTER 07.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자동차 통근자의 심리
자전거 통근자의 심리
시민의 행동을 결정하는 도시 디자인
자전거 통근을 가로막는 요인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는 이유
CHAPTER 08. 자동차 없는 도시
대중교통이 달라졌다
소유하지 않을 자유, 자전거 공유 시스템
자동차도 공유할 수 있다면, 카투고(car to go)
자전거로 이동할 자유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도시, 네덜란드 하우턴 시
자전거의 도시, 코펜하겐
자동차 대신 사람을 선택한 뉴욕
CHAPTER 09.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세계 최악의 도시, 보고타
도시의 평등을 실현하다
교통의 평등을 실현한 트랜스밀레니오 버스
벽에 부딪친 엔리케 페날로사의 개혁
보고타 시의 교훈
CHAPTER 10. 행복도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기후변화 문제의 해법
시민의 건강을 생각하다
지속 불가능한 도시의 확산
도시 공간의 경제학
기후 친화적 도시
환경을 생각하는 도시 디자인
CHAPTER 11. 교외를 되살리려는 노력들
쇠락하는 교외
교외 재구성 사업
교외화의 관성
코드 전쟁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메이블턴
게임의 규칙을 바꿔라
도시 미관의 함정
반발과 현실
CHAPTER 12. 도시를 구한 영웅들
자전거로 학교에 가고 싶었던 소년, 애덤
집 앞의 신호 체계를 바꾼, 아론
이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 마크
격자형 도로망의 헤게모니
공공 공간의 의미
에필로그_ 행복도시, 결국 시민에게 답이 있다
출판사 서평
꽉 막힌 도로, 월급을 털어가는 집값, 이웃이 두려운 사람들…
도시의 삶은 왜 이토록 고단한 걸까?
도시, 사람, 행복한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대답들
출근 시간은 기본 한 시간,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찬 지하철과 버스 때문에 아침마다 직장인들은 지옥을 경험한다. 해마다 치솟는 집값 때문에 아무리 일을 해도 빚만 늘어간다. 집에 돌아와도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에 신경은 곤두서고 밤낮 없이 소리 지르며 뛰는 꼬마 아이들은 더 이상 귀엽고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내 삶을 갉아먹는 악마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도시’란 값비싼 집값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도 빚에 허덕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과 차로 붐비며, 각종 소음에, 차와 빌딩으로 가득한 숨 막히는 스트레스의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늘 피곤하고 힘겹지만 ‘도시란 원래 그런 곳이지….’하고 체념하며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버텨내고 있다.
원래 불편하고, 기꺼이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는 도시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캐나다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찰스 몽고메리는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를 통해 반기를 든다. 그는 마땅히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들의 탐욕과 판단착오 때문에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삶의 수단인 집과 차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비참한 현대 도시민의 삶과 도시 광경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하며 사람이 모여 만들어낸 도시와,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한다. 도시와 인간에 대한 관계, 인간이 꿈꾸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굵직한 문제들을 심리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 근거를 통해 설명하면서 더욱 설득력을 높인다.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생겨난 도시의 본래 의미를 되짚어보고, 기업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탐욕으로 어떻게 도시가 변질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설명하며 읽는 재미 또한 선사한다. 또한 저자는 세계 곳곳의 도시를 방문해 행복한 도시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시민들의 삶을 바꾸고 있는 진보적인 도시 운동을 상세히 책에 옮긴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도시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진지하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범죄의 도시 ‘보고타’는 어떻게 행복한 도시가 되었나?
도시의 평등을 실현한 행복도시의 시장, 엔리케 페날로사
콜롬비아는 20세기 말 수십 년간 내전에 휩싸였고 시민들은 좌파 게릴라, 군인, 불법 무장 단체의 충돌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해마다 난민 8만 명이 보고타 시 외곽의 슬럼가로 몰려들어 보고타 시 인구는 800만 명에 달했다. 대중교통 시설도 변변치 않은 데에다가 난민까지 몰려드는 보고타 시는 그야말로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갖가지 이동수단이 내뿜는 매연으로 공기는 숨이 막힐 듯 했고, 난민과 거주민들끼리의 불신도 도를 넘어섰다. 1995년 한 해에만 살인범죄가 3,363건으로, 하루에 10명이 살인사건의 희생자로 목숨을 잃었다. 보고타 시장 선거에 출마한 엔리케 페날로사는 다른 정치인들처럼 단순히 시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허황되고 진부한 공약은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인만큼 부자가 되는 것은 잊으라고 말했다. 그는 비록 보고타 시민들이 미국인들보다 소득은 낮아도 다른 종류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미국인들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페날로사는 도시의 공공 공간이 시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가게에서 사는 물건은 대부분 사는 순간에는 만족스럽지만 며칠이 지나면 만족감이 줄고, 몇 달이 지나면 그 만족감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반면 공공의 영역은 마법과 같은 재화입니다. 만들어 놓으면 계속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줍니다. 행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평범한 인도나 공원, 자전거 전용도로, 버스와 같은 공간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페날로사가 시장으로서 가장 먼저 펼친 정책이자, 그의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범죄 근절도, 마약이나 빈곤과의 전쟁도 아닌 바로 자동차와의 전쟁이었다. 보고타 시의 예산을 자전거 도로, 공원, 보행 광장, 도서관, 학교, 보육시설 건설에 투입했다. 유류세를 인상하고 시민들의 자동차 통근을 주 3회 이하로 제한하며 공공 광장에는 말뚝을 설치해 자동차의 유입을 막았다. 그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세계 도시 설계자들이 반세기 이상 추종한 도시의 철학을 전면 부정한 결과다. 페날로사가 지향한 보고타 시의 모습은 북미의 법이나 관습, 부동산 산업, 금융업, 개발 이데올로기가 선호한 도시의 모습과 정반대였다. 실제로 그가 취임하고 3년 뒤 보고타 시의 변화는 놀라웠다. 학교 등록률이 30퍼센트 증가했으며 수돗물이 나오지 않던 가구에 수돗물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자전거 통근자의 수는 두 배나 늘었고, 자전거 통근자는 최저 임금 근로자의 1개월분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의 이동속도도 빨라지고 교통사고율, 살인범죄율이 절반 가까운 수치로 감소했다.
보고타 시가 수년간 보여준 개혁은 여전히 세계 곳곳의 도시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모든 시민들의 경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디자인하고, 자원을 사용하면 시민들의 생활이 훨씬 윤택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도시가 누구를 위한 곳인지 결정해야 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힘으로 도시가 바뀔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자본과 자원으로 잠식된 도시, 다시 사람을 꿈꾸다
도시가 지금 시대만큼 부유했던 적도,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 적도 없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인류가 개인 주택과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사치를 누린 적이 단언컨대 역사상 없었다. 자원과 자본은 끊임없이 도시로 몰리고 넘쳐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은 전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진정으로 행복한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혹한과 혹서기가 없는 쾌적한 기후를 자랑하거나, 고학력?고소득의 교양 있는 이웃이 모여 있거나, 집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행복한 도시의 모습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저자가 세계 곳곳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살펴본 행복한 도시는 이런 요소들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 범죄의 도시로 낙인 찍혔던 도시 보고타, 혹독하게 춥고 긴 겨울을 자랑하는 코펜하겐이 바로 우리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모습의 행복한 도시로 거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행복한 도시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하는 도시다. 오롯이 인간에게 집중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편의와 안락함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큰 집이나 비싼 자동차, 멋진 이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자녀가 마음 놓고 길거리를 뛰어다녀도 되고, 자전거로 학교를 통학할 수 있으며, 보행자들이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을 원한다. 또한 더 이상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 범죄의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는 막연한 공포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도록 주민들과의 관계를 충분히 맺을 수 있는 것을 원한다. 행복한 도시의 조건이 이토록 간단하고 쉬운 것 같지만 지금의 현대 도시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난제처럼 보인다. 보고타 시의 사례처럼 도시민의 행복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한 도시들도 있지만, 대부분 행복도시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작은 생각과 행동에서부터 시작된다. 늘 학교 앞이 주차장으로 변하는 것이 불편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학교에 가고 싶었던 소년 애덤이나, 집 앞에서 나는 경적 소리에 지나가던 차에 달걀을 던진 아론 등 혼란스럽고 불행한 도시를 바꾼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리고 이는 도시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바로 당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선거에 출마하라는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이들은 거리에 가구를 놓아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고, 자동차 없는 날을 도입하거나, 주택 사이의 담장을 허물기도 한다. 공공 공간에 꽃과 나무를 심기도 하고 주차장을 정원으로 바꿔버리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도시의 디자인을, 아울러 도시의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도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옆집에 사는 이웃을 알지 못하는가, 출퇴근길이 말할 수 없이 피곤한가, 마트에 자동차 없이 가기가 두려운가, 집 앞에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책속으로
“성공을 1인당 소득으로만 정의한다면, 보고타 시는 가난한 패자들이 많은 이류나 삼류 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보고타 시민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페날로사는 모든 시민들에게 승용차를 약속하지도, 사회주의 혁명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그의 공약은 단순했다. 그는 보고타 시민들에게 더 행복한 삶을 약속했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새들이 날아다녀야 하듯, 인간은 걸어 다녀야 합니다. 우리는 다름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아름다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접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외당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평등하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라고 요구한 페날로사는 미국 헌법이 규정한 목표를 달성하자고 촉구했다. 그는 비록 보고타 시민들이 미국인들보다 소득이 낮을지라도, 다른 종류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미국인들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_ p.p.8~9
먼저 그들은 자동차 사고는 운전자 잘못이 아니라 보행자 잘못이라고 사람들이 믿도록 유도해야 했다. 1920년대 자동차 단체들은 도시안전위원회와 직접 경쟁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단체들은 자동차 사고는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잘못이라고 선전했다. 거리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행위는 ‘무단횡단’이라는 죄스러운 이름이 붙고, 법으로 범죄라고 규정 당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거리가 더 이상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게 됐다. 자동차 단체들이 내건 기치가 ‘자유’라는 점을 감연하면 아이러니한 변화다. _ p.p.117~118
교외의 단독 주택은 가족과 함께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이지만, 다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에는 불리한 곳이다. 이곳에 살다 보면 도심의 직장까지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다. 하루에 몇 시간을 자동차 안에서 고독하게 보내야 한다. 한편 너무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에서 살면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혼자서 조용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디에 살든, 삶은 풍요롭게 하는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게 된다. 이는 특히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 추세와 맞물려 문제를 키운다. 1950년대에는 부부가 아이 두 명 정도 키우는 4인 가구가 전형적인 핵가족 형태였으나, 현재 미국 평균 가구 구성원 수는 2.6명으로 줄었다. 갈수록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 통근하고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는 2인 가구나 3인 가구가 아니라 1인 가구다. 1인 가구 구성원은 행복도가 낮고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다.현대인에게는 휴식도 취하고 이방인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_ p.209
우리는 행복도시를 누가 건설해주길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지 선택하면 행복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주민들이 서로 조금 가까이 몰려 살고, 조금 더 느리게 이동하기로 결정하면 행복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도시와 타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로 선택하면 행복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도시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도시가 우리와 함께 변화하도록 유도하면 행복도시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을 더 행복한 공간으로 바꾸어 나갈 때 행복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본문 중에서
이 도시에 살고 싶다 예술과 문화를 입힌 찬연한 도시에서 미래를 꿈꾸다/저자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시대의창 |2016.11
목차
추천사1 - 도시는 시대정신이다
추천사2 -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길들인다
프롤로그 - 왜 도시인가
1장 ‘세계인의 마을’ 오로빌에 가다
힌두 명절에 크리스마스 트리 | 행정은 있지만 ‘군림’하지 않는다 | 솔라 키친과 적정 기술 | 오로빌의 고민거리 | 도전하는 도시 - 세계의 이색 공동체들 | 도전하는 도시 - 인권, 환경, 참여… 세계 도시들의 실험
2장 시 예산 짜는 ‘노숙인 대의원’
포르투알레그리를 ‘진보의 수도’로 만든 참여예산제 | 주민 회의를 참관하다 | “나는 세계 최초 노숙인 대의원” | 참여예산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 | 주변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편입시킨 25년 | 포르투알레그리의 팝POP 쇼핑몰 | 참여예산제의 미래 | 도전하는 도시 - 인권도시가 뜬다 | 세계 인권도시들의 등장사회 | 경제적 차별이 없는 진짜 인권도시
3장 강을 살리니 사람이 모였다
“왜 빌바오에 왔냐고요? 여기 구겐하임이 있잖아요” | 조선 산업의 메카에서 쇠락한 공업도시로 | 강을 살리고 문화를 수혈해 만든 ‘빌바오 이펙트’ | 도전하는 도시 - 코인스트리트, 그 뒤 30년 | 쉼터가 된 산업사회의 폐허들 | 인터뷰 - 빌바오 시장 이본 아레소
4장 포플라 하카의 마을 만들기
마천루 옆 ‘이주민 마을’ | 카페 옆에는 어린이집, 위층에는 주민교실 | ‘소셜 믹스’에 성패가 달렸다 | 학교를 살려야 ‘가난 고리’를 끊는다 | 퇴락한 시장도 되살려낼까 | 도전하는 도시 - 왜 ‘마을’인가 | 거대 도시에서 마을이 살아날 수 있을까 | ‘마치즈쿠리’로 되살아난 유후인과 야나가와 | 도전하는 도시 -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빈민촌, 토레 데 다비드
5장 나비 날개 모양을 한 자전거도시
자전거를 탄 채 들어가는 세계 유일의 기차역 | 하우턴에서는 모든 길이 다르다 | 자전거로는 어디든 금방 | 주민들은 ‘작은 도시’로 남기를 원했다 | 도전하는 도시 -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들 | ‘전기 생산량’을 알려드립니다 | ‘공유’는 새로운 도시생활의 모델 | 인터뷰 - 하우턴 도시계획 담당자 안드레 보터만스
6장 삶을 바꾼 톨비악의 도서관
삶을 바꾼 도서관 | 도시에 문화를 입히다 | ‘너무 성공한’ 바르셀로나의 고민 | 함부르크의 골목은 예술가들의 작업실 | ‘뜨고 나니’ 빼앗기게 된 골목 | 인터뷰 - 조각가 크리스틴 에벨링
7장 미래로 가는 도시들
동아프리카의 미래를 담은 ‘실리콘 사바나’ | ‘탄소 제로’를 꿈꾸는 마스다르시티 | 도시의 중심이 된 ‘바람탑’ | 도전하는 도시 - ‘강태공의 고향’이 생태도시 모델로 | 태양광 이용률 100퍼센트 | 르자오의 변화 | 도전하는 도시 - 가디언이 소개한 ‘개혁 시장’
8장 협동조합의 도시 볼로냐와 트렌토
볼로냐의 ‘이페르콥’ | 트렌티노의 ‘스페스’ | 볼로냐 대학교 옆 ‘조합 책방’ | 트렌토의 사회복지와 협동조합 | 도전하는 도시 -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 | 인터뷰 - 카페 실습생 크리스티안 수치 치멘타니
9장 포르탈레자의 ‘기적의 은행’
버림받은 이들의 마을 | 파우마스 은행의 산파 | 지역화폐 ‘파우마’를 체험하다 | 은행이 그리는 소비와 생산 지도 | “여전히 가난하다고? 그래도 우리에겐 미래가 있어요” | 도전하는 도시 - 세계의 지역화폐 | ‘지배하는 돈’ 대신 ‘삶을 위한 돈’으로 | ‘생활비’ 받는 오로빌 주민들 | 인터뷰 - 마리아 데 루르데스 할머니
10장 우리에게 ‘서울’은 무엇인가
커피를 내리는 정찬이 엄마 | 떠날 동네를 살고 싶은 동네로 | 서울에서 마을살이 | 임대료 상승에 흔들리는 공동체 | ‘조물주 위에 건물주’ 세상 | 변화를 촉진하는 청년들과 서울의 공간 | 청년들이 만드는 전략적 어바니즘 | 청년 ‘주거 빈곤층’의 공간, 신림동 고시원의 변신 | 격변하는 서울 | ‘서울 철학’과 세운상가 | 무질서의 역사와 ‘서울식 해법’ | 청계천을 지나 남산까지 이어지는 도보 길
에필로그 - 인간적인 도시란
책속으로
주민들이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찾는 식당은 ‘솔라 키친’이다. 이름처럼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밥을 짓는 곳이다. 식당의 상징은 지붕 위에 달린 지름 15미터의 반구다. 거울 조각들이 빼곡히 박혀 있는 이 반구로 햇빛을 모아 물을 끓이고, 거기서 나온 수증기로 음식을 조리한다. 하수의 부유물을 침전시키고 산소를 투입해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쓸 수 있도록 정수하는 장치도 있다. 대규모 공장이 아니라 단독주택 정원에도 쓸 수 있도록 규모를 줄였다는 게 특징이다. --- p.36
그때 선출된 브라질 최초의 노숙인 대의원이 헤이나우두와 세우소, 그리고 일자리를 찾아 브라질까지 왔다가 노숙인으로 전락했던 우루과이 출신의 알렉산드리아였다. 이들은 대의원으로 선출된 뒤 거리를 샅샅이 뒤지며 시 정부가 파악하지 못한 노숙인들을 찾아내 보건소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주민참여예산 회의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거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p.59
시청에서 강을 따라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흰색 아치형의 보행자 전용 다리 주비주리Zubizuri가 있고, 구겐하임 미술관 옆으로는 수변 공원이 이어진다. 조금 더 하구 쪽으로 내려가면 에스칼두나Euskalduna 국제회의장 겸 음악당과 해양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2,164석 규모의 이 음악당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콘서트와 오페라, 오케스트라 공연이 늘 열린다. 해양박물관 앞에는 조선소에서 썼던 거대한 쇠사슬과 크레인이 전시돼 있다. --- p.96
한국보다 앞서 탈산업을 경험한 유럽 도시들 가운데 옛 공장이나 창고를 허무는 대신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도시 재생을 계획하는 곳들이 많다. … 템스 강변의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새 랜드마크로 만든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갤러리는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Musee d’rsay은 20세기 초부터 대형 기차역으로 쓰였지만 1939년 문을 닫게 된 뒤로 방치되다가 1986년 미술관으로 개조됐다. --- p.104
토레 데 다비드는 주민들이 늘면서 도심의 폐허에서 새로운 도시 건설의 실험장으로 변모해갔다. 주민들은 필요에 맞게 공간을 손질했다. 수도와 전기를 끌어왔고 하수처리시설과 쓰레기처리시설을 마련했으며 곳곳에 공중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마련됐다.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8층 발코니에는 공사부품으로 만든 운동기구가 있는 작은 헬스장이 생겼다. 계단 같은 공용공간은 주민들이 만나서 수다를 떠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미용실이나 세탁소, 식료품점, 병원 같은 편의시설도 마련됐다. --- p.140
족히 수백 대는 돼 보이는 자전거를 둘러보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출입구가 열렸다.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페달을 밟으며 그대로 역으로 들어왔다. 속도를 조금 줄이는가 싶더니, 빠르게 한 바퀴 돌아 빈자리를 찾고 능숙하게 멈춘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거치대에 올리고 자물쇠를 채운다. 자전거 주차는 물론 무료다.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자 빠르게 개찰구로 가서 카드를 찍고 플랫폼으로 올라가 도착한 열차를 탄다. _147~148쪽.
미테랑 도서관이라는 거대한 문화 인프라는 톨비악을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고, 낙후되고 텅 빈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90년대 후반 도서관 주변의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다. 이즈음부터 톨비악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야니크는 “도서관이 생긴 뒤 내 삶에서 가장 달라진 것은 수준 높은 이웃들이 생겼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 p.180
그는 원래 작은 서점을 즐겨 찾지만 코프리브레리아는 큰 서점인데도 좋아한다고 했다. 시인으로서 시집 코너가 넓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지만 그가 이 공간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에 오면 작은 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까운’ 기분을 똑같이 느낄 수 있어요. 작은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인이 ‘도메니코, 네가 좋아할 만한 책이 여기 있어’라며 서가에서 책을 한 권 뽑아주는 것처럼, 이 서점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 놓았죠. 편안하게 여러 문화를 즐길 수 있거든요.” --- p.238
시작은 미약했다. 처음에는 종이로 카드를 만들어 상점 다섯 곳에서 소꿉놀이처럼 출발했다. 파우마가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상인들의 협조가 절실했다. 멜루를 비롯한 주민연합 원로들이 상인들을 직접 설득하러 다녔다. 파우마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유인책도 마련했다. 멜루는 “무엇보다 파우마 화폐가 정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주민연합이 마을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마을 사람들이 두터운 신뢰를 보내준 덕이었어요”라고 말했다. --- p.262
분위기가 조금 바뀌기 시작한 것은 엄마들의 모임 하나가 꾸려지면서부터다. 봉제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골목 3층짜리 상가건물에 ‘공간 짬’이라는 곳이 있다. 한쪽 벽에는 동화책이 빼곡하고 거실에는 큰 탁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부엌도 딸려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이 동네 전업주부들이 2014년 만든 공간이다. 오전에는 동네 엄마들, 오후에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짬짬이 오시라’는 뜻으로 이름을 ‘짬’이라고 짓고, 누구든 올 수 있도록 개방했다. --- p.294
도시재생과 가난한 사람들 저자 이영아|국토연구원 |2016.01
목차
1장 들어가며
2장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삶
3장 가난한 동네와 도시재생
4장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 연결망
5장 주민참여는 아직도 이름뿐?
6장 주거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7장 결론 : 인간적인 도시재생을 위하여
http://blog.naver.com/hedger/220996742785 작성자명 : hedger| 블로그명: 투자 디자이너 Hedger
도시재생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할 저자 윤주|살림 |2017.10
저자 윤주는 현재 지역전문가, 칼럼니스트,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德業一致(덕업일치)의 삶을 꿈꾸며, 생각만 하고 말로만 했던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눈앞에 펼쳐 보이면, 평범한 장소는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고 지루했던 세상은 훨씬 재미있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두잉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휴공간과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어, 건강한 도시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재생'에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힘을 보탤 예정이다.
우리문화원형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마스터플랜, 국립중앙박물관 대표유물 20선 스토리텔링, 폐역사 능내역 스토리텔링, 은평구 한옥마을 스토리텔링, 서울시청사 내 서울책방 리노베이션, 섬진강 스토리텔링, 만경강 스토리텔링, 양평 두물머리 스토리텔링, 북한강 물의 정원 스토리텔링, 평택 폐천부지를 활용한 소풍정원 스토리텔링, 하남 미사지구 폐천부지 스토리텔링, 국도 1호선 스토리텔링, 감성가도 스토리두잉 외 다수를 수행했다. 저서로는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가 있다.
목차
들어가며: 도시재생, 도시를 되살리는 여정 3
왜, 지금 도시재생인가
도시재개발에 대한 회의
도시재생 개념의 탄생과 인식
도시재생의 실천과 방법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는 시간
제1장 ‘도시’라는 공간 13
제2장 파리 프롬나드 플랑테: 도시재생의 새로운 개념 21
제3장 나오시마: 예술로 삶이 바뀐 섬 35
제4장 런던 테이트 모던: 현대미술의 메카가 된 화력발전소 61
제5장 토론토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버려진 양조장의 변신 81
제6장 뉴욕 하이라인 파크 : 집념이 이룬 옛 고가철도의 기적 97
제7장 베이징 798예술구: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된 버려진 공장지대 151
나가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도시재생 이야기 176
참고문헌 183
출판사 서평
파리 프롬나드 플랑테, 노후한 고가철도에서 공중정원으로 거듭나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센강이 흐르고, 밤에는 에펠탑이 별꽃으로 출렁이고, 거대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오르세미술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4.5킬로미터나 달하는 뱅센 고가철도와 바스티유역이 20년 동안이나 산업 유물로 방치되었었다고 상상해보라.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는 흉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범지역으로까지 전락했다. 그랬던 이곳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프로제’라는 문화정책 덕으로 바스티유역은 오페라 극장으로, 뱅센 철도는 프롬나드 플랑테라는 공중정원으로 재생되어 오늘날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나오시마, 산업폐기물과 유독가스로 시들어가던 곳이 꿈꾸는 예술섬으로
1917년부터 제련소가 있었던 섬 북쪽의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매연과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공장에서 흘러나온 기름 찌꺼기는 근처 바닷물을 오염시켰다. 섬의 수목은 점점 말라 시들어갔다. 게다가 1980년대에 제련소가 문을 닫자,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이곳은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생기 없는 섬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다함께 잘살자’는 철학을 가진 베네세 홀딩스 재단의 이사장인 후쿠타케 소이치로가 건축의 거장 안도 다다오와 함께 이곳에 숲을 가꾸고, 아름다운 생태환경을 조성했다. 이 지역 노인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배려를 콘셉트로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해마다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활력의 섬으로 재탄생했다. 베네세하우스를 짓고, 지추미술관을 들이고, 이우환 미술관을 짓고, 캠핑장을 짓고, 눈길을 끄는 예술적 조형물들이 곳곳에서 자태를 뽐낸다. 어느새 이곳은 한 해에 국제예술제를 세 번씩이나 치르는 꿈꾸는 예술섬이 되었다.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로 런던의 역사성과 현재를 잇다.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템스 강변의 수많은 공장들 중 하나인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는 1960년대 런던 시내에 전기를 공급해 산업의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던 영국도 1980년대에 들어서자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경기쇠퇴기를 맞았다. 산업 유물로 애물단지 신세가 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도 20여 년이나 방치되던 끝에, 다행히 미술관 부지를 물색 중이던 테이트 재단이 눈여겨보았다. 이미 밀뱅크 교도소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성공한 이력이 있는 테이트 재단에서, 화력발전소의 역사성과 현재적 삶의 역동성을 잘 조화시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성공적으로 완공했다. 덕분에 지역민들의 문화?예술?경제를 발전시키고, 밀레니엄 브리지와 손 맞잡고 런던 전체의 문화?역사의 공간까지 이어주는 시너지효과를 톡톡히 발산하고 있다.
토론토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시간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조율
과거의 구더햄 앤드 워츠 양조장은, 현재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역사지구로 탈바꿈해 역사?문화 자산을 재생해 상업적으로 성공한 곳이다. 산업유산이 지닌 가치와 역사성을 지키면서 예술과 상업, 문화가 자연스레 스며들게 했을 뿐 아니라 예술인과 방문객,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공조하고 참여하는 개방적 재생을 통해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의 장소성은 과거와 연결된 현재성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그와 같은 장소성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연계해,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가까이 자리하게 했다. 사람들의 삶이 떠난 ‘멈춘 공간’이 아닌, 시대의 변화와 함께하는 ‘생명력 있는 공간’이 된 셈이다. 과거의 산업유산은 현재의 문화와 예술, 사람과 조화를 이룬다. 앞으로도 이러한 조화는 이곳의 변모와 발전에 지속적인 버팀목이 될 것이다.
뉴욕을 품은 하이라인 파크
‘죽은 공간을 다시 살리자’라는 구호 아래 프리랜서 기고가 조슈아 데이비드, 창업 컨설턴트 로버트 해먼드를 중심으로 결정된 ‘하이라인 친구들’은 뉴욕의 폐고가철도를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생하기 위해 생계를 마다하지 않고 달렸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이 그들은 수많은 장애물을 넘고 넘어 후원자를 모으고, 법률가의 자문을 받으며, 건축가, 조경가, 뉴욕을 사랑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시켰다. 각종 정치적?경제적 이권 다툼의 장애물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정치가, 사업가, 유명 연예인, 언론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조와 지지 아래 무엇보다 시민들의 탄탄한 응원을 받으며 결국 하이라인 파크를 조성했다. 15년이라는 긴긴 싸움과 노력과 열정 끝에……, 그렇게 도시는 재생되는 것이다.
다산쯔 798예술구, 문화혁명으로 무너진 역사와 문화를 새로이 생성하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하는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그러는 동안 중국의 귀중한 역사와 문화유산은 무참히 파괴되었다. 그나마 근대화가 퇴색해진 ‘베이징 화베이 무선전신연합 기자재공장’지대, 798?797?718?707?706 등 ‘7’자 돌림인 여러 개의 국영 공장에서 역사와 문화의 불씨를 살려간 것은 다행한 일이다. 여기서 잉태한 다산쯔 798예술구가 바로 이곳이다. 여러 예술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쑤이젠궈, 황루이, 쉬융, 장샤오강, 위에민쥔, 팡리쥔, 등이 예술과 문화를 결합하여 민중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주는 장을 펼쳐갔다. 그런데 다산쯔 798예술구가 점점 활성화되면서 예술이 자본과 결탁하여 차츰 그 순수성과 빛을 잃어간다고 중국 현대미술의 선구자인 리셴팅은 안타까워한다. 도시재생의 과정에서 자본가들이 민중들의 터전에 발을 들여 부를 축적하는 도구로 예술과 문화의 순수성을 흔드는 일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책속으로
도시는 특별한 무엇이기보다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내일 이 역사로 쌓여가는 공간이자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삶의 공간 자체다. 따라서 그 곳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며, 그곳을 찾는 여행자에게는 색다른 즐거움과 또 다른 일상을 선사하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도시를 잘 들여다보면 당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시간의 흐름 에 따라 도시가 변화해온 흔적이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 의 이미지를 만나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는 소중한 기억들이 끝없이 쌓여가는 장소다. 시간 이 흘러가면서 도시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빚어낸다. 그리고 도시를 향한 사랑과 관심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회자되면서 도시의 삶에 영향을 준다.--- p. 14~15
파리에는 아름답고 웅장한 공원이나 유서 깊은 정원이 많다. 그중 프롬나드 플랑테가 주목받는 것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과 수려한 환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버려져서 도시 미관을 해치고 치안을 불안케 하는 산업 유물의 가치를 다시 판단하고, 그 역사적 의미와 환경 조건 등을 냉철하게 평가하여 차별화된 공원으로 되살려내어 시민에게 돌려준 노력이야말로 프롬나드 플랑테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또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랑받는 공간으로 가꾸고 있는 것도 프롬나드 플랑테가 도시재생의 선구적인 성공 사례로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다.--- p.32
나오시마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답의 원리는 ‘예술’이라는 주제를 ‘지역의 모습’과 ‘주민의 삶’을 중심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데에 있다. 그곳만이 지닌 고유의 지역성과 사람들의 힘을 바탕으로 민관이 함께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예술을 테마로 삼았으면서도 주민이 주체가 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사례가 될 수 있었다. --- p.50~60
테이트 모던 사례를 살펴보면, ‘미술관 하나를 지었을 뿐인데 지역사회가 어쩌면 저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 사례에서 관광 효과, 주민의 문화예술 활동 상승, 지역의 슬럼화 극복,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큰 변화를 이루어낸 것을 보게 된다. 바로 도시재생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 p.77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첼시 부동산 지주 단체 인 ‘에디슨 프라퍼티스’에서 하이라인 후원자들에게 ‘하이라인의 현실’이라는 전단지를 발송했다.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눈 씻고 봐도, 하이라인의 잡초에서도 돈은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이런 캠페인은 ‘하이라인 친구들’을 긴장시켰다 --- p.119
‘하이라인 친구들’의 꿈과 도전은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그들은 여전히 하이라인 곳곳을 누비며 하이라인이 살아 숨 쉬도록 돕는다. ‘하이라 인 친구들’에게는 세 가지 바람이 있다고 한다. 하이라인이 언제까지나 뉴욕 시민의 사랑을 받는 것. 하이라인만의 프로젝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에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창립자인 로버트와 조슈아가 없더라도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 p.149
798예술구’는 앞으로도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며 각지에 영향을 주는 ‘성공한 도시재생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 뒤에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의지는 안타깝게 희생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곳이 내실을 갖춘 지속 가능한 예술구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성장’에 집중한 시스템이 아닌,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재창조해 나가는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798 스타일을 모델로 삼아 예술을 중심으로 한 도시 재생을 준비하는 단체나 지자체는 798지구의 과정과 결과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단지 벤치마킹을 위해 둘러보고 차용하는 방식은 지역과 어우러진 성공적인 정착을 이끌어낼 수 없다. --- p.176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여기저기에서 도시재생이 이슈가 되면서 붐처럼 일어나고 있다. 행정 목표 아래 시간에 쫓기듯 진행되는 도시재생은 성공할 수 없다. 도시의 정체성과 주민의 삶,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전제로 하여 대상에 알맞은 성찰과 철학을 동반한 채 모두가 함께 참여해야만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주거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재생은 낙후 공간을 개선하여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가치를 설정해야 한다. 유휴 공간이나 산업유산 등을 재생할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애써 만들어온 결과물이 금세 자본이나 정치 같은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거나 엇나가고 만다. 주민들이 참여하고, 행정과 자본, 전문가가 함께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도시’라는 대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하고, 사람과 도시 모두 그 공간과 시간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삶이 중심이 되는 도시라는 인식과 체계를 갖춘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우리의 도시는 삶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건강한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 p.182~183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부와 건강,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해답 / 저자 제프 스펙|역자 박혜인|마티 |2015.01 원제 Walkable City
저자 제프 스펙 JEFF SPECK은 도시 계획가이자 디자이너로 실무, 강연, 저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기존 도심의 체계적인 정비와 재개발을 강조하는 스마트 성장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핵심 주창자이다. 미국 국가예술기금의 디자인 디렉터와 ‘도시 디자인 시장 협회’(MAYORS' INSTITUTE on CITY DESIGN)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교외화를 막기 위한 연방 프로그램인 ‘커뮤니티 디자인 주지사 협회’(GOVERNORS' INSTITUTE on COMMUNITY DESIGN)를 창설했다. 큰 화제를 일으킨 베스트셀러 『교외 국가』(SUBURBANNATION)와 『스마트 성장 매뉴얼』(THESMARTGROWTHMANUAL)등의 책을 썼다.
역자 박혜인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동대학원에서 구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문제를 다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병행하며, 건축과 사회, 도시의 상호작용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목차
들어가며
워커빌리티란 무엇인가
Part 1. 왜 워커빌리티인가?
1. 걷기, 도시의 장점
2. 조니가 걸을 수 없었던 이유
3. 녹색은 좋은 색이 아니다
Part 2. 워커빌리티로 가는 10단계
쓸모있는 걷기
단계 1. 차를 두고 다녀라
단계 2. 용도를 섞어라
단계 3. 주차할 권리를 쟁취하라
단계 4. 대중교통 시스템을 작동시켜라
안전한 걷기
단계 5. 보행자를 보호하라
단계 6. 자전거를 환대하라
편리한 걷기
단계 7. 공간을 만들라
단계 8. 나무를 심어라
흥미로운 걷기
단계 9. 친숙하면서 독특한 거리를 만들라
단계 10. 승자를 뽑아라
옮기고 나서
주(註)
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당장 걷게 하라, 그러면 많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서울시는 지금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이다. 홍대앞, 상수동, 이태원, 가로수길 등 서울에서 지금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보행자 중심의 길이다. 상권을 홍대에 빼앗긴 신촌이 선택한 방법도 차를 막아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 하이라인에서 서울역 고가공원 계획을 발표하고 자동차도로를 걷을 수 있는 길로 바꾸려 애쓰고 있다.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목적 등이 뒤섞여 있지만 도시와 지역이 흥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걸어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프 스펙의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원제: Walkable City)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도시에서 걸어다니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미국 여러 도시에서 도시 설계와 도시 재생에 참여한 저자는 추상적인 이론과 탁상행정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저자는 “당장 걷게 하라! 그러면 많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얼마나 맘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지, 그 척도를 나타내는 ‘워커빌리티’가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워커빌리티 점수를 매기는 사이트는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트 중 한곳이 되었다. 워크스코어 사이트에서는 보행 점수에 따라 도시를 5개 카테고리로 분류하는데(26쪽), 점수에 따라 부동산값이 정해지는 경향까지 더해져 하루 방문자 수가 40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워커빌리티 100점을 받은 도시는 대표적으로 뉴욕. 50점 이하를 받은 도시들이 대개 살기에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수도 없이 많은 교외지역이 10점 이하를 받는다. 매 쪽마다 생생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이 책은 1부를 통해 ‘워커빌리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 다음, 2부를 통해 워커빌리티 100점을 받기 위한 10가지 실천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동수단이 삶의 방식보다 중요하다
제프 스펙은 우리에게는 『킨포크』라는 요리책으로 알려진 도시 포틀랜드를 예를 들며 워커빌리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다른 도시들이 성장을 위해 앞다투어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수십년 전부터 포틀랜드는 대중교통시스템과 자전거 활성화에 투자했다. 1인당 이동거리, 1인당 자동차에 쓰는 비용, 도로 위에 머무는 시간 등 각종 지표와 통계를 통해 이동 수단의 변화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꼼꼼히 추적한다. 어떤 지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 인구가 증가하고 그 이후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식의 발전 단계는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정반대로 더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38쪽) 다른 모든 조건을 초월하는 것이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의 위대한 힘’이라고 말한다. 이는 끝없이 이어진 교외와 공동화된 도심지가 만연한 미국 도시에 내려진 진단이지만, 국내도시에도 거의 그대로 유효하다. 부산, 대구, 전주, 진주 등 도심지의 인구감소와 경제 활동 둔화로 골치를 썩지 않는 도시가 없을 정도다. 인구 감소와 신도시 개발이 한계에 달한 지금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만들기는 한국의 과제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기자동차는 시작부터 잘못된 대안일 뿐이다. 자동차는 단지 연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운행를 위한 엄청난 기반 시설의 건설과 유지를 요구한다. 낭비되고 오염되는 근원은 도로에 있는 연비 나쁜 자동차가 아니라, 이 자동차로 가능해진 모든 일들이다. 교외도시, 새 도로, 과도한 비용이 드는 비효율적인 전력망, 똑같이 반복되는 상점과 학교, 거리에 버리는 시간…. 저자는 “이동수단이 삶의 방식보다 더 중요하”고 아울러 “이동 수단이 삶의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고 단언한다.(59쪽)
워커빌리티의 10단계
제프 스펙의 지적대로 대부분의 도시 계획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 교통체증이 심해지면 도로를 넓히고 혼잡비를 부과한다. 자동차 소음이 심각하면 방음벽을 설치하고, 야간범죄율이 높아지면 가로등을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한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워커빌리티’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1단계: 차를 두고 다녀라
보행자를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당연히 차를 두고 다니는 것일 것이다. 저자는 교통체증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하나하나 지적한다. 일례로 고속도로 투자액이 높을수록 도시의 자산가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이 어디에 있는지보다 고속도로 투자액의 차이에 따라 도시의 활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통량 증가 중 상당량은 도로를 건설했기에 생기는 ‘만들어진 수요’이며 오늘날 도시계획에서 가장 불필요한 작업은 교통체계 연구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우리의 도시는 단지 자동차가 통과하는 곳이 아니라 도착하기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단계: 용도를 섞어라
도시의 땅을 용도에 따라 엄격하게 나누는 조닝(zoning) 대신 용도를 섞는 것이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이다. 활기 있는 도심을 만들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답은 대개 주거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세금 감면, 토지 거래, 입주 혜택 등으로 기업을 유인하는 관례적인 제로섬 게임은 더 이상 사업체를 도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좋은 전략이 되지 못한다. 더 싼 세금이 있는 곳으로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기 대문이다. 적정한 가격의 주택을 더 많이 건설하고 거주자들이 원하는 공공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거주자들을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3단계: 주차할 권리를 쟁취하라
세 번째 조언은 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도시 전체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라는 것이다. 용도별, 지역별 주차장 의무 설치 제도 등의 모순과 난점을 지적한 뒤, 저자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두 도시를 비교한다. 비슷하던 두 지역이 주차장 제도를 바꾸면서 어떻게 극적으로 달라졌는지를 통해 저렴하고 넓은 주차장이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4단계: 대중교통 시스템을 작동시켜라
대중교통 이용 비율이 지극히 낮은 미국의 경우와 한국의 도시를 나란히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대중교통은 걷기와 직결된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거의 모든 대중교통 이용은 걷기로 시작하고 걷기로 끝난다. 결과적으로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대중교통 수단은 이용률이 지극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워커빌리티와 동떨어진 대중교통 체계를 도처에서 만난다(용인의 경전철,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자전거 도로나 보행전용 도로 등).
5단계: 보행자를 보호하라
저자는 보행자 안전을 위한 다양한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블록의 크기가 교통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부터, 큰 도로를 다이어트해 작은 도로로 만드는 방법, 좌회전 반경에 관한 조언, 교차로에서 운전자가 보이는 시야각과 도로의 형태 등 실제로 적용 가능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
6단계: 자전거를 환대하라
흔히 사람들은 날씨와 지형 때문에 자전거가 도시의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알래스카 바로 아래에 있는 유콘이 샌프란시스코보다 자전거 통근자가 두 배나 더 많고, 언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가 평지 도시인 덴버보다 세 배나 자전거 이용률이 높다고 말한다. 자전거 도시를 만드는 데에는 환경이나 문화보다 물리적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전거가 전용도로를 이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동차와 함께 다니는 것이 바람직한지, 도로폭은 어때야 하는지 등등 구체적인 제안들이 이어진다.
7단계: 공간을 만들라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 건물의 형태가 아니라 공간의 형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형태를 갖는 사물을 숭배한 근대 도시는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개개의 필지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서 있는 건물은 가로의 연속성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최근 스타 건축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역시 생태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잘 조직된 공공공간은 등한시한다고 꼬집는다.
8단계: 나무를 심어라
가로수가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통념과 달리 가로수가 조밀하게 있는 지역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다. 뿐만 아니라 가로수를 25퍼센트 더 심으면 담수 능력은 10퍼센트 늘어난다. 이 늘어난 10퍼센트만으로도 ‘합류식 하수도 범람’(장마철 서울에서 흔히 일어나는)을 거의 다 막을 수 있다. 또 저자는 병충해를 두려워해 한 지역에 여러 수종을 심는 일을 꺼리는 것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9단계: 친숙하면서 독특한 거리를 만들라
걷게 하려면 안전하고 편안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즐거움도 있어야 한다. 도심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급스러운 조경보다 평범한 상점 입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거리의 상점 폭, 건물 입면의 깊이 등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전 세계 도시들이 흉내내지 못해 안달인 구겐하임 빌바오가 도시에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한다. 또 녹지와 자연의 요소를 도입할 때에도 도심지가 취해야 할 전략은 교외와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10단계: 승자를 뽑아라
저자는 위에서 말한 9단계를 다 따르면 도시 재정이 파탄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크게 달라질 곳을 정해,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서울 곳곳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 있지만 그 거리는 대개 도시를 잇는 ‘선’이 아닌, 곳곳에 박혀 있는 ‘점’ 같은 장소들이기 일쑤다.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가야 한다. 주말에 차를 막고 만든 불과 수백 미터 남짓한 ‘걷고 싶은 거리’를 벗어나면 여전히 도시는 걷기에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도시 곳곳에 들어선 거대한 몰은 하나의 섬이다. 사람들은 그곳까지 가야 걸어다니며 쇼핑하고 실내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길을 걷는다. 서울을 보행자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계획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이 책은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고,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계획가들에게 훌륭한 매뉴얼이 될 것이다.
- 조닝은 용도를 분리한다. 스프롤은 용도를 지나치게 분리한 나머지 너무 많은 움직임을 낳았기 때문에 문제이다.
- 도로를 넓히면 교통량이 더 많아진다. (만들어진 수요)
- 워크스코어는 부동산과 연계되어 널리 이용되었다.
- 레온 크리에는 '수직 쿨데삭'을 주장하며 건물 높이를 제한하자고 했다.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서는 걷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 배터리 파크는 큰 마스터플랜 아래 조금씩 조금씩 민간 기업들이 개발하도록 되어 있다
책속으로
...세계적으로 걷기 좋은 도시들의 공통점은 바로 우리 계획가들이 '조직(fabric)'이라 부르는 요소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 영역에 도시의 여러 상징물과 거리, 블록, 건물이 한데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이 '조직'이다.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워커빌리티를 개선하려 하기 때문이다. ... 이러한 노력으로 과연 보행을 위한 환경이 만들어졌을까?
...밀레니얼즈 같은 창조적인 세대는 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삶을 매우 선호하는데, 이러한 문화는 오직 워커빌리티를 통해 형성될 수 있다.
도시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을 때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은 세 가지 주요한 측면에서 비롯된다. 첫째, 도시 생활은 '창의적인' 젊은 인구를 끌어들인다. 둘째, 이러한 젊은층의 흐름은 잠재적인 도시 생활자들을 자극시켜 더 많은 인구 이동을 불러일으켜 향후 수십 년간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지속된다. 셋째, 걸어다니면 이동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이 비용은 지역 경제 내에 머물게 된다.
보행친화적인 장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지역별 워커빌리티를 측정해 제공하는 웹사이트 '워크스코어'도 덩달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50점 이하는 자동차 의존적인 도시, 50점 이상이면 어느 정도 걸어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70점 이상이면 걷기에 아주 적합한 도시, 90점 이상이면 보행자의 천국으로 불릴 자격을 얻는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과 뉴욕의 트라이베카가 100점을 받았다. 반면 로스앤젤레스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점수는 9점이었다. ... 워크스코어는 부동산 중개업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근 몇 년간 눈치 빠른 몇몇 경제학자들은 워크스코어와 부동산 가치 사이의 관계를 연구했고, 워크스코어 1점당 500에서 3만 달러의 값을 매겼다.
...이제 사람들은 도시로의 '전도유망한 탈출'을 꾀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가 지식기반형 일자리와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을 바탕으로 매력적인 도시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 층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높은 삶의 질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거주자와 일자리가 뒤따른다.
전기를 이용해 움직이는 자도차는 알고 보면 석탄 연료를 사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연소과정만 보면 석탄보다 차라리 석유가 친환경적이다.
"인간은 파괴적인 종족이다. 당신이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라. 환경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시 중심부에 모여 사는 것이다." 뉴욕처럼 친환경적인 도시는 미국 어디에도 없다.
활기 넘치는 거리 풍경의 세 가지 적은 주차장, 드럭스토어, 스타 건축가이다. 이 셋은 모두 꽉 막힌 벽과 반복을 좋아하고 걷기에서 즐거움을 얻으려는 보행자의 욕구를 묵살한다.
미국에서 스프롤 머신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1983년 이래로, 자동차 운행거리를 인구 증가율의 8배만큼 늘어났다.
...계획가들은 도시 과밀을 완화하고 주거지를 이동시키며 공장들을 멀리 분산시킴으로써 위대한 첫 성과를 거두었다. ... 그리고 모든 것을 분리시키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행위의 일부로 도시를 분해하는 조닝(zoning)이 널리 퍼졌고, 이것은 대부분의 미국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규칙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적어도 학계에서는 녹지 위에 고층 주거를 세우는 도시계획이 또다시 우위를 점했다. 현재 이러한 경향은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으로 탈바꿈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표면상으로는 각 대지의 자연적인 생태를 최우선시 하지만, 결국 잘 빚어낸 공공공간을 등한시한다는 것이 새롭게 알려지게 되었다. ... 스타 건축가들은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을 아주 좋아하는데, 건물 사이의 거리가 멀어 건축물이 마치 조각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패턴 랭귀지>에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건물의 높이를 4층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층 건무링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양한 증거가 있다"고 적는다.
도시의 발견 행복한 삶을 위한 도시인문학/ 저자 정석|메디치미디어 |2016.09.
정석-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13년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근무했다.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보전, 도시경관, 걷고 싶은 도시, 마을 만들기 등 여러 도시설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2004년부터는 동북아 도시연구센터장을 맡아 중국과 북한의 도시를 연구했다. 현재 마을 아카데미와 지역 연구소 등에서 다수의 강연을 하고 있다.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를 출간했고, 연구 저서로 『서울시 보행환경 기본계획』, 『북촌 가꾸기 기본계획』, 『집은 인권이다』,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도시도 셀프다
1장 행복의 조건, 도시: 도시가 행복해야 내 삶도 행복하다
마을과 도시에서 행복하세요?
어떤 도시에서 살아야 행복할까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말해야 압니다
엄마 같은 도시, 생선 같은 도시
도시를 뒤흔든 모더니즘
제인 제이콥스의 반격: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제인 제이콥스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도시
2장 도시에 대한 편견 깨기: 물건이 아닌 생명처럼, 연인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크리스마스트리
홀로서기와 늘어서기
무지개떡 건축과 섞어찌개 도시
동네 술집의 가치
거리도 살리고 가게도 살리려면?
스카이라인 말고 보디라인을
도시 생태계와 종 다양성
3장 무엇이 도시를 움직이는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시민
재개발이 시작되는 곳
청계천 복원과 스펙터클의 정치학
지하철 노선이 구불구불한 이유
주객전도 민자역사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
도시는 결국 정치다
4장 국내외 도시혁신 실험: 도시를 바꾸는 사람들
도시의 로빈후드와 돈키호테
시애틀의 작은 시청 운동
도시의 노래, 쿠리치바의 도시혁신
‘도시재생’에서 ‘지방창생’으로 탈바꿈한 일본
서울시의 도시혁신, 체감행정과 소통행정
서울시 도시혁신의 모범생, 성북구
수원시의 ‘자동차 없는 도시’ 실험
전주시, 대기업과 맞짱 뜨다
5장 변화의 시작, 마을: 내 삶에 맞게 마을부터 바꿔라
믿을 건 오직 마을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쪽지 한 장
공동주택에서 공동체주택으로
마을로 귀환하는 청년들
이민 말고 이사를, 이사 전에 꼭 할 일
고쳐 쓰는 리디자인 시대
작은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
맺음말-시민, 그대에게 달렸다
참고문헌
출판사서평
“도시는 정치다”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시장(市場)인가, 시장(市長)인가?
도시에 관한 편견을 깬 다음에 할 일은 현재 도시를 움직이는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시장(市場)인가, 시장(市長)인가? 저자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개발 사업을 눈여겨보라고 주문한다. 재개발은 환경이 열악한 곳이나 주민의 필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성이 있는 곳, 표심을 모을 필요가 있는 곳에서 재개발 열풍이 조장된다. 자본이 주도하는 재개발, 관이 주도하는 도시 행정은 평범한 우리의 삶과 상관없어 보일지 모른다. 자본과 권력은 도시를 ‘팔고 싶은 도시’로 만들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고 싶은 도시’이다. 저자는 파는(selling) 도시와 사는(living) 도시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를 위해 도시를 움직이는 것이 결국 정치임을, 자본과 권력을 직시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과 권력이 어우러져 벌이는 도시정치에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도시가 정치라면 시민들도 정치적이어야 한다. 수(數)를 모아 힘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자본과 권력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정치력이다. 자신이 원하는 도시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한 명의 힘으로 부족할 때는 여럿이 모이라고 말한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라는 정치 표어처럼 이 책은 도시계획에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뭉쳐야 함을 말하고 있다. 어렵고 먼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이 진정한 도시의 주인이기에 당연히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꼼꼼히 따져보면서, 적게는 수 년, 많게는 수십 년을 살아가는 도시는 왜 그저 주어진 대로 살까? 도시가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고, 도시가 행복해야 그곳에서 사는 우리가 행복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행복한가? 이 도시는 안전한가? 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수선해서 입는 것처럼, 도시가 내 삶과 맞지 않거나 불행하게 한다면 이를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도시를 바꾸면 내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시민들이 도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
도시가 정치라면, 시민도 정치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순진하게 ‘살기 좋은’ 도시를 바라며 살지만, 권력과 자본은 아주 영리하게 ‘팔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판다. 낙후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되레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일컫는 ‘젠트리피케이션’은 흔한 용어가 된 지 오래다. ‘뉴타운’이란 번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재개발 사업은 도시 곳곳을 헤집고 있다. 동네가 뜨면 살고 있는 주민도 떠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 가꾸기 사업, 인사동 보전 등 이곳저곳에서 20여 년간 도시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도시설계 전문가인 저자 정석은 도시를 움직이는 힘이 자본과 권력에서 시민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도시가 정치적 공간임을 발견하고, 시민이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렵고 먼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자치 단체(서울, 전주, 수원, 성남 등)의 사례와 프랑스, 미국, 브라질 등의 사례에서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이 도시를 바꾼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정치적 시민이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움직이면 관(官)도 변한다. 취임하자마자 ‘행복도시’를 캐치프레이즈로 꺼내든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혁신 시도, 수원시의 ‘자동차 없는 날’ 실험, 전주시의 전통문화도시 프로젝트 등은 개발주의 일변도로 달리던 도시계획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이 대기업과 거대 자본에 의해 복제·획일화되고 있는 사태를 비판하며 각 도시의 개성을 찾고, 다양성을 살리는 방법이 진정한 도시 혁신임을 주장한다. 또한 저자가 서울시립대 학생들과 함께 펼친 ‘빈집활용’, ‘아파트 리디자인’, ‘마을 만들기 그 이후’ 등의 프로젝트는 청년들이 도시와 마을에 관해 고민한 흔적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고무적이다.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물론 집값으로 표현되는 동네의 가치도 오르고, 도시의 품격이 높아져 방문객이 늘어난 것이다. 그 밖에도 시애틀의 작은 시청 운동, 쿠리치바의 생태교통, 지방창생을 꿈꾸는 일본까지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민관 협력의 바람을 이어서 보여주고 있다.
“내 삶에 맞는 도시로 바꿔라”
인간의 행복과 직결된 도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의 시간과 자원,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이웃 간에 잘 모르는 사이가 된, 익명성이 강한 오늘날의 도시에서는 어떨까? 그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도심 속 마을이다.
현재 살고 있는 도시가 그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곳임을 깨닫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서울 성미산 마을은 공동육아를 주제로 모인 이웃들이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주택을 지으며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며 살고 있다. 각 세대 주민들이 공간을 조금씩 내놓아 마당과 도서관 등 문화공간을 만든 부산 일오집 사례도 마찬가지다. 저자 역시 도시를 ‘삶터’로 정의하며, 나와 우리의 삶을 품어주는 곳이자 우리 아이들이 오래도록 살아갈 세상으로 본다. 자신의 집에는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면서 정작 매일 다니는 골목길이나 공유 공간에는 무관심한 세태를 꼬집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는 행복의 조건이다. 행복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다리지 말고, 남에게 시키지 말고, 내가 스스로 도시를 챙겨야 한다. “도시는 셀프다.”
책속으로
사이좋은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어느 여름날 서로 싸웠는데, 싸움에 진 한 마리가 죽어서 물 위로 떠올랐다. 죽은 붕어의 살이 썩어가자 물도 따라 썩게 되었고, 결국 연못 속엔 아무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슬픈 노래다.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마다 ‘마을’과 ‘도시’가 떠오른다. 똑같지 않은가? 연못이 붕어들의 삶터인 것처럼 마을과 도시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삶터다. ---「마을과 도시에서 행복하세요?」중에서
프루이트 아이고는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인 미노루 야마사키가 근대주의 정신에 입각해 설계하여 가장 완벽한 주거단지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런데 이 주택단지가 도시 범죄의 온상이란 오명을 쓰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것이다.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의 철거는 모더니즘 도시계획의 종언을 알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모더니즘 도시계획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제인 제이콥스 덕에 오직 모더니즘으로만 내달리던 서구 도시계획은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도시를 뒤흔든 모더니즘」중에서
안전한 마을과 도시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마다 그 길을 지켜볼 수 있는 감시의 눈길이 늘 머물게 하는 것이다. 가게들이 늦게까지 문을 열고, 사람들이 늘 오가는 길을 만들면 된다. 도시를 유기체나 생명체라고 하면 길은 핏줄과 같다. 핏줄에 피가 돌 듯 거리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갈 때 도시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 건강한 핏줄에 피가 막힘없이 돌 듯 우리가 사는 도시의 거리마다 사람들이 늘 오간다면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다. 큰 핏줄뿐만 아니라 모세혈관까지, 좁은 골목길까지 말이다. ---「감쪽같이 사라진 크리스마스트리」중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다 보면 어느 역이 자력처럼 힘을 작용해 곧게 뻗어야할 노선을 이리저리 구부리고 심지어 뒷걸음치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은 노선과 덜 받은 노선의 차이까지 발견할 수 있다면 도시 시민으로서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는 증거다. 지하철역의 위치와 촘촘함도 비교해보자. 지하철역 이름을 둘러싼 줄다리기와 힘겨루기도 발견해보면 좋겠다. 도시는 이렇게 많은 힘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움직여간다. 도시를 움직이는 힘을 감지하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훨씬 더 자세히 보일 것이다.---「지하철 노선이 구불구불한 이유」중에서
“진보적 도시란 가난한 사람까지 자가용을 타는 곳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이다.” 이 말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이용을 우월하게 여기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또 좋은 도시에 대한 페날로사 시장의 철학에도 귀 기울여보자. “고속도로가 많이 놓인 도시가 위대한 도시가 아니다. 도시 어디에서든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진정 위대한 도시다.” ---「도시의 로빈후드와 돈키호테」중에서
주민들이 마음먹고 결심하면, 주민들이 뜻을 하나로 모으면, 마을은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 먼저 내가 살고 있는 마을부터 구석구석 살펴보자. 그리고 지금보다 좀 더 살만한 동네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지금 내가 이민을 가려고 하는 그곳도 처음부터 좋았을까? 아니다. 자신의 삶터를 지키고 가꾼 주민들과 시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얻어낸 귀한 결실이다. 공짜는 없다. 노력한 만큼 얻는 법이다. ---「이민 말고 이사를, 이사 전에 꼭 할 일」중에서
도시의 운명은 주인에게 달렸다. 마을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이 없는 마을과 도시의 미래는 암담하다. 주인이 있어도 스스로 주인임을 모르고 그 역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면, 그 마을과 도시는 희망이 없다. 내가 원하는 마을과 도시를 만드고 바꾸면서 주인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지금처럼 각자가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자본과 권력이 도시를 맘껏 헤집고 다니도록 놔둘지는 우리의 선택과 결심에 달렸다. 시민, 그대에게 달렸다. ---「맺음말: 시민, 그대에게 달렸다」중에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저자 제인 제이콥스|역자 유강은|그린비 |2010.0
원제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저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1916년 5월 4일에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스크랜턴트리뷴』의 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간 후, 1952년에 『건축포럼』의 부편집장이 되었다.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던 중 이런 프로젝트가 운영된다 할지라도 도시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도시계획의 전통적인 믿음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도시계획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계속한 제이콥스는 1961년 출간과 동시에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책으로 인정받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외에도 『도시의 경제』(1969), 퀘벡의 주권 문제에 관해 고찰한 『분리주의의 문제』(1980), 세계경제에서 도시와 도시지역이 갖는 중요성에 관한 주요 연구서인 『도시와 국가의 부』(1984), 그리고 『생존의 체계』(1993) 등을 썼다. 1968년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뒤에도 도시계획과 주거정책 개혁에 관한 충실한 조언자로 일했던 제이콥스는 대규모 고속화도로 건설 반대 캠페인과 도심 근린 주거지역 해체 반대 캠페인에 앞장섰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살리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그는 2006년 4월 25일, 89세의 나이...1916년 5월 4일에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스크랜턴트리뷴』의 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간 후, 1952년에 『건축포럼』의 부편집장이 되었다.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던 중 이런 프로젝트가 운영된다 할지라도 도시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도시계획의 전통적인 믿음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도시계획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계속한 제이콥스는 1961년 출간과 동시에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책으로 인정받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외에도 『도시의 경제』(1969), 퀘벡의 주권 문제에 관해 고찰한 『분리주의의 문제』(1980), 세계경제에서 도시와 도시지역이 갖는 중요성에 관한 주요 연구서인 『도시와 국가의 부』(1984), 그리고 『생존의 체계』(1993) 등을 썼다. 1968년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뒤에도 도시계획과 주거정책 개혁에 관한 충실한 조언자로 일했던 제이콥스는 대규모 고속화도로 건설 반대 캠페인과 도심 근린 주거지역 해체 반대 캠페인에 앞장섰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살리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그는 2006년 4월 25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유강은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에서 활동하였다. 현재는 국제문제를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다. 역서로는 『팔레스타인 현대사』, 『THE LEFT 1848~2000』, 『미국민중사 1, 2』, 『핀란드 역으로』, 『전쟁 대행 주식회사』,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전쟁에 반대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 『더글러스 맥아더』, 『촘스키, 미래의 정부를 말하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침묵시키기』, 『기로에 선 미국』, 『보이지 않는 사람들』등이 있다.
목차
1993년판 서문
감사의 말
서론
1부도시의 독특한 성격
1장 보도의 효용: 안전
2장 보도의 효용: 접촉
3장 보도의 효용: 어린이들의 동화
4장 근린공원의 효용
5장 도시 근린의 효용
2부도시 다양성의 조건들
6장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것들
7장 혼합적인 주요 용도의 필요성
8장 작은 블록의 필요성
9장 오래된 건물의 필요성
10장 집중의 필요성
11장 다양성에 관한 몇 가지 신화
3부쇠퇴와 재생의 힘
12장 다양성의 자기파괴
13장 경계 공백지대의 저주
14장 탈슬럼화와 슬럼화
15장 점진적인 돈과 격변을 일으키는 돈
4부다른 전술
16장 주거 보조
17장 도시의 잠식, 또는 자동차의 소모
18장 시각적 질서 : 그 한계와 가능성
19장 계획단지 구조하기
20장 지구의 관리와 계획
21장 도시 문제는 어떤 종류인가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지은이ㆍ옮긴이 소개
출판사 서평
“도시 재건축은 도시 약탈이다!!”
―1950년대 미국 도시의 흥망을 통해 본 도시의 오래된 미래!
1950년대 미국, 사람들의 귀중한 세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도시계획.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면서도 도시를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흥미롭지도, 활력이 넘치지도 않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목격한 『건축포럼』(Architectural Forum)의 부편집장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2006)는, 그때부터 정통 도시계획 이론의 정 반대편에 서며 계획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도시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의 도시계획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뿐이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과 도시계획가들이 오히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엄밀하고 명징하고 풍자적이며, 문학적이기까지 한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1961년 초판이 나온 이래, 도시를 실제로 이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 제이콥스는 어떤 특별한 건축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다룬다기보다는 도시를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세계로 바라볼 줄 알았던, 게다가 보도의 공중생활을 사랑했던 한 ‘시민’으로서의 소소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개발과 공사가 아니라 조그만 동네와 오래된 건물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도로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임을, 미국 각 도시의 실례를 들어 구체적이고 다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우리가 건설한 것들을 보라. 저소득층 주택단지는 기존의 슬럼보다도 더 심한 비행과 파괴와 전반적인 사회적 절망 상태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도시 생활의 활기나 활력과는 동떨어진 불가사의한 답답함과 획일성의 표본인 중산층 주택단지. 김빠진 천박함으로 공허를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쓰는 호화 주택단지. 좋은 서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화센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랑자들만 찾는 시민센터. 규격화된 교외 체인점 쇼핑을 흐리멍덩하게 모방한 상업센터.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산책하는 이 하나 없는 산책로. 대도시의 속을 들어내 버린 고속화도로. 이런 건 도시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다.” (본문 22쪽)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혹은 누가 살고 있나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폭력은 무지(無知)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파괴, 어떤 폭력. 개별 존재에 가해지는 폭력, 그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기가 쉽다. 도시란 곳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과잉축적의 위기를 공간의 부단한 생산과 파괴를 통해 잠정적으로 해소하는 곳인 까닭에, 이런 폭력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제인 제이콥스가 살던 시기의 뉴욕, 이스트할렘. 그곳에 새로 정비된 한 저소득층 주택단지에는 눈에 띄게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잔디밭이 있었다. 지역 관계자들은 그 잔디밭을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참 예쁘군요.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거 다 누리는군요.”(본문 36쪽)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헐어 버리면서 자신들의 동네를 커피 한 잔, 신문 한 부 구할 데 없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그 잔디밭을 좋아할 수 없었다. “누가 저게 필요하대요?” “어느 누구도 이곳을 지을 때 우리가 뭘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 당국과 개발 관계자들. 그들은 지역 주민들, 혹은 그들의 삶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폭력을 휘둘러 서류상의 정의에 의해 ‘슬럼’으로 명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살기 좋았던 곳을, 단돈 5센트도 빌리기 어려운 명명백백한 슬럼으로 만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1950년, 혹은 60년대의 미국의 모습은 2000년대에 세계 곳곳에서, 또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개발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개발해 내는 데 실패했다. 도시가 어떻게 살아서 움직이고 작동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던 소수 전문가 집단의 결정으로 그 몇십, 몇백, 몇천 배 되는 사람들의 삶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상황. 용산 참사에서도, 평택 대추리에서도, 수많은 뉴타운 지구, 그 어디에서도 정부 및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일상의 흐름, 그들의 네트워크, 삶의 터전, 생활방식에 대해 화폐 이외의 다른 가치로는 고려한 적이 없었다. 50년 전의 이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그런 식의 일방적인 개발이 가져오는 도시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 개발로 죽어간 미국의 많은 도시들과 우리나라의 지역들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시의 죽음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의 주거 보조의 다양화
지난 1월 한 신문보도에 따르면, 서울인구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시원에 산다. 현대판 쪽방이라고 불리는 고시원은 애초에 주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나 고시생은 물론이고, 직장인, 외국인 노동자, 결혼한 부부들까지도 비싼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그 쪽방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자취를 목적으로 고시원을 선택하는 것은 지방 거주 대학생들의 몫이었으나, 이제는 고시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범주가 꽤 많이 확장된 셈이다. 50년 전의 제인 제이콥스의 지적처럼, 우리의 도시에는 공공의 양심상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질의 주거의 값을 치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이콥스의 경우에는 많은 도시에서 주거의 공급 자체가 너무 적어서 과밀 없이는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반면, 지금 우리의 경우에는 주거의 공급 자체는 차고 넘치는데, 단순히 주거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문제가 된다는 것. 서로 다른 이유 때문이기는 하지만 제이콥스의 미국과 우리의 한국은 도시 주거의 일정한 비율에 대해서는 보조가 필요하다는 동일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 주거 보조에서 제이콥스가 문제 삼았던 것은 주거에 많은 비용을 치를 수 없는 사람들, 즉 사기업에 의해 주택을 공급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통계―소득!―에 기초하여 죄수같이 특별한 주거요건을 가진 통계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소득층 사람들은 도시의 주거 보조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유토피아론자들이 이리저리 갖고 노는 특별한 기니피그 집단이 되는 것이다. 도시를 하나의 ‘과제’로 생각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여 본다면, 그리고 그 대상화가 되는 척도가 단지 그들의 소득수준일 뿐이라면, 도시 발명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결론도 단지 소득수준에 따른 방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도시 개발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주거 보조의 문제에서는 더더욱 사람들의 여러 가지 스펙트럼과 다양한 사정이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른 결정권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도시의 문제들이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도무지 생기와 활기가 생기지 않는 지역, 아무리 예쁘게 꾸며 놓아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원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살기 좋은 도시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슬럼과 비슬럼을 가르는 기준의 모호함
제인 제이콥스가 보스턴 최악의 슬럼가로 불리는 노스엔드(North End)에 갔을 때, 그녀는 도시계획 및 지역 관계자들의 정의에 따라 ‘슬럼’이 된 그곳의 생기를 경험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본문 29쪽) ‘타칭’으로 슬럼가가 된 노스엔드는 보스턴에서 청소년 범죄율과 발병률, 결핵 사망률이 가장 낮은 곳이었고, 필요한 여러 종류의 가게가 뒤섞여 있었고, 뛰어노는 아이들과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쾌활하고 다정한 거리를 가진 곳이었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슬럼’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던 제이콥스가 보스턴의 도시계획가에게 이런 사실에 대해 말하자 그 도시계획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거긴 끔찍한 슬럼가예요.……어쨌든 거기는 재건축해야 돼요. 그 사람들을 거리에서 빼내 줘야죠.”
당시 노스엔드를 가 본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노스엔드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 통계 자료들 또한 그런 본능적인 느낌을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그곳을 슬럼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개발할지를 구상하는 것이 본업인 도시계획가들에게는, 자신들을 도시계획 전문가로 만들어 준 모든 이론과 그 내용에 따르면 노스엔드는 나쁜 곳이어야 했다. 슬럼과 비슬럼을 가르는 기준은 이렇게도 모호했다. 아니, 모호하다기보다는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 서울을 지배하고 있는 강남 열풍 역시도 그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실제적인 근거들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강남’은 비싸고 좋은 곳, 상류층이 사는 곳, 상류층에 속하기 위해서는 월세를 내며 살더라도 머물러야 하는 곳이라는 근거 없는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님비(NIMBY)의 불필요함
쓰레기장, 장의사, 고물상…….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이런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님비현상. 이제는 일말의 의문도 들지 않는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 된 ‘님비’는 거의 유일하게 지역 주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주거 환경의 쾌적함을 원한다는 이유로 포장한 부동산 하락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왜 그것이 해로운가? 그것은 과연 얼마나 해로우며 이 해악은 무엇인가?”(본문 314쪽) 하는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대답은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게 만든다. 그저 그런 시설이 들어오면 살기에 안 좋아진다는 것이 유일한 핑계거리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가 말하는 좋은 도시의 조건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바뀌어 있다.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의해 그 지역이 사람들이 꺼리는 안 좋은 곳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 혐오시설들이 들어서는 곳이라면 이미 그곳이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 되었다는 징후이며, 그리고 설사 혐오시설이라 불리는 업종이 들어서더라도 성공적인 지역이라면 그 시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혐오/비혐오의 규정을 넘어 그 시설은 지역에 오히려 다양성을 하나 추가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꺼리는 시설이 동네에 들어서지 않으면 무조건 안심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지역은 쾌적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제인 제이콥스가 보기에는 합법적인 (그리고 몇몇 불법적인) 경제적 용도 가운데 풍요로운 다양성의 부족만큼이나 도시 지구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 당장 어느 계획 지구로 발길을 돌려 깨끗하지만 단조로운 풍경과 텅빈 거리를 본다면 아마 어떤 게 도시의 성공인가에 대한 의문이 쉽게 들 것이다.
도시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양한 인간 활동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구조적 체계인 도시는 다른 종류의 유기체나 물건이 아니라 자체의 관점에서 직접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파악하기 쉽지 않은 짤막한 비유가 도움이 된다면, 아마 최선의 비유는 어둠 속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상상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들판에는 여기저기 불이 타고 있다. 어떤 불은 크고 어떤 불은 작다. 어떤 불은 멀리 떨어져 있고, 어떤 불은 가까이에 점점이 붙어 있다. 어떤 불은 밝게 빛나고 어떤 불은 서서히 꺼져 간다. 크든 작든 간에 각각의 불은 주변의 암흑에 빛을 퍼뜨리며, 이런 식으로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본문 493쪽)
제인 제이콥스가 들고 있는 비유에서, 빛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공간의 모양은 불에서 나오는 빛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 정도만큼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암흑에 형태나 구조를 부여하는 유일한 길은 암흑 속에 새로 불을 붙이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불을 더 키우는 것뿐이다. 도시의 경우, 다양성을 만들어 내고 복잡성을 만들고, 활기를 이끌어 내는 것만이 도시의 암흑에 빛을 비추고, 그곳을 존재하게 만드는 길이다. 오로지 용도의 복잡성과 활기만이 도시를 이루는 부분들에 적절한 구조와 형태를 부여한다는 제이콥스의 주장대로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는 다양성의 과잉으로 오히려 그 다양성이 단일성으로 둔갑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의해 살아 숨쉬던 곳곳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모두 천편일률화하고 있다.
홍대의 경우: 젊음과 유행과 음악의 거리로 불리는 홍대. 그 주변에는 홍대만의 특색 있는 지하보도가 있어, 가난한 뮤지션들은 그곳에서 접이의자를 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들은 그곳에 맘껏 실력을 뽐냈으며, 거리의 아티스트들은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그래피티를 바꿔 그렸다. 짧은 텀으로 열리던 공연들에서는 무대가 되기도 했고, 우연히 만난 음악 지망생들의 갑작스런 합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지하보도는 버스중앙차선 계획의 일환으로 헐리게 되었다.
지하보도를 지키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틈틈이 어떤 움직임이 보였지만, 지역적 특색이나 사람들의 구체적 활동보다는 도시계획의 큰 그림에 맞추는 것이 더 중요시되었던 까닭에 지하보도는 헐렸고, 그나마 ‘문화’를 내세우며 다른 지역과 차별점을 만들어 주었던 홍대의 조그마한 랜드마크는 사라졌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지구의 특색을 담아 내며 다양성을 부각시켰던 홍대 앞 도로는 광화문과, 종로와, 강남과도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마포구 성미산의 경우: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이제 꽤 유명한 지역 공동체가 되었다. 공동육아 모임으로 시작된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헐릴 위기의 성미산을 계속해서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내고,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한 부모들은 대안학교를 세웠다. 공동출자해서 만든 반찬가게는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이 모금을 통해 ‘성미산 마을극장’까지 개관했다. 주민들은 아예 ‘생태 도시재개발 워크숍’ 등을 하면서 끊임없이 도시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하고, 그 지역의 결정사항에 대해 지역 관계자(구청)에게 단순히 통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까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간다. 제인 제이콥스가 만약 이 마을 공동체를 보았다면 자신이 꿈꾸던 살아 움직이는 동네라며 엄지를 치켜들지 않았을까.
제이콥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공청회는, 공청회 전날 집행위원회를 열어 이미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려 놓고 그 다음에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의 말을 예의있게 들어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본문 530쪽) 그 주민들은 자신들 모두가 문제 바깥에 있다고 느꼈다. 이런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공청회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지역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도시, 그리고 도시계획. 도시에 필요한 것은 전문가들이 이론에 의해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사람들의 의지이고, 또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살고, 돈을 벌고, 이동하는 도시. 이 도시가 작동하는 데에는 다종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명백히 겉으로 보이는 문제라면 차라리 쉽다. 그리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쉬운 문제다. 미국의 공공주택 단지 워싱턴하우스(Washington Houses)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도로에 크리스마스 트리 한 그루를, 그리고 단지 내부에 트리 두 그루를 장식해 두었는데 다음날 도로에 있던 트리는 멀쩡한 반면 단지 안에 있던 트리는 장식품까지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본문 59쪽) 흔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공공물건을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에 대항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제인 제이콥스가 내놓는 실례들은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 좋은 지역에 대한 그릇된 생각과 오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도시를 지키는 패트롤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는 그냥 거리에 사람이 많고, 자신들이 사는 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어른들이 많은 것이 도시의 안전에는 훨씬 더 효과적임을, 우리가 도시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꼽는 자동차는 원인이 아니라 단지 징후일 뿐임을, 제이콥스는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상상력, 그 삶을 꾸려가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언제까지고 도전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도시’를 생명체로 바라본 제이콥스의 주장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도시’를 계속 살아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도시는 도시 건설과 설계에서 실패와 성공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이 실험실에서 도시계획은 이론을 배우고 형성하고 시험했어야 했다. 그러나 도시계획이라는 학문 분야(이런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의 실행가와 선생들은 실제 현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 했고, 예상치 못한 성공의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도심, 교외, 결핵환자 요양소, 박람회, 상상 속 꿈의 도시 등의 행태와 겉모습에서 끌어낸 원칙을 길잡이로 삼는다 ― 실제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다. 25
도시의 보도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하나의 추상일 뿐이다. 보도는 건물들과 관련해서만, 그리고 그것과 접하거나 가까이에 있는 다른 보도와 접한 다른 용도와 관련해서만 어떤 의미를 갖는다. 가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바퀴 달린 차량의 이동 말고 다른 용도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가로와 보도는 도시의 주요한 공공 공간으로서 도시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기(臟器)이다. 도시를 생각해 보라고 하면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도시의 가로이다. 어느 도시의 가로가 흥미롭게 보인다면, 그 도시는 흥미롭다. 가로가 따분해 보인다면, 그 도시는 따분하다. 53
재개발은 도시 환경을 말쑥하게 정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도시에 있던 원래의 다양성과 활력에 큰 충격과 손상을 입힌다. 66
리비히 법칙-식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필수영양소 가운데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이론이다. 독일의 식물학자 유수투비 리비히가 1840년에 주장했고, 다른말로 최소량의 법칙이라 부른다, 많은 게 아니라 부족한 것이 성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94
오래돈 건물과 장소를 없애고 새로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짜 어려운 일은 오래된 것을 살리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건축이고, 참한 도시 설계다. 지혜와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섬세한 손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102
재개발...가장 열악한 곳이 아니라 가장 돈이 되는 것에서 재배발이 시작된다. 105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도시가 만들어 내는 다양성은 도시에서는 무척 많은 사람들이 서로 무척 가깝게 생활하며, 그들 가운데는 무척 많은 서로 다른 취향과 기술, 욕구, 공급, 골똘한 생각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활기찬 도시 지구에서는 주인과 점원 둘뿐인 철물점, 약방, 과자가게, 술집 같은 일반적이지만 작은 가게들조차 이례적인 수가 광범위하게 번창할 수 있고 실제로 번창한다. 들르기 편하게 가까이에 여럿이 있어도 유지가 될 정도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가게들을 이용하고, 또 반대로 이런 편리함과 동네의 인간적인 특질이 이런 가게들이 거래하는 물건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까이에 여러 가게가 유지되지 못할 경우에 이내 이런 장점을 잃게 된다. 주어진 지리적 범위 내에서 사람이 반으로 줄어들면 가게 수를 절반으로 줄여도 가게 간 거리가 넓어져서 유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리상의 불편함이 생기면 소규모와 다양성과 인간적 특성 등의 장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206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저자 유현준|을유문화사 |2015.03
저자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HYUNJOON YOO ARCHITECTS) 대표 건축사. 하버드 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하버드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후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MIT 건축연구소 연구원 및 MIT 교환교수(2010)로 있었다. 2013 올해의 건축 BEST 7, 2013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CNN이 선정한 15 SEOUL’S ARCHITECTURAL WONDERS, 2010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 2009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제 현상 설계에서 다섯 차례 수상하였다. 2011 한국현대건축작가 16인 아시아전 요코하마 전시, 2010 한국현대건축작가 17인 아시아전 상하이 전시를 가졌다. 또한 청와대 리모델링 자문과 대한민국 건축대전 심사위원을 비롯한 각종 위원을 역임했다. 재미 시절 작품으로는 《165 CHARLES STREET APARTMENTS, NEW YORK》 등이 있고, 2005년 귀국 후 주요 작품으로는 <청운대학교 도서관>, <테마동물원 ZOOZOO>, <강북삼성병원 종합검진센터>, <고리원자력 발전소 신사옥>, <헤이리 촬영박물관>, <여수엑스포 L기업관>, <함께 일하는 재단 소셜인큐베이트센터>, <거제도 연수원>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모더니즘: 동서양문화의 하이브리드』, 『현대건축의 흐름』, 『52 9 12』가 있다. 현재 매일경제에 ‘I ♥ 건축’이라는 칼럼을 매주 개재하고 있다.
목차
추천사
머리말
제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강남 거리는 왜 걷기 싫을까? /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 공간의 속도 / 카페 앞 데크는 왜 거리를 좋게 만드는가?
제2장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휴먼 스케일, 카오스적인 도시, 간판 / 옛 도시 : 통일된 재료와 지형에 맞추어진 다양한 형태 / 골목은 없고, 복도만 있다 / 머리 위 하늘을 빼앗긴 도시 / 빨래가 사라진 도시 / 스카이라인 / 감정 시장
제3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감시받는 사회 / 공간과 권력 /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 클럽에 왜 문지기가 있을까? /
감시는 나쁘기만 한가? : 광장과 운동장 / 호텔과 모텔 사이 / 면적 vs 체적
제4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뉴욕 이야기
로프트, 예술가, 부동산 / 깨진 유리창의 법칙 / 냉장고와 건축 / 도시 개발업자의 비밀 무기 / 도시 재생, 생명의 사이클 / 죽은 시설의 부활 : 하이라인 공원 / 지루한 격자형 도시 뉴욕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 남대문은 고려청자와 무엇이 다른가?
제5장 강남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 사람이 만든 도시, 도시가 만든 사람
도시는 유기체 / 아메바부터 척추동물까지 / 진화하는 도시 : 로마, 파리, 뉴욕 / 화폐 속 건축가 / 강남과 북한
제6장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 포도주 같은 건축
층층이 퇴적된 삶의 역사 / 소주·포도주의 건축학 / 복합적 삶, 유일한 땅, 지혜로운 해결책 / 베트남 기념관 : 역사와 땅과 사람을 이용한 디자인의 백미
제7장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불편한 교회, 편안한 절 / 공간 구조와 종교 활동의 상호관계 :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 불교 사찰, 이슬람교 사원
제8장 우리는 왜 공원이 부족하다고 말할까
공원의 역사 / 거실과 골목길 / 우리가 TV를 많이 보는 이유 / 남산과 센트럴 파크 / 한강과 고수부지
제9장 열린 공간과 그 적들 : 사무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근로 공간의 탄생과 비밀 / 소돔과 고모라 / 시계탑 / 자리 배치의 비밀, 부장님의 자리 /
공공의 적, 형광등 /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사는 이유
제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
카페와 모텔이 많은 이유 / 한강의 만리장성 / 아파트와 돼지 / 아파트와 재개발 / 집 크기 / 가족애를 위한 아파트 평면 만들기 / 줄기 세포 주택
제11장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가
기호 해독 / 정보로서의 건축 / 왜 인터넷 ‘공간’이라고 부르는가? / 동물로서의 인간, 동물 이상의 인간 / 클럽과 페이스북 / 몸, 심리, 건축
제12장 뜨는 거리의 법칙
코엑스 광장엔 사람이 없다 / 지하 쇼핑몰의 한계 / 죽은 광장 살리기 / 신사동 가로수길 /
세운상가와 샹젤리제 : 건축가들이 흔히 하는 두 가지 실수 / 시간은 공간 / 덕수궁 돌담길
제13장 제품 디자인 vs 건축 디자인
제품과 건축 / 자동차와 건축 / 「명량」과 건축 / 유재석 같은 건축 / 위상기하학과 동대문 DDP / 그래비티
제14장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바둑과 체스의 공간 미학 / 알파벳과 한자 / 동양의 상대적 가치 / 서양의 절대적 가치 /
개미집과 벌집 / 空間과 SPACE / 한식 밥상과 코스 요리 / 테이블과 마루 / 장마와 건축
제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성 베네딕트 채플 : 자연과 대화하는 건물 / 두 주택 / 아사히야마 동물원 / 자연에 양보하는 잠수교 / 시간의 이름 / 옹벽의 역사 / 옹벽과 동 / 보이지 않는 벽 / 울타리 /
한국의 정자 : 자연과 대화하는 건축 / 한국적이란?
맺음말
미주
도판 출처
츨판사서평
1 걷고 싶은 거리, 뜨는 거리의 법칙
왜 고층 건물들만 들어서 있는 테헤란로는 산책하는 사람이나 데이트하는 연인이 드문데, 가로수길, 명동 거리, 홍대 앞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구불구불한 강북의 골목길은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일단 테헤란로를 보자.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찬 고층 건물들만 보인다. 그곳이 직장이거나 특별한 볼일이 있지 않는 한 갈 일이 없다. 구경할 것도 살 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명동이나 홍대 거리를 보자. 일단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해 구경거리가 많다.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간단하게 먹을 만한 곳들도 많고 극장이나 공연장도 있다. 이벤트 요소가 다양한 것이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가 볼 것도 많고 도보 위주의 짧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 걷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자동차 위주로 만들어진 뉴욕 같은 도시들은 격자형으로 지루하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블록도 크게 구획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이벤트 요소가 적다. 걸어 다니며 관광하기에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가 훨씬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오래된 도시들은 아름다운데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을까?
조금 전에 언급한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현대의 뉴욕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오래된 도시들은 휴먼 스케일에 맞춰져 있다. 재료도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저절로 특색이 생긴다. 여기에 그곳의 문화가 더해져 각 지역의 색깔이 만들어진다. 이런 도시는 스카이라인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특색을 갖고 있다. 고층 건물이 마구 솟아 있는 비슷비슷한 현대 도시의 스카이라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오래된 도시와 현대 도시는 건축물을 짓는 자세도 차이를 보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순응하는 자세로 지은 옛 건축물과 달리 현대의 건축물은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지은 것들이다. 경사진 곳에 축대를 쌓아 땅을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획일화된 아파트를 지으며 옹벽을 만드는 식이다. 몇몇 건축물은 자연에 순응해서 지어지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몇몇에 불과하다. 우리의 옛 건축물들이 자연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심지어 정자는 자연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무조건 옛 건축 양식이 좋고 맞다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수요와 한계가 지금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현대 건축은 아쉬운 점이 많다. 환경이 다른데 획일화된 양식을 도입하는 것은 그 지역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거나 단점을 덮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모습의 풍경이 지루하게 펼쳐지게 된다.
3. 권력이 드러나는 도시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욕망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도시에는 권력이라는 놈이 내민 얼굴도 보인다. 중앙에서 죄수를 감시하는 팬옵티콘과 비슷한 모양인 파리의 방사형 도로망,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타인을 내려다보는 펜트하우스, 부장은 부하 직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직원들이 부장을 보려면 일부러 고개를 돌려서 봐야만 볼 수 있는 곳(게다가 창가를 등져서 후광도 생긴다)에 위치시킨 자리 배치 등. 한편 호텔처럼 비싼 돈 내고 이용하는 곳은 일부러 사용자가 잘 보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같은 지역의 아파트라도 평수나 임대인지 아닌지로 선을 긋거나 호화 주택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살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호화 주택을 고깝게만 볼 수는 없다. 조선 시대 때 민중이 살던 초가집이 계승할 전통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대부의 한옥이 전통이 되었듯이 훗날 럭셔리한 회장님 집이 후대의 전통으로 인정될지도 모를 일이니.
4. 현대 도시의 모습
건축 양식도 철학도 달랐기에 차이를 보였던 동서양의 옛 도시의 모습과 달리 현대의 도시는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나름의 노력들도 있다. 앞서 언급된 뉴욕의 경우 격자형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브로드웨이를 만들어 격자형과 대각선이 만나는 지점에 생기는 삼각형 같은 독특한 공간 구조인 타임스퀘어를 만들어 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랜드마크나 센트럴 파크 같은 쉴 공간을 만들어 지루함을 덜어 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예술가들이 모여 독특한 홍대 문화를 만들었지만 땅값이 오른 지금은 예술가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도시는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변화해 왔다. 그런데 현대 도시는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잃어 가고 있으며 어설픈 철학과 인문학의 도입으로 건축의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는 부작용이 만들어 지기도 했다.
5. 도시는 유기체다
대도시의 복잡한 인공 생태계나 여러 변화와 혼돈으로 가득한 현대의 건축은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더 좋은 새로운 것이 태동할 과도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도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도시는 유기체라고 말한다. 도시 계획을 한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면 이내 진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따라 변한다. 마치 종자는 물론이고 토양이나 기후, 담그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포도주 같다.
6. 현대 도시가 잃어 가는 것들
서울을 보자. 예전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름의 정원을 가꾸며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던 앞마당과 이웃 간에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끼리 뛰어놀던 골목길이 사라졌다는 것일 거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 그리고 사람 간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앞마당에서의 흙장난이나 이웃과의 수다 대신 TV 앞에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갈수록 삭막해진다’는 말이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각 집의 특색이 되었던 빨래도 사라졌다. 그렇게 사람 냄새 풍기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심지어는 아파트 경비원 대신 무인 경비 시스템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사람 자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도시가 잃어 가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온기일지도 모른다.
호텔과 모텔은 창문 하나 차이? | 사무실 자리 배치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 왜 보스턴 코먼 공원에는 밤에도 사람이 많은데 센트럴 파크에는 밤에 사람이 없을까? | 절에 들어가는 건 쉬운데 왜 교회에 들어가는 건 어려울까? | 은행가들이 미술가들을 따라 이사를 다닌 이유는? | 왜 사람들은 서울의 네온사인은 싫어하면서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은 좋아할까?
책속으로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축물은 그 나라의 기술력과 재력을 보여 주는 과시의 상징이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물은 사람이다. 그리고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건축물의 이러한 특징은 랜드마크적인 건축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인 특색이 반영된 일반적인 건축물들 역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DNA를 보여 주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건축물을 이해하면 그 배경에 있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예술, 문화인류학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6
우리나라의 학교 운동장은 그저 새벽에 조기 축구나 할 뿐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못하다. 학교 운동장은 고밀도 도심 속에 여유를 주는 좋은 자원인데도 말이다. 유럽의 광장 주변에는 예외 없이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 그런 상점들이 들어선다면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하면서 학교 중심의 공동체 형성과 학교의 보안 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도시 계획 초기 단계에서 토지이용계획을 잡을 때부터 고려해야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방식의 도시설계나 단지 계획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근린생활 시설과 학교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상생할 수 있는 관계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우아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도시, 행복한 도시 경관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 p85
경제가 발전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 우리는 주변의 질 좋은 공간을 팔아서 물건을 산 것일 뿐이었다. 70~80년대를 거치면서 현재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마당이 있는 집을 팔아서 온수가 잘 나오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는 마당 대신 넓은 주차장을 얻었다. 하지만 마당이 없어지니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집을 더 넓히려고 안달이었다. 마당과 골목길의 부재는 고스란히 더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구하는 갈급함이 된 것이다.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 100평짜리 주상복합보다 더 넓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차 타고 한 시간 가야 하는 1만 평짜리 공원보다 한 걸음 앞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나 열 걸음 걸어서 있는 운치 있는 골목길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강북 달동네로, 유럽의 골목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p193
우리나라가 이렇게 건축이 뒤쳐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파트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지진이 많이 나서 고층 건물을 지을 때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층 아파트를 지을 때도 우리나라보다 공사비가 더 들어간다. 그래서 전후에 대량으로 주거를 공급해야 하는 이유는 똑같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국민 절반이 넘게 아파트에 살고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주택에 많이 사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식당에 가도 통일해서 주문한다. 반면 일본인은 혼자 먹는다. 우리나라 국민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일본인은 혼자서 무엇을 하는 데 익숙한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자 너도 나도 아파트로 이사했다. 반면에 일본인은 그냥 혼자 주택에 살아 왔다. 몇 천 세대가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하나는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몇 명의 건축가가 디자인하면 된다. 하지만 몇 천 세대가 주택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면 수백 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소규모인 주택은 대형 사무실의 조직으로 수행하기에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주택은 소형 설계사무소가 주로 맡아서 디자인을 한다. 주택 수요가 큰 일본에서는 소규모 건축 설계사무소가 생존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 p245 --- 본문 중에서
Your Hand In The Han - Ocean
(1971)
'세상과 어울리기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주하는 일본의 극우주의 재특회 (0) | 2018.06.04 |
---|---|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 (0) | 2018.06.02 |
그림책 -도시의 마지막 나무 (0) | 2018.05.26 |
자본주의 (0) | 2018.05.18 |
삼성 혹은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 外 (0) | 2018.05.13 |